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정(欲情)
한편 궁천무는 궁장소녀의 안내를 받아 한 우아한 침실로 들어갔다. 아름다운 가구와 호화로운 침상이 놓여 있는 방이었다.
"오늘 밤은 여기서 쉬고 우리 주인님은 내일 뵙도록 해요."
이렇게 말한 궁장소녀가 깜찍하게 어여쁜 얼굴에 기이한 미소를 띄며 물었다.
"당신 마음에 들었나요?"
궁천무는 주인을 만나는 줄 알고 있다가 하룻밤 연기가 되자 약간 미간을 찌푸리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한 침실이오."
"나는 내가 당신 마음에 들었느냐고 물었어요."
궁천무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뜻이오?"
"나는 오늘 밤 당신과 함께 자라는 주인의 명을 받았어요."
"……!"
돌연 소녀가 옷을 훌훌 벗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궁장이 순식간에 바닥에 널려지고 엷고 아른아른한 침의가 드러났다.
소녀는 거침없이 침의를 벗기 시작했다. 침의가 아래로 주르르 흘러내렸다. 희고 둥근 어깨가 드러나고 이어서 가슴이 나타났다.
그녀는 젖가리개를 하고 있지 않았다.
봉긋하게 부풀어오른 가슴. 이제 막 성숙하기 시작한 탐스러운 육봉이 눈부시게 나타났다.
양쪽 가슴의 몽실한 육봉 끝에는 작은 분홍색 꼭지가 하나씩 앙증맞게 붙어 있었다.
매끈한 아랫배의 오목한 배꼽, 그 아래 은밀한 곳은 작은 분홍색 천조각으로 가려져 있었다.
소녀답지 않게 염색을 물씬 풍기는 몸이었다. 실로 풋풋하고도 싱싱한 나신이 아닌가!
"……."
궁천무의 검미가 가늘게 좁혀졌다.
소녀가 다시 물었다.
"이제 마음에 들었나요?"
"……."
궁천무는 아무 대꾸가 없다.
소녀는 비소(秘所)를 가린 분홍색 천조각에 손을 대었다.
"이것도 벗어야 마음에 들겠어요?"
그녀의 쏘는 듯한 눈은 궁천무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요염할 만큼 당돌한 태도였다.
문득 궁천무의 입에서 조용한 음성이 흘러 나왔다.
"그것은 내가 벗겨 주기로 하지."
소녀는 야릇하게 웃었다.
"당신은 내가 마음에 든 모양이군요. 그럴 줄 알았어요."
소녀는 즉시 침상으로 올라가 금침 속에 몸을 눕혔다.
궁천무는 묵묵히 그녀 옆에 몸을 눕혔다. 그리고는 한 손을 뻗어 그녀의 가냘픈 허리를 안았다.
다른 한 손은 소녀의 탄력 있게 부풀은 가슴으로 뻗어 갔다.
그의 손이 소녀의 봉긋한 육봉을 천천히 애무하기 시작했다.
소녀는 당연하다는 듯 눈을 스르르 감았다.
애무의 손길은 두 개의 조그마한 젖무덤을 완만하고도 교묘하게 쓸어 나갔다.
소녀의 내리깔린 속눈썹이 미묘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하얀 얼굴이 분홍빛으로 물들며 따스한 숨결이 토해졌다.
"하아아……."
애무가 계속되자 조그마한 유실(乳實)은 딱딱하게 굳어져서 진저리를 쳤다.
궁천무의 손길이 매끈한 아랫배를 스쳐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 손길이 분홍색 천조각 속으로 살며시 침입하는 순간, 소녀는 몸을 부르르 떨며 궁천무의 목을 얼싸안았다.
뜨거운 숨결이 숨가쁘게 토해졌다.
"하아… 하아아……."
궁천무의 손길이 교묘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은 지극히 덤덤하고 무표정했으나 애무의 손길은 매우 능란하고 교묘했다.
열기가 넘치는 시간이 흘렀다.
"흐흐흑……."
소녀는 마침내 숨넘어가는 흐느낌을 토하며 전신에 세찬 경련을 일으키더니 온몸에 힘을 잃고 축 늘어졌다.
