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또 무슨 지랄을 하려고.”
꿍얼꿍얼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다소 이르게 집을 나섰다. 잠결에 만용 전화를 받았다. 숨소리부터가 이미 저기압이었다. 어쩌다 또 심사가 꼬인 건지, 이젠 짐작도 안 갔다.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성큼성큼 걸었다. 가던 길엔 잠시 슈퍼마켓에 들렀다. 마침 담배가 똑 떨어진 탓이었다. 평소 안면이 있던 계산대 아주머니에게 사탕 하나를 얻어 나왔다. 자기 전에 아무것도 먹지 않았더니 속이 쓰렸더랬다.
받은 사탕을 까면서 재차 발길을 재촉하던 참이었다. 생각 없이 바라본 곳에서 의외의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얼레?”
걸음을 멈추고 맞은편 식당으로 다가갔다. 불투명한 유리 너머로 내부를 들여다본다. 익숙한 뒤통수가 보였다. 그 맞은편에 앉은 여자들은 사무소의 직원들이었다. 쉼 없이 샐쭉대는 모습을 보니 대상과 대한 확신이 섰다. 칭수는 얄궂은 웃음을 만면에 띠며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식당 직원이 습관적으로 인사를 뱉었다. 창수에게 다른 일행이 없음을 파악하곤 후미진 자리를 눈짓한다. 됐다며 손을 들어 보이고 척척 안쪽 자리로 다가갔다. 거리가 좁혀듦에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여직원들과 먼저 눈이 마주셨다. 찡긋 익살스레 윙크를 날리자 똥이라도 씹은 표정을 짓는다.
비어 있던 자리를 차지하며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면서 옆에 앉은 재윤의 어깨에 자연스럽게 팔을 둘렀다.
“그림 좋은데?”
의아하게 보던 재윤이 곧 창수를 발견한다. 연이어 그의 얼굴이 망설임 없이 풀어졌다. 창수 자신이 순박한 시골 처녀였다면 그 웃음에 마음이고 혼이고 쏙 뺏겼을 거다. 에이, 나쁜 놈. 얼마쯤의 진심을 담아 장난스러운 핀잔을 던졌다
“다짜고짜?”
“이 바닥 얼음공주들을 혼자 차지하고 있으니 나쁜 놈이지, 새끼야. 밖에서 보니까 제대로 녹여 놨던데?”
얄궂은 눈길은 곧 맞은편 여자들에게 옮겨졌다.
“의사란 게 좋긴 좋은가 봐. 쌀쌀맞은 사무일 예쁜이들이 이렇게 밥도 같이 먹어주고, 웃어도 주고. 나랑은 말 한마디 섞기 싫어하더니.”
“뭐예요, 무례하게.
“시비 걸지 말고 가던 길이나 그냥 가시죠?”
여지없이 송곳 같은 반응이 돌아온다. 충분히 예상했던지라 헤실헤실 웃으며 대꾸했다.
“아무리 하는 일이 시답잖아도 밥은 먹고 해야지. 나한텐 지금부터가 아침인데. 이야, 좋은 것도 먹고 계시네.”
식탁 위를 죽 훑다가 재윤의 젓가락으로 수육 몇 점을 집어먹었다. 안
퍽퍽하게 잘 삶아졌다, 시식 평도 남긴다. 여직원들은 미간을 찌푸리며 들고 있던 젓가락마저 내려놓았다. 불쾌한 얼굴로 거푸 찬물만 들이켠다. 힐금힐금 재윤을 보는 게, 꼭 영웅이 악을 물리쳐주길 기대하는 것 길았다.
“제 친굽니다. 괜찮다면 같이 식사해도 되겠습니까.”
그러나 재윤은 정중히 양해를 구할 따름이었다. 친구. 그 얼마나 아름다운 울림인지. 어깨가 지레 쭉 펴지고 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표정만은 확실히 더 의기양양해졌다.
두 여직원의 표정이 볼 만 했다. 서로를 마주하며 제대로 들은 게 맞는 지 확인한다. 도무지 창수와 재윤의 연결고리를 못 찾겠는지, 굳이 확인해 묻기도 했다.
“어떻게…….”
“아,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이곳에서 학창시절 대부분을 보냈습니다.”
“불알이 설익었을 때부터 친구다, 그거지.”
찍 웃어 보이자 대놓고 싫은 기색을 보인다. 평소엔 표정 없던 얼굴들이 이지러지는데, 괜스레 즐거운 기분이었다.
