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만물수리점 - 아귀도(3)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간지러운 듯한 감각이 발밑을 지나갔다. 약한 전기가 발바닥 밑에서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것이 바닥에서 벽을 타고 올라갔다가 이윽고 공기 안에 확 퍼지는 것이 느껴졌다. 짧은 순간이었으며 곧 사라졌지만 수호는 오싹 떨었다.
둔한 자신이 느낄 정도의 기운이라는 말이었다. 감출 것도 없이 모든 것을 드러낸 요괴 정도가 아니면 이만큼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부적을 얼마나 가져왔었지?’
가장 먼저 무기를 확인했으나 늘 지니고 다니는 차돌과 기본적인 부적 몇 장이 전부였다. 상대가 뭔지도 모르는데 이정도 준비로는 어림도 없다.
‘일단은 나가야 해.’
그렇게 생각하고 사람들을 돌아보았으나, 거실의 분위기는 조금 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신경을 곤두세우면서도 기대와 흥분으로 들떠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무겁고 날카로웠다. 말수가 줄어들고 생각으로 복잡한 눈이 흐렸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방금 한 사람당 15억이 넘는 돈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들은 것이다. 누구라도 평정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인생이 바뀔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이었다. 그것을 이 집에서 하루만 보내면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밖으로 나가자고 하면?
‘들어줄 리가 없지.’
수호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피로감을 느꼈다. 늦기 전에 여기를 벗어나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분명 누군가 죽게 된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었다. 누가 될지는 몰라도 그 누구에는 물론 수호 자신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믿어줄 것인가? 수십억의 유산을 포기하고 목숨을 구하라고 하면, 사람들이 그 말을 들어줄 것인가.
누군가 죽게 된다. 그리고 제시할 수 있는 증거는 저 사람들에게 아무 의미도 없을 얼음덩어리 하나뿐이다. 물론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실패할 것이 분명한 일을 해야만 하는 때도 있었다.
수호가 잠깐 할 말이 있다며 거실 가운데로 들어가자 의문과 경계를 담은 시선들이 수호에게로 쏟아졌다. 은영이 놀란 눈을 깜박이는 것이 보였다. 수호는 가지고 있던 얼음 덩어리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아까 마당에 떨어졌던 겁니다. 몇 분은 보셨겠지만 그래도 한 번 더 봐주십시오. 어떤 모양인지 자세히 봐주세요.”
수호의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친족도 아니어서 처음 보는 청년이 갑자기 이야기에 끼어들더니 엉뚱한 요구를 하고 있었다.
“난데없이 무슨 소린가. 지금 우리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잖나.”
은영의 큰아버지가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 가운데 가장 연장자이며 형제들 사이에서도 맏형으로 취급받고 있는 그를 수호는 똑바로 쏘아보며 나직이 말했다.
“먼저, 보십시오.”
고의로 기운을 모아 밀어내며 말하자 무형의 것이라 보이지 않아도 몸은 확실히 반응했다. 은영의 큰아버지가 다리를 조금 비틀거렸다. 허리에서 힘이 풀리며 서있기가 약간 힘들었을 것이다. 기가 약한 사람이었다면 쓰러졌겠지만 나이치고는 정정한데다 기력도 좋은 그는 조금 당황했을 뿐이다.
그러나 일단 기세에서 밀리자 수호가 집어서 내미는 얼음덩어리를 순순히 받아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도대체 무슨 영문인가 모르면서도 옆에서 함께 쳐다보던 그의 부인이 “어머.”하는 소리를 냈다.
“이거 꼭 사람 얼굴같이 생겼네.”
그녀의 말에 근처에 있던 사람들도 가까이 오거나 고개를 빼서 얼음덩어리를 살펴보았다. 과연 그것은 마치 조각이라도 해놓은 것처럼 이목구비가 뚜렷하니 사람의 얼굴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보니 사람 얼굴을 닮기도 했구만. 그런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여전히 언짢은 채로 은영의 큰아버지가 물었다. 수호는 이제부터 해야 할 말을 생각하자 머리가 지끈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안 할 수만 있다면 안 했으면 싶었다.
“그것은 인면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사람의 얼굴 모양인 우박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떨어지는 곳에서는 반드시, 누군가 죽게 됩니다.”
사람들의 얼굴이 각양각색으로 변했다. 어이없다는 표정. 저 사람 갑자기 왜 저런 소리를 하느냐는 의심의 표정. 이상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불안의 표정. 그리고 은영을 비롯한 그녀의 가족들은 당황한 표정이었다.
