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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왔다고?”
식당에서 국밥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윤삼에게서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의자에서 엉덩이가 절로 들썩들썩했다.
“어어, 지금 갈게. 잘 모시고 있어라.”
막 통화를 마쳤을 즈음 뚝배기가 나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게, 군침이 돌았다. 쩝, 입맛을 다시던 창수는 돌아가려던 여주인을 붙들었다.
“이모. 미안한데 이것 좀 싸줄 수 있어?”
“왜? 기껏 다 차렸구먼. 식으면 맛없어. 뜨거울 때 먹고 가.”
“급한 일이 생겨서. 미안.”
눈썹을 늘어뜨리며 애교 있게 호소해본다. 여주인은 어이구, 하며 그를 떨쳐내고는 뚝배기를 다시 거둬갔다. 음식이 포장되는 동안에도 창수는 뭐 마려운 개처럼 문 쪽을 바라봤다. 검은 비닐봉지가 건네졌을 땐 뒤도 보지 않고 가게를 나섰다.
각종 해산물을 팔던 상인들이 꽁지 빠지게 달려가는 창수를 낯설게 바라봤다. 항시 느긋하던 인사가 그러고 갈 땐 뭔 일이 나든 난 것일 터였다.
어째 얼굴은 터지려는 웃음을 참는 모양새였지만. 그는 무슨 일이냐, 물어 볼 참도 주지 않고 금세 시장에서 사라졌다. 상인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를 볼 뿐이었다.
뛸 때마다 손에 들린 봉지가 좌우로 출렁거렸다. 형편없는 폐부가 고통을 호소했지만, 그런 것쯤은 가볍게 무시해 넘긴다. 사거리 앞에선 초조하게 발을 동동거리다가 차가 오지 않는 틈에 무단횡단을 감행했다.
거침없던 뜀박질은 고물상을 지날 때쯤 제동이 걸렸다. 불현듯 이미 지나온 길을 되돌아간다. 그렇게 길가에 내놓은 장롱 앞에 섰다. 반 깨져나간 거울이 붙어 있었다.
그곳에 비친 꼬락서니가 말도 아니었다. 머리는 잔뜩 헝클어지고, 땀 때문에 셔츠가 몸에 잘싹 달라붙었다. 그나마도 오랜 고민 없이 골라 입은 것이었다.
내친김에 팔을 들어 킁킁 냄새도 맡아본다. 뭐가 마뜩잖은지, 눈썹이 곧 일자가 됐다 고민하며 귓등을 긁적이던 창수는 다시 방향을 틀었다. 아무래도 이대로 가면 안 될 것 같았다.
성큼성큼 집으로 향하며 전화를 건다. 곧 휴대폰 저편에서 윤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난데. 일 때문에 조금 늦을 거 같거든? 손님 뭐 마실 거라도 내주고 있어. 꼭 붙잡아둬야 한다?”
알았다는 대꾸를 듣자마자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귓가엔 가빠진 제 숨소리만 거푸 들렸다.
섬 유일의 나이트클럽엔 오늘도 사람이 없었다. 네 개의 크고 작은 섬을 다리로 연결하면서 왕래가 편해지고, 상권도 살아났다지만 여전히 주민 태반은 어업과 농업, 양식업 따위에 종사하고 있다. 고된 노동 후 대폿집에서 한잔 걸쭉하게 거치는 거라면 또 모를까. 시끄러운 기계음에 몸뚱이를 흔드는 게 구미에 맞을 턱이 없었다.
주초면 관광객들도 들어오질 않아 뜨내기손님조차 기대할 수 없었다. 이럴 땐 그저 막막하게 아침을 기다릴 뿐이다.
텅 빈 홀에 최신 가요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입구에 서 있던 윤삼이 제 흥에 취해 몸을 슬슬 흔들어본다. 그런 그를 누군가 뒤에서 대뜸 걷어 찼다. 창수였다.
“손님 들어오는 것도 모르겠다, 새끼야.”
“형님 나오십니까. 가만히 있으려니 졸려서.”
윤삼은 멋쩍게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러다 눈앞의 창수를 보곤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뜬다
“옴뫄, 형님 오늘 완전 눈부셔 부려요.”
유명 걸그룹의 안무까지 따라 하며 호들갑이다. 그도 그럴 게, 창수의 몸 곳곳에서 누런 금붙이가 짤랑거렸다. 목과 팔에는 말할 것도 없고 손가락마다 가닥가닥 반지를 꼈다. 선명한 알로하셔츠며 탈색한 머리에 조명까지 더해지니, 과연 눈 둘 데 없이 반짝반짝하긴 했다.
"오늘 어디 좋은 데 가십니까?”
“이 정도면 그냥 보통이지. 좀 괜찮아 보이냐?”
윤삼은 공연히 민망해하는 창수를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쭉 훑었다. 그러다가 박수를 치더니 두 엄지를 치켜세웠다.
“최고로 멋지십니다. 계집에들 줄줄이 자지러지겠는데요?”
“새끼. 오버한다”
윤삼의 엉덩이를 냅다 걷어찼다. 픽 웃는 게 영 싫은 기색은 아니었다.
그새 헝클어진 옷매무새를 추스르면서 사위를 두리번거렸다.
“그건 그렇고 어디 있어?”
“가장 안쪽으로 모셨습니다.”
윤삼이 손님에게 하듯 허리를 굽히며 극진히 안내한다. 그가 가리키는 쪽으로 기세등등하게 걸어갔다. 좁다란 통로를 걸어 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룸에 다다른다. 닫힌 문을 노크할까 하다가 남세스럽다 생각하며 벌컥 손잡이를 젖혔다.
안에 앉아 있던 이가 고개를 든다. 무심코 들어서던 창수가 지레 움찔했다. 누가 와 있다는 건 진즉 전해 들었다. 그럼에도 그 모습이 너무 의외라서, 심장이 순간적으로 발작한 듯했다.
눈매를 가리던 안경이 다시 자취를 감췄다. 원래 일할 때만 쓴다고 했던가. 어두워서 확신이 서진 않았지만, 검은 셔츠와 바지를 입은 듯했다. 흰 피부가 대조되어 유난히 두드러진다. 덕택에 셔츠 단추가 두어 개쯤 풀려있다는 것도, 적당히 걷힌 소매도 한눈에 들어왔다. 자유시간엔 누구나 그럴 테지만 다소 흐트러진 모습이 낯설게 눈에 박힌다.
창수를 발견한 재윤은 표정 없던 얼굴을 풀며 웃었다. 왔어, 하는 어조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멍하니 보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어, 그래. 내가 좀 늦었지?”
“일하는 시간도 모르고 무작정 찾아온 게 잘못이지.”
