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천 만물수리점-203화 (203/218)

서천 만물수리점 - 아귀도(6)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은영에게 방문을 잠그고 안에 있으라고 이른 다음 수호는 그곳을 나왔다. 손에는 부적이 한 장, 손가락 사이에 끼워져 있었다. 손끝에 모은 기운을 털듯이 흔들어 부적에 밀어 넣자 그것에 반응하여 황금색 불꽃이 확 올랐다.

연기와 불꽃이 피어오르는 부적이 눈앞의 허공을 쓸고 지나갔다. 희미한 열기가 눈에 닿았다. 열기를 머금은 눈에 평소에 보던 것과는 조금 다른 정경이 펼쳐졌다.

‘보던’이라고 해야 할지 ‘느끼던’이라고 해야 할지 모호했다. 평소의 시계 위로 시각과 촉각의 공감각이 덧씌워진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은영이 있는 방안에서 세 사람의 생기가, 거리에도 불구하고 잡힐 것처럼 느껴졌다. 반면 방 하나를 사이에 둔 화장실 쪽에서는 음습하고 거북한 기운이 뭉클뭉클 피어오르고 있었다.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 기운이었으나 그것조차도 똑같이 피부에 닿는 것 같았다.

부적을 써서 영안이 밝아진 결과였다.

‘스승님이나 아저씨는 매일 이런 것을 보고 있는 걸까.’

부적을 쓸 때마다 낯설어지는 세상을 보며 수호는 그런 생각을 하고는 했다.

달라진 부분은 그런 특별한 것뿐만이 아니다. 조금 전까지 아무렇지 않게 딛고 있던 바닥도, 벽도, 한결 어둡고 질척거려져서 발을 뗄 때마다 수호는 얼굴을 찡그렸다. 공기는 더욱 탁해진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집 밖의 숲에 가득한 맑은 공기와 기운이 느껴지자 당장이라도 뛰어나가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수호는 화장실 앞으로 가서 아직도 수도 앞에서 다투고 있는 세 사람을 보았다. 몇 십 분째 그러고 있었으니 밀리고 밀치다 쓰러지며 밟혔을 세 사람의 몸 역시 성치는 않았다. 그러나 아픈 줄도 모르는 것처럼 물을 차지하려고 필사적으로 싸웠다. 그 싸우는 세 사람의 뒷모습에 겹쳐 뭔가가 어릿거렸다.

‘뭐지…?’

처음에는 잘 알 수 없었다. 뭔가가 붙어있다기 보다 씌웠다는 편이 맞는 것 같은데 뼈를 투시하고 있는 건가 싶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조금 더 가까이 가보고서야 정확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뼈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은 사지에만 해당되었다. 확실히 팔다리는 거의 뼈 위에 얇은 가죽 한 겹이 씌워진 모양이었다. 머리도 목도 갈비뼈가 있는 가슴까지도 그랬다. 그러나 배에 이르면 갑자기 둥근 공처럼 부풀어 올랐다.

사지는 마르고 배만 비정상적으로 커다랗게 부푼 모양의 사람. 아프리카에서 기아로 고통 받는 이들을 찍은 사진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모습이었다. 그 참혹한 모습으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귀(餓鬼)다.’

사람들에게 아귀가 쓰인 것이다.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부엌에 있는 사람들을 보자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하나같이 아귀가 들려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이런 곳에 아귀가? 그것도 이렇게 많이…’

굶어죽은 사람이 원귀가 되어 나타나는 것이 아귀다. 그러니 하나 둘 정도는 어디에라도 생길 수 있었다. 요즘 같은 때에도 돌봐주는 이 없이 홀로 사는 사람이 스스로 먹을 힘도 없어 굶어죽는 일이 드물지만 생긴다.

그렇더라도 이 숫자는 저절로 생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옛날에는 심한 기근이 들면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하고는 해서 아귀가 여럿 몰려있는 경우도 볼 수 있었다지만 등산로가 멀지 않은 장소의 멀쩡한 집에 이렇게 많은 아귀가 만들어질 리가 없다. 자연스러운 일은 결코 아니었다.

‘이걸 어떻게 한다.’

아귀의 숫자가 많아서 하나씩 쫓아내려면 부적이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넓은 공간을 상정하고 만든 정화부가 있기는 하지만 임시방편의 부적이라 효력을 장담할 수도 없었다.

퇴치보다 먼저 어떻게 해서 여기에 아귀들이 모이게 되었는지 알아내야 했다. 애초에 술을 마신 사람 숫자만큼의 아귀가 미리 있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을 만들어 낸 장본인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빠를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죽은 은영의 당숙이라는 사람을 불러내고 싶었지만 초혼은 위험한 술법이었고 준비 없이 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차선은 그의 수족이 되어 일한 사람이다.

