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만물수리점 - 요괴백서(2)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가장 먼저 목소리를 들었다고, 수호는 생각했다.
숨과 신음이 섞여 날카롭게 새어나오는 듯한 소리, 무거운 것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 온몸의 감각으로 느낀 요기의 파문, 그것들이 찰나의 시간에 차례로 이어졌다. 거의 동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소름이 오싹 돋을 만큼 날카로운 요기가 피부를 쓸고 지나갔지만 수호는 고개를 돌리지도 눈을 깜박이지도 않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해명은 나뭇가지를 꺾으려고 다가간 소년의 바로 앞에, 아슬아슬한 시간차로 착지했다. 아슬아슬하다고 한 것은 소년이 나뭇가지를 꺾기 전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 반대였다. ‘나뭇가지가 소년을 꿰뚫기 전’이었다.
식물인 버드나무가 잠시 동물이 된 것처럼, 낭창하게 늘어져 있던 가지를 쭉 뻗어 찔렀던 것이다.
그러나 가지는 소년 대신 그 사이에 끼어든 해명의 가슴을 찔렀다. 상대가 해명이니까 크게 다칠 정도는 아니었지만 찔린 곳에서 조금 어두운 얼룩이 번졌다. 그러고 나서 묘한 일이 일어났다. 가지 끝이 닿은 곳에서부터 뭔가 돋아나고 있었다.
‘나뭇잎…?’
가로등 불빛에 보이는 그것은 어떻게 생각해도 나뭇잎이었다. 해명의 가슴에서 나뭇잎이 돋아나고 있는 것이다.
“위험하잖아, 인마. 애를 잡을 셈이냐.”
해명이 가슴을 찌르고 있던 나뭇가지를 슬쩍 밀치며 말했다. 누구에게 한 말인가 궁금해 하는 순간에 버드나무에서 날개가 펼쳐졌다. 수호는 눈을 깜박이며 상체를 내밀었다. 잘못 본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확실히 날개였다. 그리고 마치 그 날개에서 자라나듯이 사람을 닮은 그림자가 생겨났다.
나비 날개가 달린 사람.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해명을 보고 놀랐던 소년들은 날개가 달린 사람의 등장으로 패닉에 빠졌다. 아니,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어서 더 혼란스러웠는지도 모른다.
단순히 날개가 달려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람을 닮았으되 사람과는 다른 기운이 뭉클뭉클 흘러나왔다. 소년들은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 기운이 요기라는 것을 모를지라도 인간으로부터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본능이 가르쳐주고 있었다.
[네 번째다.]
나비 날개의 요괴가 말했다. 바람소리 같은 목소리였다. 인간의 성대에서 나왔다고 생각하기에는 묘했다.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선풍기의 팬 앞에서 말할 때처럼 목소리가 갈라져 겹쳤다.
“뭐가 네 번째라는 거야.”
[일부러 찾아와 나무를 괴롭히는 것, 이로써 네 번째다. 더 참아주지 않겠다.]
그 말에 해명은 얼굴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기는 것 같았지만 나비 날개의 요괴가 소년들 쪽으로 움직이자 그 역시 걸음을 옮겨 가로막았다.
[비켜라, 해명.]
나비 날개의 요괴가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저 요괴, 아저씨를 알아.’
수호는 망설이다 꺼내들고 있던 부적을 주머니에 넣었다. 엄청난 요기에 놀라서 자기도 모르게 부적을 쥐었던 참이지만 해명도 있고, 무엇보다 둘은 아는 사이 같았다.
“저 녀석들은 내가 알아듣도록 이야기할게. 나무도 무사하니까 화 풀어. 지나치게 화내는 건 나비 너한테도 안 좋고.”
해명이 말했지만 요괴의 위협적인 기운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거부하는 말이 나올 것도 같았으나, 해명이 “아아, 피나잖아. 윽, 쓰라려. 이 와중에 나뭇잎을 만들어내는 건 또 뭐냐. 죽이려고 들든지 먹든지 하나만 하란 말이다.”라며 가슴의 상처를 부여잡자 커다란 날개를 한차례 파드득 흔든 다음 휙 돌아섰다.
