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고나-6화 (7/18)

6

침대에 앉아 액자를 들여다봤다. 어깨동무하며 웃고 있는 창수와 재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언제 찍었던 것인지 분명히 기억나지 않는다.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유일한 사진이란 것밖에.

손끝으로 둘의 얼굴을 가만히 덧그렸다. 얼굴에 소리 없이 미소가 번진다. 눈빛 역시 푸근해졌다.

샤워를 갓 마치고 나온 참이었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오후 10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도시였다면 도처가 빛 천지였겠지만, 창밖으론 짙은 어둠이 도사렸을 뿐이었다.

밤을 잊은 풀벌레 소리를 제외하면 사방이 그저 고요했다. 제 숨소리조차 선명하게 인식될 정도로.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선 비릿한 바다 냄새가 났다. 그런 감각들이, 돌아왔음을 새삼 실감케 했다.

수건으로 머리카락의 물기를 마저 털어냈다. 그러고는 냉장고에서 미리 사다 놓았던 맥주 한 캔을 꺼내온다. 칙, 청량감 넘치는 소리를 내며 캔이 따졌다. 폐부가 다 뻐근할 정도로 쉼 없이 마른 목을 해갈했다. 도드라진 목울대가 시원스럽게 너울거렸다.

이곳에서 지낸 지도 벌써 두 달이 넘었다. 조금은 얕잡아 봤던 건지 모른다. 그저 한가로운 일이 있을 리 없는데. 하루가 멀다고 찾아오는 환자들에게 종일 치이는 기분이었다. 변죽 들끓는 날씨에 감기까지 유행하면서 그 영향이 더해진 듯했다.

뒷목을 주무르며 책상에 앉았다. 모니터에는 하루 사이 일어난 사건사고 관련 기사가 자극적인 타이틀과 함께 표출돼 있었다. 대강 표제 정도만 훑고 경제 페이지로 넘어간다.

누군가의 말대로 요양하기엔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사람들도 쉽게 속을 보여준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호불호가 확실하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살펴야 할 피로가 줄었다. 그 대가로 종종 절대적인 단절감과 미주해야 하지만.

바깥은 여전히 바쁘고 시끄럽게 돌아갔다. 하지만 그곳이 아무리 떠들썩해도, 이 먼 곳까진 여파가 끼치지 않는 느낌이었다. 오는 동안 희석되고 무뎌지는 탓이다. 인터넷 덕택에 인제 웬만한 시골도 실시간 정보에 빠삭해졌다지만, 노인 비율이 압도적인 이곳과는 여전히 무관한 얘기였다. 동 떨어진 섬의 시간은 여전히 느리고 태평하게만 흘러간다.

의자 깊숙이 등을 기댔다. 그러다가 근처에 놓인 휴대폰을 본다. 뭔가를 생각하듯, 검지가 일정하게 책상과 부딪쳤다.

얼마나 지났을까. 바람결에 옅은 담배 냄새가 섞여 들어왔다. 고개를 갸웃거리다 슬쩍 몸을 일으켰다. 창밖을 내다보니, 어둠 속에서 어슬렁거리는 인영이 보였다. 담배를 피우고 있는지 붉은 점 하나가 그를 따라 움직였다.

의아하게 주시하던 재윤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는 곧장 카디건을 챙겨 관사 밖으로 나갔다. 층계를 내려가는 기척에 앞에서 배회하던 이가 어깨를 흠칫 떨었다. 창수였다.

“거기서 뭐 해?”

“아, 그냥 잠깐 지나가다가.”

캄캄한 길을 가리키며 머리를 긁적인다.

“니 새끼 또 혼자 끙끙 앓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요즘 워낙 감기가 지랄 같다고 하니까.”

어줍은 변명을 대며 늦은 밤의 방문을 합리화해본다. 역시 하지 않는 게 나았을까 곧이어 후회하는 눈치였지만.

재윤의 눈동자가 소리 없이 굴렀다. 이번에도 창수의 발치엔 무수한 담배꽁초가 굴러다녔다. 짐짓 그것을 못 본 척해주며, 슬쩍 관사 쪽을 고갯짓했다.

“잠깐 들어올래?”

“아나. 너무 늦었잖아. 너도 쉬어야지.”

창수는 펄쩍 뛰며 손사래를 졌다. 피식 웃으며 그의 팔을 은근히 붙들어 당겼다.

“들어왔다 가. 마침 맥주 마시고 있던 참이었어.”

창수는 순순히 끌려오지 않았다 다시 보니 어딘가 모르게 주저하는 기색이었다. 속으로 끙끙대는 소리가 재윤에게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무슨 고민을 그리도 맹렬하게 하는 걸까 잠자코 기다려주다가 다른 제안을 해본다.

“그럼 같이 좀 걸을까?”

어린아이 어르듯 나긋한 어조였다. 창수가 부담을 가질세라 제 나름의 이유도 덧붙인다.

“왜인지 잠이 안 왔거든. 시간 나면 예전에 다니던 학교도 한 번쯤 가보고 싶었고.”

“아, 뭐야. 그런 거라면 진작 말하지.”

금세 기세가 살아난다. 시름시름 앓던 개가 주인을 보곤 대번에 꼬리를 흔드는 것 같았다. 재윤의 미소가 알게 모르게 깊어진다.

창수는 습관처럼 꽁초를 내던지려다 멈칫했다. 정체 모를 죄책감이 고개든다. 결국, 꽁초는 얌전히 그의 바지 주머니에 담겼다. 재윤은 뒤에서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고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정체 모를 푸근함이 그의 두 눈에서 무르익었을 뿐이다.

이제 폐교된 예의 분교까지는 자로 10분 남짓 되는 거리였다 걸어가려면 섬과 섬 사이에 놓인 목교를 지나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은 기꺼이 그 불편함을 감수하기로 했다. 서정적인 풀벌레 소리와 봄기운 완연한 바람이 마음을 묘하게 부풀렸다.

얼마쯤 걷다 보니 차도와 인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양옆으로는 널찍한 보리밭이 펼쳐졌다. 풀벌레 소리가 한층 짙어진다. 자연스럽게 옛일이 떠올랐다. 무엇을 상기했는지, 재윤이 픽 웃음을 터트렸다.

