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만물수리점 - 아귀도(9)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쓰러진 남편의 모습을 보고 있던 고모가 주춤주춤 뒷걸음쳤다. 눈앞의 광경을 부정하고 싶은 얼굴이었으나 뒤로 물러나도 죽은 사람의 시선은 그녀를 따라왔다. 그것이 두려운 듯 그녀는 휙 돌아서서 도망치는 것처럼 2층으로 달려갔다. 수호가 신발로 어지러운 현관에서 자신의 신을 찾아 신었다.
“뭐하는 건가?”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은영의 아버지가 수호의 팔을 꽉 잡았다. 은영의 어머니도 허둥지둥 현관으로 오고 있었다.
“고모부님의 상태를 확인하고…”
“보면 몰라? 저렇게 되었는데 살아있겠나?”
“그렇다면 시신을 수습해야죠.”
“그걸 왜 우리가 해요!”
은영의 어머니가 앙칼지게 외쳤다.
“가족이 셋이나 있는데 가족들이 알아서 해야지!”
수호는 마음속에서 뭔가 툭 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화가 나는 것은 아니었다. 화를 내도 될 것 같은 상황이었지만 그보다, 어쩐지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지만 그는 그들이 가엾게 느껴졌다.
길에서 주운 돌무더기를 끌어안고 뺏기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처럼 어리석어 보였다. 절벽 끝에서, 한 발만 뒤로 물러나면 안전하다는 것도 모른 채 무서워 우는 사람처럼 보였다. 몰라서 가여웠고 알려줘도 알아듣지 못할 거라 불쌍했다.
‘아저씨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해명이 그랬다. 벌을 받아 마땅할 것 같은 사람들에게도 그는 좀처럼 화내지 않았고 때때로 안타까워했다. 물러터진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수호는 지금의 자신이 그와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라고 말해도 알아듣지 못한다. 들리지 않는다.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얼마나 불쌍한 모습인지 깨닫지 못한다.
참으로 아귀도와 같다고, 수호는 진심으로 생각했다.
그곳에서 죄인들은 끝없이 굶주리며 먹을 것을 탐낸다. 아귀도에 음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음식도 물도 풍족하여 원하면 언제라도 가질 수가 있다. 그러나 아귀의 손에 그것이 닿는 순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 그 순간에 음식은 그들의 손안에서 불이 되어 사라진다.
그들의 굶주림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알면서도 다시, 불이 되어 사라질 음식을 향해 손을 뻗는 것이다.
수호는 후회했다.
이 아귀도에 사람들을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해야 했다. 상황이 안 좋아지면 혼자서라도 나가면 될 뿐이라고 생각하고 방치해서는 안 되었다. 사람들의 욕심 안에서 어떻게든 일을 해결해 보겠다고 생각한 것은 오만이었다.
그 결과 두 명이 죽었다.
어제, 이곳에서 누군가 죽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모든 사람들을 내보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사람들의 원망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모두 무사히 밖으로 나가고 그래서 아무도 죽지 않으면, 사람들은 자신이 죽을 뻔했다는 것도 모르고 큰돈을 받지 못한 것 때문에 화를 낼 터였다.
그러나 그것은 길을 아는 자의 행보가 아니었을 텐데….
수호는 은영 아버지의 손에서 팔을 비틀어 빼냈다. 부부가 함께 다시 얽어매려는 듯 손을 뻗었다.
“정신 차리세요.”
몸 안에서 끓어오르는 기운을 뽑아 밀어내며 그들에게 나직이 말했다. 은영의 어머니가 비틀거리고 은영의 아버지는 휘청거리다 털썩 주저앉았다. 허리 아래로 힘이 빠지면서 몸을 지탱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잠시일 뿐이지만 기운을 움직일 줄 모르는 사람에게 겁을 줄 정도는 되었다.
수호가 밖으로 나가려고 돌아선 순간이었다. 누군가 거실 안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질렀다. 사람들이 우르르 움직이는 소리도 들려왔다. 모두 거실 앞의 창가로 모이고 있었다. 비명은 그 유리창에 손을 짚고서 밖을 보고 있던 젊은 여자가 지른 것이다. 은영보다 서너살 어려 보이는 여자였다.