“불편하시면 제가 자리를 옮기겠습니다.”
“……아뇨. 그러시면, 뭐.”
여직원들은 떨떠름한 얼굴로 마지못해 합석을 승낙했다. 그 즉시 창수는 손을 번쩍 들며 주방에 대고 외졌다.
“이모, 여기 국밥 하나 추가.”
주문한 것이 준비되는 동안, 남은 수육을 날름날름 집어 먹는다. 그즈음 여직원들은 아예 식사를 포기했다. 탐탁지 않은 눈길 속에서도 창수는 꿋꿋이 식사했다. 재윤 몫의 동동주까지 거리낌 없이 입에 가져다 댔다. 재윤은 그런 창수에게 천천히 먹으라며, 빈 사발을 다시 채워줬다.
금세 따끈따끈한 뚝배기가 내진다. 고소한 냄새가 침샘을 자극했다. 공기를 양손으로 잡고 짤짤 흔들면서 밥을 뭉친다. 그것을 통째로 뚝배기에 넣곤 반쯤 남은 깍두기와 그 국물도 거침없이 들이부었다. 여직원들은 이제 몸까지 최대한 물린 채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녀들을 잊은 듯 재윤은 창수를 흐뭇하게 지켜보다가 티슈까지 뽑아 건넸다.
“저희는 먼저 갈게요.”
철저한 소외감에 여직원들이 스르르 몸을 일으켰다. 낯에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실망감이 가득했다. 창수는 픽 웃으며, 알맞게 익은 김치를 집어먹었을 뿐이다.
“천천히 더 드시다 가시죠.”
“아뇨. 괜찮아요. 내일 아침부터 또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서. 그럼 다음에 뵐게요.”
“안녕히 들어가세요, 선생님.”
창수의 존재는 무시한 채 재윤에게만 인사하곤 가게를 빠져나간다. 재윤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본의 아니게 쫓아낸 형국이건만, 창수는 뭐가 그리 웃긴지 키득거리기 바빴다.
“역시 남자는 능력이다, 야.”
“무슨 소리야.”
“모르는 척하긴. 서울에서도 그러냐?”
“그러니까 뭐가.”
“하, 새끼 보게. 계집들 말이야. '사자만 붙으면 그렇게 껌뻑 죽는다며. 어디 가서 자기소개하면 처녀들도 막 다리 벌려주겠다고 그래?”
“못하는 소리가 없네.”
전에도 그러더니. 새카맣게 어린 동생 대하듯 한다. 창수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못할 소리가 어디 있냐? 이제 다 크다 못 해서 쪼글쪼글 늙을 일만 남았는데. 너도 재미없게 점잔 좀 그만 떨어. 친구 사이에.”
불만스럽게 중얼거리면서 반대편으로 옮겨 앉았다. 언뜻 보니 재윤의 공기가 반쯤만 비어 있었다. 팔짱을 끼고 창수 자신만 관망하는 게, 다시 먹을 것 같진 않았다
“더 먹지 왜.”
“별로 입맛이 없네. “
“하여간 샌님이들은 계집애 같은 구석이 있다니까.”
혀를 차면서 남긴 밥을 가져간다. 재윤이 손목을 붙들어 만류했다.
“새로 시켜, 지저분하니까”
“괜찮아, 인마. 지저분해 봤자 다 먹는 거고 어차피 주둥이로 들어가면 다 섞여서 나오는데,”
한 번 더 말려볼 새도 없이 남은 밥을 국물에 말아 푹푹 떠먹는다. 예나 지금이나 먹성 하나는 참 좋다.
재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도 안도하듯 한숨 쉬었다.
“어쨌거나 고맙다 ”
“뭐가?”
“이래저래 곤란했거든.”
“우리 샌님이가 왜 곤란했을까? 그 예쁜이들이 뭘 물어봤기에?”
“글쎄.”
“한 번 맞춰볼까? 애인은 있느냐, 어떤 여자가 취향이나, 혼자 지내시기에 적적하지 않나. 그런 거?”
“비슷해.”
