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시아-22화 (23/77)

22장 공작 부부 (10)

식사는 한 사람 것만 준비되어 있었다. 그걸 보자마자 루시아는 기운이 쭉 빠졌지만, 내색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가뜩이나 넓은 식당이 더욱 광활해 보였다.

“주인님께서 근래 공무가 많으십니다.”

제롬이 변명처럼 공작이 왜 오늘도 저녁 식사에 함께하지 못하는지 설명했다.

“그렇군요. 혹여 부실하게 드시어 건강을 해하실까 염려되니 집사가 더 신경 쓰도록 해요.”

“예, 마님.”

일주일째 루시아는 저녁을 혼자 먹고 있었다. 그는 침실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며칠째 그의 얼굴을 구경도 못했다. 그는 무척 바쁘다고 했다. 집무실에서 온종일 일만 하며 식사도 모두 그 안에서 간단하게 해결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루시아의 감은 그가 지금 그녀를 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전에 가끔 일이 많아 루시아가 잠들 때까지 집무실에서 나오지 않는 적이 있었지만, 그때도 그는 새벽에 들어와 그녀를 끌어안고 잤다. 이렇게 계속 침실에 들어오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이제 겨우 일주일이었다. 천 년은 흐른 것처럼 길어서 뒤돌아보면 겨우 며칠이었다. 그는 일이 바쁠 뿐이었다. 겉보기에 문제가 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이 일주일이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될 수 있었다. 아무리 정략결혼이라 해도 신혼부터 서로 원수 바라보듯 하는 부부는 없었다. 남처럼 지내는 부부는 다 어떤 계기에서 비롯되어 관성으로 굳어진 것이다.

‘머리가 아파.’

습관처럼 음식을 씹어 넘기지만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다. 겨우 식사를 마치고 안나에게 두통약을 받아 복용 후 침실로 들어왔다.

아침에 눈 뜨면 조금 괜찮아졌다가 밤이 되어 침대에 누우면 온갖 상념으로 잠 못 이루는 고통의 시작이었다.

‘왜 그랬어. 네가 망친 거야.’

자책이었다. 왜 풍파를 일으켰을까. 안락하고 평온한 생활을 위해서 그와 결혼했다. 그의 애정을 얻기 위함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와 계약까지 하며 분명히 했다. 거짓으로 계약만 해놓고 ‘나중에 혹시 모르는 거 아니야?’라는 약삭빠른 생각은 하늘에 맹세코 절대 하지 않았다.

‘그가 나빠. 차라리 처음부터 형식적인 부부로만 지냈으면.’

그에 대한 원망도 있었다. 그가 그렇게 다정히 대해주지만 않았어도 평생 고독을 각오했던 그녀의 결심이 무너질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인제 와서 칼로 베어내듯 딱 끊어버린 그의 태도는 그녀의 마음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동시에 자신을 비웃었다. 다정한 남편의 태도를 원망하다니. 언어도단이었다.

‘네가 선택했잖아. 후회는 절대 안 할 거라고 다짐했잖아.’

또다시 자책이었다. 아이는 처음부터 아예 포기하고 있었으면서 왜 갑자기 욕심을 부렸을까. 쥐고 있는 것의 가치를 모르고 욕심을 부리다가 잡은 것마저 놓치게 생겼다.

얼마 전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걸 그녀가 망가뜨렸다. 아무리 뒤척여도 잠이 오지 않았다. 루시아는 일어나 앉아 몸을 동그랗게 말고 두 팔로 무릎을 감쌌다. 열리지 않는 침실 문에서 시선을 돌리지 못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의 가슴이 너덜너덜하게 멍들어갔다.

빠르게 서류를 읽고 아래에 서명했다. 따로 살펴볼 필요나 의문이 있는 사항에는 표시해 두고 옆으로 넘긴다. 왼쪽에는 그가 처리해야 할 일, 오른쪽에는 처리한 일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아무리 눈이 빠지라고 서류를 읽고 지끈대는 머리를 누르며 일을 해도 왼쪽의 서류들이 바닥을 보이는 일은 없었다.

어느 순간 휴고는 내던지듯 펜을 내려놓고 몸을 뒤로 기댔다. 눈을 감아도 머릿속에서는 이걸 해야 하고 저걸 해야 하고, 해야 할 일들을 그리고 있었다. 지긋지긋하다. 얼마나 이 짓을 더 해야 하나.

