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불가사의인(五大不可思議人)
화빈각(華賓閣).
대무후제국의 궁성 한쪽에 있는 별각(別閣)이다.
깊은 밤 화빈각의 등롱은 이미 꺼져서 사위가 캄캄했다. 심야의 적막만이 을씨년스럽게 웅크리고 있었다.
그런데 별각의 창가엔 하나의 인영이 우뚝 서서 암천을 올려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무린, 바로 그였다.
어둠 속에 서 있는 무린의 표정은 무심했다. 그는 밀비천전에서 나와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었다.
한데 그는 왜 밤이 깊도록 잠들지 못하고 있는가?
그의 뇌리에는 한 가지 상념이 스쳐 가고 있었다.
'환인천제문… 환인천제문은 이미 삼백 년 전에 원세무황 상관무륭에 의해 처참하게 멸문당했다. 그러나 아버님은 비밀스런 환인천제문의 후대로서 중원에 와 계시다.'
그의 시선은 암천에 하얗게 깔려 있는 별밭을 헤매고 있었다.
'아버님이 중원에 와 계신 이유는…….'
무린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나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입에서 나직한 독백이 흘러 나왔다.
이 때 어디선지 괴이한 음성이 울려 왔다.
"당신은 아마 잘 모를 텐데……."
"……!"
무린은 흠칫해서 시선을 돌렸다.
어두운 정원의 무성한 화목(花木) 속에 하나의 흑영이 유령처럼 서 있는 게 보였다.
사순의 중년인이었다. 그의 시체처럼 창백한 얼굴이 어둠 속에서 유난히 음산하게 느껴졌다.
무린은 즉시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 이내 그는 중년인 앞에 우뚝 내려섰다.
의외에도 중년인은 두 눈이 꽉 감겨져 있는 장님이었다.
그런데 그는 눈으로 본 듯 나직이 뇌까리는 게 아닌가?
"당신의 경공은 제법 쓸 만하군."
무린이 물었다.
"귀하는 누구요?"
"당신을 시험해 보러 나타난 사람이지."
말을 마치는 순간 중년인의 쌍수가 기쾌하게 바람을 가르며 뻗어 왔다.
괴이독랄한 살초(殺招)였다.
무린은 번개처럼 몸을 틀어 그의 공격을 피해 냈다.
그러나 중년인의 쌍수는 어느 새 방향을 돌려 급소를 노리고 재차 찔러 왔다.
전광석화 같은 공격이었다. 보통 고수였다면 일순에 피를 뿌리고 쓰러졌으리라.
무린의 검미가 살짝 찌푸러졌다.
"당신의 무공도 제법 쓸 만하구료."
중년인은 괴소를 터뜨렸다.
"흐흐, 알아 주어 고맙군."
그는 괴소를 흘려 내더니 다시 맹렬한 공세를 펼쳐 왔다.
파아아앗-!
섬전(閃電)처럼 빠른 수도공(手刀功)이었다.
무린이 싸늘하게 소리쳤다.
"당신은 살기가 싫어진 모양이군!"
순간 무린의 일수가 느릿하게 허공을 갈랐다.
비홍수검인! 신비노인 고려충이 전수해 준 비공(秘功)이었다.
중년인은 비웃음을 날리며 쾌속한 반격을 펼쳤다.
"흐흐, 당신의 그 무공은 형편없는……."
말을 미처 끝맺지 못하고 그는 고통스런 신음을 토해 냈다.
"크윽!"
중년인은 오른손을 감싸쥐고 뒤로 비틀비틀 물러섰다.
그의 손목은 나뭇가지처럼 뚝 부러져서 덜렁거리고 있었다.
무린은 그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당신의 정체와 나를 공격한 이유를 밝히지 않으면 다음에는 당신의 목이 그 손목처럼 부러질 것이오!"
중년인은 부러진 손목을 급히 내저었다.
"조… 좋소! 정체를 밝힐 테니 목을 부러뜨리는 것은 그만 두시오!"
그는 고통으로 이마를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나는 무목신복자(無目神卜子) 단정(單定)이오!"
무린의 미간이 가볍게 좁혀졌다.
"그렇다면……."
<무목신복자(無目神卜子) 단정(單定)>
그는 장님이므로 세상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그의 심안(心眼)은 세상의 모든 허상 뒤에 가려진 사물의 실체를 볼 수 있다고 한다.
그의 점(占)은 사람의 운명을 거울에 비친 것처럼 명쾌하게 예언한다고 한다.
그는 누구든지 은자 세 푼만 내면 죽을 날짜를 정확하게 예언해 주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는 당금무림 오대불가사의인(五大不可思議人) 중의 한 명이었다.