“기억 나? 툭하면 여기에 숨고 했는데. 도중엔 도망쳐왔다는 것도 잊고, 여치며 방아깨비 잡는데 정신이 팔렸었지.”

“당연하지. 계집애 같이 생겨서 으레 벌레도 무서워할 줄 알았는데. 거리낌 없이 덥석덥석 잡는 거 보고 완전히 김빠졌다고.”

“놀라는 시늉이라도 할 걸 그랬군.”

재윤의 두 눈에 감회가 깊어졌다.

“시간 가는 줄 몰랐어, 그땐. 그렇게 잘 지낼 수 있을 거라곤 기대도 안 했거든.”

“처음 봤을 때부터 울 것 같은 낯짝이었지.”

“아버지가 왜 집을 나가는지, 왜 이젠 같이 살 수 없는지 제대로 얘기도 안 해줬거든. 이제 두 사람은 이혼했고 너는 엄마랑 같이 살게 될 거다 통보만 받았지. 실상 같이 산 건 한 달도 채 안 될 거야. 눈 뜨면 식탁 위에 돈만 덜렁 놓여 있고, 전화 한 통 없다가 밤늦게 들어와선 잠들기 일쑤였어. 그렇게 꾸역꾸역 버티나 싶더니, 주말 되자마자 다짜고짜 짐을 싸는 거야. 그대로 붙들려서 몇 시간씩 차 타고, 배 타고……  다른 나라에 버려지는 줄 일았다니까?”

“설마.”

농담조의 이야기에 칭수가 야트막한 터트렸다. 그의 웃음소리엔 늘 청량감이 담겨 있었다. 억지로 짓는 것도, 부러 소리를 내는 것도 아니다. 그가 느끼는 즐거움이나 환희가 그대로 드러나는 듯해서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았다.

느긋이 따르던 재윤이 조금 얄궂은 표정을 짓는다.

“서울 가게 됐을 때 네가 눈물 콧물 질질 흘리던 건 지금도 선명해.”

“뭐라는 거야. 내가 언제, 새끼야.”

여지없이 발끈하며 돌아본다. 재윤은 제 기억이 잘못됐을 리 없다는 듯 확신해 말했다.

“꼭 가야 되느냐면서 옷까지 붙들었잖아.”

“어어? 이게 어디 대놓고 뒤통수를 후리려고. 내 대가리가 아무리 나쁘기로서니 그런 것도 기억 못 할까 봐? 네 멋대로 왜곡하지 마! 안 그랬어!”

“날마다 전화할게. 잊지 말아줘. 그러기도 했던가?”

“웃기지 마. 그렇게 안 질척거렸어! 그때 얼마나 쿨하게…─!”

발끈하며 재윤의 멱살을 붙들었다. 예상대로 재윤은 빙긋 웃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 따라 웃을 수가 없다. 반 장난으로 구겨져 있던 창수의 표정이 서서히 풀어진다. 재윤이 그의 두 손을 꽉 잡았을 때는, 그곳으로 눈길을 옮겼다. 재윤의 엄지가 옷깃을 그러쥔 창수의 주먹 사이로 파고들며 손바닥 한가운데를 지그시 눌러온다. 지긋한 자극에 창수의 눈살이 살짝 움찔했다. 뭐지 싶어 재윤을 보니 그는 여전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래, 맞아.”

순순히 인정하는데도 어딘가 모르게 미묘한 어조였다. 창수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멍해진다.

“그렇게 울고불고하면서 사람 마음 약해지게 하더니, 끝에 가선 잘 가라고 등 떠밀었지. 조금 더 매달렸으면 아마 여기에 그냥 남았을 텐데.”

말꼬리가 조금씩 늘어뜨려졌다. 진짜? 창수의 얼굴에 얼마쯤의 의구심과 기대가 떠오른다. 정말이지, 이 정도면 거울이 아니라 유리 수준이다. 속내를 대놓고 드러내는 그를 보니 터지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새끼가!”

창수는 잡힌 두 손을 홱 빼내며 재윤의 등과 어깨를 마구 갈겼다. 밤이 깊은 탓에 얼굴이 달아올랐는지까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아깝다는 생각이들었다.

그대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새로 놓인 목교를 건넜다. 차가 다니는 교량과는 달리 철저히 두 섬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바로 아래에선 시커먼 바닷물이 굽이치고 있었지만, 짭짜름한 냄새로만 겨우 그 존재를 확인할 뿐이었다.

옛이야기를 시작하면 끝이 없었다. 그만큼 두 사람이 공유한 추억이 많았다. 어린아이의 한 시간은 어른의 한 시간과 다르다. 그 때문인지 함께 있던 것보다 떨어져 지낸 세월이 더 길었음에도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유년시절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도,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것도 창수였다. 창수에게도 재윤이 꼭 그랬다.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새 분교 앞에 다다랐다. 인제 주기적으로 드나드는 사람도 없어, 주변이 휑하기 그지없었다. 피서철이 되면 일시적으로 외지 사람들을 위한 숙소가 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기껏 들여다본 유리창 너머로 그 흔한 책상 하나 보이지 않았다

“역시 좁네. 그때는 저 건물도, 운동장도 엄청 넓어 보였는데.”

“네 덩치 커진 건 생각도 안 하지?”

핀잔하는 말에 약간 웃다가 창수를 물끄러미 봤다. 분교가 가까워지면서부터 그는 부쩍 말이 줄었다. 재윤이 뭔가를 물어야 겨우 대답하는 정도였고, 그나마도 다시 묻거나 동문서답을 하기 일쑤였다. 짐작하기엔 하고 싶은 얘기가 따로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을 할까, 말까 보다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더 고민인 듯도 싶었다.

모르쇠로 일관하던 재윤이 그네를 보곤 앉을까, 했다. 창수는 응, 하면서도 그것을 그대로 지나쳤다. 픽 웃으며 그의 팔을 잡아 그네 쪽으로 끝어 당겼다. 그제야 창수가 퍼뜩 정신을 차리더니, 답답한 표정으로 제 뒤통수를 벅벅 긁는다. 말없이 지켜보던 재윤이 손수 멍석을 깔아줬다.

“이제 말해 봐. 무슨 일인지.”

“응?”

