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만물수리점 - 요괴백서(1)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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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세 명의 소년들은 길 건너편의 백색 건물을 보고 있었다. 건물의 모습은 주변의 다른 곳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3층의 상가건물이었다. 하지만 저 흔한 모습의 건물 안에는 특별한 것이 있었다.
“태균아, 저기 맞아?”
“요게 설명하고 같기는 한데 별로…”
두 소년의 의심 섞인 질문에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여기. 위치도 그렇고 간판도 맞잖아.”
“그렇긴 한데 진짜 저런 데서 도깨비가 살아?”
“흉가처럼 보이지도 않고.”
“그러니까 확인해 보자는 거잖아.”
태균이 말하고서 먼저 길을 가로질렀다. 늦은 시각이라 지나다니는 사람은 물론 차도 거의 없었다. 띄엄띄엄 설치된 가로등도 그들이 가려는 곳과 떨어져 있어 얼핏 거기는 다른 건물들보다 어둡게 보이기도 했다.
“지금 몇 시야?”
“11시 54분.”
“도깨비 나오는 시각은 12시니까 6분만 기다리고.”
소년들이 건물의 출입문 앞에 서서 속삭였다.
그들은 건물 앞 가로수 옆에 옹기종기 모여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시간이 가기를 기다렸다. 그동안 차가 한 대 도로를 쌩 지나가고 아직도 영업중인 근처 주점에서 남자 둘이 나와 담배를 피우다 들어갔다.
“12시다.”
핸드폰 액정에서 숫자가 바뀌기 무섭게 태균이 말했다. 다른 두 명도 함께 보고 있었으니 이미 아는 사실이지만 그 말과 함께 세 사람은 일제히 도깨비가 나온다는 건물의 출입문을 바라보았다.
별로 낡거나 음산하지도 않고, 심지어 장소는 아파트 단지 근처의 상가였다. 셋 중 한 명에게는 자주 지나다니던 길이기도 했다. 그런 곳이라도 한밤중에 불 꺼진 모습을 보자 어쩐지 꺼림칙해서 막상 시간이 되었지만 누구도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뭐야, 쫄았냐?”
셋 중 키는 가장 작지만 다부진 얼굴의 중호가 먼저 성큼 문으로 다가갔다.
“잠겨 있으면 어떡해?”
태균과 함께 중호의 뒤를 따라가며 기범이 물었다.
그러나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손잡이를 돌리며 밀자 조금의 저항도 없이 문이 열렸다. 캄캄한 내부가 드러나자 세 명의 소년은 한 번 더 머뭇거렸다.
“에이, 여기까지 왔는데.”
태균이 중얼거리듯 말하며 문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시커멓게 어두웠다. 가로등 빛도 문 앞에 조금 깔릴 뿐이다. 태균이 핸드폰 불빛으로 안을 비추자 다른 두 명도 재빨리 핸드폰을 꺼냈다.
“와…완전 난리잖아.”
핸드폰 불빛에 비춰진 광경을 보고 중호가 중얼거렸다.
건물 안은 엉망이었다. 찌그러진 철골과 깨진 물건들이 너저분하게 깔렸고 벽도 바닥도 흉하게 부서진 곳이 많았다. 멀쩡한 겉모습과 달리 안은 누군가 살만한 환경이 아니었다.
“진짜 폐가 같은데.”
“도깨비는 어디 있는 거야?”
“여기는 그냥 텅 빈 것 같아.”
소년들이 속삭였다.
“잠깐, 무슨 소리 안 들려?”
기범의 말에 그들은 입을 다물었다. 이리저리 비추던 핸드폰도 멈춰놓고 가만히 귀를 기울이자 과연 소리가 들려왔다. 2층이었다.
“도깨비들이 놀고 있을지도 몰라.”
“가보자.”
소년들은 살금살금 계단을 올랐다. 가까이 갈수록 소리는 점점 커졌다. 음악소리 같기도 하고 말소리 같기도 했다. 1층에 비해 온전한 2층에는 문이 하나 있었고, 소리가 나는 곳은 그 너머였다.
소년들은 문에 귀를 대고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들려? 무슨 소리 같아?”
“꼭 티브이…”
그 순간 문이 열렸다.
소년들은 문에 밀려 비틀거리다 한 덩어리가 되어 넘어졌다. 문 안쪽에서 형광등의 밝은 빛이 그들에게 쏟아졌다.
“뭐야? 너희들.”
어이없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에 수리중이라고 써 놓은 거 안 봤냐? 수리중인 수리점에 들어와서 어쩌겠다는 거야. 그것도 이런 한밤중에. 수리점 사장도 밤에는 자야 하거든요?”
주저앉아 있는 세 명의 소년들에게 해명이 불평했다. 소년들이 뭐라고 대답하기 전에 방안에서 다른 사람이 대꾸했다.
