서천 만물수리점 - 돌아갈 곳(3)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잡아먹힌 사람은 박실장이라고, 우리 집의 경호담당이었던 사람이에요. 봤다고 해도 그때는 밤이었으니까 제대로 봤는지조차 잘 몰라요. 나는 수영하던 중이라 해변에서 좀 떨어진 물속에 있었고 박실장은 바닷가에서 기다리던 중이었거든요. 뭔가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아서 돌아보니까 커다란 입 안으로 먹히고 있었어요. 사람 하나 정도는 쉽게 삼킬 정도로 큰 입이었어요.”
귀찮은 얼굴을 하고서 그녀가 약간 빠른 말투로 이야기했다.
“이 계절에 수영을요?”
“큰 물고기가 바닷가에서 말입니까?”
연화의 말이 끝나자마자 해명과 수호가 동시에 물었다. 그러고 나서 서로의 질문이 의외였는지 마주보았다.
“인어들은 따뜻한 물을 좋아해서 바다 깊은 곳에 살잖아요. 추운 계절에는 물 밖으로 잘 안 나온다고 하던데.”
해명이 중얼거리듯이 말하자 연화가 기분 상한 표정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다른 인어들이 뭘 좋아하는지 내가 알게 뭐예요. 나는 그들과 함께 있던 기억조차 남아있지 않아요. 그렇게 말하는 당신들 역시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지 않나요?”
“그건 그러네.”
싱긋 웃으며 해명이 수긍했다. 선선히 납득해버리자 오히려 이상했는지 연화가 묘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해명의 의견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더라도 수호의 의문은 달랐다.
“그것보다 사람을 잡아먹을 수 있을 정도로 큰 물고기가 해안까지 오다니 이상하잖습니까. 물 밖에서 살 수 있는가는 둘째 치고, 다리가 달린 것이 아닌 이상 얕은 곳을 지나가려면 몸을 펄떡이는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분명 꽤나 큰 소리를 내면서 물을 튀겼을 겁니다. 그런 걸 보면서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을 리가 없죠.”
아니 그보다, 그런 광경이나 소리를 연화가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이 말이 안 되었다. 수호도 거기까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한 말을 의심하고 있다는 걸 알았는지 연화의 얼굴이 다시 사나워졌다.
“그러니까 확실한 건 아니라고 말했잖아요. 그렇게 입이 커다랗게 벌어지는 걸 보면 물고기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게 당연하지 않아요? 박실장을 삼키고 나서 물속으로 들어갔고요. 눈앞에서 사람이 잡아먹히는데 그걸 자세히 관찰하고 있어야 했단 말이에요? 거기에서 도망치기 바빴어요. 그리고 애초에 그런 것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무슨 수로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고 사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상대는 어디까지나 아직 정체를 모르는 괴물이다. 무슨 능력이 있는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모른다. 물론, 그 괴물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바다에 사는, 사람을 잡아먹을 수 있을 만큼 큰 괴물이라면 몇 종류가 있기는 했다. 그 중 하나가 탄주어라는 것인데 고래와 혼동하기도 하는 바다 괴물로 크기는 배를 집어삼킬 수 있을 정도였다. 과거에는 이따금 가까운 바다에 출몰해서 어부가 탄 배를 공격했지만 배들이 철선(鐵船)으로 바뀐 뒤로 그런 일은 급격히 줄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분명한 어류로, 뭍에 나오는 일도 없고 얕은 물로 오는 일조차 없었다.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가정 하에서, 어두우니까 잘못 본 거라면 이무기일 수도 있고 육대주리나 영월태사 같은 걸 수도 있고. 혹은 어류나 동물형과는 전혀 무관한 다른 요괴일 수도…’
잠시 생각에 잠긴 수호에게 해명의 느긋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 물고기를 본 것은, 몇 사람이 실종된 다음의 일이죠?”
“세 명입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직원들의 실종이 괴물과 관련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른 방면으로 의심을 하고 있었지요.”
대답한 사람은 안명훈이었다. 줄곧 대화를 듣기만 하던 그가 비로소 입을 연 것이다.
해명이 꽤나 순진해 보이는 얼굴로 물었다.
“다른 방면이라면?”
“우리 집안은 건축업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지금은 부동산 쪽도 침체기이고 우리도 여러 방향으로 길을 모색하고 있어서 건축은 뒷전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과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요. 아는지 모르겠지만 건축업계, 위험한 바닥입니다. 건축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던 때에 그 알을 노리고 담을 넘어 들어오는 뱀 같은 것들이 많았지요.”
안명훈은 말하며 두 사람을 힐끗 훑어보았다. 키는 둘과 거의 비슷했지만 그 태도에는 어딘지 내려다보는 것처럼 느껴지는 데가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 뱀을 쫓으려면 집안에서 뱀을 기르는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요컨대 기왕 혼자서 알을 먹을 수 없다면 내 뱀과 나눠 먹는 편이 낫다는 이야기겠지요. 하지만 선영 그룹을 확장해 나가면서 선영 건설의 입지가 줄어들게 되자 키우던 뱀을 내보내야 할 때가 왔습니다. 그 중에서는 옛 주인을 물려고 드는 것들도 있었지요. 뱀은 키워봐야 뱀이니까요.”