그럼 그렇지, 하면서 비웃는다. 재윤을 향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어쨌거나 걔들한테 괜한 희망 주지 마라. 나름 지들은 이 바닥에서 잘 나간다고 생각하는, 자부심 찌는 여자들인데. 그런 애들 잘못 건드리면 너 죽고 나 죽자고 덤빈다고. 어차피 너야 때 되면 서울로 돌아갈 건데, 질척거릴 일 만들 필요 뭐 있나? 밤에 심심하거나 옆구리 시리거나 그러면 차라리 나한테 말해. 뒤탈 없을 만한 애들은 꽤 알고 있으니까.”
“혹시 모르지. 여기에서 제대로 인연을 만날지도.”
쉽 없던 창수의 숟가락질이 멈칫한다. 그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재윤을 봤다. 목소리가 왜 이리 살랑거리나 싶더니만 얼굴에도 진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뭐야. 그새 마음에 드는 여자라도 생겼어?”
“다음에 확실해 지면 얘기할게.”
여지를 두는 게 뭔가 있긴 있는 모양이다. 놀란 눈을 하던 창수가 입을 삐죽였다.
“……시시하게.”
눈썹이 함께 축 내려간다. 친구에게 좋은 상대가 생기면 축하해줄 일이었다. 재윤이 마음에 품었다면 어련히 좋은 사람일까도 싶었다. 그리고 그 상대도 언젠가는 반드시 그를 좋아하게 될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런데 왜 이다지도 서운한 기분이 드는지.
친구를 빼앗길 것 같아서? 그건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단짝이라는 것도 어렸을 때나 욕심내던 자리니까. 일전에 길녀 이야기를 꺼냈을 때, 재윤은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줬었는데. 아직도 그 같은 어른이 되려면 먼 것 같다.
급격히 입맛이 달아났다. 창수는 남은 국밥을 뒤적뒤적하다가 이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남아 있던 동동주는 양 볼 가득 머금고 있다가 한참 만에야 삼킨다. 부루퉁해진 표정을 감추기 위해서 였다.
“얼굴은 또 왜 그래?”
불시에 정곡을 찔러온다. 창수는 저도 모르게 움찔하며 얼굴을 쓸었다. 속마음을 읽힌 걸까. 가슴이 느닷없이 쿵덕거리기 시작했다. 물끄러미 보던 재윤은 거기가 아니라는 듯 제 이마를 톡톡 가리켜 보였다 잔뜩 긴장하던 창수가 이마를 만져보곤 아, 했다.
착각. 왜인지 모르게 두 귀가 활활 타는 것 같았다.
“이거? 그냥 어디에 좀 긁혔어.”
며칠 전, 수금을 마치고 사무실에 갔는데 대뜸 재떨이가 날아왔다. 겨우 피하고 보니, 파편에 이마를 벤 상태였다. 그리 깊지 않은 것 같기도 했고, 늘 있던 일이라 내버려뒀는데. 누가 의사 아니랄까 봐 그걸 지적한다.
“어디 봐.”
“괜찮다니까. 다 먹었으면 슬슬 가자. 나 이제 일하러 가야 돼.”
다가오는 재윤의 손을 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윤은 도망가는 창수의 뒤꽁무니를 한동안 고요히 지켜봤다.
담배에 막 불붙였을 즈음이었다. 식당 문을 열고 재윤이 밖으로 나왔다 다음에는 내가 사겠다, 하려는데 그가 대뜸 길을 죽 가로질러 갔다. 가타부타 설명을 안 해서 멍청하게 바라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인사도 없이 가 버릴 인사는 아니었다. 담배를 입에 문 채 초조하게 재윤의 움직임을 좇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곧장 근방의 약국으로 들어갔다. 설마 그건가. 속에서 알량한 기대를 품는다.
잠시 후 재윤이 밖으로 나왔다 손에는 연고로 보이는 상자가 들려 있었다. 그것이 제 것이란 보장도 없건만, 뱃속이 제멋대로 근지러워졌다.
도로를 굽어보던 재윤은 훌쩍 길을 건너와 창수 앞에 섰다. 사 온 것을 바로 뜯으면서 이거라도 바르자, 하는 거다.
“괜찮아. 이깟 거 내버려두면 저절로 낫는다니까?”
“그러다 덧나면 고생해. 말 들어.”
제법 강경한 태도를 보인다. 어이없어 웃음이 났다. 창수 자신을 상대로 선생님 흉내라니. 공연히 쑥스러운 기분이 들어, 손사래를 치며 물러났다.
“에이, 너도 알잖냐. 내가 이래 봬도 옛날부터 맷집 하나는…….”
