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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 만물수리점-214화 (214/218)

서천 만물수리점 - 게임의 법칙(6)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여자의 등 뒤에서 찬영의 얼굴이 더욱 하얗게 변하는 것이 보였다. 어린애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게 해도 되는 걸까. 수호는 걱정되었지만 여자는 계속해서 말했다.

“병원과 복지시설을 돌아다니며 확인했습니다. 그러다 분만실에서 그 광경을 목격했다는 간호사를 만났지요. 그때의 일이 큰 충격이었는지 일도 그만둔 상태더군요. 간호사의 말에 의하면 아이를 낳았는데 머리는 사람의 모양이었지만 목 아래부터는 뱀 같았다고 했어요. 태어나자마자 꿈틀거리며 바닥을 기어 다녀서 의사와 간호사들이 놀란 나머지 분만실 밖으로 도망쳐 버렸다고 합니다.”

사람이 뱀을 낳다니 분명 끔찍한 광경이었을 것이다.

“다른 직원들과 함께 돌아왔을 때는 산모도 아기도 사라져 버린 후였대요. 간호사에게 찬희의 사진을 보여주니 알아보더군요. 하긴, 그런 일을 어떻게 잊겠어요.”

“수금아인가.”

백은호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수호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수금아란 인간의 몸에서 태어나는 요괴로, 뱀뿐 아니라 두꺼비나 개구리와 닮은 경우도 있었다. 보통 아주 어린 여자아이의 몸에서 태어났다.

어떤 이유로 생기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산모에게 몹쓸 병이 있는 경우나 환경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경우라고 알려졌다. 그러나 애초에 어린 여자가 임신을 했다는 것 자체가 정상적인 환경은 아닌 셈이다.

“그 후로 행방이 묘연해서 저도 찾는 것을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의 1년 반이 지난 후에 찬희를 봤어요. 찬영이 외삼촌의 부고를 받고 장례식장에 갔을 때였어요. 미이라처럼 비쩍 마른 몰골이어서 처음에는 못 알아봤을 정도였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나오는 우리를 멀찍이서 보고 있었습니다. 눈이 마주치니까 오싹한 미소를 띠고는 사라져버리더군요. 사실 그때만 해도 잘못 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여자는 말하다 말고 한 번 더 소년의 눈치를 살폈다. 소년의 얼굴은 이제 거의 노래져서 토할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제가 없는 사이에 찬영이 앞에 몇 번이나 나타났던 것 같습니다. 제게 말을 안 해서 모르고 있었어요. 그러다 마지막으로 본 날 무서운 말을 했대요.”

- 너는 지금 열네 살이지? 있잖아, 열다섯 살이 되면 끔찍한 일이 생길 거야. 그러니까 그 전에 죽어버리렴.

찬영이 들었다는 말을 전하고 여자는 어두운 얼굴을 조금 숙였다.

“그것이 작년 12월 말쯤의 일입니다. 그리고 1월에 갑자기 괴담과 함께 사람들이 죽는 일이 생긴 것, 아마 세 분 모두 알고 계실 겁니다. 저는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찬희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찬희였지만 지금은 찬희도 사람도 아닌…”

요괴라고까지는 못하고 여자가 말끝을 흐렸다.

‘본래는 사람이었다는 말이야?’

사무실에서 마주쳤던, 도저히 사람이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그 모습을 떠올리고 수호는 마른 입술을 축였다.

“여러분이 보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자가 말한 다음 소년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겁에 질린 얼굴의 소년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잠깐이면 돼. 이분들에게 보여드리자.”

소년은 울 것 같은 표정이었지만 여자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본 다음 고개를 푹 숙이고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안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맨몸이었다. 다소 마른 듯한 소년의 상체가 드러나자 백은호만 태연했을 뿐, 해명은 표정이 굳고 수호는 눈을 크게 떴다.