“아까 장독이 깨진 것은 누군가의 짓궂은 장난이 아니라 하늘에서 떨어진 인면박 때문이라는 겁니다. 장독을 깬 것, 마당에 떨어진 것 외에도 지붕에 떨어지는 소리를 모두 들었을 겁니다. 그 수만큼 사람이 죽게 된다는 뜻입니다.”
“자네 지금 무슨 소린가!”
은영의 아버지가 허둥지둥 다가와 수호의 팔을 붙잡았다.
“이 친구가! 분위기를 봐가며 농담을 하게. 아아, 신경들 쓰지 말아. 가끔 이런 실없는 소리를 하니까. 은영아, 뭐하니.”
그가 딸을 불러 수호를 데려가라는 눈짓을 했다. 수호는 정색하며 그에게 잡힌 팔을 빼냈다.
“농담이 아닙니다. 마당에 두 개, 지붕에 떨어진 우박이 세 개였습니다. 그러니 지붕 밑인 집안에서 세 명이 죽게 됩니다. 그게 누가 될지는 모르지만요.”
“그만하라고 했잖나!”
은영의 아버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얼굴이 붉어질 만큼 진심으로 화내고 있었다.
“오빠…”
은영이 수호의 팔을 잡으며 끌어당겼다. 잔뜩 난처해진 얼굴인 그녀를 보자 더 말할 마음도 사라졌다.
“뭐, 경고는 했으니까.”
수호는 중얼거리며 그녀가 끌어당기는 대로 따라갔다. 등 뒤로 사람들이 소곤거리거나 대놓고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은영은 팔을 잡고 뒤쪽의 작은 방으로 데려갔다. 서재로 쓰는 곳인지 책상과 길쭉한 책장이 놓여 있었다.
“그거, 정말이에요?”
방으로 들어가자 안절부절 하며 은영이 수호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녀는 학교에서 수호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있었다. 역술 공부를 했다고도, 신내렸다는 말도 들릴 정도라 그의 말을 허술하게 넘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수호는 수호대로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놓고 결국 듣기 싫은 소리나 들은 셈이라 기분이 상해 있었다.
“정말이라면 지금이라도 여기에서 나갈래?”
퉁명스럽게 묻자 은영의 얼굴이 난처하게 일그러졌다. 대답을 하지 못한다. 당연하다. 그런 터무니없는 말을 믿을 리가 없고, 또 믿는다고 해도 누가 죽을지는 아직 모른다. 나나 우리 가족만 아니라면…그런 생각도 어딘가에는 있을지 몰랐다.
“오빠는 나갈 거예요?”
대답하는 대신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약혼자라고 말해놓은 이상 수호 역시 한 명분의 상속권이 있었다. 그가 가면 은영이네 집에 들어오는 유산이 한 명분 줄어드는 것이다. 15억을 날리게 된다는 말이었다.
“누가 죽게 될지 모른다고 했잖아. 게다가 지붕에 떨어져서 위치도 확실하게 몰라.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가 없다고. 집에서 최대한 멀어지는 게 최선이야.”
“그치만…”
은영이가 뭐라고 더 말하기도 전에 방문이 벌컥 열리며 은영의 어머니가 들어왔다.
“도대체 왜 그런 소리를 한 거예요? 사람들이 지금 뭐라는지 알아요? 우리가 딴 마음을 먹고 이상한 사람을 데려왔다느니, 정말로 은영이랑 결혼할 사람이 맞냐느니, 아까 아들 대신 인정해주기로 한 건 취소해야 한다드니 난리예요, 지금. 아니 가만히만 있으면 될 걸 왜 이상한 소리를 해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놔요?”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신경질적인 어조로 수호에게 쏟아 부었다. 은영이 중간을 가로막고 말려봤지만 화살은 그녀에게 돌아갔다.
“너는 어디서 사람을 데려와도 이런 사람을 데려왔니? 뭘 제대로 하는 게 없어!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 나이를 그만큼 먹었으면 눈치라는 게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어쩔 거야, 이걸. 이러다가 저 사람을 인정 못하겠다고들 하면 어쩔 거냐고. 앉은 자리에서 15억을 날리게 생겼잖아!”
딸을 나무라던 그녀가 고개를 휙 돌려 수호를 노려보았다.