그들이 유리창 너머로 무엇을 보고 있는지, 수호도 곧 알게 되었다. 아직 열린 현관문 밖에서 ‘그것’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길게 누워있던 몸이 꿈틀거리며 일어나는 것이었다. 움직일 때마다 비정상적으로 꺾인 목 위쪽에서 희끗한 머리통이 덜렁거렸다.
“뭐야! 살아있는 거야?”
“말도 안돼요.”
“이리 오잖아! 문 닫아! 문 닫아요!”
“살아있는 거면 어떡해?”
“목이 부러졌는데 살아있는 게 말이 돼? 문 닫으라니까!”
그러나 목이 부러진 고모부는 비틀거리면서도 일어나서 현관 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꺾어진 목뼈가 살을 찢고 튀어나온 것이 분명히 보였으나 기울어진 채 덜렁거리는 머리에서 부릅뜬 눈이 뻑뻑하게 꿈벅거리고 있었다. 틀어진 골반으로 절룩절룩 걸으며, 죽었을 것이 분명한 고모부의 몸이 계단을 올라왔다.
은영의 어머니가 비명을 지르며 거실 안쪽으로 도망가고 은영의 아버지도 부들부들 떨면서 주저앉은 채 뒤로 물러났다. 문 닫으라는 말을 비명처럼 지르면서도 현관으로 달려오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이 모두 이층으로 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심하게 다쳐서 움직이기 힘든 사람들도 어떻게든 버둥거리며 계단을 기어 올라갔다.
“오빠…”
마지막까지 계단 앞에서 망설이며 서 있던 은영이 수호를 불렀다. 그러나 대답하지 않자 그녀도 계단을 뛰어올랐다.
수호는 고모부의 시체가 다가오는 것을 막지 않았다. 비틀비틀 걸어온 몸이 그의 옆을 지나가며 어깨를 스쳤다. 싸늘한 귀기에 팔이 저려왔다.
“이런 짓을 해도 당신의 원한은 풀리지 않습니다.”
자신을 지나쳐 거실 안으로 걸음을 옮기는 시체에게 수호가 말했다.
“업을 쌓을 뿐입니다.”
시체는 듣지 못한 것처럼 계속해 걸었다. 알고는 있었다.
저것이야말로 아귀 그 자체다. 굶주림과 갈증을 채우기 위해 불이 되어 사라질 음식을 향해 막무가내로 팔을 뻗는 어리석고 흉측한 요괴다. 무슨 말을 한들 들을 리가 없었다. 오직 원하는 것을 손에 넣으려고 한다.
비틀비틀, 시체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아직 방에 들어가지 않고 아래층의 상황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낮은 비명소리를 내며 달아났다. 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이 집안의 모든 문은 잠기지 않는다.
시체가 터벅터벅 걸어서 문 앞으로 갔다. 그리고 문손잡이를 잡았다.
덜컥. 덜컥. 손잡이를 돌렸으나 잘 움직이지 않았다. 안에서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서 열리지 않도록 떠밀고 있을 것이다.
덜컥. 덜컥. 시체가 손잡이를 흔들었다. 이따금 문을 밀기도 했다. 그때마다 문은 들썩이며 조금씩 흔들렸다.
“막아! 안 열리게 밀어요!”
“뭐해? 이리 와서 밀어!”
방 안에서 사람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층으로 올라간 사람들 모두 한 방으로 피한 것 같았다.
“…어…주세요…”
꺾여있는 시체의 목에서 그르렁거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열어…주세요…”
손잡이를 돌리고 문을 밀어 젖히려고 하면서 시체가 말하고 있었다.
“작은아빠…삼촌…열어주세요…고모…”
밀어도 열리지 않자 두드리기 시작했다. 쿵. 쿵. 주먹이 문을 쳤다.
“작은아빠…잘못했어요…삼촌…삼촌…문 열어주세요…고모…무서워요…”
쿵. 쿵. 문이 울렸다. 방안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형…형…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
쿵. 쿵.
“배고파요…배고파요…형…”
쿵. 쿵.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시체의 목소리가 그르렁그르렁 울렸다.
“으아아아!”
방안에서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난 아무 짓도 안 했어! 나는 아무 것도 안 했어! 너도 알잖아! 왜 나한테 이래? 왜 죄도 없는 우리한테 이래?!”
은영의 큰아버지였다. 그가 견디지 못하고 외쳤다.
