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엄청난 기연(奇緣)을 얻다 (22/37)

엄청난 기연(奇緣)을 얻다

돌연 노인 고려충의 얼굴에 긴장된 빛이 나타났다.

"왔다!"

그는 급히 낚싯줄을 꽉 움켜잡았다.

이 때 놀랍게도 수면에서는 은은한 무지개빛이 뻗쳐 오르고 있었다.

어둠에 잠긴 검푸른 물 속에서 갑자기 웬 무지개인가?

"……?"

무린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여 수면을 주시했다.

고려충의 안광은 비수처럼 날카롭게 변해 있었다. 그의 안광은 물 속까지도 깊숙이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부그르르르…….

수면에 기이한 파문이 번져 갔다. 무지개빛은 점점 눈부시게 뻗어 오르고 파문은 차츰 커져서 거대한 소용돌이를 이루어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휘리리리-!

고려충의 낚싯대를 쥔 손은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무린은 그가 낚싯대를 통해 엄청난 암경(暗勁)을 발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긴장된 순간이 흐르더니 갑자기 수면에서 맹렬한 물기둥이 솟구쳤다.

촤아아아-!

동시에 무지개빛 찬란한 한 마리 괴어(怪魚)가 허공으로 튀어올랐다.

찰나 고려충의 빈 낚싯대가 커다랗게 허공을 후리며 예리한 파공성을 울려 냈다.

파아아앗-!

괴어는 마치 바늘에 꿰인 것처럼 빈 낚싯대에 끌려 왔다.

"허허허헛… 벽금비로를 찾아온 보람이 있군!"

고려충의 파안대소가 터질 때, 괴어는 벌써 그의 손에 덥석 잡혀 있었다.

경인신기(驚人神技)!

고려충은 내공만으로 물 속 깊숙이 지나가는 괴어를 끌어올려 사로잡은 것이다. 그의 가공할 공력조예를 능히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고려충의 수중에 잡혀 있는 괴어의 형상은 실로 진기했다.

길이는 약 두 자 정도, 전신에는 아름다운 일곱 빛깔의 비늘이 덮여 있는데, 머리의 모양이 어딘지 사람과 흡사했다.

세상에 보기 힘든 영물(靈物)임이 분명했다.

고려충은 괴어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중얼거리듯 말했다.

"천년홍예린, 너는 눈물을 흘리고 있구나?"

아, 그 괴어는 바로 전설 속의 천어(天魚)인 천년홍예린이었다.

고려충의 말대로 천년홍예린은 두 눈에서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여인이 슬프게 눈물을 흘리는 듯한 형상이었다.

말을 하지 못하는 물고기지만 자신의 최후가 왔다는 것을 아는 듯하지 않은가?

고려충이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했다.

"좋다. 너와 협상을 하자!"

물고기와 무슨 협상을 하는가?

고려충의 음성은 매우 부드러웠다.

"노부는 사정에 따라 너의 정단(精丹)을 필요로 한다. 그러니 네가 만약 정단을 넘겨 준다면 목숨은 살려 주겠다."

말을 알아들은 것일까?

천년홍예린은 돌연 입 속에서 자두만한 구슬 하나를 울컥 토해 냈다.

칠색 영롱한 신비이물!

구슬을 받아든 고려충은 기쁨을 금치 못했다.

"고맙다. 약속대로 노부는 너를 도로 물 속에 놓아 주마!"

그는 천년홍예린을 수면으로 던졌다.

퍼드드득-!

천년홍예린은 힘차게 꼬리를 치며 검푸른 물 속으로 사라졌다. 둥그런 파문을 남긴 채 수면은 이내 고요해졌다.

고려충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무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무공자, 노부가 이토록 쉽게 천년홍예린의 정단을 얻은 것을 보면 천의(天意)는 무공자 편인 것 같소!"

무린은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

고려충은 천년홍예린의 정단을 무린 앞으로 내밀었다.

"무공자, 이것을 복용하도록 하시오. 그러면 노부가 한 가지 비공(秘功)을 전해 드리겠소."

무린은 의혹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노선배님께서 소생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시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고려충의 신색은 서서히 엄숙하게 변해 갔다.

