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천 만물수리점-193화 (193/218)

서천 만물수리점 - 돌아갈 곳(4)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태령 윤문과 비교당해서 기분이 상한 듯 해명이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하지만 딱히 반박하지는 않았다. 수호의 말이 맞다는 것을 그도 알기 때문이다.

어쨌든 본래가 천왕이라고 해도 그것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고 대외적으로는 파리 날리는 수리점의 동안인 사장, 뒤로는 기괴한 현상의 물건을 고쳐주는 사람이었다. 그 뒷세계에서도 흔해빠진 무당이나 도사들 중 하나로 취급받고 있는 것이다. 태령 윤문 정도라면 소위 뒷세계의 재벌그룹 같은 거라고 봐도 좋을 테니까 지명도나 신뢰도에서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그런 곳을 놔두고 먼 남쪽 지방의 도시에 사는 사람에게 일부러 의뢰를 했다면 둘 중 하나였다. 해명이 천왕이라는 것을 알고 있거나 해명의 실력이 고만고만한 수준이기를 기대하고 있거나.

‘어느 쪽일까. 저 남자는.’

단정하니 예의바르면서도 어딘가 기분 나쁜 방향으로 무심한 의뢰인, 안명훈을 떠올려보며 수호는 생각했다.

해명이 천왕이라는 것을 알거나 혹은 아는 사람에게 추천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도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저 정도의 남자이니까 누군가 고용한다면 최고를 선택하려고 할 테고 그의 인맥이 해명에게 닿는 것도 이상할 것은 없다. 오히려 그쪽이 더 신빙성 있다고 봐야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렇게 믿기 싫은 구석이 있었다. 무엇 때문인가를 말하라면 꼬집어 대답할 수는 없으면서 수호는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냥 재벌이라면 일단 싫다고 생각하게 되는 서민적인 발상인지도 모른다. 그런가? 하고 스스로도 잘 모르는 채로 수호는 해명과 함께 게스트 하우스를 나섰다.

주집사가 그들을 데리고 저택을 안내했다. 대략의 구조를 익히고 나자 연화의 하루 일과와 주의해야 할 점을 알려준 다음 다른 경호원들을 소개했다. 그 중 한 명은 역에서 그들을 데려온 남자였다.

“김상민입니다.”

내심이 잘 드러나지 않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인사했다. 그는 박실장이 실종된 후 그 자리를 맡아 이 집의 경비를 책임지고 있었다.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남자였다. 어깨와 가슴 근육이 단정한 슈트를 팽팽하게 밀어내는 것이 보였다. 실전에서 얼마나 도움이 될 근육인지는 몰라도 몸의 단련에 꽤 신경 쓰고 있는 증거였다.

다른 네 명의 직원들은 키나 체격이 모두 제각각이었지만 하나같이 눈매가 날카롭고 무표정했다. 다들 머리는 군인처럼 짧게 잘랐고 말수가 적었다.

수호의 눈으로는 그들의 기운이 약간 탁하다는 것과 건강은 좋다는 정도밖에 알아볼 수 없었다. 요기가 느껴지거나 삿된 기운을 묻히고 있는 사람도 없다. 그들 중 세 명은 저택 바깥에 흩어져 있고 한 명은 집안에서 CCTV를 감시했다. 김상민의 역할은 연화를 지근거리에서 경호하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의 지근거리냐 하면 침실 문밖에서 대기할 정도였다.

“집안에서 문제가 생긴 적은 없다면서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요? 대통령 경호도 이보다는 널널하겠네.”

문 바로 옆의 벽에 붙다시피 서 있는 김상민을 보며 해명이 놀려댔지만 “지금은 비상시입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해명의 기준으로 재미없는 남자였다. 연화의 방안을 확인하겠다는 말에 김상민은 함께 들어와 두 사람을 일일이 따라다니며 감시했다.

그동안 연화는 욕실에 있었다. 주집사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하루 거의 대부분을 욕실에서 보냈다. 물 밖으로 나오는 경우는 남편이 있을 때뿐이다. 박실장이 공격당했던 때와 같이 바다로 나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했다.

“집안도 그렇고 이 방도 그렇고 뭐 특별한 건 느껴지지 않는데? 괴물인가 하는 것이 요괴라면 어쨌든 이 집안으로 들어온 적은 없는 것 같아.”

