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천 만물수리점-207화 (207/218)

서천 만물수리점 - 올드보이(1)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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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이 좋은 날이었다. 덕분에 차창을 올려두고 30분쯤 달린 수호의 소형차 내부는 태양열로 따뜻하게 데워져 있었다. 과연 4월이라고 이제 완연한 봄 날씨인 것이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시원한 것을 좋아하던 수호는 슬슬 덥게 느끼며 차창을 내렸다. 바깥 공기가 꽃냄새와 함께 밀려 들어왔다. 밖은 벚꽃이 한창이었다. 집 근처 벚나무들은 이미 성대하게 피었다 지고 있는 중이지만 이쪽은 이제 갓 피어서 생생한 분홍색 꽃잎이 선연했다. 아무래도 집보다는 북쪽이니까 봄이 며칠 늦게 오는지도 모른다.

길 가다 보이는 게 꽃인데 일부러 꽃구경 가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수호였지만 길 양쪽으로 쭉 이어지는 벚꽃 터널을 보고 있으니 싫지는 않았다. 짜증을 내며 나오기는 했지만 조금씩 마음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태규 이 자식…”

그래도 짜증은 아직 남아있어서, 수호는 강의 없는 금요일 하루를 날리게 만든 고등학교 동창의 이름을 곱씹으며 눈썹을 모았다.

시작은 태규 녀석의 동창회 공지 문자였다. 계절에 한 번씩 모여서 밥이나 먹고 이차로 술집, 거기에서 떨어지지 않는 놈들끼리 노래방, 여기까지 살아남으면 누군가의 집. 동창회는 대체로 이렇게 이어지는 코스였다. 그런데 올 봄부터 동창회장을 맡은 태규가 모임 장소를 바꾼 것이다.

고등학교 동창회라면 졸업한 뒤로 두 번 가봤을 뿐인 수호였다. 그 후 군대 가 있는 사이에 참석을 못했지만 제대할 때쯤에는 동창회도 처음보다 규모가 줄어서 친한 녀석들끼리 모여서 밥 먹고 술 먹는 자리로 바뀌어 있었다.

거기 모이는 사람들 중에 수호와 친한 사람이라고는 없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동창회와는 멀어졌다. 가끔 한두 명씩 개인적으로 만날 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문자가 오더니 대꾸를 안 하자 이번에는 태규가 직접 전화를 걸어 왔다.

옛 친구가 오랜만에 찾아오면 보통은 귀찮은 일을 가지고 오는 경우였다. 아니나다를까 태규의 말을 듣고 있으려니까 일부러 수호에게 연락한 이유는 분명했다.

“너 그 프로그램 알지? 미스테리 스팟. 엊그저께 백산 저수지 근처 폐가에 그 팀이 왔었대.”

태규는 당연히 알 것처럼 말했지만 그 미스테리 뭐라는 프로그램을 수호는 잘 몰랐다.

프로그램명으로 보아 초자연 현상 같은 거라도 취재하는 모양이지만 본래 티브이도 잘 안 보고 초자연 현상 같은 것은 일하면서 싫어도 보게 되는 처지니까 음향과 내레이션으로 변죽만 울리다 별 것 아닌 것이나 보여주고 끝나는 프로그램 같은 것을 일부러 찾아서 볼 리가 없다.

“내가 전에 얘기했잖아. 외삼촌 중에 방송국에서 일하는 분 계시다고. 그 삼촌이 요새 미스테리 스팟에 있는데 백산 저수지에서 완전 난리 났었다더라. 같이 간 무당 하나는 병원에 실려 가고 다른 하나는 촬영하다 도망가 버렸대나 뭐래나. 기계도 막 부서지고 스탭들도 세 명이나 기절하고 장난 아니었다잖아. 결국 촬영 못하고 그냥 돌아갔대.”

그러고 나서 하는 말이 올 봄의 동창회 모임은 백산저수지 근처 문제의 폐가에서 갖겠다는 것이었다. 생각해볼 것도 없이 거절했으나 태규는 집요했다. 사정하다 안 되니 협박, 협박이 통할 리 없으니 구슬리다가 그것도 안 되자 겁나냐는 둥 너 도사랍시고 알려진 것 같던데 사실은 사이비 아니냐는 둥 신경을 긁기 시작했다.

그런 것에 넘어갈 수호는 아니어서, 그런 위험한 곳에 일부러 찾아가는 바보짓은 그만두라고 진지하게 충고한 다음 전화를 끊었다. 그 후로는 연락이 없어서 잊어버리고 있었으나 동창회 당일이 되자 엉뚱한 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일정이 없는 날이라고 맘 편히 늦잠을 자다 일어났더니 어머니가 왜 아직도 안 나가고 있느냐고 물은 것이다.

어디를 나가느냐고 되묻자 당연하다는 듯이 “동창회. 오후 6시였나 7시였나 그때까지 만나기로 했다면서? 수영이는 집에 안 들리고 바로 간다던데.”라는 터무니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수호는 잠시 혼란에 빠졌다. 누구 동창회를 누가 가?

