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오랜 꿈을 꿨다. 할머니가 나와 창수야, 하고 불렀다. 인제 그만 일어나 라면서 엉덩이를 토닥거리기도 했다. 조금 더 미적거리며 할머니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도닥도닥 등을 어루만지는 손길이 따뜻했다.
할머니의 존재가 흐릿해졌을 때, 재윤이 다가왔다. 어떻게 보면 어린아이 같기도, 열여덟 소년 같기도, 당장 지금의 모습 같기도 했다. 그는 줄곧 그랬듯 남의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리며 웃었다. 이유도 모른 재 따라 웃다가 문득 꿈인 걸 깨달았다. 이제 재윤은 창수 자신을 향해 그렇게 웃어주지 않을 거였다.
끙끙 앓다가 눈을 떴다. 부옇던 시야가 차츰 안정을 찾으면서 길녀가 보였다. 그 곁에는 눈물범벅으로 곯아떨어진 윤삼도 있었다. 이조차 꿈인가싶도록 현실감이 없었다.
“……어.”
“존나 처자네. 아예 영원히 자지, 왜?”
길녀가 미워 죽겠다는 듯이 눈을 흘겼다. 다시 천천히 사위를 둘러봤다. 코끝을 스치는 냄새도 그렇고, 주변이 온통 새하얀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병원에 와 있는 모양이었다.
지난 기억을 더듬었다. 만용에게 이끌려 철공소에 갔던 것도, 그곳에서 만용의 처를 맞닥뜨린 것도 또렷하게 떠올랐다. 길길이 날뛰는 만용을 말려보려 온몸으로 매달렸던 것까지. 지레 인상을 찌푸렸다. 단지 그때를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잊었던 통증이 살아나는 듯했다.
그제야 살펴본 제 몰골이 말도 아니었다. 몸 여기저기엔 거즈가 붙어 있고, 오른쪽 팔은 깁스한 상태였다. 숨을 뱉을 때마다 흉부가 아릿하더라니, 늑골이 골절되면서 기흉까지 생겼다고 했다.
“퇴원하려면 4주 정도는 걸릴 거라더라.”
“그 치는?”
“누구. 대장간?”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만용이 정말 그를 죽이는 게 아닌가, 걱정했더랬다. 길녀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겨우 숨은 붙어 있다나 보더라. 만용이 그 미친 게, 낫 들고 지랄 발광했던 모양이더라고. 꼼짝없이 당할 뻔하다가, 마침 과도가 보여서 그걸로 방어했단다. 천만다행이었지, 뭐. 여차했으면 만용이 그것도 황천길 갈 뻔했다는 거 아니냐.”
심각한 얘기를 하면서도 길녀는 약간의 웃음을 짓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만용의 불행이 그녀에게 즐거움을 선사한 듯했다.
“갖은 패악 부리면서 난리치더니 언젠가 역풍 맞을 줄 알았다 그 새끼.”
“어느 정돈데?”
“바보 될지도 모르겠다던데?”
“바보?”
“어디에 머리를 부딪친 거 같다던가? 그 충격으로 뇌가 부어서 못 알아들을 헛소리만 지껄인다니까. 당시 일은 하나도 기억 못 한다나 봐. 의사말이 부기 빠져봐야 알겠지만, 그거 그러는 게 죗값 덜려고 연기하는 것 같진 않다고.”
그러면서 길녀는 만용의 처가 철공소 남자만 들여다볼 뿐, 남편의 병실에는 발길 한 번 안 했다며 키득거렸다. 남의 여자 억지로 빼앗은 죄라면서 동정조차 사치라던가.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짐작할 수도 없었다. 다만 만용이 그간 불안해했다는 걸, 또 그의 처가 단 한번도 그 곁에서 웃은 적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네 의사 친구…….”
느닷없이 재윤이 언급되자 창수의 고개가 급격히 들렸다. 격렬한 반응에 지레 놀랐던 길녀가 이내 탐탁잖은 표정을 지었다.
“일 터졌을 때 윤삼이가 냅다 거기로 달려갔었나 봐. 너 죽는다고. 걔가 소방헬기까지 부르고 수습 다 한 모양이더라?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경찰서에도 몇 번 불려간 거 같고. 관계자들이 이렇게 죄 뻗어 있으니.”
꿈이 아니었던 건가. 의식이 흐릿한 와중에도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꼭 재윤의 목소리 같아서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곳까지 와준 건 그가 의사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부질없이 짐작해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가 창수 자신을 아직 친구로 여겨줄 리가 없지 않은가. 나쁜 마음까지 품었단 걸 알게 되면 더 미움받을 거였다. 잊고 있던 우울감이 밀려들었다.
