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만물수리점 - 게임의 법칙(3)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수리점에 도착하자 작업장에서 기다리던 해명이 수호를 보고 고개를 까닥였다. 자정까지는 두어 시간을 남기고 있었지만 그때까지 같이 있을 모양이었다.
“준비는 이정도로 충분한 거냐?”
수호가 오전부터 작업장에 준비해 놓았던 것들을 보며 해명이 미심쩍은 듯 물었다. 몇 시간이나 들였으면서도 막상 작업장에는 금줄과 부적 몇 장과 촛대 네 개가 고작이었으니까 의심스러울 만도 했다.
“어떤 종류의 요괴인지 모르니까요. 어디에나 대체로 통할만한 것으로 준비해 두고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 하는 수밖에요.”
그런 까닭에 옷도 넉넉한 크기의 주머니가 많은 것으로 골라 입고, 종류별로 나눈 부적들을 주머니마다 넣어두고 있었다. 대부분의 부적은 포박이나 정화의 용도다. 최악의 상황은 해명이 막아줄 거라는 생각도 있었다.
금줄은 작업 선반 주변에 쳐놓았지만 이 결계는 완성된 것이 아니었다. 한쪽이 뚫려 있었던 것이다. 자정이 가까워지자 수호는 핸드폰을 작업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고의로 미완성인 채 놓아 둔 금줄을 잡고 기다렸다.
해명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역시 수호와 함께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용한 작업장 안에 벽시계의 초침 움직이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렸다. 그리고 자정이 된 순간
따르릉 -
핸드폰이 진동과 함께 울음소리를 냈다.
따르릉 - 따르릉-
한 손에는 금줄, 다른 손에는 부적을 쥐고 수호는 벨 소리를 내는 핸드폰을 쏘아보았다.
따르릉 -
네 번째가 울리고 나자 핸드폰은 스스로 반짝 켜졌다.
[우리 같이 놀아요.]
속삭이는 듯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 뒤에 있으니까.]
여자가 속삭였다. 오싹 떨면서도 수호는 뒤를 돌아보는 대신 잡고 있던 금줄을 재빨리 엮고 부적을 붙여 결계를 완성했다.
“엎드려!”
등 뒤에서 해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듣는 순간 납작 엎드리자 머리 위에서 징이 울리는 것 같은 울림이, 소리가 아니라 피부에 닿는 진동으로 느껴졌다. 엎드리며 이미 불을 붙였던 부적이 수호의 눈앞에서 재가 되었다.
열기 어린 눈으로 올려다보자 엎드린 수호를 감싸듯 선 해명이 팔에 하얗게 번쩍이는 날붙이가 십자로 걸린 것이 보였다. 흔히 환두대도라고 하는 긴 칼이었다. 그것을 든 사람 역시 현대의 복장은 아니다.
시대와 국적이 모호한 갑주를 두르고 있었다. 마치 솟아나듯 갑자기 허공에 나타나서 수호를 향해 칼을 휘둘렀던 것이다. 첫 공격에 실패하자 갑주를 두른 몸이 날렵하게 뒤로 물러났다. 그것과 동시에 해명의 뒤에서 뾰족한 창끝이 찔러 들어왔다.
“이봐, 이봐. 나라도 이런 것에 찔리면 아프다고!”
그 창끝을 낚아채서 당기면서도 해명이 엄살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둘 뿐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나타났는지 각자 다른 무기를 든 병사들이, 훈련이라도 받은 것처럼 각자 거리를 지키며 그들을 에워쌌다. 모두 여섯이다.
해명이 창 든 병사를 밀쳐낸 순간을 이용해 수호가 결계 안으로 뛰어들었다. 뒤로 물러났던 대도를 든 병사가 수호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마치 허깨비처럼 금줄을 지나더니 결계 안으로 들어와 큰 칼을 휘둘렀다. 이미 뒷걸음치고 있던 수호는 구르다시피 금줄 밖으로 빠져나갔다.
까앙 - !