“그건 아버지와 삼촌들, 고모가 한 일이잖아! 그분들 다 돌아가셨잖아! 왜 죽은 사람들이 한 일을 가지고 우리를 괴롭히는데! 우리가 무슨 죄야! 엉?”
“형…문 열어주세요…”
쿵. 쿵. 몇 번이나 두드리는 손 밑에서 낡은 문의 합판이 우지직 깨져 함몰되었다. 깨진 곳을 두드리는 손은 금세 상처가 나서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러나 그 몸은 이미 죽어 있으며 고통은 몸에 있지 않았다.
쿵. 쿵.
문의 깨진 곳이 점점 넓어졌다. 맞은편 합판까지 삐걱거리더니 얼마 가지 않아 빠지직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이제 문에는 주먹이 오갈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이 생겼다.
방안에 있던 여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김종현의 아들이 외쳤다.
“아버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아버지가 아시죠? 뭡니까?”
“내가 아니야! 내가 아니라고! 네 할아버지와 작은 할아버지들이…그 사람들이 한 짓이란 말이다!”
김종현이 악을 썼다.
“뭘 한 거예요?”
“그래요! 도대체 뭘 한 거예요? 무슨 짓을 해서 죽은 사람이 일어날 정도로 무서운 원한이 생긴 거냐고요!”
“정말 왜 우리가 이런 꼴을 당하게 된 거냐고! 당숙이 대답 좀 해봐요!”
방안에 있던 사람들이 너도나도 김종현에게 다그쳐 물었다. 살 곳을 발견하고 몰려드는 쥐떼 같았다. 시체가 김종현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풀 길만 있다면 우리들은 안전할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궁지에 몰린 김종현이 발악하듯이 소리쳤다.
“아버지와 삼촌들이 그런 거라니까! 큰아버지가, 민규 아버지가 데리고 온 자식이라는 거 다들 알잖아! 그런데 할아버지가 큰아버지에게만 재산을 물려주고 다른 형제들에게는 한 푼도 안 줘서, 아버지랑 형제들이 합세해서 그런 거야! 지하실에…별장에 식구들이 다 같이 모였을 때 거기 지하실에 큰아버지 가족을 가둬버렸다고…종수 너도 기억하잖아! 나만 아는 게 아니잖아!”
“무슨 소리야! 나는 그때 여덟 살이었어!”
“그리고 병문이! 너도 그때 같이 있었잖아. 우리 다. 다 같이 별장에 있었잖아! 지하실에 큰아버지 가족을 가뒀을 때, 민규가 소리치는 거 듣고 병문이 네가 왜 민규가 우냐고 물어봤었잖아!”
“생사람 잡지 마요! 그렇게 어릴 때 일을 내가 어떻게 알아요?”
“거짓말 하지 마, 이 새끼들아! 다 기억하면서! 우리 아버지, 삼촌들, 고모가 무슨 짓을 했는지 너희들도 다 알면서! 그 양반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너희들도 뻔히 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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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 만물수리점 - 아귀도(10)fin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김종현은 목쉰 소리로 외쳤다. 쿵쿵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지우려는 것처럼.
삐걱거리며 부서지고 있는 문 너머에서 그의 목소리도 갈라진 채로 튀어나왔다.
“그만 해! 김민규! 개새끼야! 너도 똑같잖아! 지하실에서 너! 어떻게 살아남았는데? 죽은 네 어미 아비를 뜯어먹으면서 살아남은 게 너잖아!”
문을 두드리던 손이 우뚝 멈추었다. 갑자기 사방이 고요해졌다. 시체는 손을 쳐든 채로 움직임이 멈추었고 방안의 사람들도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었다. 그 가운데 김종현의 악 받친 목소리만 들려왔다.
“괴물새끼야! 그때 그냥 죽어버리지 그랬어! 그렇게 살아남아서 그래, 결국 우리들까지 죽이려고, 같이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기다리고 있었냐? 엉? 네 아비는 우리 부모님들 끌고 가고, 너는 우리들 끌고 가고?”
그랬던 거구나 하고, 수호는 여기에 온 후로 이따금 궁금했던 것 하나를 알게 되었다.
이 집에는 가족이라면 누구라도 데려올 수 있다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어느 가정도 부모를 모시고 오지는 않았다.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사촌형제들 모두 이미 부모를 잃었다. 김종현의 원망하는 듯한 말로 미루어보건대, 그들의 죽음에도 원한이 관련되어 있는지 몰랐다.