“문에 그런 거 안 붙어 있던데요.”
“뭐? 내가 그저께 아침에 붙여놨는데? A4용지에 커다랗게 써서.”
“그거 사흘 전이잖아요. 날아갔나 보죠. 아무튼 내가 왔을 때는 없었어요. 그렇게 대충 하지 말고 제대로 푯말이라도 걸어 놔요. 손님들 왔다가 놀라서 도망간다고요.”
“얘들을 보니까 딱히 그런 것 같진 않은데…”
해명은 아직 한데 뭉쳐서 주저앉아 있는 소년들을 내려다보았다. 대화의 주제가 자신들에게 돌아오자 소년들이 움찔거리며 벽 쪽으로 붙었다.
“우, 우리는 여기가 빈 집이라고…”
중호가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가 해명이 자신에게 한 발 다가오자 겁먹은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도깨비 사는 집이라고 해서 정말인지 보러 온 거예요! 요게에 올라온 글 중에 추천도 많이 받고 진짜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아서요!”
태규가 에라 모르겠다는 듯이 큰 소리로 말했다. 말하고 나서 힐끗 해명을 쳐다보았다. 수리점 사장이라는 젊은 남자는 어딘지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가 소년들에게 물었다.
“요게가 뭐야?”
소년들은 머뭇거리면서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요게는 ‘조요경’이란 오컬트 카페의 ‘요괴백서 게시판’을 줄인 말이었다. 거기에는 요괴에 대한 정보가 올라오는데 글을 올리는 사람이 직접 보거나 경험한 이야기만을 써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거기에 수리점에 대한 내용이 있다는 말이었다.
“근처라서 진짜인지 확인해 보려고 온 거예요. 1층 보니까 진짜 빈집 같아서…”
그 말에 방안에서 키득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빨리 수리하랬죠. 혼자 하겠다고 용쓰지 말고 기술자를 부르라니까요.”
“남아도는 게 시간인데 뭐 하러 사람을 쓰냐?”
해명이 쏘아붙이고 나서 소년들을 노려보았다.
“빈집이고 뭐고 말이야, 남의 집에 마음대로 들어가는 건 불법이라는 거 모르냐? 이대로 경찰서 가서 부모님 면담을 해볼까? 응?”
소년들이 기가 팍 죽어서 잘못했다고 빌었다. 해명은 신난 얼굴로 어른의 잔소리를 좀 늘어놓은 다음 소년들을 내보냈다.
“하여간 요즘 애들은 겁이 없어.”
아이들이 수리점 밖으로 나간 것을 확인한 해명이 방에 돌아오며 투덜거렸다. 그러고 나서 방안에 있는 수호를 보더니 “하긴 예전 애들도 비슷했지.”라고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출입문에 뭐라도 달아놓으라고요. 잠기지 않으니까 아무나 막 들어오잖아요.”
수호의 말에 해명이 인상을 썼다.
“시끄러워. 가뜩이나 손님도 없는 수리점에 문까지 잠그면 올 사람도 안 와. 그건 그렇고 남의 수리점을 도깨비 집으로 소개하는 녀석은 또 누구야.”
해명은 그대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조요경이란 곳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수호가 피식 웃고 집에 가기 위해 일어섰다.
“저 갈게요. 그리고 가게 수리하는 일까지 시키려면 다음부터는 따로 수당을 주세요. 오늘처럼 치맥으로 때우지 말고.”
“요즘 젊은이들은 애사심이 없어.”
“아저씨도 겉은 젊은이거든요.”
대꾸하고 수호는 그곳을 나섰다. 검색혼을 불태우던 해명이 잠시 후 “또 마니마니란 녀석이잖아! 얜 대체 뭐냐!”고 소리쳤지만 그때쯤 수호는 수리점에서 꽤 멀어진 후였다.
그러나 그런 일이 생겨도 수리점에 도어록 같은 것이 달리는 일은 없었다.
찬희와의 싸움 때문에 부서진 수리점은 해명의 손에 천천히 복구되었다. 가끔 수호가 찾아와서 잔소리를 했지만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아니, 수호의 눈에는 오히려 수리할 곳이 점점 줄어드는 걸 아까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전에 해본 적 없는 일을 배워가며 서툴지만 하나씩 해내는 데서 오는 만족감인지, 아니면 뭔가 집중할 것을 필요로 해서인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결국 해명은 3주의 시간을 들여 수리점을 말끔하게 고쳤다. 물론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전문가의 솜씨가 드러나는 엉성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스스로 해낸 것이 기뻤는지 해명은 자축이라며 수호를 불러놓고 옥상에서 삼겹살을 구웠다.