무린이 물었다.
"본인을 공격한 것은 무슨 까닭이오?"
무목신복자 단정은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당신의 무공을 시험해 보려고 그랬소. 그런데 제기랄… 내 손목만 부러졌군!"
"……."
"당신의 무공은 그만하면 쓸 만하고… 이번에는 당신의 운명을 한 번 점쳐 보아야겠소!"
무목신복자는 꽉 감긴 눈을 껌벅거리며 무린을 잠시 동안 주시하더니 머리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당신은 정말 굉장하군! 당신은 앞으로 중원의 고수들을 십만 명이나 죽이겠소!"
"……!"
"이건 정말 믿어지지 않는군. 내 심안점(心眼占)이 잘못 되었나? 그럴 리가 없는데……."
무목신복자는 다시 머리를 절레절레 내젓더니 손을 불쑥 내밀었다.
"은자 세 푼을 내시오. 당신의 죽을 날짜를 점쳐 주겠소!"
무린이 대꾸했다.
"나는 그런 걸 점치고 싶은 생각이 없소."
"은자가 없어서 그런다면 외상도 가능하오. 아니면 석 달 할부(割賦)라도……."
"나는 내가 언제 죽을 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소."
"그런 사람이 대개 오래 살기는 하지만… 그래도 당신의 운명은 매우 특수한 것 같은데……."
갑자기 무린의 어조가 예리하게 변했다.
"귀하는 아마 내가 잘 모를 것이라고 했는데, 그건 무엇을 모른다는 뜻이오?"
무목신복자의 대답은 은밀하게 낮아졌다.
"물론 여왕에 대해서요!"
"여왕……?"
"당신은 여왕에 대해서 이야기한 게 아니오?"
"귀하는 여왕에 대해서 잘 알고 있소?"
"여왕이 언제 죽을 것인지는 아직 점쳐 보지 않았소. 그녀가 나에게 은자 세 푼을 준 적이 없기 때문이오."
이 때 옆에서 탁한 목소리가 들렸다.
"단정, 자네는 지금이 어느 때인데 한담(閑談)을 하고 있는가?"
동시에 한 노인이 화목 뒤에서 소리 없이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들창코의 곱추노인이었다.
무린은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대로 모습을 나타내는군.'
노인은 누구인가?
우내제일현 와광생!
그는 지난날 미향선계각에서 만난 적이 있는 우내제일현 와광생이었다.
그는 노노아의 코를 고쳐 준다고 했다가 은자 스무 냥만 날리지 않았던가?
와광생의 뒤를 이어 한 백의낭자가 유령처럼 모습을 나타냈다.
"무린, 당신을 여기서 다시 만나는군요."
그녀는 바로 우정소녀 빙사랑이었다.
비오는 날이면 출현하고, 그녀가 출현하면 항상 불길한 일이 발생한다는 신비여인이다.
무린이 응답했다.
"여기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고 예상하고 있었소."
그렇다면 세 남녀는 어떻게 여기에 나타났는가?
당금무림 오대불가사의인은 원래 밀비천전 출신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깊은 내력이 있었으니…….
빙사랑이 살며시 무린의 손을 잡으며 속삭였다.
"무린, 당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그녀의 손은 여전히 얼음처럼 차가웠다.
무린이 물었다.
"무엇이오?"
빙사랑의 눈동자 한가운데에는 기이한 은채(銀彩)가 번쩍였다.
"여왕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에요."
바로 이 때였다.
스스스스-!
장내에 수많은 홍의여검수(紅衣女劍手)들이 그림자처럼 나타났다.
예검(銳劍)을 치켜든 오십여 명의 여검수! 그들은 나타나자마자 일제히 빙사랑과 와광생, 단정을 향해 출수를 개시했다.
츠츠츠츳-!
순식간에 장내는 번쩍이는 검광으로 가득 찼다.
빙사랑의 싸늘한 교성이 울렸다.
"만년쌍동인(萬年雙童人), 당신들은 무엇하고 있어요!"
그러자 전각의 지붕 위에서 두 개의 인영이 장내로 번쩍 날아들었다.
날아드는가 하는 순간, 처절한 비명이 꼬리를 물고 터져 나왔다.
"컥!"
"크아아악!"
검붉은 핏줄기가 가로 세로로 어지럽게 뿌려지며 여검수들의 잘려진 수급이 이러저리 굴려 갔다.
번쩍-!
무우를 자르듯 여검수들의 수급을 자르는 것은 눈부시게 번쩍이는 두 개의 면도(面刀)였다.
홀연히 나타난 만년쌍동인이란 누구인가?