50대인 김종현의 부모라면 대략 70대 후반이나 80대 초반이었다. 평균수명이 77에서 84인 요즘 같은 때에 그들 중 단 한 명도 살아있지 않다는 것은 역시 이상하다.
‘죽은 자의 복수가 이미 이루어졌던 거야. 이 사람들의 부모대에서.’
그리고 여기는, 살아남았지만 병든 영혼을 치유할 수 없었던 김민규만의 복수의 장이었다. 스스로를 좀먹고 결국 요괴가 되어버린 남자의 지옥이다. 수호는 이제 김민규에게도 동정을 느꼈다. 시체 안에서 꿈틀거리며 수십 년 전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그를 가야할 곳으로 보내주고 싶었다.
‘할 수 있을까.’
남은 부적들을 생각하며 그가 잠시 고민했다.
정화부는 모두 써버렸다. 이제 아귀에게 사용할 수 있을만한 부적이라면 염화부(炎火符) 정도. 공격받았을 때의 반격을 위한 용도로 만들어져 정화부처럼 혼에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물리적인 불을 일으키는 부적이다.
확실히 불로 태우는 것에도 정화의 효과는 있지만 이것으로 아귀를 정화시킬 수 있는 걸까. 마음의 상처를 잊고 윤회의 길을 따라 다섯째 하늘로 가도록 할 수 있을까. 노트를 찢어 만든 부적을 내려다보며 수호는 생각했다.
아까의 정화부는 확실히 효력이 있었지만 혼을 정화시키는 것은 아예 다른 문제였다. 용도도 다른 이 부적이 효력을 발생한다 해도 시신만을 태우게 되는 건 아닐까. 불꽃 속에서 그 몸이 탈 때 아귀는 오히려 괴로워하고 분노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할 수만 있다면 돕고 싶지만…그렇게 생각하며 시체로 시선을 옮긴 수호는 문득 어깨를 떨었다.
기울어진 채 뒤통수를 보이고 있는 시체의 머리에서 툭 툭 떨어져 내리는 것이 있었다. 살아있을 리 없는 몸이, 그 안에 깃든 아귀에게 있을 리가 없는 감정이, 그러나 아직 거기에 있다는 증거로 맑은 눈물을 한 방울씩 떨어뜨리고 있었다.
저것은 죽은 둘 중 누구의 눈물일까.
그러나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수호의 마음이 움직였다.
손끝으로 기운을 모았다가 의심 없이 그것을 부적으로 밀어 넣었다. 황금색의 불꽃이 화르륵 타올랐다. 불꽃이 그의 손 안에서 점점 커졌다가 이윽고 하얗게 빛났다.
“씻어라. 태워라. 재가 되어라.”
불꽃이 그의 손을 떠나 시체에게 날아갔다. 마치 기름을 끼얹어놓은 것처럼 전신에 불꽃이 확 번졌다. 불꽃은 시신의 몸을 맹렬히 태우며,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주변에까지 옮겨 붙었다. 나무로 이루어진 바닥이 까맣게 타며 연기를 냈다. 합판을 붙인 벽에서 불꽃이 일었다.
불과 함께 연기가 오르기 시작하자 방 안에서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방에서 나갈 수 있는 문은 이미 불타오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창문 쪽으로 달려갔다. 2층이지만 집 뒤편이 야트막한 언덕이어서 창에서 뛰어내리면 고작해야 1미터 50센티 정도의 높이였다.
“이 집은 오래 된 목제 건물입니다. 불이 집 전체로 번지는 데까지 30분도 안 걸려요.”
수호가 문 밖에서 말했다. 그러나 알려줄 필요도 없이, 이미 방안으로 불이 번지고 있었다. 붉은 불길이 벽을 타고 들어와 날름거리며 회색 연기를 뿜어냈다. 사람들은 창가에 몰려서서는 다가오는 불길과 그곳을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출구인 창문을 번갈아보았다.
“오빠! 이러다 다 타죽어요! 불을 꺼줘요! 끌 수 있죠?”
은영이 방안에서 수호에게 소리쳤다.
“이 정도의 불길은 무리야. 위험하니까 빨리 나가. 나도 이제 나갈 테니까.”
