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천 만물수리점-208화 (208/218)

서천 만물수리점 - 올드보이(2)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흉가는 본채와 창고가 ㄷ자 모양으로 붙어있는 흔한 시골집이었다. 회색 벽돌에 시멘트를 바른 벽과 부서진 슬레이트 지붕을 보면 지은 지 30년은 넘어 보였다. 마당에서 마루 밑까지 풀이 무성하고 벽과 지붕에는 덩굴이 잔뜩 달라붙어 있었다.

부서진 채 열린 문짝 안으로 방안이 시커멓게 보였다.

성인 남녀가 열 명 가까이 모여 있었지만 한밤중에 보는 폐가의 광경에는 모두 숨을 죽였다.

태규가 랜턴을 자신의 턱밑에다 바짝 가져다놓고서, 그로테스크하게 그림자가 진 얼굴로 씩 웃으며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여러분은 지금 20년 전 이 일대를 충격과 공포에 몰아넣었던 일가족 살인사건의 현장에 와 있습니다.”

목소리를 잔뜩 내리깔아서 사뭇 음산해진 태규의 말에 여자들이 남자친구의 옆으로 더욱 바짝 붙었다.

태규는 가늘게 뜬 눈으로 사람들을 한차례 쓸어본 다음 사뭇 연극적인 말투로 계속해 이야기했다.

“갑자기 미쳐버린 가장이 부모와 아내와 다섯 아이를 죽이고, 그 시신을 끔찍한 방법으로 진열해 놓은 다음 태연히 일상생활을 하다 이웃의 신고로 잡혔다는 세기말적 살인사건! 바로 그 사건이 벌어진 곳이 여기입니다.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 경찰이 왔을 때 바로 여기에는 가장의 부모인 노부부가 처참하게 난자된 모습으로 쓰러져 있었다고 하지요.”

그의 말에 여자들이 작은 목소리로 “어맛.”하며 어깨를 움츠리고 남자들은 꺼림칙한 표정으로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태규는 관객의 반응을 살피는 배우처럼 은밀히 그 모습을 확인한 다음 말을 이었다.

“시체 주변에는 피가 웅덩이를 이루고, 얼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시신이 썩어가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파리 한 마리 날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모습에 놀랄 새도 없이 바로 저기, 마루에는…”

태규가 팔을 뻗어 마루를 가리켰다. 그와 함께 랜턴을 가져가 비추자 흙먼지가 뿌옇게 앉은 마루가 보였다.

“붉은 피가 비처럼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어째서냐. 어떻게 지붕에 가려진 마루에 피의 비가 내리는가. 그것은 바로 대들보에 메주라도 걸어놓듯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고깃덩어리에서 떨어지는 피였던 것입니다. 그 고기야말로 조각조각 잘려진 가장의 아내.”

여자들이 작은 비명소리를 내며 남자친구의 품에 안겼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한지 몇 명이 얼굴을 찌푸리고 고개를 저었다.

“그럼 가볼까요. 피의 비가 내렸던 마루부터. 걱정 말라니까. 우리에게는 수호도사님이 계시다고.”

태규가 웃으며 수호에게 앞장서라는 듯이 툭 쳤다.

수호는 한숨을 삼키고 성큼성큼 걸어 마루위로 올라갔다. 제법 넓은 마루를 중심으로 왼쪽에 사랑채로 보이는 방이 있었고 정면에 안방이었다. 안방 옆으로 커다란 미닫이창이 나 있었는데 아마 그 너머는 재래식 부엌일 것이다. 그리고 벽 오른쪽에 작은방이 있는 구조였다.

수호의 뒤를 따라 다른 사람들이 천천히 마루 위로 올라왔다. 이야기 속에서처럼 피가 뚝뚝 떨어지는 건 아닌가 생각하는지 위를 올려다보는 사람도 몇 있었다. 사람들이 올라서자 낡은 마루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태규는 다들 마루 위로 올라오자 안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피에 젖은 마루를 지나, 안방으로 들어간 경찰들은 더욱 끔찍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그 집안의 아이들이 벽에 등을 기대로 나란히 앉아 있었거든요. 마치 인형처럼. 발은 쭉 펴고 앉아, 두 손은 얌전히 모으고, 모두 함께 방안으로 들어오는 경찰들을 보고 있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방문을 향하도록 목이 꺾인 채로 죽어있었던 거지만.”