[저것들 데리고 가버려.]
그 말에 해명이 재빨리 소년들을 몰고 그 자리를 떠났다. 해명과 소년들이 멀찍이 도망간 다음에도 요괴는 잠시 나무 앞에 서 있었다.
수호는 움직이지 못하고 요괴를 내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어쩐지 떠날 타이밍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러나 잠시 후, 요괴가 고개를 돌려 수호가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가로등 불빛은 요괴의 뒤쪽에 있었으나, 그 얼굴은 역광 때문에 어두워지기커녕 도자기처럼 빛이 투과하고 있었다.
요괴의 얼굴을 본 수호가 움찔 떨었다.
그 얼굴은 조금의 다름도 없이, 해명의 모습 그대로였다.
“어이~수호, 너 아직도 안 가고 있었냐? 늦어서 혼날 것 같으면 자고 가든지.”
꼼짝 못하고 서 있는 수호에게 진짜 해명의 태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자 도로 위로 올라온 해명이 손을 흔들었다. 그의 앞에는 세 명의 소년들이 겁먹은 얼굴로 뭉쳐있었다. 해명은 소년들을 병아리 몰듯 앞장 세워 수리점으로 데려가는 중이었다.
수호가 요괴가 있던 쪽을 힐끗 내려다보았으나 그곳에는 어린 버드나무뿐이었다. 요괴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정말 뭐람…”
뭐가 뭔지 모르는 채로 수호가 중얼거렸다.
결국 그는 수리점으로 돌아갔다. 어쨌든 방금 본 것에 대해 해명에게 제대로 설명을 듣지 않고서는 돌아갈 마음이 들지 않았다.
수호가 돌아갔을 때 해명은 작업장에서 한창 소년들을 취조하는 중이었다. 물론 해명식의 취조라는 건 음료수와 간식 따위를 내놓고 “괜찮아. 먹어. 먹어.”라며 실컷 먹인 다음 궁금한 것을 하나씩 묻는 거였다. 도깨비한테나 통할 것 같은 방법을 종족과 연령구분 없이 아무한테나 마구 쓰는 해명을 보고 수호는 한숨지었다.
소년들은 해명이 내놓은 것을 시늉으로 하나씩 집어 들었을 뿐 제대로 못 먹고 있었다. 그런 것을 봤으니 당연하겠지만 그보다 다 망가진 작업장의 깨진 작업 선반 옆에 아이들을 데려다 놓고 있으니 먹는 게 문제가 아니라 해명까지 요괴처럼 보일 지경이다.
보다 못한 수호가 참견했다.
“너희들, 이번에도 요게에 올라온 글을 보고 찾아온 거냐?”
질문할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다 선수를 빼앗긴 해명이 째려보았지만 수호는 무시했다.
질문을 받은 소년들은 누구랄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명이 짜증난 얼굴로 물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그런 글을 올렸어?”
“마니마니요.”
아이들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해명이 “또 그녀석이야.”라고 중얼거리는 동안 수호는 그 아이디가 왠지 낯익다고 생각했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별명이었다.
아이들 말에 의하면 마니마니는 조요경에서 꽤 유명한 유저였다. 주로 요게에서 활동하는데 그의 글은 대부분 반응이 좋다고 한다.
“그거 읽고 찾아가서 요괴를 봤다는 사람들 많거든요.”
“전국에 있는 요괴들 위치를 다 안대요.”
“위험한 요괴는 퇴치하기도 한대요.”
‘설마 도사인가? 아냐.’
수호는 고개를 저었다. 도사라면 인터넷 사이트에 요괴에 대한 정보 같은 걸 올려놓았을 리가 없다.
“그 글을 읽고 요괴를 찾아갔다가 죽거나 죽을 뻔했거나 다쳤다는 글은 없냐? 아, 죽으면 글 못 쓰지?”
