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우중멸폭뢰(宇中滅暴雷) (12/37)

우중멸폭뢰(宇中滅暴雷)

십이수련수의 미심에는 번쩍이는 은침(銀針)이 하나씩 꽂혀 있었다.

고려금의 암기수법은 진정 신묘했다.

중인은 대경했다.

칠해사고가 음산하게 소리쳤다.

"네 솜씨가 제법이구나. 그러나 그 정도로는 어림없다!"

그녀는 갈고리 같은 손을 번쩍 치켜들고 고려금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녀의 사악한 얼굴에서 무서운 살기가 뻗쳤다.

바로 이 순간 명주가 돌연 그녀에게 번개같이 덮쳐들었다.

"죽어라!"

그녀의 좌수(左手)가 칠해사고의 옆구리를 비수처럼 찔러갔다.

칠해사고는 흠칫했다.

"명주, 네년이 감히… 으윽!"

그녀의 입에서 고통스런 신음이 흘렀다. 명주의 빳빳하게 세워진 수도(手刀)가 칠해사고의 늑골을 부수며 내장으로 파고들었다. 독랄한 기습이었다.

칠해사고는 황급히 일 장을 후려쳤다.

콰르릉-!

굉렬한 진동음과 함께 처참한 비명이 터졌다.

"아악!"

명주의 가냘픈 신형은 허공으로 삼 장이나 날아갔다.

털썩-!

얼굴이 두부처럼 으깨진 그녀는 바닥에 나가떨어졌다. 즉사였다.

그러나 그녀의 손에는 칠해사고의 내장이 꽉 움켜져 있었다.

"크흐흐……."

짐승처럼 괴성을 토해 낸 칠해사고는 그 자리에 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아무리 무서운 고수라도 내장이 뽑혀지고서야 버틸 도리가 없다.

명주는 고려금을 위해 생명을 바쳐서 칠해사고를 처치한 것이다.

일순간에 명주가 칠해사고와 동귀어진을 하자, 고려금은 격동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아난타를 향해 날카롭게 소리쳤다.

"어서 상감잠룡신검을 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도 저 추한 노파처럼 죽을 것이다!"

그녀는 아난타에게로 성큼성큼 다가섰다. 그녀의 기세는 살벌했다.

아난타의 표정이 저절로 굳어졌다. 그러나 아난타는 이내 싸늘한 냉소를 지었다.

"네 생명을 내놓는다면 검을 주겠다!"

대노한 고려금은 지체없이 선공(先功)을 펼쳐 갔다.

"원원태극강(元元太極 )!"

찰나 아난타가 쌍장을 쭉 뻗었다.

"경동하지 마라!"

콰우우우웅-!

엄청난 굉음이 울렸다. 실내의 기류가 맹렬히 격탕하며 숨막히는 비명이 울렸다.

"허억!"

고려금은 극맹한 장강(掌 )에 튕겨져 허공으로 날아갔다. 고려금은 아난타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고려금은 바닥에 털썩 쓰러져 그대로 혼절하고 말았다.

아난타의 무공은 추측불가의 경지였다.

이때 한 금의인(錦衣人)이 황급히 화각으로 들어섰다. 그는 아난타에게 보고를 올렸다.

"총관(總管) 뇌승경(雷承卿)이 공주님께 보고드립니다! 지금 정체불명의 마차 한 대가 구류곡(九流谷)을 통과하여 급속히 접근하고 있습니다!"

아난타는 미간을 찌푸렸다.

"구류곡에는 많은 도검수(刀劍手)가 매복되어 있는데 마차 한 대를 제지하지 못한단 말이오?"

"마차에는 몇 명의 무서운 고수들이 타고 있어 무수한 희생자를 내었을 뿐 마차의 행방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

총관 뇌승경의 다음 보고는 더욱 중대했다.

"뿐만 아니라 북쪽에서는 일만 기(騎)에 이르는 궁륭마천부의 대군단(大軍團)이 나타났습니다!"

아난타의 아미가 비수처럼 치켜올라갔다.