한사코 사양하는데, 덜컥 턱을 붙든다. 그러곤 연고를 조금 덜어내 이마에 가만가만 펴 발랐다. 행여 상처에 닿을까 조심스러운 손끝이 간질간질하게 피부의 솜털을 쓸고 지나간다. 담배를 입에 문 채 멍하니 그런 재윤을 바라봤다. 심각한 눈길로 상처를 살피던 재윤이 불시에 눈을 맞춰온다.
찰나 간에 또렷하게 시선이 얽혔다.
연이어 밴드를 붙여주던 재윤의 손길이 멎는다. 지레 놀란 듯 살짝 커졌던 두 눈은 이내 본연의 차분함을 되찾았다. 그러나 웃어주지 않을까, 하던 헛된 예상을 배신하며 그는 창수를 지극하게 응시해왔다.
이렇게 생겼던가? 이런 눈빛도 할 줄 알던가.
어, 하는 멍청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동시에 귀가 재차 달아오르며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벌컥거렸다. 그저 재윤이 창수 자신을 보고 있단 걸 인식했을 뿐인데도 그랬다. 작금의 순간을 그저 견디고 있기가 버거웠다.
급격히 눈앞이 팽글팽글 돈다. 두 귀에는 제 가슴 뛰는 소리밖엔 들리는 게 없었다. 으으, 앓으며 필사적으로 눈알을 굴렸다.
“이, 이건 놓고…….”
당혹감 가득한 목소리를 쥐어짜며 재윤의 손을 떨쳐냈다.
그 직후였다. 등 뒤에서 난데없이 클랙슨이 울렸다. 제 발 저리며 어깨를 흠칫 떨었다. 내내 창수를 주시하고 있던 재윤이 그의 어깨너머를 바라본다.
뒤쪽 길에 차 한 대가 서 있었다. 두 사람을 향해 서서히 다가온 차량은 곧 정차됐다. 연이어 뒷좌석 창문이 내려간다. 삐딱하게 밖을 내다보는 이는 다름 아닌 만용이었다.
“이 새끼가, 빨리 튀어 오라니까.”
다짜고짜 인상부터 구긴다. 그러다가 눈알을 부라리며 창수 뒤에 서 있던 재윤을 훑는다. 지금 막 가려고 했어, 하는 창수의 대꾸는 귀담아듣지도 않았다
“뭐야?”
사람을 턱짓하며 얕은 호기심을 드러낸다. 덩달아 돌아보던 칭수가 아. 하더니 재윤을 소개했다.
“인사해. 보건지소에 새로 온 의사 선생. 내 친구기도 하고.”
재윤에게는 여긴 나랑 같이 일하는, 정도로 귀띔한다. 만용은 재윤의 눈을 똑바로 보며 묵례하는 시늉만 했다. 머리만은 내내 뻣뻣하게 들린 채였다. 재윤도 가볍게 고개를 까딱했다.
“공재윤이라고 합니다.”
“──아아? 그쪽이 그?”
뭐라도 아는 것처럼, 묘한 뉘앙스를 홀린다. 재윤은 영문 모를 표정으로 창수를 봤다. 그러자 창수가 어색한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 늦어서 가봐야겠네. 다음에 보자.”
재윤의 등을 크게 토닥이더니 뭔가에 쫓기듯 보조석에 오른다.
“기회가 되면 또 보자고.”
만용이 미묘한 웃음을 홀리며 창문을 닫았다. 잠시 멈춰 있던 차량은 곧 자리를 떴다. 백미러에 비치던 재윤의 모습도 점차 멀어져갔다.
후, 하며 한숨을 쉬었다. 다음 순간, 만용이 뒤에서 보조석을 걷어찼다. 잠시 누그러질 틈도 없이 몸이 크게 덜컹거렸다. 자못 험악해진 공기에 운전석의 윤삼은 눈치만 살폈다.
“내가 부르면 딴 데로 새지 말고 바로 오라고 했어, 안 했어?”
“그냥 지나가다 잠깐 만난 거야. 그리고 너도 이제 가는 길이잖아. 어차피 내가 더 일찍 갔어도 마냥 기다리기밖에…….”
“말대꾸하냐?”
만용은 보조석을 연달아 걷어차며 으르렁거렸다. 분위기 좀 풀어보겠다는데 영 도외주질 않는다.