<호동자(胡童子)>
<호동녀(胡童女)>
그들은 남녀 쌍둥이였다.
그들의 나이는 사십이 넘었으나 아직 심삼 세 정도의 어린아이의 용모를 하고 있다.
항상 색동옷을 입고 침이 흐르지 않게 턱받이까지 하고 다닌다.
그러나 그들의 무기인 면도는 수백 고수의 수급을 잘랐다.그들은 공포스러운 무림의 면도사였다.
바로 오대불가사의인 중의 나머지 두 명이기도 하다.
만년쌍동인의 면도는 순식간에 오십여 검수들의 수급을 모두 잘라 버렸다.
경악! 잘려진 수급들이 땅바닥에 수박덩이처럼 굴러 다니고 짙은 피비린내가 구토를 느끼게할 만큼 코를 찔렀다.
대무후제국의 여검수들은 한 명 한 명이 무서운 일류검객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순식간에 만년쌍동인에 의해 목과 동체가 무우토막처럼 분리되고만 것이다.
무린마저도 간담이 서늘해졌다.
'과연 무서운 면도사다!'
무림의 면도사는 본래 목만 전문적으로 잘라 주는가?
빙사랑이 무린의 소맷자락을 이끌었다.
"무린, 어서 이곳을 떠나는 게 좋겠어요!"
이 때 허공에서 음산한 소리가 들렸다.
"떠나기는 이미 늦었다!"
동시에 하나의 인영이 장내에 거대한 독수리처럼 유유히 내려섰다.
백발이 성성한 자포노인이었다.
그의 눈에서는 섬뜩한 자광이 번쩍이고 있었다. 그는 장내를 일별하더니 소름끼치는 한성을 토해 냈다.
"오대불가사의인, 너희들이 여기까지 침입해 와서 본 제국의 순찰검수(巡察劍手)들을 살상하다니 정말 대담하구나!"
오대불가사의인은 일제히 긴장의 빛을 띄었다.
자포노인은 누구인가?
그는 대무후제국의 일급고수로서 바로 유계칠대살성 중의 혈영살성(血影煞星)이었다.
혈영살성은 빙사랑 앞으로 성큼 다가섰다.
"너희들은 오늘 함께 죽기로 작정이라도 했느냐?"
순간 두 줄기 푸른 광채가 번쩍 폭사했다.
만년쌍동인의 면도였다. 그 두 개의 면도가 전광석화처럼 혈영살성의 목을 베어 나갔다.
수급이 싹둑 잘려지며 피가 확 뿜어지는가?
찰나지간 혈영살성의 소맷자락이 기쾌하게 펄럭이며 처절한 두 마디 비명이 울렸다.
"크아악!"
"크악!"
만년쌍동인의 몸은 허공으로 오 장이나 튕겨져 날아갔다.
털썩-!
땅바닥에 떨어진 그들의 어린애 같은 얼굴은 이미 두부처럼 파괴되어 본래의 모습은 알아볼 수조차 없었다.
처참지경! 혈영사영은 도대체 얼마나 가공할 무공을 지니고 있는가?
무린과 빙사랑이 흠칫할 때, 와광생과 단정이 맹렬한 기세로 혈영살성을 향해 덮쳐들었다.
"혈영살성, 우리가 만년쌍동인의 원수를 갚겠다!"
생사일결(生死一決)의 필사적인 기세였다.
츠츠츠츳-!
극맹한 강기가 폭포처럼 분출했다.
즉시 혈영살성의 싸늘한 일갈이 터졌다.
"너희도 가라!"
그의 소맷자락이 세차게 펄럭이며 벽력 같은 굉음이 터졌다.
콰르르- 쾅-!
순간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이 암야의 적막을 찢었다.
"크악!"
"크아악!"
와광생과 단정의 신형은 거꾸로 뒤집혀서 휘청 꺾여지더니 흑벽처럼 풀썩풀썩 거꾸러졌다.
그들의 칠공(七孔)에서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아아, 그들 역시 혈영살성의 일초지적이 되지 못했다.
일순간에 오대불가사의인 중의 네 명이 처참하게 목숨을 잃고 말았다.
혈영살성은 다시 빙사랑을 향해 성큼 다가섰다.
"노부가 너는 죽이지 않겠다. 대신 너는 노부와 함께 가야 한다. 여왕께 복죄(服罪)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는 두 눈에서 섬뜩한 자광을 발산하며 빙사랑을 향해 손을 쭉 뻗었다.
빙사랑의 창백한 얼굴에는 공포의 빛이 나타났다.
이 때 무린이 물처럼 담담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혈영살성, 그녀에게는 본인이 용무가 있으니 귀하는 그만 물러가시오."