궁천무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신색은 놀랄 만큼 냉철했다.
아니 무심하다고 할까?
결코 어린 소녀와 음탕한 장난을 즐긴 탕부(蕩夫)의 얼굴이 아니었다.
소녀의 눈까풀은 아직도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격렬한 쾌감의 여운에 잠긴 모습이었다. 희고 수려한 이마에는 작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궁천무가 흩어진 머리결을 살며시 쓸어 주자 소녀는 눈을 스르르 떴다.
"음……."
맑고 투명한 눈동자에도 작은 이슬이 몇 방울 맺혀 있었다.
궁천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름은?"
소녀는 조그맣게 대답했다.
"녹요(綠曜)……."
"녹요… 네몸에 깃들어 있던 음양잠욕기(陰陽潛慾氣)는 해제되었다. 너는 이제 돌아가도 된다. 너의 주인에게는 명을 그대로 이행했다고 보고해도 좋다."
녹요는 부시시 몸을 일으켰다.
"그게 정말이에요?"
"그렇다."
음양잠욕기는 무엇인가?
<음양잠욕기(陰陽潛慾氣)>
체내에 주입된 강렬한 사음(邪陰)의 정욕이다. 음양잠욕기에 사로잡힌 사람은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으나 한시진 이내에 이성과 교접을 가지지 않으면 전신의 경혈이 파열되어 생명을 잃는다.
또 그와 교접을 가진 사람은 즉시 똑같은 음양잠욕기에 중독되어 새로운 상대와 교접을 가져야 한다.
결국 음양잠욕기를 지닌 사람이 한 번 출현하면 끝없는 정욕의 아수라장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일찍이 중원에는 출현한 일조차 없는 무서운 사음법(邪陰法)이었다.
녹요는 궁천무를 뚫어지게 응시하더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침상에서 내려와 옷을 입었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궁천무를 뚫어지게 응시하더니 조용히 발길을 돌려 침실 밖으로 사라졌다.
궁천무는 침상 위에 천천히 몸을 눕히며 중얼거렸다.
"소황녀… 장난치고는 약간 독랄하군."
화려한 침실.
무린도 한 여인의 안내를 받아 호화로운 침실로 들어섰다. 은은한 분홍색 등촉이 밝혀진 우아한 방이었다.
스스로 이름을 흑운향(黑雲香)이라 밝힌 여인도 매우 우아하고 아름다운 미녀였다.
흑운향은 교성으로 물었다.
"침실이 마음에 드나요?"
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드오."
"이곳은 제 침실이에요."
"……."
"그리고 당신은 저의 침실에 들어온 첫남자에요."
"……."
무린의 눈매가 가느스름해졌다.
흑운향은 무린의 앞으로 사뿐히 다가왔다.
"당신은 제 침실에서 자는 것을 사양하지 않겠지요?"
무린은 빙긋 웃었다.
"물론 사양하지 않겠소. 그런데 낭자는 나와 함께 자게 되오?"
흑운향의 대답은 놀랄 만큼 또렷하다.
"물론이에요."
"그건 소황녀의 뜻이오?"
"그래요."
"낭자가 나와 함께 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오?"
흑운향의 대답은 명료하기 짝이 없다.
"제 몸은 당신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에요."
무린의 검미가 살짝 찌푸러졌다.
"……."
그러나 그는 곧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나는 사양하지 않겠소."
무린은 흑운향의 손을 잡아 침상으로 이끌었다.
흑운향은 살며시 이끌려 왔다.
두 남녀는 얼싸안고 침상으로 올라갔다.
흑운향이 무린의 목을 안으며 나직이 속삭였다.
"제 옷을 벗겨 주세요."
무린은 흑운향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옷이 하나하나 침상 아래로 흘러내렸다.
흑운향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나신이 은은한 분홍빛 등촉 아래 거침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숨막힐 듯 뇌쇄적인 여체였다.
터질 듯 풍만한 젖무덤이 드러나자 짙은 육향(肉香)이 확 풍겼다.
흑운향은 금침 속에 몸을 눕히고 달콤하게 속삭였다.
"당신도 옷을 벗으세요."