“아냐, 잘 왔어. 언제든 오라고 했잖아. 기다리고 있었다고.”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기다렸어?”
웃음 섞인 대꾸가 돌아왔다. 사람 대하는 게 일이라서 그런가, 서울 물이 단단히 들어서인가. 꼭 유치원 선생이 어린애라도 대하듯 한다. 윤삼이 아직 지켜보고 있어서일 거였다. 귓불이 돌연 뜨거워졌던 건.
“그, 일단 아가씨들 좀 부를까?”
머리를 긁적이다가 슬쩍 윤삼을 돌아봤다. 멀뚱히 서 있던 그가 눈치껏 “알겠습니다, 형님.” 하며 고개를 꾸벅했다. 바로 돌아나가려는 그를, 재윤이 만류했다.
“왜? 뭐 더 필요한 거 있어?”
“오늘은 둘이서만 있고 싶은데.”
재윤이 슬며시 상체를 당겨왔다. 그를 응시하던 창수의 눈에서 다시 초점이 나간다. 뭐 대단한 얘기를 들었다고 그러는 건지 사고회로가 일시 중지된 것 같았다.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재윤이 한마디 더 보탰다.
“할 얘기도, 묻고 싶은 것도 많아. 다른 사람까지 끼워줄 여력은 아무래도 없을 거 같다.”
왜인지 모르게 마른 침이 넘어갔다. 재윤은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묘한 긴장감에 사지에 뻣뻣하게 힘이 들어갔다.
홱 윤삼을 돌아봤다. 그는 영문 모를 표정으로 어쩔까요, 했다. 그를 다짜고짜 문밖으로 밀어냈다. 그러곤 가타부타 말도 없이 문을 꼭 닫아 버린다. 윤삼은 문밖에서 필요한 거 있으면 부르세요, 할 따름이었다.
“일은 다 끝내고 온 건가? 나 때문에 도중에 왔다거나.”
“나 그렇게 계산 안 서는 놈 아냐, 새끼야”
허세를 부리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재윤이 뭔가 못마땅한 듯 한참을 본다. 창수는 영문을 모른 채 왜, 했다.
“더 가까이 오는 게 어때? 음악 소리 때문에 잘 안 들릴 거 같은데.”
“하하, 그러네.”
슬쩍 궁둥이를 재윤 쪽으로 옮겼다. 그러나 티도 나지 않았다. 됐나 싶어 재윤을 보자 그가 제 옆쪽 자리를 손으로 가만가만 두드렸다.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됐을 테지만, 창수는 재자 궁둥이를 떼서 그곳에 앉았다
그제야 재윤의 얼굴이 만족스러워진다.
우선 테이블 세팅부터 죽 살폈다. 당부한 대로 양주와 과일 안주까지 놓여 있건만, 건드린 것 같지 않았다. 그저 맥주만 한 컵 깨끗이 비웠을 뿐이다. 에게, 하며 눈썹을 늘어뜨렸다.
“더 좋은 거로 마시지. 내가 쏠 건데.”
“이쪽이 뒤끝도 없고 좋아. 술 마시겠다고 온 것도 아니고.”
“술 마시러 온 거 아니면. 나 보고 싶어서 왔나?”
장난스럽게 키득거렸다.
“응.”
양주를 따던 손이 멈칫한다. 잘못 들었나 싶도록 간단명료한 대답이다. 왜인지 자마 재윤 쪽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급격히 공기가 뻑뻑해진다. 숨을 쉬어도 흉부가 꽉 막한 듯 답답했다. 창수 자신만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아, 새끼. 왜 진지 빨고 그러냐. 농담도 못 하겠네.”
부러 큰소리를 내며 면박을 준다. 재윤은 낮게 웃고 말뿐이었다.
긴장을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양주 뚜껑을 돌렸다. 하지만 오늘따라 잘 되지 않았다. 손이 굳어버린 것 같았다. 거푸 뚜껑 위를 겉돌며 미끄러질 뿐이었다.
아, 이게 왜 이래.
불만스레 중얼거렸을 즈음, 재윤의 하얀 손이 불쑥 시야 한 귀퉁이를 파고들었다. 그대로 창수에게서 술병을 가져간다. 단단히 잠긴 것 같던 뚜껑은 그의 손 안에서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돌아갔다.
재윤은 대수롭지 않게 아이스 버킷을 열었다.
“얼음 넣지?”
“……아니. 아깝게 뭘 희석해서 마시냐.”
“몸에 안 좋아. 간 생각도 해줘야지.”
그럴 거면 왜 물어본 건지.
나긋이 잔소리하더니 빈 잔에 얼음을 넣는다. 양주도 적당히 따라 창수 앞에 내려놓았다. 그에게도 권하려 하자 난 이거면 됐어, 하며 재차 잔을 맥주로 채운다. 의외로 술이 약한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한 번도 그와 대작해본 적이 없었다. 당연하게도 주량은 얼마나 되는지, 술에 취하면 어떤 버릇이 나오는지, 어떨 때 술을 먹고 싶어 하는지 알지 못한다.
함께 있었다면 첫 술 상대는 서로가 되었을 거다. 웃지 못 할 사연도 생겨났을 테고. 한 잔, 한 잔에 서른 인생을 이야기할 수도 있었으리라.
너무 마땅하게 누렸을 것들. 이제는 그저 그랬더라면, 하는 가정이 될 수 밖에 없는 것들.
픽 웃으며 술을 들이켰다. 시원하게 식혀진 액체가 식도를 타고 흘러 들어갔다. 싸한 느낌에 저절로 눈이 접힌다. 그동안에도 옆에서 묵묵한 시선이 느껴졌다.
의식 없이 고개를 돌리자 곧장 재윤과 눈이 마주쳤다. 힐금 뒤를 돌아봤던 것은 그의 눈빛이 뭔가를 탐색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 만한 대상은 끝내 찾지 못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재윤이 먼저 대화의 물꼬를 튼다. 뭘 그렇게 보느냐, 물을 참도 주지 않은 채였다. 창수는 금세 의구심을 사그라뜨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뭐, 보다시피 이러고 살았다. 요즘은 개나 소나 다 대학을 가서 그런가. 중학교 졸업장 간신히 받은 놈은 제 밥그릇 챙기고 살기도 어렵더라고. 너는? 워낙 똘똘했으니까 대학 정도야 무난히 갔을 테고?”
재미없는 얘기가 길어질세라 서둘러 대상을 전환했다. 재윤은 고개를 얕게 끄덕이면서 운이 좋았지, 했다 예전부터 필요 이상으로 얌전떠는 구석 이 있었더랬다.
“재수 없는 놈. 내가 아무리 무식해도 의대 가기가 얼마나 힘든지 정도는 알아.”