담담하면서도 기이한 위엄이 깃들어 있는 어조였다.
"……!"
혈영살성은 흠칫하여 시선을 돌렸다. 그의 흰 눈썹이 잔뜩 찌푸러졌다.
"대존야, 이 일은 본 제국 내부의 일이니 대존야는 간섭할 수 없소!"
무린이 다시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현금 무린에 본인이 간섭할 수 없는 일은 존재하지 않소."
과연 천하를 지배하는 무림천자의 늠름한 신위가 아닌가!
혈영살성의 백미가 꿈틀했다.
"대존야, 여기는 대무후제국이라는 사실을 잊으셨소?"
"대무후제국도 본인의 뜻을 거역할 수는 없소."
광오할 만큼 의연한 한 마디였다.
순간 혈영살성의 만면에 돌연 음산한 살기가 피어났다.
"대존야, 당신은 이미 본 제국을 모독했으니 그에 상당한 제재를 받아야 하오."
무린은 무감동하게 대꾸했다.
"거듭 말하지만 이 세상에 본인을 제재할 수 있는 존재는 없소."
"당신은 정말 간덩이가 부었군!"
혈영살성은 싸늘하게 소리치더니 무린을 향해 번개처럼 일수(一手)를 펼쳤다.
신쾌무비한 금나수법!
그러나 무린은 어느 새 거짓말처럼 뒤로 물러나 차가운 냉소를 짓고 있었다.
"혈영살성, 당신은 본인이 꼭 출수하기를 바라오?"
혈영살성은 대노했다.
"애송이 놈이 감히 노부를 능멸하다니……!"
그의 두 눈에서는 번갯불 같은 자광이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자전혈경공(紫電血勁功)!"
이어서 자포자락이 푸르르 떨리는 순간, 벼락 같은 호통과 함께 그의 쌍장에서 눈부신 자색 광망이 뻗쳤다.
치치치칫-!
무린은 그가 가공할 절대마공을 펼치는 것을 알았다.
무린은 지체없이 절공을 펼쳤다.
"홍단태극신공!"
그것은 환인천제문의 독문비공이었다.
두 줄기 초극강기(超極 氣)가 격돌하자, 기류가 격탕하는 굉음이 울렸다.
쿠르르릉- 콰콰쾅-!
정원의 화목이 뿌리째 뽑혀져 허공으로 날아가며 거대한 강기의 기둥이 천공으로 맹렬히 솟구쳤다.
무린과 혈영살성의 신형이 동시에 허공으로 떠올랐다.
"으음!"
혈영살성의 입에서 나직한 신음이 토해졌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번개처럼 몸을 회전시켜 무린에게로 쇄도했다.
"대존야, 목숨을 바쳐라!"
병아리를 덮치는 매의 기세처럼 그의 쌍수가 쾌도(快刀)처럼 허공을 갈랐다.
치치치칫-!
찰나지간 무린의 신형이 환영처럼 옆으로 흘러 가며 짧은 일갈이 터졌다.
"비홍수검인!"
혈영살성은 그의 우수가 느릿하게 앞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보았다고 느낀 순간, 목줄기가 화끈해지며 숨통이 끊어지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아악!"
혈영살성의 신형은 낙엽처럼 뒤집혀져 십 장 밖으로 멀리 날아갔다.
그의 목뼈는 완전히 절단되어 머리통이 등 뒤로 꺾여져 있었다.
털썩-!
걸레처럼 구겨진 그의 몸이 땅에 처박힐 때, 무린은 지극히 무심한 얼굴로 지면에 내려서고 있었다.
"본인의 뜻을 거스르면 누구나 죽는다."
으시시한 한 마디, 무린에게도 이토록 냉혹한 일면이 있었던가?
그것은 밀비천전에서 환인천제문에 얽힌 처참한 비사(秘事)를 알고 난 뒤 변모된 일면이 아닐까?
빙사랑은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더니 급히 재촉했다.
"무린, 어서 이곳을 떠나요. 대무후제국의 고수들이 몰려오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없어요!"
그러나 무린은 머리를 저었다.
"나는 몸을 피할 생각이 없소. 나의 방으로 가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합시다."
그의 신색은 놀랄 만큼 태연했다.
말이 끝났을 때 무린은 벌써 화빈각으로 뚜벅뚜벅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빙사랑은 그의 뒤를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무린과 빙사랑은 화빈각의 빈청에 마주 앉았다.
빙사랑이 약간 초조한 빛으로 입을 열었다.