그들은 저녁 늦게 시작해 거의 자정이 될 때까지 삼겹살 파티를 즐겼다. 누군가 그 광경을 봤다면 남자 두 명뿐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사실은 더 많았다. 창고의 도깨비들도 함께 있었던 것이다.
수호의 눈에는 그들이 보이지 않았어도 가끔 술잔이 혼자 떠다닌다든가 고기를 굽는 숯에서 불길이 훅 일어난다든가 시야 가장자리에서 뭔가 어릿거리는 일이 일어났다. 누군가 어깨나 팔을 슬쩍 건드리기도 했다. 그러면 해명은 재밌다는 듯이 낄낄거렸는데 그럴 때마다 수호는 주머니 속의 부적을 쓰고 싶어서 손이 근질거렸다.
자정쯤 되자 도깨비들은 한창 흥이 올라서 옥상 한가운데에 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해명은 기분 좋을 정도로 취해서 그들과 함께 피리를 불거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호도 조금씩은 그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마치 먼 곳에서 들리는 것처럼 아련했지만 웃음소리와 노랫소리, 흥겨운 가락의 연주가 텅 빈 옥상 위를 떠도는 것은 기묘한 느낌이었다.
“어라, 저 놈들…”
술 때문에 더워졌는지 옥상 가장자리로 가서 바람을 쐬던 해명이 문득 아래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수호가 슬쩍 보니 남학생 세 명이 길가에 서 있었다. 어둡고 멀어서 수호의 눈에는 얼굴이 안 보였지만 해명은 알아본 것 같았다.
“그 녀석들이잖아. 불법침입자들.”
“도깨비 보러 왔다던 애들요?”
“그래, 걔들. 또 뭐 하러 온 거야? 다시 몰래 들어오면 이번에는 진짜 도깨비들을 보여줘 버릴까.”
그러나 해명의 생각과 달리 소년들은 수리점으로 오지 않았다. 천변 쪽을 내려다보며 천천히 걷고 있었다. 해명은 그래도 경계를 풀지 않고 뚫어지게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수호는 금세 흥미를 잃었다. 시간도 꽤 늦어서 돌아가야 했던 것이다.
해명에게 가겠다고 말하자 그가 건성으로 대답하며 손을 흔들었다. 시선은 쭉 아이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수호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도깨비들에게도 인사를 건네고 수리점을 나섰다. 그가 막 출입문에서 나왔을 때 아이들은 학교 앞 길까지 가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천변 산책로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갔다.
“여기 정말 맞아? 저번에 수리점도 가짜였잖아.”
“진짜라니까. 여기 나무 중 하나에 귀신이 붙어있어. 본 사람도 있대.”
“그 사람 입원했다고 소문났던데, 그냥 허풍이겠지?”
소년들의 두런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 요게인가 하는 곳에서 뭔가 읽고 찾아온 모양이었다. 그냥 가려던 수호가 멈칫했다.
소년들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수리점에 도깨비가 사는 것은 사실이다. 이번에도 제대로 된 정보라면 저 녀석들은 정말로 요괴를 만나게 되는 건 아닐까. 뭐, 나무에 붙은 귀신이라는 건 기껏해야 목신이겠지만 목신이라도 화를 내면 보통 사람에게는 당할 수 없는 상대다.
‘아니, 그냥 혼 좀 나라고 내버려 둘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수호는 도로를 가로질러 천변이 내려다보이는 맞은편 길로 간 다음 거기에서 소년들의 모습을 뒤쫓았다. 세 명은 산책로를 따라가며 그 주변에 심어진 나무들을 핸드폰과 번갈아보고 있었다. 누군가 귀신이 붙었다는 나무의 사진을 게시판에 올려놓은 모양이었다.
“저거다. 맞지?”
“어디 봐. 어…맞는 것 같은데.”
“맞아. 맞아. 저 나무야. 생각보다 작네.”
이윽고 소년들이 나무 하나를 지목하더니 그 앞으로 달려갔다.
‘작잖아.’
수호는 저도 모르게 픽 웃었다. 그것은 수호 자신의 키에도 못 미치는 어린 버드나무였다. 저렇게 어린 나무에 목신이 깃들 리가 없다.
“어떻게 하면 나와?”
“그냥 나무를 귀찮게 하면 된대. 때려볼까?”
“야, 가지를 하나 부러뜨려 봐.”
소년들의 상의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코웃음을 치며 수호는 그 자리를 떠나 집으로 향했다. 막 걸음을 옮긴 그의 시야에 하늘을 휙 가로지르는 커다란 것이 얼핏 보였다. 분명 수리점 쪽이었다. 그곳 옥상에서 뭔가…
생각과 함께 그 커다란 것의 궤적을 쫓아 고개를 돌린 수호는 허공에서 떨어지고 있는 해명의 모습을 봤다. 수리점 옥상에서 곧장 천변의 아이들 위로, 해명이 뛰어내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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