‘10년?’

10년이면 녀석이 몇 살이더라. 열여덟 살. 그때야 겨우 학술원을 졸업할 나이였다. 10년으로는 안 되겠다. 15년이면 되려나. 아둔한 녀석이 아니니까 4~5년 가르치면 쓸모 있을 것이다.

‘15년이라…….’

아무리 최소한으로 잡아도 아득하게 멀었다.

‘이 짓을 15년을 더 해야 한단 말이지.’

비가 오느라 어둑한 바깥 하늘을 창을 통해 내다보았다. 오늘은 아침부터 계속 비가 왔다. 그는 처음에는 창가로 아예 시선조차 두지 않았으나 결국 사흘 전부터는 발코니로 나가지 않은 채 정원을 거니는 그녀를 훔쳐보았다. 자신이 얼마나 꼴사나운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고 비 때문에 그녀를 오늘 보지 못했다고 투덜거렸다.

‘그때가 아니면 볼 수 없는데.’

그는 짜증스럽게 중얼거리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한심한 새끼. 가서 보면 되잖아.’

멀리도 아니고 계단을 내려가 조금만 가면 금방이었다. 지금 이 시각이면 그녀는 대개 1층 응접실에 있었다. 그녀의 생활은 단조롭고 단순했으며, 거의 하는 일이 정해진 것처럼 규칙적이었다. 요즘은 외출도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는 자기 일정보다 그녀의 일정을 꿰고 있었다.

‘내가 이런 병신 짓을 할 줄이야.’

지금 그는 아내를 피하는 중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자신의 마음에서 도망치고 있었다.

‘사랑? 웃기는군.’

그는 끊임없이 부정했다. 그의 마음은 오롯이 그만의 것이었다. 누군가로 말미암아 절대 흔들릴 수 없었다. 그렇게 자신하면서도 그녀를 만날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녀를 보는 순간 모두 다 무너질 것 같은 위기를 느꼈다. 일이 많다는 핑계로 밤늦도록 집무실에서 서류만 들이 팠다. 식사도 집무실에서 간단하게 해결했다. 자정이 넘어서 집무실을 나와 지난 몇 개월간 사용하지 않았던 자신의 침실에서 잠을 잤다.

‘그녀 없이도 얼마든지 잘 지낼 수 있어.’

시험을 해보겠다는 핑계였다. 그의 냉철한 이성이 그에게 찌질하고 비겁하다고 비웃었으나 그는 외면했다. 첫 하루 이틀은 아무렇지 않았다.

‘그래. 내가 여자 하나에 좌우될 리 없지.’

그는 철없는 아이처럼 의기양양했다. 그런 자신감이 무너지는 건 금방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미묘하게 기분이 저하되고 서류 내용이 머릿속에서 헛돌며 일 처리 속도가 형편없이 떨어졌다. 같은 시간을 들여도 효율이 떨어지니까 일하는 시간은 늘어났다. 자신답지 않아서 불쾌하고, 일은 더 손에 안 잡히고 악순환의 계속이었다.

그래도 그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에 대한 금단 현상을 부정하며 똥고집을 부리는 중이었다. 유감스럽게도 그의 주변에는 그의 귀를 잡아당기며 따끔히 야단칠 사람이 없었다.

“전하.”

귀에 익은 목소리를 듣자마자 짜증이 확 치밀었다. 저 목소리의 주인은 늘 일거리를 한가득 가지고 들어온다. 들어오라고 하자 역시 빈 몸이 아니었다.

공작의 서기관 중 하나인 행정관리 아신은 사납게 자신을 바라보는 휴고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꿋꿋하게 들고 있던 서류 더미를 책상 왼쪽에 올려놓았다. 슬금슬금 나가는 꼴이 얄미워서 휴고는 툭 던지듯 물었다.

“그 녀석 방학이 언제지?"

아신은 느닷없는 공작의 질문에 진땀이 났다. 다행히 명석한 머리는 그런대로 늦지 않게 답을 찾아주었다.

“…방학은 따로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공작이 방학을 언급할 존재라면 한 명뿐이었다. 차기 공작위를 이을 후계로 지정된 공작의 하나뿐인 아들, 데미안 타란. 사생아지만 죽고 싶지 않고서야 공작 앞에서 그 단어를 입에 올릴 자는 없을 것이다. 아예 사람들은 누구도 대놓고 데미안의 존재를 거론하지 않았다.

