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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금법(禁法)이 있었다 (7/37)

무서운 금법(禁法)이 있었다

하나의 밀실(密室).

무린은 염류빈의 안내를 받아 밀실로 들어섰다.

실내에는 거대한 청동단로(靑銅緞爐)가 하나 우뚝 서 있었다.

삼 장 높이의 웅장한 청동단로였다.

단로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마니원구(摩尼圓球)가 들어 있었다.

마니원구는 촛불에 반사되어 투명하게 번쩍이고 있었다.

염류빈이 청동단로를 가리켰다.

"대존야께서는 저 단로 속의 마니원구 안으로 들어가셔야 합니다. 그리고 천녀의 전음(傳音)에 따라 한 가지 심공(心功)을 운행하시면 됩니다."

무린이 물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생기오?"

"대존야의 일신공력이 놀랄 만큼 증진될 것입니다."

"세상에 그런 기이한 단로가 있었던가?"

무린은 단로 앞으로 다가갔다.

염류빈이 황송한 듯 말했다.

"옷은 모두… 벗으셔야 합니다."

무린이 검미를 살짝 찌푸렸다.

"홀랑 벗으란 말이오?"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신녀가 나를 놀리려는 게 아니오?"

염류빈은 미소를 지었다.

"천녀가 어찌 대존야를 놀릴 수 있겠어요. 감히……."

"꼭 벗어야 된다면 벗는 수밖에 없지."

무린은 옷을 훌훌 벗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그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 되었다.

대리석 조각품처럼 아름답고 강건한 몸이었다.

대자연 속으로 힘차게 뛰어들려는 한 마리 옥기린(玉麒麟)이라고나 할까?

신(神)이 스스로 창조하고도 회심의 미소를 지을 만한 걸작(傑作)이었다.

염류빈은 감히 바로 보지 못하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무린은 단로 가운데 있는 마니원구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마니원구 안에 정좌를 했다.

"이러면 됐소?"

염류빈의 신색이 엄숙하게 변했다.

"지금부터 천녀가 구결(口訣)의 전음을 들려 드리겠으니 운공을 시작하십시오."

무린은 눈을 감았다.

"알겠소."

그의 귀에 염류빈의 전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매우 현묘하고 기이한 운공구결이었다.

무린은 구결에 따라 운공을 시작했다.

이때 염류빈이 청동단로에 불을 붙였다.

단로에서는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화르르르-!

맹렬한 불길이 마니원구를 완전히 에워쌌다.

무린은 벌써 운공삼매(運功三昧) 속에서 무아경(無我境)에 빠져들어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단로는 벌겋게 달아올랐다.

마니원구 속의 무린은 전신에서 비오듯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극렬한 열기 속에서도 미동도 없이 운공을 계속했다.

이제 단로는 퍼렇게 달아올랐다. 그것은 용광로보다 더 강한 열기를 품고 있었다.

인간의 몸으로 그러한 열기를 견딜 수 있을까?

무린의 나신은 불그레하게 변했다. 금방이라도 불꽃과 함께 활활 타오를 듯한 상태였다.

염류빈의 얼굴에 서서히 놀라는 빛이 나타났다.

'대존야의 자질은 예상을 훨씬 초월한다! 홍단파류진공대법(紅丹派流眞功大法)을 이미 칠 성 이상 운행했다!'

시간이 더 흐르자 무린의 몸이 파랗게 변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땀은 흐르지 않고 전신에서 은은한 청색 광채가 뻗쳐 올랐다.

염류빈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운공이 구 성까지 이르렀다. 부주님과 같은 경지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녀는 긴장하여 무린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만약 부주님의 경지를 능가한다면… 그 때는…….'

그녀의 표정은 이상하게 굳어졌다.

부주의 경지를 능가한다면 그 때는 어떻단 말인가?

이제 무린의 몸은 투명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전신에선 눈부신 옥광(玉光)이 뻗쳐 올랐다.

수정처럼 투명하게 빛나는 몸, 이게 무슨 현상인가?

염류빈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것은 십 성의 경지… 아니 그 이상이다!'

홀연 무린의 머리 위로 둥그런 칠색 채환(彩環)이 떠올랐다. 무지개처럼 아름답고 신비로운 채환이었다.

염류빈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것은 무극칠채환(無極七彩環)! 내공의 최극경(最極境)이다! 아아, 부주님을 훨씬 능가한다!'

그녀는 망연해졌다.

무극칠채환!

그것은 내공 운행의 최상승 단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일신공력이 무한한 극경(極境)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중원엔 이런 경지에 이른 고수가 출현한 적이 없다.

염류빈은 무린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 싸늘한 한기(寒氣)가 나타났다.

그런데 그 한기는 서서히 무서운 살기(殺氣)로 변해 가는 게 아닌가?

그녀의 눈동자는 무섭게 번쩍였다.

'부주님을 능가하는 기재는 살려 둘 수 없다! 그것이 궁륭마천부의 금법(禁法)이다!'