어째 갈수록 성미가 더 지랄 맞아지는 것 같다. 계집이면 호르몬의 영향이려니 이해라도 하지, 1년 내내 이러니까 답도 없다. 이럴 땐 그저 납작 엎드리는 게 상책이었다.
“미안. 다음엔 안 그럴게.”
“똑바로 하라고.”
끝까지 성을 부리며 보조석을 걷어찬다. 그래 봤자 제 찬데, 본인 손해라는 걸 모르는 모양이다.
“그건 그렇고 아까 그 새낀 눈깔이 왜 그래?”
재윤의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곰곰이 당시의 상황을 되짚어봤지만, 특별히 문제 될 만한 순간은 떠올리지 못했다.
“걔가 뭘.”
전혀 모르겠다는 듯이 만용을 돌아봤다. 아니나 다를까, 귀신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람을 왜 그따위로 쳐다보고 지랄이냐고. 눈을 확 찢어버릴까 보다. 싸우지는 거야? 한주먹거리도 안 될 것 같은 새끼가.”
“에이, 네가 뭘 잘못 봤겠지. 그런 놈 아니야. 얼마나 착한데.”
“뭘 안다고 지껄여, 졸라 무식한 새끼가. 착한 놈 다 뒈졌나? 눈깔이 무슨 벼려 논 사시미 같더만. 여차하면 사람 하나 아주 골로 보내겠더라?”
“만용이 네가 잘못 본 거라니까.”
“이게 확? 부쩍 기어오른다?”
만용이 주먹으로 창수의 머리를 냅다 후려쳤다. 일말 망설임도 없는 행동이었다. 처음이 어렵지, 무슨 일이든 반복되면 거리낌 없어지는 법이다.
창수는 속없이 키득거리며 우리 만용이가 열등감이 있구나, 했다. 귀신같이 알아듣곤 앞좌석을 걷어찬다. 오늘 기어이 보조석의 허리가 나갈 것 같았다.
“그 새끼 맞지?”
만용의 목소리가 낮게 깔린다. 그저 느낌이 그런 것일 수도 있었다. 기실 그는 창밖을 의미 없이 내다보고 있었다. 창수는 헤실 웃으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시치미 떼냐, 개새끼야? 학교 있을 적에 날마다 노래 부르던 그 이름 맞잖아. 누굴 저 같은 돌대가리로 보나.”
통하지 않았다. 예민할 때면 눈치도 더럽게 빨라진다. 창수는 더 대거리 하지 않고 그저 만용이 얼른 재윤에 관한 흥미를 거둬주기만 기다렸다.
그러나 놈은 그럴 생각이 없는 듯했다. 상체를 기울여 슬그머니 보조석 가까이 다가온다.
“일찍이 신애 여사가 세상은 요지경이라고 하더니, 딱 그 짝이지 뭐냐. 보나 마나 집안도 잘났을 그 의사 놈하고 민증에 줄부터 긋고 시작한 병신하고 친구라니. 사람들이 들으면 웃겠어.”
“……상관없잖아. 어렸을 때부터 친했던 거니까.”
“지랄. 그 새낀 제대로 알고나 어울려주는 거냐? 너 학교 다녀왔다는 얘기 들으면 밥맛 떨어지는 표정 지을 걸? 내가 당해봐서 알지. 그거 기분 정말 엿 같거든.”
비실비실 웃으며 도로 몸을 물린다. 남의 불행을 상상하며 기분이 조금은 풀린 듯했다. 이후로는 짜증을 부리는 일도 없었다. 그에 반해 은근히 들떠 있던 창수의 얼굴은 걷잡을 수 없이 침울해졌다.
◈◈◈
난생처음 방문해 본 병원에선 불쾌한 냄새가 났다. 왜일까, 생각해보니 주사 맞던 날이면 늘 맡던 그 냄새와 같았다. 주삿바늘이 보이는 것도 아니건만 어린 창수는 어깨를 잔뜩 움츠리며 담임 옆에 바짝 붙었다. 그러면서도 이곳에 있는 재윤은 얼마나 무서울까, 걱정했다.
며칠 전 밤에 프로펠러 소음을 들었다. 어렸을 적부터 종종 있던 일이라 많이 놀라지는 않았다 다만 불안해졌다. 헬기가 다녀간다는 건 누군가에게 변이 생겼음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그 소리는 엄청 가까운 곳까지 다가와서 한참을 머물다가 사라졌다. 재윤이 오고는 처음 있던 일이라, 녀석에게 소음의 정체를 가르쳐줄 생각으로 들떴다.
