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로 물든 손수건 (15/37)

피로 물든 손수건

우문검지와 부전삼수는 삼 장 거리를 두고 대치했다.

군웅들은 긴장하여 손에 땀을 쥐었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중대한 순간이 온 것이다.

장내의 기류는 숨막힐 듯 팽팽하게 당겨졌다. 심장을 멈추게 하는 긴장이었다.

바로 이 때였다.

두두두- 두두두-!

한 대의 육두마차가 대정전을 향해 급속히 달려왔다.

그 때 누군가가 마차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대존야다!"

천부남궁의 검수들은 일제히 양쪽으로 갈라섰다.

"……!"

"……!"

우문검지와 부전삼수도 대치의 자세에서 흠칫하여 뒤로 물러섰다.

새로운 사태의 변화가 온 것이다.

히이이잉-!

마차는 대정전 앞에서 우뚝 멈추어 섰다. 곧 마차의 문이 열리며 한 수려한 백의문생이 모습을 나타냈다.

대존야 무린!

바로 당금 천하무림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제이의 무림천자였다.

무린이 모습을 나타내는 순간, 장내의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었다.

부전삼수를 비롯한 잔양살막의 살수들은 두 눈에서 소름끼치는 살광(殺光)을 폭사했다.

마침내 그들의 목표가 출현한 것이다.

그러나 무린의 신색은 지극히 담담했다. 그는 장내를 한 차례 쓸어 보더니 우문검지 앞으로 뚜벅뚜벅 다가왔다.

"대군수, 나를 찾아온 손님들을 대신 접대하고 있었구료."

그는 희미한 미소까지 띄우고 있었다.

순간 우문검지는 무린에 대한 무한한 신뢰감이 가슴 속에 충만하는 것을 느꼈다.

'대존야는 믿을 수 있다!'

우문검지는 무린의 미소 속에서 절대능력자(絶對能力者)의 여유를 본 것이다.

그러나 천부남궁의 군웅들은 긴장으로 심장이 오그라들 지경이었다.

그들은 무린의 능력을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러므로 공포스런 살수들 앞에 대존야가 모습을 나타낸 것은 너무나도 워험천만하게 느껴졌다.

무린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했다.

"대군수, 그 패검을 나에게 좀 빌려 주시오. 나를 찾아온 손님을 내가 직접 접대하는 게 도리가 아니겠소?"

부전삼수를 비롯한 살수들을 자신이 직접 상대하겠다는 말이었다.

우문검지는 감히 거역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패검을 두 손으로 받쳐 올렸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무린은 패검을 받아들자 부전삼수 앞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당신이 아극타의 명을 받아 나를 죽이러 온 잔양살막의 고수요?"

그의 어조는 여전히 담담했다.

부전삼수는 음산하게 대꾸했다.

"귀하가 대존야라면 바로 그렇소."

무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미소가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내가 궁륭마천부의 대존야요. 평소에 동왜의 청풍일도류(淸風一刀流)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있었는데 마침 잘 되었소."

부전삼수는 더 대꾸하지 않고 즉시 발도(拔刀)할 태세를 갖췄다.

그의 예도가 비스듬히 수평으로 세워졌다. 이 순간 그에게는 대존야를 죽인다는 목적 외에 다른 것은 아무 필요도 없었다.

다른 아홉 명의 살수들도 무린을 일제히 에워쌌다.

스스스슷-!

그들은 신법 또한 귀신처럼 기묘했다.

부전삼수가 만약 실패한다면 다음에는 어김없이 그들의 살도(殺刀)가 펼쳐지리라.

무린은 서서히 패검을 치켜들었다. 그의 자세는 매우 기이했다.

검단(劍端)은 천공을 향한 채로 시선은 땅을 향하고 있었다.

중원에 이런 발검(拔劍) 자세는 없다. 이것은 어느 문파의 검법인가?

무린과 무전삼수는 이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장내는 숨통을 조이는 긴박감으로 가득 찼다.

심장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듯한 순간이 흘렀다. 그러나 무린과 부전삼수는 여전히 조각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서는 살기조차 뻗치지 않았다.

완전한 극정(極靜)!

얼음처럼 싸늘한 기류가 흐를 뿐이다. 그것은 그들의 무공이 이미 최고의 경지를 넘어섰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을 지켜보는 군웅들은 극도의 긴장 속에서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했다.

돌연 부전삼수의 예도가 바람을 탄 듯 파르르 떨렸다.

찰나 대기를 쩌렁 울리는 일갈이 터졌다.

"청풍일도(淸風一刀)!"

부전삼수의 예도는 빛살보다 빠르게 허공을 갈랐다.

치이잇-!

세상에 이토록 빠른 쾌도가 있는가?

