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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 만물수리점-209화 (209/218)

서천 만물수리점 - 게임의 법칙(1)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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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거 나도 알아. 요새 유행인가 보던데. 자정에 전화가 네 번 울린 다음 저절로 켜진대나 뭐래나.”

수영이 심드렁하니 대꾸하며 마스크 팩 붙인 얼굴을 꼼꼼하게 매만졌다. 입을 최소한으로 움직여서 발음이 좀 부정확했지만 수호는 불평할 입장이 아니었다. 지금 듣고 있는 것은 요괴 백과사전이라고 해도 좋을 스승이나 백은호도 모르는 신종의 요괴였다.

스마트폰을 통해서만 오는 요괴니까 말이다.

“그리고는 사흘 뒤에 올 테니 같이 놀자고 말한 다음 끊는다는 거야. 다음 날 또 전화가 와서 이틀 뒤, 그 다음날 하루 뒤. 그러다가 4일째 되는 날 전화가 울리고 같이 놀자는 말을 들으면 죽게 된다는 거지.”

“뭐냐, 그건. 전파를 따라 돌아다니는 살인 놀이 취미의 귀신?”

“죽은 사람이 많다고 소문은 무성한데 누가 그 죽은 사람인지는 밝혀진 게 하나도 없고. 뭐 도시전설이라는 게 원래 그렇지만. 아무튼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다가 요새는 20대 이상 30대까지 전파된 분위기라 우리 사무실에서도 가끔 이야기 나온다고. 그래서 요즘에는 누구한테 전화하든 네 번 울리기 전에 재빨리 받으니까 좋은 점도 있지.”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수영은 그 소문의 진위보다는 마스크 팩에 주름이 잡히지 않도록 붙이는 쪽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빨리 받으면 뭐 달라지는 거야?”

“응. 네 번 울리기 전에 받으면 그냥 전화가 끊어진대. 그치만 처음 전화를 받은 뒤에는 아무리 빨리 받아도 소용없대. 처음이 중요한 거지. 그건 그렇고, 오빠가 웬일로 이런 거에 관심을 가져? 애들이나 좋아하는 헛소문이라고 무시하던 거 아니었어?”

사실이다.

학교의 7대 불가사의라든가 어릴 때 유행하던 할매 귀신 이야기라든가 마스크의 여자라든가 세자면 끝도 없겠지만 수호는 그 대부분 웃기지도 않는 헛소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요괴에 대해서라면 모르는 것이 없을 스승이 “그것에 대해서는 모르겠구나.”라고 대답하면 그것은 곧 없다는 뜻이 아닌가.

그러나 그런 수호의 생각이 흔들릴 일이 생겼다. 최근 며칠 사이였다.

시작은 학부간 과대표끼리의 톡방에서 나온 이야기였다. 보통은 회의나 공지용으로 사용되는 톡방이었는데 누군가 최근에 죽었다는 학생 이야기를 문의하면서 대화방으로 변했고 거기에 수호가 초대되었다.

들어가 봤더니 안형재라는 처음 듣는 이름을 대며 아는 사람이냐고 묻고 있었다. 당연히 모른다고 하자 ‘소문에 의하면 선배님이 의뢰를 받아 벨 귀신을 쫓아주려다 실패해서 죽었다는 사람’이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런 터무니없는 소문이 돌고 있다는 것도 몰랐고 귀신 이름도 금시초문이라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전화를 받으면 네 번 벨이 울린 뒤 전화를 받으면 사흘 뒤에 죽게 된다는 일명 ‘벨 귀신’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그런 애들이나 할 이야기를 누가 믿느냐고 코웃음 쳤지만 그날 저녁 장례식에 참석한 과대로부터 사진 몇 장이 핸드폰에 전송되었다. 죽은 학생의 영정사진과 장례식 풍경을 찍은 것이었다.

그런데 영정 사진 속의 얼굴이 아무래도 눈에 익었다. 생각해 보니 최근에 몇 번 마주친 적 있는 것 같았다. 확실히 대화를 나눈 적은 없지만…아니, 대화를 한 적도 있었나.

수호는 머리를 쥐어짜서 몇 방울 정도의 기억을 겨우 뽑아냈다.