태규의 목소리가 점점 낮아졌지만 사람들이 모두 숨을 죽이고 있어 소리는 어둠 속에서 명확하게 울렸다.

“그뿐만이 아니었지요. 경찰을 보고 있는 아이들의 눈은 뭔가 파먹은 것처럼 시커멓게 뚫리고, 붉은 핏자국이 눈 밑으로 눈물처럼 흐르고 있었습니다. 바로 저기가, 첫째 아이가 앉아있던 자리입니다.”

말하며 그가 랜턴을 기울여 방문 앞으로 가져갔다. 부서진 문이 반쯤 기울어진 채로 매달린 모양과 문 너머 방안의 황량한 풍경이 얼핏 보였다.

“그럼, 방으로 들어가 볼까?”

이번에도 수호가 먼저 안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부서진 데다 오랫동안 버려진 까닭에 방안에도 흙먼지는 물론 온갖 쓰레기며 한쪽 구석에서는 풀까지 자라고 있었다.

모두들 우르르 몰려 붙어서 랜턴에 비춰진 방안을 둘러보았다. 가구가 거의 없어서 휑한 방안에는 지저분한 티브이장이 하나, 뒤집어진 밥상이 하나 뒹굴고 있을 뿐이었다. 안방에서 부엌으로 이어지는 문 옆에 아이가 했음직한 낙서가 보였다. 문틀에는 오래 전 붙인 듯한 스티커가 빛바랜 채로 붙어 있었다. 안경을 쓰고 목도리를 맨 펭귄이라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었다.

“여기에 첫째가, 그 옆에 둘째가 앉아 있었지.”

벽 한쪽을 가리키며 태규가 말했다. 그쪽 벽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오싹한지 우르르 몰려서 반대편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넷째는 저쪽, 다섯째가 그 옆.”

태규가 맞은편 벽을 가리켰다.

“그런데 막내는…막내는 보이지가 않더라는 거야. 어디에 있었을까.”

태규가 목소리를 더욱 낮추었다. 낮아진 목소리가 불러온 것처럼, 어둠 속에 선 사람들 사이로 기묘한 긴장감이 고였다.

“막내는…바로…”

천천히 말하던 태규가 사람들을 쓱 돌아보았다. 바로 그때였다.

“꺄아아아아아아 - !”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방안에서 터졌다. 사람들이 놀라서 펄쩍 뛰는 순간, 모든 사람들의 주머니 안에서 핸드폰이 일제히 소리를 냈다. 그 다음에는 난장판이었다. 여자들이 비명을 지르고 남자들은 허둥대고 문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서로를 밀치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사람들은 순식간에 마당을 가로질러 집 밖으로 뛰었다. 나가지 않고 남아있던 사람은 태규 뿐이었다.

참을 수 없다는 듯한 웃음소리가 폐가 안에서 터져 나왔다. 태규였다. 그가 어깨를 들썩여 웃으면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장난이야, 장난. 방금 그거 핸드폰 알람소리야. 시간 되면 니들 핸드폰에 전화 걸게 예약해 놨었다고.”

태규는 키득거리며 손에 든 핸드폰을 흔들었다.

“와아. 진짜 믿었냐? 니들 생각보다 순진하다? 아까 그거 죄다 거짓말이야. 이 집 아니라고. 여기는 그냥 버려진 빈 집이야.”

태규의 말에 정신없이 뛰쳐나왔던 남자들이 화가 나서 욕설을 퍼붓고 여자들은 울먹거리며 원망했다. 사람들이 화를 내고 원망해도 태규는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눈가에 눈물까지 맺히며 웃던 그가 수호를 툭 쳤다.