“……역시 그냥 죽을 걸 그랬나.”
“병신이, 못 하는 소리가 없어.”
기어이 매를 번다. 휘갈겨진 넓적다리에서 찰싹 하는 소리가 났다. 깁스때문에 한참을 꼬물거리다가 반대편 손으로 바삐 비볐다. 싸한 느낌은 바로 진정되지 않았다. 그래도 환잔데, 봐주는 법이 없다.
“그날 만용이 기분 별로였다며.”
“응. 내가 일 그만두고 싶다고 그랬거든.”
“뜬금없이?”
길녀는 뜻밖이라는 표정이었다. 확실히 지금까지는 하는 일에 불만을 품지 않았다. 얼마쯤은 그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체념하기도 했고, 농담으로라도 좋은 일이라곤 할 수 없지만, 그것도 제 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재윤을 만난 뒤로 부끄러워졌다. 자꾸 못난 모습만 보여주는 것 같아서 속이 상했다. 왜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지 못했는지, 처음으로 후회가 됐다.
“더 착하게 살고 싶어서.”
한참 만에야 흘러나온 대답은 길녀를 뻥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덜컥 이마를 짚어봤다. 열이 없음을 알고도 이불을 바싹 끌어다가 덮어준다.
“안 되겠다. 니 새끼 아무래도 더 쉬어야 할 거 같아.”
“나 멀쩡해, 길녀야.”
“일단 푹 자. 나랑 얘도 어차피 진술하러 경찰서 가야 되니까.”
한사코 괜찮다는데도 무시하며, 윤삼을 툭 걷어차서 깨웠다. 그가 좀처럼 눈을 뜨지 못하자 매섭게 뒤통수를 갈겼다. 윤삼은 악 소리를 내며 제 머리를 감싸 쥐었다. 홱 독기 어린 얼굴을 쳐들다가도 버티고 서 있는 길녀를 보곤 맥없이 쪼그라든다.
뒤늦게 창수를 발견한 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형님! 일어나셨네요! 제가 얼마나 걱정했게요.”
“자, 그러면 우리는 이만. 시간 있으면 또 들릴게.”
“어어, 누님. 잠깐만요. 잠깐…….”
두 팔을 번쩍 벌리며 달려들려는 걸, 길녀가 질질 끌고 나갔다. 문을 닫기 직전에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돌아봤다.
“네 불알친구 만나거든 네가 겁나 보고 싶어 한다고 전해줄게.”
“어? 하, 하지 마! 하지 말라고! 그러지 마, 이 미친년아!”
당혹감에 소리쳤지만, 길녀는 유유히 문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복도에서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오, 저게. 왜 저래, 진짜.”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가슴을 눌렀다. 심장이 제멋대로 두근두근했다. 당장 재윤이 오는 게 아닌데도 그랬다. 그곳에도 이상이 생긴 게 분명했다.
얼굴에 오른 열이 내려가지 않았다. 숨도 너끈히 쉬어지질 않는다. 창수는 이불을 찔끔찔끔 끌어당겨 눈 아래까지 덮었다. 그러다가 두 눈마저 질끈 감고는 이불 역시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벌컥거리는 심장 탓에 다시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어떻게 잠들었는지 모르겠다. 잠시 깼다가, 도로 잠들고, 어렴풋하게 의식이 돌아왔다가 다시 잠기길 반복했다. 그 사이 몇 번의 낮과 밤이 지나갔다. 별다른 꿈은 꾸지 않았다. 아니, 꿨어도 기억하지 못했다는 게 맞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주변은 어스름했다. 귓전에는 가습기 돌아가는 소리만 간간이 들려왔다. 당연히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무심코 고개를 돌리다, 재윤을 발견했을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는 불도 켜지 않은 병실에서 창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창수는 저도 모르게 움찔 어깨를 떨었다.
“…….”
“…….”
한참이나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꿈인가 싶어 샅샅이 살폈지만, 눈에 맺힌 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슬그머니 손가락을 뻗어 재윤의 다리를 톡 건드려봤다. 단단한 질감이 느껴졌다. 당혹감에 그대로 몸이 굳었다. 덩달아 귓가가 뜨거워졌다.
“……어.”
“왜. 더 자지.”
묻는 목소리가 이전처럼 침착하고 다정했다. 분명히 다리가 만져졌는데. 꿈일 리가 없는데. 멍하니 그를 봤다. 재윤은 그런 창수의 팔을 붙들어 제자리로 잠자코 돌려놓았다. 흐트러진 이불도 끌어당겨 잘 덮어주었다.