‘다들 여전히 설마 하는 것 같지만.’

바뀔 수 있는 일이라고 사람들은 은연중에 생각하고, 그러기를 바랐다. 공작은 아직 매우 젊었고 이제 막 결혼했다. 말은 못해도 사생아가 공작가의 정통을 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이변이 없는 한 후계는 사생아 도련님이 될 것이라고 아신은 확신했다. 공작께서 다 불러 모아놓고 공표한 일이었다. 공작은 한 번 입 밖으로 꺼낸 일은 번복하지 않았다.

공작 후계의 등장은 일대 파란이 일 정도의 대사건이었다. 엄청난 스캔들이 널리 퍼지지 않은 건 사람들이 알아서 입조심한 덕이었다. 사생아가 장차 주인이 될지 모른다는 불편한 심기 때문에 공론화하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요란한 신고식 치른 것치고는 두 부자 사이가 영…….’

공작은 아들이 여섯 살이 되자마자 기숙학교에 넣어버렸다. 오히려 주변에서 만류했다. 너무 어리시니 한두 해 더 있다가 생각해 보심이 어떠신지요, 했더니 공작은 코웃음 쳤다.

“어려? 여섯 살이면 사막에 던져놔도 살아남을 수 있어야지.”

대체 그건 무슨 기준이냐고 모두 경악했다. 어린 도련님 입에서 나온 말은 더 가관이었다.

“사막보다는 확실히 기숙학교의 생존율이 높겠군요. 관대하신 처분에 감사드립니다.”

나이보다 징그러울 정도로 조숙했던 어린 도련님은 미련 없이 기숙학교로 떠났다. 그리고 2년. 공작은 정말 아들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언급조차 없었고, 도련님 역시 연락은커녕 집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이대로 지내다 졸업하는 10년 후에나 돌아와도 전혀 놀랍지 않을 거야.’

공교롭지만 공작의 데미안에 대한 무관심이 오히려 섣부르게 데미안에게 줄을 대거나 적대하려는 세력의 발생을 억제했다.

‘그런 의도로 일부러 그러시는 것일 수 있어,’

“전혀 나가지 못하나?”

아신은 재빨리 딴생각을 구겨넣었다.

“외출은 가능합니다.”

“오라고 해.”

“…지금 말씀이십니까? 하지만 이제 막 학기가 시작되었고, 외출하려면 최소 일주일 전에는 통보해서 허가를 받아야 하고…….”

“언제부터 내 말에 토를 달았지?”

까라면 까야 한다. 식은땀이 주룩 흘렀다. 아신은 경직된 표정으로 즉시 답했다.

“예, 즉시 전언을 보내겠습니다.”

“수도로 사람 보내서 파비안 내려올 때 입적 서류 준비해서 가져오라고 하고.”

‘소공자를 혼적에 올리려 하시는구나.’

공작이 후계로 한다고 공표했으나 사생아에 불과했다. 그러나 정식으로 혼적에 올라가면 공작의 적자가 된다.

‘공작부인께서 입적에 동의하셨나 보네. 두 분 금실이 꽤 좋다는 말이 돌던데 공작부인께서 아이를 낳으면 대체 어찌 되는 거야. 아들을 낳으시면 골치 아플 텐데.’

당연히 공작부인 소생인 적자가 우선이겠지만, 공작이 데미안을 후계로 하겠다는 선언을 철회하지 않으면 장차 공작가에서는 치열한 후계 다툼이 벌어질 것이다.

“전하, 엘리엇입니다.”

들어오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중년의 기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기사단장 칼리스 엘리엇은 정중하게 예를 올린 후 서신을 올렸다. 서신을 읽는 공작의 눈매가 가늘어지고 입가에 스산한 미소가 올라오는 것을 보며 아신은 등줄기가 오싹했다.

‘쓰벌, 난 저럴 때 주군이 제일 무섭더라.’

“소집해. 일곱 명. 차출은 그대에게 맡긴다. 지금 바로 준비되는 대로 출발하겠다.”

비는 거의 멈추었지만 해가 저물어가는 오후였다. 새벽 일찍 떠나는 평소와 달랐으나 충실한 기사 칼리스는 두말없이 대답하고 물러갔다.