“그보다 어려운 일도 많지.”
“배부른 소리냐. 니 새끼한테 힘든 일이 어디 있다고. 이젠 든든한 백까지 생겼겠다, 밥 먹고 살 걱정도 없겠다, 또 의사라고 그러면 웬만한 계집애들은 껌뻑 죽잖아. 운이 없어서 이 구석으로 똑 떨어진 거, 그게 유일한 오점이겠지. 아냐?”
“의미야 다르지만, 아예 아니라곤 못하겠네.
재윤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다소 모호한 대꾸였지만, 애써 이해하려 들진 않았다. 누구에게든 저마다의 괴로움과 어려움은 있는 거랬다.
적당한 화젯거리를 찾다가 주변인의 안부부터 물었다.
“네 어머닌 좀 어떠셔?”
“건강해. 경주마가 따로 없다고 할까. 앞만 보고 달리는 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기도 했다. 오래 전 봤던 재윤의 어머니는 그와 비슷한 생김새였지만, 일체 웃음이 없었다. 짜증이 만연하던 목소리와 불만 가득하던 표정을 기억한다. 엄마는 재윤 자신이 사라지길 바라는 거 같다.
그 시절 그가 심심찮게 했던 말이었다. 확실히, 창수 자신이 상상하던 보통의 어머니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새 아버지란 양반은?”
“돌아가셨지. 연배도 연배였던 데다 지병까지 있었거든.”
“그럼 다른 가족은? 살림 합칠 때 그쪽에도 자식은 있었을 거 아냐?”
“동갑내기 여자애가 하나 있었어.”
“동갑이면 많이 티격태격했겠네? 대가리 굳고 나서야 만나서 데면데면했으려나.”
“그다지 부딪칠 일은 없었어.”
창수는 하긴, 하며 고개를 큼직하게 끄덕였다.
“누가 너를 싫어할 수 있겠냐.”
“그렇게 생각해?”
재윤이 웃으며 물었다. 어쩐지 놀리는 것 같은 어조였다.
“아니, 뭐. 별 뜻은 없고 워낙 껍데기가 훌륭하니까. 또 답지 않게 친화력도 좋고…….”
대단한 의미를 담아 한 말은 아니건만, 저도 모르게 변명을 늘어놓게 됐다. 웅얼웅얼 뒷말을 삼키다가 얼른 화제를 전환했다.
“애인은?”
애매하게 흐트러졌던 얼굴이 잔뜩 얄궂어진다. 맥주를 들이켜던 재윤은 여상하게 대꾸했다. 뭔가를 상기하듯 두 눈이 잠시 허공을 헤아린다.
“만나던 여자들은 몇 있었지.”
“왜 과거형이야. 지금은?”
“보통은 정리하고 오니까. 그게 매너고.”
그런가. 하긴, 2년도 채 되지 않는 군 생활조차 이별로 시작되는 경우가 흔하다고 했다. 서로를 위한 희생이니 어쩌니 하지만 그런 것까진 잘 모르겠다. 그저 마음이 그만큼밖에 안 되었거니 멋대로 치부할 뿐이다.
어쨌거나 아까운 짓을 했다, 재윤이 만났다던 여자는. 당장 몇 년이 길게 느껴질 수야 있겠지만, 어디 가서 쉽게 만날 수 있을 법한 인물은 아니잖은가. 창수 자신이었다면 그가 헤어짐을 얘기하기 전에 짐을 싸서 앞장 서라 했을 거다.
잠시나마 그런 상상을 해보다가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왜.”
“아, 그냥. 네가 만났다던 여자들 나중에 땅을 치겠지 싶어서.”
“설마 그러려고.”
“재미없게 체면 차리기는. 막말로 너 같은 놈을 어디 가서 또 낚아채겠냐? 남자가 봐도 이거 물건이지 싶은데.”
무심결에 바라본 재윤이 멍한 표정을 했다. 뭔가 충격이라도 받은 것 같았다. 창수 자신이 못할 말이라도 했던가? 잠잠히 되짚어 보지만, 짐작 가는 구석이 없다. 커지던 의문이 표출되려는 찰나, 재윤이 입술을 늘어뜨리며 웃었다.
“그래?”
노래라도 부르는 듯 목소리가 한없이 살랑거린다. 칭찬은 뭣도 춤추게 한다던가. 그렇다고 그렇게 대놓고 생글거릴 건 또 뭐람.
“벌써 취했나 보네, 우리 샌님이가. 계집애처럼 근지럽게 굴어대는 게?”
재윤이 나직한 웃음을 터트린다. 창수도 함께 낄낄거렸다.
그래서 만났다던 여자들은 어떤 타입이었어? 혀끝까지 올라왔던 물음은 도로 삼켰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본능처럼 목구멍에서 제어를 거는 것 같았다.
“너는 어떤데?”
입을 다문 사이, 재윤이 그대로 질문을 넘겨준다. 바로 길녀가 떠올랐다. 그녀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동거하는 사이. 그거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창수는 더 적절한 표현을 고르고 또 골랐다.
“아, 나는 데리고 시는 여자가 하나 있긴 한데…….”
“결혼을 전제로 한 동거?”
“아니. 설명하기가 좀 난해해서. 일단 의리 같은 거라고 할까 피차 결혼 생각할 만큼 여유도 없고.”
실없이 웃으며 목을 축였다. 차디찬 얼음만 입술에 닿는다. 앞서 잔을 다 비웠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한 탓이었다. 급히 양주를 잡으려는데, 재윤이 그것을 가져가 손수 잔을 채워준다.
“그럼 계수씨라고 불러야 하나? 어떤 분이야?”
“계수씨는 무슨. 다른 건 모르겠고 노래 하난 기똥차게 잘 불러. 어렸을 땐 가수도 하려고 그랬다는데, 그거야 진짠지 구란지 알 수가 없고.”
“그리고?”
“그리고? 음. 그 정도면 제 나이보다 어려 보이고 예쁘장하지. 화장 안 한 게 더 예쁘지만. 술만 조금 덜 마시면 좋은 여자야. 술 처먹고 진상 부리는 것도 한두 번이야 귀엽잖아?”
“뭐가 그렇게 좋았어?”
실실 쪼개며 얘기하다가도 슬슬 난처한 기분이 들었다. 재윤은 생글생글 웃으며 묻지만, 꼭 취조라도 당하는 듯했다. 물론 기분 탓일 거였다. 그저 길녀와의 관계를 명확히 설명할 수 없음에 곤란한 것일 뿐.
“세상 쓴맛 단맛 다 봐서 그런가, 나름 속도 깊거든. 비슷한 구석이 많아서 얘기하기도 편하고.”
