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고나-15화 (16/18)

15

어느덧 퇴원일이 다가왔다. 그동안 정들었던 간호사, 레지던트, 환자들, 간호 보조인은 물론 매점 주인과도 살뜰히 인사를 나누고 병원을 나섰다. 창수를 오래 본 사람이라면 알 거다. 나중에 한 번 찾아오겠다는 그의 인사가 빈말이 아니란 걸.

섬에 도착하자마자 보건지소로 갔다. 돌아갈 집이 따로 있는데도 재윤은 으레 그곳으로 방향을 잡았다. 창수 역시 조금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어렵게 다시 만난 만큼 잠시라도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았다.

관사에 도착하자마자 재윤이 갈아입을 옷을 내놓았다. 손수 입혀주려 하자 창수가 알아서 두 팔을 들었다. 먼저 소매부터 꿰고 머리 위로 남은 옷자락을 넘긴다. 그 참에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털듯이 쓸어내렸다. 창수에게서 얕은 웃음이 터졌다.

“안경 좀 벗겨줘.”

느닷없는 요구에 창수가 잠자코 재윤의 안경을 벗겼다. 얇은 다리를 양손으로 슬며시 붙든 모습이 조심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잠시 두 손이 묶인 참에 재윤이 쪽 입을 맞췄다. 얼떨떨한 표정을 짓던 창수가 그대로 재윤에게 달려들었다. 성이 다 찰 때까지 그의 입술과 혀를 빨아댔다.

재윤이 미리 끓여놓은 카레로 저녁밥을 먹고, 그날 밤은 서로 꼭 끌어안은 채 잠을 청했다. 병원에서 이미 수많은 얘기를 나눴던 것 같은데, 할말이 여전히 한참이나 남아 있었다. 그때그때 떠오르는 이야기들을 귓속말하듯 속닥거리다가 어느 순간 스르르 잠들었다. 엉긴 몸이 불편한 법도 한데, 밤새 한 번 뒤척이지 않았다.

어렴풋이 눈을 뜬 건 눈가에 어른거리는 그림자 때문이었다. 미동 없이 눈꺼풀만 들어 올렸다. 재윤이 창수가 깰까, 소리 죽여 나갈 채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시계 하나를 차는데도 한없이 신중한 손길에 히죽 웃었다.

중간부터는 아예 팔에 고개를 괴고 관망했다.

재윤은 마지막 점검을 마치고 돌아설 때에야 그런 창수를 발견했다 조금 허탈하게 웃는 모습이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한숨 더 자고 있어. 진료 끝내고 올 테니까.”

침대로 다가온 그가 귀를 가볍게 주무르면서 당부했다.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재윤은 창수의 볼에 가볍게 입 맞추곤 이불을 잘 끌어다 덮어주었다. 방을 나서기 직전엔 재차 한 번 돌아보기도 했다. 씩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재윤 역시 다녀올게, 입 모양을 내다가 밖으로 나갔다.

재윤이 층계를 내려가는 기척이 났다. 걸음걸음에 실리는 질량과 박자가 이젠 완전히 귀에 익었다. 숨죽여 그 소리를 듣고 있자면 마음이 한층 평온해졌다.

머지않아 지나가던 누군가가 재윤에게 인사를 건넸다.

“선생님, 식사는 하셨어?”

“네. 편찮은 데는 없으시죠? 날이 좋네요, 오늘.”

조금 전까지, 귓전에서 속삭여지던 목소리가 다소 멀게 느껴졌다. 비로소 창수 자신이 남몰래 재윤의 방에 숨어 있다는 게 실감 났다. 재윤은 김 간호사에게도 구태여 창수가 와 있음을 이야기하지 않을 거였다.

항상 붙어 다녀도 이상할 게 없던 관계였다. 하다못해 발가벗고 나란히 누워 있어도 수상쩍지 않았던 사이였다. 그런 두 사람에게 말 못할 비밀이 생겼다.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뱃속이 대책 없이 근지러웠다.

“……죽겠네, 정말.”

배부른 한탄을 쏟아내는 어조가 봄바람을 닮아 있었다.

내도록 자다가 몸을 뒤척였다. 충분한 수면을 취한 덕에 눈은 금세 떠졌다. 몇 시간이나 잤을까. 벽을 보며 의미 없이 시간을 가늠해봤다. 사위는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잠들기 전까지 환자들이 드나드는 기척을 끊임없이 들었는데.

뒤늦게 의문을 느끼며 돌아누웠다. 곧 재윤과 눈이 마주쳤다. 언제 왔는 지, 그는 침대 곁에서 창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진료를 마치자마자 온 모양이었다. 그의 흰 가운이 의자 등받이에 반듯이 걸렸다.

말없이 눈동자만 굴리다가 여상하게 물었다.

“뭐 하고 있었어?”

“자는 얼굴 구경.”

재윤은 옅게 웃으면서 창수의 볼을 가만히 어루만졌다. 내내 베개와 부대꼈던 살갗에서 자잘한 정전기가 났다.

“왔으면 깨우지. 재미없게.”

“아냐. 꽤 재미있었어.”

“무슨 의민데, 그거.”

창수가 금세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다. 재윤이 얼마나 그러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추했겠지 싶어서였다. 이를 갈거나 코를 골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귀여웠어, 창수의 속내라도 읽은 양 대꾸하더니 재윤이 가볍게 입을 맞췄다. 떨어져나가는 입술에 다시 한 번 뽀뽀했다. 이젠 그저 습관이 됐다.

“저녁은 어떻게 할래?”

일상적인 질문을 하는데도 재윤의 음성은 나긋나긋하기 그지없었다. 자면서 꿈을 꿔도 최근의 생활처럼 몽환적이지가 않았다 창수는 감각을 재확인해 보려는 듯 삐죽 입술을 내밀었다. 재윤이 야트막한 웃음을 터트리며 다시 뽀뽀해주었다. 그 얕은 접촉과 특유의 체취가 선명한 게, 확실히 꿈은 아니었다.

“퇴원 기념으로 나가서 먹을까? 마침 오일장도 열리는 날인데.”

“그럴까. 시장 구경, 오랜만이다.”

“오케이. 후딱 씻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창수는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사방으로 뻗친 머리를 감고, 후다닥 샤워도 마친다. 드라이 후에는 아쉬우나마 재윤의 왁스로 머리카락을 정돈했다. 고작 한 끼 해결하러 가는 거라지만, 첫 데이트인 셈이었다. 설레는 마음만큼이나 한 올, 한 올 고정하는 데 공을 들인다.

섬에서는 4일과 9일마다 장이 섰다. 그런 오일장은 상설시장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평소에는 농업에 종사하거나 어부였던 인사들도 그날만큼은 상인이 됐다. 직접 키운 채소에서부터 해산물, 고기, 의류. 약재, 어린 강아지까지. 팔지 않는 게 없었다. 서로 필요한 물건을 주고받으면서 안부를 확인하는 만남의 장과도 같았다.

저녁 시간이 되자 장 안이 더 북적북적했다. 남은 상품을 마저 털고 가려는 상인들과 끝물에 와서 값을 더 흥정해보려는 손들의 목소리가 어지럽게 뒤섞였다.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뒤따라오던 재윤을 놓칠세라 손을 뻗었다. 재윤이 망설임 없이 그 손을 잡아왔다. 어차피 행인들에게 가려 잘 보이지 않을 거였다. 창수는 얄궂은 표정을 지으며 슬그머니 깍지까지 꼈다. 그러다가 그대로 팔을 잡아당겨 재윤의 손등에 쪽 입을 맞췄다. 엄지로 그의 손바닥 한가운데를 간질이며 마음껏 애정행각도 부려본다. 재윤은 픽 웃으며, 뒤에서부터 창수를 꽉 끌어안았다. 그 역시 남들 눈에는 장난치는 걸로 보였을 터였다. 알게 모르게, 그 묘한 긴장감이 즐거웠다.