“야, 다른 사람들은 그렇다 치고 어떻게 너까지 달려 나오냐? 너 사이비 아냐? 아아, 새끼. 표정 굳은 거 봐라. 뭘 화내고 그러냐?”

태규의 말대로 수호는 정색하고 있었다. 그러나 화가 나서는 아니다.

태규의 이야기가 거짓말이라는 것은 안방에 들어갔을 때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살인사건이 나서 버려진 집이라기에 그곳은 지나칠 정도로 텅 비어 있었다. 그런 처참한 사건이 있었다면 누구라도 발을 들이는 것을 꺼렸을 텐데 집은 이사라도 간 것처럼 모든 가구가 빠져나가 황량했던 것이다.

게다가 문틀에 붙은 스티커는 2003년 첫 방송된 애니메이션의 것이었다. 어릴 때 보던 거라 수호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니 적어도 13년 전까지는 이 집에 누군가 살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태규의 이야기 따위는 대충 흘려들었으나, 핸드폰 알람이라는 비명소리가 울린 그때 수호는 그것과 다른 소리를 듣고 있었다.

다르다고 해야 할지, 비슷하다고 해야 할지. 게다가 소리와 함께 약하지만 요기가 느껴졌던 것이다.

요기라든가 기운을 읽는 것도 둔감한 자신이 특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저절로 느끼게 된 요기다. 그만큼 강한 것이라고 봐야 했다. 그 서늘한 느낌에 한쪽 팔에서 소름이 오싹 돋았을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밖으로 뛰쳐나온 것은 그 이유 때문이었다. 본능적으로 부적을 꺼내 들고 요기가 느껴진 곳으로 뛰어간 것이다.

“여기가 아니면 어디야?”

화가 난 동창들에게 뒤통수와 등짝을 맞고 있는 태규에게 수호가 물었다.

“잠깐, 그만 좀 때려! 뭐? 뭐가?”

“이 집이 아니라면 진짜 흉가는 어디냐고. 저쪽이냐?”

수호가 가리키는 곳을 힐끗 본 태규가 잠시 머릿속에서 방향을 가늠하는 듯 하더니 눈을 크게 떴다.

“어어…맞아. 그쪽. 저수지 근처…어떻게 알았어?”

수호는 대답 대신 길가 공토에 만들어 놨던 야영장 쪽으로 달려갔다. 남아있던 동창 두 명이 마침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야, 무슨 난리길래 그냥 비명이 아주 하늘을 찌르더라? 니들 거기서 뭐했냐?”

“수영이는. 석호랑 여자 친구 다 어디 있어?”

친구의 질문을 무시하고 텐트와 차량을 확인한 수호가 다그쳐 물었다.

“걔들 아직 안 왔는데? 아직 강아지 못 찾았나 보지.”

“어느 쪽으로 갔어?”

“글쎄…셋이 같이 저쪽으로 갔나?”

친구가 가리킨 곳은 저수지가 있는 방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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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 만물수리점 - 올드보이(3)fin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몇 가지 욕설이 입안에서 간질거렸지만 수호는 참았다. 이제부터 부적을 써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짜증내거나 화가 난 채로는 마음도 기운도 다스릴 수가 없었다.

뛰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수호는 걸었다. 걷는다고 해도 보통 사람의 걸음에 비하면 뛰는 것에 가까운 속도였지만 호흡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이동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가 한계였다. 걸으면서 부적을 나누어 소매에 넣고 손가락 사이에도 한 장을 접어 끼우고 있었다.

잠시 후 길이 나뉘고 저수지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보였다. 폐가가 있는 위치와 거기에서 느꼈던 요기의 방향을 가늠해 보며 걷는데 뒤에서 이름을 부르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달려왔다. 태규였다.

“최수호. 무슨 일인데 그래? 너 지금 나 겁주려고 그러지? 아 새꺄, 잘못했다. 진짜. 그냥 친구들끼리 모처럼 밖에 나와서, 나름대로 이벤트라고 내가 얼마나 공을 들여서…”

“입 다물어.”

부러 기운을 밀어내며 말하자 태규가 비틀거리며 걸음을 멈췄다.