무린은 찰나간에 전광 같은 도기(刀氣)에 격중되었다. 아니 격중되었다고 느낀 순간 한 줄기 눈부신 검광이 천공으로 뻗었다.

번쩍-!

"크억!"

숨통 막히는 신음이 터지며 피보라가 확 피어났다.

놀랍게도 부전삼수의 왜소한 신형이 비틀비틀 뒤로 물러서는데, 누군가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틀렸다! 일제히 쳐라!"

잔양살막의 나머지 아홉 살수는 즉시 맹렬한 살도를 펼쳐냈다.

차차차차창-!

일시에 엄청난 도기의 파도가 기쾌무비하게 무린에게로 쇄도했다.

파아아앗-!

순간 무린의 패검이 허공에 둥그런 호선(弧線)을 그렸다.

쉬이잇-!

무지개 같은 검광이 천공으로 쫙 뻗으며 처절한 비명이 연속 울렸다.

"크악!"

"으흑!"

무린에게 지쳐들던 아홉 살수는 일제히 나뭇잎처럼 뒤집혀서 쓰러졌다.

아아, 경천지사(驚天之事)!

그들은 찰나간에 시체로 변하여 짚단처럼 즐비하게 널려졌다.

무린은 천천히 패검을 거두어들였다. 그의 신색은 너무나 고요하여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았다. 다만 뺨에 가느다란 선혈 한 줄기만이 흐르고 있을 뿐이었다.

부전삼수는 아직 쓰러지지 않고 있었다.

그는 전신이 피로 물든 채 금방 쓰러질 듯 휘청거렸다. 그의 가슴은 세로로 길게 갈라져 있었다.

부전삼수는 충혈된 눈을 부릅뜨고 무린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의 눈에는 경악과 경이가 가득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대존야… 귀하의 그 태극비홍검법(太極飛鴻劍法)은……."

무린은 담담히 대꾸했다.

"그것은 나의 집안 조광화원의 세문검법(世門劍法)이오."

"조광화원……!"

부전삼수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선혈 한 모금을 울컥 토해냈다.

그는 땅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예도를 번쩍 치켜들며 말했다.

"대존야, 불초는 처음부터 귀하의 상대가 될 수 없었소. 그러나 우리 잔양살막의 막주(幕主)는 능히 귀하의 상대가 될 수 있을 것이오!"

"……!"

"다만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소. 귀하가 궁륭마천부의 대존야가 되었다는 사실이… 그러나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오."

말을 마치는 순간, 그의 예도가 번쩍 빛을 발했다.

부전삼수의 목은 몸체에서 수박처럼 툭 떨어져 나갔다. 스스로 목을 친 것이다.

그것이 부전삼수의 최후였다.

천부남궁의 군웅들은 꿈을 꾸는 것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

"……!"

무린이 잔양살막의 살수 열 명을 일순간에 처치해 버린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무린이 어떠한 검초를 펼쳤는지 똑똑히 목격한 사람도 없었다. 도대체 무린이 펼쳐 낸 검법은 어떠한 것인가?

태극비홍검법!

그 듣도 보도 못 한 검법은 어떤 내력을 지니고 있는가?

부전삼수는 왜 그 검법에 대해 그토록 경악했는가?

우문검지만은 놀람이 그리 크지 않았다.

'역시 대존야는 상상할 수도 없는 능력을 지니셨다!'

그녀는 품속에서 흰 비단 손수건을 꺼내서 무린 앞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손수건을 무린에게 올렸다.

"대존야, 상처의 피를 닦으십시오!"

무린은 손수건을 받아서 뺨에 흐르는 피를 닦았다. 흰 비단 손수건이 붉게 물들었다.

순간 우문검지는 기이한 예감을 느꼈다.

"……!"

자신이 정성스레 새의 무늬를 수놓은 손수건! 그 손수건이 붉은 피로 물들이자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 희미하게 머리를 스쳐 간 것이다.

여인은 누구나 필요 이상으로 섬세한 일면(一面)을 지니고 있는가?

그러나 여인은 본능적으로 운명을 예측하는 신비로운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혹자는 알고 있으리라.

그 피묻은 손수건은 앞으로 닥쳐 올 두 남녀의 어떤 극적인 운명을 상징하는지도 몰랐다.

문득 무린의 시선이 손수건에 머물렀다. 너무나 아름다운 무늬가 새겨진 손수건이었기 때문이다.

오색 깃털을 지닌 한 쌍의 새가 무린의 시선을 아프게 찔러 왔다.

무린의 눈빛이 미묘하게 변했다.

"……!"

우문검지는 벌써 옥용이 붉게 물즐어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천부대군수 우문검지가 부끄러움으로 얼굴을 붉혔다면 누가 믿을 것인가?

무린은 손수건을 접어 품속에 넣었다.

"이것은 잘 받겠소."