소년의 몸에는 어떻게 봐도 비늘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돋아나 있었다. 등과 팔은 대부분 덮여서 푸르스름하니 반질거렸다. 가슴으로부터 배까지는 사람의 피부라기보다 광택이 돌아서, 마치 얇고 몸에 꼭 맞는 비단옷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

여자는 소년에게 옷을 입도록 한 다음 방으로 가도 좋다고 말했다. 소년은 단추도 제대로 채우지 않고 후다닥 자리를 떠났다. 그 뒷모습을 보던 여자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찬희와 만나는 동안 그 아이가 준 것을 몇 번 먹었던 것 같습니다. 뭘 먹었는지는 본인도 모르고 있지만…제 생각에는 고독(蠱毒)의 일종이 아닌가 싶어요.”

여자의 말에 수호는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 같아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점입가경이었다. 수금아를 낳고, 그 자신이 요괴에 가깝게 변해버린 것에다, 사람들을 해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친동생에게까지 뭔지 모를 짓을 하고 있었다.

더욱이 고독술은 염매와 함께 차마 잔인하여 아무나 행하지 못하는 무서운 술법이었다.

염매가 어린 아이의 고통을 이용한 것이라면 고독은 동물의 고통과 원한을 이용한다. 주로 뱀이나 독충을 쓰는데, 수십에서 수백 마리의 독을 가진 동물들을 항아리 안에 가득 담아놓고, 굶주리도록 방치하는 것이다.

마치 아귀의 각축장 같은 항아리 안에서 동물들은 서로를 잡아먹으며 점점 그 수가 줄어들고 마침내 마지막 한 마리가 남으면 그것을 이용해 저주하는 것이 고독술이었다.

만드는 과정에서 수많은 동물들이 괴로이 죽어가는 것도 무서운 일이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고독은 죽어간 동물들의 원한과 고통만큼 강력한 저주의 힘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것을 사용하여 하는 일이란 어떻게 생각해도 좋은 쪽일 수가 없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찬희는 방술(方術)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 같아요. 찬영이의 말로는 처음에는 책을 읽거나 온라인 동호회에 가입하거나 하는 정도였는데 갈수록 심취해서, 가출하기 반년 전부터는 학교도 거의 나가지 않고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고 하네요.”

‘이상한 사람들’이란 말을 하는 여자의 얼굴에 난처한 듯한 표정이 스쳤다. 찬영이 말하는 이상한 사람들이란 바로 이 자리에 있는 네 명과 같은 사람들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찬희의 재능은 그야말로 타고난 것이니까요. 영력을 담는 그릇에 있어서는 제가 봐도 부러울 정도이고 이해력도 감도 뛰어나서 아마 그것을 알아보고 가르치고 싶어한 사람들이 분명 많았을 거예요. 부모님과 친분이 있는 사이가 아니었다면 저 역시…”

여자는 말하다 말고 괴로운 듯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찬희가 이런 짓까지 하면서 정말로 원하는 것이 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이고 있는지 저로서는 짐작할 수가 없어요. 다만 그 아이가 하려는 일이 이제 머지않았다는 것만 느끼고 있을 뿐입니다. 그때가 되면 분명히…찬영이를 데리러 올 거예요. 찬영이의 몸이 저렇게 변하고 있는 것은 그 순간을 위해서일 테니까요.”

말하고 나서 여자는 애원이 깃든 얼굴로 셋을 바라보았다.

“부탁드립니다. 어떻게든 찬희를 막아주세요. 지금 일어나고 있는 무서운 일들을 멈춰야만 해요.”

그녀를 막아야하는 것은 자명했다. 그러나 어쩐지 여자가 부탁하고 있는 대상일 해명이나 백은호에게 시원스러운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수호가 그들을 쳐다보자 해명은 어딘지 복잡한 표정으로 시선을 피하고 백은호는 묘하게 즐거운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냥 둘 수는 없겠지.”

결국 해명이 어중간한 대답을 했으나 그 정도로도 만족하는지 여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늦은 시각이라 그들은 여자의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기로 했다. 백은호는 근처의 호텔이라도 잡고 싶은 눈치였지만 해명이 이 집을 마음에 들어 하자 싫은 표정을 하면서도 여자가 내준 방으로 순순히 들어갔다.