"무공자, 그것은 무공자가 천의를 이행할 운명의 주인공이기 때문이오."

"천의……?"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고려충의 소년처럼 맑은 눈동자는 무한한 혜지로 빛나고 있었다.

"무공자, 자세한 이야기는 훗날 조광화원에 계신 무공자의 부친께서 들려 주실 것이오. 무공자가 궁륭마천부의 대존야로서의 임무를 마치는 그날 말이오."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님이……!"

그렇다면 부친과 고려충과는 서로 잘 아는 사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무린의 가문인 조광화원과 환인천제문은 어떤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단 말인가?

무린의 표정은 굳어졌다.

'그렇다! 아버님의 비밀스런 내력… 아버님은 바로 환인천제문 출신인 것이다!'

아아, 그러면 무린의 근본 출신내력 역시 동방이란 말이 아닌가?

무린은 기이한 격동에 사로잡혔다.

'동방… 나는 분명 동방 출신이다!'

무린의 눈동자는 불꽃처럼 타올랐다. 그는 심중의 짐작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선배님, 소생의 아버님은 동방의 환인천제문 출신입니까?"

고려충의 노안은 어느 새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린은 나직한 탄성을 토해 냈다.

"아……!"

짐작이 사실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무린의 부친인 청유수사 무군(武君)은 환인천제문 출신이었던 것이다.

무린의 얼굴엔 순간적으로 복잡한 빛이 스쳐 갔다.

'그러면 아버님은 무슨 까닭으로 문중을 떠나 수만 리 낯선 이역(異域)으로 와서 살고 계신 것일까?'

문득 지난날 조광화원을 떠날 때, 부친이 들려 주던 말이 뇌리를 스쳐 갔다.

- 린아야, 일 년이 지나면 곧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너에게는 반드시 처리해야 할 천의적인 중대사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무린은 어두운 암천을 우러러보았다.

'나의 앞에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거대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무린의 앞에 기다리고 있는 거대한 운명,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

고려충이 다시 천년홍예린의 정단을 내밀었다.

"무공자, 어서 이것을 복용하시오!"

이제 무린은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았다.

"소생은 노선배님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그는 정단을 받아 꿀꺽 삼켰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정좌하여 운공을 행하려 했다.

그러자 고려충이 물었다.

"무공자는 천지무궁심법과 홍단태극신공, 그리고 태극비홍검법을 동시에 운행할 수 있겠소?"

<천지무궁심법>

<홍단태극신공>

<태극비홍검법>

무린은 비로소 부친으로부터 전수받은 이 세 가지 현공(玄功)이 모두 환인천제문의 독문무학(獨門武學)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고려충의 질문은 너무나 괴이한 것이었다.

어찌 심공과 행공, 검공의 서로 다른 무공을 동시에 운행할 수 있단 말인가?

무린은 의혹을 금치 못하며 말했다.

"소생은 그 세 가지 무공을 동시에 운행하는 것은 생각해 보지도 못했습니다."

고려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것이오. 그러나 그 세 가지 무공은 모두 한 뿌리에서 나왔는 바, 기본 운공의 원리가 모두 같기 때문에 동시에 운행할 수가 있소!"

"……!"

"또 그것을 동시에 운행해야 노부가 전해 주려는 한 가지 비공을 완성할 수가 있소!"

일순 무린의 뇌리에는 이채가 스쳐 갔다.

'아, 그러고 보니 동시 운행이 불가능하지는 않겠구나!'

무린은 세 가지 무공의 운행 요결을 머리 속에서 정리하여 배합하기 시작했다.

본래 무린의 오성(悟性)은 세상에 짝이 없을 만큼 초인적이 아니던가?

잠시 후 무린은 힘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운행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고려충은 기쁜 빛을 감추지 못했다.

"과연 무공자의 자질은 부친을 능가하는구려!"

그는 두 눈을 형형히 번쩍이며 말했다.

"그러면 천지무궁심법과 홍단태극신공을 동시에 운행하며 노부가 불러 주는 구결에 따라 초식을 펼치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노부가 불러 줄 구결은 검 없이도 펼칠 수 있도록 태극비홍검법을 변형시킨 것으로 비홍수검인(飛鴻手劍刃)이라 하오!"