“따라오지 마. 가서 철수 준비하고 기다려. 애들 찾으면 바로 떠날 거니까.”

뒤도 안 돌아보고 말한 다음 수호는 걸음을 재게 놀렸다. 저 앞쪽으로, 달빛에 어스름하게 건물 한 채가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얼핏 봐도 평범한 가정집은 아니었다. 실루엣만으로도 꽤 규모가 컸다. 저수지가 잘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가다 보니 상호와 함께 ‘숯불구이 전문점’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있다.

가까이서 보자 과연 식당 건물이었다. 오래 전부터 버려졌는지 창문의 유리가 다 깨졌고 간판은 칠이 벗겨지고 녹슬어서 상호도 잘 보이지 않았다. 본래는 더 작은 건물이었던 것을 개축을 거듭해 확장한 흔적이 역력했다. 덕분에 입구도 잘 보이지 않는 구조였다. 회오리 모양으로 이어진 건물이 마당을 둘러싸고 있었다.

앞마당으로 들어서자 수호는 멈칫 서서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있었다. 누구인가 자세히 보던 수호는 눈을 깜박였다. 남자다. 그러나 석호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디선가 본 사람 같은데…

그는 한 발씩 천천히 다가갔다. 이런 곳에서 아는 얼굴을 만나다니 이상하다는 생각은 미루어졌다.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앞에 보이는 사람이 그의 깊은 곳을 자극하고 있었다. 기억이 날 것 같기도 한데 얼굴이 잘 안 보였다. 얼굴을 좀 더 가까이에서…그렇게 생각하며 다가간 순간 그가 고개를 돌렸다.

수호의 눈이 커졌다. 걸음을 멈추고 수호가 조금 입을 벌렸다. 그럴 리가 없는데…

“너 때문이야…”

수호를 보며 그가 말했다. 이쪽을 바라보는 눈에 원망이 가득했다. 그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눈꼬리로부터 피를 흘리고 있었다. 아니 피는 온 몸에서, 물어뜯기고 찢긴 상처에서 흥건하게 흐른다. 그가 부러진 팔을 들어서 수호를 가리켰다.

“너 때문이다…”

수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그의 다리를 무언가 붙잡았다. 내려다보자 어린아이의 것보다도 작은 손이었다. 마치 인형 같다. 그러나 인형 같은 그 손 역시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피투성이의 몸으로, 피투성이의 얼굴을 들어 청군여귀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작은 입술을 달싹이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른다. 어쩌면 그 말은 원망이었을지도 몰랐다.

청군여귀의 목소리 대신 어디에선가 비명소리가 울렸다. 먼 곳에서 들리는 것처럼 아련했다. 수호는 질끈 눈을 감았다.

“찔러라, 석!”

명령과 함께 옆구리에서 날카로운 고통이 느껴졌다. 눈물이 찔끔 날 정도의 아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신을 차리자 비명 소리는 더욱 선명하고 크게 들렸다. 바로 옆이었다. 누군가 어둠 속에서 바닥을 기어가며 소리 지르고 있었다. 보니 분명 태규였다. 손으로 허공을 휘저어 뭔가를 뿌리치며 필사적으로 기어갔다.

‘오지 말랬더니 말도 더럽게 안 들어.’

수호가 혀를 차며 문 쪽을 돌아보았다. 식당의 문 옆에 웅크리고 있는 사람은 석호였다. 문틀을 꽉 부여잡고 머리를 팔 사이에 넣고는 덜덜 떨고 있었다.

수호는 주머니 속에서 정화부 한 장을 꺼냈다. 기운을 불어넣자 부적에 불이 확 붙으며 폭죽 같은 불꽃이 사방으로 날았다. 잠시 어두컴컴한 식당이 환하게 밝혀졌다가 불꽃이 사라지며 도로 캄캄해졌다.

“어…?”

수호가 당황한 목소리를 냈다. 정화부를 사용했는데 태규와 석호의 행동에 변함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수호 자신도 다시 눈앞이 흐려지며 석호의 모습이 다른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정화부는 확실히 작용했다.