순간 우문검지는 더욱 새롭고도 뜨거운 감정이 가슴 속에 충만하는 것을 느꼈다. 무엇인지 알 수조차 없는 뜨거운 감정이었다.

우문검지는 눈동자를 샛별처럼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대존야, 이제 안으로 드시지요."

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제가 안내하겠어요."

두 남녀는 대정전 앞을 떠나 화향전으로 향했다.

천부남궁의 군웅들은 비로소 꿈에서 깨어난 듯 시체를 치우고 장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폭풍은 일과(一過)한 것이다.

무린과 우문검지는 나란히 화향전의 후원으로 들어섰다.

무린이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대군수, 오늘은 내가 손수건을 받았으니 전에 있던 채무관계는 없던 걸로 해 주겠소."

전에 있던 채무관계라니 무엇을 말함인가?

그것은 지난날 우문검지가 무린을 참정수옥에 집어 넣었던 일을 말한다.

우문검지는 다시 옥용을 살짝 붉혔다.

"……!"

그 때 무린은 참정수옥으로 끌려가며 우문검지에게 다음과 같은 한 마디를 남겼었다.

- 새를 좀 사랑하는 게 좋겠소.

그러면 우문검지가 손수건에 새를 수놓은 것은 그 때문이었던가?

무린이 다시 말했다.

"그러나 원금(元金)은 받았다고 치더라도 이자까지 다 받은 건 아니오. 그러므로 대군수는 오늘 밤 이자 대신 술 한 잔을 내야 하오."

우문검지의 입가에 보일 듯 말 듯 미소가 피어났다.

'대존야… 저는 대존야를 참정수옥에 넣은 뒤에 어떻게 지내는지 한 번 가 볼 생각이었답니다.'

그러나 그러한 말은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마음 속의 비밀이었기 때문이다.

두 남녀는 나란히 걸음을 옮겨 전각 앞에 이르렀다.

이 때 정원의 나무그늘에서 한 흑영(黑影)이 유령처럼 모습을 나타냈다.

"두 분께서는 질투가 날 만큼 다정하군요."

흑의녀(黑衣女)!

칠흑처럼 검은 흑의를 입고 얼굴도 흑사(黑絲)로 가리고 있는 여인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전신에서 발산되는 불가사의한 염기는 안개처럼 몽롱하고도 신비롭다.

무린이 가볍게 검미를 모았다.

"귀하는 사사환미 우주향이 아니오?"

흑의녀는 사뿐히 다가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약속대로 당신을 다시 찾아왔어요."

사사환미 우주향!

그녀는 바로 지난 번에 독주를 가지고 나타났던 대무후제국의 승상이었다.

천년여왕천하를 추구한다는 신비 속의 대무후제국!

무린의 눈매가 가느스름해졌다.

"오늘은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오셨소?"

우주향이 대답했다.

"여왕께서 당신을 대무후제국으로 초청하셨어요. 본녀는 청첩(請帖)을 가져왔어요."

"청첩이라……."

우주향은 품속에서 붉은 첩지를 꺼내어 무린에게 내밀었다.

무린은 첩지를 받아서 펼쳤다.

"……!"

안에는 간단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궁륭마천부의 대존야를 본 제국에 초청하오.

대존야의 신변은 본후(本后)의 이름으로 보장하겠소.

신성대무후(神聖大武后) 황보옥황(皇甫玉皇)>

무린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신성대무후 황보옥황…….'

우주향이 무린을 넌즈시 바라보며 말했다.

"신변을 보장한다는 것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당신의 생명을 보장한다는 뜻이에요."

무린은 담담히 미소를 지었다.

"매우 친절한 배려구료."

"물론 당신은 초청에 응하겠지요?"

무린은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초청에 기꺼이 응하겠소."

아, 그는 깊이도 모르는 호혈(虎穴) 속으로 순순히 걸어 들어가겠다는 말인가?

대무후제국의 여왕이 어떤 내심(內心)을 지니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신성대무후 황보옥황!

그러한 이름은 중원에 전혀 알려진 적도 없다.

곁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는 우문검지는 문득 불안한 빛을 띄었다.

'대존야…….'

그것은 차라리 불쾌한 빛인지도 모른다. 사사환미 우주향이 발산하는 짙은 염기가 우문검지에게는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우주향은 다시 교태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과연 대존야답군요. 본녀는 당신을 대무후제국으로 안내하겠어요. 그러나 우리는 먼저 한 군데 들를 곳이 있어요."

"들를 곳이라면?"

"사령파황루(邪靈破荒樓)."

"……!"

무린은 흠칫했다.

사령파황루!

천축지존문인 천룡밀궁사의 중원분사(中原分寺)가 아닌가?

아난타공주가 말하던 신비로운 곳이다.

우주향이 말했다.