어린 시절에도 재윤과 몇 번 장 구경을 온 적이 있다. 할머니가 손수 캔 나물과 텃밭에서 가꾼 호박 따위를 내다 팔 때였다. 그런 날엔 할머니 곁에서 놀면서 장사도 도왔다. 주로 호객 행위는 창수가, 값을 계산하고 상품을 건네는 건 재윤의 몫이었다. 그런 날이면 할머니가 쥐여 주는 용돈으로 어묵과 핫도그, 풀빵 따위를 사 먹기도 했다.

그때처럼 시장을 거닐며, 자잘한 물건들을 함께 고르고 호떡, 부침개 따위의 주전부리를 사 먹었다. 장이 설 때면 늘 가서 끼니를 때우던 집에도 들렀다. 주문한 닭발을 건네던 여자가 뒤늦게 창수를 알아봤다.

“어머. 창수 총각 아니야? 병원에서 다 죽어간다더니.”

“누가 그런 헛소문을 냈대. 여차하면 멀쩡한 사람도 관에 넣겠네.”

“소식 듣곤 얼마나 걱정했다고. 이제 괜찮은 거야?”

“보다시피 멀쩡해요. 건강 빼면 시첸데, 내가.”

“어이구.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이참에 아픈 데 싹 치료하고 쉬다 오지 그랬어. 한 번 다친 데 소홀히 하면 이다음에 골병들어 고생하는데.”

“누님도 참. 꼭 누구처럼 말씀하시네.”

다가오는 재윤을 돌아보며 투덜거렸다. 잠시 충무김밥을 사러 갔던 재윤은 영문도 모른 채 빙긋 웃을 뿐이었다. 그를 본 여자가 어머, 하며 재차 탄성을 터트렸다.

“선생님도 장 구경 나오셨어요?”

“응. 내가 데리고 왔어.”

닭발을 야무지게 뜯어먹으며, 대답을 가로챘다. 예상대로 여자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창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으스댔다.

“이 새끼랑 나랑 불알친구거든. 벌써 20년쯤 됐나.”

“정말?”

답변은 줄곧 창수가 하고 있건만, 재윤을 보며 확인을 요구한다. 재윤은 특유의 미소를 지어 보이며 네, 했다. 사 온 김밥은 창수가 먹기 편하도록 잘 벌여 놓았다.

“출세했네, 창수 총각.”

“원래부터 친구였다니까 무슨 출세야.”

심드렁하게 대꾸하다가도 무언가를 상기하고는 재윤을 봤다.

“아, 출세 맞나?”

어디 내놔도 꿀릴 게 없는 이 남자가 창수 자신을 좋아한다. 곁에만 둬도 자랑스러운 그가 인제 제 것이다.

“묻었어.”

상냥하기까지. 감격스럽게 보다가 입술을 할짝거렸다. 그런 창수를 말없이 주시하던 재윤이 픽 웃었다.

“아니, 여기.”

손가락으로 슬쩍 볼을 닦아준다. 눈이 부드럽게 휘어지는 게,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저절로 둥실거렸다. 뽀뽀하고 싶다. 당장 넘어뜨려서 마음껏 혀를 빨고 싶었다 알량한 이성이 강렬하게 치솟는 욕망을 겨우 잠재우곤, 입에다 김밥을 욱여넣었다.

“선생님. 이것 좀 잡숴보세요. 간이 잘 됐나.”

그 참에 여자가 떡볶이를 한가득 퍼서 내놓았다. 이번에도 창수가 먼저 냅다 그것을 집어먹었다.

“우리 누님도 여자였어. 못난 놈은 백날 잘해줘도 소용없다니까.”

다 먹어버릴 기세로 계속 제 입에만 쑤셔 넣다가 하나 집어 재윤에게도 건넨다. 아, 하자 재윤이 스스럼없이 입을 벌렸다. 얌전히 넣어주나 싶더니 돌연 창수의 표정이 얄궂어진다. 집어 든 떡볶이를 재윤의 입술에 마구 문지르며 장난쳤다. 재윤은 대수롭지 않게 웃더니 자꾸 도망치는 창수의 손을 감싸 잡았다. 그러고는 포크에 찍혀 있던 떡볶이를 기어이 제 입에 밀어 넣었다. 바로 입가에 묻은 양념을 닦으려는데, 빤히 보던 창수가 다짜고짜 그의 손목을 낚아챘다.

“안 되겠다, 우리 샌님이. 입부터 닦아야지. 이리와 봐.”

뭐 마려운 개처럼, 황급히 인적 드문 골목을 찾아 들어갔다. 얼결에 끌려온 재윤을 성급하게 벽에 붙이곤 그의 입술을 진득하게 핥았다. 떡볶이 양념의 맛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마음에 찰 때까지 남의 입술을 할짝거리다가 짓궂게 키득거렸다.

“간이 영 안 됐네.”

“그래? 나도 맛 좀 볼까.”

잇따라 재윤이 창수의 얼굴을 붙들어 당겼다. 윗입술이 그의 입술 새에 부드럽게 맞물렸다. 순전히 짭짤한 맛만 날 뿐인데도, 정체 모를 달콤함에 혀가 다 아릴 지경이었다. 키스 후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실실거렸다.

시장을 마저 지나는 동안, 몇몇 상인들이 먼저 창수에게 인사를 건넸다. 마시던 소주나 막걸리 따위를 권해오기도 했다. 그러면 창수도 못 이기는 척 가서 달게 한 잔씩 받아 마셨다.

“다쳤다더니. 좀 괜찮으냐?”

“직접 보셔. 싹 나았잖아요.”

“칠칠치 못하게 왜 얻어맞고 다녀, 이놈아.”

“멍청해서 그런가 보지. 형님은 건강하시죠? 애들도 다 잘 있고?”

“그거 궁금한 놈이 그래, 코빼기도 안 비치냐.”

타박하면 타박하는 대로 적당히 받아주면서 즐겁게 웃는다. 오가는 인사 속에 진득한 정이 느껴졌다. 창수의 옷차림이나 행동거지를 타박하면서도, 그에게 보내는 눈길마다 애정이 가득 것들어 있었다. 그간 창수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명되는 듯했다.

다시 하염없이 걷다 보니 상설시장 입구에 다다랐다. 시간이 늦어 가게 대부분은 문을 닫았고, 그나마 열려 있던 가게들도 뒷정리에 여념 없었다. 굳게 닫힌 미용실 앞에서 창수의 걸음이 우뚝 멎는다. 의아해하던 재윤은 주변을 둘러보고야 그곳이 어디인지 인식했다. 창수의 눈길은 올곧게 그곳의 낡은 간판을 향해 있었다.

“여기, 이제 문 닫는대. 앞으로 딸네랑 같이 살면서 곧 태어날 손주 돌봐주고 그럴 건가 봐. 누님이 지병도 있고. 딸이랑 멀리 살아서 오가기도 어려웠는데 이래저래 잘 됐지 뭐. 그동안 쩐 안 되는 일 붙들고 있느라 혼자 고생만 잔뜩 했으니까. 그래도 엄마들은 이만한 데가 없다고 좋아했었는데. 이제 어디 가서 2만 원에 파마를 마냐.”

“…….”

“실은 그날, 만용이한테 그만두겠다고 했어.”

창수는 이어서 지난 이야기를 꺼냈다. 무슨 이유에선지 재윤은 여태 그날의 상황을 묻지 않았다. 실상 그가 몰라도 상관없었다. 나이트도 곧 문을 닫을 테니, 이젠 제 의사와 관계없이 일을 그만두게 될 거였다. 그럼에도 그냥 털어놓게 됐다. 문득 그러고 싶어졌다.

“만용이 날뛰던 날 말이야.”

“아……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했는데?”

“너란 새끼한테 더 잘 보이고 싶어서.”

재윤이 의외라는 얼굴을 하더니 피식 웃었다. 그러곤 창수의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뜨렸다.

“괜찮다고 했잖아. 네가 어떤 모습이건.”

“너야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아니었어.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멋진 모습만 보이고 싶은 게 당연하잖아. 이제껏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잘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처음으로 쪽팔렸다고. 내가 하는 일은 어떻게 포장해도 결국 비루한 거니까. 대놓고 까발려지는데, 진짜 속상하더라.”

재윤은 창수의 뒷덜미를 간질이듯 쓰다듬었다. 그러다 그를 슬그머니 끌어당겨 눈썹 위에 입 맞춘다. 이제 겨우 저녁녘인데도 혹시 모를 시선조차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왜.”