아마도 안방으로 쓰였을 것 같은 넓은 방이었다. 거기에 3인분의 이부자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맨바닥에 두꺼운 요와 이불을 깐 잠자리였다. 거기에 모여 앉아서 세 명은 나직한 목소리로 여자가 있는 자리에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분의 연락은 언제 받으신 거예요?”

무엇보다 궁금했던 수호가 먼저 묻자 해명이 어제의 일이라고 대답했다.

“자세한 설명은 못 들어서 설마 이런 일인 줄은 몰랐지만.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 걸.”

해명의 말에 수호도 동감이었다. 벨 귀신의 일이 이런 식으로 풀릴 줄 알았다면 굳이 위험을 살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재미있군요. 그것이 고작 스무 살도 안 된 인간의 여자아이라니. 과연 저도 흥미가 돋습니다만….”

“그런 소리 하지 마.”

해명이 약간 기분 상한 얼굴로 백은호를 나무랐다. 그러고 나서 그가 수호를 돌아보았다.

“우리 중에 그 아이를 만나본 사람은 너뿐이야. 어땠어?”

그의 말에 사무실에서 만났던 찬희의 모습이 떠올라 수호는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모았다.

“전 요괴라고 생각했어요. 겉모습부터가 도저히 인간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미라처럼 마른 몸에 뱀의 눈을 하고…완력은 확실히 인간을 넘어섰고요. 제가 갔을 때는 죽인 사람들을 먹고 있었어요.”

그곳의 광경을 기억하는지 해명이 얼굴을 찌푸렸다.

“우리가 갔을 때 요기만 남아있어서 나도 사람일 거라고는 생각 못했지만 말이야. 그렇게까지 변해버렸다면 돌이킬 수 없는 걸까? 백은호.”

“글쎄요. 인간이 요괴가 되기도 하고 요괴가 인간이 되기도 하니 할 수 없는가를 물으신다면 아니라고 하겠습니다만, 인간이 요괴가 되기 위해서는 지옥과 같은 한이 필요하고 요괴가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지옥을 거니는 고통이 필요하니 어찌 그런 것을 요구하겠습니까.”

냉정하다고 해야 할지 요괴답다고 해야 할지 모를 대답을 하고서 백은호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해명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백은호와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요괴는 목적이 분명하다. 인간이 요괴로 변했을 때는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요괴가 되어서까지 하려고 하는 일이 뭔지 모르겠는걸. 동생을 그렇게 만든 이유도.”

해명이 중얼거리듯 말하자 백은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을 때의 표정이었다.

“최종적인 목적은 모르겠으나, 계속해서 사람들을 죽이는 이유는 알 것 같습니다만.”

그의 말에 해명이 궁금한 표정으로 백은호를 바라보았다. “뭔데? 뭔데?”라고 쓰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수호는 쓴웃음이 나려는 것을 참았다.

‘뭘 저렇게까지 열심히 궁금해 하는 거야.’

그러나 저런 표정을 백은호는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얕보는 듯한 눈길로 해명을 내려다보며 여우 요괴가 말했다.

“일종의 향상심(向上心)이라고 할까요.”

“향상심?”

“인간이 된 여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인간이 된 순간 영혼을 얻고, 그로써 윤회를 통한 영생을 누린다는 목적을 확실히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목적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요괴일 때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고, 보다 인간에 가까운 방향으로 계속해서 자신을 바꿉니다. 더욱 완벽하게 인간이 되고 싶은 거지요. 본래부터 인간이었다면 가질 필요가 없는 마음가짐입니다.”

본래부터 인간이었던 수호에게는 이해 될듯 하면서도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요괴가 된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인간이었던 기억이 남아있는 이상, 더욱 완벽하게 요괴가 되려고 하는 겁니다. 단순히 사람을 죽인다는, 인간으로서의 금기를 어기는 것만이 목적이 아닙니다. 사람들로부터 공포를 일으키고, 자신이 그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원한과 공포가 그녀를 더욱 강력한 요괴로 만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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