“아까부터 고민 있는 것 같아서. 내가 잘못 짚었나?”

놀란 표정을 짓는다. 본인이 그렇게까지 티를 냈다는 걸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 역시도 그다웠다.

재촉하지 않고 잠자코 기다렸다. 달리 화제를 돌리지도 않았다 고요히 흐르는 시간을 견디지 못한 건 결국 창수 쪽이었다. 연신 머리를 긁적이며 고민하던 그는, 한참 후에야 어렵사리 입을 뗐다. 그즈음 두 손은 기도하 듯 다리 위에 곱게 모아졌다.

“실은 너한테 고백할 게 있어.”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을 바꾸지는 않았다. 무슨 일이냐며 재촉하지도, 편안하게 말해보라고 어르지도 않는다.

창수는 연신 마른침을 삼켰다. 옆에선 재윤이 마냥 기다리며 지극한 눈길을 보내왔다. 그 다정함에 도리어 목이 슬쩍 움츠러들었다. 잘하는 짓일까. 몇 번이고 자문해 보지만, 갈등만 깊어질 뿐이었다.

언젠가는 하게 될 일이다. 아니,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차라리 먼저 매를 맞는 게 낫다.

“나, 일이 좀 있었어.”

어렵사리 입을 뗐다. 이번에도 재윤은 섣불리 되묻지 않았다. 그저 잠자코 듣기로 한 것 같았다.

창수는 애꿎은 머리카락을 구기듯 만지면서 다소 두서없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재윤은 모르던, 그가 떠나고 없던 동안 창수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서였다.

“너 서울 가고 나니까 괜히 싱숭생숭하더라고. 이대로 살아도 되는 건가싶고. 나야 이 바닥에서 나고 자라서 여길 벗어나 산다는 건 상상도 못 했거든. 거시기 털 무성해지도록 장래희망이랄 것도 없었단 거, 너도 알 테고. 그냥 어른 되면 적당히 돈 벌게 되는 줄 알았고, 색시 하나 얻어서 남들처럼 살면 그만이지 싶었어. 근데 돌아보니까 할머니랑 나랑 둘밖에 없더라고. 이러다 우리 할머니까지 돌아가시면 난 어쩌지? 불쑥 그런 생각이는 거야. 사실 태어날 때부터 계속 그런 상황이었는데, 새삼 졸라 허무 해지잖아. 그러다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진 거야.

주변에서 못 배운 놈한텐 기술 익히는 게 최고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작은 공장에 취직했어. 텔레비전에 들어가는 부품 만드는 데였는데. 샌님이 네가 아무 생각 없이 봤었던 텔레비전들, 그거 어쩌면 내가 만든 거일 수도 있다고.”

얘기하다 말고 다소 장난스럽게 키득거린다. 하지만 그 웃음도 얼마 못 가 흐지부지해졌다.

“되게 조건이 좋았어. 숙식도 해결해주고 열심히만 하면 자격증 같은 것도 따게 해준다고 했거든. 지금 생각하면 씹할, 겁나 꿈같은 얘기였지.”

그곳에서 어떤 예기치 않은 일이 있었던 것 같다.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괴로운지, 창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애꿎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야기가 이어지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할 듯했다. 재윤은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두 손을 모아 잡았다. 어떤 말도 보태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창수를 기다려줄 뿐이었다.

“내가 거기서 사람을 죽였어.”

하지만 곧 이어진 고백에는 평온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멍하니 창수를 돌아봤다. 그는 재윤의 표정을 살피더니 체념조의 웃음을 지었다. 내내 얹혀 있던 것을 털어냈기 때문인지, 조금은 홀가분해 보이기도 했다. 그마저도 오래가진 못했다.

창수가 제 발치를 보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넷줄을 붙든 손은 그새 하얗게 질렸다. 계속 쳐다볼 수만도 없어, 재윤 역시 어렵게 고개를 돌렸다.

충격의 여파로 두 눈이 한시도 깜빡이지 않았다. 창수는 맥없이 웃으며 하던 이야기를 이어갔다.

“돈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어. 처음 몇 달은 수련 기간이라면서 월급에서 물값, 난방비, 식비, 교육비 그런 걸 다 빼겠다고 하더라고. 다 제하니까 십만 원이나 남던가. 내가 그 돈으로 뭐했는지 알아? 울 할머니 내복 사주고 싶었는데, 동전까지 탈탈 털어서 히터부터 샀어. 숙소로 쓰던 컨테이너에 화목 난로 같은 게 있기야 했어. 근데 거기다 불 지피면 얼어 죽기 전에 숨 막혀 뒈지겠더라고.”

“…….”

“사실 월급 못 받는 건 상관없었어. 일해서 넘긴다고 바로바로 돈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공장 사정이 그렇게 썩 여유로워 보이지도 않았거든 같이 일하던 월남 출신 형들 몇 명 있었는데, 거긴 1년째 못 받고 있다더라고. 그 정도면 난 약과다 싶었지. 지랄 맞았던 건 사장 성질머리였어. 불량 나오거나, 수금이 제대로 안 되거나, 정해진 수량 다 소화 못 하면 그날은 그냥 죽는 거야. 특수부대 출신이라고 그렇게 자랑해대더니, 진짜 사람 담그는데 도가 텄더라고. 겉으로 안 드러나는 곳만 골라서 작신작신 패는데…… 그렇게 살다 보면 알아서 숙이고 들어가게 되더라.”

“신고하지 그랬어.”

마냥 듣고 있던 재윤이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창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딴 걸 어떻게 하냐. 형제 같던 우리 월남이 형들 줄줄이 묶여 추방당하라고? 그 꼴은 못 보지. 사내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하는 거고. 할머니 만류 뿌리치고 왔는데, 빌어먹을 기술이든 뭐든 배워기야 면도 설 거고. 그냥 버텼어. 내가 제일 잘하는 게 또 그런 거 아니냐. 때리면 때리는가보다, 욕하면 하는가보다. 그날도 그런 식이었지.”

잠시 입을 다문다. 애써 묻어뒀던 오랜 기억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쳤다. 바라는 것은 최대한 그날의 일을 객관적으로 털어놓는 것뿐이었다. 알량하게 변명해봤자 마음에 얹힌 무게는 전혀 덜어지지 않을 테니까.