“오랜만에 사냥이군.”

‘인간 사냥’

휴고의 중얼거림에 아신은 숨겨진 말을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에휴. 오늘 꿈자리가 뒤숭숭하겠네.’

아신은 행정관리라서 피 튀기는 전쟁터와 거리가 먼 데도 몇 년 전 의도치 않게 공작을 따라 전쟁터에 간 적이 있었다.

그때의 광경이 눈에 선해서 지금도 심장이 벌떡거렸다. 사람이 죽는 참혹함에 몸서리쳐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쉬워서, 공작의 칼질 한 번에 뎅강 사람 목이 잘려 공중에 날아가는 모습이 비현실적이라 현기증이 났다.

흑사자? 아신은 그 별칭이 굉장히 미화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검은 갑옷을 입고 전쟁터를 헤집는 타란 공작은 잘 봐줘야 사신이고 그야말로 악마였다.

피를 뒤집어쓴 채 배부른 맹수처럼 나른하게 웃는 공작을 보며 아신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저런 미친놈. 뱉어놓고도 누가 들었을까 봐 기겁했고 다행히 그의 독백은 전쟁의 광기에 취한 병사들의 함성에 묻혔다.

아신은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는 편이었다. 하고 싶은 말을 참은 적이 없고 갖춘 능력만큼 제법 지랄 맞은 성격은 윗사람이건 부하이건 이를 갈게 하였다. 하지만 그날 이후 아신은 오직 타란 공작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되었다.

그는 공작의 무시무시함을 눈치챘다. 물론 대외적으로도 공작은 꽤 무서운 사람이라고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훨씬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전쟁터가 아닌 곳에서의 공작은 매너 좋고 기사의 거친 면을 전혀 보이지 않아서 그를 대하는 사람들은 그저 대단한 무용을 지닌 젊은 공작이라는 점 자체에만 초점을 두었다.

그래서 더 무시무시했다. 전쟁터에서 보였던 그 피비린내 나던 광기를 감추고 무기를 들어본 적 없는 것처럼 고아한 귀족인 척할 수 있다는 그 간극이 더 공포였다.

“일정이 길어지십니까?”

“가봐야 알겠지만 아무래도 좀 걸리겠군.”

“하오면 자리를 비우시는 동안 도련님이 오시게 될 수도 있습니다.”

휴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이가 어려도 녀석은 타란의 혈통을 이었다. 또래의 다른 여덟 살짜리로 생각하면 곤란했다. 휴고는 이미 비슷한 나이에 살인을 했다. 설치한 함정으로 발목이 잘린 놈의 심장에 검을 박아 마무리를 했었지. 잠시 과거를 회상했던 그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녀석은 절대 순진한 어린애가 아니었다. 아직 핏줄의 광기가 발현하지 않았지만, 언제 터질지 모른다. 그래도 아직 녀석은 순한 편이었다. 꾸준히 전해 받는 소식에 의하면 녀석은 제 아버지의 멍청할 정도로 사람 좋은 점까지 빼닮지는 않았어도 잔인한 기질은 보이지 않았다.

만약 녀석에게서 죽은 형제를 닮은 눈빛을 발견하지 않았다면 녀석을 처음 본 그날 그 자리에서 죽여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순해도 범의 새끼는 범. 녀석과 비교하면 아내는 순한 토끼였다. 그가 없는 새에 둘만 있을 일이 아무래도 걱정스러웠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그녀를 염려하고 있음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그 녀석, 자네가 가서 데리고 와.”

“…네?”

“오면서 확실히 경고해 두도록. 어머니에 대한 예를 다하라고. 혹여 다녀와서 내 귀에 이상한 말이 들리면.”

“넵. 염려하신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아신이 물러가고 얼마 후 제롬은 기사들이 떠날 준비를 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집무실로 달려갔다.

‘주치의 안나를 불렀던 날부터였지.’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후부터 주인 부부 사이가 이상했다. 주인이 일이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일방적으로 마님을 멀리하고 있었다. 주인은 늘 일이 많았다. 그러나 식사를 못하고 잠을 못 잘 정도는 아니었다.

하녀 말에 의하면 요즘은 두 분이 침실도 따로 쓴다고 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마님의 기운이 빠진 어깨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그러시는 거 아닙니다. 주인님.’