"비홍수검인……."

"자, 운공을 시작하시오!"

무린은 즉시 천지무궁심법과 홍단태극신공의 운행을 시작했다.

무린의 전신에서는 장엄한 서기가 은은히 뻗치기 시작했다. 머리 위에는 휘황한 무지개빛 채환(彩環)이 떠올랐다.

시간이 흐르자 머리 위에 떠오른 무지개빛 채환은 서서히 회전을 시작했다.

휘리리리-!

채환의 회전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자 돌연 채환의 한가운데에서 투명하게 눈부신 무지개가 천공으로 쭉 뻗쳤다.

촤아아-!

머리 위에서 천공으로 뻗쳐 올라간 거대한 무지개는 진정 신비롭지 않은가?

고려충은 대경하여 눈을 크게 떴다.

"오오, 신기합일천(神氣合一天)이다!"

그는 격동하여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천년홍예린의 정단은 과연 무쌍의 영능(靈能)을 지니고 있구나. 아니 그보다도 무공자의 자질이 하늘에까지 닿는다는 증거다!'

옆에 조용히 서 있던 고려금도 눈앞에 벌어진 장엄한 광경에 입을 딱 벌렸다.

신기합일천!

몸과 대기가 하나가 되어 하늘에 통하는 경지다. 이러한 경지에 오르면 천하만류공(天下萬流功)에 무불통소, 무소불능이 된다. 이미 완전한 천인(天人)의 경지에 이른 것과도 같다.

일찍이 중원 일천 년 무림사를 통틀어 이러한 경지에 이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무린이 신기합일천의 경지에 오른 것은 천년홍예린의 정단을 복용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은 불가사의한 무공의 궁극경(窮極境)이었다.

문득 고려충은 놀라움에서 깨어나 엄숙하게 입을 열었다.

"무공자, 노부가 지금부터 비홍수검인의 구결을 들려 주겠소!"

그는 구결의 암송을 시작했다.

"이기이심(以氣以心), 무기유심(無氣有心), 오기일행(五氣一行)……."

구결의 암송에 따라 무린의 쌍수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홍수검인!

검 없이 펼치는 그 신비로운 검법이 전개되기 시작한 것이다.

무린의 쌍수는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그 움직임은 실로 괴이했다. 완만하면서도 급박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예리하여 도저히 일반 무공의 초식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쌍수에서는 무형강기(無形 氣)가 줄기줄기 뻗쳐서 괴이하게 파동치고 있었다.

휘류류류-!

고려충은 구결 암송을 계속하며 놀람을 금치 못했다.

'무공자의 오성은 상상을 초월하는구나!'

쌍수의 움직임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쾌속해지더니 일순간 움직임을 뚝 멈췄다.

그런데 기이한 일이었다. 그의 쌍수에서는 투명한 두 줄기 광전(光電)이 은은히 뻗쳐서 어두운 천공을 꿰뚫고 있는 게 아닌가?

진정 불가사의한 광경이었다.

이윽고 무린은 손을 거두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신색은 본래대로 물처럼 고요해졌으나 두 눈동자에서 발산되는 신광은 눈이 부실 정도였다.

분명 무린은 변해 있었다.

대기를 압도하는 천인의 신위!

그의 무공이 이미 신기합일천의 경지에 들어선 증거였다. 짧은 순간에 그는 엄청난 기연을 만난 것이다.

고려충의 노안에는 격동의 빛이 나타났다.

"무공자, 무공자는 비홍수검인을 완성했소. 뿐만 아니라 내공이 완전한 궁극경에 도달했소!"

무린은 담담히 미소를 지었다.

"소생의 성취 정도가 노선배님을 실망시키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무공자, 이제 넓은 천하에 무공자의 적수가 될 사람은 아무도 없소. 무공자는 완전한 천하제일인이 된 것이오!"

천하제일인!

이 넓은 세상에 감히 그러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무린은 태산처럼 우뚝 서서 어두운 천공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태어난 느낌이다!'

고려충과 고려금은 무한한 경외의 시선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은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때였다.

삐이이잇-!