“실은 그날 일이 아직도 잘 기억 안 나. 설 명절이었던 것 같은데. 특근 때문에 집에 갈 수가 없었거든. 할머니 생각나서 집에 전활 해봤어. 안 받더라고. 계장 아저씨한테 마저 걸어봤지. 그랬더니 왜 이제 전화했느냐고 호통을 치더라고. 며칠 전에 공장으로 연락했었는데, 사장이란 사람이 별 얘기 안 하드냐면서. 뭔 일인가 했더니, 울 할머니가 쓰러졌다는 거야. 중풍이라던가. 며칠째 의식이 없다고 했어.

그때부터는 진짜 머리가 하얗고, 눈에 뵈는 게 없더라고. 사장 찾아가서 왜 말 안 해줬느냐고 지랄했더니 아 깜빡했네, 그러더라? 급하면 다시 전화할 줄 알았다면서. 당장 시골에 내려가겠다니까 할 일이 저렇게 산더민데 어딜 가느냐고, 네가 간다고 노인네가 정신 차리겠느냐, 그런 분들이 제때 가셔야 젊은 사람 고생 안 하는 거다, 쉽게도 지껄이더라 홧김에 멱살을 잡았던 거 같은데, 그다음부터는 가물가물해. 정신 차리고 보니까 바닥에 넘어져서 오지게 맞고 있었어. 어디 한 군데 가리지도 않고 걷어차고, 밟고, 주먹으로 갈기는데 이러다가 죽겠구나 싶은 거야. 숨쉬기가 힘들었거든. 그 정도 되니까 막 눈 앞에 할머니 얼굴도 어른거리고…… 언제 뒈지든 할머니는 봐야지, 그 생각이 번뜩 들었어. 계속 걷어차려던 사장 다리를 잡아서 넘어뜨렸어. 거기까지야, 정신이 있던 건.”

창수는 재차 제 귓등을 긁적였다. 지난 기억을 쥐어짜 보는 듯,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눈 떠 보니까 그 사람이 쓰러져 있었어. 사지가 축 늘어졌더라고. 불안해서 코에 귀부터 대봤는데 숨소리가 안 들리는 거야. 119고 뭐고 생각이 안 나서 냅다 업고 뛰었어. 병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죽었다더라고. 멍해졌는데, 금방 짭새들이 찾아왔더라? 사장이 넘어지면서 책상 모서리에 머리를 박은 것 같대. 그거 때문에 뇌출혈이 왔다고. 현장에서 몸싸움이 있었느냐, 혹시 네가 밀쳤느냐, 묻는 거야. 억울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어. 내가 그 사람 밀어서 넘어뜨린 건 사실이었으니까. 아직 미성년자라서, 보호자가 필요하다고 했어. 그러면서 연락처를 대라는데, 그때 알았지. 아, 부를 사람이 없구나.”

당시 창수가 느꼈을 막막함을 감히 이해한다 말할 수 없었다. 재윤 자신이 살아왔던 삶과는 천양지차였다. 닮은 구석이 많다고 여겼고, 한때는 같은 지점에 머물렀던 두 사람의 인생은 고작 10여 년 만에 이렇게나 달라져버렸다.

“8년 선고받고 교도소에 있었어. 거기서 만났던 게 만용이고. 출소하고나니까 갈 데가 없더라. 할머니는 요양원에 들어가셨고, 버려진 집은 폐가나 다름없어지고, 전적이 있으니 받아준다는 데도 딱히 없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죽 이렇게야. 참 보잘 것도 없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픽 웃는다. 담배를 꺼내서는 피우지 않고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는데, 가뿐하기보다 초조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남은 건 재윤의 선고뿐이었다. 10여 년 전, 재판장에 섰던 긴장감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재윤은 당분간 별말이 없었다. 그저 긴 한숨을 뱉을 뿐이었다. 겨우 그것에도, 창수의 두 눈이 질끈 감긴다.

“그 얘길 나한테 하는 이유가 뭐야? 다 지난 일이고, 네가 말하지 않았으면 계속 몰랐을 텐데.”

“니 새끼 의사잖아. 사람 살리는 의사. 차라리 내 입으로 털어놓고 말지, 속이긴 싫었어. 나중에라도 알게 되면 배신감 들 테니까. 넌 나한테 전처럼 다정하게 대해주고 내가 예전이랑 다를 게 없다고 말하지만 아니야, 그거. 그때 그 아무것도 모르던 하룻강아지, 이제 없다고.”

재윤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도 도로 입을 다물었다. 창수에게서 체념 가득한 웃음이 터진다.

“충격적이지?”

“아니라곤 못 하겠네.”

한숨 섞인 대꾸엔 고개마저 푹 숙였다. 얼굴이 말할 수 없을 만큼 엉망 이었다. 일분일초가 영원 같다 뻔뻔하게 호의적인 반응을 기대했던 건 아니다. 차라리 재윤이 이대로 일어나서 가주길 바랐다.

그래도, 하는 소리가 불거진 건 한참이 더 지나서였다.

“죗값 다 치르고 나온 거잖아.”

멍하니 듣던 창수가 애매한 웃음을 터트렸다. 자못 민망한 기색이었다.

“……그러지도 않았어. 도중에 재심 요구했거든”

“항소가 아니고?”

“솔직히 판결 나왔을 땐 그냥 다 놔 버리자 싶더라고. 국선이라던가, 그 변호사 양반도 열의라곤 없어 보였고. 이래저래 거짓말까지 해 가면서 죄 덜어보려고 씨름하고 싶지 않았어. 근데 할머니가 자꾸 찾아오는 거야. 불편한 몸까지 질질 끌고 와선 내 걱정만 하잖아, 노인네가. 네가 악한 마음 그런 게 아닌 거 안다 그래도 네가 저지른 일이면 그건 분명히 잘못한 거다. 돌아가신 양반하고, 그 가족한테 속죄하는 마음으로 지내라. 네가 무슨 죄를 저질렀든, 네가 어디에 있든 여전히 넌 내 강아지다. 그러는데, 진짜 더는 할머니 얼굴 못 보겠더라고. 그다음부턴 괜히 면회도 피하고 그랬어. 그러다 할머니가 또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고, 언제 돌아가셔도 이상할 게 없다는데, 찾아가 볼 수도 없고 미치겠는 거야. 그때 누가 날 찾 아왔어 변호사라면서, 재심 청구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거였지. 그 사람 덕택에 4년이나 빨리 나올 수 있었어. 할머니한테 찾아갔을 땐 날 전혀 못알아봤지만. 치매거든, 울 할머니. 전에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것도 사실은 다 거짓말이야.”