제롬의 마음에서 처음으로 주인에 대한 반항심이 고개를 들었다. 이 상태를 해결하지 않고 장기외유를 떠나신다니 도무지 왜 그러시냐, 묻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제롬은 평소처럼 차를 덥혀서 들어갔다. 은은한 차향이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제롬은 빈 잔에 가득 차를 따랐다.

“저녁 진지는 어찌하시겠습니까.”

“음, 준비할 필요 없다. 곧 나갈 거니까.”

휴고가 고개를 들고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사냥하러 다녀올 거다. 일정은 정확히 몰라.”

“시간이 늦었습니다. 내일 새벽에 떠나심은 어떠신지요?”

“아니. 준비되는 대로 가려고. 이미 그렇게 지시했다.”

“마님께는…….”

“대신 전해.”

“…마님께서 큰 실수라도 하셨습니까?”

주인의 시선을 받으면서 제롬은 꿋꿋이 말을 이었다.

“실수하셨다고 해도 너그럽게 받아 주셨으면 합니다. 며칠째 마님과 말씀 한 마디 하지 않고 계십니다.”

“참견할 일이 아니야. 주제넘다.”

“예, 주제넘게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마님께서는 공작가 안주인이십니다. 이전에 전하께서 취하고 버리던 여인들과 다른 분입니다. 소중히 하셔야 합니다.”

휴고는 조금 커진 눈으로 제롬을 바라보았다. 시선을 살짝 피해 아래로 내리고 고집스럽게 서있는 제롬을 보는 휴고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아는 사람도 없이 혼자 이 낯선 북부로 오셨습니다. 그런 상황이 힘들다고 불평 한마디 없으셨습니다. 전하께서 외면하시면 마님은 정말 혼자가 되십니다.”

휴고의 붉은 눈동자가 한층 더 붉게 빛을 발했다. 정말 한 배에서 태어난 걸까 의심될 만큼 기질이 천지 차이로 다르지만, 역시 제롬은 파비안과 피를 나눈 형제가 틀림없었다. 겁 없이 입을 놀리는 모양새가 파비안과 아주 판박이였다.

“요즘은 마님께서…….”

“입 다물어.”

“전하.”

“어디 한 마디만 더 해봐.”

주인의 나지막한 음성에는 살기까지 담겼다. 제롬은 입을 꾹 다물며 시선을 떨어뜨렸다. 공작은 공연한 트집을 잡아 까다롭게 구는 주인은 아니었지만, 제 분수에 넘치는 짓으로 권위에 도전하는 것만큼은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제롬은 공작 부부의 사적인 관계에 나설 권한이 없었다. 제롬이 집사여서가 아니다. 로암의 그 누구에게도 그럴 권한은 없었다.

휴고는 지금 이 상황이 몹시 불쾌했다. 이건 그녀와 자신, 두 사람의 문제였다. 제롬이 끼어들 일이 아니었다. 평소 불필요한 일에 간섭하지 않고 제가 나설 일과 그러지 말아야 할 일을 철저히 구별하던 제롬의 답지 않은 짓이 예민하게 그의 신경을 건드렸다.

평소에 제롬이 지극히 그녀를 챙긴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갑자기 그것조차도 몹시 거슬렸다.

“제법이야. 가서 날 찔러보라 하던가?”

그녀가 그랬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는 지금 잔뜩 꼬였다.

“아닙니다! 전하, 마님께서는 절대!”

와장창! 제롬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 찻잔이 나동그라져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산산이 부서졌다.

“입 다물라고 했다.”

휴고는 벌떡 일어나 집무실을 나가버렸다. 제롬은 창백한 얼굴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실수했다. 나서지 않느니만 못한 결과였다. 남녀 사이에는 섣부르게 끼어드는 것이 아니라고, 파비안이 봤다면 말했을 것이다.

‘마님께 면목이 없군.’

주인에 대한 첫 반항은 깨갱 꼬리를 말며 끝났다. 괜히 참견해서 오해까지 키워놓았다. 제롬은 푹푹 한숨을 내쉬며 조각조각 부서져 사방으로 흩어진 찻잔 조각들을 비로 쓸기 시작했다. 이게 이마로 날아오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주인은 충분히 관용을 베풀었다.

‘파비안이 오면 조언을 구해볼까.’

