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만물수리점 - 아귀도(1)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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쩝쩝 입맛을 다시는 소리에 민규는 잠에서 깼다. 작은 소리였지만 잠이 얕게 들어 있었고, 무엇보다 지금 ‘먹을 것’과 관련된 감각은 극도로 예민해진 상태였다.
주위는 아직 캄캄했다. 창문이 하나 있으니까 낮이었다면 분명 환했을 것이다. 그러면 아직은 밤, 그것도 깊은 밤중이었다. 어둠속에서 민규는 숨을 들이쉬어 냄새를 맡아보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무언가 먹을 것이 있는가….
그러나 며칠 동안 익숙해진 땀 냄새와 지린내, 그리고 어제부터 슬슬 느껴지는 고기 썩는 냄새가 전부였다. 아니, 다른 익숙한 냄새가 있는 것도 같고…. 그때 다시 어둠 속에서 꿀꺽 하고 뭔가를 삼키는 소리가 들리자 민규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누운 채로 고개를 돌리는 작은 소음이 났을 뿐이지만 어둠 저쪽에서는 갑자기 숨을 죽이며 긴장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아빠….”
민규가 작은 목소리로 거기에 있을 사람을 불렀다. 이 방안에서 대화를 할 수 있는 유일한 한 사람이니까 소리가 들렸다면 다른 누구일 리는 없다. 어둠에 점점 익숙해진 눈에 그의 뒷모습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민규에게 등을 보이며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바로 앞에는 엄마가 누워있다. 엄마가 좀처럼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서만 지내게 된 뒤로 그는 이따금 저 자리에 앉아 아내를 내려다보고는 했다. 말을 걸거나 만지려고 한 적은 없었다. 뒷모습이어서 쭈그리고 앉아 내려다보는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어째서 아빠는 아직도 저렇게 엄마를 보고 있는 걸까 하고 민규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아무리 보고 있어도 이제 엄마는 다시 일어날 수 없다. 그렇게 말해준 사람은 바로 아빠 자신이었다. 네 엄마는 죽었다, 라고 쉰 목소리로 말할 때의 그는 마주보기 무서운 오싹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민규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아빠…?”
기다려도 대답이 없어서 민규는 다시 한 번 그를 불렀다.
어둠 속에서 그의 뒷모습이 반으로 줄어들었다. 허리를 숙여 상체를 아래로 기울인 것이다. 머리가 거의 바닥에 닿을 정도로까지 숙이고 있었다. 바로 앞에 엄마가 누워 있는데 뭘 하려는 걸까. 민규는 멍하니 그 어두운 모습을 바라보았다.
피부가 간질거렸다. 차갑고 가는 실오리 같은 것이 스물 스물 기어 다니며 솜털을 건드리는 기분이었다. 다시 한 번 아빠를 부르려고 입술을 달싹이는 순간
“츠읍…츠르릅…”
머리를 숙인 그곳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넓은 접시 위의 물을 입술을 모으고 빨아들이는 듯한 소리였다.
아빠가 뭔가를 먹고 있어 라는 생각의 꼬리를 물고 뭘 먹는 거지? 라는 질문이 따라왔다. 이곳에 먹을 것 따위는 전혀 없었다…
민규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거의 사흘째 제대로 먹지 못해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으나 남은 힘을 쥐어짜서 아빠에게 기어갔다.
“아빠….”
갈라진 목소리가 나왔다. 엎드려 있던 그의 뒷모습이 멈칫했다. 소리도 그쳤다. 그가 천천히 상체를 폈다.
뒷모습일 뿐인데, 민규는 그의 얼굴을 본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민규, 깼냐?”
등을 보인채로 아빠가 말했다. 묘하게 다정하고 태연한 목소리였다. 민규는 그 목소리에 안심하기보다 오싹한 위화감을 느꼈다. 잠들기 전까지도 말이 거의 없이, 이따금 필요하면 쉰 것 같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던 아빠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민규는 말을 건 것을 후회했다. 힘들여 여기까지 기어온 것은 만일 아빠가 뭔가를 먹고 있다면 나도 먹을 수 있을까…라는 본능에 가까운 반응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확실히 먹을 것 따위는 이 방에 없었다.
“왜, 배고프냐?”
아빠가 부드럽게 물었다. 물론 배가 고팠다. 음식을 먹은 것은 벌써 사흘도 전이었다.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약간의 물이 전부였고 그것도 이틀째에는 바닥이 났다. 침도 말라붙어서 입안이 까끌까끌했다. 허기가 지다 못해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아빠는 배가 고프냐고 묻고 있었다. 마치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주겠다는 듯이. 그런 것은 없을 텐데. 아니…
민규는 문득 생각했다.
먹을 수 있는 것은 있으나 먹어서는 안 되는…그런 것은 있었다. 그러자 조금 전부터 맡고 있던 냄새가 뭔지 알아차렸다.
몸을 지탱하고 있던 팔이 와들와들 떨리기 시작했다. 민규는 꿈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엎드린 채 발버둥치는 것 같은 모양으로 아빠로부터 멀어지려고 했다.
“왜 그러니.”
아빠가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물으며 고개를 돌려 아들을 보았다. 쑥 들어간 눈두덩 안에서 불그스레하게 충혈 된 눈이 민규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아들의 얼굴이 노랗게 변해서 필사적으로 방의 구석으로 기어가는 모양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리 와라. 배가 고프지?”