길녀의 장점을 쥐어짜 보다가 손을 저었다.
“야, 그만하자. 근지러워서 더는 못 하겠다. 팔불출 흉내도 내던 놈들이 나 내는 거지.”
재윤은 말없이 웃곤 양주를 가져갔다. 아직 남았는데, 하려는데 새 잔을 채워 제 입을 축인다. 얼음 하나 넣지 않은 채였다. 그의 목울대가 느릿하게 너울거린다. 뭐 그렇게 대단한 광경이라고, 그걸 마냥 지켜보고 있었다.
이내 뭔가를 생각하는 듯 잠시 정면 어딘가를 보던 재윤과 눈이 마주쳤다.
찰나나마 증발했던 웃음이 그의 얼굴에 걸린다.
“한번 만나보고 싶네.”
“으응. 뭐, 나중에. 봐서.”
어차피 지금쯤이면 길녀도 출근했을 거였다. 부르면 당장에라도 합석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의 만남은 다음으로 미뤄둔다. 문득문득 갑갑한 기분이 들어 누구라도 와줬으면 싶다가도 결국 그 기회를 스스로 내던진 셈이었다.
하나하나 집어먹다 보니 과일이 금세 바닥을 보였다. 뜨내기손님이 아니고서야 절대 추천하지 않는 안주건만, 오늘따라 계속 손이 갔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재윤이 여상히 묻는다.
“저녁은 먹었어?”
집에다 던져두고 온 국밥 봉지가 생각났다. 이제 보니 과일이 달게 느껴지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
늘 일수를 걷기 전에 밥부터 먹는다. 그맘때쯤의 식사가 하루 중 유일하게 챙기는 끼니기도 했다. 일을 마치고 집에 가면 쓰러져 자기 바쁘니까. 기껏해야 라면 하나 끓여 허전한 속을 달래기 일쑤였다. 하지만 오늘 하루쯤이야 상관없었다.
이거 먹지 뭐, 하면서 누렇게 변색된 사과를 집었다. 재윤이 그 손목을 붙들어 당겼다.
“나가자.”
“응? 왜.”
“뭐라도 먹어야지.”
“아니, 괜찮다니까.”
한사코 사양하는데도 상박 깊은 곳을 잡아 일으킨다. 전혀 안 그렇게 생긴 주제에 힘은 또 어찌나 센지. 더 버텨볼 재간이 없었다.
“으응? 또 왔어?”
국밥집 여주인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색한 웃음으로 무마하며 국밥 두 그릇과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재윤은 자리를 잡고 앉으면서 소주는 됐습니다, 했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아주는 손길이 단정하기 그지없다.
“무슨 얘기야?”
넋 놓고 보고 있는데 그가 불시에 물었다. “응?” 하자 여주인이 들어간 주방 쪽을 가볍게 고갯짓한다. 대충 듣고 넘겼으면 했건만, 이런 식의 바람 이뤄지지 않는 듯하다.
“아, 내가 여기 단골이거든. 워낙 뻔질나게 드나드니까.”
어줍게 둘러댔다. 하지만 곧 돌아온 여주인의 한마디로 애써 변명한 게 무색해졌다.
“아까 싸간 건 먹은 거야?”
“아, 이모 좀.”
“왜, 이 녀석아?”
“슬슬 가게 정리할 시간 아니야? 보던 일이나 마저 보셔.”
영문도 모르는 여주인을 주방으로 내쫓는다. 슬쩍 돌아보자 재윤은 각각의 뚝배기에 소금을 덜어 넣고 있었다. 어쩐지 얼굴에는 묘한 웃음이 걸렸다. 그렇게 생각해서 그리 보이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뒤통수를 긁적이며 맞은편으로 돌아가 앉았다.
어쩐지 풀이 죽어선 솔직하게 고백한다.
“실은 아까도 먹으러 왔었거든”
“그랬어?”
재윤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물까지 친히 따라주었다. 그의 입가에 빙긋 걸린 웃음이 조금도 사그라지지 않는다. 창수는 괜스레 제 발 저려가며 쉼 없이 주절거렸다.
“바쁜 일이 생겨서 못 먹고 그냥 간 거야. 딱히 너 왔다고 해서 서둘러 일어났다거나 그런 건 아니라고.”
“응 그랬겠지.”
“진짜라니까?”
또다. 날아갈 듯한 어조로 대강대강 수긍하고 넘기려는 게. 그러면 상대가 놀림당하는 기분이 된다는 걸 알고나 있을까. 뭔가 제대로 응수하고 싶은데 도무지 방법을 못 찾겠다. 으으으. 벙어리 냉가슴 앓듯 속으로 끙끙 거릴 따름이었다.
“식기 전에 먹어.”
재윤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식사나 권할 뿐이었다.
그래, 국밥엔 죄가 없다. 잠깐 사이 배고픔도 더 극렬해졌다. 창수는 평소처럼 깍두기 국물부터 조금 부었다. 작은 무 몇 개가 덩달아 떨어진다. 그것들을 숟가락으로 대충 휘저어서 먹음직스럽게 퍼먹었다. 연속된 숟가락질에 금세 두 볼이 볼록 부풀어 오른다. 몇 술 뜨던 재윤은 손을 멈추곤 그 모습을 골똘히 지켜봤다.
몸을 숙일 때마다 셔츠가 팔랑거렸다. 그 틈으로 언뜻언뜻 깡마른 몸이 보인다. 크고 작은 흉터가 여럿, 눈에 띄었다. 그것들이 지금껏 창수가 살아온 삶을 대변히는 것 같았다.
재윤의 얼굴이 차츰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다칠 일이 많은 건가?”
흉 졌네, 하면서 제 목덜미를 톡톡 건드린다. 멀뚱히 보던 창수가 그를 따라 제 목에 손을 대봤다. 곧 살짝 도드라진 살점이 손끝에 닿는다. 주변 살갗보다 얇고 물컹물컹했다.
술 취한 손님을 제지하다 깨진 병에 긁힌 상처였다. 지금이야 그런 일도 있었지, 하지만 당시엔 꽤 많은 피를 흘렸더랬다. 금세 정신이 몽롱해졌던 터라 상황 자체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초상 치르는 줄 알았다던 윤삼의 소감에 그랬거니 할 따름이었다.
“아니. 위험할 게 뭐 있어. 일이라고 해봤자 술 취해서 꼬장 부리는 놈들 얌전히 돌려보내거나 몇 푼 되지도 않는 돈 수금하는 게 전분데. 그냥 바늘 같은 거에 긁힌 수준이지.”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다시 식사에 집중한다. 하지만 재윤은 손에 든 숟 가락을 더 움직이지 못했다.