방을 둘러보고 나서 해명이 말했다. 수호의 눈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상하게 보이는 물건은 없었다. 다만 이상한 점은 하나 있었다.

“이 방에는 창문이 없네요.”

응접실과 침실, 드레스 룸과 욕실로 이루어진 넓은 공간이었지만 어디에도 창문은 없었다. 저택의 구조상 외벽과 닿아있을 것 같은 응접실도 창문 대신 두꺼운 책장이 놓여있을 뿐이다. 대신 공기 청정기가 계속 돌아가고 습도도 온도도 잘 조절되고 있었다.

“사모님이 싫어하십니다. 직원들 중에는 구경거리처럼 힐끗거리는 사람도 있고, 예전에 기자에게 정보를 팔다 들킨 사람도 있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아예 창문을 없앴습니다.”

하긴 인어인 이상 그녀는 하루 중 대부분을 물에서 보내야 할 터였다. 잠시밖에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하루 종일 방안에 틀어박혀 있다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했다. 갖은 소문이 돌 테고 궁금하게 생각해서 들여다보려고 하는 사람도 생길지 모른다.

“그럼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가리면 되는 거 아닌가. 그게 더 효율적일 것 같은데. 부자들의 생각은 뭔가 남다른 것 같네.”

해명이 중얼거렸다. 비꼬는 투로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 김상민의 표정이 약간 굳었다.

“박실장님이 실종되었다는 바닷가에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수호가 해명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해명이 투덜거렸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니까. 어차피 이쪽으로 찾아올 거라고?.”

“돈 받는 만큼 일은 해야죠. 그리고 아직 요기가 남아있다면 그걸 알아볼 수 있는 건 아저씨뿐이잖아요. 난 그런 약한 기운까지는 못 읽으니까.”

반은 핑계고 반은 진심이었다.

바닷가로 나온 그들은 연화가 묘사했던 장소를 금방 찾아냈다. 주집사에게도 한 번 더 정확히 들었던 터다. 해명이 바다를 보자 금세 신이 나서 물로 달려가려다 수호에게 붙잡혔다.

“일 좀 하라고요.”

“너, 너. 사장님 귀를 그렇게 막 당기는 거 아니다? 응? 얌마! 아프다니까!”

“뭔가 남아있어요?”

불평을 무시하고 수호가 물었다. 해명이 토라진 얼굴로 대꾸했다.

“알 게 뭐야! 물에도 땅에도 허공에도 기운 같은 건 어디에나 넘쳐나는데. 모래 속에서도 아주 우글우글하고요. 바닷물에도 바위에도…”

말하다 말고 해명이 멈칫했다. 그는 고개를 기울이며 어딘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수호가 그쪽을 보자 해안이 끝나는 곳의 바위 쪽이다. 바위보다는 그 너머의 바다를 보고 있는 것 같지만 수호에게는 파란 물이 찰랑이고 있는 것밖에 알 수 없었다.

“왜 그래요?”

수호의 물음에 해명은 바다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눈을 깜박였다. 그리고는 이내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금은 무리겠는데. 밤에 다시 오자.”

확실히 사람들에게 보이면 안 되는 뭔가가 물속에 있다는 의미다.

“정말로 괴물이 있는 거예요? 물속에?”

저택으로 돌아가며 수호가 물었지만 해명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띠며 대답이 아닌 대꾸를 했다.

“괴물이랄까. 있기는 있네.”

좀 더 조르거나 정색을 하고 물으면 대답 해주겠지만 수호는 질문을 참았다. 해명의 태평한 태도를 보니 뭔가 있다고 해도 사람을 공격할 어떤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이 일과는 별로 연관이 없을 수도 있다.

저택으로 돌아가자 해명은 연화를 만나겠다며 그녀의 방으로 갔다. 물어볼 것이 있다고 하자 김상민이 먼저 방에 들어가 그녀의 허락을 받았다. 아까처럼 그는 두 사람의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말없이 욕실을 가리켰다. 그녀는 아직도 거기에 있는 모양이었다.

남의 방 침실에 딸린 욕실로 들어간다는 묘한 상황이었지만 그 기분도 문을 여는 순간 날아가버렸다.

“우아아…”

해명이 감탄하여 입을 벌리고 수호도 눈앞의 광경에는 놀라서 잠시 말을 잊었다.