재윤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창수에게 닿았던 시선도 멀찌감치 던져놓는다. 침묵이 속절없이 길어졌다. 그 무거움을 견디지 못한 창수가 애써 웃었다.

“이해해 보려고 너무 노력하지 않아도 돼. 아니, 그러지 마. 내가 더 쪽팔릴 거 같으니까. 근데 조금이라도 껄끄럽거나 하면 그거는 좀 말해주라. 내가 눈치가 없어서, 괜히 너 불편하게 할 거 같거든. 확실히 해주면 다시는 안 찾아갈게.”

그때 재윤이 불쑥 눈을 맞춰왔다. 그 지극한 시선에, 곤란함을 덜어주려 분주하던 창수가 그대로 굳었다. 비난으로 날 서 있을 거라 생각했던 눈빛은 평소와 전혀 다름이 없었다. 그저 조금 차분하게 가라앉았을 뿐이다.

“반성한 거지?”

“……그야.”

“그럼 됐어.”

“뭐?”

“고의가 아닌 걸 실수라고 하지. 그건 누구나 저지를 수 있어. 다신 그러지 않으면 되는 거야.”

멍청히 보던 창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혼란과 당혹감이 그의 눈에 넘실거렸다.

“뭐…… 가 그렇게 간단해. 니 새끼, 내 얘기 제대로 들은 거야?”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겠지. 악의라곤 전혀 없었잖아.”

“아니, 그렇게 단순히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고!”

“단순하게 치부하는 게 아냐. 난 그날 창수 네 행동에 나쁜 의도가 없었단 걸 믿어. 이 세상에서 할머님을 제외하면 널 가장 잘 아는 건 나니까. 그건 명백한 실수였을 거고, 그 대가는 이미 다 치렀어. 아마 네가 완전히 잊기 전까지 마음에 낙인처럼 남아 있겠지. 그거면 충분하잖아? 고인이나 그 가족이 널 욕할 순 있어도, 나나 다른 사람들은 그럴 자격이 없어. 창수, 너한텐 더 남은 죄가 없으니까.”

창수는 한 대 맞은 표정이었다. 정말이지 순식간에 머리가 싹 비워져서 대꾸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런 창수를 보는 재윤의 얼굴은 자못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그런 모습은 왠지 낯설다.

멍하니 마주하는데, 재윤이 서서히 얼굴을 누그러뜨렸다. 그러곤 이전과 다름없는 미소를 지어 보인다. 연이어 그의 손이 뻗어져 왔다. 창수는 저도 모르게 움찔하며 목을 움츠렸다.

잠시 멈칫하던 재윤은 더 짙은 웃음을 드리우며 마저 팔을 뻗었다. 이내 그의 손이 창수의 뒷덜미를 가만히 감싼다 창수의 몸은 더 뻣뻣하게 굳었다. 그대로 창수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그의 몸이 기울면서 그네가 덩달아 끌려온다. 볼에 재윤의 살갗이 밀접하게 맞닿았다. 따뜻한 온기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고마워. 먼저 말 꺼내기 어려웠을 텐데, 이렇게 신경 써 줘서.”

“별게 다 고맙냐.”

재윤의 몸을 가볍게 밀어내며 투덜거렸다. 그러면서 재차 이제야 털어놔서 미안, 했다. 이번에도 재윤은 스스럼없이 떨어져 나갔다. 싱긋 웃어 보이는 얼굴엔 전에 없던 섭섭함이 깃들어 있었다.

“아쉽긴 하네. 그때 나한테 전화라도 한 통 줬으면 작은 도움이나마 줄 수 있었을 텐데.”

빈말일 게 분명한데, 그런 표정을 지으니 진짜처럼 느껴졌다. 그리 보려 재윤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자신을 넋 놓고 보던 창수의 머리를 가만가만 쓰다듬었다. 덕택에 기껏 고정해놨던 머리카락이 볼썽사납게 헝클어졌다.

“마음고생 많았겠다.”

끝까지 다정하게 다독여준다. 자라리 다른 사람들처럼 훈계라도 하면 나았을 텐데. 믿는다 말하는 그를 견딜 수가 없었다. 재윤을 보던 창수의 얼굴이 다시금 울적해진다. 고개 역시 푹 수그러들었다.

“……너, 정말 착한 새끼구나.”

“글쎄. 창수 네가 그렇게 보니까 그런 거겠지.”

“그 정도만 해라, 진짜. 니 새끼가 그럴수록 명색에 친구라는 놈이. 나란 인간 자체가 너무 쭈글쭈글하게 느껴져서 쪽팔리니까.”

때아닌 자괴감에 빠져 있는데, 머리맡에서 재윤의 음성이 살랑거렸다.

“슬슬 돌아갈까.”

그의 권유는 도무지 물리칠 수가 없다. 강한 어조가 아닌데도, 아주 예전부터 그랬다.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저도 모르게 무척 긴장했던 모양이다. 교문 앞 층계를 내려서는데 다리가 다 후들거렸다. 내내 들고 있던 담배는 피워볼 생각도 못 했다.

돌아가는 길에 재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지난 이야기를 꺼냈다. 대부분 부끄러웠던 기억을 들춰 창수를 창피하게 만드는 것들이었지만. 얄궂게 놀리곤 꾸밈없이 웃는 소리를 듣는데, 대책없이 마음이 누그러졌다. 어떻게 털어놓으면 좋을까 내내 끙끙댔던 게 우스울 정도로.

역시 재윤은 예나 지금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가 남다르다. 이런 인사가 창수 자신의 친구다. 앞서 걷는 재윤을 보는데, 못내 뿌듯한 웃음이 미어져 나왔다.

옛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금세 보건지소에 이르렀다. 똑같은 거리일텐데도 유독 돌아오던 길이 짧게만 느껴졌다. 비단 지금뿐만이 아니라 재윤과 함께 걷는 모든 길이 다 그랬다.

