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만물수리점 - 아귀도(7)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정화부 한 장은 아귀에게 써야 할 테니 사람에게 쓸 수 있는 것은 한 장뿐이었다. 그것을 김종현에게 쓰고 나면 더는 다른 사람에게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막상 아귀를 찾아낼 수 있다고 해도 쉬운 것은 아니다.
가지고 있는 여덟 장 중 세 장은 자신을 보호할 목적으로 만든 것이었다. 아귀와 마주치면 쓸 수 있는 것은 속박부(束縛符) 한 장과 염화부(炎火符) 두 장 정도. 단숨에 붙잡아 정화시키지 않으면 반대로 이쪽이 당한다.
사정이 급해지면 수호는 언제라도 이 집에서 나갈 생각이었다. 집 바깥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안정적이고 평온한 걸로 봐서 아귀의 영역은 집을 벗어나지 않았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이다.
2층에 있는 세 명도 김한석도 목숨이 걸린 문제라는 것을 알았다. 게다가 뭔가 비정상적이고 기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이곳을 나가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가족이 남아있으니 혼자만 갈 수는 없다고 해도 김한석은 달랐다. 언제라도 뛰쳐나가 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두려워하면서도 그는 남아있었다.
‘그래서 결계 따위는 필요 없었던 거야.’
결계로 막아두지 않아도 이곳을 나가려는 사람은 없다. 위험하다는 것은 알지만 그 위험이 누구에게 닥칠지는 모른다. 나만 아니라면…그런 생각이 그들을 이곳에 묶어두고 있었다. 이런 상태라면 억지로 끌어낸다고 해도 고마워할 리가 없고 오히려 원망이나 받을 터였다.
‘이래서 오기 싫었던 것 같네…’
처음 은영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뭔지 꺼림칙해서 거절하고 싶었던 것을 떠올리고 그는 한숨을 쉬었다.
주머니 속의 정화부 두 장을 번갈아 만지작거리던 수호는 이윽고 한 장을 꺼냈다. 한 사람을 대상으로 만든 것이다. 효험이 있는 것은 아까 확인했다. 그러니 아귀와 만날 때를 대비해 이것을 남겨둬야 하겠지만…
수호는 자신의 결정이 마음에 안 드는지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그것을 가지고 부엌으로 갔다. 사람들은 지치지도 않고 싸우고 있었다. 큰 배를 출렁이며 드잡이질을 벌이는 여섯 명 가운데에서 그를 끌어냈다. 여섯 명이 각자 다른 다섯 명과 적이 되어 싸우는 형국이어서, 한번 힘껏 당기기만 해도 저절로 무리에서 밀려나왔다. 그가 다시 돌아가기 전에 이마에 부적을 붙이자 저항하던 몸이 움찔 굳었다.
김종현은 김한석에 비해 좀 더 빨리 제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대화가 가능한 상태가 되었다고 해서 김한석처럼 순순히 응해주지는 않았다. 그는 수호를 알아보자 대뜸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너지? 엉? 이게 다 네 짓이지? 종수 그 새끼랑 짜고 네가 무슨 수작을 부린 거지? 무슨 짓을 한 거야! 우리들을 어떻게 한 거야? 한석아, 이 작자. 이거 우리 식구 아니다. 밖으로 쫓아 보내! 분명히 종수 그것이 어디서 데려왔어! 처음부터 이상했어!”
수호는 그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건 멱살을 잡으려고 들건 상관하지 않고 멀찍이 서서 내버려 두었다. 달려 들어봐야 몇 십분 동안 싸워서 지친 몸은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 김종현은 실컷 화내고 날뛰다 결국 주저앉더니 잠시 후에는 웩웩거리며 뱃속의 물을 쏟아냈다.
그가 토할 만큼 토하고 나서 지친 나머지 쓰러지자 수호는 그제야 김종현의 가까이 다가갔다. 그가 토해낸 물 안에도 아직 소화되지 않은 손가락의 조각이 섞여 있었다. 그것을 쓰러져 있는 김종현의 눈앞으로 던져주자 그가 움찔거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도라지 술을 마시던 때가 기억납니까? 술을 다 마시고 나서 먹은 도라지가 어떻게 생겼는지는요? 기억나요? 모양, 씹을 때의 느낌. 그런 거요.”
수호가 심술궂게 물었다.
수호의 말을 듣자 김종현은 눈을 부릅뜨고, 김한석은 입을 틀어막더니 다시 허리를 꺾으며 구역질을 했다. 김종현도 뱃속이 뒤틀리는지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다시 약간의 물을 토해냈다.
그들의 구토가 진정되기를 기다렸다가 수호가 말했다.
“당신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려드리죠. 이 집의 주인…아, 그 분 이름이 뭐였죠?”
김한석에게 묻자 그가 재빨리 대답했다.
“김민…민자, 규자를 쓰십니다.”
“그래요, 김민규씨. 돌아가신 그 분은 이 집에서 굶어죽었어요. 물 한 방울 입에 대지 않고 스스로 굶어 죽어 아귀가 된 겁니다.”