"본녀는 아극타에게도 청첩을 전하려는 거예요. 여왕께서는 그도 초청을 했으니까요."

사령파황루는 천축왕자 아극타가 있는 곳이다.

무린이 물었다.

"귀하는 사령파황루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소?"

"지금 사령파황루는 동정호(洞庭湖)로 가고 있어요."

"사령파황루가 움직인단 말이오?"

"그래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각(樓閣)이 어떻게 움직인단 말인가?

우주향이 의미심장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은 물론 본녀와 동행(同行)을 하겠지요?"

무린의 눈빛이 심유하게 변했다.

"신성대무후는 나와 아극타를 동시에 초청할 생각이구료?"

"그래요."

무린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나는 동행을 하겠소."

우주향은 요염한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호… 대존야의 호쾌한 성품은 정말 본녀의 마음에 들어요. 나는 당신이 점점 좋아질 것 같는 느낌이 들어요. 호호호……!"

우문검지는 수미를 살짝 찌푸렸다.

'정말 요사스런 여인이군!'

우문검지의 불쾌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주향이 속삭이듯 달콤하게 말했다.

"대존야, 당신을 나의 마차로 모시겠어요."

"사양하지 않겠소."

이번에도 무린의 대답은 선뜻 떨어졌다.

사태는 예측을 불허하는 방향으로 급속히 흐르기 시작했다.

무린은 과연 사령파황루를 찾아가서 아극타를 만나게 되는가?

대무후제국의 여왕은 왜 무린을 초청했는가?

대운명의 장(章)은 파도처럼 밀어닥치고 있었다.

*          *          *          *

동정호(洞庭湖).

그 동쪽에 한 대의 붉은 마차가 질주하고 있었다. 호화롭기 그지없는 팔두마차(八頭馬車)였다.

마차는 놀랄 만큼 아름답고 화려했다. 차체는 눈부신 홍옥(紅玉)으로 이루어지고 창에는 찬란한 금사(金絲) 휘장이 펄럭이고 있다.

여덟 필의 백마는 모두 눈처럼 희고 건장한 설총신마(雪 神馬)였다.

중원에 이토록 호화로운 마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있었던가?

그런데 마부석에서 말을 몰고 있는 인물의 모습이 몹시 괴이했다.

그는 강철 갑옷에 강철 투구를 쓰고 있었다.

푸르스름한 청동색 피부, 화강암처럼 강인한 골격이 마치 강철인간(鋼鐵人間)과도 같은 인상을 풍기는 인물이다.

그는 채찍 대신 한 자루 대극(大戟)을 들고 있었다. 눈부신 자광(紫光)을 번뜩이는 괴이한 창이었다.

단번에 하늘이라도 꿰뚫을 듯 무서운 예기(銳氣)를 뻗쳐 내는 대극이다.

두두두두-!

마차는 질풍처럼 달려가고 있었다.

마차의 내부.

내부 역시 눈부시게 호화로웠다. 좌석에는 두 남녀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대존야 무린과 사사환미 우주향, 바로 천부남궁을 떠나 온그들 두 남녀였다.

그들은 지금 사령파황루를 찾아 동행하고 있는 것이다.

무린의 표정은 무심했다.

우주향의 얼굴은 여전히 흑사(黑絲)로 가려져 있어 표정을 알 수가 없다.

"……."

"……."

두 남녀는 달리는 마차에 몸을 맡긴 채 침묵에 잠겨 있다. 

그들은 각기 무슨 생각을 하는가?

방향을 예측할 수 없이 밀려드는 회오리 태풍 속으로 돌진하면서…….

문득 우주향이 입을 열었다.

"목적지가 가까워지고 있어요."

무린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주향이 다시 말했다.

"무린, 나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 한 가지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 봤어요."

갑자기 달라진 호칭에 무린이 중얼거리듯 물었다.

"한 가지 문제라면……?"

"당신과의 혼인(婚姻) 문제에요."

무린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어떠한 결론에 도달했소?"

"당신이 최소한 십 점(十點) 중 오 점의 자격은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후후… 그리 나쁜 점수는 아니구료."

"가능성은 꼭 반(半)이에요."

무린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물었다.

"내가 만약 귀하와 혼인할 의사가 없다면 어떻게 되오?"

우주향이 머리를 저었다.

"당신이 내 얼굴을 본다면 그런 말은 하지 않을 거예요."

우주향은 도대체 얼마나 아름답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

무린은 여전히 미소를 띄고 있었다.

"내가 귀한의 얼굴만 보고 넋을 잃으리라고는 믿지 않소."

"그건 장담할 수 없어요."

"머리가 자라려면 아직도 멀었소?"

"좀더 기다려야 돼요."

우주향은 머리가 짧아서 얼굴을 보여 줄 수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무린이 다시 물었다.