기이한 음향이 허공을 찢으며 울려퍼졌다.

순간 고려금의 안색이 급변했다.

"할아버님, 잔양살막의 특살단(特殺團)이에요!"

고려충도 흠칫했다.

"그들이……!"

"그들은 항상 우리 동방사를 추적하고 있어요!"

무린의 안광이 번쩍 빛났다.

"잔양살막의 특살단이라면……."

고려금이 급히 말했다.

"그들은 동왜(東倭)의 인자(忍者)들로 조직된 가공할 특급살수집단(特級殺手集團)이에요!"

잔양살막의 특살단!

유계이대공포의 하나인 잔양살막에서도 가장 무서운 살수조직이다.

동왜 출신의 초일류 인자들로 조직된 완벽한 살인기관(殺人機關). 일단 특살단의 추적을 받게 되면 차라리 생명을 포기하는 게 좋다.

땅으로 꺼지거나 하늘로 솟아도 그들의 추적을 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고막을 찢는 날카로운 음향이 끝났을 때, 배 위로는 벌써 십여 개의 흑영이 유성처럼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순식간에 그들은 갑판 위에 그림자처럼 늘어섰다.

열두 명의 흑의인. 그들의 가슴에는 잔양살막의 표식인 붉은 태양이 섬뜩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들의 인상은 한결같이 기괴했다.

소름이 끼치도록 무표정한 얼굴, 냉혹하면서도 지극히 무감동한 눈빛. 그들에게서 풍기는 것은 오직 삭막한 죽음의 냄새뿐이었다.

분명 비정한 인자수업(忍者修業)을 거친 동왜의 일류급 살수들이었다.

열두 명의 인자는 뱃전에 늘어선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서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뱃전에는 피를 동결시키듯 싸늘한 한기가 충만하고 있었다.

그들은 동방사를 추적하다가 무린을 만나자 약간 놀란 듯했으나 겉으로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무린은 물처럼 고요한 신색으로 그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문득 그는 담담히 입을 열었다.

"당신들에게는 죽음이라는 한 마디 외에 다른 것은 아무 의미도 없겠군."

독백처럼 나직한 음성이었다.

인자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들은 대존야 무린의 생명을 탈취하려는 것이다.

무린은 인자들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열두 명의 인자는 일제히 단도(短刀)를 뽑았다. 종이처럼 얇고 예리한 기도(奇刀)였다.

그들의 동작은 기계처럼 정확하고 조용했다.

무린이 그들의 일곱 자 앞에 우뚝 멈춰 섰을 때, 한 인자의 단검이 일직선으로 뻗어 왔다.

파아앗-!

일체의 불필요한 동작이 배제된 기쾌한 일초(一招)였다.

그러나 무린은 느릿하게 우수를 들어 그의 단검을 쳐 내며 좌수로 그의 턱을 쳤다.

조금 전에 전수받은 비홍수검인이었다.

챙-!

인자의 단검이 두 동강으로 부러지며 그의 턱이 두부처럼 부서져서 날아갔다.

"컥!"

그의 신형은 직각으로 꺾어져서 짚단처럼 처박혔다.

오오, 경악! 어떻게 느릿한 동작이 쾌속한 선공(先攻)보다도 빠른가!

이 순간, 두 명의 인자가 동시에 단검을 뻗었다.

파아아앗-!

검광이 번쩍 허공을 갈랐다.

전광석화! 세상에 아무리 빠른 사람이라도 빛줄기를 피할 수는 없다.

예리한 검광은 정확하게 무린의 목을 관통했다.

그런데 바로 그 찰나, 무린의 쌍수가 오른쪽 인자의 가슴을 찌르며 왼쪽 인자의 옆구리를 쳐나갔다.

"큭!"

"컥!"

오른쪽 인자의 가슴은 두 갈래로 쩍 갈라졌다. 피분수가 확 솟구치며 그의 신형은 허수아비처럼 무너졌다.

동시에 왼쪽 인자의 옆구리에서는 갈비뼈가 으스러지는 음향이 들렸다.

그의 신형은 걸레조각처럼 구겨져서 뱃전에 털썩 거꾸러졌다.

