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만물수리점 - 돌아갈 곳(5)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인어의 입장?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하고 수호는 잠시 인어조차 잊어버린 채 해명을 쳐다보았다. 그의 질문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은 연화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모르겠네요.”
그녀가 싸늘하게 대꾸했다.
“하긴 오래 전부터 무리와 떨어져 뭍에서 살았다고 하니까 인어의 입장을 깨닫는 건 좀 무리인가….”
해명은 실례되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는, 연화가 화를 내기 전에 재빨리 말을 이었다.
“왜 옛날이야기에서 학이 처녀로 둔갑해 사람과 결혼한다든가 우렁 각시가 여자로 변해서 어떤 남자의 집안일을 돕는다든가 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요괴들이 선택하는 남자들이 항상 순박하고 착한 사람이거든요. 물론 순진한 쪽이 속이기 쉬우니까 당연하겠지만 요괴들은 어떻게 착한 사람을 구분하는 걸까요. 캄캄한 밤중에 산속에서 잠깐 만나보는 정도로.”
“그런 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연화가 쌀쌀맞게 말했다. 그야 당신도 요괴니까 라고 수호는 생각했지만, 어쩌면 바로 그런 점이 그녀를 기분 나쁘게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어릴 때부터 인어의 무리와 떨어져 인간들과 함께 살았다면, 그녀의 정체성은 인어와 인간 사이에서 자신이 더 동경하는 쪽으로 기울어졌을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어느 쪽일까. 그녀가 더 동경하는 것은.
해명은 그녀의 차가운 반응에 개의치 않았다. 재미있는 것처럼 눈을 반짝이며 그가 말했다.
“그건 말이죠…그냥 아는 거예요”
“예?”
어이없다는 듯이 물어본 사람은 수호다. 뭔가 있을 것처럼 말을 꺼내더니 그냥이 뭐야, 그냥이.
“왜? 그냥 아는 거라니까. 말하자면 수영이가 먹을 것을 찾아내는 것과 같은 감각이랄까. 그 녀석은 어떻게 우리 집만 오면 귀신같이 간식 숨겨둔 곳을 찾아내는지 몰라.”
“걔는 찾을 때까지 뒤지니까요. 그건 그렇다 치고 요괴가 그냥 착한 사람을 구분하는 게 뭐 어쨌다고요.”
“그러니까 그 본능적인 감각이 연화씨에게도 있을 거란 말이지. 생각해 보세요. 실종된 사람들은 모두 연화씨와 관계된 직원들이었어요. 그 사람들을 가까이 둔 것은 누군가 권해서였나요? 아니면 연화씨의 선택이었나요?”
해명의 질문에 연화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 사람들이 잡혀간 게 내 탓이라는 거예요?”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누가 권해서 옆에 둔 게 아닌 모양인데…”
연화가 화난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그녀가 해명에게 뭐라고 쏟아 붓기 전에 수호가 재빨리 말했다.
“그 사람들에게 뭔가 특별한 행동이나 말을 한 적은 없습니까? 아주 사소한 거라도 상관없으니까요.”
연화가 잠시 멈칫한 틈을 타서 수호는 한 번 더 말했다.
“정말 별 것 아닌 일일 수도 있습니다. 요괴들의 기준은 인간과 다릅니다. 사람에게는 별 것 아닌 것이 요괴들에게는 중요한 일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사모님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이 사실 괴물에게는 중요한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부탁드립니다. 잡혀간 사람들 중 누군가 살아있다면, 사모님의 기억이 유일한 희망입니다.”
금방이라도 화를 낼 것 같던 연화는 수호의 말을 들으며 조금씩 얼굴이 풀어지더니 정말로 고개를 기울이며 생각에 잠겼다. 눈썹을 찌푸리며 골똘히 생각에 빠진 모습이 어찌나 진지한지 해명도 수호도 함께 숨을 죽이고 그녀를 지켜보았다.
이윽고 그녀가 말했다.
“이건 진짜 관계없는 일 같은데…사라진 사람들은 모두 내가 인어라는 걸 몰랐어요.”
“그렇다는 건 이 집안에 사모님이 인어라는 것을 아는 사람도 많다는 말입니까?”
수호의 질문에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남편과 주집사 뿐이지만, 하루 종일 방안에만 있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의심하는 사람은 많았어요. 하지만 사라진 사람들은, 전혀 모를 뿐 아니라 의심하는 기색조차 없어서 저도 편하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는 가까이 둔 것이고요.”
의심하지 않고 그녀를 편하게 만드는 사람들. 어쩌면 해명이 말한 순수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단서라고는 전혀 없는 것 같던 상황에서 뭔가 연결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호는 저도 모르게 그녀에게 몸을 기울이며 물었다.
“다른 건요? 그것 말도 또 다른 공통점이나…”
“아, 아직은 생각이 안 나요.”
불쑥 다가온 수호에게 놀란 것처럼 그녀가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해명이 끼어들었다.
“그럼 이곳의 직원들 가운데, 당신이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 있나요? 어쩌면 다음 타겟이 될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그녀가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괴물에게 잡혀가게 된다는, 어쩌면 무신경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해명의 말에 연화는 기분 상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없어요.”
그녀가 딱 잘라 말했다.
“아직 그것이 이유라는 확증은 없습니다. 혹시 다른 일이 생각나면 언제라도 알려주시겠습니까? 별 것 아닌 거라도 상관없습니다.”
수호의 말에 연화는 약간 토라진 얼굴을 옆으로 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그곳을 나가자 김상민이 문 앞에 서 있다가 그들을 안내하듯 앞장서서 방을 나섰다. 설마 방안에서 길을 잃을 거라고 생각할 리는 없으니, 아무리 봐도 어물거리지 말고 어서 나가라는 무언의 압박인 것이다. 안명훈은 분명 부인의 보호까지 함께 의뢰했었지만 김상민의 태도는 그 반대였다.