하지만 이튿날 찾아갔을 때, 녀석은 집에 없었다. 그의 이모는 평소보다 짜증이 만연한 얼굴로 당분간 녀석이 학교에 갈 수 없다고만 했다. 이웃집 아주머니에게서 겨우 녀석의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전날 밤 하얗게 질려 응급 헬기에 실려 갔다고 했다.
담임에게서 따로 병명을 들었지만,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 나을 때까지 입원해야 해서 학교엔 나올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재윤이가 얼른 낫기를 함께 기도하자고도 했다.
혼자 살던 붉은 대문 집 할아버지가 사경을 헤맬 때도 담임은 같은 얘기를 했다. 그때 알았다. 누군가의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은 매달릴 곳이 그것밖에 없음을 의미한다는 걸.
담임도, 재윤의 이모도 녀석의 상태를 자세히 가르쳐주지 않았다. 할머니에게 물으면 금세 나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등을 토닥였을 뿐이다. 하루, 이를. 재윤을 볼 수 없는 날이 늘어갔다. 그가 오기 전과 다름없는 생활이었지만, 왜인지 그때보다 더 외톨이가 된 것 같았다.
재윤이 전화를 걸어온 건 일주일 남짓이 지났을 때였다. 목소리가 너무 다르게 느껴져서 정말 네가 맞느냐고 몇 번이나 물었던 것 같다. 녀석임을 확인했을 꼴사납게도 훌쩍거리고 말았다.
결국, 다음날 담임을 졸라 재윤의 병문안을 갔다. 병원이라곤 보건소나 작은 의원 정도만 보아왔던 터라 규모에서부터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높은 천장도, 넓은 복도도, 수없이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모두 낯설었다.
한참을 걸어 병실 앞에 도착했다. 담임은 가볍게 노크한 후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안에 재윤이 환자복을 입고 앉아 있었다. 흰 팔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뭔가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담임이 안부를 묻고, 재윤이 그에 답할 때까지 창수는 문가에서만 서성였다. 그렇게나 유난을 부려놓고도 막 상 오니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 창수야, 얼른 들어와. 재윤이 보고 싶어 했잖아.
담임이 뒤돌아보며 창수를 부추겼다. 침상의 재윤도 고개를 슬쩍 내빼곤 문가를 응시했다. 그제야 쭈뼛쭈뼛 병실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째서인지 재윤을 처음 만날 때보다 더 긴장됐다. 똑바로 녀석의 얼굴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담임 뒤로 몸을 숨기고야 겨우 녀석을 힐금거렸다. 얼굴에 더 핏기가 없어져 있었다. 많이 아팠는지 눈가가 떼꾼해 보이기도 했다. 손등으로 연결 된 링거 호스를 보곤 제 살이라도 찔린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창수에게, 재윤이 불쑥 고개를 드밀며 물었다.
- 나 보고 싶다고 했어?
- 너 많이 아프다고 해서.
- 그래서 걱정했어?
- 죽을지도 모르니까.
시무룩해져서 대꾸하는데, 돌연 담임과 재윤이 웃음을 터트렸다. 놀림이라도 받은 것 같아 금세 귓가가 새빨갛게 달아을랐다.
그때쯤 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텔레비전에서나 봄직한 옷을 입고 있었다. 공기 중에 진한 화장품 냄새가 뒤섞였다. 처음 맡아보는 것이라 가슴이 두근거렸다.
여자는 담임을 보더니 아, 하며 인사를 건넸다. 담임도 고개를 꾸벅하더니 이내 그녀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병실에는 재윤과 창수만 남겨졌다.
- 엄마?
추측해 묻자 재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기다린 엄마건만, 얼굴은 전혀 기뻐 보이지 않았다. 많이 아파서일 거라 지레짐작했다.
- 이제 괜찮아? 학교에 나올 수 있어?
- 아직 몰라. 많이 아프면 서울로 치료받으러 갈 수도 있대.
- ……아.
창수의 얼굴이 삽시에 근심으로 어두워졌다. 서울에 갔다가 아예 안 돌아오면 어쩌나. 그때만큼은 재윤이 아프다는 사실 자체보다 그게 더 신경 쓰였다. 재윤은 초조하게 꼬물거리는 창수의 손을 주시하며 다른 가능성을 시사했다.
- 안 갈 수도 있어. 열만 내리면.