'대존야다. 궁륭마천부의 대존야가 출현했다!'

그녀는 급히 물었다.

"장내에는 지금 몇 명의 고수가 있소?"

총관 뇌승경이 대답했다.

"약 일천의 고수가 있습니다!"

아난타는 추상처럼 싸늘하게 말했다.

"중요한 건 마차요. 일제히 마차를 추적하여 처치하도록 하시오!"

"명을 따르겠습니다!"

총관 뇌승경은 급히 밖으로 사라졌다.

아난타의 아름다운 얼굴에는 서릿발 같은 빙기(氷氣)가 깔렸다.

'궁륭마천부의 대존야가 의외로 빨리 출현했구나. 그러나 아무 소용도 없을 것이다!'

대폭풍은 벌써 밀려 오는가?

호수처럼 넓은 연못. 물가에는 수련이 무성하다.

홀연 물가에 두 개의 인영이 번쩍 나타났다.

무린과 궁천무, 그들 두 사람이었다.

그들은 벌써 무영수련장 깊숙이까지 침입해 온 것이다.

무린은 사위를 날카롭게 둘러보았다.

이때였다.

파르르-!

투명한 나비 한 마리가 연못 건너편에서 날아와 무린의 어깨에 살짝 내려앉았다.

수정비혼접, 바로 그 암기였다.

무린은 연못 건너편의 웅장한 화각을 가리켰다.

"적은 저곳에 있는 것 같소."

궁천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 봅시다!"

두 사람은 화각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런데 두 사람이 화각 앞에 우뚝 내려서는 순간, 전문(殿門)이 활짝 열리며 아난타가 성큼 모습을 나타냈다.

뒤에는 아라와 다섯 시녀가 따르고 있다. 아난타의 신색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다섯 시녀 역시 살기가 등등했다.

궁천무가 아난타의 앞을 막아서며 물었다.

"당신이 상감잠룡신검을 가지고 있소?"

잡담 제하고 본론을 꺼내는 건 그의 특질이었다.

아난타가 싸늘하게 되물었다.

"그래요. 당신도 상감잠룡신검을 얻으러 왔나요?"

"그렇소. 웬만하면 나에게 검을 넘겨 주시오."

아난타는 냉소를 지었다.

"웬만하면 당신의 생명을 본녀에게 넘겨 줄 생각은 없나요?"

"그건 좀 곤란하오."

"나도 검을 넘겨 주는 건 좀 곤란해요!"

"그건 정말 곤란한 일이구료."

두 사람의 대화는 곤란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이때 무린이 아난타를 향해 물었다.

"귀하는 중원인이 아닌 듯한데 천축에서 오셨소?"

아난타는 또렷하게 대답했다.

"그래요!"

"천축왕자 아극타와는 어떤 관계가 있소?"

"그는 본녀의 오라버님이에요!"

아난타는 바로 천축왕자 아극타의 누이동생이었다.

무린이 안광을 심유하게 번쩍이며 물었다.

"오라버님 아극타도 이곳에 있소?"

"오라버님은 사령파황루(邪靈破荒樓)에 계셔요!"

"사령파황루?"

"우리 천룡밀궁사(天龍密宮寺)의 중원분사(中原分寺)예요!"

"음."

무린은 침음성을 토했다.

사령파황루!

천축지존문인 천룡밀궁사 출신의 아극타가 건립한 중원분사.

사령파황루는 도대체 어떤 곳이며 어디에 있는 곳인가?

무린이 담담히 말했다.

"물론 귀하는 사령파황루의 위치를 말해 주지 않을 것 같구료."

아난타가 물었다.

"당신은 궁륭마천부의 대존야인가요?"

"그렇소."

"내 이름은 아난타예요. 당신 이름은?"

"나는 무린이라고 하오."

"당신을 만나게 되리라 예상은 했어요. 그러나 만나는 게 이렇게 빠를 줄은 예상하지 못했어요!"

이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은 따갑게 부딪쳐 작렬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강적(强敵)을 맞이한 것이다.

아난타가 요염한 미소를 지었다.

