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천 만물수리점-196화 (196/218)

서천 만물수리점 - 돌아갈 곳(7)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등 밑이 따뜻했다.

그런데 따뜻한 한편 축축하고, 동시에 뭔가 굼실거리며 움직이는 기척이 있었다. 그런 기척이 뒤통수와 등과 엉덩이와 다리까지, 몸의 하중이 실린 뒤편 전체에서 느껴졌다.

‘기분 나빠…’

반쯤 멍한 상태에서도 수호는 생각했다.

‘마치 바닥이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 같잖아.’

그렇게 생각하자 더욱 기분이 나빠졌다. 살아있는 뭔가의 위에 누워있다니. 게다가 목덜미에 느껴지는 바닥의 감촉은 따뜻하고 축축한데 이끼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약간 거칠거리는 게 마치…

그 정체가 흐린 머릿속에 떠오르자 수호는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윽….”

목에서 등으로 이어지는 뼈마디가 우둑거렸다. 묵직한 통증이 뒤통수를 당긴다. 수호는 천천히 몸을 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보려고 해도 어차피 캄캄해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다. 팔을 위아래로 펼쳐 봐도 닿는 것이 없고 발밑은 아직 굼실굼실 움직이고 있었다. 주먹으로 바닥을 꾹 눌러보자 물렁하니 들어간다. 싫다는 듯이 바닥이 한 차례 크게 꿈틀거렸다.

수호는 쓴웃음을 섞어 중얼거렸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어떻게든 찾기는 찾은 것 같네, 당로장구.”

그는 사과하듯이 바닥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꿈틀거리던 바닥이 아니, 당로장구의 혀가 차츰 조용해졌다.

떠밀려 절벽에서 떨어진 다음 바다에 빠진 것까지는 기억이 났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바다에 빠진 그를 당로장구가 입 안에 넣은 것 같았다. 아직 옷이 흥건하게 젖은 것을 보면 입안으로 들어온지도 얼마 안 되었다.

부적은 모두 젖어서 쓸 수 없었다. 진언이 새겨진 차돌은 가지고 있었지만 어두운 당로장구의 뱃속에서 방향을 찾는 용도로는 쓸모가 없다.

수호는 손을 앞으로 내밀고 천천히 걸었다. 잠시 후 미끈거리는 벽이 손끝에 닿았다. 그것을 만지며 따라서 걷자 끝이 없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계속되었다. 조바심이 나는 것을 참으며 수호는 계속해서 걸었다.

발밑의 감촉은 말랑말랑한 혀에서 푹신한 바닥으로 바뀌었다. 그러다 나중에는 바닥이 딱딱한 한편 흙냄새와 나무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공기도 변했다. 게다가 귀를 기울이면 바람에 나뭇가지가 살랑이는 것 같은 소리마저 들려왔다.

‘뱃속에 집을 지을 수 있을 정도라면 나무도 흙도 충분히 있다는 뜻이 아닐까?’

해명의 말을 기억하고 수호는 벽을 따라가는 것은 그만 두었다. 그리고 벽과 반대편으로 천천히 걸었다. 잠시 후에 발밑에서 풀잎이 사각거리며 밟혔다. 나무도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캄캄해서 아무 것도 안 보였지만 스승과 함께 산에서 수련하던 것이 도움이 되어 걷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그렇게 한참 걷다 멀리 나무 사이로 불빛을 보았다.

불빛을 따라가니 나타난 것은 예쁘게 지어진 기와집 한 채였다. 담장이 낮고 대문 앞에 청사초롱이 걸려 있었다. 멀리까지 보인 불빛의 정체였다.

이 집이 해명이 말한 집이라면 누가 여기에 살고 있는 걸까. 등을 걸어놓은 사람이 누군가 싶었지만 가까이 가서 보자 청사초롱 안에는 촛불 대신 반딧불이 같은 것들이 오물오물 모여 있었다.

반딧불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 꽁무니에서만 빛을 내는 반디와 달리 이것들은 온 몸에서 빛을 발했고 비교할 수 없이 밝았다. 게다가 아마도 요괴. 집중하자 약한 요기가 느껴진다.