미련 맞을 정도로 한결같다. 그도, 그를 둘러싼 환경도. 예나 지금이나 창수는 너무도 위태로워 보였다.
◈◈◈
- 아빠가 왔어.
문틈 새로 고개를 내민 채, 창수가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누군가의 눈치를 살피듯 목소리는 한껏 눌려 있었다.
그의 아버지에 관해서는 종종 얘기를 들었다. 포구에 정박돼 있는 배들 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큰 배를 탄다고 했다. 그 배로 이 나라, 저 나라를 바삐 돌아다니기 때문에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씩 얼굴을 보기가 어렵다는 거였다.
- 좋겠다.
일차원적인 부러움을 드러내자 창수가 입술을 찢으며 웃어 보였다. 어쩐지 양쪽 눈썹은 아래로 처져 내려왔다. 지내오면서 녀석이 그렇게 웃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 의미도 짐작하지 못했다.
결국, 그날은 재윤 혼자서 학교에 갔다. 교문을 지날 때쯤에야 아버지가 왔다는 게 왜 등교할 수 없다는 뜻이 되는지 의문이 들었던 것 같다. 모처럼 찾아온 아버지와 종일 같이 있고 싶은 모양이라고, 제 나름대로 추측해 봤지만 확신은 없었다.
창수가 없는 학교는 너무 심심했다. 교실도 두 배로 커진 것 같았고, 고작 10분이었던 쉬는 시간은 한 시간처럼 길게만 느껴졌다. 오로지 재윤 자신에게만 쏟아지는 담임의 관심이나 칭찬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 재윤 자신이 오기 전까지, 녀석의 하루하루는 이랬을까. 새삼 생각하니 녀석이 존경스러울 지경이었다.
하교 후에는 마을 뒷산으로 올라갔다. 이따금 장수풍뎅이나 사슴벌레를 잡으러 징수와 함께 몰려다녔던 곳이었다. 그때처럼 나무란 나무는 샅샅이 뒤지고 다녔지만, 개미 한 마리 찾지 못했다. 창수의 눈에는 달리 돋보기 라도 달려 있던 걸까.
- 재미없어.
빈손으로 허무하게 돌아서다가 어느 고목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제 키와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큰 나무였다. 그곳에 오르면 아주 먼 곳까지 훤히 내다보일 것 같았다.
하지만 창수는 그곳에 올라가 보겠다는 재윤을 번번이 만류했었다. 떨어지면 다친다며, 여동생 대하듯 유난했다. 모처럼 그 방해꾼이 없었다.
씩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나무를 오르기 시작했다. 창수에게 몇 번 배우긴 했지만, 역시 실전이란 녹록지 않았다 몇 번이고 미끄러지면서 팔이며 다리가 쓸려 죄 까졌다. 아등바등하며 겨우 원하던 높이까지 이를 수 있었다. 후, 숨을 돌리며 단단한 줄기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멀리서 바람이 불어와 피부를 차게 식혀 주었다.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뭔가를 찾았다. 하지만 가장 높은 곳에서도 서울은 보이지 않았다. 파랗다 못해 시커먼 바다만 아득하게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때아닌 단절감에 마음이 잔뜩 울적해졌다. 고작 이걸 보려고 그 고생을 했다니. 허탈하고, 짜증도 났다.
곧바로 나무에서 내려왔다. 표정은 더없이 따분해졌다. 가방에 묻은 흙을 탈탈 털면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고지대에 있는 폐교를 지나, 집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지금쯤이면 물에서 들어온 낚시꾼들로 가게가 시끌시끌할 거였다. 이모는 포구 앞에서 민박집 겸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한창 바쁠 때 눈앞에서 거치적거리는 걸 무척 싫어한다.
네 엄마는 언제 온다니.
하루 장사를 마실 때쯤이면 그녀는 그렇게, 답 모르는 질문을 던지곤 했다. 대답 없이 멀뚱히 보면 긴 한숨과 함께 신세 한탄이 시작됐다. 술이라도 한 모금 들어가는 날에는 어머니를 향한 서운함이 더 구체화되고 공격적으로 변했다.
그럴 때면 늘 어머니를 생각했다. 왜 그녀는 재윤 자신을 이모에게 맡겼을까. 주변에 다른 사람이 전혀 없었던 걸까. 아니면 그저 본인에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뜨리고 싶었을까. 설사 그게 자신의 유일한 혈육인 두 사람 모두에게 고통이 되더라도?
확실히 어머니로부터의 연락이 뜸해지고 있었다. 그만큼 이모의 신경도 나날이 예민해졌다. 아침 밥상에서는 밥을 먹는 건지, 모래알을 씹는 건지 알 수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집으로 향하던 걸음이 우뚝 멎었다.
가기 싫다.
속에서 마음이 답했다. 그 길로 획 몸을 돌렸다. 넓적다리가 뻐근할 정도로 크게 딛던 걸음은 금세 뜀박질로 바뀌었다. 목적지에 다다랐을 즈음엔 눈앞이 노래지면서 가쁜 숨이 엉망으로 터져 나왔다.
손등으로 속 입가를 닦으며 낡은 대문을 올려다봤다. 늘 마주하던 것이 건만, 어째서인지 그 순간만큼은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그 안에 창수가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오전 배로 아버지와 시내 구경을 나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함께 놀기를 거절당할 가능성은 높았다. 재윤 자신이라도 어머니가 보러 온다면 그럴 테니까.
어쩌지. 닫힌 대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난생처음 접히는 어려움이었다. 부탁하지 않아도 녀석은 처음부터 줄곧 먼저 다가왔다. 더구나 그때까지 재윤의 청을 거절한 적도 없었다.
괜찮을까. 주저하며 문을 두드리려는 때였다. 안에서 느닷없이 큰소리가 들려왔다.
- 술 받아오라는데 뭔 말이 그렇게 많아!
성인 남자의 목소리였다. 묵직하고 걸걸한 호통에 재윤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찔했다.
- 할머니가 아빠 술 마시면 안 된댔어!
창수의 음성도 잇따라 들렸다. 일촉즉발의 상황인 것 같았다. 대문을 사이에 두고 있음에도 험악해진 공기가 고스란히 피부에 닿았다.
- 애새끼가, 버르장머리 없이? 누가 아버지한테 꼬박꼬박 말대답하래? 너도 이 아비가 우습게 보이냐?
- 그런 거 아나! 술 더 마시면 죽는다고 그랬단 말이야! 아빠도 엄마처럼 영영 못 오게 되면 나랑 할머닌 어떡하라고!
- 내가 네 엄마 얘기 꺼내지 말했지!