그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며 물었다.
“언제, 왔어?”
“얼마 안 됐어. 시간이 늦어서 잠깐 얼굴만 보고 가려고 했는데.”
“그 지저분한 데까지 왔었다며? 경찰서까지 불려 다니고.”
“환자가 있는 곳이면 가야지, 어디든”
예상했던 대로의 대답이 돌아온다. 아니라고 하면서도 알량한 기대감을 품었던가 보다. 속에서 뭔가가 기운 없이 수그러들었다. 덩달아 흉부 깊숙한 곳이 먹먹해져서 눈살마저 살짝 찌푸려졌다. 재윤은 그것을 놓지지 않고 걱정했다.
“어디 불편해?”
“아냐. 아무것도. 그, 많이 놀랐지?”
“응급실에서 당직 설 땐 그보다 더한 것도 봤는데, 뭘.”
오토바이를 타다가 발목이 절단되거나 두개골이 함몰된 채 실려 오기도 하고, 장기가 다 쏟아진 상태로 내원하는 경우도 있어. 듣기만 해도 징그러운 얘기를 평온하게도 늘어놓았다. 창수의 표정만 지레 찌푸려졌다. 그 우스꽝스런 낯을 보고, 재윤이 옅게 웃었다.
웃어줬다. 순간적으로 참지 못한 거라고 해도, 분명히 창수 자신을 보며 웃었다. 창수의 두 눈이 멍해진다. 그러다가도 무슨 생각을 했는지, 시무룩한 표정으로 눈썹을 늘어뜨렸다.
“너란 놈은 왜 그렇게 착하고 그러냐. 사람 미안해지게.”
“착하다니. 누구 얘긴데, 그거.”
“적당히 겸손하라고. 괜히 내가 창피하잖아.”
“전에도 말했던 거 같은데. 창수 네가 착하다고 믿으니까 그렇게 보이는 거라고. 실제로는 착하다느니, 선하다느니. 상냥하다느니. 그런 말 들을 인간이 못 돼.”
술술 말도 잘 섞어준다. 다시는 대화할 수 없을 거라고, 눈조차 마주쳐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실망이 너무 커서 창수 자신을 혐오하게 됐으리라고 말이다.
“……용서해준 거야?”
슬그머니 눈치를 봤다. 재윤은 모르는 얼굴을 했다.
“용서라니?”
“그, 시장에서…… 보고 나한테 화난 거 아니었어?”
창수의 눈동자가 서서히 재윤을 비껴 내려간다. 어둠 속에서도 차마 그 눈을 똑바로 마주 볼 수가 없었다 이불을 붙든 두 손에 꼭 힘이 들어갔다. 머지않아 머리맡에서 픽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그럴 리가. 그저 창수, 네가 민망해 할까 봐 자릴 피했던 것뿐이야.”
갑자기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런 의도가 있을 거라곤 추호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저 제 논리대로, 단순하게. 선한 사람을 괴롭히는 줄 알고 실망했으리라 추측했을 뿐이었다. 이렇게나 마음 넓은 남자를 소인배로 만들다니. 창수는 죽어, 하며 나지막이 자신을 저주했다. 애꿎은 머리카락도 쥐어뜯었다.
벌떡 일어나려다가 도로 누워버린다. 몸이 아직도 말을 듣지 않았다. 한참 아등바등하다가 옆에 있던 재윤에게 손을 뻗었다. 나 좀 일으켜줘, 할 때에야 재윤이 등을 받쳐가며 천천히 자리에 앉혀주었다. 불편하지 않도록 베게도 등 뒤에 잘 괴어준다.
그 와중에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재윤에게서 풍기는 특유의 향이 물씬 짙어졌다. 그게 다 뭐라고, 망할 심장이 또 벌렁벌렁했다. 설레발 떠는 놈을 애써 다독이는데, 재윤이 불을 켜고 돌아왔다. 할 말이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망막에 맺히는 그의 모습이 보다 또렷해진다. 얼마나 오래됐다고, 공연히 뭉클해졌다. 이상한 얼굴을 들킬세라 푹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그런 줄도 모고 고 오해했어.”
“어떤 오해?”
“이제 재윤이 네가 날 상대해주지 않을 거라고.”
“왜 그렇게 생각했는데?”
“틀림없이 실망했을 테니까.
어이가 없었던지 재윤이 픽 웃었다. 긴장한 탓에 저절로 어깨가 옹송그려졌다. 지난 며칠 그 생각만 해서 그런가. 그의 행동, 시선, 숨결 하나하나가 미치도록 의식됐다.