아아, 그랬던가?

궁륭마천부의 부주는 무림천자다. 그러므로 부주의 능력을 초월하는 인물은 부주의 후계자(後繼者) 외에는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대존야도 그 금법만은 어쩔 수가 없다. 천년패도천하를 추구하기 위한 무서운 금법이었다.

염류빈은 우수(右手)를 치켜들었다.

무린은 아직 운공이 끝나지 않고 있다. 염류빈이 손을 한 번 쓰면 무린은 간단히 목숨을 잃고 만다.

염류빈은 무린을 향해 서서히 손을 뻗쳤다.

생사관두(生死關頭)!

무린의 생명은 풍전등화처럼 위험한 상태였다.

한데 웬일일까?

염류빈은 선뜻 출수를 하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그녀의 뇌리를 스쳐 갔던 것이다.

'대존야는 나에게서 모성을 느꼈다고 했다…….'

염류빈은 갑자기 갈등을 느꼈다.

'아아…….'

그녀의 마음 속에는 어느 새 무린에 대한 애틋한 모성이 흐르고 있었으니, 이 세상에서 모성은 아무 조건도 없는 가장 위대한 힘이 아니던가?

모성과 본분과의 갈등.

결국 염류빈은 손을 거두며 입술을 지그시 ㄲ물었다.

'나는 도저히 대존야를 죽일 수 없다!'

그녀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나는 궁륭마천부의 금법을 위반하는 죄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녀의 뺨으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오오, 이렇게 하여 무린은 무림사상 미증유의 절대절인(絶對絶人)으로 탄생할 수가 있었다.

역시 모든 위대한 탄생에는 모성이 필요한가?

염류빈이 시선을 들었을 때, 무린은 어느 새 운공을 마치고 나와 옷을 입은 뒤 그녀의 눈앞에 우뚝 서 있었다.

염류빈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토했다.

"아……!"

무린의 전신에서 발산되는 불가사의한 무형의 서기 앞에서 그녀는 압도당하는 듯했다.

그의 눈동자는 감히 마주 보지 못할 만큼 형형했다.

염류빈의 목소리는 희미하게 떨려 나왔다.

"대존야… 홍단파류진공대법을 십이 성 완성하셨군요!"

무린이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가문의 열양공(熱陽功)인 홍단태극신공을 수련해 왔소. 홍단파류진공대법을 십이 성 완성한 것은 그 때문인 것 같소."

<홍단파류진공대법>

이것은 금석(金石)을 태울 수 있는 극강열기(極强熱氣) 속에서 연공되는 신비대법이다. 이 대법을 완성하면 일신공력이 단숨에 배승(倍勝)된다.

일반 무림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절대공력인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무림천자 탄생을 위한 궁륭추밀탑 최고의 비법이었다.

무린은 본래 초인적인 공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것이 홍단파류진공대법을 통해 수배로 증진된 것이다.

염류빈은 눈부신 듯 무린을 우러러보았다.

"이제 대존야의 일신공력을 능가할 사람은 이 세상에 거의 없을 것입니다. 대존야께서는 천하무적의 절대공력을 성취하셨습니다!"

무린은 염류빈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모든 게 신녀 덕분이오. 그런데 신녀의 얼굴에 있는 눈물자국은 무엇이오?"

염류빈은 급히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훔쳤다.

"대존야의 놀라운 성취에 기뻐서 그만……."

무린은 살며시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그녀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말했다.

"신녀… 나는 궁륭마천부에 한 가지 금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소."

무린은 모든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염류빈의 뺨으로 다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대존야…….'

*          *          *          *

중원의 기류는 점점 급박하게 회오리치고 있었다.

천축왕자 아극타, 그가 불러일으킨 난기류는 거대한 태풍의 핵(核)처럼 커져 가고 있었다.

사도와 마도의 공포스런 초극고수(超極高手)들이 일제히 출현하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천축왕자 아극타와 손을 잡고 밀비천전의 비밀을 추적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외에 또 하나의 비밀세력이 은밀히 움직이고 있었으니…….

백상회!

하얀 코끼리로 상징되는 정도무림의 비밀결사였다.

백상회는 중원의 정혼(正魂)을 되찾기 위해 궁륭마천부에 반기(反旗)를 든 것이다.

수십 년이나 은거하고 있던 전대기인(前代奇人)들이 백상회에 가입하여 속속 출현하고 있었다.

궁륭마천부의 이백 년 패도천하(覇道天下)에 최대의 위기가 닥쳤는가?

그러나 궁륭마천부는 아직 무거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마치 잠자는 사자처럼 조용한 상태였다.

그 때문에 긴장과 불안은 오히려 더욱 고조되어 갔다.

대체 얼마나 무서운 대풍운(大風雲)이 밀어닥칠 것인가?

이때 다시 한 신비로운 여인이 홀연히 중원에 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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