쓸데없는 오지랖! 보나 마나 신랄한 잔소리를 늘어놓을 것이다.

루시아는 방문한 케이트를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대서 일찍 돌려보냈다. 수다를 떨 기분도, 승마하러 나갈 기분도 나지 않았다. 케이트를 돌려보내기 무섭게 주치의가 방문했다.

“마님.”

안나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안절부절못하며 눈치를 살폈다. 그는 그날, 치료는 마음대로 하라는 말을 남기고 갔으면서 다음 날부터 줄기차게 안나를 보냈다.

“마님. 공작 전하께서 저녁마다 부르셔서 치료에 대해 물으십니다.”

안나는 제발 살려달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공작은 안나를 불러 따로 뭐라 하지는 않았다. 불러서 치료는 어찌 되어 가느냐고 물을 뿐이지만, 안나는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압박을 느꼈다.

“부디 증상을 아시는 대로 솔직히 말씀해 주십시오.”

며칠 상간으로 루시아 마음속에서 꾸준히 분노가 자라났다. 그에게 기만당하는 것 같은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당장 집무실로 가서 그의 뺨이라도 올려붙이고 싶었다.

‘좋아요.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드리죠.’

루시아는 입을 열어 자신의 증상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꿈에서 의사를 애타게 찾아다니며 자신의 증상을 설명할 때처럼 가감 없이 말했다.

이미 알고 있는 치료법을 이용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만약 안나가 치료법을 찾아낸다면 거부하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꿈속에서 그토록 오랜 시간을 들여 셀 수 없이 만난 용하다는 의사들은 모두 치료하지 못했다. 떠돌이 의사에게 치료법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기가 막힌 우연과 운이었다. 그 우연과 운이 과연 이번에도 그녀를 찾아올까.

역시 안나는 들으면서도 혼란스러워했다. 몹시 당황한 안색이 삼엽쑥을 먹으면 잠시 월경을 멈춘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마님. 제 실력이 부족해서 솔직히 말씀드리면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방법을 알아내겠습니다.”

비장한 목소리로 다짐하며 안나가 물러갔다. 루시아는 멍하게 앉아있다가 정원으로 나왔다.

휴고는 불쾌한 기분으로 집무실을 나와 무작정 걷다가 밖으로 나왔다. 비는 그쳤지만 해가 나올 기미가 없었다.

‘오늘은 이대로 날이 저물겠군.’

그는 어느새 정원에 들어와 있었다. 그는 재빨리 돌아서 나가려 했지만 그러기 전에 그녀를 발견했다. 그녀는 허리를 숙여 막 봉오리 맺힌 꽃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잠시 굳어있던 그의 발걸음이 자기도 모르게 그녀에게로 향했다.

루시아는 허리를 펴며 고개를 들어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를 보면서 갑자기 주변의 공기가 바뀌는 환상에 빠졌다. 모든 배경이 흐릿하게 멀어지고 오직 그만 눈에 들어왔다. 이와 비슷한 일을 전에도 겪은 적이 있었다.

‘수도에서 기사단 행진이 있었던 날.’

꿈속이 아닌 현실에서 그를 처음 본 날에도 그의 모습만 눈에 확 들어왔다. 어쩌면 그때부터 그를 향해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그에게 화가 나있었다. 밤마다 열리지 않는 침실 문을 노려보느라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해서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를 보기만 하면 달려들려 뺨을 쳐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를 보자마자 켜켜이 쌓여가던 모든 미움이 순식간에 물에 풀린 소금처럼 녹아버렸다.

‘난 정말 바보구나…….’

저 남자는 안 된다고 주문처럼 외며 꽁꽁 묶었다고 생각했는데 제 마음이 성긴 틈 사이로 다 빠져나간 것을 모르고 있었다. 가슴이 벅차오르면서 동시에 아프게 할퀴어졌다.

‘그를 사랑해.’

어쩌면 좋을까. 수많은 그의 지난 여자처럼 결국 마음을 지키지 못했다. 사람 마음은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고, 계약을 맺은 그날 그에게 말했었다. 그러나 솔직히 그녀는 자신 있었다. 내 마음이니까 내가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오만했는지.

‘들키면 안 돼.’

그는 한 걸음 다가가면 두 걸음 물러날 것이다. 장미꽃을 받고 싶지 않다. 아슬아슬한 모서리 끝에 선 심정으로, 루시아는 그를 보며 웃었다.