안으로 들어가니 아담하지만 구색은 모두 갖춘 번듯한 집이었다. 방이 두 개, 부엌이 하나, 마당도 제법 넓고 집에서 좀 떨어진 곳에 뒷간도 만들어져 있었다.

오래 사용하지 않았을 텐데도 먼지 하나 앉지 않은 툇마루에 잊어버리고 간 것 같은 목도리가 하나,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어린아이용인지 작고 오색 천으로 지은 것이었다.

안방도, 부엌도, 사랑방도 누군가 조금 전까지 있다가 잠시 나간 것처럼 온기가 감돌았다.

이곳에서 지낼 때의 해명도령은 분명 어린아이의 몸이었을 테니까 갈아입을 만한 옷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뜻밖에 사랑방의 횃대에 제법 큰 옷이 보였다. 바지와 저고리에 버선과 두루마기까지 남성 옷 일습이 구색을 갖춰 가지런히 걸려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횃대 아래에는 태사혜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있기까지 했다.

입어보자 품도 적당한 것이 마치 맞춘 옷 같았다.

명절에조차 신을 일이 없는 버선을 들고 신으려던 차에, 수호는 버선 안에서 뭔가 바삭거리는 것을 알아차렸다. 손을 집어넣자 얇은 종이 뭉치가 잡혔다. 그것을 꺼내보기도 전에 이미 감촉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괴황지….’

과연 꺼내자 노랗게 물들인 종이 몇 장이, 그 크기는 물론 경면주사로 적은 붉은 문양이 눈에 들어왔다. 획과 삐침이 낯설지 않았다. 부적의 순서도 익숙했다.

‘말도 안 돼.’

잠깐 부정했지만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옷도 부적도 모두 자신에게 남겨진 것이다. 아마도 거의 백수십 년 전에.

수호는 부적을 하나씩 확인해 보고 나서 늘 하던 습관대로 그것들을 나눠 넣고 다시 집을 나섰다. 이렇게까지 준비가 되어있다면 머뭇거릴 필요가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부적이 불타올랐다. 그러나 부적이 다 타버린 후에도 야구공 크기의 불꽃이 사라지지 않고 허공에 머물러 둥둥 떠 있었다. 부적이 한 장 더, 또 한 장 더. 그렇게 다섯 장이 타오르자 허공의 불덩이도 다섯 개가 되었다.

“혼은 불이니 불을 당겨, 밝혀라. 깨워라. 이끌어 내라.”

수호가 나직이 속삭였다. 둥둥 떠 있던 불덩이들이 하나씩 흩어지기 시작했다. 수호는 움직이지 않고 서서, 눈을 감고는 귀를 기울였다.

집 앞 가까운 곳에서 첫 번째 소리가 들려왔다. 째지는 듯한 여자의 비명소리였다. 달려가 보자 수수한 검은 원피스를 입은 30대의 여자가 바닥을 뒹굴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괴로운 이유는 분명하다. 조금 전 수호가 날려 보낸 불덩이 때문이었다. 그것이 그녀의 안으로 들어가서 뱃속을 뜨겁게 태우고 있는 것이다. 물론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수호가 여자의 배 위에 손을 얹었다. 손바닥이 잠시 뜨거워졌다가 이내 열기가 사라졌다. 여자는 눈물을 글썽이며 괴로워하다가 갑자기 통증이 사라지자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빛이라야 청사초롱에서 나오는 요괴의 불빛뿐이다. 근처가 겨우 보일 정도였다.

“여, 여기는 어디에요? 제가 왜 여기 있는 거예요?”

여자가 겁먹은 얼굴로 수호를 보며 물었다. 차분히 설명해줄 시간은 없었다. 대답하기도 전에 멀리서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또 들려온 것이다. 이번에는 남자의 굵은 목소리였다.

“나중에 설명할게요. 안전하니까 걱정 말고 기다리세요.”

수호는 여자를 해명의 집에 데려다 놓고 이번에는 두 번째 비명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뛰었다.

그런 식으로 하나씩 하나씩, 다섯 명을 다 찾아낼 수 있었다.