아마도 사흘 전쯤이었다. 어쩐지 강의실 밖에 나와 있을 때마다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모르는 얼굴이었다. 나이도 자신보다 어려 보였다. 우연일거라고 생각했지만 하루 종일 가는 곳마다 눈에 띄자 결국 수호도 녀석 앞에 가서 용건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무 것도 아니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가버렸던 것이다.

그것이 전부였다.

굳이 기억하지 않은 것은 그런 녀석들이 의외로 많아서다. 소문을 듣고는 수호에게 뭔가 물어보고 싶다든가 부탁을 하고 싶어 찾아왔다가, 막상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 배짱이 없어서 어물거리다 가는 사람들이 가끔 있었다. 구경삼아 찾아오는 사람도 심심찮게 있고.

어쩐지 자신이 도시전설의 일부가 되어있는 건 아닌가 생각한 수호였지만 이렇게 되자 약간은 가책을 느꼈다.

그래서 죽은 안형재의 행적을 탐문해보고 있었다. 그 결과 학교 안에는 안형재 외에도 의심되는 사망자가 있고, 학교 밖으로 나가 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하면 일일이 확인하기도 힘들 정도로 무수한 소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문은 소문일 뿐이다. 그러나 안형재는 이유 없이 갑작스럽게 죽었다. 그가 벨 귀신의 전화를 받았다는 것은 주변 친구들의 증언으로도 확실했다. 본인은 누군가 장난친 거라고 말하고 있었다지만 수호에게 찾아온 것을 보면 혼자서는 몹시 걱정했던 것이 분명했다.

검시의 소견으로 사망원인은 심장마비. 그러나 약은 물론 술 담배도 안 하는 스물두 살의 건강한 남자가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것을 납득하는 사람은 없었다.

벨 귀신 때문에 겁먹고 있다가 네 번째 벨이 울리자 극도의 스트레스 속에서 놀란 나머지 심장마비를 일으켰다. 생각할 수 있는 경우는 그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하루에 한 번씩 나흘 동안 꾸준히 전화를 한 사람은 누군가 라는 문제가 남는다. 말하자면 그것이 사람일 경우, 그 사람은 살인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서 다시 예상 못한 문제가 생겼다.

안형재의 부모 역시 친구들로부터 같은 이야기를 들었는지 아들의 핸드폰 통화내역을 확인해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벨 귀신이 전화를 한다는 자정 전후에 통화기록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친구들은 입을 모아 12시에 전화를 받는 모습을 봤다고 증언하고 있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안형재가 벨 귀신의 전화라고 이야기한 것을 그들은 기억했던 것이다. 함께 모여 가벼운 술자리를 갖던 중이었지만 당시 모두 음주중인 상황이어서 그들의 증언은 물론 무시당했다.

하지만 취했다고 해도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똑같이 착각할 수가 있을까.

“근데 그거, 앱도 있다? 벨 귀신 막는 앱.”

마스크 팩 다듬기를 마친 수영이 핸드폰에서 감상할 곡을 고르며 말했다.

“그거 깔면 전화 벨이 네 번 울리기 전에 저절로 받아주는 거야. 10만 명도 넘게 다운 받았어. 유료인데.”

“설마 너도 깔았냐?”

“천원 밖에 안 하는데 뭐. 믿는 건 아니지만 기분 찝찝하니까 그거 하나 깔고 안심하는 게 낫잖아.”

‘그래서 태평했던 거냐.’

족보도 없는 요괴에다, 그것에 편승해 돈을 벌어들이는 행태라니 마음에 안 드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아직은 그것이 정말로 요괴인지도 확실하지가 않다. 미심쩍은 데가 있기는 하다고 생각하지만 전파를 따라 돌아다니며 핸드폰에 나타나 사람을 죽게 만드는 요괴라니. 정말로 그런 것이 존재한다고 해도 이것은 요괴의 현대사회 적응이라고 봐야 하는 건가. 아니면 도시에 흐르는 사람들의 어둠이 고여 만들어진 새로운 요괴인가.

‘증거가 부족해.’

수호는 머리를 저었다. 소문은 질릴 정도로 많지만 구체적인 정황은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건초더미에서 바늘 찾기라는 거네.’

그렇다고 해도 굳이 그 바늘을 찾아야 할까. 그런 질문으로 망설이고 있기도 했다. 정말로 요괴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설혹 요괴라고 해도 굳이 그것을 찾아 퇴치할 의무는 없었다.