‘그것으로 감당하지 못할 만큼 강력한 요괴의 술법이란 건가? 아니야. 그런 요괴가 있다면 백은호 아저씨가 몰랐을 리 없어.’

수호는 머리를 저었다.

‘이건 요귀의 환술이 아니야.’

깨달은 순간 수호는 석호를 향해 뛰어갔다. 그리고 문틀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그를 억지로 끌어당겼다. 질질 끌다시피 하며 그를 데리고 식당에서 벗어난 다음 주차장으로 보이는 공터에 던져 놓고 수호는 다시 태규에게 뛰어갔다.

태규가 심하게 저항했으나 감정이 실린 수호의 주먹에 명치를 한 대 맞고는 늘어져버렸다. 축 처진 태규까지 공터에 데려온 다음 수호는 허리를 숙이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식당 안에 있는 동안 숨을 참은 채로 건장한 남성 하나를 끌고 나와야 했던 것이다.

둘 다 식당에서 나와 바깥의 공기를 마시자 정신이 돌아오는지 겁먹은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태규는 자신의 팔다리를 만져보고 확인하더니 수호를 올려다보았다.

“최, 최수호. 너 봤어? 좀비들이, 저 안에 좀비가 있어. 빨리 도망가야 해!”

그리고는 허둥거리며 일어나서 아직 쓰러져 있는 석호를 부축했다.

“일어나! 빨리 안 가면 우리 다 죽어!”

“너 최근에 좀비 영화라도 봤냐?”

수호가 한숨을 쉬며 묻자 태규가 정색을 하고 소리쳤다.

“농담 아니야! 내가 조금 전까지 저기에서…그런데 나 어떻게 나왔지? 아무튼 일단 여기에서…. 석호야. 새꺄, 일어나라고.”

태규가 친구의 겨드랑이 사이에 팔을 넣고 일으켜 세우려고 했지만 석호는 덜덜 떨며 고개를 저었다.

“윤희가…윤희가…”

윤희란 그의 여자 친구 이름이었다. 수호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석호의 뺨을 가볍게 두드렸다. 약하게 기운을 실었기 때문에 석호가 눈을 껌벅이며 수호를 쳐다보았다.

“뭘 봤는지 몰라도 환각이었으니까 걱정 마. 태규, 너도 마찬가지야.”

“환각이 아니었어! 진짜 내가 좀비한테 물려서 죽을뻔…”

“그런데 왜 물린 자국이 하나도 없냐?”

수호의 말에 태규가 대꾸하지 못하고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바닥을 뒹굴어 더럽혀진 것 외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당연히 물린 곳도 없다.

“빈집이라 아무나 들어가서 환각제 같은 거라도 피웠었나 보다. 너희들은 그걸 맡은 거고. 난 가서 수영이랑 윤희씨 데리고 올 테니까 너희들은 돌아가 있어. 특히 태규 너, 다시 쫓아오면 그땐 국물도 없어.”

엄포를 놓은 다음 수호는 식당 안으로 돌아갔다. 조금 전 단단히 혼이 났을 테니 태규는 다시 오지 않겠지만 석호는 여자 친구가 남아있어서 어떻게 행동할지 몰랐다. 서둘러 해결해 버려야 했다.

둘에게는 환각제라고 말해뒀지만 그것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다. 그들이 두려운 환각을 겪게 된 것은 확실히 그런 작용을 하는 가스에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가스를 만들어낸 존재는 인간이 아니었다.

‘이거 잘 되려나…’

부적들 가운데에서 그가 한 장을 꺼내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최근에 수련을 시작한 이 부적술은 신선방술에서 약간 벗어난, 보통은 잡술이라고 여겨지는 환술의 일종이었다.

수호가 손끝을 털자 부적이 불꽃에 휩싸였다가 연기를 확 퍼뜨렸다. 그러나 퍼진 연기는 사라지지 않고 보기에도 꽤 커다란 부채의 모양으로 엉켰다. 방구 부채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그 크기는 열 배 가량. 그것을 양손으로 든 수호가 좌우로 팔을 흔들어 부채질을 했다.