수호가 대답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한 장 있는 결계부로 불이 번지는 것을 막는 방법은 있었지만 불을 끌 방법은 없었다.
수호는 그곳을 떠나 계단을 내려갔다. 등 뒤에서 이제 까맣게 타버린 시체가 푹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시체는 쓰러지는 것과 함께 산산이 부서져 흩어졌다.
아래층으로 가자 아직 그곳의 작은 방에 남아있던 김영후가 연기 냄새를 맡고 문틈으로 바깥을 살피는 중이었다. 수호와 눈이 마주치자 그가 움찔 떨었다.
“이층에서 불이 붙었어요. 이 집은 곧 무너지니까 서둘러 나가세요. 도와드릴까요?”
방안의 부인을 가리키며 수호가 물었다. 김영후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그는 방에서 나오더니 수호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려는 것처럼 이층으로 갔다. 그러나 계단을 채 올라가지도 못하고 돌아왔다. 계단도 이미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집안은 연기로 자욱해졌고 이제 불은 아래층에도 번지기 시작했다.
“나, 나갑시다.”
김영후가 방으로 들어가서 아내를 들쳐업었다. 집에서 나가자 뒤편 언덕으로부터 내려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김한석으로부터, 김종수 부부와 은영이, 김종현 부부가,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있었다. 스스로 걸을 수 있는 사람은 걷고, 움직이기 힘든 사람은 부축하며 그들은 언덕을 내려왔다.
불길은 이제 집을 벗어나 지붕에까지 닿고 있었다. 붉은 불꽃이 너울거리며 집 전체를 휘감았다. 춤추는 것 같았다. 그 두렵고 요사한 춤 속에서 집은 환하게 타올랐다가 갑자기 와르르 무너졌다.
낡았을망정 규모 있고 위풍당당했던 집이 완전히 타서 잿더미로 변하기까지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크고 강한 불길이었지만, 오로지 집만을 태우고 무너뜨렸을 뿐 주변의 나무에는 조금도 옮겨 붙지 않았다.
연기를 보고 누군가 신고를 했는지, 날이 저물기 전에 온 헬기와 소방대원들 덕분에 그들은 무사히 산에서 내려갈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 달리 수호는 혼자서 늦게 갈 수밖에 없었다. 아직 죽은 사람이 둘이니 인면박의 예고가 세 명 남아있었다. 그 뒤처리를 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뒤처리를 할 사람은 그가 아니고 밤중에 겨우 도착한 해명이었다. 소방대원의 핸드폰을 빌려 위치만 알려주고 와달라고 했을 뿐인데 정말 부지런히 왔는지 도착했을 때는 9시였다. 산에서 날을 새야 하나 생각했던 수호는 저 멀리서부터 투덜거리며 잰걸음으로 오는 해명을 보고 이틀 만에 처음으로 웃었다.
수호는 해명에게 여기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이야기해주었다. 참혹한 이야기가 그를 슬프게 만들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뜻밖에 해명은 담담했다. 잿더미가 된 집터를 돌아본 다음 이곳에는 이제 아무 것도 없다고 그가 말했다.
“요기의 흔적은 남아있지만 혼도 요괴도 없어. 저 위쪽으로 차사의 기운이 느껴지는 걸 보니 다섯째 하늘에서 제대로 데려간 것 같다. 이제 괜찮을 거야.”
해명이 가리키는 곳은 수호의 눈에 그냥 새까만 어둠이었지만 그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라고 믿어버렸다.
“인면박의 예고가 걱정되면 이곳 산신에게 부탁을 해둘게. 쓸데없이 지나가던 등산객이 해를 입으면 안 되니까 산신도 며칠 동안은 신경 써줄 거야. 뭐…하지만 본인에게 업보가 있다면 어쩔 수 없잖아. 그것이 인과라는 거니까. 그런데 어쨌든…”
해명은 수호를 돌아보더니 문득 웃었다.
“잘 견뎠다.”
해명이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머리를 쓰다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색하면서도 기쁘고, 그래서 불만스러워진 수호가 고개를 외로 꼬고 대답했다.
“예….”
해명이 한숨을 쉬면서 어째서 백은호도 그렇고 네 녀석도 어쩌고 하며 다시 불평을 토해내기 시작했지만 그런 것은 이제 아무래도 좋았다. 그의 태평한 목소리를 듣는 생활로 돌아갈 수 있는 것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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