"만약 내가 귀하와 혼인을 하면 그 때는 어떤 결과가 생기오?"

우주향의 음성은 심유하게 낮아졌다.

"당신은 물론 대무후제국의 제삼인자(第三人者)가 되어 천하를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어요."

"……!"

우주향의 음성은 속삭이듯 은밀하게 낮아졌다.

"무린… 그러나 당신에게는 경쟁자가 한 명 있어요."

"아극타를 말하오?"

"그래요."

무린이 호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그렇다면 좋소. 나는 경쟁자를 물리치고 귀하를 차지하기로 하겠소."

이어서 그는 웃음을 그치고 말했다.

"그러나 미리 말해 두고 싶은 게 있소."

"무엇이죠?"

"내가 그대를 차지한 뒤에는 버릴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오."

이번에는 우주향이 요염한 교소를 터뜨렸다.

"호호호… 당신이 점점 내 마음에 드는 것은 그러한 호기(豪氣)를 지녔기 때문이에요."

이 때 마차의 달리는 속도가 갑자기 느려졌다. 앞에 몇 개의 괴영(怪影)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네 명의 남포노인(藍袍老人)!

한결같이 체력이 거대하고 인상이 웅맹한 위풍당당한 노인들이었다.

네 노인은 마차의 앞을 막아 섰다. 마치 태산이 앞을 가로막는 듯 위맹한 기세다.

마차는 서서히 멈추어 섰다.

네 노인 중 은발이 사자의 갈기털처럼 성성한 노인이 마부석의 철갑인을 향해 말했다.

"우리는 급한 일이 있어 동정호로 가는 길이다. 너의 마차를 잠시 이용하려 하니 편의를 제공하기 바란다."

노인의 태도는 너무나 위압적이어서 누구라도 감히 거절할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마부석의 철갑인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

손에 든 대극을 천천히 수평으로 치켜들며 이상하게 안광을 번득일 뿐이다.

노인의 음성이 약간 음산해졌다.

"마차 안에 누가 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에게 편의를 제공하여 손해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 혼계사마(混界四魔)는 은원(恩怨)을 분명히 구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갑인은 여전히 대꾸가 없다.

"……."

그런데 혼계사마는 어떠한 인물들인가?

<서천마존(西天魔尊)>

<동해마존(東海魔尊)>

<남황마존(南荒魔尊)>

<북극마존(北極魔尊)>

그들은 이미 수십 년 전에 무림에서 은거한 대마성(大魔星)이다. 그들이 천하를 종황할 때는 모든 정도 무림인이 두려움에 몸을 떨어야 했다.

그러한 혼계사마가 다시 출현한 것을 사람들이 안다면 모두 대경실색하리라.

수염이 누런 남황마존이 노성으로 호통을 쳤다.

"벙어리처럼 왜 대답이 없느냐?"

그러자 마차 안에서 영롱한 교성이 들렸다.

"당신들은 아극타를 영접하러 사령파황루로 가는 길인가요?"

바로 우주향의 음성이었다.

"……!"

혼계사마는 흠칫했다.

그들의 시선이 서로 교차되며 무섭게 번쩍였다. 그것은 우주향의 질문에 대한 긍정을 나타내는 반응이었다. 혼계사마는 아극타의 수하였던 것이다.

남황마존이 이번에는 마차 안을 향해 호통을 쳤다.

"너는 누구냐?"

우주향의 대꾸는 냉담했다.

"당신들은 그런 걸 물을 자격이 없다!"

혼계사마는 대노했다.

일찍이 그들은 누구에게서도 이토록 무례한 대접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남황마존은 누런 수염을 푸르르 떨었다.

"어떤 광망한 계집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노부가 직접 확인해 보겠다!"

그는 마차의 문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단숨에 마차를 박살이라도 낼 듯한 기세였다.

우주향의 음성이 얼음처럼 차갑게 변했다.

"당신은 지금 한 말로써 이미 생사의 경계를 넘었다!"

그녀는 철갑인에게 엄숙하게 명했다.

"뇌정(雷井)! 그자를 죽여라!"

순간 철갑인의 손에 쥔 대극이 쭉 뻗었다.

번쩍-!

한 줄기 자색 광망이 전류처럼 폭사하더니 이내 숨통 끊어지는 비명이 울렸다.

"크아악!"

남황마존은 가슴에서 선혈을 분수처럼 뿜어 내며 털썩 거꾸러졌다.

그의 가슴에는 철주(鐵主)가 관통한 듯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경악! 나머지 혼계삼마는 대경하여 입을 딱 벌렸다.

"저… 저럴 수가……!"

남황마존이 일개 마부의 단창에 찔려 거꾸러지다니 이건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었다.

진정 믿기 힘든 일이었다. 혼계삼마는 더 이상 시간을 끌 여유가 없었다.