엇, 하며 창수가 눈에 띄게 기운을 찾는다.
- 아이스크림 사다 줄까? 할머니가 돈 줬는데.
- 아니. 별로 안 먹고 싶어.
- 그럼 부채질이라도 해줄까?
- 그러지 말고.
재윤은 씩 웃으며 창수의 귓가에 뭔가를 속삭였다. 가만히 듣던 창수가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 정말 그거면 돼?
창수의 입가에도 곧 헤실헤실 웃음이 번졌다
담임은 잔뜩 사색이 됐다. 재윤의 어머니와 대화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창수가 온 데 간 데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재윤은 녀석이 화장실에 간다면서 나갔다고 했다. 하지만 화장실이란 화장실을 죄 뒤져 봐도 창수를 찾을 순 없었다. 병원 내에 안내방송까지 해 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창수가 배를 타고 먼저 들어갔을지도 모른다며, 집으로도 전화를 걸어봤다. 받는 사람은 없었다. 담임은 우선 여객 터미널과 창수의 집에 가 보고, 그래도 찾지 못하면 경질에 신고하겠노라 했다. 늘 침착하던 사람도 당황하면 그렇게 혼비백산할 수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 신경 쓰지 마. 완전 어린애도 아니고, 어련히 찾겠니.
어머니는 대수롭지도 않다는 반응이었다. 본디 그렇게 남에게 무관심한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본인 자식조차 고열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고 할 때야 내려와 봤을까.
- 담당의도 고비는 넘겼다고 하고, 내가 봐도 이제 열 내릴 일만 남은거 같으니까 엄마는 오늘 밤에 올라갈게. 너 때문에 하던 일도 내팽개치고 와서 면이 안 서.
- 그럴 거면 지금 당장 가.
- 녀석이 투정은. 엄마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하면서 일하는지 몰라?
고단함의 원인은 늘 재윤의 몫이 됐다. 아픈 아들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 건넬 줄을 모른다.
홱 등을 돌리며 누웠다. 어머니는 그런 재윤을 다독이지 않았다. 시시각각 걸려오는 전화를 받느라 쉼 없이 들락날락했을 뿐이었다.
약 기운으로 선잠이 들었다가 깨길 반복했다. 창밖이 어두워졌을 즈음 어머니가 돌아갈 채비를 하는 게 느껴졌다. 벌떡 일어나 볼 수도 있었다. 언제 또 볼 수 있을지 모를 그녀에게 인사 정돈 건넬 수도.
하지만 재윤은 그러지 않았다. 어머니 또한 얼마간 그를 응시하다가 재차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병실을 나섰을 따름이었다. 조금씩 옅어지던 그녀의 목소리가 이내 완전히 잦아들었다.
그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러곤 살금살금 문가로 다가가서 바깥의 동태를 살폈다. 지나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그 길로 맞은편에 놓인 옷장 앞에 섰다. 닫혀 있던 문을 슬며시 당겨 열었다. 그곳에 창수가 쪼그리고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창수야, 부르자 졸린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 선생님 갔어?
씩 웃으며 창수의 팔을 잡아당겼다. 녀석도 얄궂은 얼굴로 순순히 따라왔다.
쓸쓸해서 아픈 거래.
외로워서 계속 열이 오르는 거랬어.
그러니까, 네가 밤새 옆에 있어 주면 금방 괜찮아질 거야.
재윤의 속삭임에 의구심이 들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단지 의사 선생님이 그랬다니까 믿는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재윤이 제 어머니를 따라 서울로 가 버릴까, 겁을 집어먹기도 했다.
그대로 나란히 침상에 누웠다. 재윤이 없던 동안 얼마나 무료한 나날을 보냈는지 떠들면서 장난치다가 스르르 잠들었던 것 같다. 점점 아득해지는 귓가에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 어머, 여기 있네요.
간호사를 뒤따라온 담임이 맥없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는 탄식과도 같은 한숨을 터트렸다. 온몸은 이미 땀범벅이었다.
- 이 녀석들이 정말.
- 오늘 밤은 여기에서 재우셔야 할 것 같은데요?
침상을 보던 간호사가 옅게 웃었다. 그곳에는 고만고만한 두 녀석이 마주 보고 잠들어 있었다. 무슨 꿈을 꾸는지, 서로의 팔을 한쪽씩 꼭 쥔 채 였다. 걱정 없이 풀어진 표정이 그저 편안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