이번에도 분명 무린의 완만한 출수는 인자의 번개 같은 쾌초보다 빨랐다.

이게 도대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그러나 동왜의 인자들은 본래 어떠한 상황하에서도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는 전문살수들이다.

그들은 이미 작동되기 시작한 정교한 살인기관(殺人機關)처럼 계속 무린에게 엄습하고 있었다.

세 개의 단검이 동시에 무린의 심장으로 뻗치며 다른 인자의 신형이 배후에서 그림자처럼 쇄도했다.

쉬이잇-!

아무 소리도 없는 극쾌수법(極快手法)이었다.

순간 무린의 싸늘한 일갈이 터졌다.

"너희들은 나의 비홍수검인을 완성시켜 줄 모양이구나!"

그의 우수가 세 개의 단검을 한꺼번에 쳐나가는 순간, 좌수는 배후에서 엄습하는 인자의 목을 갈랐다.

챙- 챙- 챙-!

세 자루의 단검이 엿가락처럼 부러지며 짧은 외마디가 연속 울렸다.

"커억!"

"끅!"

"끄으윽!"

그들은 비명조차 짧고 조용했다.

그러나 무린이 펼친 비홍수검인의 결과는 조용하지 않았다.

세 인자의 가슴이 정확하게 양단되어 절개될 때, 배후에서 엄습한 인자의 목은 깨끗하게 절단되어 허공으로 날아갔다.

투툭-!

뱃전에 떨어진 수급은 수박처럼 떼구르르 굴러갔다.

뒤이어 흙벽처럼 무너지는 그들의 동체에서 피분수가 힘차게 솟구쳤다.

오오, 가공과 전율의 신기(神技)여!

잔양살막의 특살단 열두 명은 찰나간에 반으로 줄었다.

일순 나머지 여섯 명의 인자는 주춤했다.

그들은 평생의 인자 생활에서 무린과 같은 상대를 만난 적이 없었다. 아니, 무린이 전개하는 비홍수검인과 같은 신비공(神秘功)을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공포가 등줄기를 꿰뚫는 것을 느꼈다.

돌연 그들의 입에서 찢어지는 일갈이 터졌다.

"필사필살식(必死必殺式)!"

여섯 명의 인자가 여섯 방위를 차단하며 동시에 단검을 전광처럼 찔러 왔다.

뇌전류(雷電流)!

아무리 초인적인 고수라도 여섯 방위의 번개 같은 공격을 동시에 상대할 수는 없다.

그들은 다섯 명이 죽더라도 나머지 한 명이 무린의 생명을 탈취하려는 것이다.

반드시 죽고 반드시 죽인다. 그것이 바로 필사필살식이었다.

찰나지간 무린의 쌍수는 십자로 교차되어 둥그런 호선(弧線)을 그으며 허공을 갈랐다.

츠츠츠츳-!

눈부신 첨광이 번쩍이며 불가사의한 두 줄기 강기가 여섯 명의 인자를 둥그렇게 쳐나갔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컥!"

"큭!"

"크윽!"

두 인자의 얼굴은 반쪽씩 갈라져 날아갔다. 또 다른 두 인자의 얼굴은 목각처럼 깎여져서 흩어졌다.

나머지 두 인자의 얼굴은 대각선으로 비스듬히 쪼개져 나갔다.

그것은 그들이 방위가 약간씩 달랐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의 차이였다.

그러나 그것은 한 자루의 예리한 검이 자르고 지나간 것과 다름이 없었다.

여섯 명의 인자는 춤추듯 흐늘거리며 나란히 갑판 위에 주저앉았다.

파괴된 그들의 얼굴에서 검붉은 선혈이 뿜어져 뱃전에 현란한 꽃무늬를 만들었다.

아름다운 혈화(血花)! 아니, 섬뜩하게 소름끼치는 혈화였다.

일막의 활극은 끝났다. 너무나도 간단하고 조용한 활극이었다.

남은 것은 갑판 위에 즐비하게 널려진 열두 구의 시체뿐이었다.

"……!"

"……!"

고려충과 고려금은 경이의 시선으로 무린을 바라보았다.

공포의 대명사인 잔양살막의 특살단을 이토록 간단히 처치해 버리다니…….

