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천 만물수리점-205화 (205/218)

서천 만물수리점 - 아귀도(8)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기절했던 사람들은 30분쯤 지나자 하나둘 깨어났다. 그들은 서로를 보며 험악하게 변한 모습에 충격을 받았고 자신들의 몸이 가누기 힘들 정도로 망가져있는 것을 두려워했다.

아귀가 들린 동안 미친 듯이 물을 마시고 토하고 물어뜯으며 싸웠던 기억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남편과 아내가,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치고 밟고 싸웠던 기억이다. 가족들끼리 뭉쳐서 방으로 들어가던 첫날과 달리 이제는 가족들끼리도 한자리에 앉지 못했다. 그들은 하나씩 흩어져서 말없이 시계만 힐끗거렸다.

솔직히 수호도 이대로 아무 일 없이 시간을 보내다 그냥 집에서 나가는 걸로 해결되었으면 싶었다. 집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하지만 이들이 무사히 집에서 나간다고 해도 인면박의 예고가 무효가 되는 걸까? 다른 희생자를 끌어들이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자 머리가 복잡해졌다.

잠시 조용하던 집안은 오래지 않아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그것은 소파에 누워있던 여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처음 온 날 임신 5개월이라고 말했던 그 여자였다. 깨어난 뒤로도 아픈 기색으로 이리저리 몸을 뒤틀며 누워있었다. 그녀가 갑자기 울음 같은 신음소리를 내며 꿈틀거렸다.

“영후씨. 영후씨!”

울음소리를 내며 그녀가 남편을 불렀다. 남편이 달려오자 그녀는 두려움에 젖은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나 이상해요. 배가 너무 아프고…뭔가 이상해. 영후씨. 엄마야!”

비명과 함께 그녀가 파득 떨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쏠렸다. 웅크린 그녀의 다리 사이로 붉은 얼룩이 번지고 있었다.

“아아…아아…어, 어떡해. 어떡해…”

여자는 배를 움켜쥐고 머리를 흔들었고 남편은 어쩔 줄 몰라서 허둥거렸다. 지켜보던 사람들 중 누구도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수호도 마찬가지였다.

“어떡해. 어떡해! 우리 애가…우리 애!”

여자가 비명 같은 울음소리를 내며 울부짖었다. 수호가 뒤늦게 다가가서 병원에 데려가자고 말했지만 선뜻 동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김영후가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어떻게 데려가자는 거야? 여기는 산속이잖아. 이 모양인 환자를 업고서 몇 십분 동안 산길을 가겠어?”

“119에 연락하면…”

“전화를 못 하잖아요. 핸드폰은 다 고장 났고 이 집에는 전화기도 없어요.”

“그렇다고 환자를 방치할 수는 없잖습니까.”

“그러니까 어쩌란 말이야? 그럼 댁이 나가서 누구라도 불러오든가!”

남편인 김영후가 수호에게 말하자 은영의 어머니가 벌떡 일어났다.

“아니, 부인이 아픈데 남편이 해야 할 일을 왜 저 사람더러 하래요? 그건 서방님이 하셔야죠.”

거기에 은영의 아버지가 끼어들고, 주변 사람들이 부인이 아픈데 인정머리 없다고 한소리씩 하는 바람에 거실은 소란해졌다. 결국 김영후가 남 일에 참견 말라고 버럭 소리 지르고는 아내를 방으로 데려갔다. 사람들은 바닥에 핏자국을 남기며 방으로 들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그 이상 나서지 않았다.

잠시 후 김영후는 낭패한 얼굴로 방에서 나와 여자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무래도 부인의 상태가 안 좋아보였다. 그나마 몸을 좀 움직일 만했던 은영의 고모가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에서는 신음소리가 이어졌다. 고모가 문 밖에 대고 수건이든 옷이든 뭔가 깨끗한 천을 구해오라고 소리 질렀다.

은영이 방을 돌아다니며 옷가지와 수건을 구해서 가져갔다.

사람들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방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신음소리는 점점 약해졌고 이윽고 고모가 핏자국이 남은 손을 옷에 문대며 방에서 나왔다. 함께 간호했던 은영이 울상을 지으며 뒤따라 나와서, 궁금해하며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저었다.

“애는 틀렸어. 산모도 빨리 병원에 가야할 것 같은데….”

고모가 말하며 산모가 있는 방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러나 누구도 5시가 되기 전에 밖으로 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그럼 한 명이 죽었으니까 이제 집안에서는 두 명 남았나…”

누군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 가운데에서는 가장 어린 소년인 남자아이였다.

“용석아.”

은영의 고모부인 소년의 아버지가 아들의 이름을 불러 질책했지만 정작 다른 사람들은 비난하는 기색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들의 메마른 얼굴 위로 기대감이 떠오른 것 같기도 했다.

죽게 될 사람이 두 명이라면 이제는 살 수 있는 확률이 9분의 8로 늘어난 것이다. 받을 수 있는 돈은 n분의 1인분만큼 늘었다. 두 명이 더 죽으면 받을 수 있는 돈도 그만큼 늘어난다.

남은 시간은 이제 2시간 남짓. 조금만 더 버티면…. 그런 생각들이 핼쑥한 얼굴에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방안에서 들려오던 신음소리는 갈수록 약해지다가 결국 사라졌다. 사람들은 그 불안한 고요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누구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숙모님 저렇게 그냥 둬도 괜찮을까요…”

은영이 중얼거리듯 물었지만 “영후가 알아서 하겠지.”라는 쌀쌀한 대꾸만 돌아왔다. 그러나 남편인 김영후가 뭘 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방안은 조용했다.