“창수, 네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건 다른 부분이야.”
뜻밖의 대꾸에 창수가 홱 고개를 들었다. 얼굴에는 그야말로 천연의 의문이 서려 있었다.
“뭔데? 또 내가 오해하고 있던 게.”
재윤의 입가에 빙긋 미소가 번진다. 그는 손을 뻗어 창수의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살갖 위로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세포가 바짝 졸아들면서 회음 쪽이 강하게 긴장됐다. 그걸, 재윤만은 깨닫지 못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건 네 다정한 면만이 아니야. 남이 보기에 부족한 점도, 너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일도, 네 슬픔이나 우울함, 좌절, 고민, 곤란해 하는 표정까지. 모두 좋아해. 그게 결국은 창수, 너니까.”
읏, 앓는 소리를 내며 숨을 삼켰다. 고백을 받은 것도 아닌데 맥박이 마구 널뛰었다. 호흡이 거칠어질까 봐 쉽사리 숨을 뱉을 수가 없었다. 이불을 말아 쥔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그거 ‘친구니까’인 거지?”
주먹이 불안함을 품고 가늘게 떨렸다. 의아해하는 재윤을 힘겹게 올려다보는 눈동자가 어딘가 모르게 애처로웠다. 조금은 분한 것처럼. 풀리지 않는 의문에의 갑갑함도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왜 갑자기 그런 충동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죽다 살아났기 때문인지.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고 체념했던 재윤이 다시 와준 탓인지.
“저번에 했던 내기 기억해?”
대꾸하기도 전에, 창수가 거듭 물었다. 단단히 벼른 듯, 두 눈엔 결연한 의지마저 엿보였다. 그런 한편, 거절이라도 당할까 봐 입술을 잘근거린다. 난데없는 상황이었음에도 재윤은 평온을 유지했다. 그래야 모처럼 대찬 창수의 모습을 빠짐없이 관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잠시 기억을 되짚었다. 창수와 한 내기라면 섬에서 했던 낚시밖에 없었다. 아직도 그걸 수리하지 않았구나. 새삼 깨달으며, 이제야 떠올랐다는 듯이 대꾸했다.
“아, 혹시 전에 낚시했을 때?”
창수는 고개를 큼직하게 끄덕끄덕했다. 입술이 재차 야무지게 다물어졌다. 순하던 눈매에도 보다 힘이 들어갔다. 침을 삼켰는지, 그의 울대가 느리게 한 번 너울거렸다.
“그 소원, 지금 말할 거야.”
“얼마든지.”
의외롭게 보던 것도 잠시, 느긋하게 웃었다. 빤히 보던 창수가 눈동자를 옆으로 굴린다. 뭔가를 생각하는 듯도, 다짐하는 듯도 했다. 재차 그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다시 눈을 맞춰왔을 땐 두 볼에 열이 올라 있었다.
“가만히 있어.”
또렷한 음성이었는데도 바로 인식하지 못했다. 다소 멍하게 보다가 응, 하고 되묻고 말았다.
“……그게 소원이야?”
묻는데 그 직후, 창수의 얼굴이 불쑥 다가왔다. 덩달아 달뜬 숨결이 피부에 닿았다. 행위를 깨달았을 때에는 입술 위에 창수의 입술이 꾹 짓눌렸다. 어딘가 모르게 필사적인 느낌이었다. 맞닿은 곳에서 미세하나마 떨림이 전해졌다.
이윽고 칭수가 서서히 물러났다. 당한 것은 재윤인데 제가 더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숨도 허투루 내쉬지 못하다가 겨우 억눌러 뱉어낸다. 눈꺼풀을 다시 들어올리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직전까지 당돌하리만치 기세등등하던 두 눈은 더 이상 재윤을 담지 못했다.
“친구는 이런 짓 안 해.”
분한 얘기라도 하는 듯 창수의 눈썹이 일자로 모아졌다. 미간에는 주름마저 잡혀 있었다. 가만히 마주하는데, 저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래, 안 해.”
창수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얼굴은 더없이 침울해졌다. 입술을 다급히 꼭 물면서 뭔가를 참아보려 애쓴다. 그 얼굴을 물끄러미 보다가 손을 뻗었다. 이에 물린 아랫입술을 가만히 짓눌러 빼냈다. 그제야 창수가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두 눈이 그렁그렁했다.
이래서야.
순간적으로 재윤의 미간이 구겨졌다. 덩달아 입꼬리는 돌연 깊은 곡선을 그리면서 올라갔다.