해명이 심술궂게 묻자 소년들은 풀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가끔 있어요. 그런데 요괴 위치랑 같이 요괴 퇴치하는 법도 가르쳐주거든요. 요괴가 나오면 퇴치해 버리면 되니까…”
“뭐어?”
나직한 목소리에, 대답하던 소년이 저도 모르게 말을 멈추었다. 목소리에 이끌려 고개를 돌리자 전에 없이 정색한 해명의 얼굴이 보였다.
만날 때마다 긴장감 없이 느슨한 얼굴이니까 거의 본 적은 없지만, 정색을 하면 해명은 어딘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화를 내는 것은 아니다. 아니, 실은 화내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것이 표정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얼굴은 평소보다 여유 있고 부드러웠다. 그러나 한편으로 차가운, 기묘한 느낌이었다.
그런 해명을 소년들도 느낀 것이 틀림없다. 아이들의 표정이 일제히 굳었다.
“퇴치한다는 건, 죽인다는 거냐?”
다정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은 목소리였으나 소년들은 오히려 오싹 떨었다. 한 명이 용기를 내서 웅얼거리듯 말했다.
“요, 요괴잖아요. 위험하니까…”
“남의 집에 멋대로 들어가서 귀찮게 굴면 누구나 위험해질걸.”
“요괴는 나쁜 거잖아요.”
“뭐가 나쁜데?”
“사, 사람을 해치고…”
“내 집의 도깨비나 천변의 버드나무가 누구를 해쳤어?”
“요게에서 읽었는데 한 명…”
소년이 대답하려다 다쳤다는 그 사람이 요괴를 만나려고 나무를 괴롭힌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다른 소년이 대신해서 말했다.
“구미호나 귀신 같은 거요. 사람을 잡아먹고, 위험하잖아요.”
“아아, 그래. 그러고 보니 살인자라든가 도둑이라든가 얼마든지 있는 걸 보면 사람도 위험한 것 같은데. 사람도 만나는대로 아무나 퇴치해 버리면 되는 거냐?”
더는 할 말이 없는지 소년이 입을 다물자 해명은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정색했던 얼굴은 풀려 있었다.
수호가 해명 대신 소년들에게 조금 겁을 준 다음 내보냈다. 이미 천변에서 나비 날개의 요괴를 만났을 때부터 꽤 겁먹고 있던 녀석들이어서 집에 갈 수 있게 된 것만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지 얌전히 떠났다.
“요괴와 인간이 서로를 인정하고 살던 때도 있었는데 말이야.”
해명이 문득 중얼거렸다.
“그런 수백 년 전을 기억하는 건 요괴뿐이겠죠.”
수호가 대꾸했다. 해명이 볼을 찡그리며 웃었다.
“그보다 아까 그 나비 요괴…얼굴을 잠깐 봤지만 아저씨를 빼닮았더라고요. 아는 사이 같던데 누구예요?”
“너도 한두 번은 봤을 걸? 10년쯤 전에.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어린 모습이었지만.”
해명의 대답에 수호는 곧바로 생각해냈다.
“그 어린 나비 요괴요? 여기 살던? 댕기머리에…그런데 요괴가 10년 만에 그렇게 커요? 그리고 10년 동안 어디 갔다가 돌아왔어요? 아니 그보다, 어째서 아저씨를 똑같이 닮은 거예요?”
“알 게 뭐야. 날 닮아서 기분 나쁜 건 나도 마찬가지거든. 그리고 10년 동안 어디 간 적 없어. 내내 아까 그 나무에 붙어 있었다고. 그런 건 됐고, 지금 문제는 마니마니인가 하는 그 녀석이잖아. 그놈 때문에 나비도 네 번이나 귀찮은 일을 겪게 되었다고 하고.”
해명이 화제를 돌리고 싶어 하는 기색이어서 수호는 모르는 척 따라갔다.
“그러네요. 저도 귀에 익은 별명인데 기억이 안나요. 한번 알아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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