‘아…….’

휴고는 그녀의 미소를 보는 순간 계속 그를 괴롭히고 있던 불쾌감과 짜증이 순식간에 깨끗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껄끄러운 찌꺼기 한 점 남기지 않고 단 숙면을 취한 아침처럼 상쾌했다.

휴고는 비로소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그가 진정 두려운 것은 그를 흔드는 그녀의 존재가 아니었다. 저 미소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상상만으로도 위가 아프게 조여들었다. 그렇다고 했잖아. 비웃는 것처럼 심장이 뛰었다.

“보세요. 이제 곧 꽃이 피겠지요? 며칠이면 만개할 거예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녀가 말을 걸어오자 휴고는 목이 막혀서 겨우 한마디 했다.

“…그렇군.”

그녀의 산뜻한 표정은 그를 비참하게 했다. 안달복달했던 자신과 달리 그녀는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바쁘시다고 들었어요. 잠시 바람 쐬러 나오셨어요?”

“음……. 바쁜 건 대충 끝났어. 그런데 일이 생겨서 얼마간 나갔다 와야 할 것 같아.”

“아…….”

잠시 시무룩했던 루시아가 다시 생긋 웃었다.

“얼마나 걸리세요? 오래 다녀오시는 건가요?”

“정확히는 모르겠군. 꽤 길어질 수도 있고. 왜 혼자 있지? 하녀는?”

“심부름 보냈어요. 비가 그쳤기에 여기서 간단히 차 한잔 마시려고요. 괜찮으면 함께 드시겠어요?”

방금 마시고 왔지만 그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러지.”

얼마 후에 하녀들이 접이식 테이블과 차 바구니를 들고 나타났다. 적당한 곳에 펼쳐진 테이블에 두 사람이 마주앉았다.

“요즘 가물어서 걱정이었는데 한나절이지만 꽤 많이 비가 와서 다행이에요.”

“뭐 하며 지냈지?”

“평소와 같았어요. 정원 돌보고 책도 읽고. 왠지 이상해요. 서로 굉장히 오랜만에 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며칠 정도인데.”

며칠 정도인가. 그는 굉장히 길다고 생각했는데 그녀에게는 그냥 며칠 정도였다. 그녀의 씩씩함이 대견하면서 서운했다.

손을 뻗어 그녀의 보드라운 볼을 만졌다. 말랑한 그녀의 피부는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자국이 남을 것 같았다. 약했다. 이 약한 존재가 이토록 강력하게 그를 위협하고 있었다.

“그날. 내가 말실수를 했어. 당신에게 사과하고 싶어. 당신을 부정한 여자로 취급하려던 의도는 아니었어.”

“…….”

“타란 가문이 손이 귀해. 진짜 임신이 힘들어서……. 당신이 아이 갖기 힘들 테니까 기대했다가 실망하기 바라지 않았어. 그러다 말이 헛 나왔어.”

그의 변명은 그다지 루시아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손이 귀하다면 오히려 그녀의 임신을 적극 지지하는 편이 더 납득이 가는 태도였다. 하지만 말을 하며 무척 고심하는 그를 보자 웃음이 나왔다.

“네.”

웃으려 했는데 루시아 눈에서 툭 눈물이 흘러 떨어졌다. 당시 받았던 상처가 아파서가 아니었다. 이미 그를 용서했다. 그의 다정한 말투와 볼을 어루만지는 손길에 기뻐하는 자신의 마음이 아팠다.

그녀의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며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일어났다. 한 걸음으로 티테이블을 끼고 돌아 그녀를 품으로 안았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그리웠던 그의 품과 체취는 지옥을 헤매던 그녀의 마음을 순식간에 천국으로 올려놓았다.

‘다시… 이전처럼 돌아가자.’

지난 몇 개월의 시간으로 다시. 언제 무너질지 모를 모래로 만든 성이라도 좋다. 파도는 보이지 않으니까 아직은 괜찮았다.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련다. 허공을 디딘 것 같았던 마음은 오히려 평온해졌다.

흔들리면 안 된다고 안절부절못하다가 인정하고 나니까 편해졌다. 천국과 지옥은 그녀의 마음먹기에 달려 있었다.

‘그는 적어도… 날 좋아하는 건 맞아.’