다음 순간, 창수에게서 나직한 탄성이 터졌다. 그의 아랫입술을 살짝 누르면서 입술을 겹치는 행위가 군더더기 없이 이어졌다. 의식 없이 벌어진 입술 새로 말캉한 혀가 밀려들자 창수가 멈칫하는 게 느껴졌다. 뜻밖의 상황에 그의 온몸이 뻣뻣하게 긴장됐다.
반사적으로 물러나려던 그의 몸을 팔로 휘감아 당겼다. 그러곤 보다 농밀하게 그의 입속 점막을 탐하기 시작했다. 저 홀로 얼마나 끙끙대며 애를 끓였던지, 달짝지근해진 타액이 진득하게 흘러들었다. 피할 곳을 찾지 못하고 쩔쩔매는 말캉한 혀를 구석으로 몰아 눌렀다. 덩달아 창수의 허리가 조금씩 뒤로 젖혀졌다. 으으, 앓는 소리가 입속에서 뭉그러진다. 한결 가빠진 숨도 재차 목구멍까지 후덥지근하게 넘어왔다.
재윤은 창수의 볼을 엄지로 가만가만 어르면서도, 침입과 정복에는 거침이 없었다. 볼 안쪽 점막을 아릴 정도로 거푸 훑어 올리다가, 구석에서 몸 사리던 창수의 혀를 힘주어 빨아 당겼다. 혀뿌리가 빠듯하게 당겨지자 창수의 몸에도 긴장감이 극대화된다. 갑자기 맞대었던 입술을 뗐을 땐, 여지없이 거친 숨이 토해졌다. 턱으로는 줄줄 말간 타액이 흘러내렸다. 재윤을 보는 눈빛이 철모르고 날뛰다 나동그라진 강아지 같았다.
“안 하지, 이런 것도.”
씁쓸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재윤을 바라보던 창수의 눈에서 뚝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손을 뻗어 닦아주려는데, 창수가 그 손을 붙들어 잡았다. 부들부들 그에게서 시작된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미안해. 진짜 미안. 내가 많이 나쁜 새낀 건 아는데, 살면서 너한테 좆도 도움 안 될 것도 다 아는데 미워하진 말아주라. 실망시켜서 미안해. 너 부끄럽게 한 것도 미안. 친구 상대로 발정하는 개만도 못한 쓰레기라서 그것도 미안해. 그치만 너 착한 새끼잖아. 그러니까 이번에도 네가 좀 봐줘. 네 눈에 거슬리게 안 할 테니까, 오지 말라면 그만 알짱거릴 테니까. 그러니까…… 계속 친구해주라.”
멍하니 보던 재윤의 입가에 소리 없이 웃음이 번졌다.
“싫어.”
가벼운 심통을 부리자 읏, 하며 입술을 깨문다. 단순한 거절의 뉘앙스가 아니라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앞선 키스의 의미를 짐작할 수도 없을 만큼 창수는 저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있었다. 조금만 더 내버려두었다가는 꺼내올 수도 없는 깊은 곳까지 꾸역꾸역 들어갈 기세였다. 다시 손을 뻗자 창수가 반사적으로 목을 움츠렸다. 그런 그를 안타깝게 보다가 볼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같이 죽자고 달려든 거 아니었어? 가만히 있는 사람 들입다 받아놓고는 고작 친구라니. 뭔데, 그 허무한 결론은.”
“그야 친구일 수밖에 없잖아. 난 너랑 같은 사내새끼니까.”
“발랑 까진 줄 알고 기대했더니. 여전하네.”
얕은 한숨과 함께 새어 나온 혼잣말은 숫제 비릿하게 들렸다. 재윤이 한 말이라곤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뻥한 얼굴로 보자 그가 머리카락을 미구 헝클어뜨렸다. 저절로 고개가 살짝 숙여졌다. 물기 없이 푸석푸석하던 머리카락이 엉망으로 흐트러진다.
“고작 친구 정도로는 내가 안 되겠어.”
재윤이 분명하게 말했다. 창수는 꾸역꾸역 고개를 들고 그를 봤다. 아직도 넋이 완전히 나가 있었다.
“나, 멍청해서……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
“하라고 발정. 나한테.”
헤벌어진 입이 다물리지 않았다. 아직도 그의 머릿속에선 작금의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차분하게 기다려줄 여유 같은 건 진즉 달아나고 없었다.
덜컥 창수의 손목을 붙들었다. 내내 재윤을 향하던 창수의 눈길이 잡힌 제 팔로 떨어진다. 머리맡에서 보다 분명해진 재윤의 음성이 닿아왔다. 손목을 조이는 힘도 더해졌다.