수호의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미친 사람을 보는 얼굴이었다. 물론 사람이 상상도 못했던 일을 금방 믿을 리가 없다. 이런 괴상한 꼴을 겪고 있더라도 말이다. 수호는 개의치 않고 계속해 말했다.
“사람이 굶어죽는다고 해서 누구나 아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굶어죽게 되는 과정…그 도중에 느끼는 고통과 절망, 분노, 외로움, 이런 감정들이 혼을 좀먹고 상하게 만들어 요괴로 변하게 하는 거죠. 그러니까 김민규씨의 경우에는 불과 열흘 전까지 멀쩡했다 스스로 굶어죽은 거라서 거기에서 오는 고통보다는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된, 그 이유에서 나온 고통이 더 심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그의 혼은 이미 굶기 전부터 상해 있었다는 겁니다.”
말하며 수호가 김종현을 쏘아보았다.
“그리고 저는 당신이 그 이유를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아귀가 되려고 결심할 정도의 고통스러운 일, 그것이 뭔지.”
수호의 말에 김종현의 표정은 분명 변화가 있었다. 아귀가 들린 후로 몇 십 분 만에 앙상할 정도로 초췌해진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메마른 가죽 밑에서 숨기지 못한 근육의 움직임이 보였다. 김종현은 눈 밑을 실룩거리며 수호를 향해 으르렁대듯 말했다.
“지금 누구한테 덮어씌우려는 거야.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가…”
그러나 그의 말은 부엌에서 들려온 비명소리에 잘렸다. 그것은 놀랐다거나 충격을 받았을 때 내는 그런 종류의 비명이 아니었다. 목쉰 소리로 뱃속에서부터 토해 내는, 절규와 같은 비명이었다. 김한석과 김종현이 놀라서 펄쩍 뛰듯 뒷걸음쳤다.
소리를 듣자마자 부엌으로 달려간 수호는 숨을 들이키며 멈춰 섰다. 네 명의 아귀 들린 사람에게 짓눌려 쓰러진 중년의 여자가 발버둥치고 있었다. 다른 네 사람이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그녀에게 달라붙어 팔다리에 이를 세웠다. 이미 물어 뜯겨진 곳에서, 움직일 때마다 피가 솟구쳤다. 그것이 사방으로 튀어 여자도, 그녀를 물어뜯고 있는 사람들도, 부엌 바닥도 시뻘겋게 얼룩졌다.
“허윽….”
등 뒤에서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김한석이 털썩 주저앉았다. 그 소리를 듣고 여자를 물어뜯던 사람들의 눈동자가 이쪽을 향해 굴렀다. 오싹해지는 시선이었다. 수호는 주저앉은 김한석의 뒷덜미를 잡고 당겼다.
“이층으로 올라가요. 왼쪽 끝방!”
김종현은 이미 뛰고 있었다. 그가 간 곳은 아래층의 안방이다. 거기에 들어가자마자 문을 쾅 닫고 있었다. 그러나 문을 잠글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집의 모든 문에는 잠금장치가 없었다. 아까 2층에서 은영에게 방안에 있으라고 시킬 때 확인한 것이다. 문 앞에 가로막아 둘만한 가구조차도 없었다. 옷장은 모두 붙박이였고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김한석과 함께 2층으로 가자 그곳의 화장실에서도 세 사람이 엉켜서 서로를 물어뜯고 있었다. 김한석을 은영이 있는 방으로 밀어 넣은 다음 수호가 외쳤다.
“절대 밖으로 나오지 마! 문을 꽉 잡아!”
수호는 하나 남은 정화부를 꺼냈다. 이대로라면 서로 물어뜯으면서 순식간에 몇 명이 죽을지 몰랐다.
그러나 부적을 손에 들고 그는 한순간 망설였다.
용도는 확실히 넓은 범위의 공간을 정화하기 위한 것이라 이 집안의 모든 사람들을 깨울 수는 있을 것이다. 성공만 한다면. 그러나 마지막 정화부를 이렇게 써버리고 나면 아귀와 마주쳤을 때 사용할 부적이 없다. 그때는 어쩌지?
게다가 지금 사람들을 깨운다고 해도 이것으로 끝은 아니다. 인면박의 예고는 사람 다섯 명의 죽음. 어떤 방식으로 죽게 되는지는 모른다. 여기에서 그들을 깨워 죽는 일을 막아도 다시 어떤 식으로든…
“아니야!”
수호는 마음속에서 비관적으로 흐르려는 생각을 가로막듯이 외쳤다. 손 안에서 부적이, 수첩을 찢어내 만든 하얀 종이가 파르르 떨었다.
‘바꿀 수 없다면, 어떻게 노력해도 바꿀 수 없다면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내가 해온 일은 무슨 의미가 있어? 발버둥치는 것뿐이잖아. 다시는 그렇게…’
어디에선가 비명소리가 울렸다. 그것이 이 집 어디에서 들려온 것인지 기억을 뚫고 나온 것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는 갑자기 자신이 어려진 것 같았다. 어리고 혼자인 것처럼 느껴졌다. 극복했다고 생각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마치 불꽃처럼 날름거리며 그를 휩쌌다.