이 때 무린의 안광이 기이하게 번쩍이며 한 마디 심유한 음성이 흘러 나왔다.
"몽환열락법(夢幻悅樂法)!"
일순 그의 안광에 부딪친 흑운향의 눈빛이 몽롱하게 변했다.
다음 순간 그녀는 야릇한 신음을 토하며 몸을 비비 틀기 시작했다.
"으흠……."
얼굴은 붉게 상기되고 숨결이 이상하게 거칠어졌다. 그녀는 갑자기 자신의 풍만한 젖무덤을 손으로 움켜잡았다. 그리고는 정신없이 애무하기 시작했다.
스스로의 육체에 대한 격렬한 애무. 그녀의 한 손은 자신의 하복부를 향해 뻗어 가고 있었다.
무린은 등촉의 불을 꺼 버렸다.
칠흑 같은 어둠이 방안에 가득 찼다. 그 어둠 속에서 여인의 뜨거운 숨결은 급속히 고조되었다.
"하아아… 하아……."
무린은 침상에서 내려섰다. 그리고는 발길을 돌려 천천히 침실을 나오며 무심히 중얼거렸다.
"음양잠욕기를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몽환열락법을 통해 혼자 파정(破情)을 하는 것이지."
아아, 무린도 궁천무와 똑같은 시험을 당하고 있었단 말인가?
조그만 호수.
유령환등장의 방대한 후원에는 하나의 호수가 있었다. 기화요초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연못이었다.
침실을 나온 무린은 천천히 호숫가로 다가갔다.
'소황녀 야율린… 그녀는 분명 무서운 여인이다.'
단 한 번 본 그녀의 현란하게 아름다운 얼굴이 눈앞을 스쳐 갔다.
무린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나는 결국 그녀와 무서운 생사의 대결을 벌이게 되리라."
그 대결의 순간은 언제 닥칠 것인가?
무린은 호숫가에 이르자 걸음을 멈추었다.
수면에는 밝은 달빛이 반사되어 은빛으로 부서지고 있었다.
호수 주위의 기화이초는 향긋한 꽃냄새를 뿌려 내고 있었다.
서늘한 밤바람이 상쾌하게 불어 왔다.
이 때 무린의 뒤에 하나의 백영이 글미자처럼 나타났다.
바람결에 백라의를 하늘거리는 여인. 그녀의 얼굴은 백사로 가려져 있다.
무린은 천천히 돌아섰다.
어둠 속에 우뚝 서 있는 여인은 바로 소황녀 야율린이었다.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살인적인 염기는 숨막히게 발산되고 있었다.
야율린은 혼을 날려 버릴 듯 영롱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당신이 호수의 정취(情趣)를 그토록 좋아하는 줄은 몰랐어요."
이어서 그녀는 독백처럼 나직이 말했다.
"아니면 당신이 좋아하는 것은 밤의 정취인가요?"
"……."
무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야율린의 시선이 호면에 떠 있는 은빛 달에 머물렀다.
"물 속에 잠긴 달이 매우 아름답군요. 실체보다 더 아름다운 그림자……."
야율린이 무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무공자,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무린이 담담히 되물었다.
"무엇을 말이오?"
"인생에 있어서 꿈이란 현실보다 더 아름답다는 사실 말예요."
그녀의 음성에는 일말의 애상이 깃들어 있었다.
무린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귀하에게 그런 감상적인 일면이 있는 줄은 몰랐소."
야율린은 다시 호면의 달에 시선을 던졌다.
"그림자라는 것은 환영, 즉 사람이 잡을 수 없는 것이죠. 그러나……."
그녀는 희디흰 옥수를 들어 검푸른 머리결을 쓸어 올렸다.
"그러나 사람은 때로 환영을 손에 움켜잡을 수도 있어요."
갑자기 그녀는 매끈한 손가락을 뻗어 물 속의 달을 가리켰다.
"무공자, 당신은 내가 저 달을 움켜잡는 것을 한 번 보겠어요?"
무린은 미간을 가늘게 좁혔다.
"……!"
물 속의 달을 어떻게 움켜잡는단 말인가?