다섯 명 모두 놀라고 두려워서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았다. 경호원이었던 남자 두 명은 그래도 침착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가사도우미인 여자 두 명과 요리사인 남자 한 명은 악몽이라도 꾸는 얼굴이었다.

“그러니까 여러분 모두 전혀 기억이 안 난다는 겁니까?”

게다가 누구도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온 뒤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2주 가까이 실종되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기간 동안의 기억은 조금도 없었다.

다섯 명 모두 그럭저럭 움직이고 있지만 상태가 좋아 보이지도 않았다. 첫 번째로 실종되었던 가사도우미 여성이 그 중 가장 심했다. 볼이 홀쭉하게 들어가고 눈이 퀭한 것이, 마치 빨대를 꽂아서 몸 안의 수분을 쭉 빨아 마신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지막 기억이 뭐였는지는요? 일하던 곳에서 어떻게 나왔는지 기억나세요?”

수호가 끈질기게 몇 번씩이나 묻자 자신의 이름을 박관영이라고 밝힌 남자가 차분히 말했다.

“어떻게 나왔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누가 부른 것 같기도 하고, 뭘 찾으러 나간 것 같기도 한데. 띄엄띄엄 생각나는 것이 있기는 해도 그게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할 수가 없군요. 제가 본 것은…아니, 아마 잘못 기억하는 걸 겁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수호는 그를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

“누구를 보셨죠?”

“예?”

당황한 목소리를 내며 박관영이 눈을 크게 떴다.

“분명히 누군가를 보셨을 겁니다. 좋아하는 여성분을요. 맞지요?”

“그, 무슨…”

박관영이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말을 더듬었다. 그때 수호에게 첫 번째로 발견된 여성이 “아!”하는 탄성을 냈다.

“저요. 전 남자친구를 봤거든요. 그런데 제 남자친구가 어째서 여기까지 왔을까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제가 일하는 곳에 잘 안 오거든요.”

그녀의 말에 요리사라는 남자도 어릴 적의 첫사랑을 봤다고 조그만 목소리로 고백했다.

“어릴 때 모습 그대로더라고요. 저한테 이리 오라고 손짓하는 걸 본 것 같은데…그게 20년도 전의 일인데 아직도 그대로일 리가 없지요. 내가 귀신을 봤나 싶어요.”

다른 두 사람도 비슷했다. 저택에서 어떻게 나왔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바닷가에 이르러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았고, 기억은 거기에서 끊어졌다.

사람의 눈을 미혹하는 재주를 가진 요괴는 많다. 하지만 대상이 반드시 좋아하는 사람으로 보인다면 의심이 가는 요괴가 하나 있었다. 하지만 안명훈은 설마 그 요괴까지 수집하고 있었던 걸까? 심지어 그것을 부릴 수도 있다고? 도사도 아닌 평범한 사람에게 그것이 가능할까? 만일 가능하다면, 그는 어떻게 그런 지식을 손에 넣은 걸까.

아니, 이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시점에서 평범한 사람은 아니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어쨌든 일단은 이 사람들을 데리고 여기에서 나가야 해.’

하지만 어떻게? 당로장구는 바다에 몸을 숨기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도 입 밖으로 나가면 곧장 바닷속이라는 뜻이었다. 육지가 가까운 곳이라면 헤엄이라도 칠 수 있겠지만 먼 바다라면 무덤을 파는 꼴이었다. 하긴 그것도 당로장구의 안에서 나갈 수 있어야 가능한 걱정이겠지만.

그런 생각으로 고심하고 있을 때 대문 쪽에서부터 발소리가 들려왔다. 젖은 신발이 처벅처벅 소리를 내고 있었다.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린 수호의 눈에 온몸이 젖은 채로 파리한 얼굴을 한 젊은 여자가 보였다. 그녀가 문 안으로 비틀비틀 걸어 들어왔다. 멍한 눈으로 수호를 보더니 눈이 마주치는 순간 무릎부터 꺾이며 쓰러졌다.

수호가 자기도 모르게 마루에서 뛰어내렸다. 말 그대로 버선발로 달려가서 그녀를 부축한 순간 깨달았다.

그녀일 리가 없다.

깨달은 순간 여자가 그의 팔을 꽉 잡았다. 하얀 얼굴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잡았다.”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