"여왕인 신성대무후 황보옥황은 본래 밀비천전의 진정한 주인이 아니에요. 그녀는 이 년 전에 밀비천전의 전주(殿主)를 죽이고 스스로 주인이 된 거예요!"
놀라운 사실이 아닌가?
무린이 물었다.
"밀비천전의 본래 전주는 누구요?"
"원세무황 상관무륭의 후손인 상관룡(上官龍)이에요. 그리고 그분은 바로 우리 오대불가사의인의 주군이에요!"
"……."
비로소 오대불가사의인의 내력이 밝혀지고 있었다. 그들은 본래 전주인 상관륭의 수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신성대무후 황보옥황이 전주를 죽이고 오대불가사의인을 추방한 뒤 밀비천전을 차지한 것이다.
무린이 다시 물었다.
"여왕의 내력이 무엇이오?"
빙사랑의 음성은 얼음처럼 싸늘해졌다.
"그녀의 출신은 아무도 몰라요. 그녀는 세 살 때 대부인(大婦人)에 의해 거두어져서 밀비천전으로 들어왔어요."
"대부인?"
"대부인은 주군의 조모(祖母)로서 삼 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
빙사랑의 말이 이어졌다.
"대부인께서는 어디선지 어린 황보옥황을 데려오신 뒤, 밀비천전의 모든 무공을 전수시켜 주었어요. 황보옥황의 자질은 너무나 뛰어나서 저의 주군께서도 도저히 따르지 못할 정도였어요."
"……!"
"대부인께서는 황보옥황의 무림개사 이래의 최고재화(最高才華)라고 하시며 끔찍이 좋아 하셨어요. 자연히 황보옥황은 주군의 배필로 정해졌어요."
무린은 묵묵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빙사랑의 눈동자가 소름끼치도록 차갑게 번쩍였다.
"그런데 대부인께서 돌아가시고 나자 황보옥황은 주군을 죽여 버리고 밀비천전의 주인이 되어 버렸어요."
"……!"
"그 뒤 그녀는 천년여왕천하의 무서운 야망을 품고 대무후제국을 건립한 거예요."
"음……!"
무린은 다시 나직한 음성을 토해 냈다. 여왕의 비밀이 거의 밝혀진 것이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무린이 조용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런데 그대가 여왕의 비밀을 나에게 이야기해 준 까닭은 무엇이오?"
빙사랑은 무린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또렷하게 말했다.
"그것은 당신이 여왕을 죽여서 주군의 원수를 갚을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에요."
"……."
"천하에 여왕을 상대할 능력을 가진 사람은 오직 당신밖에 없어요."
빙사랑은 무린의 손을 꼭 잡았다.
"무린, 부디 여왕을 죽여 주세요. 그녀가 천명수령검의 검결을 완성하여 밀비구대무신을 부활시키고 나면 이 세상에 그녀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천명수령검……."
무린은 나직이 되뇌었다.
과연 천명수령검은 어떤 영능을 지니고 있는가?
그것은 과연 얼음관 속에 잠들어 있는 밀비구대무신을 부활시킬 수 있단 말인가?
빙사랑이 무린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물었다.
"무린, 당신은 저의 소원을 들어 주시겠지요?"
이 때였다.
휘리리리-!
돌연 기이한 운무가 회오리치더니 빈청 한가운데에 하나의 흐릿한 인영이 환상처럼 나타났다.
인영은 바로 신성대무후 황보옥황이었다.
'헉……!'
빙사랑은 대경하여 몸을 벌떡 일으켰다.
순간 운무가 그녀를 향해 안개처럼 밀려갔다.
휘리리리-!
그리고는 이내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이 울렸다.
"크아악!"
운무가 서서히 사라져 갈 때, 빙사랑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바닥에는 갈기갈기 찢어진 육골(肉骨) 조각이 얼음처럼 스르르 녹고 있을 뿐이었다.
아아, 보고도 믿지 못할 광경이었다.
빙사랑은 찰나간에 풍선처럼 파열되어 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이다.
무린이 놀라서 몸을 벌떡 일으킬 때, 여왕의 모습은 벌써 운무의 회오리와 함께 환영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대존야… 본후와 대존야 사이의 이야기는 내일 나누도록 해요."
휘리리리-!
멀리서 들리는 듯 또는 귓가에 속삭이는 듯 불가사의한 음성이 울리며 여왕은 빈청에서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일순 무린은 망연해졌다.
"……."
짧은 꿈에 사로잡힌 느낌이었다.
여왕은 어떤 무공으로 빙사랑을 눈 깜짝할 사이에 처치했는가?
문득 무린은 싸늘하게 중얼거렸다.
"나는 드디어 생애 최대의 적수를 만났다!"