“고마워서. 남들이 보기엔 어떨지 몰라도 너는 애정을 갖고 했던 일이잖아. 이곳도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하니까. 어쩌면 다시 그런 일 못 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래서 결심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을 텐데. 그런 결정을 고작 나 때문에 했다는 게 장하네.”

“고마울 것도 많다. 하여간 너란 새낀 너무 착해빠져서 탈이야.”

내씹으면서도 바보처럼, 못내 뿌듯해졌다. 재윤은 비실비실 쪼개는 창수의 볼을 가볍게 잡아당겼다. 그러자 창수가 웃음을 조금씩 사그라뜨리더니 이내 열망 어린 눈으로 응시해왔다.

“슬슬 돌아가자 제대로, 마음껏 칭찬해주고 싶어.”

이어진 재윤의 속삭임에는 뭣에 홀린 듯 거푸 고개만 끄덕였다.

닫힌 욕실에서 미약한 물소리가 들렸다. 먼저 샤워를 마치고 나은 창수는 제법 긴장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단정하게 모은 무릎 위로 두 손이 꼭 주먹 쥐어진다.

역시 하는 거겠지.

머리엔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입원해 있으면서 몇 번 그런 분위기가 되긴 했지만, 끝까지 가본 적은 없다. 번번이 맛만 보고 만 기분이라 감질이났다. 그런데 막상 한다고 생각하니 막막해졌다.

새삼 고백하자면 재윤이 없을 적마다 관련 영상을 찾아보긴 했다. 남자끼리는 어떻게 하는지 막연히 알 뿐이라서,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사태에 미리 대비하자 싶었더랬다. 여태 창수 자신에게는 일어날 리 없는 일이라 여겼기에 관심 가져 본 적도 없었다. 그런 걸 직접 하게 될 거라니, 역시 긴장되고 묘하게 조바심도 났다.

공연히 손을 맞비비다가 슬그머니 휴대폰을 꺼냈다. 욕실 안쪽 인기척에 유의하면서 일전에 봤던 영상을 켜 본다.

그러니까 순서가…….

[하으으으응, 아앙, 앙, 하앙──!]

대뜸 휴대폰에서 격한 신음이 튀어나왔다. 화들짝 놀라 음량을 줄인다는게 전원 버튼을 눌러 버렸다. 화면이 급격히 암전됐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들렸을까. 초조하게 닫힌 욕실 문을 바라봤다 안에서는 여전한 물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후우, 긴 한숨을 뱉으며 놀란 가슴을 다독였다. 살갗 위로 격한 심장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꿀꺽 침을 삼켰다. 다시금 영상을 켜 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순간이지만 꽤 기분 좋아 보였는데. 불현듯 영상 속 남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뺨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남자도 그런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렇게까지 기분이 좋은 건가. 아니면 유달리 잘 느끼는 편인가. 그조차 아니라면 괴장된 연기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저 아프면 연기로라도 그런 표정이 나오진 않을 테지만.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거리는데, 덜컥 욕실 문이 열렸다. 허둥지둥 휴대폰을 감췄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몸이 제 발을 저렸다.

밖으로 나오던 재윤의 얼굴에는 표정이랄 게 없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창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씩 웃는다. 직전의 무표정을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변화였다.

색 짙은 머리카락이 살짝 젖어 있었다. 평소보다 흐트러진 모습 때문일까. 재윤이 다가오는데, 묘한 긴장감에 어깨가 굳었다. 그가 침대에 걸터앉을 때는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은근히 몸을 물렸다. 코끝으로 진한 스킨냄새가 풍겼다.

재윤은 창수의 등을 손으로 감싸며 가만히 끌어당겼다. 얇은 티셔츠 위로 큰 손이 느껴졌다. 이렇게 단단했던가 싶다. 가벼운 접촉이었을 뿐인데도 분위기 때문인지 가슴이 쿵쿵 뛰었다. 소리 없이 목울대가 남실거렸다. 빠듯한 숨을 들이켜자 스킨 냄새도 뭉클 짙어진다.

재윤은 창수에 귀밑에 가만히 입술을 묻었다. 그것만으로도 창수의 몸이 뻣뻣하게 긴장됐다. 서로 맞닿은 뺨도 약간 굳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 뺨에 마저 입 맞추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오늘은 제대로 안고 싶어.”

뭔지 모를 위압감에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직후, 천천히 몸이 눕혀졌다. 재윤이 자연스럽게 위로 올라왔다.

“어, 내가 아래쪽이야?”

“싫어?”

“아니. 싫다기보다는…….”

“그럼?”

재윤은 느긋이 물으며 거푸 귓가에 입을 맞췄다. 일부러 그러는 건지 쪽쪽거리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울렸다. 복부에서부터 티셔츠 자락을 말아 올리던 손은 기어이 맨살에 닿았다 창수는 예민한 부위가 쓸릴세라 슬쩍 몸을 비를었다.

“먼저 좋한다고 들이댄 주제에 어이없겠지만, 역시 남자끼리 하는 거는 잘 모르겠어서. 거기에 넣는 것도, 박히는 것도 실감이 안 나니까.”

“부담스러우면 억지로 안 해도 돼.”

“아나! 왜 그렇게 받아들여. 내가 오늘을 어떻게 기다렸는데! 아깝게 왜 안 할 생각을 하나고, 그 좋은 걸!”

황망히 손을 저었다. 급한 마음에 마구 지껄였다가, 뒤늦게야 제 입에서 튀어 나간 말을 인식했다.

“……아니, 좋을지 어떨지는 해 봐야 알겠지만. 기대하는 게 당연하잖아, 나도 남자니까. 그런데 처음이라 실수할 것도 같고. 어떻게 해야 여자처럼 기분 좋게 해줄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웅얼웅얼 변명했다. 사랑스럽다는 듯 지켜보던 재윤이 그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그럼 내가 리드할게. 괜찮지?”

“응. 실은 여자들이 할 때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기도 했어.”

솔직한 대답에 재윤의 미소가 짙어진다. 장난치듯 코끝을 가렵게 맞대었다가 떼어냈다. 키득거리던 창수의 웃음이 서서히 사그라진다. 재윤을 고요히 직시하는 눈빛은 전에 없이 진지했다. 다정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이 소리 없이 오갔다.

이윽고 두 사람의 입술이 보드랍게 맞물렸다. 따뜻한 숨이 입천장을 스치며 목구멍까지 밀려들었다. 말캉한 혀가 뒤이어 들어와 다소 건조하던 입안을 점령해 나간다. 밀접한 코 속으로 달금한 살 냄새가 물씬 파고들었다. 마음이 대책 없이 부추겨졌다. 창수는 적극적으로 재윤의 혀를 끌어당겼다. 격하게 엎치락뒤치락하다 보니 금세 혀뿌리가 아릿해지면서 턱 끝으로 맹렬히 타액이 고였다.

슬쩍 떨어져 나가려는 재윤의 얼굴을 붙들며 다시 입술을 겹쳤다. 재윤은 잠자코 얼굴을 맡겨둔 채로, 창수의 티셔츠를 끌어올렸다. 창수는 옷을 벗느라 잠시 입술을 뗐다가도 재차 성급하게 달려들었다. 두 팔을 재윤의 목에 휘감아가며 적극적이다. 재윤은 그가 입술을 멋대로 질겅거리도록 내버려두며, 그의 몸을 천천히 침대 위에 눕혔다.

내킬 만큼 입술을 빨아대고 나니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창수는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제 입술을 핥으면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흥분으로 그새 눈가가 상기돼 있었다.

재윤은 창수의 벗은 어깨에 입술을 묻었다. 팔을 타고 내려가선 옆구리를 지나 허리까지 길게 입 맞춘다. 창수의 눈길이 아슬아슬하게 재윤을 쫓았다. 간질간질한 감촉에 샅에 서서히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다시 복부에서부터 역으로 올라오던 재윤이 얕게 솟은 유두를 발견한다. 혀를 내어 유륜만 배회하듯 핥자 창수의 배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지켜보는 눈동자에도 초조한 기색이 가득했다. 샐쭉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그대로 지나쳐 쇄골로 올라왔다. 창수에게서 끙 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모르는 척 그의 목덜미 깊숙이 고개를 파묻었다. 한숨 깊게 들이마시자 특유의 체취가 폐부까지 빨려 들어왔다. 덩달아 몸에 열이 올랐다.