어머니에게 묻고 수영이에게 전화를 걸고 나서야 이번 동창회가 ‘파트너 동반의 흉가 체험 이벤트’로 기획되었으며 수영이는 태규 여자 친구의 차로 곧장 백산 저수지에 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오빠, 웬만하면 애인 좀 만들어라. 어떻게 파트너 동반에 여동생을 데려가냐. 진짜 불쌍해서 이번에는 내가 도와주는데 오빠 따라 동창회 가는 내 입장을 생각해봐라. 얼마나 쪽팔린지.”

그런 소리를 하면서 이미 김제를 지나 백산면에 들어섰다는 데에는 수호도 어쩔 수가 없었다. 태규에게 전화를 걸어 욕을 한 바가지 퍼부은 다음 이를 갈면서 갈 수밖에.

가는 길에 백은호에게 백산 저수지 근방의 폐가에 대해 물었으나 귀찮다는 목소리로 흉가 따위 내가 알 게 뭐냐는 대꾸나 들었다. 백은호가 모르고 있다면 대단치 않은 곳이리라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거기에 수영이가 갔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수호와 달리 수영은 영안이 밝았다. 어릴 때부터 곧잘 귀신이나 도깨비를 보고는 했다. 본래 집안에 부유령이나 약한 요괴 따위가 곧잘 꼬이는 편이기도 하고, 해명을 알게 된 후로는 수리점에 놀러 다니며 도깨비들을 구경하기도 하면서 그런 것에는 익숙해졌으나 그것도 어릴 때뿐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집에서 먼 곳으로 돌아다니는 일이 생기자 사정이 바뀌었다. ‘무서운 것’을 보게 된 것이다. 달리 말하면 집 근처에는 무서운 것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가까운 곳에는 해명이 있고 거기에서 키우는 달님이가 매일 마을을 돌아다니며 식사를 겸한 순찰을 하고 있었다.

나쁜 요괴도 나쁜 사람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수리점에서 멀어지면 상황이 다르다. 특히 수학여행을 갔다가 크게 혼나고 나서, 수영은 아예 대학도 이곳에서 다니고 직장도 집 가까운 곳에 잡을 정도로 소심해져 있었다. 영안이 밝을 뿐 아무런 능력도 없는 수영에게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아버지를 닮아서 체격이 좋고 성격도 활발해 여장부 소리를 듣는 수영이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예민한 데가 있었다. 그런 동생을 위해 수호는 영안을 어둡게 만드는 부적을 써주어서 그것을 사용한 후로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흉가라는 것은 보통 사람도 혼령 같은 것을 보게 만드는 장소였다.

어쨌든 가자마자 수영을 데리고 돌아와 버리면 그만이라 생각하고 수호는 백산 저수지로 향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오늘은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는 날인 것 같았다.

문자로 전송받은 장소에 갔더니 이미 사람들이 대부분 도착해서 한쪽에서는 텐트를 치고 한 쪽에서는 바비큐를 준비하고 가져온 술과 과일을 펼쳐놓느라 바빴다. 폐가에서 20미터 정도 떨어진 길가의 공터였다.

준비는 남자들이 하고 있었고 수영은 동창의 여자 친구들과 함께 사뭇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품에는 털복숭이가 하나 안겨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보던 털이다.

“달님이를 데려왔어?”

어이가 없어서 묻자 수영이의 품에 안겨있던 달님이가 수호에게 꼬리를 쳤다.

“소오. 소오.”

달님이가 여전히 발음이 엉망인 채로 수호를 불렀다. 그 목소리가 들리는 사람은 수호와 수영이 뿐이겠지만.

“응. 아저씨가, 달님이가 오늘 배부른 것 같다고 하루쯤은 데려가도 괜찮을 거래.”

수영이 기분 좋은 얼굴로 말했다. 하여간 쓸데없이 친절한 해명이었다.

“괜찮냐? 여기…며칠 전에 난리 난 폐가라던데.”

그래도 역시 걱정이 되어 물었으나 수영은 태평했다.

“저 집? 안에 아무것도 없던데? 저수지 쪽으로 가면 또 모르겠지만 여기는 저수지랑 머니까 물귀신 보일 일도 없고.”

역시 방송팀이 어쩌고 하는 건 과장된 소문인가 하고 수호는 한숨을 쉬었다. 아무 것도 없다니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곧 다시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얼굴을 보게 되었다.

“야아, 최수호. 왔냐? 거봐, 자식들아. 내가 온다고 그랬지?”

태규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인사를 건네 온 것이다. 녀석의 뒤통수를 후려치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수호는 친구들에게 갔다.

도착해 있는 동창들은 여섯이었다. 그 중 넷은 여자 친구와 함께 왔고 남은 두 명은 “니들 게이냐?”는 소리를 들으며 꿋꿋하게 서로 커플이라고 우기고 있었다.