그만 들어가 보라며 인사를 건네려는데, 불쑥 편지함이 눈에 들어왔다. 미처 꺼내지 못한 우편물이 비죽 튀어나와 있었다. 창수의 시선이 한 곳에 붙박이자, 재윤도 의아하게 뒤돌아봤다. 우편물을 발견하고는 바로 그것을 꺼내본다. 그 모습을 보니 문득 풀리지 않던 의문 하나가 떠올랐다

“혹시 편지 같은 거 받은 적 없냐?”

“편지?”

“그, 몇 년 전이라든가…….”

“글쎄. 언제 나한테 편지 보낸 적 있어?”

영 감을 잡지 못하는 듯했다. 역시 그런가. 창수는 아하하, 하고 어색한 웃음을 터트렸다.

“아냐. 못 들은 걸로 해.”

그러나 재윤은 바로 의구심을 걷지 않았다. 더 뭉개고 있다간 무슨 편지냐며 캐물을 것 같아 서둘러 갈게, 하고 돌아섰다. 무엇을 떠올렸는지, 얼굴이 삽시에 달아올랐다.

제가 던져놓고도 참 어리석은 질문이었지 싶다. 애초에 재윤이 그간 보낸 편지를 받아봤다면 지금까지의 일을 몰랐을 리도 없는데.

아주 잠시 그 많던 편지는 다 어디로 갔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털어 버렸다. 좋은 게 좋은 거였다.

재윤을 찾아오기까지 갯벌 위를 걷는 듯하던 걸음은 이제 날아갈 듯 가볍기만 했다.

어렸을 땐 그저 노래하는 게 좋았다. 노래만 시작하면 모두가 부모도, 집도 없는 고아에게 눈길을 줬으니까. 이것도 불러봐라, 저것도 불러봐라, 하는 값싼 관심마저 달가웠다. 더 많은 이가 지켜봐 주는 곳에서 계속 노래하는 것. 가수의 꿈을 꾸게 된 건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꿈이란 마약과도 같다. 장밋빛 환상으로 젊음을 유혹하며 희생과 인내를 담보하지만, 깨고 나면 지독한 현실이 기다릴 뿐이다. 적어도 길녀에게는 그랬다. 한때 가장 빛나는 무대 위에 서고자 했던 어린 소녀는 이제 관성에 이끌려 마이크를 쥔다.

들어주는 이 하나 없는 노래는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대들 갈무리할 때였다. 큼직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뜨자, 홀 난간에 기대 서 있는 창수가 보였다. 시선이 마주침에 입술을 찢으며 장난스럽게 웃는다. 어린 남동생 대하듯 흘겨보다가도 금세 눈매가 푸근해졌다.

무대를 내려가는데 창수가 쫄쫄 따라왔다. 오빠가 아이스크림 사 왔는데 먹을래, 하며 비닐봉지를 내민다.

“왜 또 그렇게 기분이 좋아?”

“내가 뭘?”

“금방이라도 날아갈 거 같은데? 아침까진 계속 죽을상이더니. 묵은똥이라도 쌌냐?”

“뭐, 비슷하긴 한데.”

이마를 긁적이며 뭔가를 되새기더니 다시 싱글벙글한다. 실없이 웃는 낯에 슬슬 짜증이 났다. 요 며칠 병든 병아리처럼 시름시름 앓기에 내심 걱정했던 터라 더 그랬다.

분장실 회장대 위엔 커다란 꽃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뜯던 창수가 웬 거냐며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러나 정작 길녀는 그것을 힐금 볼 뿐, 이렇다 하게 말이 없었다.

일전에 윤삼에게 귀띔 받은 바가 있긴 했다. 근래 선물 공세를 퍼부으며 길녀를 보러 오는 인사가 있다던가. 무슨 투자를 하러 왔다가 이곳 나이트에서 접대를 받았던 모양인데, 그날 이후로 잊을만하면 한 번씩 찾아온단다. 아직 길녀에게 직접 들은 얘기는 없었다. 비슷한 일이 있었을 적엔 성가시니 치워달라기 일쑤였는데.

“우리 길녀, 인기도 좋네. 꽃 보내는 샌님이도 다 있고.”

“묻던 거에나 대답해. 같잖게 대가리 굴리지 말고.”

망할 계집. 퉁명스럽게 나오는 걸 보니 뭐가 있긴 있는 모양이다.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자 되레 뭐, 하고 뻔뻔한 얼굴을 한다. 한마디 하려다가 지레 포기해 버렸다. 이러나저러나 제 손해였다. 기억하는 한 말로 그녀를 이겨본 적이 없다.

길녀는 재윤에게 과거를 털어놓는 것에 염려를 표했었다. 그 일이 해결 되었으니, 결과를 알리는 게 도리지 싶었다. 좀 더 솔직해지자면 제 친구가 이런 사람이라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창수는 스멀스멀 올라오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입을 뗐다.

“실은 그 자식한테 고백했어.”

“혼잣말 하냐?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알아들어, 병신아.”

“아, 나 학교 다녀왔다는 거 다 말했다고!”

“정말?”

길녀는 순수하게 놀란 표정이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곧장 되묻는다 몸은 아예 창수 쪽으로 돌리고 앉았다.

“진짜 솔직하게 다 털어놨다고?”

“그래. 넌 왜 그렇게 사람 말을 못 믿냐.”

“그러니까 뭐래?”

“놀라긴 했지만, 괜찮다고 했어. 누구든 실수는 다 하는 거고, 죗값 받고 나온 거니까 자긴 상관없다고.”

“그게 다야?”

“뭐라고 더 했던 거 같은데 기억이 잘 안 나.”

“무식한 새끼. 얼마나 오래됐다고 그걸 까먹어?”

“아무튼 그 자식이 날 이해해준 게 중요한 거잖아!”

길녀는 영 못 미덥단 얼굴이었다. 그럴 수 있다. 창수 자신도 한동안 얼떨떨해서 좀체 믿기지 않았으니까. 새삼 다시 생각해봐도 사람이 그렇게까지 너그러울 수 있나 싶었다.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은 교도소에서 종교를 처음 접했을 때 언뜻 듣긴 했지만.

