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만물수리점 - 게임의 법칙(5)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그는 긴 복도를 천천히 걷고 있었다. 조명이 약해 어두컴컴했으나 지나칠 정도로 호사스럽게 꾸며진 곳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바닥에 깔린 카펫도 벽의 장식도 눈이 어지러울 만큼 요란했다.
그러나 거기에 신경을 쓸 여유는 없었다. 몇 걸음 앞에서 그를 안내하는 여자가 가는 허리와 둥근 엉덩이를 흔들면서 걸었지만 거기에도 별로 시선이 가지 않았다. 그런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이윽고 복도 끝에서 커다란 아치형 문이 나타났다. 두껍고 무거운 나무문이었다.
‘안 돼.’
문이 열리는 것을 보며 수호는 중얼거렸다.
‘들어가지 마.’
그러나 그의 마음과 상관없이 몸은 열린 문안으로 들어가서 넓은 방과 그 안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재빨리 둘러보았다. 아니, ‘사람들’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거기에는 분명 사람이 아닌 ‘것’들도 있었다. 어쩌면 사람조차도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존재로 변해버린 후였다. ‘가지 마. 거기에서 나가. 도망 가.’
수호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소용없는 말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몇 분간은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대화라기보다는 놀림 받는 쪽에 가까웠다. 놀리는 것이 끝나면 그를 안내했던 여자가 다가올 것이다. 순진해 보이는 아름다운 얼굴로 웃으며 올려다보다가, 그녀는 돌연 그의 팔을 할퀸다.
손톱이 스친 곳에서 옷과 피부가 함께 찢어진다. 사람의 손톱으로 가능할 리 없는 상처를 내고서 그녀는 고개를 기울이며 애교스럽게 웃는 것이다. 그리고 그 후로 몇 번이나 그녀의 손톱은 그의 피부를 찢어놓는다. 마치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노는 것처럼, 그의 온몸에 상처를 만들며 노는 여자의 몸짓은 춤추는 것처럼 우아하며 즐겁다.
막바지에 달하면 시야는 흐려진다. 그가 울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겁 없는 성격이라 생각하고, 남들로부터도 그것을 인정받고 있던 사내가 고통과 두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우는 것이다.
그가 몸과 함께 마음까지 허물어지는 그 순간에 ‘그것들’은 다가왔다. 느릿느릿 몰려들어서, 저항할 의지를 완전히 잃어버린 먹이를 탐욕스럽게 뜯어먹었다.
“숨 쉬어.”
목소리가 귀가 막힌 것처럼 먹먹하게 들려왔다.
“수호, 괜찮으니까 숨 쉬어.”
두 번째로 들렸을 때는 좀 더 선명했다. 그러나 뭐라고 말하는 거지, 저 남자는. 숨을 쉬라고…그 일을 해야 할 허파는 지금 눈앞에서 젊고 아름다운 여자에게 먹히고 있는데 말이지. 아니, 저건 허파가 아니라 심장인가? 간인가? 뜯어 먹힌데다 피투성이니까 도무지 모르겠다.
“구강대 구강법으로 인공호흡이라도 해줘야 하나.”
그러나 세 번째 목소리가 들렸을 때 눈앞의 참혹한 장면은 점점 어두워져서, ‘아, 역시 이건 꿈이었어.’라고 생각할 여유가 돌아왔다.
“그 말, 직장내 성희롱으로 고발할 수도 있어요.”
수호가 대꾸했다. 말하고 나서야 어쩐지 숨이 찬 것과 자신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을 깜박여 뜨자 웃는 것도 찡그린 것도 같은 해명의 얼굴이 보였다. 몸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도 앞좌석과 거기에 앉은 사람의 뒤통수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자신이 백은호의 차에 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
왜 백은호의 차에 타서 어디론지 가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잠깐 들었다가, 수영과 했던 통화와 앱의 개발사 사무실을 찾아갔던 기억이 쏟아지듯 돌아왔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만난 요괴도.
그가 움찔 떨고는 요괴에게 잡혔던 팔을 내려다보았다. 기억이 거짓말인 것처럼 팔은 멀쩡했다. 주먹을 쥐어보자 문제없이 움직인다. 고통도 없었다. 그러나 옷의 어깨부분은 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봉제선의 실밥이 뜯어져 맨살이 조금 보였다.
요괴에게 팔이 잡아 뜯겨졌던 때의 고통이 갑자기 되살아나서 수호는 이를 악물었다.
“말도 없이 혼자서 그런 위험한 곳까지 가다니 너답지 않게 왜 그랬어? 후배 전화가 아니었으면 까맣게 몰랐을 거다.”
해명의 목소리가 평소와 다르게 엄했다. 아저씨야말로 답지 않게 어른 흉내냐고 대꾸하려다 해명과 눈이 마주치자 수호는 입을 다물었다. 해명은 드물게 진심으로 화내고 있었다.
“정찰만 할 생각이었어요. 앱 개발자 쪽이 관련은 있어도 위험한 상대는 아닐 거라고 생각해서…”
“너…”
수호의 변명에 해명이 눈썹을 곤두세웠다. 백은호가 뒤통수를 보인 채로 끼어들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요. 그때 마침 ‘그런 것’이 찾아왔으니 운이 없다고 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지금 그게…”
해명이 그에게 뭐라고 나무라려는 순간 차가 멈췄다.