야율린이 무린의 소맷자락을 이끌었다.
"이리로 오세요."
그녀는 한쪽 호숫가로 사뿐사뿐 걸어갔다.
무린은 어떤 마력에 이끌린 듯 자신도 모르게 그녀와 함께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호숫가에는 한 척의 조그마한 배가 떠 있었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일엽편주(一葉片舟)였다.
야율린은 배 위로 오르며 무린의 소맷자락을 이끌었다.
"당신도 타세요. 나는 이 배를 타고 달을 잡으러 갈 거예요."
무한한 시정(詩情)을 불러일으키는 말이 아닌가?
무린은 그녀의 의도를 모른 채 배에 올랐다.
두 사람이 타자 조그마한 배는 크게 일렁거렸다.
야율린이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호… 배가 뒤집힐지도 모르니 당신은 주의해야 돼요."
수면 위에 현란하게 흩어지는 교소는 매우 고혹적이었다.
그러나 무린은 짐짓 무감동하게 대꾸했다.
"배가 뒤집히면 정말 곤란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귀하일 것이오."
"과연 그럴까요?"
"나는 물 속에 빠지는 걸 개의치 않지만 귀하는 크게 낭패할 것이기 때문이오."
"호호호… 당신의 생각은 틀렸어요. 사실은 그 반대에요."
야율린은 가볍게 한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손에서 신비로운 한 줄기 잠력(潛力)이 뻗치며 배는 수면을 가르고 서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신기공(神奇功). 배는 야율린의 한 손에서 뻗는 잠력의 반동에 따라 달을 향해 일직선으로 나아갔다.
그는 정말 달을 잡으러 가는가?
그러나 물 속의 달은 배가 나아가는 속도와 똑같은 속도로 뒤로 물러날 뿐이다.
야율린은 무린을 돌아보았다.
"보세요. 달이 자꾸 나를 피하고 있어요."
갑자기 그녀는 뱃전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나는 저 달을 잡을 수 있어요."
다음 순간 그녀는 교구를 날려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풍덩-!
하얀 포말이 튀어오르며 그녀의 신형은 검푸른 물결 속으로 잠겨들었다.
무린은 아연해졌다. 그녀가 달을 잡으러 물 속으로 뛰어들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야율린의 현란한 웃음소리가 포말처럼 부서져서 들려 왔다.
"호호호호……."
그녀는 한 마리 인어처럼 달을 향해 헤엄쳐 가고 있었다.
그러나 검푸른 물결이 어지럽게 갈라지며 달은 조각조각 부서져서 흩어질 뿐이다.
야율린은 조각조각 부서지는 달의 편린(片鱗)을 두 손으로 움켜쥐며 다시 교소를 터뜨렸다.
"호호호호… 환영을 잡는다는 건 바로 환영을 깨뜨리는 거예요!"
과연 그런가?
무린은 잠시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저 여인은 나에게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야율린은 검푸른 물결 속을 인어처럼 능숙하게 유영(遊泳)하고 있었다.
달빛의 요정인가, 호수의 요정인가?
무린의 시선은 저절로 그녀에게 못박혔다.
야율린의 유영하는 모습은 환각마저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환영 그 자체였다.
이윽고 야율린은 배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그녀는 한 손을 내밀었다.
"손을 잡아 주세요."
무린은 그녀의 손을 잡아 배 위로 끌어올렸다. 백옥처럼 희고 매끈한 손의 감촉은 약간 차가웠다.
야율린의 흠뻑 젖은 몸이 배 위로 올라왔다.
아, 그 눈앞이 아찔하도록 뇌쇄적인 자태여!
그녀의 백사는 위로 젖혀져서 눈부시게 절염한 얼굴이 달빛 아래 환히 드러나 있었다.
길다랗게 풀어진 머리결에서는 물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젖어서 몸에 찰싹 달라붙은 백라의, 그 투명한 옷 속에 비치는 몸매는 어떠한가?
완연히 드러난 여체의 선정적인 굴곡!
가슴의 분홍색 돌기는 당장 튀어나올 듯하고, 비소(秘所)의 검은 숲까지 은은히 비쳐 보인다.