쨍그랑. 날카로운 파열음이 공기를 긁었다. 뒤이어 질감이 각기 다른 집기들이 미구 나뒹구는 기척도 전해져왔다. 남자는 폭주하듯 성을 내며 물건을 있는 대로 집어 던지는 듯했다. 그 의중에 창수의 목소리가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
마음이 급격히 조마조마해졌다. 이러다 창수가 잘못되는 건 아닐까. 극단적인 공포감에 몸이 벌벌 떨려왔다. 다른 어른들에게 알려야 할까? 어떻게 해야 저 극악무도한 남자에게서 녀석을 구해낼 수 있을까. 발을 동동 구르며 손톱을 물어뜯었다.
대문이 벌컥 열린 건 그 직후였다. 안에서 창수가 뛰쳐나왔다. 순간적으로 눈이 마주쳤다. 조금 멍하게 그를 봤던 것 같다. 녀석은 재윤 자신보다 훨씬 더 놀란 듯했다.
- 이 새끼 이리 안 와?
연이은 호통에 창수가 덥석 재윤의 손목을 잡았다. 그러곤 그대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얼결에 끌려가면서도 뒤를 돌아봤다. 마구 흔들리는 시야에 대문 앞까지 쫓아 나은 남자가 보였다.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분명한 건 재윤이 생각하던 흔한 아버지의 모습은 아니었다는 거다.
황망히 달아난 두 사람은 근처 보리밭에 몸을 숨겼다. 까끌까끌한 이삭이 살갖에 닿아 따끔거렸다. 그러나 놀란 마음이 더 커서 그런 것쯤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검지를 입술에 대며 쉿, 하는 창수를 따라 몸을 좀 더 수그렸다.
멀리서 바람이 불었다. 그때마다 두 사람을 숨겨준 보리가 차례차례 누웠다가 다시 일어났다. 귓가에 어지럽게 흩어지던 숨소리와 심장 박동 소리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그제야 힐금 창수를 봤다. 항시 이상할 정도로 밝던 얼굴이 조금은 시무룩해져 있었다.
- 아버지 늘 저러셔?
- 응. 할머니 말로는 엄마 있을 때까진 안 그랬다는데.
- 얼굴은 왜 그래? 그것도 아버지가 그런 거야?
제 눈가를 톡톡 가리키며 물었다. 비단 그곳만은 아니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창수의 몸 곳곳에 얼룩덜룩한 자국이 보였다. 녀석은 아, 하면서 희미하게 웃었다.
- 화나면 이것저것 던지거든. 아까 봤지? 그거 제대로 못 피해서.
거짓말.
하마터면 그 말이 입 밖으로 삐죽 튀어 나갈 뻔했다.
바보같이 웃는 녀석을 볼 때면 종종 없던 뿔이 솟아날 것 같다. 대부분 겨우겨우 참아 넘겼다. 녀석에게만큼은 좋은 친구이고 싶어서. 성질 돋는 대로 굴었다간 재윤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대책 없이 환해지는 얼굴을 볼 수 없을 거였다.
- 별로 안 아파.
역시 바보다. 아픈 건 거기가 아닐 텐데. 좀 더 안쪽 깊은 곳이지.
- 나 같으면 도망갈 거야.
- 그랬다간 언제 또 볼 수 있을지 모르니까.
- 창수 너는 저런 아버지도 좋아?
- 너도 좋아하잖아. 너희 엄마. 내가 장한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울 할머니가 날 예뻐해 주듯이 나도 그런 거야. 뭘 해줘서가 아니라 내 아빠라서, 우리 할머니라서 좋은 거라고. 울 할머니가 그랬어.
경험해 본 바 없어서 그게 맞는 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고통을 주는 사람조차도 덮어놓고 좋다는 녀석이 영 마뜩잖았다. 재윤은 저도 모로게 입술을 축였다.
- 그럼 이번엔 아예 데려가 달라고 하지그래? 그렇게 좋아하는 아버지랑 안 떨어져도 되고, 다른 나라도 실컷 구경하고. 좋겠는데?
창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저었다.
- 나는 여기가 좋아.
- 헤어져 있으면 쓸쓸하잖아. 계속 기다려야 되고.
- 그것도 할머니가 있으니까 괜찮아. 이제 너도 있고.
- 바보 같아.
툴툴거리면서도 듣기에 싫진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얼마쯤은 당연하게 여겼다.
창수의 아버지는 그 뒤로도 한동안 집에 머물렀다. 대부분은 방에 들어 박혀 지내는 듯했지만, 이따금 동네를 활보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길에서 그를 마주칠 때면 재윤은 얼른 몸부터 숨기곤 했다.
마을 사람들이 평판이 좋을 리 없었다. 대폿집에서 푼돈 노름을 하다 난동 부리는 건 일상이었고, 술에 취해 애꿎은 사람에게 시비를 붙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창수의 얼굴에도 멍이 늘어갔다.
녀석의 집 낡은 대문에 조등이 걸린 건 채 1년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술에 취해 한밤중 어둔 포구를 걷다가 발을 헛디뎠다고 했다. 인제 언제 돌이올지 모르는 아버지를 기다리는 일도, 그가 일으킨 분란을 대신 수습할 일도, 괜한 화풀이에 몸이 축나는 일도 없을 거였다. 기뻤다. 제 일인 것처럼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녀석은 아니었나 보다. 제 몸에 맞지도 않는 상복을 입고서, 창수는 한참이나 넋을 놓고 있었다. 재윤이 다가갔을 때에야 어렵사리 눈을 맞춰오더니 대뜸 그를 끌어안으며 엉엉 소리 내서 울기 시작했다. 두 귀가 왕왕 울릴 정도로 커다란 울음소리를 거푸 뱉어냈다.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그런 사람에게 홀려주는 눈물이란 게. 만약 엄마가 죽는다면 재윤 자신은 그렇게 울어줄 자신이 없었다.
그날 이후로 창수의 세계는 한층 더 좁아졌다. 그 위태로운 공간을 지탱하는 것이라곤 그의 늙은 조모와 재윤 자신뿐이었다.
의식이 과거로부터 급격히 복귀한다. 멀거니 트인 시야에 대답을 기다리는 창수의 얼굴이 보였다. 의심 없이 동그랗게 떠진 두 눈엔 화려한 겉모습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순진함이 가득했다. 잠시나마 멍하던 재윤의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서 나란히 걷던 중이었다.
“아, 미안 뭐라고 그랬지?”
“피곤하냐? 왜 그렇게 멍을 때려.”
“잠깐 옛날 생각이 나서.”
“옛날 생각?”
“뭐 이것저것. '이야기 속으로'던가? 귀신이 뭐가 무섭냐면서 대차게 그걸 보더니 다음날 이불에 지도 그렸었잖아. 할머님이 열 살 넘어서 오줌도 못 가렸다고 혼내시던 게 떠오르더라고, 갑자기.”