여섯이라니 의외로 적다고 생각하자 그것이 얼굴에 드러났는지 태규가 곧 두 팀이 더 온다며 수호에게 갖고 있던 집게를 던졌다.

“도사님이라도 일은 해야지.”

그렇게, 수호는 열기가 후끈거리는 그릴 앞에서 고기를 굽게 되었다. 혹시 몰라 주머니 속에 넣어 온 염화부로 태규 녀석 머리통부터 새까맣게 구워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물론 망상에 그쳤다.

여자들과 함께 온 덕분인지 동창놈들 모두 평소에 달고 다니던 욕설은 반으로 줄고, 남자들끼리라면 “그까이꺼 대~충”하던 일들도 빠릿빠릿하게 해내고 있었다. 4인용 텐트가 두 개, 그 사이에 놓인 간이 탁자에는 술과 과일과 마른안주가 차려졌다.

7시가 좀 넘어 남은 두 팀이 도착하자 본격적으로 술판이 벌어졌다. 수호가 얼굴을 찡그리며 구운 꼬치와 고기들은 만들어놓기 바쁘게 사라졌다. 좀 있다 여자들이 교대해준 덕분에 그릴 앞을 떠날 수 있었지만 술을 별로 안 좋아하는 수호는 술자리에서도 재미없이 남의 이야기를 듣거나 누군가 묻는 질문에 간단하게 대답하거나 하는 것이 전부였다.

“네가 전기공학과라니. 지금 생각해도 묘하단 말이야. 난 철학과나 뭐 그런데 갈 줄 알았는데.”

고등학교 3년 내내 수호와 같은 반이었지만 별로 친하지 않았다는, 특별하다면 특별한 관계인 석호가 옆자리에서 웃으며 말했다. 그의 여자 친구는 키가 크고 늘씬한데다 여자들 사이에서도 돋보이는 외모였는데, 성격은 조용한지 별로 말이 없이 아까부터 그릴과 식탁을 오가면서 고기접시만 나르고 있었다.

“별명이 교수님 아니었냐? 그때는 진짜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완전 애늙은이였어.”

태규가 낄낄거리며 말했다. 술이 들어가 불콰해진 얼굴이었다. 한 손에는 술잔, 다른 손에는 옆에 앉은 여자 친구의 허리를 잡고 있었지만 정작 관심은 다른 사람들의 대화에만 있었다. 매번 남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문득 끼어들어서 한마디 하고는 했다.

친구들의 평가에는 수호도 할 말이 없었다. 사실 어느 정도는 본인도 인정하고 있었다. 일찍부터 평범한 세계와 작별한 그였으니까 학업이라든가 미래라든가 부모님이라든가 주변의 친구들이 갖고 있는 스트레스 정도는 우습게 보이기도 했었다.

옛날이야기와 지금의 이야기가 마블링 된 술자리는 11시 즈음해서야 겨우 끝이 났다. 술도 고기도 이야깃거리도 떨어지고, 다들 적당히 취해있는 때였다.

“그럼, 오늘의 하이라이트. 흉가 탐방을 갈 시간이다. 다들 파트너와 핸드폰 챙겨.”

태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기세 좋게 외쳤다. 몇 명이서 “오오!”하는 탄성으로 호응하고 여자들은 “진짜 가는 거야? 어떡해.”하며 남자 친구의 옆으로 바짝 붙었다.

술 마시는 동안 흉가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해서 나왔었다. 물론 그 진원지는 대부분 태규였지만 방송국에서 일한다는 삼촌의 이야기와 눈앞에 보이는 폐가의 황량하고 음산한 모습이 더해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사람들을 오싹한 흥분에 휩싸이게 했다.

수호와 수영을 제외하고는 모두 긴장과 흥미가 뒤섞인 얼굴로 일어났다.

“자아, 걱정들 마시고. 우리 모두 수호 뒤만 따라가면 되는 거야. 뭐 이상한 거 나오면 네가 퇴치해 줄 거지?”

태규가 수호를 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어디에서 수호의 소문을 들었는지 술자리에서 흉가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수호 도사님이 있으니까 걱정 없다는 말을 빼놓지 않고 하던 그였다. 덕분에 친구들 모두 수호가 묘한 알바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저 집에는 그런 거 없다니까.”

한숨을 쉬며 수호가 말했지만 아무도 상관하지 않았다. 수영은 흥미 없는 얼굴로 일어났다가 문득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 달님이 없어졌다.”

“뭐? 안 묶어놨어?”

“그런 거 원래 없잖아. 아이, 졸고 있길래 괜찮을 줄 알았는데. 잠깐 내려놨다고 그새 사라졌네.”

결국 수영은 달님이를 찾아오겠다며 랜턴을 챙겼고 석호의 여자 친구가 함께 가겠다며 나섰다.

“전 무서운 거 싫어해서요.”

여자 친구가 안 가겠다니 석호도 슬그머니 빠져나갔고 남자끼리 온 두 명도 재미없다며 청소나 하겠다고 남았다.

그래서 흉가 탐방은 다섯 커플과 수호로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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