“아얏…….”

조금은 풀어져 있던 창수가 갑자기 제 볼을 감쌌다. 때아닌 봉변이라도 당한 얼굴이었다. 불시에 그의 뺨을 깨문 재윤은 다소 짓궂게 웃더니 볼을 가린 손등에도 입을 맞췄다. 그러고는 목덜미를 가볍게 물었다가 그 얇은 살갗을 가만히 흡입해 들였다. 빨릴 때마다 뭉근한 감각이 허리 아래로 급격히 뭉쳐졌다. 덩달아 호흡도 은근히 가빠졌다.

재윤은 창수의 목덜미를 잔득 짓씹어놓고야 다시 어깨로 입술을 옮겼다. 그대로 팔꿈치까지 일정하게 따라 내려오다가 돌연 무방비한 유두를 머금었다. 조금은 누그러져 있던 창수의 몸에 발끈 힘이 들어갔다.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나려는 어깨를 지그시 누르며 유두를 잇새로 잘근거렸다. 일부러 소리 내서 빨아들이기까지 하자 창수가 쩔쩔매며 두 다리를 버둥거렸다.

“읏, 거긴 왜 자꾸 빨아대는 거야. 그래 봤자 아무것도 안 나오는데.”

“여자들이 어떤 기분인지 궁금하다며.”

“그야 그렇긴 하지…… 응, 으읏, 앗……”

대꾸하는 사이에도 유두를 계속 지분거렸다. 말랑말랑하던 작은 살점이 쾌감에 반응하듯 점차 단단해졌다. 재윤은 그곳에 입술을 댄 채로 그래서, 하고 중얼거렸다.

“어떤데?”

“으으, 읏, 간지러워.”

“그뿐이야? 꽤 기분 좋아 보이는데?”

유독 한쪽만 혀끝으로 계속 갉작였다. 끙끙대던 창수의 몸이 점차 그쪽으로 웅크려진다. 접히는 어깨를 붙들어놓고 더 집요하게 빨아댔다.

“으응, 으, 읏…… 너, 너무 빨지 마아.”

“어째 더 빨아달라는 소리로 들리네.”

“바보냐. 계속 거기만 건드리면 망가질 거라고.”

“어떻게 망가질까. 안 나오던 게 나오려나.”

얄궂은 농담이나 해가며 뾰족하게 일어선 살점을 보다 농밀하게 빨아들였다. 한층 진득해진 자극에 창수의 어깨가 거푸 발끈거렸다. 은근히 베개를 끌어다가 그의 허리 밑에 괴었다. 저절로 하체가 들쳐졌다.

그쯤에서 내내 못 살게 굴던 창수의 유두를 놓아주고 복부에 입 맞췄다. 팬티를 슬슬 미끄러뜨려 벗기자 발기된 남근이 튕기듯 일어나며 재윤의 목울대에 걸린다

“으아…… 뭔가 야하네.”

자못 난감한 광경에 창수가 애매하게 웃었다. 묘한 기대감으로 눈을 반짝이며 지켜본다. 재윤은 옅게 웃으며 창수의 배꼽 밑에도 입술을 앉혔다가, 설렘 가득한 그의 남근을 가만히 감싸 쥐었다. 고개를 살짝 비틀며 그 열띤 살갗 위에 나직이 입을 맞춘다.

입술이 닿을 때마다 슬쩍슬쩍 휘어대는 남근을 손가락으로 가만히 떠받쳤다. 살짝 휜  음경을 관망하듯 하다가 재차 입을 맞춘다. 늘 봐 오던 제것이건만, 재윤과의 구도 때문인지 차마 대놓고 주시할 수가 없었다. 입에서는 연신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재윤은 잔뜩 곤란해진 창수의 얼굴을 보면서 그의 귀두를 가만가만 다독이듯 매만졌다. 가벼운 접촉에도 자꾸만 허리가 튀었다.

“여기, 이 도드라진 부분을 귀두라고 해. 알아?”

“응. 알아.”

“그럼 아래쪽에 얇은 막처럼 생긴 건?”

“그건…….”

“껍질이 잘 덮일 수 있게 해주는 포피소대. 성기가 남성의 가장 예민한 성감대라면 그중에서도 감도가 제일 높은 부위라고 할까.”

“왜 갑자기 어려운 문자는 읋어대고 난…….”

아리송해하던 창수의 얼굴이 급격히 무너진다. 재윤이 혀를 내어 음경을 죽 훑어 올린 탓이었다. 그의 혀끝이 귀두 밑 도드라진 부위에 닿았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배꼽 안쪽이 지끈거렸다. 포피소대인지 뭔지가 어느 부위인지 단박에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읏, 흐으응─ 아, 으읏…….”

예민한 부위가 거듭 자극되자 창수의 몸이 빌빌 꼬인다 재윤은 흔들림없이 그의 귀두 전체를 입으로 머금었다. 후덥지근한 입안 점막이 예민한 살덩이를 밀도 높게 감쌌다. 질끈 눈이 감겼다. 발가락에도 힘이 들어갔다.

재윤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흡입하는 소리를 내며 귀두를 빨아 당겼다. 삽시에 목덜미에 열이 올랐다. 귀두 끝으로 망울망울 모여들던 것이 속도를 더한다. 저릿저릿한 감각이 거푸 솟구쳐서 미지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으읏…… 아, 나와, 나…… 아윽.”

귓가와 목덜미, 두 뺨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사정에의 욕구가 바짝바짝 치밀었다.

그때 별안간 앓던 남근이 확 놓였다. 뜨끈하던 점막으로부터 떨어져 나오자 금세 서늘한 기운이 달라붙었다. 꼿곳하게 일어선 살덩이가 부들부들 양옆으로 흔들렸다. 더해지지 않는 쾌감에 창수가 의아하게 고개를 들었다. 재윤을 보는 눈빛이 그렇게 아슬아슬할 수가 없었다.

재윤은 그런 창수를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살짝 혀를 냈다. 그의 혀가 달아오른 귀두에 닿을 듯 말 듯 한다. 창수의 눈살이 지레 찌푸려졌다. 애가 달았다. 재윤이 요도에 혀를 대자 말간 점액질이 실처럼 가늘게 묻어나왔다. 한없이 외설스러운 광경이었다.

끙 소리를 내며 엉덩이를 흔들었다. 발딱 일어선 남근이 가늘게 흔들리며 재윤의 입술에 닿는다. 하지만 재윤은 계속 가벼운 입맞춤만 해주면서 애를 태울 뿐이었다. 창수의 허리가 슬쩍슬쩍 들뜨기 시작했다. 빨리, 하고 보채는 소리가 닫힌 입속에서 초조하게 짓이겨졌다.

재윤은 허리를 곧추세우며 티셔츠를 벗어젖혔다. 의외로 굴곡 있는 몸이 눈앞에 드리워진다. 뭐 마려운 개처럼 끙끙대다가도 다소 멍하게 바라보고 말았다.

그러는 동안 귓가에 지퍼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시선도 덩달아 미끄러져 좀 더 아래쪽을 향한다. 뭔가 두툼한 것이 허벅지로 툭 떨어졌다. 묵직한 질감 고스란히 큼직한 위용을 자랑한다. 그렇게까지 발기해서도 용케 참았다 싶을 만큼.

재윤은 제 남근으로 창수의 음낭을 가만가만 짓이겼다 새어 나온 쿠퍼액으로 금세 음낭이 질척하게 젖는다. 쿨쩍쿨쩍, 젖은 살이 서로 맞비벼지는 소리가 음란하게 울렸다. 창수의 얼굴이 급격히 타올랐다. 슬쩍 팔을 들어 입을 가렸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무슨 말을 튀어 나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재윤은 연신 제 남근으로 창수의 음낭을 호두알 굴리듯 희롱했다.

“어때? 느껴져?”