“여깁니다.”
백은호가 말하며 차창 밖을 가리켰다. 그의 손끝에 걸린 것은 겉보기에 평범한 주택이었다. 그러나 담 안쪽으로 노랗게 마른 대나무 가지가 하나, 오색의 천을 매달고서 불쑥 튀어나와 있었다.
아는 사람은 알 표식이었다.
“여기는…?”
정신을 잃은 사이 어디로 왔는지 감이 안 잡히는 수호가 두리번거리며 물었지만 백은호는 대답 없이 차에서 내렸다. 해명이 뒤따라 나가자 수호도 별 수 없이 차문을 열었다.
그곳은 일층이나 이층의 건물이 대부분인 주택가였다. 아파트는 어둠 속에서 멀리 어렴풋하게 보일 뿐이다. 경사진 언덕을 따라 높은 담을 세운 주택들이 열을 지어 이어져 있었다.
백은호가 대문 옆의 벨을 눌렀다. 대답도 없이 철컥 하고 대문의 잠금이 해제되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이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거의 동시에 현관문이 열렸다.
안에서 나온 사람은 5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살집 좋은 얼굴에 푸근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짧은 파마머리라든가 홈드레스를 입은 모습이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줌마였다. 그러나 해명을 보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깊이 숙여 공손히 절하는 것을 보면 분명 평범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사는 사람이다.
“천왕님을 이렇게 누추한 곳으로 모셔서…”
그녀가 미안한 얼굴로 말하며 그들을 집안으로 안내했다. 누추하다고 말했지만 집주인의 질박한 성품이 보이는 수수한 내부였다. 잘 정돈된 살림살이가 여느 평범한 집과 다를 바 없었다.
평범한 집과 다른 것이라면 향나무 태운 냄새가 떠도는 것과 벽마다 붙은 부적 정도일 것이다. 세 장은 오래 전부터 붙어있던 것이지만 한 장은 새 것이었다. 수호는 그것이 귀문을 새로이 봉인한 흔적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집안에는 그녀 말고도 한 명이 더 있었다.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소년이었다. 거실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다가 세 명이나 되는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오는 것을 보자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겁먹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괜찮아, 찬영아. 내가 말한 분들이다.”
여자가 부드럽게 말하자 소년은 고개를 보일 듯 말 듯 끄덕였다.
이곳에 온 이유는 무엇이고 여자는 어떤 사람이며 소년은 또 누구인가 하는 질문들이 수없이 수호의 머릿속을 떠돌았지만 백은호는 모르는체하고 해명은 삐친 얼굴이라 물을 수도 없었다.
그들은 잠시 후 여자가 내온 다과상을 가운데 놓고 둘러앉았다. 찬영이라는 소년은 여자의 뒤쪽에 바짝 앉아 있었다. 꽤 낯을 가리는 성격이 아니라면 뭔가에 단단히 겁을 먹고 있는 걸로 보였다.
“이 아이의 이름은 이찬영이고, 제 단골손님이었던 분의 아들입니다.”
여자가 소년을 소개하며 입을 열었다.
‘이었던?’
과거형으로 말하는 것에 그녀를 힐끗 쳐다보자 여자도 마침 수호 쪽을 보고 있다가 쓴웃음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몇 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부부가 함께…무서운 사고였지요.”
그녀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지만 뒤에 있던 소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저와는 일 외에도 만나 교분을 나누던 사이여서, 그 후로 자주는 아니지만 아이들의 근황을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로 아이들은 외삼촌 집에서 살았어요. 그런데 문제가 있었던 것을 제가 모르고 너무 오래 방치되어…”
여자가 힐끗 소년의 눈치를 살폈다. 어려운 말인지 조금 망설이다가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네 살 위의 누나가 하나 있거든요. 남매가 함께 외삼촌 집에 있었는데, 2년 전 갑자기 누나가 가출을 했다는 말을 들었어요. 사정을 알게 된 것은 다음 해에 찬영이가 그 집을 나와서 저한테 왔을 때입니다. 그러니까 작년의 일입니다만, 누나인 찬희가 가출한 것은 임신을 해서인 것 같다고…”
수호는 여자의 뒤에 숨어있는 찬영을 힐끗 보았다. 열네 살, 기껏해야 열다섯 살쯤으로 보인다. 네 살 위의 누나라고 해도 열아홉 정도일 테고 가출한 2년 전에는 열일곱 살 정도라고 봐야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그 또래의 아이들에게 생길 수 있는 실수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아는 찬희는 나이에 비해 똑똑하고 차분해서 어른스러운 아이였어요. 그런 아이라도 부모님이 갑자기 돌아가시고 외삼촌 집에서 얹혀살게 되니 견디기 힘들겠지 싶었습니다. 게다가 그 아이는 어릴 때부터 영력이 강했어요. 부모님들도 그것을 걱정해서 영력을 억누르는 의식을 여러 번 부탁했었습니다. 그런 능력이라는 건, 순탄한 삶을 사는 데에 방해만 될 뿐이니까요.”
어딘지 자조하는 듯이 말하는 그녀를 보고 수호도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더 어긋나기 전에 찾아야겠다 생각하고 수소문을 했는데 이상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뱀을 낳은 여자아이의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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