대도가 허공을 치며 불꽃을 일으켰다. 결계 밖으로 나간 수호를 쫓아 병사가 다시 움직였으나 이번에는 금줄을 통과하지 못했다. 통과하지 못할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것처럼 결계 안에서 나가지 못해 빙빙 돌고 있었다.
“들어갈 때는 맘대로지만 말이야. 나갈 때는 아니란다.”
수호가 씩 웃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결계 건너편에서 도끼를 든 병사가 수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금줄을 빙 돌아 결계를 피하며 온다.
‘뭐야, 저거.’
달려오는 병사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금줄을 따라 달리면서 수호는 주머니 속의 부적을 꺼냈다. 노란 부적 끝에서 불꽃이 올랐다가 그대로 병사에게 날아갔다. 야구공 크기의 불덩어리가 병사의 머리에 부딪치며 폭죽처럼 터졌다.
병사의 몸은 그 불꽃에 타듯이 사라져버렸다. 연기 속에서 바닥으로 까맣게 탄 뭔가가 툭 떨어져 부서졌다. 그 크기는 3mm 이하에 긴 타원형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수호가 그것을 보고 미간을 보았다.
‘녹두군사.’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짐작은 했지만 과연 이것은 술법으로 만들어진 허깨비 병사다. 곡물을 병사로 변신시키는 술법이었다. 녹두를 이용한 전례가 많아 녹두군사로 불리지만 사실 곡물이라면 어느 것이나 상관없었다. 이 경우에는 쌀이다.
허깨비 병사라고 해도 안심할 수는 없는, 실제로 물리적인 충격을 가할 수 있는 존재였다. 전설 속에서는 녹두군사를 이용해 전쟁에서 이겼다거나 적을 물리친 이야기가 얼마든지 있었다.
“이런 게 왔다는 건, 상대가 도사라는 건가?”
그 사이 네 명의 녹두군사를 해치운 해명이 깨져서 바닥에 뒹구는 쌀알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핸드폰에서 요기는 느껴지지 않아요?”
수호의 질문에 해명이 어깨를 으쓱 움츠렸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조금도. 벨이 울리기 시작할 때 바깥에서부터 기운이 느껴졌는데 이것들은 이층에서 내려오더라고. 이 쌀, 혹시 내 쌀통에 있던 거냐?”
“녹두병사라도 본체는 쌀이니까 벽을 통과하거나 할 수는 없어요. 혹시 창문 열어두셨어요?”
“아닐 걸.”
“그럼 집안에서 만들어진 거네요. 미리 들어와 쌀을 뿌려놓았거나 집안의 쌀을 이용한 거예요. 전자라면 제가 여기 자주 오는 걸 안다는 거고, 후자라면 준비가 되지 않은 곡물을 이용해서 녹두군사를 만들 정도로 실력이 탁월한 도사라는 거겠죠.”
“어느 쪽도 싫은데.”
약간 불만이 어린 얼굴로 해명이 중얼거렸다.
“최근에 낯선 사람이 2층으로 올라간 적 있어요?”
“내가 아는 한은 없지만, 모르지. 출입문은 잠기지 않으니까 내가 없는 동안 아무나 들어왔다 갈 수 있고, 낮에는 도깨비들도 잠들어서…”
수호는 짧은 한숨을 쉬었다.
해명은 이제 낮에도 얼마든지 외출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보통 밖으로 나가면 다른 곳에는 가지 않고 두어 시간 동안 천변을 산책했다. 산책로를 따라 걸어서 양동시장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 빼놓지 않는 하루일과였다.
“그런데 사람 하나 잡는데 보통 녹두군사를 여섯이나 보내냐?”
해명이 문득 물었다.
“보통 사람은 하나둘이면 충분할 거예요. 녹두로 만든 병사라도 위력은 실제로 칼을 든 병사와 다를 바 없으니까요.”
그런데도 여섯씩이나 보냈다면 상대는 수호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어…!”