그들은 일시지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얼마 후에야 고려충의 미미하게 떨리는 음성이 흘러 나왔다.

"무공자, 무공자의 비홍수검인은 너무나 완벽하오!"

무린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비홍수검인은 매우 단순하고 소박한 무공인 듯한데 그 위력은 예상을 훨씬 초월하니 진정 놀랍습니다."

고려충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중원의 무공은 일견 화려하고 웅장하나 사실은 과장과 허세가 심하오. 반면에 동왜의 무공은 지극히 냉철하고 교쾌(巧快)하나 깊이가 없소!"

그의 눈동자는 혜지로 빛나고 이야기는 진중하게 이어졌다.

"거기 비하여 우리 동방의 무공은 진솔하고 담백하나 무한한 현기(玄氣)에 통하고 있소. 노부가 감히 말하건대 환인천제문의 무학은 중원과 동왜의 무공에 비해 한 차원 높소."

무린의 눈동자도 혜지로 빛나고 있었다.

'역시 동방은 무한한 신비와 현기를 지닌 세계로구나!'

무린은 고려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잔양살막의 특살단이 동방사를 추적하는 것은 무슨 까닭이오?"

고려금이 공손히 대답했다.

"잔양살막은 환인천제문의 원수입니다. 그래서 동방사와 잔양살막 사이에는 치열한 암투가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

고려충이 이야기를 보충했다.

"잔양살막은 환인천제문에 누대의 혈원(血怨)을 끼쳤소. 거기 대해서도 훗날 무공자의 부친께서 자세히 이야기해 줄 것이오."

"……!"

고려충은 손을 들어 어둠 속을 가리켰다.

"무공자, 금탑쾌류선이 점점 멀어져 가고 있소. 그만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소."

무린이 그를 정시하며 물었다.

"노선배님께서는 어디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고려충은 침중하게 대답했다.

"그것은 지금 예상할 수 없으나 우리는 곧 다시 만나게 될 것이오. 무공자는 부디 대무후제국으로 들어가서 중원무림상의 거대한 비밀을 무사히 캐낼 수 있기 바라오."

"……!"

"그러나 대무후제국은 무서운 곳이니 특별히 주의해야 할 것이오. 노부가 무공자에게 급히 비홍수검인을 전해 준 것도 그 때문이외다."

무린은 안광을 번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소생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는 몸을 돌렸다. 다음 순간 그의 신형은 어둠 속에 가물가물 멀어져 가는 금탑쾌류선을 향해 한 줄기 유성처럼 쏘아갔다.

고려충과 고려금은 빛살처럼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무한한 경외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고려충의 입에서 격동된 중얼거림이 흘러 나왔다.

"때가 오고 있다. 중원에 거대한 응징을 내릴 때가……!"

무슨 말인가?

어느덧 동녘에는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열흘이 지났다.

금탑쾌류선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 장엄한 신비경 속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곳은 벽금비로에서 갈라져 들어간 또 하나의 밀역(密域)이었다.

수로 양쪽으로 울창한 숲이 펼쳐져 있는데, 숲 속 곳곳에 하얀 석옥(石屋)들이 그림처럼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침내 금탑쾌류선은 대무후제국의 영역으로 들어선 것이다.

숲 속의 수로를 통과하자 앞에는 천 장 높이의 칼날 같은 단애가 나타났다.

그런데 눈앞에는 하나의 신비로운 궁성이 나타나고 있었다.

오오, 칼날 같은 단애 위에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거대한 궁성의 웅자(雄恣)여!

세상에 저토록 웅장하고 아름다운 궁성이 있었던가?

육중한 첨탑(尖塔), 날아갈 듯한 전각(殿閣), 천하를 압도할 듯 솟은 망대(望臺). 실로 중원에서는 볼 수 없는 장려극치의 대궁성이 아닌가!

말할 필요도 없이 그것은 대무후제국의 궁성이었다.

천년여왕천하(千年女王天下)의 야망을 품고 불사조처럼 되살아난 신비계곡.

당금무림 최대의 수수께끼를 품고 있는 비경(秘境)이다.

금탑쾌류선은 그 궁성을 향해 유유히 다가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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