“당숙은 먹고 있는지도 몰라…”

용석이 중얼거렸다. 은영이 놀라서 돌아보자 소년은 기묘하게 번들거리는 눈으로 방문을 쳐다보았다.

“그렇잖아…. 애는 죽었으니까 이제 먹어도 될 거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은영이 오싹 떨며 소년을 나무랐다. 소년의 말에 놀란 것은 아버지인 고모부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아들에게 다가가자 용석은 갑자기 울 것 같은 얼굴로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아빠…저 배고파요. 배고파요.”

고모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용석이 아버지의 팔을 잡고 매달렸다.

“배고파요. 아빠…먹고 싶어요. 아빠, 아빠는 언제 죽어요…?”

은영이 나직이 비명을 질렀다. 말을 끝낸 것과 동시에 소년이 아버지의 팔을 꽉 물었던 것이다. 수호가 손날로 소년의 뒷목을 쳤다. 손끝에 실린 기운이 충격을 가해 용석은 그대로 기절해서 고꾸라졌다.

아들이 쓰러져 있어도 고모부는 덜덜 떨 뿐 움직이지 못했다. 물린 팔이 아픈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얼빠진 그를 수호가 흔들어 깨웠다.

“정신 차리세요.”

수호에게 앞뒤로 흔들리던 고모부가 문득 그의 손을 뿌리쳤다.

“여, 여기서 나가야 해.”

그가 중얼거리듯 말하고 기절한 아들을 일으켜 세웠다. 그가 끙끙거리며 아들을 현관 쪽으로 데려가자 고모가 달려들었다.

“미쳤어요? 어딜 나가요? 이제 두 시간만 있으면 끝나는데!”

“나가야 해! 여기 있다간 우리 다 돌아버릴 거야! 용석이를 봐! 얘가 하는 말 못 들었어? 그리고 당신은 지금 제정신이야? 아들이 어떻게 됐는지 보라고!”

고모부가 소리쳤으나 고모는 막무가내로 그에게 매달렸다.

“못 가요! 두 시간이란 말이야! 두 시간만 버티면 된다고!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니까! 용진 아빠! 두 시간이야. 두 시간만 있으면 60억이 들어온단 말이야! 60억!”

“두 시간 만에 애가 이렇게 됐어! 자식들 다 미치게 만들어 놓고 돈 받으면 뭐 할 거야? 용진아! 용진아! 이리 와라! 나가자!”

부모가 싸우는 모양을 멀찍이서 보고 있던 용진이 엉거주춤 다가왔다. 고모가 아들을 홱 돌아보며 소리쳤다.

“용진아! 아버지 잡아! 못 가게 해! 60억이야! 그 돈만 있으면 너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어! 두 시간만 버티면 된단 말이야! 응? 60억이라고!”

“용진아! 어서 나가자니까? 여기에서 안 나가면 우린 다 미쳐버릴 거다! 네 엄마를 봐라. 저게 제정신으로 할 소리냐? 용석이를 봐! 네 동생이 어떻게 됐는지!”

“용진아! 아빠 잡으라니까!”

부모가 서로 목청을 높여서 다그치자 용진은 어쩔 줄 모르고 있더니 휙 돌아서서 2층으로 올라갔다. 용진이 가버리자 고모는 남편의 다리를 붙잡고 애원했다.

“조금만 참아요. 용진 아빠. 조금만 참으면 되잖아. 5시가 되면 용석이 데리고 병원에 가자. 응? 애가 스트레스가 심하니까 잠깐 이상해진 걸 거야. 그렇잖아. 우리들 그런 꼴까지 겪었는데 여기서 나가면 그거 다 헛수고가 되는 거야. 아무 것도 안 남는 거라고. 2시간 금방이야. 아무 것도 안 먹고, 아무 것도 안 하고, 여기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돼. 그럼 아무 일도 안 생겨. 용진 아빠. 용진 아빠.”

부인의 애원에 고모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너, 정말 제정신이 아니야. 아주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

고모부가 발을 힘껏 빼낸 다음 현관문을 향해 달려갔다.

“여보!”

고모가 뒤늦게 쫓아갔지만 이미 그는 현관문을 벌컥 열어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문이 활짝 열리고 바깥 공기가 확 밀려들어왔다. 열린 문 너머로 마당의 모습이 보이자 수호의 머릿속으로 어제 본 광경이 떠올랐다.

“잠깐 기다리세요!”

수호가 벌떡 일어나 그를 뒤따라 달려갔다. 그러나 고모가 더 빨랐다.

“안 된다니까!”

고모가 달려들어 문을 나서기 직전 그의 발을 잡았다. 달리는 사람의 다리를 붙잡자 추진력을 이기지 못하고 고모부가 나뒹굴었다. 현관 앞은 계단이었다. 고모부가 계단을 굴렀다. 그의 몸이 계단에서 좀 떨어진 마당까지 굴러가 쓰러졌다. 남편을 내려다보던 고모가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쓰러진 고모부의 목은 비정상적으로 꺾인 채, 튀어나올 것처럼 부릅뜬 눈으로 고모를 노려보고 있었다.

‘저 자리…’

고모의 뒤에서 그를 보던 수호가 오싹 떨었다.

고모부가 쓰러져 있는 자리는 어제, 김종현의 아들이 인면박을 주웠던 바로 그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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