"자세히 보니 당신은 대단한 미남이군요. 본녀는 점점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아요. 당신과 본녀 사이에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드는군요."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좋은 얘기가 아닌가?

무린도 미소를 지었다.

"나도 귀하처럼 놀라운 미녀를 만나서 기분이 좋소. 정말 우리 사이에는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드는구료."

그렇다면 얘기가 다 끝난 게 아닌가? 서로 좋다는데 무엇이 더 필요할까.

그러나 다음 얘기는 그렇지도 않았다.

아난타의 봉목에 서늘한 한광(寒光)이 스쳐 갔다.

"대존야, 하지만 지금 당신의 명에 따라 본장으로 진격하고 있는 궁륭마천부의 대군단이 즉각 진격을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 사이는 매우 나빠질 것 같군요!"

"……!"

"그 때는 거기에 대한 모든 책임이 당신에게 있다는 것을 미리 말해 두고 싶어요!"

이방(異邦)의 공주라 그런지 외교적 수사용어가 노련하게 구사되고 있다.

무린은 여전히 미소를 띄고 있었다.

"아난타, 귀하가 나의 뜻을 따른다고 약속한다면 진격을 즉각 증지시키겠소."

"본녀에게 항복을 권할 셈인가요?"

"나에게 항복할 필요까지는 없소. 나는 천축의 모든 인물이 중원에서 떠나기를 바랄 뿐이오."

"……!"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천하는 앞으로 무서운 대변겁을 피하지 못할 것이오. 그리고 거기에 대한 모든 책임은 천축무림인들이 지게 될 것이오."

아난타는 교태로운 홍소를 터뜨렸다.

"호호호호… 당신은 본녀에게 협박을 하고 있군요!"

웃음을 그친 그녀는 봉목에 이채를 번쩍이며 말했다.

"사령파황루는 머지않아 중원을 지배하게 될 거예요! 당신이 만약 본녀에게 협조한다면 본녀는 당신을 남편감으로 고려해 보겠어요!"

이제는 진짜 좋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무린은 고소를 지었다.

"남편으로 삼는 게 아니고 고려해 보는 정도란 말이오?"

"좋아요. 당신을 남편으로 삼겠어요. 당신이 원하기만 하면 우리의 혼약(婚約)은 즉시 이루어질 수 있어요!"

무린의 덤덤한 대꾸가 떨어졌다.

"나는 귀하가 어떠한 여인인지 확인해 보지도 않고 혼약을 할 생각은 없소."

"확인?"

"나는 귀하를 품에 한 번 안아 본 일도 없지 않소?"

아난타는 무린 앞으로 사뿐히 다가왔다.

"그렇다면 본녀를 당장 한 번 안아 보세요!"

본래 아난타는 이렇게 대담한 여자인가?

그런데 그녀의 교구가 미끄러지듯 무린 앞에 이른 순간, 그녀의 섬섬옥수가 무린의 요혈을 향해 전광처럼 뻗쳤다.

"아예 본녀가 당신을 한 번 안아 보도록 하죠!"

찰나 무린의 신형이 환영처럼 뒤로 물러서며 낭랑한 대소가 터져 나왔다.

"하하하… 남녀가 서로 안아 보기 위해서는 좀더 은밀한 장소가 필요하지 않겠소?"

아난타의 기습 일 초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녀의 아미가 상큼 치켜올라갔다.

"과연 대존야의 무공은 보통이 아니군요!"

다음 순간, 아난타는 쌍수를 활짝 펼치며 무린에게 날쌘 매처럼 덮쳐들었다.

그녀의 장심에서 기이한 장강(掌 )이 뻗쳤다.

슈리리이이잇-!

찰나 무린의 쌍수가 기쾌하게 교차되며 허공을 갈랐다.

"무상구궁검(無上九宮劍)!"

정종칠대기서의 절세검공(絶世劍功)이 손으로 펼쳐졌다.

번쩍-!

눈부신 첨광(尖光)이 허공을 가득 메웠다.

파아아아-!