그의 눈동자는 불꽃처럼 타올랐다.
* * * *
신성옥경전.
대무후제국의 여왕이 있는 대정전이다. 지금 전내에는 세 남녀가 마주 앉아 있었다.
대존야 무린과 신성대무후 황보옥황, 그리고 천축왕자 아극타!
바로 그들이었다.
황보옥황의 뒤에는 육대살성이 엄숙하게 늘어서 있고, 승상 우주향은 그녀의 바로 옆에 시립하고 있었다.
전내에는 숙연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긴장된 정적 속에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가 흐르고 있었다.
이 때 황보옥황이 그 신비로운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본 대무후제국은 앞으로 천하를 일통(一統)하여 사해(四海)와 구주팔황(九州八荒)을 지배하게 될 것이오."
불가사의한 영력(靈力)이 가득한 무서운 말이었다.
"……!"
"……!"
무린과 아극타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졌다.
황보옥황의 영롱한 말이 이어졌다.
"본후는 곧 천명수령검의 검결을 완성하여 밀비구대무신을 부활시킬 것이며 나아가서 동방(東方)에 있다는 무림인의 영원한 이상향인 환단무극경을 찾아갈 것이오."
순간 무린은 커다란 충격이 가슴을 치는 것을 느꼈다.
'환단무극경을 찾아간다고……!'
무린은 황보옥황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기이한 운무로 감싸여 있는 황보옥황의 얼굴은 보면 볼수록 환영처럼 흐릿해질 뿐이다.
황보옥황의 말이 이어졌다.
"동방에서 중원을 심판할 응징자가 온다는 전설이 있으나 본후는 그를 두려워하지 않소. 본후는 오히려 동방의 응징자를 찾아 내어 이 세상에서 제거할 것이오."
아아, 정녕 놀라운 선언이 아닌가?
황보옥황의 마지막 결언(決言)은 대전을 웅장하게 진동시켰다.
"그리하여 대무후제국은 중원천하에 새로운 천년무림사(千年武林史)를 이루게 될 것이오!"
휘리리리-!
여왕에게서 발산되는 운무의 회오리는 계속 물결처럼 파동치고 있는데 무린과 아극타는 여전히 표정이 굳어진 채 침묵을 지키고 있다.
"……."
"……."
그들은 황보옥황의 불가사의한 기도 앞에 자신도 모르게 압도당하고 있는가?
한동안 전내에는 물을 끼얹은 듯한 정적이 흘렀다.
문득 황보옥황이 아극타를 향해 물었다.
"아극타, 당신은 대무후제국과 협조하여 본후와 함께 중원의 천년대사(千年大事)를 이룩할 생각은 없나요?"
마침내 황보옥황의 입에서는 본론이 나오고 있었다.
그녀가 무린과 아극타를 초청한 것은 바로 이 한 마디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가 아니겠는가?
아극타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운명의 순간이 온 것이다.
그의 대답에 따라 앞으로의 무림형세는 막대한 영향을 받을 것이다.
아극타가 입을 열었다.
"본인이 중원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밀비천전의 비밀을 풀어 환단무극경을 찾기 위해서였소."
그는 장중하게 말을 이었다.
"그러므로 대무후제국에서 본인을 초청하여 밀비천전의 비밀을 알려준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오. 본인은 앞으로도 대무후제국과 협조하여 함께 환단무극경을 찾아가기를 바라오!"
아극타의 대답은 황보옥황의 뜻을 따르겠다는 의미였다. 사실 지금 그가 어찌 황보옥황의 말에 반대할 수 있으랴.
황보옥황의 다음 말이 떨어졌다.
"그렇다면 아극타왕자는 본 제국의 우승상(右丞相)직을 맡는 게 어떻겠소?"
아극타의 안광이 심유하게 번쩍였다.
"여왕전하의 호의는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오. 그러나 본인에게는 사부님이 계시니 그분의 허락이 내리시기 전에 본인의 의사만으로 결정할 수는 없소."
"사부님이시라면……?"
"천축 천룡밀궁사의 장문인이신 절륜대법황(絶輪大法皇)께서 바로 본인의 사부님이 되시며, 그분은 머지않아 중원으로 오시게 되어 있소이다!"
중인은 흠칫 놀랐다.
<절륜대법황>
삼백 년 전에 이미 천축제일존(天竺第一尊)으로 알려진 전설 속의 절대기인이다.
중원에는 한 번도 출현한 적이 없으나 천하무림인들은 항상 그를 천하제일공포인(天下第一恐怖人)으로 꼽아 왔다.
그는 바로 칠백 순녀의 음정을 취하여 혈혈태양사령천공을 완성한 뒤 중원대장정을 선언한 바로 그 환영인(幻影人)이었다.