말하며 그가 손짓했다. 아들을 향해 손짓하는 그의 손도, 다정하게 말하는 입도, 그리고 턱과 가슴팍도 모두 짙은 색으로 얼룩져 있었다. 어두우니까 그것이 무슨 색인지는 정확히 모른다. 그러나 민규는 토할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오랫동안 아무 것도 못 먹었잖아? 이리 와서 같이 먹자. 자, 이것 봐…”
아빠가 고개를 돌리더니 한 손으로 뭔가를 집어 민규를 향해 내밀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 손으로부터 물방울 같은 것이 툭툭 떨어지는 소리만은 확실히 들렸다. 민규는 등을 벽에 붙이고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빠가 무릎걸음으로 다가왔다. 다가올수록 냄새가 강해졌다. 단백질이 썩어갈 때 나는 냄새에 섞여 비릿하니 녹슨 쇠에서 맡을 수 있는 그런 냄새가 풍겼다.
“먹으라니까. 응?”
바로 코앞으로 손을 들이밀며 아빠가 말했다. 짙은 액체로 미끈미끈한 손에서 뭔가가 툭 떨어져 민규의 옷을 적셨다. 더 견디지 못하고 민규는 눈을 뒤집으며 기절했다.
“나더러 뭘…하라고?”
잘못 들은 건 아닌가 하는 표정으로 되묻는 수호의 앞에서, 올해 3학년이 되는 대학 후배 은영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애인이요.”
눈 하나 깜짝 않고 당당하게 말하는 이 아가씨는 ‘수호의 몇 안 되는 친구 중 하나인 재호의 여동생 같은 과 선배의 친구’라는 길고 복잡한 인맥을 타고 여기에 와 있었다.
“정확히는 결혼을 약속한 사이, 즉 약혼자이지만요.”
“난 당분간 결혼할 생각 없는데.”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수호를 보며 은영이 눈을 휘어 웃었다. 잘 웃는 여자였다.
“알아요. 유명하신데요, 뭐. 어쨌든 상관없잖아요. 거짓말이니까.”
“거짓말도 별로 안 좋아하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있잖아요. 오빠도 평생 거짓말 한 번 안 하고 산 건 아닐 거면서.”
게다가 성격도 은근히 뻔뻔한 데가 있고 처음 본 수호를 오빠라고 부르며 붙임성 있게 구는 게 어디 가서 미움 받을 타입은 아니었다. 미움은커녕 귀여움 받는 쪽에 더 익숙한지도 모른다.
웃으면 애교살이 도드라지는 큰 눈에다 볼우물이 패는 얼굴도 예쁘장했고 옷 입는 것이나 화장이나 지나치지 않으면서 세련되게 꾸밀 줄 알았다. 자신의 매력을 알고 있는 여성 특유의 당당한 태도에, 싫지 않을 정도의 애교를 꾸며내는 앙큼한 면도 있었다.
“그래서 그 거짓말을 어디 가서 하면 되는 건데? 설마 부모님 중 한 분이 병들어 누워계신데 죽기 전에 딸이 결혼하는 걸 봐야 눈을 감을 수 있겠다든가 하는 그런 내용의 영화 찍는 건 아니지?”
“그럼 차라리 좋겠네요. 그건 로맨스 영화잖아요. 장르가 달라요.”
한숨 쉬는 듯이 은영이 대꾸했다.
“이건 뭐랄까…미스터리 스릴러? 쉽게 말하자면 사기라서요.”
‘거짓말보다 더 나쁘잖아. 어째서 사기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란 거냐?’고 수호가 묻기 전에 은영은 재빨리 말을 이었다.
“아버지에게 굉장히 부자인 사촌형이 계신데요 최근에 돌아가셨어요. 저한테는 음, 5촌 당숙이신 거죠. 그런데 그분이 결혼을 안 해서 친자식은 없고 양자만 하나 있대요. 그래서 유산은 양자가 모두 물려받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사촌 형제들에게 물려준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제 아버지도 유산을 받게 된 거죠.”
그런데 유산을 그냥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상한 조건이 하나 있는 거예요. 당숙의 집에서 하루, 그러니까 24시간 동안 있어야 한다는 거래요. 그리고 유산은 머릿수대로 공평하게 나누고요. 즉 가족이 네 명이면 네 명 분의 유산을 받고 세 명이면 세 명 분의 유산을 받는 거죠. 안 가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받을 돈은 다른 사람들에게 나줘 주는 셈이니까 온 가족이 다 당숙의 집에 가서 하루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은영의 가족을 포함해 다섯 명의 사촌 형제들이 가족과 함께 모이기로 했다는 것이다.
“근데 제 동생이, 바로 어제 교통사고로 입원했거든요. 심한 건 아니지만 병원에서 나오는 건 아무래도 무리라서 우리 집은 한 명 분을 못 받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아버지가 저를 막 닦달하시잖아요. 네 남자친구라도 데려오라고요. 가족이라면 사위나 며느리도 상관없다고 하니까 곧 결혼할 사이라고 말하면 된다고.”
“그래서 나더러?”
어이가 없다는 투로 수호가 묻자 은영은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괜찮죠? 나쁜 짓도 아니고. 어차피 받아야 할 돈인데 동생이 입원하는 바람에 못 받게 된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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