“분명히 창수 네 발로 온 거야.”
“응?”
“네가, 나한테 온 거라고.”
“응, 그야…….”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건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직후, 어깨가 눌리면서 도로 침상 위에 눕혀졌다. 돌연 던져지기라도 한 것처럼 시야가 크게 울렁였다.
하지만 그도 잠시, 재윤이 시계를 꽉 채우며 들어왔다. 그는 자연스럽게 창수의 몸 위로 올라와 있었다. 금방이라도 그가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 심장이 멎어버렸는지 이젠 아예 감각이 없었다. 입을 벌린 채 재윤을 봤다. 다음 순간, 그가 서서히 내려와 창수의 입술을 머금었다.
부드러운 숨결이 파고들어와 목젖을 간질였다. 저절로 눈이 감겼다. 재윤은 창수의 입술을 야금야금 베어 먹듯 하다가 슬쩍 고개를 비틀며 혀를 밀어 넣었다. 창수의 몸이 재차 굳어졌다. 재윤은 그를 다독이듯 볼을 가만가만 어루만졌다. 분명히 창수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인데, 영 실감이 안 났다.
슬그머니 혀를 움직여 재윤의 혀를 건드려봤다. 여지없이 알아채고는 부드럽게 휘감겨왔다. 덩달아 얼마쯤의 타액이 밀려들었다.
재윤은 느긋하게 창수를 제압해 나갔다. 익숙하지 않은 탓일까. 뻐근할정도로 격렬하게 부대껴오던 창수의 혀가 금세 나가떨어졌다. 맥없는 그의 혀를 쪽, 쪽 소리 내 빨면서 열 오른 점막을 농밀하게 탐했다. 끊임없이 교환된 타액이 바글바글 끓으며 달짝지근해졌다. 얼결에 휩쓸리면서도 창수는 갈증을 해갈하듯 그것을 꼴깍꼴깍 삼켰다.
쪽 소리를 내며 아쉽게 입술을 떼어냈다. 젖은 입술 사이에 가느다란 타액이 늘어졌다. 창수는 얼빠진 얼굴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어깨와 가슴이 덩달아 들썩였다. 재윤은 씩 웃으며 그의 목덜미와 귀밑, 눈썹 등지에 입을 맞췄다. 두 손은 자연스럽게 창수의 상의 단추를 풀어나갔다.
“?”
눈가를 맴도는 입맞춤에, 창수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재윤은 상의를 양쪽으로 젖혀 벌리곤 완연히 드러난 창수의 가만히 내려다봤다. 군데군데 긁힌 상처와 거즈가 보였다. 멀쩡한 곳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재윤이 한참 제 벗은 몸을 보기만 하고 다음 행위로 이어가지 않자, 창수가 눈을 몇 번 깜빡거렸다.
“만지고 싶으면 그래도 되는데.”
“아프지 않아?”
“진통제도 맞고 있고…….”
주저하는 재윤의 손을 끌어다 제 어깨에 툭 내려놓았다. 어딜 만지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창수 자신이 여자였다면 필시 가슴이겠지만. 은근히 궁금해하며, 제 어깨에 놓인 재윤의 손을 지켜본다. 재윤은 픽 웃으면서 창수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어깨에 얹혀 있던 손은 힘을 뺀 채로 슬그머니 살갗을 쓸어내렸다. 지나가는 손끝에 유두가 가볍게 짓눌리자 창수의 무릎이 움찔 튄다. 덩달아 재윤의 입가에 흥미로운 웃음이 짙게 번졌다.
하복부를 다소 힘주어 쓸어내리는 손길이 더없이 야릇하게 느껴졌다. 두 무릎을 바짝 붙인 건 샅으로 저릿저릿한 감각이 폭포처럼 쏟아졌기 때문이었다. 이렇게까지 쌓여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몸의 모든 감각이 선명했다.
재윤은 창수의 얕은 가슴골을 따라 점점이 입을 맞췄다. 두 손은 조용하면서도 기민하게, 바지를 벗겼다. 재윤의 입술이 닿는 곳마다 창수의 몸이 움찔움찔 쪼그라든다. 옆구리 쪽으로 방향을 잡았을 땐 자꾸 엉덩이를 뒤로 빼면서 새우처럼 구겨졌다. 피식 웃으며, 부러 옆구리를 한입 가득 베어 물었다. 창수의 무릎이 재차 발끈 섰다.
