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만물수리점 - 아귀도(5)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도라지 술을 바닥내고 나자 잠시 조용했던 거실이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거실 안쪽의 주방에서부터였다.
싸우는 정도까지는 아니었으나 사람들이 서로를 타박하며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한두 마디씩 들려오더니 그것이 점점 늘었다. 거기에 그릇이 쨍강거리며 부딪치는 소리가 섞이고 좀 더 뒤에는 오가는 목소리가 사뭇 높아졌다.
“아 조금만 기다리면 될 걸 그걸 못 참아서 그래요?”
“한 컵 마셨으면 비켜야 할 거 아냐? 언제까지 차지하고 있을 거야?”
“아주버님 그릇은 대접이잖아요. 컵으로 두 번은 따라야 채울 만큼 크니까 이이도 두 컵은 마셔야죠.”
“그럼 큰 그릇으로 가져오든지.”
“좀 비켜봐. 싸울 거면 저리 가서 싸워. 왜 수도꼭지 앞을 가리고 서서 그래?”
“그래요. 아유, 물 다 흘러가잖아요.”
왁자지껄한 소리에 수호가 거실로 나가보았다. 사람들이 주방에 몰려들어 있었다. 그곳 개수대 앞에 서서 수도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서로 마시려고 다투는 중이었다.
“저 물, 괜찮은 거야?”
그를 보고 다가온 은영에게 수호가 물었다. 은영은 낯빛이 굳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요. 여기에서만 저러는 게 아니라 화장실에서도 그래요. 갑자기 목이 마르다면서…”
“전부 다?”
“고모부만 빼고요. 고모부는 속이 안 좋아서 방에 누워계셔요.”
“언제부터?”
“아침부터 계속 그러셨던 것 같아요. 뭘 잘못 드셔서 밤새 설사 때문에 고생하셨대요.”
그 기척이라면 수호도 지난밤에 듣고 있었다.
“그럼 도라지 술도 안 드셨겠네.”
바닥을 뒹굴고 있는 술병을 일으키며 수호가 물었다. 술만 마신 것이 아니라 안에 들어있던 도라지도 모두 먹었는지 깨끗이 비어 있었다. 은영이 기억을 돌이켜 보다가 이윽고 대답했다.
“고모부는 안 내려오셨는데, 고모가 고모부 갖다 드린다고 한 잔 따라서 이층으로 가셨어요. 그러니까 드셨을지도 몰라요.”
“배탈로 누워있는 사람에게 술을 줄 리가 없잖아. 누군가 다른 사람이 먹었겠지.”
텅 빈 술병 입구에 코를 가져가서 냄새를 맡아 보았지만 소주 냄새만 풍겼다. 그때 2층에서 누군가 뛰어내려왔다. 은영의 사촌오빠 부인인 젊은 새댁이었다. 통통하니 순해 보이는 얼굴이 파리해져 있었다.
“아가씨, 다른 사람들 없어요? 다들 뭐해요?”
그녀는 대답하기도 전에 부엌으로 뛰어가서 사람들이 물을 마시려고 싸우고 있는 모양을 보았다. 그녀가 울상을 지으며 은영의 팔에 매달렸다.
“어떡해. 2층에서도 화장실에서 지금 그이랑 고모 아이들이랑 똑같이 저러고 있어요. 저 무서워 죽겠어요. 아무리 말을 해도 안 들어요. 물을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배가 불룩해졌는데 계속 마셔요. 안 마시면 죽을 것처럼 달려드는 거예요. 아가씨, 어쩌면 좋아요? 사람들이 갑자기 다 왜들 이래요?”
그녀의 하소연에 은영이 수호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눈길이었지만 수호도 딱히 방법을 아는 것은 아니었다. 요괴의 짓이라면 특성이 있으니 상황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어떻게든 알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원귀 같은 것의 소행이라면 양상은 그야말로 광범위하다.
무엇보다 부적이 없었다. 가지고 있는 몇 장의 부적은 최소한의 방어에 필요한 정도다. 영안이 어두운 그는 보고 듣는 것이 모두 보통 사람과 같았다. 부적이 없으면 장님과 매한가지였다.
“혹시 도라지 술, 안 드셨어요?”
멀쩡해 보이는 그녀에게 수호가 물었다. 그녀가 이상한 질문을 받았다고 생각하는지 눈을 깜박였다.
“예. 아이를 가지려고 하는 중이라 술은 안 마시고 있어요.”
‘사람들이 이상해진 이유는 도라지 술이 거의 확실한 것 같고. 그렇다면 다음으로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가 문제인데.’
부엌에서 물을 마시던 사람들은 더 이상 들어갈 곳이 없을 정도로 마셨으면서도 계속해서 물을 삼키다 이윽고는 견디지 못하고 토해내기 시작했다. 바닥에 엎드려 구역질을 하다가 그 때문에 위장이 조금 비었다 싶으면 다시 물 앞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또 벌컥벌컥 물을 마셨다.
그곳으로부터 물비린내가 느껴졌다. 가까운 곳에 썩은 웅덩이가 있을 때에나 맡을 법한 냄새였다.
“일단 고모부님 계신 방으로 가 있어. 나도 곧 갈 테니까.”
둘을 보내놓고 수호는 서재로 돌아갔다. 창문 앞의 책상을 내려다보며 그는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쓸 수밖에 없겠어.’
책상 위에는 영화표 정도의 크기로 잘린 종이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종이의 두께나 색은 제각각이었다. 책의 속표지에서 잘라낸 것도 있고 노트나 수첩도 있었고 벽지를 뜯어낸 것도 있었다. 같은 것은 크기뿐이다.
그 종이 위에 검붉은 색으로 말라붙은 문양도 조금씩은 달랐다.