결계 안으로 시선을 보냈던 수호가 낭패한 목소리를 냈다. 잡혀 있던 녹두군사가 이미 쌀알로 되돌아가 있었다. 그러나 되돌아가기 전, 병사는 가지고 있던 대도로 작업 선반 위에 놓인 수호의 핸드폰을 산산조각 나도록 부숴버렸던 것이다. 다른 녹두군사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없던 와중에 벌어진 일이었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실력 있는 도사라는 건 확실해 보이네요.”
수호는 부서진 핸드폰을 내려다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단순히 녹두군사를 만들어 보내기만 한 게 아니라, 이쪽의 상황을 보면서 하나하나 움직이고 있어요. 아까도 녹두군사 하나가 결계에 갇힌 다음 다른 군사가 결계를 피해서 나를 쫓아왔거든요. 녹두군사는 적을 구분해서 싸우는 정도의 지능은 있지만 결계를 알아차린다든가 핸드폰을 부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의 지능은 없어요. 지식도 없고.”
“그런데 뭣 때문에 핸드폰을 부숴?”
해명이 옆으로 와서 함께 작업 선반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러게요.”
수호가 중얼거렸다.
다음날 날이 밝기 무섭게 학교로 간 수호는 동방에 들어갔다가 초췌한 몰골로 엎드려 자고 있는 두 명을 발견하고 혀를 찼다. 경율과 컴통과 후배였다.
“여기에서 잤어? 경비에 안 걸렸냐?”
“형!”
경율이 거의 부르짖듯이 수호를 불렀다. 그 소리에 깨어난 컴통과 후배가 벌떡 일어나서 동그랗게 뜬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형!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전화도 안 받고, 집에 전화해도 안 왔다고 그러고. 어떻게 된 거예요?”
“너 면도 좀 해야 할 것 같다.”
경율의 질문을 슬쩍 비껴 대꾸하면서 책상 위에 핸드폰 부스러기라고 해야 할 파편들을 쏟아놓았다.
“이거…역시 무리겠지?”
“뭐예요? 형 핸드폰? 왜 이렇게 됐어요?”
“직접적인 원인은 칼 맞아서…겠지만, 왜 칼을 맞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단 말이야. 너, 죽은 안형재랑 친한 얘들 알지?”
수호의 말에 어안이 벙벙해 있던 경율이었지만 질문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안형재 핸드폰 좀 확인해 볼 수 있겠냐? 아무래도 핸드폰에 장난질을 한 것 같거든.”
수호의 말에 경율은 뜻밖에도 놀란 기색이 아니었다.
“역시 그렇죠? 귀신이 아니죠?”
“역시는 뭐야? 어제는 꽤 겁먹고 있었으면서.”
“그게요…”
경율의 말에 따르면 수호가 떠난 뒤, 치맥으로 배를 채운 사람들은 그냥 가지 않고 자정까지는 뭐라도 해보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그들이 중점적으로 체크한 것은 벨 귀신에게 죽었다고 생각되는 12명이었다. 그들 사이의 공통점을 찾아보려고 했던 것이다.
사는 곳도 연령도 직업도 모두 달라 의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 작업이었다. 그러나 의외로 나온 것이 있었다.
“어제 그랬잖아요. 28일 시작된 벨 귀신 이야기가 사흘 뒤에 갑자기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고요. 그런데 그 이유가, 물론 죽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쇼킹한 것도 있지만 그보다 최초로 게시글을 올린 사람들의 영향력도 컸던 거예요. 대부분 커뮤니티 사이트의 유력한 유저였거든요. 말하자면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는 출처라는 거죠. 그런데 죽은 사람들은 모두, 그 사람들과 온라인에서건 오프에서건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거예요.”
경율은 말하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니까 희생자들은, 그런 식으로 선별된 게 아닌가 생각해요. 벨 귀신의 전화를 받고 사흘 후에 죽었다는 것을 온라인에서 증명해줄 사람이 있는 누군가…. 누가 누구와 친한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사는 곳은 어디고 가족은 누구고 전화번호…그런 거 모두, 온라인에서 얼마든지 수집할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12명 중 3명은 우리도 전화번호를 입수할 수 있었어요. 고작 2시간 작업만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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