고개를 주억거렸다.

“빨아줄까?”

이어진 물음에는 눈까지 질끈 감고 끄덕끄덕했다. 그러자 재윤이 창수의 다리를 들어 제 어깨에 걸쳤다. 자연히 허리와 엉덩이가 들쳐지며 위험하다 싶은 구도가 됐다. 제 사타구니에 재윤의 얼굴이 놓여 있는 게 그렇게 아슬아슬해 보일 수 없었다.

초조하게 지켜보는데, 재윤이 대뜸 음낭 한쪽을 머금었다. 얇은 살갖 안쪽에서 동그란 뭔가가 그의 입속으로 거푸 빨려 들어갔다. 덩달아 창수의 몸이 허공에서 부들부들 흔들렸다.

“흐응─ 앗, 하읏, 아…… 응아아앗─.”

팔로 막은 것이 소용없게도 대책 없이 신음이 샜다. 재윤은 그런 창수의 반응을 일일이 눈에 담았다. 연신 도망가는 음낭 안 고환을 혀로 굴려가며 못 살게 굴다가 조금 더 밑으로 내려간다. 돌연 엉덩이 안쪽이 젖어들자 창수의 온몸이 발끈 긴장됐다.

“거. 거긴 하지 마. 하지 마아…….”

창수가 두 손을 허공에 허우적거리며 만류했다. 그러나 재윤은 듣지 않았다. 달아나지 못하도록 그의 복부를 끌어안듯 붙들곤 봉긋한 볼기 사이에 고개를 파묻었다. 가장 깊숙한 곳에 뜨끈한 입김이 끼쳤다. 뜻밖의 자극에 주름진 입구가 움찔움찔 조여드는 게 느껴졌다. 그대로 혀를 내어 살짝 핥아봤다. 어김없이 왈칵 조여지며 창수의 몸 전체가 긴장된다.

“읏.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된다니까.”

“여자랑 할 땐 어떻게 풀어줬지?”

“……그야 입이랑 손으로.”

“다르지 않아.”

재윤은 싱긋 웃더니 창수의 엉덩이를 꽉 움켜쥐며 벌렸다. 안쪽의 구멍이 한결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쾌락과는 담을 쌓고 지냈을 그곳을 혀로 길게 한 번 핥았다. 둔덕 깊은 곳이 젖어드는 진득한 자극에 창수의 허리가 움찔 튀었다. 그의 입에선 기어이 악 소리가 새어 나왔다. 생경한 감각 탓인지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덩달아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재윤은 개의치 않고 촘촘한 주름을 혀끝으로 하나하나 덧그렸다. 그때마다 창수의 볼기에 발끈발끈 힘이 들어갔다. 창수는 끙끙 앓으며 부르르 몸을 떨면서도 이쾌쪽의 상황을 끊임없이 힐금거렸다. 양 볼이 발갛게도 익었다. 위태로운 눈길에는 이제 막 낯선 세계를 맞닥뜨린 소년의 호기심과 들이치는 쾌락에 충실하려는 사내의 본능이 어지럽게 뒤섞였다.

손가락으로 주름을 슬며시 펴봤다. 얇은 살갖이 쓸리면서 완연하게 펴졌다가 다시 오므라든다. 두어 번 더 주름을 지그시 눌러 문질러보다가 재차 혀로 할짝거렸다. 쪽쪽 정성 들여 빨아대는 소리가 창수의 귓가에까지 또렷하게 들려왔다. 예상이야 하고 있었지만, 남에게 보일 일이라곤 없던 치부를 대놓고 빨리니 지독한 수치감이 밀려들었다. 얼굴이 터질 것처럼 달아올랐다. 복부와 허벅지에는 긴장으로 계속 힘이 들어갔다.

순간. 재윤이 불시에 제 혀끝을 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주름진 입구가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살점에 쓸리며. 지극한 감각이 사타구니 안쪽과 복부에 확 뿌려졌다.

“하으읏…… 하아, 으으…….”

창수가 잘게 도리질을 쳤다. 생경한 감각에 놀라 버둥거리는 그의 몸을 곧추우며, 곧 제가 들어갈 곳을 정성껏 길들인다. 연한 분홍빛이 돌던 살점은 점점 더 짙은 색을 냈다.

“이제 그만하고 빨리…….”

초조해진 창수가 재윤의 무릎을 가만히 붙들며 보챘다. 남근이 참을 수 없이 뻐근해져서 뭐가 됐든 빨리 진행하고만 싶어졌다. 그제야 재윤이 서서히 창수의 하체를 내려놓았다. 그대로 등을 깊게 구부려 귓가에 나직이 입을 맞춘다.

서로 맞닿아 짜부라진 샅이 가만가만 비벼졌다. 그것만으로도 진득한 쾌김이 끼쳐져 접한 살 부위, 부위마다 열이 올랐다. 시야까지 제멋대로 너울거리는 것 같았다. 재윤은 창수의 귓불을 물고 늘어지면서 팔을 뻗어 탁상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서 아직 뜯지 않은 젤을 꺼냈다.

달뜬 남근 위로 투명한 젤이 꾸덕꾸덕하게 홀러내렸다. 찬 감촉에 발갛게 익은 몸뚱이를 가늘게 떤다. 음낭 주름에 얼마쯤 고이던 젤은 그대로 넘쳐흘러 사타구니 안쪽까지 죄 적셔놓았다. 아래가 질척질척해지자 창수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재윤은 제 남근으로 얼마쯤 젤을 닦아내더니, 놈을 창수의 엉덩이 사이에 가져다 댔다. 저 들어갈 곳을 알아봤는지, 부풀대로 부푼 남근이 대가리를 꺼덕거렸다. 지끈지끈한 통감이 계속 전달됐다. 크게 숨을 내쉬며 참느라 복근이 거대하게 너울거린다. 더는 인내하기가 어려울 듯했다.

나직이 입술을 핥으며, 풀어뒀던 입구를 더듬었다. 젤 때문에 손가락이 무리 없이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종전과는 또 다른, 낯선 감각에 창수가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너, 넣었어?”

“겨우 손가락이야.”

재윤은 창수를 제 상체로 떠밀 듯 눕히면서, 그의 목덜미에 다정하게 입을 맞췄다. 귓바퀴도 가볍게 한 번 물었다 놓으며 힘 빼 봐, 하고 달랬다. 하지만 창수는 고집스럽게 제 엉덩이 쪽 상황을 살필 뿐이다. 착하지, 어린애 어르듯 하며 구멍 속으로 손가락을 꾹 집어넣었다.

“으, 역시 무리야. 무리…… 으악, 아프다고.”

손가락이 뱃속 깊은 곳으로 파고들어 오자 창수가 두 다리를 내차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재윤은 그런 창수를 진정시키듯 볼과 귓가에 계속 입 맞추면서 물린 손가락을 가만가만 움직였다. 단지 그 정도의 침입으로도 창수의 복부에 발끈 힘이 들어갔다. 덩달아 구멍의 조임도 한결 단단해진다.

“긴장하지 마.”

“자꾸 힘이 들어가는 걸 어쩌라고.”

“이렇게 해둬야 네가 조금이라도 편해.”

차분한 음성으로 달래가며 손가락을 더욱 느긋하게 움직였다. 계속된 침입에 입구의 근육이 조금씩 이완된다.

재차 젤을 흥건하게 짜냈다. 차가운 감촉에 손가락을 문 구멍이 움찔거렸다. 덩달아 재윤의 인내심도 바짝바짝 줄어들었다. 고요히 숨을 삼키며 애써 저 자신을 다독였다. 성급하게 삼켜봤자 체하게 될 뿐이다. 손가락을 하나 더 늘려서 구멍을 풀었다.

“으아아…… 찢어질 거 같아.”

손가락이 세 개째로 늘어나자 창수의 얼굴이 불안해졌다. 젤에 절여지다시피 한 그의 음낭을 위로하듯 문지르면서, 내벽 구석구석을 건드려봤다. 낯선 이물감에 창수의 몸이 점점 더 경직됐다. 굳은 등을 가만가만 다독여가며 손가락을 빙그르르 돌려봤다. 그때 살짝 도드라진 뭔가가 스쳤다.