“으앗, 그, 그런데…… 아무래도 모르겠어서. 전화는 왜 안 받았냐?”
“그야 약해진 얼굴 보면 나쁜 마음 먹게 될 것 같아서?”
하의가 끌어내려졌다. 창수는 재윤의 대답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를 아리송하게 바라봤다. 올려다보는 재윤과 시선이 얽혔다. 찰나나마 그의 두 눈에 얄궂은 빛이 스친 듯했다.
“틀림없이.”
낮게 중얼거린 그가 별안간 상체를 길게 넘겨오더니, 대뜸 창수의 유두를 머금었다.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올라온 낯선 감각에 창수가 으악, 소리치며 어깨를 접었다. 자연스럽게 허리가 들렸다. 그 참에 재윤은 창수의 하의와 팬티를 한 데 잡아 끌어내렸다. 금세 아랫도리가 헐렁해졌다. 이미 발딱 일어서 있던 남근이 재윤의 손아귀로 떨어진다. 서둘러 무릎의 각도를 좁혀봤지만 소용없었다.
“으…… 거, 거긴 건드리지 마.”
“얼마든지 만져도 괜찮다며.”
“그거야 그렇지만…… 네가 스치면 발딱 선단 말이야! 이미 위험하다고.”
“쉿. 슬슬 간호사들 라운딩 돌 시간인데.”
“뭐? 그럼 더 하지 말아야지! 못 참는다고.”
창수가 재윤의 팔을 두 손으로 붙들어왔다. 무릎도 꼭 모아 붙이면서 버텼다. 단단한 넓적다리 사이에 팔이 완전히 끼었다. 조이는 감각이 여지없이 전해진다.
하아,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정말 그만두게 하려는 생각인 건지. 때때로 순진무구함은 죄가 된다.
발갛게 익은 귀두를 엄지로 가만가만 쓰다듬었다. 가장 민감한 곳이 연신 자극되자 완강히 버티던 창수의 몸이 뒤집힌다. 소리 내지 않으려고 꽉 다문 입술도 움찔움찔 일렁였다.
“힘 빼. 기분 좋게 해줄 테니까.”
끙끙대는 창수의 귓가에 달콤하게 속삭였다. 쪽, 귀밑에 입을 맞추자 바싹 날을 세우던 몸이 무장해제 된다.
맞붙어 있던 무릎을 잡아 크게 벌렸다. 구태여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는 데도 그랬다. 발갛게 익은 남근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가리를 드높였다. 손을 대자 저절로 몸뚱이를 엉겨온다. 놈을 다독이듯 위아래로 쓸면서 갈라진 선단을 가만가만 건드렸다. 지끈지끈한 쾌감에 창수의 복부가 몇 번이고 발끈했다.
“아, 잠깐…… 잠, 웃, 으으응─.”
쩔쩔매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버둥거리는 창수의 팔을 짓눌렀다. 그러곤 혀를 내어 유륜을 가만히 덧그렸다. 창수의 얼굴에 당혹감과 긴박감이 팽배해진다. 그 위태로운 시선을 똑바로 마주하며 긴장으로 단단해진 유두를 서서히 머금었다. 예민한 살점이 혀에 꾹 짓눌리자 창수가 작게 도리질을 쳐댔다.
“읏아아…─ 하지 마. 기분 이상해.”
급격히 몸집을 부풀리던 그의 남근이 기어이 손 안에 멀건 쿠퍼액을 쏟아냈다. 들끓는 살덩이를 사랑스럽게 어루만졌다.
거푸 들이치는 쾌감에 이젠 샅이 아리다 못해 욱신거릴 지경이었다. 덩달아 재윤의 손에도 점차 속도가 붙는다. 쥐어뜯을 것처럼 거칠게 문질러 주는데도 자꾸만 애가 닳았다. 바글바글 들끓는 욕정이 해소되지 않아, 창수는 저도 모르게 허리를 움찔움찔 튕겨냈다.
샅에서부터 촉발된 저릿함이 복부와 허벅지 전체로 퍼져나갔다. 중심부가 닳아 없어질 것만 같은 진득한 감각에 발가락까지 바싹 움츠러졌다. 달뜬 숨이 쉼 없이 터져 나왔다. 이 막막하고 조마조마한 쾌락에서 벗어나고자 온몸으로 재윤에게 매달렸다.
“젠장, 읏…… 젠, 으응, 아…… 빨리…….”
필사적으로 재윤의 옷깃을 끌어당겼다. 재윤은 그대로 다가와 창수를 꽉 안아주었다. 그의 머리를 떠받치듯 하며 제 품으로 끌어당긴다. 손의 움직임은 더욱 격렬해졌다. 창수의 눈이 질끈질끈 감겼다.