무린은 차마 그녀의 뇌쇄적인 자태를 정시하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야율린이 녹아날 듯 달콤한 매소(魅笑)를 지으며 물었다.
"무공자, 당신은 내가 물에 빠지면 크게 낭패할 거라고 말했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무린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토하며 말했다.
"미녀가 물에 빠지면 더욱 아름다워진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소."
야율린은 옆으로 살며시 다가 앉았다.
"당신은 미녀를 좋아하나요?"
황홀하도록 감미로운 체향이 코끝에 풍겨 왔다.
무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러면 당신은 나를 좋아하겠군요?"
예사 여인이라면 자기 스스로를 미녀라고 하지는 못하리라. 그러나 야율린에게는 그게 조금도 불가(不可)하게 들리지 않았다.
무린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야율린의 음성이 더욱 달콤해졌다.
"당신이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말해 줄 수 있나요?"
무린의 다음 대답은 의외로 무감동했다.
"미녀란 눈으로 보기에 좋은 여자를 말하오. 나는 귀하가 보기에 매우 좋다고 느꼈소."
무린은 역시 야율린의 살인적인 염색 앞에서도 냉철함을 잃지 않고 있는가?
문득 야율린의 눈동자에 기이한 은채가 나타났다. 불꽃처럼 타오르는 은빛 광채였다.
무린은 순간적으로 그녀가 교묘한 심리적 미공(迷功)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야율린은 무린을 똑바로 정시했다.
'무공자, 너는 본녀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 셈이구나.'
야율린은 자신의 미공에 의한 미색이면 능히 천하인의 혼백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또 그것은 결코 부질없는 자신감이 아니었다.
그런데 무린은 지금 그녀의 자신감에 정면으로 도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야율린의 미간에는 싸늘한 살기가 피어났다.
'무공자, 너의 운명은 나의 손아귀에 잡혀 있다!'
그녀의 눈빛은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무린도 형형한 시선으로 그녀를 정시했다.
'대결의 순간은 의외로 빨리 닥칠지도 모른다!'
두 남녀의 시선은 허공에서 부딪쳐 무섭게 작렬했다.
갑자기 좁은 배 위에는 살벌한 긴장이 감돌았다.
그러나 야율린은 달콤하게 웃으며 말했다.
"미녀는 보기에만 좋은 게 아니에요. 품에 안으면 더욱 좋다는 걸 알게 해 주겠어요."
이렇게 말한 야율린은 젖은 옷을 훌훌 벗기 시작했다. 그녀는 단번에 옷을 모두 벗고 알몸이 되었다.
아아, 그 아름답고 뇌쇄적인 나신이여!
하얗게 빛나는 어깨, 육감적으로 부풀어오른 두 육봉, 잘룩한 허리 밑에는 검은 그늘에 가려진 비부(秘部)가 살짝 드러나고 두 다리는 대리석 기둥처럼 미끈하게 뻗어 있다.
그녀의 눈부신 나신을 보고 심혼(心魂)이 산산이 흩어져 버리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무린의 눈매는 저절로 가느스름해졌다.
"……!"
차마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할 만큼 살인적인 마력을 발산하는 나신이었다.
야율린은 무린 앞으로 다가왔다.
"어때요. 당신 마음에 드나요?"
무린은 시큰둥하게 한 마디했다.
"여자가 부끄러움도 모르고 알몸으로 우뚝 서 있는 모습이란 그다지 아름답지 않소."
야율린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것은 부끄러움 때문이 아니었다. 불 같은 노기가 치밀어오른 것이다.
돌연 무린이 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하… 화내지 마시오. 당신은 화를 내면 더욱 요염해지는 경향이 있소."
그는 옷을 집어 야율린에게 건네 주었다.
"자, 옷을 입으시오. 미녀를 안아 보는 건 다음 기회로 미루겠소."
찰나 야율린의 옥수가 번개처럼 뻗었다.
전광석화 같은 점혈법(點穴法) 일수(一手)였다.
"으윽!"
무린은 신음을 토하며 풀밭 위에 쓰러졌다. 마혈(麻穴)이 찍힌 것이다.
