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천 만물수리점-212화 (212/218)

서천 만물수리점 - 게임의 법칙(4)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과연 그렇게 된 거네.’

자신의 정보를 온라인에 공개하는 사람은 많다. 취미나 관심사, 사소한 일상, 자신의 모습은 물론 가족이며 지인들까지, 어디에 닿을지 모르는 정보의 바다에 던져놓는다.

거기에서 소문을 퍼뜨리기에 적합한 사람을 구분하여 살해한다. 게다가 이 살해는 사흘 전부터 예고되는 것이다. 사흘 동안 전화를 받은 사람은 이 사실을 지인에게 알리고 하루씩 다가오는 마지막 날을 그들과 함께 반신반의하며 기다렸을 것이다. 대부분은 믿지 않았겠지만, 그래서 그들의 죽음은 지인들에게 더욱 큰 충격이 된다.

더욱이 같은 사례가 더, 그것도 무수히 많다면…

“이쯤 되면 괴담이 문제가 아니라 연쇄살인…아니, 거의 학살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되는 거 아닌 가요? 사실 아직도 실감은 안 나지만요. 형한테는 무슨 일이 있었어요? 핸드폰이 이렇게 된 걸 보니까 뭔가 일이 있긴 했던 거죠?”

경율이 물었다. 아니라고 잡아떼도 믿을 리 없고, 그렇다고 녹두군사 이야기를 해줄 수는 없으니 수호는 해명을 흉내 내 어깨를 으쓱 당겼다.

“그냥 칼 든 놈 몇 명이…뭐, 레벨이 깡패인 남자랑 같이 있어서 아무 문제 없었지만.”

“예…?”

“아무튼 핸드폰, 좀 부탁한다. 그리고 자료 수집은 이쯤에서 그만 해. 더 파고드는 건 위험한 것 같고, 나도 슬슬 길이 보이니까 이 후로는 어떻게든 혼자 할 수 있을 거야.”

듣고 싶은 것이 많아 보이는 경율의 등을 툭 치고 수호는 동방을 나섰다. 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태연했던 얼굴이 굳었다.

경율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생각해 보면 등골이 오싹한 이야기였다. 온라인에서 수집한 정보로 사람을 선택해 도술을 이용해서 죽인다는 결론이다. 목적이 뭔가는 일단 미루어 두더라도 같은 날 서로 다른 장소에 있는, 적어도 열두 명 이상의 사람을 동시에 서로 다른 방법으로 죽였다는 말이었다.

그런 것이 가능한가?

‘설마 한 명이 아닌가? 도사가 여러 명?’

그러나 어떤 목적이 있든 이런 식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는 도사가 한두 명 이상이라는 것은 더 상상하기 싫은 결과였다.

전국에서 십수 명이, 그것도 떠들썩하게 죽은 사건이었다. 온라인에서는 이미 유명하고 공중파 방송에서도 한두 번은 다뤘을 정도로 알려졌다. 이 정도로 일을 벌이고 있다면 누군가는 눈치를 채는 것이 당연했다. 국가적 음모라느니 도시전설이라느니 말로만 떠드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발로 쫓아 움직일 사람이 자신 외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을 벌인 쪽에서 그런 것도 생각 안했을 리는 없다. 실제로 자정에 찾아온 녹두군사는 해명이 없었다면 분명 자신을 죽였을 터였다. 그 정도의 행동력도 실력도 갖고 있었다.

미친 것 같지만 누가 추적해 오건 죽이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뭘 위해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희생자가 많아지면 원한도 그만큼 쌓인다. 이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으면서 원한이 쌓이면 그에 대한 응보를 받게 된다는 걸 모를 리가 없다.

게다가 요즘의 도사들이 산속에서 수행이나 하며 세상에 담을 쌓거나 아니면 반대로 돈에 팔려 속세를 뒹굴고 있다지만 이런 일에 방관하지 않고 나설 정도의 사람은 어디엔가 있었다.

사람뿐만이 아니다. 신들도 제대로 일하고 있는 이상 이런 일이 계속되면 분명 어떤 방식으로든 움직인다. 그러나 그런 것이 두렵지 않은 걸까? 아니, 그런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이유가 있다고 해도, 왜 굳이 이렇게 요란한 방법을 선택한 걸까. 그런 소란으로 뭘 얻을 수 있지?

생각하며 걷던 수호가 문득 발을 멈췄다. 얻을 수 있는 것이 떠올랐던 것이다.

‘설마.’

라고 금세 떠오른 생각을 부정했지만 그는 어느새 뛰기 시작했다. 학교 안 공중전화로 달려간 그가 수영에게 전화했다.

“그 앱. 벨 귀신 방지하는 거. 다운받은 횟수 지금은 몇이야?”

다짜고짜 묻는 수호의 목소리가 평소와 다르다고 생각했는지, 수영은 별말 없이 확인해 줬다.

“481,227건.”

며칠 전까지만 해도 10만 명 넘는 정도라고 들었던 수호는 조금 놀랐다.

“가격은?”

“앱 가격? 1000원. 왜?”