정화부 한 장을 꺼내어 들고 부엌 앞으로 간 수호는 개수대 앞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이곳의 사람들도 위층과 마찬가지로 상처투성이였다.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여자들의 부상이 더 심했다. 그러나 그들 모두 아픈 것도 모르고 피를 흘리며, 부러진 팔로 상대방을 잡거나 이를 세워 물어뜯고 자신 외의 모든 이들을 밀치고 후려쳤다.

아직은 물을 받아 마시는 것에 정신이 팔려 손에 든 것이 그릇일 뿐이지만 다른 것을 들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싹해졌다.

수호는 그들 중 한 명을 잡아당겼다. 그가 비틀거리면서도 수호의 손을 뿌리치려고 하는 순간 부적이 이마에 철썩 붙었다. 붙은 순간 화르륵 타오른다. 몸부림치던 몸이 움찔 굳었다. 수호가 애써 끌어낼 필요도 없이, 아귀다툼을 벌이는 사람들에게 밀려나 그의 몸이 쓰러졌다.

수호는 정신을 잃은 것 같은 그를 끌고 거실로 데려갔다.

어제 처음 봤을 때만 해도 단정한 슈트 차림의 차분한 젊은이였으나 지금 그의 모습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달랐다. 흐트러진 차림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쑥 들어간 눈자위나 홀쭉해진 볼, 핏기 없이 거칠어진 피부에 기형적일 정도로 메마른 팔다리와 굽은 등은 정상인의 범주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김한석씨, 정신이 듭니까?”

맥을 짚으며 조심스럽게 기운을 불어넣자 흐린 눈동자가 이리저리 구르다 수호 쪽으로 고정되었다. 김한석은 느리게 눈을 껌벅거렸다. 목소리를 듣기는 했으나 아직 상황판단이 안 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가 대화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이 된 것은 10여분이 흐른 뒤였다. 그동안 수호가 몸을 주무르고 기운을 불어넣어 준 덕분이었다.

“저도 정말 모르겠습니다.”

그가 아까보다 또렷해진 눈으로 부엌 쪽을 힐끔거리며 부르르 떨었다. 자신이 한 일을 모두 기억하고 지금의 상황도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아는 것이 있느냐는 수호의 질문에 그는 겁먹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저는 양아버지가 시키는대로 했을 뿐입니다. 유언장에 있는 그대로요.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고, 이곳에 와서 하루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지 확인하고 나면 재산을 분배하는 게 제 할 일이었어요. 다른 것은 모릅니다.”

그는 퀭한 눈을 내려뜨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알고 싶지도 않았어요. 양아버지는 정말 이상한 분이었습니다. 행동도 말도 점잖고 조용했는데 볼 때마다 섬뜩하고 무서워서 가까이 가기가 싫었어요. 이상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관대하고, 제가 올 때마다 용돈도 넉넉하게 주셨지만…외딴 곳에 혼자 사는 것 말고는 별난 데가 없었는데도 전 여기 올 때마다 뱀 굴에 손을 집어넣는 기분이 들었어요. 이유도 모르면서 무서웠던 겁니다.”

양아버지에 대해 묻자 그는 진저리를 치며 말했다.

“같이 지내지 않으니 아는 것도 없습니다.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았다는 것 말고는 저도 모릅니다. 주변 사람들은 다 양아버지가 돌아가시면 그 재산이 제 것이 될 거라고 부러워했지만 저는 알고 있었어요.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저에게 바라는 것은 아들노릇이 아니라는 것을요. 하지만 뭘 바라는지까지는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빨리 돌아가셔서 인연이 끊어져 버렸으면 좋겠다고까지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는 말하다 말고 속이 거북한지 배를 움켜쥐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상한 물을 그렇게나 마셨으니 속이 정상일 리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양아버지를 만난 것은 언제였습니까.”

수호의 질문에 그가 가쁜 숨을 쉬면서 생각에 잠겼다.

“살아있는 양아버지라면 아마 돌아가시기 열흘 전 쯤…유언에 관해서 미리 들은 것도 그때입니다. 공증인 두 명과 함께 계셨었지요. 변호사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사람들이 가고 나서 저에게 해야 할 일을 알려주셨지요. 아까 말한 그대로입니다. 그것뿐인 단순한 일을 시키고, 저도 상속자 중 하나라고 말씀하셨어요. 유산은 사실상 포기하고 있었는데 그런 큰 돈을 받을 수 있다고 하니, 저도 길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일그러진 그의 얼굴 위로 쓴웃음이 번졌다.