서재를 뒤져 겨우 찾아낸 깨끗한 종이들을 이용해서 수호는 밤새 부적을 만든 것이었다. 물론 제대로 된 부적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본래는 괴황에서 우린 물을 여러 번 들인 종이에 경면주사를 참기름에 개어서 쓰는 것이다. 아무 때나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날과 시를 가려야 했다. 부적을 만드는 사람 역시 며칠 전부터 몸과 마음을 다스리며 부정한 일을 하거나 보지 않도록 조심한 끝에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이지만 수호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몸가짐을 정돈하고 호흡을 다스려 마음속을 가라앉히는 정도가 할 수 있는 준비의 전부였다. 한밤중에 몇 번이나 집중이 흐트러지며 산을 타넘는 기분으로 한 장씩 만들어 낸 부적이었다. 경면주사 대신 자신의 피를 써서, 머리카락을 잘라 만든 붓으로 그렸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것이 일곱 장.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는 몰랐다.
부적의 효험은 만든 사람의 공과 쓰는 사람의 공이 반씩이었다. 아무리 잘 만든 부적도 제대로 써주지 않으면 완전한 효험을 내지 못한다. 하지만 반대로, 아무리 엉성하게 만든 부적이라도 쓰는 사람에 따라 어느 정도까지는 효력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것을 믿고 써보는 수밖에 없었다.
수호는 부적을 챙겨 서재에서 나왔다. 부엌에서는 아직도 사람들이 한데 엉켜 밀고 당기며 서로 먼저 물을 마시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들을 힐끗 본 수호가 흠칫 걸음을 멈췄다. 사람들의 모습이 어쩐지 낯설었다. 뭔가 바뀌었다. 무엇이 바뀌었나 찾는 수호의 눈에 하나같이 불룩 튀어나와 흔들리는 사람들의 배가 보였다.
모두 임신한 여자처럼 배가 부풀어 있었다. 바지와 웃옷 사이로 팽팽하게 부푼 하얀 살이 드러났다. 그러나 그것뿐이 아니다. 커다랗게 부푼 배와 달리 서로를 밀고 잡아당기는 손들이 이상할 정도로 가늘었다.
단순히 가늘다기보다는 말랐다는 쪽이 맞았다. 피부 밑의 지방이 사라진 것처럼 손가락의 뼈마디가 다 드러나 있었다. 아니, 좀 더 위쪽인 손목까지도 그렇게 보였다. 그러고 보면 얼굴도 볼품없을 정도로 눈 주변과 볼이 쑥 들어갔다.
‘불과 몇 분 만에…’
술을 마신 후로 지금까지 길어야 20분이었다. 이 짧은 시간에 사람들이 저렇게 변해버린 셈이다.
수호는 재빨리 2층으로 올라갔다. 계단 오른쪽의 화장실에서 세 명이서 옥신각신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싸우는 도중에 웩 하고 토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모부가 있다는 방을 찾아가다 말고 수호가 멈칫 섰다. 토하는 소리와 막힌 숨을 컥컥 뱉어내는 소리에 섞여 뭔가 다른 것이 들렸다.
단단한 바닥에 딱딱하고 작은 것이 부딪치는 소리였다.
콜록거리는 기침 소리가 끊어지기 무섭게 다시 비키라며 서로 수도꼭지를 차지하려고 싸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저 난장판에 끼어들어 봐야 좋을 일은 없었다.
2층은 약간의 공간을 둘러싸고 화장실과 두 개의 방이 있었다. 화장실 바로 옆방은 아이들 것으로 보이는 가방과 여행용 가방이 하나 있을 뿐 텅 비었다. 문 열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그 옆방에서 은영이 먼저 머리를 내밀었다.
“오빠? 여기…”
그녀가 속삭이듯 수호를 불렀다. 화장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겁을 집어먹고 있었는지 목소리도 크게 못 내고 있었다. 방안에서 중년의 남자가 초췌한 얼굴로 앉아 있다가 수호를 보고 눈을 껌벅거렸다. 그의 뒤편에 누군가 누워있었다. 아까 일층으로 내려와 은영에게 하소연하던 젊은 새댁이다.
그런데 그녀의 머리에는 하얀 천이 묶여 있고 귀 위쪽으로 붉은 얼룩이 보였다.
“화장실로 사촌 오빠를 말리러 갔다가 떠밀려서 넘어졌어요.”
은영이 수호에게 말했다.
“넘어질 때 세면대에 머리를 부딪쳤는데 글쎄 사람들이 자기들 싸우느라 언니는 신경도 안 써서 넘어져 있을 때 몇 번 밟힌 것 같아요. 다른 곳은 멍만 들었는데 발목 한 쪽이 부었어요. 뼈가 부러진 게 아닌가 걱정이에요. 머리의 상처도 그렇고…”
과연 누워있는 여자의 팔다리에 멍든 자국이 보였다.
“고모부가 겨우 끌어내서 이리 데려왔어요.”
고모부는 새치로 희끗한 머리에 소같이 순한 눈을 가진 남자였다. 어딘지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다가 수호를 보자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봐요. 은영이 말이, 당신이 도사인지 점쟁이인지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서요. 응? 어제 한 말 정말이오? 정말로 여기에서 사람이 죽는 거요? 대체 왜들 저렇게 된 거요. 아들놈들이…저것들이 나도 몰라보고…”
그의 팔에도 긁힌 것 같은 상처와 멍자국이 보였다. 화장실에서 아들들을 끌어내려고 실랑이를 벌인 흔적이었다.
“도대체 여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요. 응…?”
울음 섞인 목소리로 그가 물었다.
“이제부터 알아낼 겁니다.”
수호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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