연못가의 수련이 갈기갈기 찢겨져서 사방으로 비산했다.

아난타의 교구가 파도에 밀린 낙엽처럼 허공으로 떠올랐다.

청라의가 찢어질 듯 펄럭였다. 아니, 그녀의 청라의는 갈가리 찢겨 나가고 있었다.

찢어진 옷 사이로 눈처럼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다행히 은밀한 곳은 붉은 천으로 가려져 있었다.

마침내 아난타는 대노했다.

"은밀한 장소가 필요하다더니 허공에서 그대로 옷을 찢어 벗기려 들다니……."

그녀는 재차 쌍수를 맹렬히 펼쳐 냈다.

"사라파천황(邪羅破天荒)!"

슈리리이잇-!

이번 출수에는 엄청난 공력이 깃들어 있었다. 극맹한 장강(掌 )이 노도처럼 밀어닥쳤다.

쐐애애애애-!

무린은 위험을 직감했다.

'초절한 사극공(邪極功)이다!'

그는 전광석화처럼 일수(一手)를 펼쳐 냈다.

"매화파라수!"

천공에는 거대한 홍매화(紅梅花)가 피어났다.

불가사의한 매향(梅香)이 풍기며 쌍방의 강기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르르- 콰쾅-!

벼락 같은 격탕음이 울렸다.

다음 순간, 아난타의 날씬한 교구가 허공에서 휘청 꺾여지더니 그대로 연못 속에 풍덩 빠져 버리는 게 아닌가?

"허억!"

아난타는 여지없이 물 속에 처박혔다. 그러나 다행히 치명상을 입은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는 곧 수면으로 떠오르더니 날카롭게 소리쳤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이때 사위에서 웅장한 말발굽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

웅장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갑자기 대기가 맹렬히 파동쳤다.

물 속에 있던 아난타는 안색이 일변했다.

'궁륭마천부의 대군단이 밀어닥치고 있다.'

순간 아난타는 번개처럼 몸을 날려 무린을 향해 사나운 기세로 덮쳐들었다.

"가라!"

그녀의 분홍빛 쌍수가 두 자루 예검(銳劍)처럼 찔러 왔다.

파츠츠츠츳-!

기류를 찢는 매서운 음향이 울렸다. 무린은 감히 그녀를 경시할 수 없었다.

그는 최고의 절공(絶功)을 힘차게 펼쳐 냈다.

"홍단태극신공(紅丹太極神功)!"

조광화원에서 부친으로부터 전수받은 세문절기(世門絶技)였다.

쿠르르르르릉-!

뇌성 같은 음향이 울리더니 엄청난 강기의 폭발음이 울렸다.

콰르르- 콰콰쾅-!

거대한 기류의 소용돌이는 해일처럼 천공으로 솟구쳤다.

쐐애애액-!

고막을 찢는 파공음이 울렸다.

무린과 아난타의 신형은 퉁겨지듯 허공으로 떠올랐다.

놀랍게도 두 사람의 이번 충돌은 막상막하였다.

두 남녀는 맹렬한 강기의 회오리 속에서 몸을 틀어 제이초(第二招)를 펼칠 태세를 갖췄다.

아난타는 무린의 공력이 자신과 백중을 이루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중원에 저런 무서운 귀재(鬼才)가 있었던가!'

무린의 공력 조예는 아난타의 예상을 훨씬 초월했다.

이때 아난타의 시녀들도 궁천무를 향해 일제히 출수를 개시했다.

번쩍-!

여러 개의 단검에서 뻗치는 광채가 궁천무를 대망(大網)처럼 에워쌌다.

"사향오령참(邪香五令斬)!"

순간 궁천무는 소매 속에서 짧은 죽봉(竹棒) 하나를 번개처럼 떨쳐 냈다.

그것이 바람개비처럼 돌아가며 허공을 쓸었다.

챙챙- 채챙-!

시녀들의 단검은 모두 두 토막으로 부러져 나갔다.

"큭!"

"으흑!"

시녀들은 선혈을 울컥울컥 토하며 여기저기 나가떨어졌다.