둘은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갔다. 해명이 배가 고프다며 이 집은 저녁을 언제 먹는 거냐고 투덜거렸다.
“그보다 이제는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저씨.”
“그건 너도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금세 침대에 드러누워 있던 해명이 씩 웃었다.
“인어가 갑자기 너한테 호의적으로 변하더라? 부적이라도 쓴 거야? 아니, 그랬다면 내가 알아차렸을 텐데.”
“그야 아저씨처럼 생각 없고 무신경한 사람 옆에 있으면 누구라도 친절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그런가?”
수호가 의뭉스럽게 대꾸했다.
“아아, 그럼 다음 번 타겟은 네가 되는 거냐? 네 뒤를 잘 따라다녀야 하겠는걸.”
“언제는 인어 옆에만 있으면 괴물을 볼 수 있을 거라면서요.”
“아아…그렇게 생각했는데 말이지. 그건 아니더라고.”
뒤통수를 긁으며 해명이 말했다.
“아까 낮에 바다에서 본 녀석은 확실히 사람을 잡아먹을 수도 있을 정도로 크고, 뭐 누가 보든 괴물이라고 생각하게 생겼지만 실은 얌전한 놈이거든. 그러니까 사람을 해치지는 않아. 문제는 그게 아니고 녀석이 숨어있는 곳 근처에 남겨진 요기인데….”
“역시 바다에 뭔가 남아있었다는 거예요?”
“응. 희미하기는 하지만. 그런데 익숙한 요기는 아니라서 정확히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네. 아무튼 그것도 그거지만 이 집이 더 이상하지 않냐?”
“뭐가요?”
“그렇잖아. 돈 많은 사업가라지만 일단 평범한 사람인데 부인은 인어에 집사는 장미토라니.”
“예…?”
수호가 되묻자 해명이 천연스럽게 눈을 깜박였다.
“응? 몰랐어? 아까 뚱뚱한 집사 아저씨. 장미토(長尾兎)였잖아.”
장미토라고 하면 보통은 토끼 모양의 작은 동물형 요괴였다. 꽤 영리해서 사람 말도 잘 알아듣고 본성이 착한데다 길들이기도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특성 때문에 오히려 쉽게 희생되어서 지금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요괴였다. 그런 장미토가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할 정도까지 오래 살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모르는 게 당연하잖아요. 부적이라도 쓰기 전에는 보통 사람과 다름없는 눈에다, 집중하지 않으면 기운도 읽기 어려운 내가! 그리고 처음 집을 돌아본 다음에는 뭐 특별한 건 없다고 했으면서! 도대체 아저씨 눈에 특별한 건 뭔데!’
불평을 쏟아내고 싶은 마음이 울컥 치솟았지만 수호는 꾹 참았다.
“집사 아저씨 말고 다른 요괴는 이 집에 없었나요?”
“뭐 딱히 요괴라고 할 정도까지는 아닌지 몰라도 아까 집에 들어오는데 정원에 근화초가 피어있더라? 그거 굉장히 드문 꽃인데 말이야.”
근화초라고 하면 무궁화의 별명이기도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존재하는 하루살이의 화초가 있었다. 말 그대로 하루살이, 하루 만에 씨에서 싹이 트고 자라고 꽃이 핀 다음 져서 씨앗을 떨구는 것이다. 그런 식이기 때문에 하나의 씨앗이 발아하면 거기에서부터 매일 근화초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셈이었다.
자연을 위해서는 다행히도, 근화초의 씨앗은 발아하는 것보다 썩는 것이 더 많아 실제로는 그렇게 무서운 속도로 번식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식물보다 번식이 느리다고 봐야 했다. 떨어진 씨앗 모두가 썩어버리는 일도 흔했다.
“민영훈의 방 안쪽으로는 기운이 잘 읽히지 않았어. 이 집에서 유일하게 거기만 그러더라고. 그리고 저택 뒤편의 숲에서도 뭔가 물 냄새랑 같이 요기가 느껴지는데 위험한 것 같지는 않고 물고기 종류의 요괴라도 사나 봐.”
별 거 아니란 투로 해명이 말했다.
‘인어에 장미토, 근화초. 그리고 위험하지 않은 물고기 요괴. 이건 마치…’
해명의 말을 듣던 수호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해명을 돌아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너랑 같은 생각인 것 같은데. 아무래도 우리 의뢰인은 특별한 걸 수집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도 주로 살아있는 것으로.”
‘요괴 수집가란 말인가?’
평범한 사람이 그런 일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해본 적 없는 수호가 입을 벌렸다.
“그런 걸 왜 말도 안 해준 거예요?”
“그게 뭐 그렇게 특별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진귀한 걸 수집하는 사람들은 가끔 있거든. 박선생이라든가…. 그리고 너네 집에도 도깨비나 귀신 따위 넘쳐나잖아.”
“우리집은 수집하는 게 아니라 저절로 모이는 거고요. 박선생님…그 할아버지는 물건만 사시잖아요.”
“그러니까 물건만 사는 사람이 있다면 생물만 사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이상할 거 없잖아.”
해명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수호는 뭐라고 더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더 해도 말싸움밖에 안 되었다. 그는 어차피 천왕이다. 여우인 백은호나 여우였던 스승과 다르면서도 어떤 부분에서는 비슷했다. 그리고 그 부분에서만은 그들과 어떻게 해도 섞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런 질문을 한 거예요? 인어의 입장에서 특별한 점이 있는가 라는 질문.”
“응. 어떻게 봐도 그 인어는 안명훈의 수집품이잖아. 직원들의 실종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을 거야. 하지만 확실히 관계는 있을 것 같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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