그렇다면 대략 4억 8천만이다. 수호는 고개를 저었다. 이런 짓을 하면서까지 벌어들이는 돈으로는 적은 게 아닐까.

물론 생각의 차이일 수도 있다. 앱의 개발자와 도사 쪽이 함께 일한다고 가정하면 애초에 자금이 거의 필요 없는 이 일에서 벌어들이는 돈은 순이익에 가까웠다. 인생을 걸만한 돈은 아니지만 잡히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그리고 사람을 죽이는 일에 가책이 없다고 가정하면 쉬운 돈벌이였다.

뿐만 아니라 벨 귀신이 계속해서 사람을 죽인다면 앱의 사용자는 점점 더 많아진다. 핸드폰을 사용하는 사람은 반드시 벨 귀신 방지 앱도 깔아야 할 터였다. 특허라도 신청해 놨다면 그 수익은 고스란히 개발자의 것이다.

만에 하나 도술로 사람을 죽인 일이 드러난다고 해도 법은 그런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법보다는 개인적인 복수가 돌아올 가능성이 오히려 높았다. 그러나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실력이 있다면…

‘하지만 정말 돈 때문에 이렇게까지?’

돈의 힘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만 생각하기에 어쩐지 꺼림칙한 데가 있었다.

‘어쨌든 거기부터 조사해 보는 게 좋겠어.’

수영에게 앱의 개발사가 어디인지 들은 다음 수호는 그곳으로 직접 찾아가기로 했다.

대충 만든 것 같은 홈페이지 어디를 뒤져도 개발사의 사무실 위치는 없었다. 나온 것은 전화번호뿐이어서 그것으로 시작해 검색에 검색을 거듭해서 겨우 찾아낼 수 있었다. 위치는 서울. 덕분에 오후 강의를 날렸지만 남들 공부할 때 혼자 고속도로를 타고 있어도 노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사무실은 서울 외곽의 한적한 상업지구 틈바구니에 끼어있는 낡은 4층 건물의 3층이었다. 그나마도 같은 층을 셋으로 나눠 쓰고 있었다. 복도 끝, 가장 안쪽이 개발사의 사무실이었다.

이미 시간은 7시를 넘어 바깥이 어두워졌지만 이 건물 안은 누군가 불도 켜놓지 않아서 복도가 어두웠다. 사무실은 문 위에 붙은 명패에 개발사의 상호가 적힌 것이 전부였다. 누군가 지나가다 봤어도 뭐하는 곳인지 모를 것 같았다.

문을 두드렸으나 대답은 없다. 손잡이를 잡고 돌리자 문이 열렸다. 불길할 정도로 쉽게 열려서, 수호는 문을 밀기 전에 약간 주저했다.

한 손에는 부적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잠시도 방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마음을 먹고 문을 조금 연 순간 방안으로부터 바람이 휙 불어왔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움찔 뒤로 물러났다.

평범한 바람이었다. 문 바로 맞은편 창문이 활짝 열려있는 것이다. 거기에서 곧장 불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바람에 책상 위의 종이가 날려서 사무실 안을 가로질러도 누구 하나 놀라는 소리나 집으려고 일어나는 기척이 없다.

사무실 안은 환했다. 컴퓨터 본체에서 들리는 나직한 소리가 웅웅거리며 들려왔다. 묘한 위화감을 느끼면서 수호는 천천히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세 걸음 만에 멈췄다. 걸을 수 없기도 하고 더 걷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기도 한 까닭이다. 문 왼쪽, 책상으로 가려져 문 앞에서는 보이지 않던 사무실 안쪽 바닥에 두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두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은 바닥에 뒹굴고 있는 머리가 둘이어서지만, 다리 하나와 팔과 상체의 절반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하복부와 다리만 붙어 있을 뿐인 몸 아래는 피가 낭자했다. 건물 바닥이 약간 기울어 있는지 피는 창문 쪽으로 흘러서 창 아래에 웅덩이를 만들어놓았다.

열려있는 창문 때문에 피비린내는 나지 않았다.

‘정신 차려.’

그런 말을 스스로에게 할 수 있게 된 시점에서 이미 정신은 차린 셈이었지만 얼마나 오랫동안 시체를 보면서 넋을 잃고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잠깐이었는지, 몇 분이었는지.

그러나 그의 오감은 정신없는 와중에도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피가 전혀 마른 흔적이 없는 걸 보면 이 사람들이 죽은 것은 고작 몇 분 전이다. 사무실 안에는 컴퓨터 책상이 두 개, 벽에 바짝 붙은 소파가 하나, 서류정리함이 하나 있을 뿐이다. 누가 숨어있을 공간은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면, 시체의 사라진 다른 부분들은 어디로 간 걸까. 살인자가 가져갔다고 해도 왜 그랬을까.

멍하니 시체를 내려다보던 수호는 뭔가 움직였다고 생각했다.

눈앞에 있는 것은 피 웅덩이 위의 시체뿐인데도.

‘아니…’

수호는 시체로부터 눈길을 옮겨 그 밑에 퍼진 피를 내려다보았다. 바닥을 빨갛게 칠한 피는 조금도 마르지 않은 채로, 그 표면은 마치 거울처럼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붉은 거울이다. 바로 그 거울에 천장과, 천장에 거꾸로 붙어있는 ‘어떤 것’이 보였다.