“그런 자들의 소행이라고 생각했다는 거군요?”
“그래서 조사하던 차였습니다만 집사람이 그런 것을 봤다고 해서 생각을 바꿔 김해명씨에게 의뢰를 하게 된 겁니다.”
‘뱀’이라고 표현했어도 분명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일 터다. 그런 자들을 데리고 일했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예의바르고 꼿꼿한 태도였지만 무심한 듯이 드러내는 그런 일면이 상대방을 긴장하게 만든다. 고의라면 악취미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럼 원하시는 것은 괴물의 퇴치와 부인의 경호. 라고 해도 괴물을 퇴치하면 문제는 사라지는 셈이군요. 사람들이 집안에서 실종되는 경우도 있었나요?”
해명의 질문에 안명훈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실종된 다섯 명에 대해서는 누구에게 물으면 됩니까? 인적사항은 물론 실종된 날의 사정도 자세히 듣고 싶은데요.”
“주집사에게 말해 두었습니다.”
대답과 함께 그가 손짓을 하자 지켜보고 있었는지 한 사람이 재빨리 이쪽으로 다가왔다.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인상 좋은 남자였다. 운동과는 별로 인연이 없어 보이는 둥근 몸에 맞춘 듯한 슈트를 빼입고 있었다.
“이쪽으로…. 계시는 동안 쓸 방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둔해 보이는 몸집과 달리 목소리는 남자치고 음역이 높은 편이었고 행동도 재빨랐다. 두 사람은 그의 안내를 받아 테라스를 떠났다. 주집사를 따라가며 슬쩍 고개를 돌린 수호의 눈에 안명훈과 그의 인어 부인이 뭔가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거의 몸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서 있었다. 안명훈에게 가려져서 연화의 얼굴은 잘 안 보였다. 하지만 그의 손이 연화의 팔을 꽉 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주집사는 그들을 저택에서 좀 떨어진 게스트 하우스로 안내했다. 바다가 잘 보이도록 절벽 근처에 지어진 저택과 달리 게스트 하우스는 좀 더 안쪽의 숲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이곳에서는 저택의 동쪽 벽과 광안 해변로가 보였다.
주집사는 그들을 안내한 다음 수호나 해명의 질문을 받고 실종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거의 30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눴지만 직원들 중에서도 연화와 가까운 곳에 있던 사람들이라는 점 외에는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었다.
“이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됩니까? 굉장히 넓어 보이는데.”
대화가 끝나갈 무렵 수호가 지나가듯 물었다. 들어오기 전에 밖에서 본 저택의 규모도 그렇지만 차지하고 있는 부지도 꽤 넓었다. 한두 명으로는 관리하기 어려울 것이다.
“저까지 열 명입니다. 경호원이 다섯, 나머지는 일하는 사람들이지요.”
“평소에도 그렇게 경호원들이 많습니까?”
“전에도 늘 서너 명씩은 있었습니다. 요즘에 한두 명 늘어난 셈이지요.”
“정체도 모를 괴물 같은 거에 사람이 다섯 명이나 잡혀갔는데 한두 명 늘리는 걸로 안심이 되는 걸까.”
해명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듣기에 따라 기분 나쁠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주집사는 습관 같은 미소를 지으며 응대했다.
“그래서 두 분을 모셔온 게 아니겠습니까.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짐 정리가 끝나면 곧 나와 달라는 말과 함께 주집사가 떠나자, 해명은 금세 눈이 초롱초롱해져서 게스트 하우스 안을 여기저기 구경하고 수호는 피곤한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짐 정리라야 갖고 온 여행용 가방을 침대 옆에 던져두면 될 뿐이었다. 주집사도 그들의 짐 가방을 봤을 테니까 알고 있을 것이다.
“아저씨, 구경은 나중에 해도 되잖아요. 좀 일에 집중해 줘요.”
“글쎄 뭐. 괴물이 인어 부인을 노린다니까 그 옆에만 있으면 저절로 만나게 되지 않을까? 만나게 되면 이야기 해보고 말이 안 통하면 쫓아 보내고 그러면 되겠지.”
“저도 그렇게 단순하게 세상을 살 수 있으면 좋겠네요.”
수호가 야유하듯이 대꾸했다.
“복잡할 건 또 뭐야?”
해명이 푹신한 침대에 몸을 던지며 물었다. 침대는 그의 무게를 소리 없이 받아냈다.
“가진 건 돈 뿐인 재벌 2세잖아요. 지방의 조금 알려진 수리점 주인보다 나은 사람을 얼마든지 불러올 수 있었을 텐데요.”
“조금 알려져서 미안한데, 내가 그래도 성공률도 높고, 알음알음으로 은근히 유명하거든?”
“어떤 방면에서는 그럴 수도 있지만, 괴물 퇴치 같은 쪽으로는 아니지 않아요? 이를 테면 태령 윤문 같은 도사들도 있는데요. 바다 괴물 때문에 어딘가에 연락을 했다면 보통은 거기가 일순위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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