눈 깜짝할 순간에 벌어진 뜻밖의 사태였다.
야율린은 쓰러진 무린을 싸늘하게 쏘아보더니 갑자기 야릇하게 웃으며 말했다.
"무린, 당신은 나의 알몸을 보았지만 나는 당신의 알몸을 본 적이 없어요."
무린은 눈을 껌벅거리며 그녀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
야율린은 무린에게로 몸을 숙였다.
"당신은 그게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
"나는 평소에 남자의 알몸을 한 번 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지금 좋은 기회가 생겼어요."
야율린은 무린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무린은 여전히 눈만 껌벅거리고 있다.
"……!"
옷이 벗겨져서 풀밭 위에 어지럽게 흩어졌다. 무린의 힘차고 아름다운 나신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야율린의 눈빛은 기이하게 번쩍이고 있었다.
"남자의 알몸을 본다는 게 그리 기분 나쁜 일은 아니군요."
결국 무린도 단번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 되었다.
건장한 가슴, 힘차게 뻗은 사지가 조각처럼 힘차고 아름답게 보인다.
그리고 하복부에는 남자의 의연하고도 비밀스런 부분이 숲 속에 솟아 있다.
야율린이 이상한 웃음을 터뜨렸다.
"우후후, 이제 모두 보았어요."
그녀는 무린의 가슴을 살며시 쓰다듬으며 천천히 몸을 굽혔다.
"무린… 당신의 몸은 정말 아름답군요!"
그녀의 봉긋한 육봉이 무린의 가슴에 닿아 왔다. 그녀의 몸이 무린의 몸을 덮었다.
"무린……."
그녀의 따뜻한 숨결이 무린의 얼굴에 토해졌다.
이윽고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입술이 무린의 입술에 닿았다. 촉촉하게 젖어 있는 뜨거운 입술이었다.
그녀의 양 손은 무린의 전신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녀의 숨결이 급속히 거칠어졌다.
"무린… 나를 안아 줘요……."
순간 무린은 야율린을 힘차게 끌어안았다. 야율린이 어느 새 그의 마혈을 풀어 준 것이다.
그도 벌써 불 같은 욕망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야율린은 달콤한 교성을 토해 냈다.
"으으음……."
두 남녀의 알몸은 어두운 배 위에서 뱀처럼 휘감겼다.
무린은 야율린의 전신을 거칠게 애무하기 시작했다.
야율린의 숨결은 점점 뜨거워졌다.
마침내 무린은 그녀의 몸 위로 자신의 몸을 덮쳐 갔다.
무린의 억센 힘에 정복당하는 순간, 야율린은 나직한 신음을 토해 냈다.
"으음……."
그러나 그녀는 곧 난생 처음 경험하는 육체의 기쁨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었다.
"아아아……."
그런데 어느 순간 꿈 같은 열락에 빠져 있던 야율린의 안광이 번쩍 빛났다.
'무린… 나는 이제 그대를 영원한 나의 노예로 만들겠다!'
그녀의 움직임은 기묘하게 변했다.
양 손이 무린의 쌍교혈(雙交穴)을 정확히 짚으며 두 다리가 무린의 하반신을 교묘히 휘감았다.
그녀의 몸놀림은 마치 물결이 파동치는 것처럼 격렬하게 느껴졌다.
그녀의 양손에서는 서서히 진기가 발출되고 있었다.
'사령환음탈혼대법(邪靈幻陰奪魂大法)… 나는 곧 그대의 혼을 빼앗게 된다!'
무린은 계속 쾌락의 늪 속을 헤엄쳐 가고 있었다.
"하아아……."
그는 쾌감이 급속히 고조되는 것을 느끼고 더욱 힘차게 질주를 계속했다.
야율린의 몸놀림도 점점 급박해졌다.
"하아… 하아……."
쾌감의 절정으로 휩쓸려드는 격렬한 정사의 고빗길이었다.
이 때 무린은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으으……."
심혼이 산산이 흩어지는 듯한 환락경! 전신이 수많은 불꽃으로 변하여 흩어지고 한 줄기 의식이 야율린의 몸 속으로 빨려드는 느낌이 밀려오고 있었다.