북극마존이 먼저 철갑인 뇌정을 향해 번개처럼 일수(一手)를 펼쳤다.

"네놈이 감히 창을 가지고 위험한 장난을 치다니……."

그러나 그의 말은 도중에 끊어지고 대신 짧은 단말마가 울렸다.

"크억!"

북극마존도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려 선혈을 분수처럼 뿜어 내며 쓰러졌다.

역시 뇌정의 대극이 만든 작품이었다.

나머지 두 고수는 이제 놀라고 있을 틈도 없었다. 동해마존과 서천마존은 맹렬한 공세를 동시에 펼쳐 냈다.

"네놈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겠다!"

찰나 뇌정의 대극은 또 한 차례 자색 광망을 번쩍 폭사했다.

구우우웅-!

이번에는 기류가 진탕되는 웅량한 음향이 울렸다.

"크윽……!"

"크으윽……!"

숨통을 손으로 조르는 듯한 두 마디 신음성이 들리더니 서천마존과 동해마존의 신형은 허공중에서 풍선처럼 파열되고 말았다.

파아아아-!

후두두- 후두두둑-!

찢어진 육골 조각이 소나기처럼 땅바닥에 떨어졌다.

아아, 누가 이 광경을 목격했다면 분명 지옥의 악몽(惡夢)을 보았다고 생각했으리라.

두두두두-!

천하를 주름잡던 혼계사마의 시체를 뒤로 하고 마차는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달리기 시작했다.

우주향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담담했다. 그러나 무린의 표정은 약간 굳어져 있었다.

'분명 저 대극은 자전철사극(紫電鐵獅戟)이다. 그리고 뇌정은 실혼인(失魂人)이다.'

자전철사극!

그것은 저주받은 악마의 병기이기 때문에 보통 사람은 사용할 수 없다. 공력이 삼 갑자 이상인 실혼인만이 사용할 수 있다.

보통 사람이 사용하면 악마의 혼에 씌워 미쳐 버리기 때문이다.

자전철사극이 한 번 출현하면 일만 개의 보검신도(寶劍神刀)가 일제히 부러진다는 공포스런 전설이 전해진다.

무린은 새삼 대무후제국의 강대한 힘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무후제국은 역시 천하를 놓고 한 판 승부를 벌일 수 있는 존재인가?'

문득 무린은 우주향의 진면목을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좀더 참기로 했다.

대세를 결판내는 도박패는 항상 최후의 순간에 냉정하게 던져야 했기 때문이었다.

*          *          *          *

동정호의 북동쪽 호변은 유난히 풍광이 수려하고 경치가 아름답다. 자연 이곳에는 유람객과 풍류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들을 상대하는 기루(妓樓)와 주각(酒閣)이 무수히 자리잡아 번창하는 것은 물론이다.

술과 미녀와 환락이 넘치는 곳.

그 중에서도 약간 높은 지대에 웅장하게 솟아 있는 하나의 거각(巨閣)이 있었다.

백로별향(白露別鄕).

눈부시게 흰 백자 대리석의 삼층 누각이다.

백로별향의 아름답고 화려한 건축은 여타의 기루나 주각들에 비해 단연 돋보인다.

위치도 가장 좋아서 바다처럼 넓은 호수의 경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것은 물론, 호변의 경치를 두루 감상할 수 있다.

그러나 백로별향에는 이상하게도 손님이 별로 없다. 하지만 그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손님이 별로 없는 이유는 백로별향의 술값이 너무나 비싸기 ㄸ문이었다.

백로별향에서 술을 한 잔 마셨다 하면 최하 황금 열 냥은 필요하다.

기분 좋게 취하도록 마시려면 황금 백 냥, 밤새도록 호탕하게 한 번 마실 생각이라면 최소한 오백 냥 정도는 준비하는 게 좋다.

물론 기녀(妓女)에 대한 꽃값(花代)은 따로 계산해야 된다. 그 꽃값이라는 게 또한 사람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만큼 엄청나게 비싸다.

시골부자 정도라면 아예 백로별향에는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좋다. 평생 모은 재산을 불과 일순간 기분내는데 탕진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 백로별향에 들어가는 사람은 수중의 금을 내버리지 못해 안달이 난 놈이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백로별향에 출입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한낮이 기울었는데도 가기(佳妓)들의 노래소리 한 마디 들리지 않는다. 수중의 금을 내버리지 못해 안달이 난 놈은 아마 없는 모양이다.

그런데 백로별향의 전문(前門) 앞에 두 괴인(怪人)이 쭈그리고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잡초처럼 삭발한 머리, 다 떨어진 누더기, 행색을 보아하니 거지가 분명하다.

두 거지는 사순의 중년인인데 이렇다 할 특징은 없었다.