거기는 욕실이라기보다 공중 목욕탕을 연상시키는 곳이었다. 수십 명이 함께 씻어도 될 것 같은 넓은 공간에 수영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욕조가 있었다. 벽도 바닥도 은은한 상아색의 대리석으로 장식되었고 욕조 주변에는 침실보다도 여러 가지의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책이라든가 노트북 컴퓨터처럼 욕실의 습기와 적대적인 것까지도 포함해서였다.

안의 공기는 후덥지근했다. 화장대의 거울에는 뿌옇게 김이 서리고 천장에서 물방울이 똑똑 떨어졌다. 물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욕조 안의 녹색 물은 흐린 파문을 일으키며 일렁였다.

욕조 안의 물이 천천히 갈라지며 수초처럼 까만 머리카락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 머리카락이 달라붙은 갸름한 얼굴에 이어 목과 어깨, 그리고 보기 좋게 부풀어 오른 가슴이 단번에 물 위로 솟아올랐다.

그녀는 아무 것도 입지 않은 맨 몸이었다. 벗은 상체를 드러내고도 부끄러움 없이 두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해명은 이미 가슴이 드러나기 전부터 고개를 돌렸지만 수호는 도전적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상대는 인어다.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사람과 같은 인어의 아름다움은 실로 비인간적이어서, 그녀가 고개를 조금 틀거나 속눈썹이 긴 눈을 깜박이는 것만으로도 몽롱하니 정신이 흐려질 지경이었다. 따뜻한 물에서 하얀 훈김이 오르고 있기 때문인지 습도 높은 공기 안에 가득한 묘한 향기 때문인지 수호도 알 수 없었다.

“저기, 아직 숫총각인 내 조수를 생각해서 뭐라도 좀 입으면 안 될까요?”

해명이 고개를 돌린 채로 연화에게 부탁했다.

“도대체 누가…”

수호가 짜증 섞인 얼굴로 쓸데없이 말 많은 사장을 쏘아보았다.

“뭐냐, 너. 설마 도사인 주제에 벌써 여자 때문에 타락해 버린 거야? 색을 멀리하라든가 그런 거 안 배우냐? 아, 그건 스님인가.”

“시끄러워요. 여자 때문에 삽질하고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아저씨겠죠.”

“야아. 최수호, 나 상처받았어.”

“스스로 치료하시죠. 특기잖아요.”

“매정해. 냉정해. 인정머리라고는 쥐뿔도 없어. 사장 권한으로 보너스는 취소다.”

“그런 거 한 번도 준 적 없거든요?”

주고받는 두 사람을 보고 있던 연화가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천천히 욕조 가장자리로 가더니 계단처럼 만들어진 입구에 걸터앉았다. 그러자 몸은 다시 어깨까지 잠겼지만 그렇다고 시선을 흐리는 요염한 아름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당신은 인어에 대해 잘 아는 것 같던데요. 당신이 아는 인어들은 옷을 입나요?”

연화가 해명에게 물었다. 해명은 눈을 깜박이더니 대답했다.

“보통은 안 입을 걸요. 하지만 당신은 보통 인어가 아니잖아요? 우리가 보통 사람이 아닌 것처럼.”

해명의 대답에 연화는 픽 웃고 욕조 밖으로 팔을 뻗었다. 거기에서 목욕 가운을 집어 걸친 다음, 축축하게 젖은 가운 차림으로 욕조 가장자리에 앉았다.

“질문이 있다고 하셨죠?”

그녀가 말했다. 허리를 느슨하게 매어 가운의 깃 사이로 쇄골부터 가슴골 깊은 곳까지 드러낸 모습은 차라리 벗는 게 낫다 싶게 색정적이었다. 수호는 재빨리 호흡을 다스렸다. 조금 전 해명이 짜증나게 하는 바람에 잠시 그녀의 요사한 아름다움에서 헤어날 수 있었지만 아까보다 거리가 가까워지고 보니 고개를 돌리는 정도로도 해결이 안 되었다.

그러나 해명은 오히려 한 발 가까이 그녀에게 다가가며 태연히 물었다.

“아아 그러니까…맞다. 지금까지 실종된 사람들, 뭔가 특이한 점이 있지 않았어요? 사람이 아니라 인어의 입장에서 봤을 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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