“가식 같아 보이진 않았고?”

길녀가 계속 의구심을 드러냈다. 창수의 미간이 지레 찌푸려진다.

“몇 번을 말해. 그럴 놈 아니라니까?”

“네 눈깔을 어떻게 믿어? 말로만 이해한다,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그런 거 분명히 아니었어. 그 자식은 너보다 내가 더 잘 알아!”

주먹까지 발끈 쥐는 걸 보니 코웃음이 났다. 그렇다고 또 어수룩하게 당하고 온 것 같진 않았다. 아무리 체면 때문이라도 뭐 하나 얻어갈 것 없는 대상에게, 그런 과거쯤 상관없다고 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을 테니까. 그게 아니면 뭔가, 바라는 바가 따로 있다던가.

새삼 공재윤이라는 인물이 궁금해졌다

“나 걔 좀 만나게 해줘.”

뜻밖이었는지 창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스크림을 뜯던 그의 손이 그대로 멎는다.

“전에는 니가 그 새낄 왜 만나느냐며.”

“만나보고 싶어졌어.”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낯이었다. 그러다가도 무슨 생각을 했는지, 대뜸 눈썹을 일자로 모은다. 비어져 나오는 목소리는 자못 심각했다.

“안 돼, 그 녀석은. 다소곳하고 상냥한 여자한테 장가가야 된단 말이야. 그렇다고 길녀 네가 나쁘단 건 아니지만.”

“등신이, 뭐래.”

아이스크림을 집으려다 말고 창수의 머리를 후려쳤다. 그럼에도 시무룩한 얼굴이 풀릴 생각을 안 했다. 길녀는 쯧쯧 혀를 자며 아이스크림을 뜯어 입에 물었다. 버리려던 포장지는 그대로 구겨 창수의 어깨에 내던졌다. 그제야 그가 고개를 든다.

“꼭 날 잡아라?”

눈을 맞추며 의사를 분명히 밝혀둔다.

재윤도 길녀를 만나고 싶어 했다. 그것 역시 빈말은 아닌 것 같았다. 게다가, 재윤에 대한 의심을 풀지 못하는 길녀에게 그를 보란 듯이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는 창수 자신의 유일한 자랑거리니까.

그런데도 왜 자꾸 주저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응, 하며 재차 대답을 요구하는 길녀에게 창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새벽 늦게까지 관사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불빛을 발견한 날벌레들이 창가에서 부지런히 날갯짓한다. 끊임없이 어른거리는 그림자가 거슬릴 법도 하건만, 재윤은 앨범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어쩐 일인지 접착식 앨범에는 사진 한 장이 없었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낡은 편지지였다. 삐뚤삐뚤 못난 글자가 빼곡하게도 적혀 있었다.

재윤의 눈동자는 고요하면서도 빠르게 행간을 넘나들었다. 표정 없던 얼굴엔 이따금 얕은 미소가 머물다 가곤 했다.

수차례 반복해 본 것들이었다. 이젠 앞머리만 보고도 그 내용을 줄줄 꿸정도가 됐다. 그럼에도 몇 번씩 읽어도 질리지 않는다.

그즈음 난데없이 휴대폰이 울렸다. 힐금 발신자만 확인하곤 다시 편지로 시선을 고정했다. 제풀에 지친 휴대폰도 이내 잠잠해졌다. 그러나 얼마 못 가 다시 사납게 울어대기 시작한다. 발신자는 이전과 다름없었다.

재윤의 평온하던 미간에 미세한 주름이 잡힌다. 받지 않으면 밤새 걸어 댈 기세였다. 그렇다고 전원을 꺼둘 수도, 무음으로 바꿔놓을 수도 없었다. 노인들의 건강은 하룻밤도 장담할 수 없다. 머무는 곳이 섬이니만큼 언제, 어떻게 비상 연락이 올지 몰랐다.

재윤은 탁상에 놓인 휴대폰을 노려봤다. 그를 약 올리듯 화면은 계속해서 번쩍거렸다. 고요히 숨을 삼키며, 휴대폰을 낚아채듯 손에 쥔다.

“뭔데.”

밤중이기 때문인지, 목소리가 한층 가라앉아 있었다.

[왜 이렇게 늦게 받아? 또 받을까 말까 간 봤지, 너?]

“그쪽 타이밍이 나쁜 거야. 시계 볼 줄 모르나?”

[이게 누나한테 그쪽이 뭐야, 그쪽이? 죽을래?]

재윤은 지레 따분한 표정을 지었다 툭하면 고작 두 달 빠른 생일을 들먹인다.

하영과는 어머니의 재혼으로 남매지간이 됐다. 재윤의 나이 열여덟 살 때의 일이다. 같은 나이의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매, 부모의 재혼, 자산가인 양아버지. 드라마 작가들이 좋아할 막장 소재지만, 실상은 큰 트러블 없이 그럭저럭 지내왔다. 그 비결에 대해선 외동인 데다, 바쁜 아버지를 두었던 하영의 외로움과 가족에 대한 그녀 특유의 헛된 낭만 덕분이라 자평하고 있다.

[잘 도착했으면 도착했다고 보고해야 할 거 아냐. 처음이라 바빠서 정신없겠거니, 이 누나가 아량 넓게 이해하는 것도 정도껏이지. 너 거기 간 지 두 달도 넘었어. 알아? 이게, 사람 단물만 빨아먹는 못된 버릇 들여서는.

내가 너 거기 가고 어떻게 지내나 얼마나 궁금…… 아, 아니지. 걱정했는지 알아, 이 자식아?]

오늘따라 하영의 목소리가 유독 카랑카랑하게 꽂힌다. 안경을 벗으면서 미간을 슬슬 문질렀다. 안경알 너머로 가려져 있던 눈매가 제법 날카롭다.

“용건이나 말해 이래저래 피곤하니까.”

[비싸게 나온다 이거지? 자꾸 이러면 네 어머니한테 너 거기 뭐 하러 갔는지 확 불어버리는 수가 있어. 알아 모셔라?]

“나라에서 정한 일을 어쩌겠다고.”

[네 어머닌 그렇게 생각 안 하는 거 같더라 아까도 전화했던데?]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왜, 하고 되묻는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난다.