문득 무린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야율린은 지금 음양사법(陰陽邪法)을 전개하고 있다!'
무린은 흩어지려는 의식을 급히 수습했다.
'그렇다면 나에게도 생각이 있다!'
그의 우수(右手)는 곧 야율린의 명문혈을 향해 뻗어 갔다. 동시에 그의 움직임이 급격하게 변했다. 억세고도 맹렬한 질주가 더욱 빠르게 전개되었다.
무린의 한 손은 야율린의 허리를 힘차게 끌어당겼다.
'밀종환락교령대법…….'
아아, 그것은 남녀의 정사를 통해서 상대를 제압한 비술이 아닌가?
밀종환락교령대법을 전개하면 두 남녀의 혼은 서로 교류되며 공력이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의 심혼을 제압할 수 있다.
야율린은 갑자기 미칠 듯 강렬한 쾌감이 거세게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쾌감의 극치. 그것은 진정 쾌락의 미칠 듯한 절정이었다.
야율린은 숨막히는 신음을 토해 냈다.
"하아… 학… 으허헉……!"
그녀는 당황했다.
'안 돼! 이래서는 안 돼……!'
그러나 그녀의 육체는 그 절정의 쾌감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당장 생명이 끊어져도 이 순간만은 계속되기를 원했다.
그녀의 몸은 격렬히 움직이며 그 미칠 듯한 쾌감 속으로 정신없이 함몰되어 갔다.
"으허허헉……!"
마침내 쾌감의 최절정이 전류처럼 그녀의 몸을 관통했다.
"허어… 헉!"
야율린은 숨막히는 부르짖음을 토하며 축 늘어졌다.
무린의 움직임도 멎었다.
두 사람의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야율린의 숨결이 서서히 낮아지기 시작했다.
아아, 그것은 숨결이 낮아지는 게 아니라 끊어지는 것이었다.
잠시 후, 그녀는 완전히 호흡이 끊겨 싸늘한 시체로 변하고 말았다.
그녀는 환락대결에서 허망하게도 목숨을 잃고 만 것이다.
밀종환락대법이란 얼마나 가공할 괴공(怪功)인가!
무린은 몸을 일으키며 무거운 한숨을 토해 냈다.
'겨우 억고성니의 은혜를 갚은 셈이구나.'
억고성니는 소황녀를 제거해 달라는 유언을 남기지 않았던가?
무린은 옷을 입었다.
이 때 사위팔방에서 기이한 파공음이 들려 왔다.
위이이이잉-!
동시에 무수한 화광(火光)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수많은 불꽃이 수면에 반사되자 호수는 돌연 혈해처럼 붉게 물들었다.
위이이잉-!
고막을 찌르는 파공음은 점점 가까워졌다.
하늘을 뒤덮고 명멸하는 화광은 시야를 온통 가려 버렸다.
누군가가 펼치는 거대한 불꽃놀이인가?
무린은 사위를 날카롭게 쓸어 보았다. 그의 얼굴에 긴장된 빛이 스쳐 갔다.
'염화멸황천라공(炎火滅荒天羅功)… 누군가가 이 장원에 펼쳐진 아납만극대라진을 파괴하려 하고 있다!'
이 때 허공으로 솟구치던 무수한 화광이 일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치치치치-!
화광은 무수한 불꽃의 파편으로 부저져서 아래로 떨어졌다. 유령환등장의 상공 전체가 수많은 불꽃의 파편으로 뒤덮었다.
무린은 놀란 빛을 감추지 못했다.
"누군가가 아납만극대라진을 완전히 파괴하여 유령환등장 전제를 화해(火海)로 만들 셈이다!"
과연 유령환등장 도처에 밝혀진 수백 개의 등롱에 불꽃의 파편이 떨어지자 그것들은 일제히 폭발하기 시작했다.
파팟- 팟- 파파팟-!
등롱이 모두 폭발하면 유령환등장에 펼쳐져 있는 아납만극대라진은 완전히 파괴되고 장원 전체가 불바다로 변하는 것이다.
화르르르-!
벌써 장원은 거대한 불바다로 변해 가고 있었다.