아난타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형세가 불리하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다.

그녀는 급히 소리쳤다.

"아라, 시간이 없다. 본녀를 따라오라!"

이어서 그녀는 무린에게도 소리쳤다.

"대존야, 당신은 오늘 본녀의 옷을 벗기고 목욕까지 시켰으니 이제 신방(新房)을 차리는 일만 남았군요.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신방을 차리도록 합시다!"

다음 순간 아난타는 물 속으로 쑥 사라졌다. 불괴불사녀 아라도 훌쩍 몸을 솟구치더니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녀 역시 순식간에 물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무린은 흠칫 놀랐다.

'물 속에 비밀통로가 있었구나!'

수정비혼접도 물 속까지는 추적할 수가 없다. 한 번 물 속으로 사라진 아난타와 아라는 두 번 다시 떠오르지 않았다.

갈기갈기 찢어진 수련이 널려 있는 수면에 커다란 파문만이 번져 갈 뿐이었다.

궁천무가 입을 열었다.

"그녀가 비밀통로로 도망을 친 모양인데 나는 계속 추적을 해야겠소. 형공과는 훗날 다시 만나도록 합시다!"

말을 마치는 순간, 찰나간에 그는 한 줄기 유성처럼 사라졌다.

무린은 잠시 생각하다가 화각 안으로 뚜벅뚜벅 걸음을 옮겨 놓았다.

화각 안에는 시체만이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실내를 둘러보던 무린은 한 사람 앞에서 우뚝 멈추어 섰다.

"이 여인이……."

무린의 앞에는 고려금이 쓰러져 있었다. 아직도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무린은 가볍게 검미를 찌푸렸다. 아난타공주에게 당했을 것이다.

두두두-!

지축을 뒤흔드는 말발굽 소리는 온 장원을 진동시키며 지척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마침내 궁륭마천부의 대군단이 무영수련장으로 노도처럼 밀어닥치고 있었다.

그러나 아난타와 아라는 연못 속의 비밀통로로 감쪽같이 사라진 후였다.

운명의 여신은 한 발자국을 살짝 비켜 갔는가?

이때 한 늠름한 은갑패검(銀甲佩劍)의 무장(武將)이 화각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그는 무린을 보자 정중하게 보고를 올렸다.

"소녀 우문검지가 대존야께 보고드립니다. 속하는 대존야의 명대로 무영수련장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그러나 무공을 모르는 시녀들만이 눈에 띌 뿐 저항하는 자는 없었습니다!"

위풍당당한 무장!

그는 바로 천부대군수 우문검지였다.

중원의 화려한 꽃 우문검지가 대존야를 수행하기 위하여 일만의 대군단을 거느리고 무림에 출도하지 않았던가?

그녀의 늠름한 신위는 오히려 헌헌대장부를 능가했다. 휘황하도록 아름다운 절세여걸(絶世女傑)의 자태였다.

무린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가 많았소."

우문검지의 보고가 이어졌다.

"그 외에 장원의 남문으로 빠져 나간 약 일천 명의 무영수련장 고수들이 무언가를 급속히 추격하고 있는 게 발견되었습니다. 속하는 즉시 그들을 추적하여 섬멸시킬 생각입니다."

무린은 천천히 머리를 저었다.

"그럴 필요없소."

"……!"

"적은 지금 나의 마차를 추격하고 있으나 곧 섬멸될 것이오."

"……?"

우문검지는 의혹의 빛을 띄웠다.

무린은 더 말하지 않고 고려금을 품에 안아 들었다. 그녀의 입가에는 가느다란 선혈이 한 줄기 흐르고 있었다.

무린은 그녀를 안은 채 화각을 나섰다.

'빨리 내상을 치료해야겠군.'

우문검지는 조용히 뒤를 따랐다.

문득 무린이 우문검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대군수, 나는 대군수와 이렇게 사이좋은 관계가 될 줄은 몰랐소."

우문검지의 아름다운 얼굴이 미미하게 붉어졌다.