아극타가 다시 말했다.
"그러나 본인은 여왕전하의 뜻을 받들어 대무후제국이 천하대사를 이룩하는데 일조(一助)를 하고 싶소!"
아극타의 대답은 교묘했다.
일단 황보옥황의 뜻을 거슬리지 않으면서 여차하면 뒤에 발을 뺄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놓은 것이다.
아극타 역시 일세의 효웅이었다.
황보옥황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좋소."
그녀는 무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영롱한 목소리로 물었다.
"대존야, 대존야께서는 본후와 손을 잡는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이제야말로 중대한 질문은 떨어졌다.
황보옥황이 진실로 듣고 싶어하는 것은 바로 당대의 무림천자인 무린의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중인은 긴장하여 무린의 대답을 기다렸다. 활시위를 당긴 듯 팽팽한 긴장이 고조되었다.
드디어 무린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그의 어조는 무감동할 만큼 담담했다.
"본인은 대무후제국과 손을 잡고 싶은 생각이 없소."
명료한 일언(一言)!
순간 팽팽히 당겨졌던 활시위가 탕! 소리를 내며 끊어지는 것 같았다.
중인은 일제히 안색이 변했다.
"……!"
"……!"
휘류류류륭-!
순간 황보옥황을 감싸고 있던 운무가 괴이한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하지만 무린은 지극히 태연했다.
그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허공에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전내의 기류는 싸늘하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황보옥황의 사유한 말이 흘러 나왔다.
"대존야, 본후는 밤에 다시 한 번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마련하겠어요. 우선 두 분은 본후가 마련한 주연을 마음껏 즐기기 바라겠어요."
말을 마치는 순간, 그녀의 모습은 전내에서 그림자처럼 사라졌다.
전내의 중인은 가벼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외로 여왕의 분노가 폭발하지 않은 것이다.
무린의 표정은 여전히 무심했다.
'황보옥황… 그대는 밤에 다시 무슨 말을 할 셈인가?'
이 때 시녀들이 산해진미와 미주가효를 줄지어 날라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한쪽에 드리워진 붉은 휘장이 쩍 갈라지더니 거의 알몸이나 다름없는 무희(舞姬)들이 아름다운 음률에 맞추어 선정적인 춤을 추며 모습을 나타냈다.
갑자기 대전 안에는 술과 미녀가 넘쳐 흐르는 주연이 벌어졌다.
승상 우주향이 무린과 아극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여왕전하께서는 평소에 주연을 즐기시지 않기 때문에 본녀가 대신 접대를 할 것이니 두 분은 양해하시기 바래요."
무린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극타는 호쾌하게 응답했다.
"주연이라면 얼마든지 사양하지 않겠소!"
삼백 명에 이르는 무희들은 세 남녀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아가며 기이한 윤무(輪舞)를 추기 시작했다.
필릴리- 필릴릴리-!
띠디딩- 띠디디딩-!
온갖 악기의 음률이 귀를 간지럽히며 무희들의 춤은 점점 현란하게 돌아갔다.
무희들의 춤추는 동작은 실로 괴이했다.
그것은 너무나도 선정적이고 뇌쇄적인 몸놀림이었다.
풍만한 유방이 물결처럼 출렁이고 허여멀건한 두 다리가 교묘히 벌어질 때마다 투명한 나의(羅衣) 속에 가려진 여체의 비밀이 그대로 드러나곤 한다.
이것은 차라리 춤이 아니라 육체의 도발이고 환락의 유혹이었다.
웬만한 사람이면 그들의 춤추는 모습만 보아도 전신의 피가 뜨겁게 끓어오르리라.
아닌 게 아니라 무린과 아극타의 표정도 기이하게 변해 있었다.
무희들의 음탕하도록 관능적인 운무에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가?
아극타의 눈매에는 분명 야릇한 열기(熱氣)가 피어나고 있었다.
무희들의 알몸을 핥듯이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는 뜨거운 욕념(欲念)이 피어 오르고 있었다.
그는 특히 무희들의 두 다리 사이를 뚫어지게 쏘아보는 것이었다.
문득 무린의 눈동자에 이채가 스쳐 갔다.
'마라겁사륜무(魔羅劫死輪舞)… 아무도 피해 낼 수 없다는 죽음의 춤이다!'
마라겁사륜무!
한 번 펼쳐지면 반드시 죽음을 보고야 끝난다는 공포의 춤이다.
이 춤을 보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극렬한 욕정의 불길이 타올라 마침내는 전신 혈맥이 파열되어 죽고 만다.
