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천 만물수리점-210화 (210/218)

서천 만물수리점 - 게임의 법칙(2)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죽은 사람한테서 의뢰를 받았어? 그럼 돈은 누가 내는 거야?”

수호의 이야기를 들은 해명이 아무 생각 없는 것 같은 얼굴로 물었다.

“받은 건 어깨의 멍뿐인데요.”

안형재에게 잡혔던 어깨를 주무르며 수호가 대꾸했다. 혼령이 꽉 잡았던 자리는 한동안 얼얼하고 저리더니 지금은 통증이 많이 가라앉았지만 대신 파란 멍으로 손자국이 뚜렷하게 남아있었다.

“와아, 손자국이 완전 선명하게 찍혔네. 지문도 보이겠다.”

셔츠를 젖혀서 어깨의 멍을 내려다 본 해명이 감탄했다. 수호는 남의 고통을 농담거리로 삼을 때냐고 쏘아붙이려다 관뒀다. 벨 귀신의 이야기를 들은 뒤로도 해명은 이번 일을 별로 대단치 않게 생각하는 기색이었다.

요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 수도 있고, 요괴라고 해도 그에게는 수백 년을 살아오면서 만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요괴 중 하나일 뿐일 테니까.

“그런데 벨소리와 함께 온다는 귀신은 어떻게 잡을 생각이야?”

해명이 진지하게 들어주겠다는 표정으로 물었지만 이번에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느라 바쁜 수호가 대충 대답했다.

“전파를 타고 돌아다니는 요괴니까 전파에 덫을 놓을까 싶은데요.”

“도술로 그런 것도 되냐?”

천왕 주제에 순진하게 묻는 걸 보고 수호가 피식 웃었다.

“도술로는 못하지만 현대과학기술은 되죠. 일단 돌아다니는 길목을 찾아야 하니까 자료수집부터 하고 있어요. 벨 귀신이라니 작년까지만 해도 도무지 들어본 적도 없는 이야기인데 갑자기 엄청난 속도로 번진 것도 그렇고, 찾아보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나올 것도 같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핸드폰 검색이 현대과학기술이야?”

“나 말고 열댓 명 더 있어요. 과 후배하고 친구들 해서요. 관계망 구축 서비스를 죄다 뒤질 거고, 그걸 지역별로 나눠서 이쪽만 한정한 다음 프로그램 돌려서 거르고, 그래서 남는 곳을 중심으로 온라인으로 감시할 거예요. 제가 오프에서 뛰고요.”

“뭔 소린지 모르겠고. 그것보다 후배들이 잘도 이런 일을 도와주네. 공부할 시간에 그러고 놀아도 돼? 아니, 노는 일이라 도와주는 건가.”

“선배의 권위와 소주에 삼겹살의 힘이죠. 그리고 노는 게 아니라 요괴 퇴치라니까요. 인문학 쪽 애들도 자료 넘겨주는 대신 도와준다고 했으니까 인원은 어쨌든 충분해요.”

“그런데 그게 왜 덫이야?”

“애들한테 주문한 게 있거든요. 탐색하면서…”

따르릉 -

수호의 말은 갑자기 울린 벨소리에 잘렸다. 수신자 불명의 번호로부터 온 전화였다.

따르릉 - 따르릉 - 따르릉 -

꽤나 구식인 전화벨 소리가 세 번 더 울린 다음, 터치한 적도 없는데 화면이 반짝 바뀌며 통화모드로 변했다.

[우리 같이 놀아요. 사흘 뒤에.]

속삭이는 것 같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는 역시 핸드폰을 만지지도 않았지만 스스로 통화가 종료되며 화면은 거짓말같이 처음으로 돌아갔다.

핸드폰을 내려다보며 해명이 눈을 깜박이고 수호는 입술 끝을 당겼다.

“탐색하면서 내 번호를 슬쩍 흘려두라고 했어요. 내가 추적하고 있다는 걸 알면 접촉해 올 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요.”

“네가 바로 덫이냐?”

해명이 혀를 찼다.

“뭐 좋잖아요. 준비할 시간도 충분히 주고, 찾아오는 시간도 정해져 있고. 아저씨도 벨 귀신이라는 거 궁금하지 않아요?”

“여기서 싸울 셈이야?”

“수수료 드릴 테니까 잘 부탁해요.”

씩 웃으며 수호가 말했다.

“어깨의 멍을 나눠받고 싶진 않은데.”

해명이 투덜거렸다.

그에게는 시간이 충분하다고 해뒀지만 사흘이 막상 긴 시간인 것만은 아니었다. 벨 귀신이 왔을 때 상대할 준비는 착실히 해두고 있었다. 게다가 해명도 함께 있을 테니까 걱정은 없다. 그러나 벨 귀신을 만났을 때 죽지 않는 정도로는 퇴치한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핸드폰에서 나타나는 살인 요괴를 어떻게 붙잡는가가 문제였다. 그것이 요괴가 직접 나타나는 형태인지 저주와 같은 형태인지도 확실치 않았다. 그때가 되기 전에는 아무 것도 알 수가 없다.

그 와중에 수호가 벨 귀신의 전화를 받았다는 것을 안 후배들은 삼겹살에 끌려왔던 처음보다 훨씬 검색에 열을 올리며 자료를 모았다. 막연히 벨 귀신을 찾아내겠다고 생각하던 때와 달리 일종의 성과가 나타난 셈이었다.

걱정하는 사람이나 겁을 먹고 슬그머니 빠지는 사람도 있었지만 반대로 합류하고 싶다며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식으로 인원은 조금씩 늘어나서, 이틀 뒤 마지막 전화를 앞두고 후배들을 만나러 갔을 때는 꽤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너희들 내 주머니 구멍 낼 셈이냐.”