할 수 있어? 피부를 뜨겁게 태우며 불꽃이 그에게 물었다. 그깟 종이 한 장으로…
‘이런 종이 한 장으로…’
이것은 제대로 만든 부적이 아니다. 이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진짜 부적이었다. 이런 종잇조각으로 집안 전체를 정화할 수 있다니, 그런 것은 스승님이라도…
- 어리석은지고. 그것은 길을 아는 자의 행보가 아닐 터다.
목소리가, 오랜 기억의 불꽃 속에서 차갑게 되살아났다. 그렇게 말한 사람이 누구더라. 그의 부드러우나 엄중한 눈과 나직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짤랑이는 금장식과 어깨 위에서 머리를 갸웃거리던 매가, 어둠 속에서 천천히 다가오던 그 모습이. 아, 그 사람…
‘그런 부적으로도 나는 그를 불러냈었지.’
수호는 자기도 모르게 손안의 부적을 내려다보았다. 그 사람이 그렇게 말했었다. 그때의 의미는 분명 나무람이었지만.
‘길을 아는 사람의 행보…’
그의 말을 되씹어 보고서, 수호는 문득 웃었다.
손끝에 간질간질 기운이 고였다. 그것을 툭 떨치듯 부적으로 밀어낸 순간, 황금빛 불꽃이 연기와 함께 올랐다. 불꽃은 부적을 태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긴 꼬리를 끌며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위이이이이이 -
공기가 떨었다. 튀어 오른 불꽃이 탁구공처럼 날아다니며 벽과 벽에 부딪쳤다. 어지러울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단순히 부딪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지나간 자리마다 황금색 불꽃의 선을 길게 늘여놓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온 집안을 거미줄 같은 선으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불을 당겨라. 밝혀라. 깨워라. 이끌어 내라.”
수호가 나직이 명령했다. 공처럼 튀어 다니던 불꽃이 확 퍼졌다. 그것에서부터 불이 붙은 것처럼, 길게 늘어졌던 불꽃의 선들도 도화선이 타듯 타오르기 시작했다. 눈이 아릴 정도로 밝은 빛이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그 불은 삿된 것을 태우고, 그 빛은 눈이 아니라 혼을 밝히는 것이다.
빛이 사라지고 나자, 집안은 갑자기 고요해졌다. 수호는 무릎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부적 한 장을 사용한 것으로 온 몸의 기운이 빠져나간 것 같았다. 간신히 숨을 고르며 천천히 걸었다. 욕실 안에서 서로 물어뜯고 있던 세 남자는 엉킨 채로 쓰러져 있었다.
은영이 있는 방에서 사람들을 나오게 하고 그들을 부탁한 다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부엌의 광경은 처참했다. 피투성이의 사람들이 얽히고설킨 채로 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그들에게 깔린 채로 피를 흘리는 여자가 신음소리를 내며 빠져나가려고 애쓰고 있었다. 수호가 그녀를 도와 끌어당겼다. 온 몸의 물어 뜯겨 너덜거리는 상처가 보기에 흉했지만 다행히 출혈이 심한 곳은 하나뿐이었다. 옷을 찢어 지혈을 하고 나자 김종현과 은영이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여보!”
김종현이 다친 여자에게 달려들었다. 함께 온 은영이 덜덜 떨며 부엌 쪽을 쳐다보았다.
“저 사람들은 기절한 거야. 이분도 당장 위험한 상처는 아니고.”
수호가 그녀를 위로했다. 기운을 모두 써버려 몸에 힘이 없었지만 마음은 한결 맑아져 있었다.
멀쩡한 사람들이 힘을 모아 부상자들을 대충 지혈하고 나란히 눕혀 놓았다. 거실 바닥은 야전병원처럼 변했다. 그러나 그런 험악한 꼴을 보는 동안에도 누구 하나 밖으로 나가자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 사람들 다시 깨어나도 괜찮은 거요? 아까 같이…그렇게 변하는 거 아니오?”
김종현이 도중에 미심쩍은 듯 물었으나 수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먼저 깨어난 사람이 먼저 변하겠지요.”
그들보다 먼저 깨어난 김종현이 그 말에 입을 다물었다.
사람들의 치료가 대충 끝나고 나자 수호는 아까 했던 질문을 다시 했다. 김종현은 아직도 고집스러운 얼굴로 어째서 그런 것을 묻느냐며 이제 조금만 있으면 끝이니 그때 집에서 나가면 되는 거 아니냐고 우겼다.
그러나 시계를 보자 시각은 아직 2시 5분이었다.
도라지 술은 마신 것은 정오를 조금 넘어서다. 그로부터 두 시간 남짓 지난 셈이다. 남은 시간은 3시간. 그 시간이 정말로 ‘조금’일까. 수호는 끓어오르는 한숨을 억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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