물론 이 마라겁사륜무는 한 번 보게 되면 도저히 눈을 뗄 수 없는 불가해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마라겁사륜무가 점점 더 현란하고 음란하게 펼쳐지며 무린과 아극타의 얼굴도 불그레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미친 듯 돌아가며 흐느적거리는 여체의 물결과 그들이 내뿜는 야릇한 신음성이 전내에 질탕하게 흘렀다.
"으흥……."
"흐흐흑……."
"으응… 허억!"
대전은 온통 음탕한 선정의 회오리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그러나 무린의 눈동자에는 희미한 냉소가 흐르고 있었다.
'정말 볼 만한 광경이군.'
그는 술잔을 들어 거침없이 입 속에 털어 넣었다.
마라겁사륜무의 공포스런 위력도 무린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단 말인가?
실상 무린은 이미 천지무궁심법을 운행하며 마라겁사륜무에 대항하고 있었다.
환인천제문의 독문심법인 천지무궁심법은 온갖 사마공(邪魔功)을 제압하는 놀라운 영력(靈力)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아극타도 어느덧 위기를 느꼈는지 급히 독문심공을 운행하며 마라겁사륜무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무희들은 이제 남녀가 뒤엉켜 정사를 나누듯 바닥에 쓰러져 격렬하게 몸부림을 치며 괴성을 토하고 있었다.
이 때 무린의 귓가에 한 줄기 전음(傳音)이 들려 왔다.
"대존야, 당신은 본녀의 몸이 탐나지 않으세요?"
달콤한 젊은 여인의 음성이었다.
무린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대전 안을 둘러보았다.
분명 무희들 중에 누군가가 보낸 전음이었다. 그 수많은 무희들 중에서 누가 보낸 전음인가?
문득 무린의 시선이 한 무희의 시선과 마주쳤다.
미간에 붉은 홍점(紅點)이 있는 무희였다. 그녀의 용모는 유난히 아름다웠고 몸매는 유난히 풍염하고 육감적이었다.
그야말로 사내의 혼을 앗아갈 만한 여체였다.
무린과 시선이 마주치자 그녀는 뇌쇄적으로 생긋 웃으며 다시 전음을 보냈다.
"대존야, 당신은 본녀의 몸이 탐나지 않으세요?"
동시에 그녀는 풍만한 유방을 크게 출렁이며 두 다리를 살짝 벌려 뒤틀었다.
도발적인 유혹!
무린은 넌지시 미소를 던지며 전음으로 물었다.
"물론 탐나오. 그런데 무슨 좋은 이야기라도 있소?"
무희가 전음으로 대답했다.
"당신이 원한다면 내 몸을 줄 수도 있어요. 한 번만이 아니고 평생 동안 당신이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말이에요!"
무린은 다시 미소를 지었다.
"물론 거기에는 조건이 있겠구료?"
무희는 은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러나 그 조건은 아주 간단해요."
"말해 보시오."
"조건은 단 하나… 여왕을 죽이는 거예요!"
또렷한 전음이었다.
무린의 검미가 살짝 찌푸러졌다.
"……!"
"당신이 여왕을 죽여 준다면 나는 평생 당신의 노예가 되어 하라는 일은 무엇이든지 하겠어요."
"여왕을 죽이려는 이유가 무엇이오?"
"그건 지금 말할 수 없어요."
전음을 마친 무희는 더욱 격렬히 몸부림을 치며 사람의 피를 끓게 하는 광란의 춤을 추기 시작했다.
누구라도 그녀의 춤을 보면 마음 속으로 다음과 같이 소리치게 되리라.
- 저 여자와 한 번 즐길 수만 있다면 어떠한 대가라도 치루겠다!
그 정도로 여인의 춤은 숨막히게 뇌쇄적이고 선정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무린은 지극히 냉철한 시선으로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다.
반면 아극타는 끓어오르는 욕정의 불길을 끄기 위해 이를 악물고 있었다.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고 있었다.
그는 마라겁사륜무를 파해하지 못하고 욕정이 폭발하는가?
이 때 우주향이 요염한 홍소를 터뜨렸다.
"호호호… 과연 두 분의 공력은 대단하군요. 무희들의 춤은 이만 끝내고 이제 술이나 마음껏 마시도록 할까요?"
그녀가 한 손을 치켜들자 삼백여 무희들은 즉시 대전에서 썰물처럼 사라져 버렸다.
겨우 마라겁사륜무가 끝난 것이다. 아니, 여왕의 시험이 끝났다고 하는 게 옳으리라.
여왕은 마라겁사륜무로써 은연중 무린과 아극타를 시험해 본 것이다.
그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며 시험의 결과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3권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