거지 주제에 깨끗한 흰 가죽신을 신고 있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일까? 그것은 정말 거지가 신기에는 아까운 고급 가죽신이었다. 십중팔구 어디서 슬쩍 업어 온 물건이리라.

두 거지 중 한 명은 유난히 코가 컸다. 너무 커서 우스꽝스러울 정도였다.

다른 거지는 눈이 하나밖에 없는 애꾸였다.

코 큰 거지는 고의춤을 긁적거리며 이를 잡고 있었다.

"흠흠, 이가 보리알만큼이나 크군."

애꾸 거지가 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우비개(牛鼻 ), 자네는 배가 고프지 않은가?"

코 큰 거지 우비개가 대답했다.

"배가 출출하네. 큼직한 돼지족발이나 하나 먹었으면 좋겠네!"

"돼지족발… 그것 좋지! 독한 화주(火酒) 한 잔 척 걸치고 돼지족발을 우적우적 씹어 먹으면… 꿀꺽……!"

"아니면 기름을 살짝 발라 구워 낸 암오리 통구이라도 한 마리 먹었으면……."

애꾸거지는 머리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암오리 통구이에 대해서는 나 일목개(一目 ) 앞에서 언급을 피해 주게. 지난날 능가장(陵家莊) 장주(莊主)의 회갑연 때 암오리 통구이가 칠백 마리나 구워진 걸 아는가?"

"치… 칠백 마리……!"

"그 때는 그 구수한 냄새가 사방 십 리까지 진동했었네. 나는 오십 리 밖에서도 그 냄새를 맡고 번개처럼 달려 갔었지!"

"그… 그래서 자네는 그날 암오리 통구이를 몇 마리나 얻어먹었는가?"

애꾸거지 일목개는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스물일곱 마리를 먹었네!"

우비개는 깜짝 놀랐다.

"아니 능가장에서 자네 같은 거지에게 암오리 통구이를 스물일곱 마리나 주었단 말인가?"

"내가 먹은 것은 뼈일세!"

"남이 먹다 버린 뼈다귀말인가?"

"자네는 오리뼈를 아작아작 씹어 먹으면 맛이 고소할 뿐만 아니라 영양이 풍부하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그… 그건 그렇지만……."

"게다가 내가 주워 먹은 뼈다귀는 모두 일류미녀(一流美女)들이 먹고 남긴 것이었네!"

우비개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이… 일류미녀라고……!"

일목개는 장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능가장 장주의 외동딸인 능주령(陵珠玲)이 먹고 버린 뼈다귀도 내가 먹었네. 그뿐인 줄 아는가? 강남제일미(江南第一美) 설청란(雪靑蘭), 신주천향(神洲天香), 소빈빈(素彬彬), 추파선자(秋波仙子), 홍단(紅丹) 등이 먹고 버린 뼈다귀도 모두 내가 먹었네!"

"저… 저런……!"

우비개의 넙적한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선망의 빛이 나타났다.

일목개는 추억에 잠긴 듯 눈이 가느스름해졌다.

"자네도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잘 알걸세. 미녀들이 먹고 남긴 음식을 먹을 때 그 기분이 얼마나 황홀한가를……."

우비개는 크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암암, 알고 말고. 나도 지난날 우연히 악양루(岳陽樓)에 들렀다가 중원요화(中原妖花) 선우련(鮮宇蓮)이 먹고 남긴 벽로주(碧露酒) 반 잔을 슬쩍 마셔 버렸을 때의 기분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온몸이 짜릿해지네!"

"아무튼 그날 나는 열 명 이상의 미녀들과 입술을 맞댄 셈이었지!"

"정말 그렇군. 나도 그런 일이 가끔 없었던 건 아니지만 한꺼번에 열 명 이상의 미녀들을 먹어 본 적은 없네!"

맙소사! 열 명의 미녀들을 먹다니, 그가 먹은 건 미녀들이 먹고 버린 뼈다귀일 뿐인데…….

일목개의 외눈은 행복했던 추억을 반추하느라고 계속 껌벅껌벅했다.

"특히 강남제일미 설청란은 살코기 한 점을 아직아직 씹다가 좀 질긴 느낌이 들었는지 퉤 뱉아 버렸는데… 그 향긋한 침으로 반죽된 살코기를 내가 냉큼 집어먹었을 때의 아찔함이란……."

우비개는 일목개의 꿈 같은 이야기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저… 저런… 저런……!"

그러나 거지라는 직업인에게는 허다한 낭만과 비화(秘話)가 있기 마련이다.

우비개는 한동안 일목개의 무용담에 주눅이 들어 있더니 마침내 무언가 자랑거리가 생겨난 모양이었다.

그는 자신의 거대한 코를 쓱 한 번 문지르며 입을 열었다.

"자네는 나의 이 코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일목개는 시큰둥하게 되물었다.