아지트로 삼고 있는 동방이 비좁을 정도로 모인 사람들에게 불평하고 나서 보니 학과 조교도 두 명 끼어 있어서 수호는 한숨처럼 웃었다.

“죽을 때 가져갈 것도 아닌데 후배들 배 채우는데 좀 쓰면 어때요. 적선이니까 염라대왕님 대면할 때 가산점 좀 받을 걸요.”

경율이 웃으며 스스럼없이 대꾸했다. 수호를 톡방으로 불러들이고 사진을 보내서 이 일에 끌어들인 장본인이었다.

“그보다 재미있는 걸 발견했어요. 전화로 알려주는 것보다 직접 보여주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경율의 손짓에 후배 하나가 컴퓨터 모니터를 수호 쪽으로 돌려놓았다.

“우리도 다들 같은 생각인데 벨 귀신 나타난 시점이요. 그게 확실히 3개월 전이더라고요. 그 전에는 칼 같이 없더라니까요. 뭐 비슷한 류의 공포 영화나 괴담은 꽤 나왔지만 벨 귀신을 특정할 수 있는 조건들이나 벨 귀신이란 말이 나돌기 시작한 것도 3개월 전이고요. 게다가 전파 방식도 다양하고요.”

컴통과에서 데려왔다는 후배가 키보드를 두드리자 모니터에 작은 창들이 쑥쑥 떠올랐다.

“날짜 봐요. 1월 27일까지만 해도 한 건도 없었던 검색 결과가 28일을 기점으로 모든 소셜 네트워크에 동시발생해서 이후 수직상승하면서 커뮤니티 사이트 거쳐 블로그까지 거의 2주만에 도시괴담을 만들어냈어요.”

“요즘 그 정도 속도는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니잖아. 초안만 잘 잡으면 괴담 하나 만들어내서 퍼뜨리는데 2주는 길지.”

수호의 대꾸에 경율이 고개를 저었다.

“벨 귀신의 컨텐츠 자체는 흔한 도시괴담류 중 하나인 거잖아요. 그렇더라도 단순히 알리는 것뿐이라면 더 짧은 시간에도 인력만 들이면 충분히 가능해요. 하지만 벨 귀신의 경우는 초반에만 손을 쓴 흔적이 있어요. 사흘 뒤부터는 폭탄이 터진 것처럼 갑자기 늘어났다고요. 사람이나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에요. 그리고 아마도 그 폭탄은…”

모니터에 새로운 창이 떠올랐다. 신문 기사, 사진, 어딘가 게시판의 글, 동영상까지 창은 2초 간격으로 계속해서 끝없이 떠올라 모니터를 채웠다. 내용은 조금씩 다르면서도 같았다. 벨 귀신에게 죽은 사람에 대한 것이었다.

“날짜를 보세요.”

그러나 경율이 말하기 전에 수호도 이미 보고 있었다. 1월 31일.

“저 날 벨 귀신과 관련해 죽었다고 의심되는 사람이 전국에 80여 명. 그중 진위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62건. 오해나 거짓말로 판명된 경우가 6건. 그리고 나머지 12건은 72% 이상 신뢰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요. 중복일 가능성도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찾아낸 결과는 어디까지나 온라인에 올려진 것뿐이라는 사실이죠.”

말하자면 온라인에 없는 사망자는 몇이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사망 이유도 제각각이라 사실 벨 귀신 소문만 없으면 같은 카테고리에 묶기도 힘들거든요. 공통점이라면 모두 스마트폰을 쓰고 있다는 거지만 어차피 요새 폴더폰 쓰는 사람은 별로 없고. 그렇더라도 하루에 적어도 12명, 거기다 집계할 수 없는 사망자를 포함하면 몇십 명이 될 지 모르는 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 귀신이라는 말이 되는 거죠.”

경율은 다크 서클이 짙게 드리워진 눈을 휘면서 힘없이 웃었다.

“여기 처박혀서 컴퓨터와 핸드폰만 가지고 내린 결론이긴 하지만요. 이게 귀신의 짓이면 우리는 지금 단체로 자정에 전화 받을 짓을 하고 있는 거고, 사람의 짓이면 검은 양복 입은 사람들에게 잡혀갈 짓 하고 있는 거 맞나요? 조금 전까지 우리끼리 이야기하고 있을 때는 국가 규모의 음로론까지 나왔는데.”

그러고 보니 방안의 사람들 모두 태연한 체하고 있어도 긴장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지금까지 남에게 전해 듣던 이야기를 스스로 찾아서 파헤쳐 그 결과물을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자료가 쌓일 때마다 그들은 벨 귀신을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현실로 끌어당겼던 셈이다.

“걱정 되면 벨 귀신 방지 앱이라도 깔아두든지.”

“이미 깔았죠.”

경율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수호는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자정까지는 이제 세 시간쯤 남아있었다. 그는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수고들 했어. 치맥 시켜놨으니까 먹고 가. 귀신인지 뭔지는 만나봐야 알겠지만 국가 음모는 아닐 테니까, 도청 걱정 없이 정부 욕은 실컷 해도 될 걸.”

수호의 말에 몇 명이 쓴웃음을 지었다. 경율이 나가는 수호를 배웅했다.

“정말 괜찮아요?”

그만 들어가라는 수호에게 경율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뭐가?”

뭘 걱정하는지 알면서도 수호가 되물었다.

“그거…진짜 귀신이면…”

“뭐냐. 공대생쯤 되면 귀신은 호리병 말고 클라인 병에 봉인해도 되냐는 정도로 물어보라고.”

“거기에 부적 대신 소스 입력하는 거죠?”

피식 웃으며 경율이 대꾸했다.

“잘 아네. 내일 보자.”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수호는 그곳을 떠났다.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