사위팔방에서 시뻘건 불기둥이 무서운 기세로 솟구쳤다. 하늘까지 시뻘겋게 뒤덮은 화해(火海)였다.
무린은 더 지체하지 못하고 전각을 향해 급히 몸을 날렸다.
전각 앞에 내려선 무린은 잠시 망연해졌다.
'과연 누가 이토록 가공할 염화멸황천라공을 펼쳤단 말인가?'
<염화멸황천라공(炎火滅荒天羅功)>
한 번 펼쳐지면 사방 십 리 이내가 완전히 불바다로 변한다.
결국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는 물론 대지까지도 완전 초토로 되는 것이다. 생명체의 씨를 말려 버리는 무자비한 공격법이었다.
화르르르륵-!
사나운 기세의 화염이 앞에서 노도처럼 밀려왔다.
무린은 일순 곤혹을 느꼈다.
'인간의 힘으로 이 거대한 불바다 속에서 빠져 나갈 수 있을까?'
사방에 보이는 것은 무섭게 충천하는 불길뿐이었다.
이 때 한 청년이 무린 앞에 번쩍 나타났다.
"형공, 함께 이곳을 탈출합시다!"
그는 바로 궁천무였다.
흠칫 놀란 무린은 비로소 염화멸황천하공을 비밀히 펼쳐낸 사람이 궁천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백상회의 총찰이 유령환등장을 없애 버리려고 침투해 있었구나!'
궁천무 역시 표정이 굳어 있었으나 그 태도는 놀랄 만큼 침착했다. 그는 북쪽을 가리켰다.
"지금 바람이 북쪽에서 불어 오고 있소. 그러므로 우리가 탈출할 수가 있는 유일한 방향도 북쪽이오."
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형공의 의견에 동의하오."
"그러면 출발합시다. 내가 먼저 앞길을 열겠소."
그는 그 말을 끝으로 허공으로 비조처럼 솟구치더니 북쪽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평범하게 보이면서도 절묘한 신법이었다.
그의 쌍수가 한 번씩 앞으로 뻗을 때마다 사나운 화염이 물결처럼 갈라졌다.
무린은 그의 뒤를 따라 몸을 날리며 내심 감탄했다.
'궁천무 역시 보통 인물이 아니다!'
무린과 궁천무는 나란히 북쪽으로 몸을 날려갔다. 불바다 속의 맹렬한 질주였다.
그러나 화염의 기세는 점점 강해졌다. 광란하는 불길이 천지를 온통 삼킬 듯했다.
두 사람의 얼굴에서는 땀이 비오듯 흐르기 시작했다.
진정 염화멸황천라공은 인간의 힘으로 탈출할 수 없는 것인가?
이 때 앞쪽에서 여인들의 처절한 비명이 들려 왔다.
"아아악!"
"아악!"
많은 여인들이 불길에 휩싸여 미친 듯 아우성을 치는 게 보였다.
화르르르- 쿠쿠쿵-!
거대한 전각이 맹렬한 화염 속에 무너지고 있었다.
여인들은 유령환등장의 시녀들이었다.
쿠르르- 쿠쿠쿵-!
마침내 웅장한 전각이 산사태처럼 붕괴되며 여인들은 모두 불바다 속으로 함몰되었다. 차마 눈뜨고는 보지 못할 처참한 광경이었다.
유령환등장은 엄청난 희생을 치르며 완전히 초토로 변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 그들은 화염을 뚫고 계속 북쪽으로 쏘아 갔다.
얼마 후, 거대한 불바다 속을 겨우 빠져 나왔을 때 무린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지옥을 겨우 빠져 나왔구나!'
유령환등장 일대는 여전히 엄청난 화염에 휩싸인 채 맹렬히 타오르고 있었다.
하늘이 온통 벌겋게 타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지욱한 연기가 구름처럼 피어 오르고 있었다.
이 때 무린은 궁천무가 보이지 않는 걸 깨달았다. 궁천무는 어디론지 바람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무린은 그의 심중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무린이 동방의 응징자라는 걸 생각하며 말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중원을 지키려는 백상회와 무린은 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린은 가벼운 탄식을 토한 뒤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