그것이 천천히 천장을 기어가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바로 머리 위라고 안 순간 손끝에서 불꽃이 일었다.

“캬악!”

부적을 흔들어 만든 불꽃을 날리는 것과 문을 향해 달린 것은 거의 동시였다. 날아간 불꽃이 확실히 적중하면서 인간의 것이 아닌 비명소리가 들려왔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문을 열어젖히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복도를 달리기 시작하면서 맞은편에 창문과 그 왼쪽으로 계단이 보이자 어떻게든 빠져나온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생각한 순간 몸이 휙 기울었다.

뭔가 발목을 감고 무서운 힘으로 당기고 있었다. 쓰러진 채로 끌려가면서 수호는 다시 한 번 부적을 날렸다. 아까보다 큰 불꽃이 이번에는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발을 묶은 것으로부터 거기에 이어진 적을 공격했다. 분명 위력이 더 강했을 텐데 발을 당기는 힘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순식간에 사무실로 끌려들어간 수호는 머리 위로 쾅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 부적을 꺼내기 위해 움직이려던 손이 콱 눌렸다. 양손 모두, 팔이 부러지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강한 힘에 짓눌려 있었다.

누르고 있는 것은 발이다. 양발로 손을 하나씩 밟고 서서 수호를 내려다보는 ‘것’이 있었다. 그 발에 실린 힘은 몸무게 정도가 아니었다. 몸무게뿐이라면 한 손으로도 들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여윈 몸이었던 것이다.

팔도, 다리도, 목도, 얼굴도, 가여울 정도로 비쩍 말라 있었다. 말랐을 뿐 아니라 피부 표면은 묘하게 반질거렸다. 살가죽이라기보다 피부색의 비단을 씌워놓은 것 같았다.

“계유생 최수호.”

속삭이는 것 같은 목소리로 ‘그것’이 말했다. 그리고 천천히 상체를 숙였다. 각도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던 얼굴이 그제야 제대로 드러났다. 그것의 얼굴을 본 수호가 가만히 숨을 들이쉬었다.

젊은 여자의 얼굴이었다. 어리다고 해도 좋을지 모른다.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 그 정도였다. 비쩍 말라서, 원래도 컸을 눈이 더욱 커다랗게 보였다. 그러나 단순히 큰 눈이 아니다. 그 눈자위는 인간과 달리 노랗게 물들고, 한가운데 박힌 아몬드 모양의 까만 홍채가 세로로 곤두서 있었다. 마치 고양이나 뱀처럼.

“벌써 여기까지. 부지런하네.”

감탄인지 비웃음인지 모호한 목소리였다. 여자는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늘어뜨리며 수호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더욱 몸을 숙여 그의 얼굴 가까이 다가갔다. 머리카락이 수호의 얼굴을 간질였다. 여자가 입술을 당기며 웃었다.

“좋은 냄새가 나는구나.”

입술이 벌어지며 보이는 뾰족한 이 사이에 붉은 살점이 끼어 있었다.

“맛있는 냄새라는 말인가?”

손은 꽉 눌리고 발은 뭔가로 묶여 꼼짝할 수 없지만 입만은 멀쩡해서, 수호는 태연한 체하며 대꾸했다.

그의 말에 여자의 입이 더욱 크게 휘었다. 기분 좋은 얼굴이었다.

“그런 거야.”

“조금 전까지 꽤나 먹었던 것 같은데도 식욕이 좋네. 그런 것 치고는 말랐지만.”

“오래 굶었거든.”

여자는 자신의 마른 배를 쓰다듬었다. 시체의 사라진 부분이 거기에 다 들어있다고는 절대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는 어떻게 봐도 요괴…

“저기, 내일 먹을 식량으로 비축해둘 생각은 없어?”

대충 대꾸하면서 수호는 조금씩 몸을 틀었다. 부적을 잡을 수는 없지만 주머니 속의 차돌이 있었다. 어떻게든 틈을 만들기 위해 차돌을 주머니 밖으로 꺼내야 했다.

여자가 고개를 기울이며 웃었다. 요괴치고는 잘 웃는 여자였다.

“그럴 거야.”

아, 당장은 잡아먹지 않겠다는 말인가 하고 수호가 안심한 순간

“조각내서 내 뱃속에 넣은 다음 말이야.”

덧붙인 여자가 손을 뻗어 수호의 한쪽 팔을 잡았다. 손을 밟고 있던 발이 가슴을 짓누르는 것과 함께 무서운 힘이 팔에 가해졌다.

“아아아악!”

수호가 자기도 모르게 목쉰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어깨 부근에서 우둑 하고 뼈가 제 위치를 벗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근육과 피부가 함께 찢어지는 감각이, 무시무시한 고통 뒤편으로 전해졌다.

번쩍거리며 지져대는 듯한 고통이 팔은 물론 가슴과 머리와 사지로 퍼졌다. 심장이 꽉 움켜쥐어진 듯한 느낌과 함께, 수호는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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