“그날 저더러 공증인과 함께 열흘 후에 다시 오라고 하셨습니다. 뭔가 지시할 일이 있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가보니 이미 돌아가신 후라서…”

그 때가 생각났는지 아니면 썩은 물 때문에 속이 메스꺼워졌는지 김한석이 허리를 숙이며 괴로워했다.

“어떻게 돌아가신 거죠?”

“탈수로 인한 사망이었습니다. 의사 말로는 며칠 동안 아무것도 안 드신 것 같다고…신체에는 별 이상이 없고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도 건강은 좋아 보이셨는데…우읍!”

말하던 김한석이 갑자기 허리를 꺾으며 구역질을 했다. 우웩 소리와 함께 그의 입에서 물이 쏟아졌다. 위산과 섞여 흐려진 물이 바닥을 쳤다. 그런데 물 말고 다른 것이 있었다. 그것은 작은, 도토리 크기 정도의 어떤 조각이었다. 한쪽 면은 도토리처럼 매끈하게 보였다. 그것이 뭔지 확인하려고 수호는 몸을 숙이고 들여다보았다.

매끈한 면의 반대편은 하얗고 투실하게 불어있었다. 뭔지 눈에 익은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을 집으려던 수호가 멈칫했다. 똑같은 모양의 것이 눈앞에 있었다. 바로 자신의 손가락이다. 김한석이 물과 함께 토해낸 것은 누군가의 손가락 끝, 손톱이 있는 그 부분이었다.

수호의 뱃속이 뒤틀렸다.

‘설마…’

그가 아직 바닥에 놓인 빈 술병을 돌아보았다. 저 안에 든 것은 도라지라고 생각했지만…그러나 아까 냄새를 맡아봤을 때 도라지향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소주 냄새만 풍겼을 뿐이다.

“저 술병 안에 있던 도라지, 당신도 먹었습니까?”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참으며 수호가 김한석에게 물었다. 눈물을 찔끔거리면서 토하고 있던 김한석이 입가를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들도요?”

“모두 다 조금씩이라도 먹었지요. 배도 고팠고 먹을 것은 그것뿐이었으니…”

‘그렇군.’

수호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있을 리 없는 이곳에 아귀가 이렇게 많은 이유. 모두 죽은 은영의 당숙이 만든 일이었다. 그러나 아직 중요한 것을 모른다. 어째서 그랬을까. 왜 그렇게까지 해서…

김한석에게 다시 캐물어 봤으나 그는 정말로 모르는 것 같았다.

“양아버지는 가족 모임에도 전혀 참석하지 않으셔서 저 역시 친척들을 만날 일은 없었어요. 유언을 집행하느라 연락을 드리면서 처음으로 알게 된 사람들이 대부분일 정도이니까요. 여기 있는 사람들 중 전부터 아는 사람은 김종현씨…큰 당숙뿐입니다.”

큰 당숙이라면 은영의 큰아버지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 분이 제 친아버지와 아는 사이여서 몇 번 얼굴을 본 적이 있어요. 제가 양자가 되기 전부터요. 그런데…”

김한석은 문득 얼굴을 찌푸리며 부엌을 돌아보았다.

“소문이랄까, 어쩌다 알게 된 일이지만 양아버지는 어렸을 때 부모님을 잃었는데 그때 뭔지 큰 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확한 것은 몰라요. 다들 쉬쉬하고 있으니까. 다만 부모님이 함께 돌아가셨는데 사고나 병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짐작컨대 평범한 죽음이 아니었을 겁니다. 경찰에서 기자들에게 오프 더 레코드를 요구했다고 하는 말을 얼핏 들었어요. 자세한 것은 큰 당숙이 가장 잘 알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데려와야 할 사람은 큰 당숙인 김종현이다.

수호는 주머니 속의 부적을 만지작거렸다. 만들어놓은 것 중 남아있는 정화부는 이제 두 장. 한 장은 보다 광범위한 구역에 사용할 것이었고 한 사람 정도를 대상으로 한 부적은 한 장이 있을 뿐이었다.

새로 만든 일곱 장 중 이미 두 장을 써서 남은 것은 다섯 장, 원래 가지고 있던 네 장 중 한 장을 써서 남은 것은 세 장. 총 여덟 장의 부적이 전부였다. 그나마 용도는 제각각.

‘상대는 아귀가 된 원혼. 거기에 붙잡힌 사람들은 열 셋. 어떻게 계산해도 마이너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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