“…─!”

덩달아 창수의 허리가 불에 덴 듯 펄떡 튀었다. 낯을 살피자 주먹을 꽉 쥔 채 어안이 벙벙해져 있었다. “아팠어?” 물으니 고개를 젓는다. 그러면서도 묘한 긴장감에 숨조차 내쉬지 못했다. 재윤은 창수의 두 눈을 직시하며 조금 전 그 지점을 다시 한 번 건드려봤다. 여지없이 창수의 몸이 와락 웅크려졌다.

“뭐야…… 거기. 저릿저릿한 게 영 이상해.”

울 것 같은 얼굴을 한다. 넓적다리는 그의 의도와 관계없이 부들부들 경련했다. 재윤은 느긋이 웃으며 손가락을 천천히 빼냈다. 그러곤 어느 정도 풀어진 입구에 제 귀두를 가져다 댔다. 맞닿은 살점에서 뜨끈뜨끈한 열기가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창수의 복부에 보다 힘이 들어갔다. 재윤은 구석에 내몰린 듯 초조해하는 그를 관망하며, 귀두로 그의 구멍을 가만가만 훑었다.

“남성의 항문 안쪽에는 전립선이라는 게 있어. 보통 손가락을 넣으면 만져지는 부위지. 그 주위엔 발기에 관여하는 신경과 혈관들이 많이 분포돼 있는데, 거길 건드리면 주변의 성 신경이 자극받아서 흥분하게 돼. 아픔을 느껴서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다행히 그렇지는 않은 거 같네.”

“왜 자꾸 어려운 소릴 지껄이는 거야.”

“너 겁먹을까 봐.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란 거, 알려주려고.”

무슨 겁을 집어먹는다는 건지.

항의하려 할 때, 불쑥 재윤의 귀두가 구멍으로 파고들었다. 손가락 하나와는 비교될 수 없는 굵기였다. 입구를 충분히 풀었음에도 단번에 들어가질 못하고 빡빡하게 맞물렸다. 밀어붙이는 힘에 창수의 몸이 밀리면서 침대 헤드에 머리가 닿았다.

“으윽…… 으, 아악…… 역시 안 되겠어. 찢어질 거야.”

창수가 눈을 질끈 감고 죽는소리를 했다. 재윤은 그를 짜부라뜨릴 것처럼 밀어붙이며 하복부를 바짝 밀착시켰다. 허리에 힘을 줘 짓누르자 젤로 범벅된 귀두가 미끄러지듯 들어간다. 고작 그것만으로도 엉덩이가 쪼개질 듯 벌어졌다. 기어이 두 동강이 나고 말 거다. 창수는 난생처음 접한 막막함에 숨까지 참고 입술을 꼭 물었다. 빡빡한 조임에 재윤의 미간에도 깊은 주름이 잡혔다.

옆에서 굴러다니던 젤을 있는 대로 쥐어짰다. 금세 밖으로 드러난 남근은 물론 복부까지 미끌미끌하게 젖는다. 두 팔로 상체를 지탱하며 다시금 하복부를 꾹 짓눌렀다. 빈틈없이 맞물려 있던 남근이 꾸역꾸역 밀려들어가기 시작했다. 무시할 수 없는 삽입감에 창수의 볼기에도 바짝 힘이 들어갔다. 재윤은 너무 꽉 물어 핏기가 없어진 창수의 입술에 제 입술을 겹쳤다.

그러고는 그 직후, 허리를 강하게 치대어 올렸다.

겹쳐진 입안에서 창수의 탁한 신음이 터졌다. 재윤은 잠시 밀도 높은 조임을 느끼면서, 그의 혀를 힘주어 빨아 당겼다. 숨이 달린 탓인지 창수가 살짝 고개를 돌린다. 아쉬운 대로 완연히 드러난 그의 볼과 귀에 입 맞추다가 귓구멍 안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귓속이 뜨끈하게 젖어들자 창수의 목이 조금씩 웅크려졌다. 더 집요하게 귀를 공략하면서, 허리를 살짝 빼냈다. 손가락으로 더듬었던 부위를 상기하며 재차 남근을 푹 쑤셔 넣었다.

“으아아…─!”

창수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뱃속 깊은 곳에서 뻗쳐든 저릿저릿한 전율에 귀두 끝에서 찔끔 정액이 터져 나왔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사정이었다. 개운함보다는 서늘함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믿기지 않아 제 복부를 내려다봤다. 홀로 애 닳던 남근이 몸을 의지한 채 늘어져 있었다. 묘한 여운에 간헐적으로 몸을 떨며 꿈질꿈질 농도 짙은 정액을 뱉어낸다.

얼떨떨하게 재윤을 봤다. 창수의 두 눈동자가 곧 다가올 일을 예감하곤 가늘게 흔들렸다. 사지는 더없이 헛헛하게 굳었다.

“계속 이렇게 하고 싶었어. 몇 번이나 겁에 질린 네 발목을 잡아 넘어뜨리는 상상을 했어. 안겨 울면 더 다그치면서 못되게 굴고만 싶었어. 그래도 넌 어쩌면 용서해주지 않을까. 알량하게 그런 기대나 품으면서.”

재윤이 뜻 모를 소리를 지껄였다. 그때만은 그의 목소리가 사뭇 비릿하게 느껴졌다. 제정신이 아니라 잘못들은 걸 거였다.

재윤은 얼떨떨해히는 창수의 입술 주변에 키스하며, 그의 팔을 끌어당겨 제 목을 감싸게 했다. 덕분에 창수의 몸이 알맞게 고정됐다. 잠시 멈춰 있던 허리를 움직여 예의 그 지점을 푹푹 쑤셔 올렸다. 창수의 몸이 완전히 꿰어져 함께 들썩였다. 꽉 다물고 참아보려고 해도 입술이 맥없이 벌어져 엉망인 신음을 쏟아냈다.

“응─ 앗, 아읏…… 자, 잠깐. 잠─ 으응, 죽을 거 같아!”

텅 빈 방 안에서 비명과도 같은 신음이 거푸 터졌다. 재윤은 침대 헤드를 붙잡으며 허리를 곧추세웠다. 접합된 창수의 하체가 덩달아 구겨져 올라왔다 이젠 창수의 눈에도 접합 부위가 훤히 보일 지경이었다. 그 때문인지 그의 낯이 더욱 난처하게 흐려졌다.

“……찌릿찌릿해. 배속에 구멍 뚫린 거 아냐?”

고개 숙여 울상인 창수에게 입을 맞췄다. 창수는 내심 불안한 눈초리로 재윤을 봤다. 가늘게 웃으며 그를 안심시켰다.

“괜찮아. 다치겐 안 해.”

그리고 그 직후, 재윤의 허리가 강하게 치대진다. 언행일치가 전혀 되지않았다. 불시에 푹 쑤셔 넣자 창수가 어깨를 펄떡이면서도 한사코 입을 다물고 버텼다. 단번에 뿌리 끝까지 뽑았다가 재차 거대한 살덩이를 짓뭉개 넣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손끝을 바싹 세우며 짜증스레 고개를 저었다. 두 눈 역시 질끈 감겼다.

“참지 마. 그러다 죽어.”

놀리듯 하며 약간 웃었다. 창수는 반신반의하는 눈길로, 재윤을 원망하듯 바라봤다. 그런 그의 눈가에 재차 키스하곤 나직이 속삭였다.

여자들이 어떤 기분인지 궁금하다며. 암캐처럼 짖어 봐.

당혹감 때문인지 창수의 몸에서 순간적으로 힘이 빠졌다. 흥분감에 질끈 감겼던 두 눈도 그 순간만큼은 멍하게 떠졌다. 그 찰나를 이용해서 남근을 뿌리 끝까지 밀어 넣고 마구 짓이겼다.

“하으으응…─.”

창수의 몸이 확 열렸다. 격한 삽입감에 발가락마저 쫙 펴졌다. 벙해졌던 얼굴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잔뜩 찌푸려졌다. 쉴 틈도 없이 그를 몰아붙였다. 허리를 길게 뺐다가 푹푹 찍어 누를 때마다 창수의 허벅지가 부들부들 떨렸다. 허리를 돌리며 시간차로 검붉은 살덩이를 짓뭉개댔다. 예상 밖 공격에 창수에게서 여지없이 신음이 샜다.