지난날 우문검지는 새를 쫓아 옥황궁에 침입한 무린을 참정수옥에 집어넣지 않았던가?

그 때는 그녀가 어떻게 짐작이나 하였으랴. 무린에게 대존야가 제수될 줄을…….

무린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아무래도 언젠가는 대군수의 술을 한 잔 얻어먹어 지난날의 빚을 받아야 할 것 같소."

우문검지는 말을 찾지 못한다.

"……!"

대존야 앞에 감히 뭐하고 말대꾸를 하랴.

이때 한 소녀가 무린 앞에 불쑥 튀어나왔다.

"흥! 또 나만 쏙 빼놓고 술 마시려고 그러지."

언제 따라왔는가? 그녀는 노노아였다.

노노아는 양 손에 닭다리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기름에 노오랗게 튀긴 계육(鷄肉)이었다.

노노아는 닭다리 하나를 무린에게 내밀었다.

"무영수련장의 주방장은 닭다리를 잘 튀기는 모양이야!"

그녀는 장원에 침입하자마자 주방부터 쳐들어간 모양이다.

무린은 닭다리를 받아 한 입 씹어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맛이 괜찮군."

노노아는 나머지 닭다리를 우문검지에게 불쑥 내밀었다.

"이거는 언니 먹어!"

"……!"

궁륭마천부의 십만 무적대군단을 통수하는 천부대군수 우문검지는 이 순간 완전히 당황하고 말았다.

그 닭다리를 받아야 하는가, 아니면 안 받아야 하는가?

일찍이 우문검지가 이토록 난감한 적은 없었으리라.

무린이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대군수는 그 닭다리를 먹을 권리가 있소. 노노아는 이미 옥황궁 주방의 완자를 많이 차용해 먹었기 때문이오."

두두두-!

한 대의 마차가 계곡을 급히 질주하고 있었다. 마차를 모는 것은 벙어리 사내 철묵이었다.

지금 마차는 무수한 고수들에게 추격을 당하고 있었다.

바로 무영수련장의 일천 고수였다.

노도 같은 기세, 그들의 추격은 성난 파도가 밀어닥치는 것 같았다.

마차는 급박하게 쫓기고 있었다. 풍전등화의 위기였다.

마차는 절벽 사이의 좁은 협곡(峽谷)으로 들어섰다.

추격하는 고수들과의 거리는 불과 백여 장. 그 거리는 점점 좁혀지고 있었다.

이때 마차 안에서 갑자기 은은한 고금소리가 울려 나왔다.

딩딩딩- 딩딩딩-!

단조롭고 음울한 음률이었다. 동시에 마차 안에서 어린애 머리통만한 검은 물체 하나가 튕겨져 나왔다.

검은 물체가 땅에 떨어지는 순간, 엄청난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콰콰콰쾅-!

천지가 무너지고 태양이 갈라지는가?

검은 연기가 거대한 버섯처럼 피어 오르며 양쪽 절벽이 콩가루처럼 부서져 허공으로 떠올랐다.

우르르릉-!

산산조각으로 갈라진 암벽이 산사태처럼 붕괴되며 협곡은 일순간에 지옥의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마차를 추격하던 무영수련장의 일천 고수는 그 혼돈 속에 고스란히 함몰되고 말았다.

아아, 마차 안에 한 무서운 걸물(傑物)이 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것이 그들의 불행이었다.

만폭왕 당유기!

무영수련장의 일천 고수는 찰나간에 당유기의 가공할 화약암기인 멸폭뢰(滅爆雷)에 목숨을 잃고 만 것이다.

멸폭뢰!

만인을 경악시킬 지옥의 마물(魔物)이여!

당유기는 그런 대량살상 암기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무서운 사내였다.

딩딩딩- 딩딩딩딩-!

단조롭고 음울한 고금 소리가 울리며 마차는 이제 유유히 협곡을 빠져 나가고 있었다.

그 고금소리는 찰나간에 저 세상으로 떠난 일천의 유혼(幽魂)에게 바치는 위혼곡(慰魂曲)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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