세상에 요괴는, 보통 사람들이 모르고 있을 뿐이지 수호의 생각에는 흔하다 싶을 정도로 많았다. 그 가운데에는 분명 사람들에게 유해하거나 위험한 요괴도 있다. 하지만 그것들을 모두 없애겠다고 뛰어다니는 도사는 없었다. 있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유해하다거나 위험한 수준을 어디까지로 정하는가의 기준이 개인적이라는 것부터가 위험했다.

그러면 이 경우는 어떨까.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만으로는 이유 없이 사람을 해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말로 이유가 없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죽은 당사자와 요괴만이 아는 이유가 있을 수도 있고, 혹은 둘 중 한쪽만 알지도, 그것도 아니면 그로서는 관여할 수 없는 이 세계의 규칙만이 아는 이유일지도 몰랐다.

확신할 수 없는 그런 문제에 섣불리 뛰어들 수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했으면서도, 수호는 어쩐지 결국 안형재의 출상에 맞춰 장례식장에 가보게 되었다.

톡방에서 대화를 주고받았던 과대로부터 화장하는 날짜를 듣기도 했고, 같은 과 친구들이 함께 조문 갈 예정이라는 말도 있어서 거기에 슬그머니 끼었던 것이다.

안형재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수호가 그에게 의뢰를 받았었다는 소문이 제법 돌고 있어서 별로 좋은 대접을 받지는 못했다. 소문만 요란하더니 결국 별 거 아니냐는 말을 들으라는 듯이 등 뒤에서 하는 사람도 있었다.

안형재의 시신은 화장되었다. 그의 관이 화장로로 들어가자 어머니는 비통한 울음소리를 내다 기절했다. 아버지가 부축하려고 했지만 결국 함께 주저앉고 말았다. 안형재는 그들의 하나뿐인 자식이었다. 이제 부부는 남은 생을, 아들 대신 그를 잃은 고통과 함께 살아야 할 것이다.

수호는 화장로 밖에서 몇 방울의 기억 속에 있는 안형재의 생전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건장한 체격에 뚝심 있게 보이는 다부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몇 번이나 가까이 왔다가 결국 부탁하지 못한 것은 자존심이거나 혹은 그 자신이 벨 귀신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서인지도 모른다. 누구라도 그렇지 않을까. 전화를 받으면 죽는다는 이야기 따위는 영화에서나 나오는 거니까.

아니 어쩌면 사실은 원래 벨 귀신 따위는 없는지도…

문득 바람이 불었다.

서늘한 바람이었다. 이 계절에 좀 시원한 바람이 분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지만.

‘아니야.’

그의 손이 저도 모르게 주머니 안으로 들어갔다. 부적 뭉치 가운데 가장 앞에 배치해 둔 부적을 꺼내, 주변 사람들의 눈도 의식하지 않고 흔들어 불을 붙였다. 그의 손끝에서 노란 부적이 불꽃을 확 퍼뜨리자 가까이 있던 여학생 하나가 깜짝 몰라 어깨를 움츠렸다.

불붙은 부적이 눈앞을 스쳤다. 열기가 눈 주변에 어릿거렸다. 뜨거워진 눈으로 수호는 화장로 앞에 서 있는 젊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아니 젊은 남자의 혼을.

생전의 모습과 같으면서도 어딘지 낯설어진 얼굴로, 안형재 역시 수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표정은 어둡고 슬펐다. 등 뒤에서 아버지의 울음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말하고 싶은 얼굴이었지만 입술을 달싹일 뿐 말하지 못한다. 답답한 듯, 그가 손을 뻗었다. 뻗은 순간 10미터쯤 떨어져 있던 그는 눈앞으로 다가와, 그 손이 수호의 어깨를 꽉 잡고 있었다. 아픔에 얼굴을 찌푸릴 정도였다.

어깨를 꽉 잡고서 죽은 안형재가 수호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입술을 달싹이지만 그는 말하지 못했다. 아니면 수호가 듣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수호는 한숨을 쉬었다.

“잡으면 되는 거지?”

그가 안형재에게 물었다.

“벨 귀신이라는 거.”

안형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호가 그의 눈에 시선을 맞췄다.

“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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