그가 이전의 연인들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모른다. 루시아는 자신이 조금은 특별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자만은 아니지만, 그 정도 자신감은 심어둬야 굳건히 서서 그를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내게는 특권도 있어.’

그녀는 그의 합법적인 아내였다. 지금껏 누구도 갖지 못한 명분이었다.

‘매달리지 않을 거야. 비굴하게 비위 맞추려고 하지도 않을 거야.’

비참해지는 사랑은 하지 않겠다. 그의 사랑을 구걸하지 않겠다. 무조건 그에게 순종하는 착한 아내 노릇도 하지 않겠다. 할 수 있는 만큼만. 그와 자신을 미워하게 되지 않을 정도까지만 있는 힘껏 그를 사랑해 보겠다. 그는 여자가 매달리지 않는 사랑을 받아본 적 있을까?

어쩌면 그를 당황하게 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자 즐거워졌다.

‘평생이 걸려도 좋으니까. 언젠가 당신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듣는다면 내 인생이 허무할 것 같지는 않군요.’

이대로 1년, 5년, 10년을 살다 보면 가랑비처럼 그를 천천히 젖어들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루시아는 그의 품에서 빼꼼 고개를 들었다.

“잘못하셨죠?”

“응? 응…….”

“용서해 드릴게요. 대신 두 가지 조건이 있어요.”

“…뭔데.”

휴고는 ‘조건’이라는 단어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첫 번째. 화해 키스.”

이런 조건이면 좋지. 휴고의 눈이 살짝 커졌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그의 얼굴이 천천히 내려오는 것을 보며 루시아는 눈을 감았다. 살짝 닿았다 떨어지는 입술, 다시 닿는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빨아들였다. 휴고는 말랑거리는 입술을 몇 번이나 삼키고 자신의 입술로 문댔다.

벌어진 입안으로 들어온 그의 혀가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안쪽 살을 훑으며 깊은 곳을 건드려 자극했다. 가볍지는 않으나 격해지지도 않는 아슬아슬한 선을 유지하며 달콤한 키스가 끝났다. 그는 입술이 거의 맞닿은 채로 말했다.

“두 번째는?”

루시아는 다시 키스할 것처럼 다가오는 그를 밀어내며 고개를 살짝 돌렸다.

“계약을 수정해요. 당신의 사생활 자유. 그 말은 당신이 대놓고 바람피운다는 거잖아요. 애인을 만들어도 저 모르게 해주세요.”

휴고는 당황해서 말없이 눈만 껌뻑이다가 기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안 만들어.”

그는 억울했다. 결혼하고 다른 여자에게는 눈길 한 번 준 적이 없었다.

“만약 당신이 제가 싫어지거나, 싫증이 나거나, 다른 여자가 생겨서 절 떠나고 싶으면. 가장 먼저 제게 말씀해 주세요.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듣지 않게 해주세요.”

그녀의 담담한 목소리는 그의 심장을 아프게 콕콕 찔렀다. 휴고는 한참 그녀를 바라보다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잠시 잊고 있었군. 당신 머릿속의 나는 아주 형편없는 놈인데 말이지.”

사랑하는 여자에게 멋진 남자가 되기는커녕 나쁜 놈으로 낙인찍혔다는 상황이 정말 기가 막혔다. 그런데 반박할 수가 없다.

“아니라고 변명도 못 하겠어.”

그는 중얼거리며 그녀의 손을 잡아 올려 손등에 키스했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휴고는 아까부터 주인 내외를 곁눈질하면서 안절부절못하는 하녀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냐.”

“엘리엇 경이 준비를 마치고 명을 기다린다고 말씀 올려달라 하셨습니다.”

그녀에 대한 마음을 깨달았으나 당장 변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휴고는 여전히 그녀에게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 보여주지 못할 것들도 많았다.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보여줄 수 없을지 결정할 시간이 더 필요했다. 이번 사냥은 그에게 시간을 벌어줄 것이다.

“나올 필요 없소. 다녀오지.”

“…네. 건강히 다녀오세요.”

등을 보이며 멀어져가는 그를 보는 그녀의 가슴 언저리가 욱신거렸다. 루시아는 두 손을 꼭 쥐어 가슴을 눌렀다. 언젠가 그가 저렇게 그녀를 떠나게 되지 않기를. 그녀는 간절히 소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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