[왜긴 왜야. 금쪽같은 아들이 그 오지까지 표류해 갔다니까 이제라도 구명할 길 없나, 그러는 거지.]

“일일이 보고할 거 없잖아. 그 정돈 알아서 잘라내.”

[미안. 걸려온 전화를 누구처럼 무시하는 무정함은 없어서 말이야.]

“피차 껄끄러운 사이끼리 아닌 척하기도 피곤하지 않아?”

[어머, 괜한 사람 몰아가지 마라? 나 네 어머니 안 싫어해. 가식으로라도 나한테 잘해주는데, 내가 왜? 네 어머니가 우리 아버지 돈 보고 눌러앉아서? 그게 뭐. 바라는 거 하나 없는 보살핌이네, 진정한 사랑입네 운운했던 다른 여자들은 안 그랬는지 알아? 어떻게 포장해도 원하는 건 결국 다 그거였는데, 차라리 솔직한 쪽이 좋지. 개중에 날 제거할 대상으로 여기지도 않고 공주님 떠받들 듯 극진하게 대해주잖아. 네 어머니가 탐내던 병원 쪽은 나도 그다지 관심 없고. 이런 게 윈윈이지, 껄끄러운 게 아니라.]

“아까부터 묻잖아. 용건이 뭐냐고.”

[너구리 다 됐네. 정말 내가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님 모르는 척해주길 바라는 거야?]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할 말 없으면 끊어.”

그쯤에서 성가신 대거리를 끝내려고 했다 하영이 잠깐만, 하며 붙잡지 않았다면 미련 없이 종료 버튼을 눌렀으리라. 휴대폰 저편에서 은근히 기대하는 목소리가 홀러나왔다.

[그래서, 만났어?]

저절로 한숨이 샌다. 그것으로 충분한 대답이 됐던지, 하영이 다시 물었다. 어쩐지 금방이라도 웃음을 터트릴 듯한 어조였다.

[어땠어?]

“뭐가.”

[뭐긴. 걔도 놀랐을 거 아나. 옛날에 헤어졌던 친구가 느닷없이 나타났는데. 뭐라 그러디? 반가워해? 아님 쑥스러워하든? 수감 생활할 때 얘기는 아직 안 했어? 어떻게 재심 받았던 건지는 역시 모르지?]

일방적으로 작별 인사를 건네곤 통화를 마쳤다. 곧바로 전화가 다시 걸려왔지만, 휴대폰을 거꾸로 뒤집어 놓는다. 자리에서 일어나 맥주 한 캔을 꺼내왔다. 딸깍 소리와 함께 캔을 따서 시원스레 목을 축인다.

- 내가 거기서 사람을 죽였어.

불현듯 어렵게 고백하던 창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말을 뱉으면 세상이 끝나기라도 할 것처럼, 그는 한껏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곧 다가올 절망을 예감하곤 각오를 단단히 해두는 것 같기도 했다.

재윤은 맥주를 탁상 위에 내려놓고, 예의 그 앨범을 다시 펼쳤다. 한줄, 한 줄 글자의 크기며 모양이 다른 첫 번째 편지에는 그것을 적어 내려가기까지의 망설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꾹꾹 힘주어 늘러 쓴 글씨는 점자처럼, 손을 대면 하나하나 살갖에 새겨질 듯했다.

「이걸 쓸까 말까 열 밤도 넘게 고민했어.

그 생각 때문에 자다가도 계속 벌떡벌떡 일어나.

아침에 오늘 수능이 치러진다는 뉴스를 봤어.

학교로 들어가는 고딩들을 보는데, 이상하게 내 눈엔 다 너로 보이더라.

혹시 진짜 그 속에 네가 섞여 있을까 봐 티비에 코를 박고 있었다니까.

어쩌면 궁금해 할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시험 끝나고 시간이 좀 생기면 한 번쯤 찾아오지 않을까도 싶어서.

거기 가도 나는 없다는 얘길 해줘야 니가 헛걸음 안 할 거 아냐.

갈 생각도 없는데 뭔 설레발이나 싶으면 그냥 무시해도 괜찮아.

봉투 보고 알았겠지만 나는 지금 여기에 있어.

되게 놀랐지?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는데 어디에서부터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다.

가끔 생각해. 아니, 날마다 생각해.

만약에 네가 서울에 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예전처럼 네가 그냥 내 옆에 있어 줬으면 조금은 상황이 달라졌을까.

적어도 그런 멍청한 짓은 하지 말라고 말려줬을 텐데.

나란 놈은 왜 이렇게 생겨 먹었지?

이 나이 먹고도 혼자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

이번엔 잘해보겠다고 할머니 얘기도 무시하고 내 맘대로 했는데,

그 결과가 결국 이거야.

근데 재윤아, 신은 없는 거 같아.

잘못은 내가 했는데 벌은 울 할머니가 받았거든.

실은 할머니가 좀 아파.

중풍이 연달아 와서 몸도 마음대로 못 움직이고,

기억을 하나씩 하나씩 싹 다 잊어서 나중엔 꼬맹이나 다름없게 될 거래.

이제 노인네, 옆에서 보살펴줄 사람도 없는데.

소식 듣곤 가슴이 찢어지는 거 같았는데, 지금은 차라리 잘됐지 싶어.

이제 울 할머니 병신 같은 나 때문에 속상할 일 없을 테니까.

나 기다리면서 마냥 대문만 보고 살지 않아도 될 테니까.

그러네. 그렇게 따지면 벌은 제대로 나한테 온 것도 같다. 그치?

하고 싶은 말이 되게 많은데, 진짜 많은데. 이상하게 써지지가 않아.

(보고싶다)

아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면회는 오지 않아도 괜찮아.

너 보면 나 너무 쪽팔릴 거 같으니까. 와도 내가 안 볼래.

나 대신 잘 살아.

넌 틀림없이 잘 될 거야.」

편지와 함께 보관된 봉투 상 발신처는 어느 소년범 교두소로, 모두 동일했다. 내용 중 새카맣게 지워진 부분을 손끝으로 더듬는다. 의식의 흐름대로 써내려가다 황망히 지웠을 네 개의 글자는 재윤을 향한 짙은 그리움을 대변하고 있었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재윤의 눈동자 위로 실로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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