“으악, 뭔 소리야. 난 그런 기억 없어!”
“기억력이 나쁘네. 키 뒤집어쓰고 소금 얻으러 다니던 게 생생한데. 나무젓가락으로 비행기를 만들어선 뒷산에서 날렸던 일도. 호기롭게 서울까지 보내겠다더니, 포구에도 못 미치고 밤나무 꼭대기에 걸렸던가.”
저절로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또, 하면서 느긋이 입술을 떼기에 다짜고짜 그 입부터 틀어막았다. 놀랐는지 재윤의 눈이 살짝 커진다. 걸음도 잠시 멎었다.
“그만해, 새끼야. 일부러 그러는 거냐? 넌 뭐 어렸을 때 쪽팔릴 만한 짓 안 했던 거 같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얼굴에는 전에 없던 당혹감이 어렸다. 그런 창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재윤이 천천히 그의 손을 떼어냈다. 그러곤 싱긋 웃으며 내가 어쨌는데, 한다.
“너는! 너는, 그러니까…… 으음.”
발끈하던 창수의 눈썹이 서서히 일자가 된다. 미간에는 제법 깊은 주름까지 잡혔다. 끙끙거리며 지난날을 반추해 보지만, 이렇다 하게 상기되는 것이 없었다. 굳어버린 머리를 굴리며 최대한 쥐어짜 본다.
“그래! 너는 200원짜리 병아리새끼 같았잖아. 툭하면 픽픽 쓰러지고, 계절별로 감기는 달고 살고. 하도 골골대서 병원 신세까지 졌던 주제에.”
“병아리라.
중얼거리며 남의 손을 주물럭거린다. 그제야 아직도 손이 잡혀 있다는 걸 깨달았다 타이밍이 애매해 주저하고 있는데, 재윤이 다시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붙들린 손까지 슬쩍 당겨지면서 우스꽝스러운 걸음걸이로 끌려갔다. 게가 보면 형님하자고 할 듯했다. 끝내 다리가 꼬이면서 비틀거리자 재윤이 피식 웃음을 터트린다. 그제야 확 손을 빼내며, 그의 엉덩이를 걷어차듯 했다.
“일부러 그런 거지, 새끼야.”
재윤은 대답 없이 웃었다. 이상하게 그가 웃을 때면 공기가 한결 보들보들해진다. 부드럽게 풀린 옆모습을 훔쳐보다가 괜히 목을 가다듬었다. 그래서, 하는 말이 들려온 건 그즈음이었다
“무슨 얘기 하려던 거였어?”
“응? 뭐가.”
“뭐라고 물었었잖아. 옛날 일 얘기하기 직전에.”
“아. 혹시 너 낚시하는 거 좋아하느냐고.”
재윤은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해본 적 없어.”
“하하, 역시 샌님이구만.”
“내가 기다림엔 별로 소질이 없는 것 같더라고.”
다소 묘한 뉘앙스였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본디 그렇게 섬세한 성격이 못 된다.
“그럼 언제 한 번 날 잡자. 근처에 죽여주는 명당 하나 있거든. 여간해선 외지인한테 안 알려주는 덴데, 이 형님이 넌 특별히 데려가 주마. 교통편 걱정은 말고. 이래 봬도 이 바닥에서 인망이 제법 두텁다, 이 말씀이야. 그날은 진짜 하나부터 열까지 풀코스로 쏠 테니까.”
“기대하지.”
재윤이 씩 웃으며 돌아섰다. 왜, 하며 사위를 둘러보고야 어느새 보건지소에 도작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가깝던가. 전에 왔을 땐 좀 더 외진 곳에 박혀 있는 느낌이었는데. 신나서 떠드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재윤은 다 왔네, 하면서 조금 아쉬운 미소를 지었다.
“내가 바래다줄 걸 그랬나?”
“여자냐? 누가 데려다주고 말고 하게. 어차피 나야 이 시간이 주요 활동시간인데, 뭐.”
피식거리며 재차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특별히 지나가는 사람도 없는데 의미 없이 눈길을 둔다. 모처럼 많은 대회를 나눠서인지, 아니면 그러고도 못다 한 얘기가 많아서인지. 이대로 헤어지려니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한 잔만 더 하자고 할까. 역시 피곤하겠지. 아침부터 일했을 테니까. 그래도 혹시 먼저 권해주지 않을까, 미적대며 은근한 기대를 걸어본다.
그러나 눈이 마주쳤을 때 재윤은 더 할 말 있느냔 표정을 지어 보일 뿐 이었다. 제멋대로 기대를 품은 마음이 돌연 허무해졌다. 뒤늦게 아니, 하며 웃었다.
“그럼 들어갈게.”
“그래. 쉬어라.”
재윤은 고개를 끄덕이곤 돌아섰다. 그 모습을 보다가 돌연 뭔가를 상기했다. 나직한 탄성이 터졌다. 외벽의 층계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가던 재윤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돌아본다.
“그, 다른 게 아니고. 다음에…… 또 와도 돼?”
슬슬 볼을 긁적이며 물었다. 대놓고 허락을 구하자니 조금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의문 서린 재윤의 얼굴이 금세 누그러진다.
“얼마든지.
“쉽게 대답하지 말고, 새끼야. 진짜 내킬 때, 아무 때나 막 쳐들어온다?”
“기대되네. 기다릴게.”
그런 웃음으로, 거짓을 말할 리 없었다.
대단한 말을 들은 것도 아닌데, 순간 멍해지고 말았다. 헤벌어진 입에서 어, 하는 멍청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한동안 넋 놓고 있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슬쩍 돌아서서는 멋대로 쿵쿵거리는 제 가슴을 다독인다.
아무리 감동을 먹었기로서니 난데없이 펄떡이고 난리다.
“진짜 간다.”
“조심해서 가.”
재윤은 싱긋 웃어 보이곤 마저 층계를 올라갔다. 이윽고 2층 관사의 문이 살짝 열렸다가 닫힌다. 이내 재윤의 모습도 그 안으로 사라졌다.
그때까지 보건지소 앞에 서 있던 창수가 서서히 뒷걸음질 친다. 곧이어 어두컴컴하던 관사 장문에 불빛이 들어왔다. 혹시나 하며 얼마쯤 지켜봤지만, 창가에 사람의 형상이 어른거리지는 않았다. 그렇게까지 애틋할 까닭이야 없는 것이다.
귓등을 긁적이다가 훌쩍 돌아섰다. 본래의 삶으로 복귀하는 길은 유난히 먼 듯한데, 얼굴에만은 여전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집에 갔을 때, 길녀는 밥상 앞에 앉아 있었다. 간밤에 대충 던져두고 갔던 국밥을 양은냄비에 데워 야무지게 퍼먹는다. 술을 덜 마셨는지 평소보다 사람다운 몰골이었다.