“하으응…… 하, 으핫…….”
눈앞이 팽글팽글 돌았다. 이마를 재윤의 어깨에 기댄 채 연신 가쁜 숨을 토해냈다. 콧속으로 재윤의 체취가 담뿍 풍겨와 더 정신을 차리기가 어려웠다. 잔뜩 짓이겨지는 신음은 제 것이 아닌 듯했다.
사정의 목전에서, 돌연 재윤이 창수의 남근을 꼭 쥐었다. 한 곳을 향해 극렬히 달려들던 열이 그대로 막혀 버린다. 잡힌 귀두부가 터질 것처럼 욱신거렸다.
“왜, 왜에…….”
울 것 같은 얼굴로 재윤을 재촉했다. 두 다리는 그의 팔을 품은 채 있는 대로 조여졌다. 온몸의 세포가 긴장감에 잔뜩 수축돼서, 몸살이라도 날 것 같았다. 재윤을 보는 눈빛은 자못 애처롭기까지 했다. 손목에 쌓인 피로가 상당할 텐데도 재윤은 창수를 보며 느긋하게 웃었다.
“좋아해.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코앞에 대고 살랑살랑한 고백이 전해졌다. 연이어 왼쪽 볼에 재윤의 입술이 가볍게 짓눌린다. 갑갑함에 잔득 일그러졌던 창수의 얼굴이 탁 펴졌다. 순간이나마 몸의 긴박감이 증발한 것 같았다. 곧 오른쪽 볼에도 재윤의 입술이 닿았다 떨어졌다.
“좋아했어. 네가 짐작하는 때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거푸 속삭여지는 밀어에 살갖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하복부 아래로는 아예 감각이 없었다. 숨조차 너끈히 쉬어지지 않았다.
재윤은 창수의 이마에 제 이마를 맞댔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얽혔다. 재윤이 눈썹을 살짝 늘어뜨리며 난생처음 보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유도 없이 가슴이 미어졌다.
“좋아할 수밖에 없었어. 도무지 피할 수가 없었어, 널.”
가슴 한가운데에 뭔가가 먹먹하게 맺혔다. 부들부들 주체할 수 없이 몸이 떨렸다.
“하으읏…─!”
다음 순간, 재윤이 속박하고 있던 창수의 남근을 놓아주었다. 바글바글 끓던 것이 거침없이 끼얹어진다. 질끈 눈이 감겼다. 개운함을 넘어선 짜릿함에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발가락이 더 힘 있게 웅크려진다. 재윤이 재차 남근을 훑어주자 놈은 남은 것을 마저 토해내고 맥없이 자지러졌다.
“아…… 미친…… 아…….”
창수는 진득한 여운에 몸을 떨며, 횡설수설했다. 체력이 방전된 것처럼 전신에서 힘이 주르륵 빠져나갔다. 눈꺼풀 하나 마음대로 들 수가 없었다. 그런 가운데 숨은 여전히 가쁘고, 가슴은 쿵쿵 무겁게 뛰어댔다. 불유쾌하면서도 설레는, 이상한 기분이었다.
재윤은 장한 일이라도 한 것처럼, 창수를 다독였다. 볼을 간질이듯 어루만지자 창수가 조금씩, 조금씩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부르르 몸을 떨며 재윤의 목덜미 깊숙이 제 고개를 파묻는다. 픽 웃으며 그의 숨이 진정된 때 까지 꼭 안아주었다.
그즈음 밖에서 미약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슬슬 간호사들이 환자들의 상태를 체크하는 것 같았다. 재윤은 창수에게 도로 환자복을 입혀주었다. 사정의 여운 때문인지, 창수는 완전히 늘어져서 잠자코 그의 손길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그의 얼굴을 두 손으로 붙든 채 이마에 입술을 눌렀다.
“한숨 푹 자. 계속 여기 있을 테니까.”
나긋이 속삭이는 말에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목소리를 짜낼 기력도 남아 있지 않은 듯했다. 이불을 끌어다 목까지 잘 덮어주었다. 잘 자, 인사를 건네자 이번에도 고개만 주억거린다.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서다가 다시 창수를 봤다. 때마침 밖에서 노크소리가 들렸다.
힐금 문가를 보던 창수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검지를 제 입술 한가운데 가져다 댄다. 재윤은 눈썹을 늘어뜨리고 미소 짓다가 그를 꼭 한 번 끌어안아 봤다. 그 몸짓이, 더없이 애틋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