“또 그런 소리 하면 알아서 해요. 댁 때문에 우리가 한 명 분을 못 받게 되면 내가 재판을 걸어서라도 손해배상을 받아낼 테니까! 15억 내놓을 거면 맘대로 해 보든지!”
쐐기를 박듯이 쏘아붙인 다음 그녀가 홱 돌아서서 방을 나갔다. 은영이 어쩔 줄 모르며 발만 동동 굴렀고 수호는 얕은 한숨을 쉬었다. 이정도 반응이 있을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직접 당하고 보니 기분이 더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오빠, 미안해요. 우리 엄마가 원래 절대로 그런 분이 아닌데. 오늘 정말 상황이 그렇잖아요. 이해해 줘요. 예? 그리고 여차하면 저도 같이 설득할 테니까. 대화를 할 만한 상황이 될 때까지만 오빠가 좀 참아줘요.”
은영은 은영대로 애원하는 얼굴을 하며 부탁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화를 할 만한 상황이라는 것은 결국 수호의 말을 증명할 만한 일이 벌어진 후라는 뜻이다.
누군가 죽는다.
그렇게 말했지만 수호를 어느 정도까지는 신뢰하고 있는 은영조차도 그 말의 무게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누구’가 자신이나 자기 가족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최소한 그것조차도 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생각하고도 외면하는 걸까?
그러나 수호는 그것을 일깨우는 말을 굳이 그녀에게 하지 않았다. 어떻게 말해도 그녀가 지금 집에서 나갈 리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사람들이 그의 말을 믿어주기 위해서는 누군가 죽어야만 한다. 하지만 죽는 사람이 생긴 뒤에는 정말 믿어줄까? 혹은 믿는다 해도 이 집에서 나가려고 할까? 집안에서 죽는 사람은 세 명이다. 총 열여덟 명이 있으니 죽을 확률은 6분의 1. 반대로 말하면 살 수 있는 확률은 6분의 5였다.
6분의 5 확률도 살 수 있다. 그리고 살아남으면 세 명이 죽어서 더욱 늘어난 유산을 상속받게 된다. 두려워하면서도 그렇게 계산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수호는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은 어려웠다. 차라리 더 근본적인 문제. 이곳에서 사람이 죽게 되는 이유를 찾는 것이 나았다.
인면박은 엄밀히 사람을 죽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죽게 되는 일을 예고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곳에서 사람들을, 그것도 다섯 명이나 죽게 만드는 걸까. 지금 수백억의 유산을 둘러싸고 신경을 곤두세운 사람들이 열일곱 명이나 있으니 사고가 생겨도 이상할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범한 사람들이 갑자기 살인자가 되지는 않는다.
그것도 그거고, 아까 시계가 5시를 가리켰을 때 이 집 전체를 휩쓸고 지나간 듯한 강렬한 기운의 정체도 아직 모르고 있었다. 확인하고 싶어도 부적이 부족하다.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부적으로 어떻게든 해내야 하니 신중하게 사용해야 했다.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실질적인 위험과 부딪치지 않을 경우이고. 만일 여기에 사람이 아닌 다른 어떤 존재나 힘이 작용하고 있다면 혼자서 그것을 감당할 자신은 없었다.
‘아저씨가 와준다면…’
수리점에서 영암까지는 대략 차로 한 시간 거리다. 해명은 운전을 못하니 버스를 타고 올 테고, 그렇다면 차를 기다리는 시간에 걷는 시간을 포함해서 지금 출발하면 밤에는 도착할 터였다.
막상 온다고 해도 그를 안으로 들여보내 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가 와주기만 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핸드폰을 꺼냈으나 전원이 꺼진 것을 보고 당황했다. 배터리라면 아직 충분했다. 어쩌다 저절로 꺼진 걸까 싶어 전원 버튼을 눌렀지만 켜지지 않는다.
‘설마.’
거실에 있는 은영을 손짓으로 불러서 핸드폰을 빌려달라고 했으나 그녀의 것도 마찬가지였다.
“이상하네? 여기 왔을 때까지는 괜찮았는데.”
다른 사람들의 핸드폰도 확인해 달라고 부탁하자 부모님과 젊은이들 사이를 돌아다니더니 겁먹은 얼굴로 수호에게 돌아왔다.
“오빠. 다른 사람들도 똑같아요. 다 핸드폰이 고장이에요. 큰아버지는 시계도 고장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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