“윽, 으응, 하응…… 아아─”

새빨간 정염에 완전히 도취됐다. 머리에 핑 열이 돌았다. 뇌수마저 바글바글 끓어 증발해 버릴 것 같았다. 재윤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창수의 볼을 길게 핥았다.

“아읏……! 하응으─ 읏.”

전립선을 꿰뚫을 것처럼 짓쳐 올렸다. 민감한 회음부에 음낭이 거푸 거칠게 치대진다. 뭐라 형언 못 할 쾌락에 움찔움찔 허리가 튀었다. 완전히 꿰어진 창수의 몸이 부르르 경련한다. 잠시 기운을 잃었던 그의 남근 역시 어느새 힘을 얻어 펄떡거렸다. 재윤은 서로 뒤섞인 부위를 뭉근하게 비비 면서 창수의 미간에 입을 맞췄다.

내내 울상이던 창수가 위태로운 눈길로 재윤을 본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 도드라진 그의 목울대를 살짝 머금었다. 혀를 굴려 자극하자. 이미 몸속에 자리 잡은 재윤의 남근이 한충 더 불끈거렸다. 꼭 그 자체로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복부의 팽만감이 상당했다. 재윤이 한 번씩 들이칠때마다 위장마저 들쳐 올라가는 듯했다. 속이 울렁거리는 건 비단 매트리스의 출렁거림 때문만은 아닐 거였다.

땀에 젖은 재윤의 몸을 필사적으로 끌어안았다.

“응아, 하읏, 응, 읏, 으응…─!”

“하아, 하아, 으읏…─!”

묘하게 올라가 있던 재윤의 입술이 굳게 다물린다. 미간도 왈칵 찌푸려졌다. 동시에 그의 남근이 깊숙한 곳으로 팍 치대져 올라온다. 창수의 입이 헤벌어지면서 토막의 숨이 터졌다. 격렬한 자극에 신음은 숫제 삼켜져버렸다.

잔뜩 몸살 앓던 남근이 또다시 파르르 몸을 떨며 사정한다. 온몸의 체액이 단숨에 증발하는 것 같았다. 재윤을 끌어안은 두 팔에도 더욱 힘이 들어갔다.

연이어 뱃속에서 뭔가가 팍 터졌다. 예민하게 달궈졌던 점막이 진득하게 젖는다. 재윤은 창수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며 재차 허리를 튕겨 붙였다. 남아 있던 정액이 마저 발끈 쏟아 부어졌다.

부르르 어깨를 떠는 창수에게, 재윤이 제 몸을 무너뜨렸다. 두 팔을 더 힘껏 뻗어서 그를 끌어안아 주었다. 재윤은 그런 창수의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은 채 가빠진 숨을 골랐다. 그러면서 토닥토닥 창수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장하다고 칭찬해주는 것 같았다.

한참을 그렇게 늘어져 있었다. 달뜬 숨결도 정돈되고, 호흡할 때마다 진득하게 맞닿던 가슴도 진정됐다. 창수는 얼떨떨하게 천장을 보다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와 씨…… 기절하는 줄 알았네.”

재윤이 픽 나직한 웃음을 터트렸다.

“내 엉덩이 괜찮은 거 맞아? 니 새끼가 내장 다 뽑으려는 줄 알았는데. 뱃속이 다 얼얼해.

“많이 아팠어?”

느긋이 속삭이는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덩달아 나른해지는 기분이었다.

“생각보다는 덜 아팠는데, 아직도 막 거기가 따끔따끔해.”

“그래서. 별로였어?”

“나랑 할 때 여자들이 이런 느낌이었으면, 나 아마 천당 갈 거 같은데?”

“응?”

“이러다 죽지 싶게 황홀해서. 질질 쌌다니까.”

핏기라곤 없는 얼굴로, 제 처지도 모르고 찍 웃는다. 생글 따라 웃으며 그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미안, 중얼거리자 모르는 얼굴을 한다.

“마음이 급해서 콘돔 사 오는 걸 잊었어. 배앓이 할지도 모르는데.”

“아, 괜찮아. 괜찮아. 맷집 빼면 시첸데. 뭐.”

안쪽 깊이 사정한 이유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제 배를 두드려 보인다. 젤은 사두었으면서 콘돔을 빠뜨렸다는 얘기의 어디가 이상한지 눈치채지도 못했다.

실없이 새실거리던 창수가 슬쩍 재윤의 낯빛을 살폈다. 관계 후 상대의 소감이 신경 쓰이는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샌님이, 너는 어땠냐? 역시 계집에들이랑은 다르지? 걔들처럼 부드러울리도 없고, 귀여운 맛도 없고…… 사내놈이랑 뒹구는 건 처음이라 긴장해서 그렇지, 실은 나 더 잘하는데.”

어쩌다보니 주절주절 변명하는 모양새가 됐다. 재윤은 옅게 웃으며 창수의 손을 아래로 끌어내렸다. 창수는 영문 모를 표정으로 그런 재윤을 바라봤다. 이내 그가 어, 하면서 고개를 발딱 든다. 그새 발기된 재윤의 남근이 손 안으로 떨어졌다.

“충분히 설명이 됐어?”

창수는 저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재윤이 픽 웃더니 그의 이마 위에 입술을 묻었다.

“괜찮으면 한 번 더 해도 될까.”

“으…… 그래! 그러지, 뭐! 남는 건 체력밖에 없는걸. 밤은 길다고. 아하하하. 대신 아직 좀 숨자니까 천천히…….”

“응. 그럴게.”

재윤의 두 눈이 부드럽게 휘었다. 창수 역시 덩달아 샐쭉 쪼겠다. 그냥 그의 얼굴만 봐도 저절로 웃음이 났다. 재윤이 그런 상냥한 낯으로 지켜지지 못할 약속을 했다고는 꿈에도 의심하지 못했다.

좁은 침대에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잠들었다. 잠시 눈을 떴다가도 사사로운 얘기를 주고받고, 애정공세를 퍼붓다가 도로 곯아떨어졌다. 번갈아가며 깨서는 서로의 잠든 모습을 골똘히 지켜보기도 했다.

날이 밝았을 땐 같이 아침을 먹고, 재윤은 곧장 진료실로 내려갔다. 창수는 그의 방에 남아 샤워를 하고, 정사의 흔적을 정리했다. 그새 텅 빈 젤을 발견했을 땐 간밤의 일이 떠올라 실실 쪼겠다.

홀로 시간을 때우려 재윤의 컴퓨터를 켰지만, 비번을 알아내는 데 실패했다. 결국 책장에서 아무 책이나 꺼내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채 한 페이지를 넘기기도 전에 꾸벅꾸벅 졸고 말았다.

다시 눈을 뜬 건 내내 몸에 얹혀 있던 책의 무게감이 돌연 덜어진 까닭이었다. 흠칫 놀라 고개를 들자 어느새 재윤이 오전 진료를 마치고 돌아와 있었다. 가져간 책의 표지를 보며 의외라는 눈빛을 한다.

“이런 걸 봤어?”

“그게 유일하게 그림도 있고 하길래.”

그렇더라도 해부학 서적이라니. 픽 웃으며 창수의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가만히 헝클어뜨렸다. 가까이에서 눈이 마주쳤을 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쪽 입을 맞췄다.

재윤이 사 온 음식으로 점심을 먹고 침대에 엇갈려 누웠다. 막연히 허공을 보면서 진료 도중 있었던 일에 관해 떠들었다. 그러다 대뜸 재윤이 제 눈앞에서 까딱거려지던 창수의 발목을 끌어당겼다. 날렵한 발뒤축에 입 맞추는가 싶더니 이내 이를 세워 왈칵 깨문다. 얄궂은 장난에 저절로 웃음이 터졌다.

창수가 몸을 돌려 응수하면서 부단히 엎치락뒤치락했다. 어린 시절처럼 레슬링 하듯 아옹다옹하면서 밑에 깔린 사람의 볼이며 목덜미에 마구 입을 맞췄다.