커다란 부채가 오가며 바람을 일으켰다. 부채가 크니 바람도 크겠지만, 실제로 일어난 바람은 그 이상이었다.

마치 태풍이라도 몰아친 것처럼 엄청난 바람이 식당 안을 휩쓸었다. 간판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부서진 문이 벽에 쾅쾅 부딪쳤다. 바닥에 널려 있던 쓰레기며 낙엽이며 마른 풀 따위가 어지럽게 떠올랐다가 식당 지붕 너머로 날아갔다.

바람은 식당 안까지 몰아쳐서 아직 남아있는 식탁과 벽에 걸린 메뉴판 따위를 덜컥거리게 만들었다.

바람이 식당 안팎을 모두 휩쓸고 나자 수호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식당 안쪽, 주방 입구에서 왕왕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영과 윤희는 물론 달님이도 거기에 있었다. 한바탕 휘몰아친 바람에 놀랐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가 수호를 보자 반신반의하는 얼굴로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오빠야?”

수영의 물음에 수호가 피식 웃었다.

“좀비 아니고 귀신 아니고 연쇄살인범도 아니네요. 너 뭘 봤는지 모르겠지만.”

“말하는 거 보니까 오빠 맞네.”

수영이 윤희를 부축해서 일어났다. 윤희는 아직 창백한 얼굴로 떨고 있었다.

그들은 바람으로 난장판이 된 식당을 빠져나갔다. 태규와 석호는 공터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그들이 오자 머뭇거리면서도 다가왔다.

누군가 피워놓은 환각제 때문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는 수호의 말을 믿었는지 별다른 질문은 없었다. 태규와 석호는 아마도 바람을 일으켰을 때 식당에서 요란한 소리가 난 것을 들었을 테지만 그것에 대해서도 묻지 않았다.

일행은 침울한 가운데 준비를 끝내고 각자 방향에 따라 차를 나누어 탔다. 아마도 기분이 좋은 것은 달님이 뿐인 것 같았다. 녀석은 뒷좌석에서 통통해진 배를 드러내놓으며 누워서는 수리점에 도착할 때까지 도로롱 도로롱 잘도 잤다.

“그거 뭐였어?”

수영은 수호의 차가 출발하자마자 물었다. 수영은 수호의 말을 안 믿었던 것이다. 차에 탄 사람은 둘 뿐이어서 수호도 사실대로 대답했다.

“심삼척허귀. 별로 인간을 적대하는 요괴는 아니고, 땅속을 돌아다니면서 벌레나 잡아먹고 사는 거북이 닮은 녀석인데 숨 쉴 때마다 묘한 기체를 뿜어내서 말이야. 사람이 그걸 맡으면 환각을 겪게 되는 거야.”

“그런 게 살고 있었어?”

“한곳에 머무는 타입은 아니고. 아마 어쩌다 최근에 식당을 지나간 모양인데 그 건물 구조가 그렇잖아. 사방이 막혀서 바람 들어올 곳이 없게 생겼더라고. 들어올 수 없으니 나갈 수도 없고. 그나마 너희는 달님이가 있어서 다행이었는 줄 알아. 녀석은 나쁜 마음을 먹으니까 너희가 자신에게 해가 되는 불안하거나 무서운 상상을 하면 그걸 녀석이 먹어치웠을 거야.”

“다행이긴! 달님이 찾으러 갔다가 이 꼴을 당했는데!”

“그러니까 애초에 뭐 하러 이런 데를 따라 오냐?”

“우아. 지금 누구한테. 창피당할 위기에 빠진 오빠를 도우러 기껏 와주니까!”

“내가 무슨 창피를?”

“태규 오빠가 그랬다니까. 여자 친구 데려오겠다고 큰소리 뻥뻥 쳤는데 아무래도 오빠한테 여친 없는 것 같다고. 이번에 못 나오면 다시는 동창회 안 올 것 같으니까 나더러 체면이라도 살려주라고…”

‘그 새끼, 몇 대 더 패서 보내는 건데.’

수호는 약간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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