"자네의 그 못생긴 코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라도 있던가?"

"으음, 자네는 잘 모르는군!"

"무엇을 말인가?"

"나의 코를 은근히 흠모하는 여인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말일세!"

"자네의 그 못생긴 소코를 흠모하는 여인들이 있다고?"

"자네는 선선주각(仙仙酒閣)의 하녀 당고랑(唐故娘)이 왜 내가 가기만 하면 술과 밥을 듬뿍 주는지 아는가?"

"그 쉰일곱 살 된 늙은 노파말인가?"

"나이는 좀 들었지만 아직 싱싱하네. 게다가 그다지 추녀는 아닐세. 얼굴이 말처럼 길쭉하고 얽은데다가 입이 약간 비뚤어지기는 했지만……."

일목개의 외눈이 연신 껌벅거렸다.

"그래서 그녀가 자네의 코를 흠모하여 술과 밥을 듬뿍 준단 말인가?"

우비개는 무게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내가 가기만 하면 이 거대한 코를 홀린 듯 바라보며 중얼거린다네."

"뭐… 뭐라고?"

"커서 좋겠다고!"

"그게 무슨 말인가?"

우비개는 점잖게 머리를 저었다.

"자네는 여자에 대해서 잘 모르니 말해 줘도 잘 모를 걸세!"

"아니 내가 왜 여자에 대해서 잘 모른단 말인가? 이 근처 여자들에 대해서 나만큼 잘 아는 사람도 아마 없을 걸세."

"자네가 여자에 대해서 무엇을 안단 말인가?"

"선선주각의 기녀 춘앵(春櫻)은 허벅지 깊숙이에 붉은 점이 하나 있네. 그 붉은 점에는 가느다란 털이 세 개나 있지. 그리고 불취주루(不醉酒樓)의 기녀 자련(紫蓮)이의 유방은 짝짝이일세. 자세히 보면 오른쪽 유방이 약간 크지!"

"그… 그건……."

"또 동정호 제일미녀라는 가기(歌妓) 백설(白雪)은 배꼽이 유난히 오목한데 그 아래로 내려가면… 히히, 그건 정말 아까와서 이야기하지 못하겠네."

우비개는 거대한 코를 벌름거리며 급히 물었다.

"자네는 도대체 그런 걸 어떻게 아는가?"

"나는 그들이 은밀히 찾아가서 목욕을 하는 계곡 속의 연못을 알고 있네!"

"저… 저런……!"

"이 부근의 미녀들치고 나에게 알몸을 보여 주지 않은 여자가 없네!"

우비개는 간절한 빛으로 물었다.

"일목개, 자네는 나에게 그 연못을 가르쳐 줄 수 없겠는가?"

일목개는 느릿하게 머리를 저었다.

"그건 안 되네."

"왜 안 된단 말인가?"

"생각해 보게. 내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그 연못을 가르쳐 주어 소문이 나게 되면 미녀들이 일제히 발길을 끊을 테니 어떻게 다시 그들의 알몸을 훔쳐 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겠는가?"

"그… 그건 그렇지만……."

"자네와 나는 지난 삼십 년 간 돈독한 우의를 지켜왔지만 내 인생 최대의 비밀을 가르쳐 줄 수는 없네!"

우비개는 긴 한숨만 토할 뿐이다.

"휴……."

남의 인생 최대비밀을 가르쳐 달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일목개는 다정하게 우비개의 어깨를 두드렸다.

"우비개, 너무 실망하지 말게. 내가 종종 미녀들이 목욕하는 모습이나 그 알몸의 특징을 자세히 이야기해 줌세."

"고… 고맙네."

"그건 그렇고 자네는 술 한 잔 생각이 안 나는가?"

"술이야 안에 가면 있지 않은가?"

"또 훔쳐 먹는단 말인가?"

"그냥 꺼내 먹으면 되지 뭣하러 훔쳐 먹는단 말인가? 내가 솜씨를 보여 줄 테니 따라오게."

일목개는 몸을 일으켜서 백로별향의 전문을 향해 다가갔다.

우비개도 이 한 마리를 잡아 탁 눌러 죽이고는 부시시 몸을 일으켰다.

그들은 가지 주제에 감히 백로별향의 술을 마시러 갈 셈인가?

이 때 언덕 아래에 한 대의 마차가 나타났다.

두두두두-!

눈처럼 흰 여덟 필의 설총신마가 이끄는 호화로운 마차였다. 마차는 백로별향을 향해 급속히 다가오고 있었다.

우비개와 일목개의 안광이 날카롭게 빛났다.

"수상한 마차로군!"

그들은 재빨리 가까운 수풀 속에 몸을 숨겼다. 그들의 동작은 놀랄 만큼 민첩했다. 결코 예사 걸인들의 몸놀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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