방 안으로 들어가 옷부터 갈아입었다. 길녀는 그런 창수를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잔소리를 쏟아냈다.
“네가 무슨 번데기나? 온 데 허물 벗어놓고 지랄이야.”
“양심도 없는 년. 네 팬티 날마다 누가 빨아 주는데? 아침마다 집 꼴이 어떤지는 알고나 그러냐?”
“불알친구 왔었다며?”
불리해지니 잽싸게 말을 돌린다.
“병신처럼 쪼개기에 여잔 줄 알았는데, 진짜 남자라더라? 주제에 그런 친구는 또 어떻게 사귀었대.”
“내가 뭐 어때서.”
“니 새끼가 어떤 건 둘째 치고, 의사라며. 인생 탄탄대로 개척된 그런 인간이, 불알친구 아니었으면 우리 같은 것들 상대나 해주겠냐?”
“그 자식은 달라.”
창수가 지레 발끈했다. 재윤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멋대로 말하는 건 참을 수 없다. 그가 속물적인 인간이라면 애초에 업소까지 창수 자신을 찾아오지도 않았을 거다. 하지만 길녀는 영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네네, 그러세요? 어련하실까요.”
“이게? 함부로 비꼬지 마. 그 자식이 얼마나 괜찮은 놈인데! 겉만 그럴 싸한 게 아니라 다정하고, 친절하고…… 네 얘기 하니까 너도 한번 만나보고 싶댔어. 오래간만에 본 거여도 이것저것 꽤 관심 가져 줬다고.”
“미진. 내가 그 인간을 왜 만나나? 네 마누라도 아닌데.”
아닌 건 아닌 거라지만 대놓고 질색한다.
입술을 삐죽이는 것도 잠시, 창수는 곧 얄궂은 얼굴이 됐다. 은근히 길녀에게 다가가선 등 뒤에 찰싹 붙어 앉는다.
“그럼 이침에 애나 까고 여보, 마누라 할까?”
겉으로 드러난 그녀의 넓적다리를 주물럭거리며 장난스럽게 치근댔다
“미친 새끼가, 트인 주둥이라고.”
“왜. 안 한 지 오래됐잖아.”
“네 꼬락서니 보고 있으면 속이 가물다 못해 쩍쩍 갈라지거든, 병신아? 꼴 보기 싫으니까 그 반지랑 팔찌나 좀 풀어. 촌스럽게.”
길녀는 짜증 어린 표정으로 상을 들고 일어났다. 창수가 다리에 들러붙자 발로 그를 국 밀어낸다.
“길녀야, 네 서방 이러다 고자 되겠다.”
“넌 좀 돼도 돼. 너 닮은 멍청이가 둘이 되고, 셋 될까 봐 겁난다, 난.”
“우리 길녀, 부쩍 쌀쌀맞네. 오빠 몰래 바람피우는 거 아니지?”
능청스러운 질문은 아예 무시해 버린다. 길녀는 들고 간 밥상을 수돗가에 내려놓고 곧장 되돌아왔다. 팔에 고개를 괴고 누워 있던 창수가 눈썹을 찌푸렸다. 이부자리 펼치는 길녀의 모습이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왜 그냥 와.”
“너 곧 씻을 거잖아.
그러면서 이불을 덮고 발라당 누워 버린다. 눈꺼풀은 미련 없이 곱게도 닫았다.
망할 년.
정말 딱 한 대만 쥐어박으면 안 될까.
얄미운 시누이 보듯 노려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잔소리한다고 달라질 계집이었으면 애당초 뻔뻔하게 나올 리도 없을 거였다. 내 팔자야, 꿍얼거리며 방을 나섰다. 신발을 구겨 신고 문을 닫으려는데, 길녀가 눈을 감은 채 당부했다.
“다 좋은데, 정은 적당히 퍼 줘라. 그런 치들은 어차피 조금 있다가 또 떠날 거잖아. 나중에 등신같이 마음고생 하지 말고.”
“계집애들은 절대 이해 못 하겠지만, 사나이들한텐 한 번 친구는 영원한 친구라고. 여기 뜬다고 깨끗이 정리될 우정이 아니란 말이다.”
“병신 같은 소리 하네. 옛날엔 친구였어도 지금은 아냐. 사람 일은 모르는 거라고. 좆 달린 놈들이라고 뒤통수 안 칠 줄 알아? 오히려 그 새끼들이 더 지랄 맞고 독해. 그 치가 남자라고 긴장 풀고 간이며 쓸개며 다 빼주지 말라고. 잘 봐봐. 정말 너랑 다시 잘 지내고 싶은 건지, 여기에서 지내는 동안 잠깐 어울릴 놈이 필요한 건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주절주절 잔소리를 쏟아낸다.
길녀는 같이 살기 전부터도 여자를 조심하라며 신신당부했었다. 너 같은 새끼가 가장 벗겨 먹기 쉬운 타입이라나. 몇 년 전엔 미용실에 새로 온 사연 많은 아가씨와 머리채를 잡으며 싸웠다했다. 그러곤 창수를 찾아와 돈 뭉치를 집어던졌다. 할아버지 병원비에 보태라며, 미용필 아가씨에게 슬며시 건넸던 돈에서 한 푼 모자람 없는 액수였다 어쩐지 그 뒤로 미용실 아가씨를 더 볼 순 없었다.
“돈 빌려달라곤 안 하디?”
“아니라니까, 그런 놈?”
옛일을 회상하다가도 소리를 지른다. 이 정도면 거의 자동 반사나 다름없었다. 길녀는 어느새 눈을 뜨고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도 대뜸 긴 한숨을 뱉는다. 곧이어 홀러나온 목소리는 한층 누그러져 있었다.
“그 치는 아냐? 너 여기 오기 전에 어디 있었는지.”
금방이라도 싸울 태세였던 창수의 얼굴이 눈에 띄게 침울해진다.
“알아도 이해해 줄 거야.”
웅얼거리는 말은 거의 들리지도 않았다. 말없이 보던 길녀가 난 모르겠다, 하며 돌아누웠다.
벽처럼 느껴지는 그녀의 등을 보다가 조용히 문을 닫았다. 수돗가로 내려와 쪼그리고 앉아선 땅이 꺼지도록 큰 한숨을 뱉었다.
솔직히 자신 없었다. 거기까지 바라는 건 너무 욕심인 것도 같았다.
물끄러미 올려다본 하늘에 구름이 가득했다. 조금 전까진 더없이 파랗게 보였는데. 당장 비가 쏟아져도 이상하지 않을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