그러던 중, 덜컥 팔목을 붙들렸다. 실실 쪼개던 두 사람의 시선이 덩달아 엉겼다. 얄궂은 웃음이 조금씩 잦아들면서 침착해진 두 눈에 어떤 열망이 넘실거렸다. 재윤은 붙들고 있던 창수의 팔을 부드럽게 잡아당겼다. 창수 역시 고개를 숙이며 제 아래 깔려 있던 재윤에게 키스했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결국 그대로 끝까지 해버리고 말았다. 새삼 재윤도 사내였구나, 깨달았다. 그것도 순간순간의 욕망에 충실한 젊은 사내. 당장 몸이 힘든 것보다 재윤이 그만큼 창수 자신을 원한다는 것에 기뻤다.

폭우와도 같던 정사 후 지쳐서 곯아떨어졌다. 잠에서 깬 건 재윤이 남은 진료를 마치고 왔을 때였다. 그와 나란히 욕실에 들어가 샤워했다. 어렸을 적에는 곧잘 목욕탕에도 함께 가곤 했는데, 새삼 남세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이미 몇 번이고 벗은 몸을 봤는데도 그랬다. 그러면서도 재윤에게 비누칠을 해줄 땐 군더더기 없는 넓은 등을 원 없이 만져댔다.

“혼자 가도 되는데.”

셔츠 단추를 일일이 채워주는 재윤을 보며 중얼거렸다. 가게만 잠깐 둘러보고 오겠다는데, 굳이 그곳까지 데려다준다기에 한 말이었다. 재윤은 소매의 단추까지 살뜰히 잠가주곤, 창수의 머리카락을 가만가만 매만져주었다. 어린애 아니야, 하는 입술에 가볍게 입도 맞춘다.

“내가 좀 더 같이 있고 싶어서 그래. 어차피 저녁도 먹어야 하고.”

갈까, 하며 가만히 내민 손을 거절할 순 없었다. 그렇게 매번 혼자 왔던 길을, 재윤의 손을 잡고 함께 걸었다. 피부에 닿는 바람결이 그렇게 살랑살랑 부드러울 수가 없었다.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나란히 나이트로 향했다. 그 참에 창수가 누군가를 발견하곤 미구 팔을 흔들었다. 길녀였다. 지금 막 나오는 길인 듯했다. 창수를 본 길녀는 조금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다 죽어가던 주제에, 방실방실 잘도 웃으며 다가온다.

“퇴원은 며칠 전에 했다더니 어디 갔다가 이제 기어 와?”

“왜. 걱정했어?”

“어떻게 안 해. 철없이 쫄랑거리면서 이상한 거에나 물리고 다니는데.”

창수는 뭔 소리야, 하면서 고개를 가웃거렸다 역시 전혀 모르는 모양이었다. 대놓고 혀를 차다가 뒤쪽으로 눈길을 옮겼다. 빤한 시선이 느껴져서 그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눈이 마주치자 재윤이 깍듯하게 묵례했다. 길녀는 그 역시 탐탁잖게 보다가 고개만 까딱하고 돌아섰다. 쌀쌀맞기 짝이 없는 태도에 창수가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왜 저래? 그날인가?”

“그냥 피곤한 거겠지. 너 없는 동안 길녀 씨 혼자서 가게 일, 뒷수습 다 하고 계셨을 테니까. 걱정도 많이 했을 거고. 그만 들어가 봐.”

재윤이 애써 다독이며 창수의 등을 가만히 떠밀었다. 창수는 응, 하면서도 자리를 뭉개고 있었다. 하도 빤히 쳐다보는 턱에 재윤도 섣불리 돌아설 수가 없었다.

왜, 물으려는데 창수가 말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재윤의 팔을 붙잡곤 가게 옆 골목으로 데리고 간다. 벽에 등이 닿는가 싶더니 이어서 창수가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마구잡이로 쏟아지는 애정 표현에 당장 질식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간단히 가게를 둘러보곤 내내 분장실에 늘어져 있었다. 재윤의 방에 있을 땐 몰랐던 피로가 뒤늦게 몰려드는 듯했다. 세 번이었던가, 네 번이었던가. 횟수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해댔으니 몸이 처지는 것도 당연했다.

생각하면 실실 웃음만 나왔다. 재윤도 줄곧 창수 자신과 같은 마음이었는데. 조심성 많은 그가 차마 표현하지 못하는 걸 모르고, 괜히 혼자 끙끙 거리질 않았나. 백창수는 공재윤을 좋아한다. 남자답게 그것 하나 인정했으면 그만이었을 것을.

단순히 그렇게 정리하기에는 억지스러운 부분들이 있었다. 하지만 창수는 그 위화감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지난 기억을 되짚으며 배시시 쪼갤 뿐이었다.

그때 노래를 마치고 들어오던 길녀가 지레 멈칫했다. 헤벌쭉 벌어져 있는 창수의 얼굴을 보곤 지레 미간을 찌푸린다.

“뭐 잘못 처먹었냐? 불쾌하게.”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했는데 왜 지랄이냐.”

“너는 예외거든, 병신아?”

나와, 하며 화장대에 앉아 있던 창수를 밀쳐낸다. 그러곤 기름종이로 얼굴의 유분을 꾹꾹 눌러 닦아냈다.

창수는 구시렁거리며 맞은편 소파로 옮겨 앉았다. 그러다가도 금세 뭔가를 떠올리곤 샐쭉 쪼갰다. 아무래도 폐가 아니라 머리를 다쳤었지 싶다.

길녀는 립스틱을 덧바르려다 말고 그를 홱 돌아봤다.

“넌 걔가 왜 좋은 거야?”

“뜬금없이 뭔 소리야.”

역시 멍청한 얼굴이다. 길녀는 다 알지 않느냐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그에 창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질문의 의미를 되짚어본다. 얼마나 골똘히 생각하는지, 대가리 굴러가는 소리가 다 들릴 것 같았다.

“설마 재윤이?”

“설마는.”

길녀는 불만스러운 눈초리로 창수를 흘겨봤다.

“물려도 독한 놈한테 물렸어, 멍청한 게.”

다시 거울을 향해 돌아앉으며 알 수 없는 혼잣말도 웅얼거렸다.

창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난번 병실에서도 그렇고, 조금 전 가게 앞에서도 두 사람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병원에 왔던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재윤은 함부로 실례를 범할 위인이 아니었다. 오해가 있다면 바로잡아 주고 싶었다.

“아나. 안 웃으면 좀 냉랭해 보여서 그렇지. 되게 상냥한 놈이야. 그 새끼가 정이 얼마나 많은데. 남한테 폐 끼칠 줄도 모르는 놈이라고.”

“퍽이나.”

“그날이냐? 왜 또 빌빌 꼬였는데. 솔직히 그 자식 객관적으로 봐도 진짜 괜찮지 않아? 직업도 좋고, 매너도 있고, 겸손하기까지 하고. 너도 마음에 들어서 그날 바래다달라는 둥 그랬던 거 아냐?”

“누가 껍데기가 구리대? 밤이든 사과든 자고로 겉이 반지르르한 건 속이 썩었는지 아닌지도 잘 확인해뵈야 된다고, 이 멍청아.”

길녀가 발끈하며 돌아봤다. 창수는 그새 눈썹을 일자로 모으고 있었다.

“……무슨 말인데 그게.”

“아, 하여간 난 걔 좀 별로라고. 싫은 타입이야.”

끝까지 속 시원하게 설명을 안 한다. 그게 낫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창수도 더 묻기를 포기했다. 제가 좋아한다고 해서 남에게도 억지로 그걸 강요할 순 없는 거였다. 재윤의 따뜻함을 다른 누구도 아니고 하필 길녀가 몰라준다는 게 못내 서운하긴 했어도.

창수는 입술을 삐죽이며 소파에 누웠다. 길녀에게는 등을 보인 채 휴대폰을 주물럭거린다. 금세 실실 쪼개는 게, 재윤과 메시지라도 주고받는 모양이었다.

바보엔 약도 없다는데. 하긴 누가 누구를 손가락질할까. 거울로 창수를 보던 길녀는 나직이 한숨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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