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장 (2/14)

2장.

“아, 그러고 보니 우리 처남 용돈을 안 챙겨주고 왔네. 김 비서 데려와 버려서 일 시켜줄 사람도 없는데.”

퍼뜩 떠오르는 시우 생각에 혼잣말을 되뇐 도재가 비서에게 연락해 시우에게 주었던 카드가 사용되고 있는지 알아보게 했다. 아주 활발히 이용되고 있다는 비서의 보고에 도재는 피식 웃음 지었다. 예쁜 꼬맹이가 드디어 미련스러운 짓을 버리고 마음껏 신세지고 있음에 흐뭇했다. 대학 가는데 노트북은 당연히 샀겠지? 이번엔 좀 영혼 담긴 뽀뽀를 해주려나.

돌아가면 대학생이 되어 있을 시우의 모습이 좀처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도재는 귀국일을 앞당겼다. 물론 시원은 알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한테 굳이 말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사자의 귀환을 모르는 시원은 도재가 시우에게 주었던 카드로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열심히 쇼핑만 하고 다녔다. 도재가 2주 간 통으로 집을 비우는 이때가 시원에게는 찬스였다.

도재는 출퇴근 시간이 너무 자기 마음대로라 평소에는 쇼핑에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쇼핑에 정신이 팔려 집을 비우고 있다가 도재에게 걸리기라도 하면 낭패였다. 현모양처 오디션을 보는 와중에 ‘저 낭비벽 있어요, 사치 심해요.’ 선전하는 꼴을 보일 수는 없지 않은가.

화영도 시원에게 3개월 동안은 그냥 죽었다 생각하고 5분 대기조처럼 집구석에서 도재만 기다리라고 했다. 생활비를 함부로 쓰는 모습은 절대 보이지 말라고 신신당부도 했다. 시원은 도재가 살림을 꾸려가라고 준 차고 넘치는 생활비는 정말 생활비로만 쓰고, 그대로 다 남겨둔 뒤 시우에게서 뺏은 카드로 제 개인 물건들을 사들였다.

‘이 정도 긁는 거는 뭐, 나중에 걸리더라도 서시우 신입생이니까 이것저것 살 게 많았다 하면 될 정도지.’

시원은 별로 좋지 않은 머리를 굴려 추후 시우에게 덤터기를 씌울 플랜까지 짜 두었다.

“이것 좀 내 방에 갖다 놔요.”

그렇게 시원은 오늘도 어김없이 명품관을 휩쓴 듯한 종이가방 꾸러미와 함께 들어왔다. 기사를 시켜 들고 오게 만든 제 쇼핑 아이템들을 배 집사에게 턱짓으로 가리키며 방으로 가져가라 말했다. 명령조였다.

그리곤 정확히 세 발자국을 더 걸어 들어온 뒤에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시원이 소파에 앉아 있는 도재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쇼핑만 걸린 게 아니라 도재의 고용인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버르장머리 없는 모습까지 걸렸으니 이걸 어디서부터 싹싹 빌어야 하나 머리를 굴려보았다.

시원은 안타깝게도 시우를 볼 생각에 꽤나 기분이 좋았던 도재의 심기에 찬물을 제대로 끼얹었다. 도재는 주제 파악 못하는 사람들을 경멸한다. 시우를 집에 들어앉히기 위해 깍두기처럼 들여온 애가 도재 자신보다도 더 주인 노릇을 하며 활개를 치는 꼴이라니, 기도 차지 않았다.

“이리 와.”

끔찍하게 낮은 목소리와 함께 풀린 알파의 분노 섞인 페로몬에 시원의 몸이 벌벌 떨렸다. 시원은 도재가 앉아 있는 소파 앞까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간신히 옮겼다. 앉아 있는 도재와 서 있는 시원, 시원의 시선이 더 높이에 있는 것이 언짢은 도재가 시원에게 앉으라고 명했다. 고개를 푹 숙인 시원이 조심스레 소파에 앉으려 하자 도재가 네 엉덩이 갖다 붙이라고 만든 소파 아니라며 싸늘하게 대꾸했다.

집안 고용인들이 다 보는 앞에서 시원은 딱딱한 대리석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치욕스러웠다.

“알파 좆집 하는 거 말고는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게 잔대가리를 굴리네. 내가 있을 때랑 없을 때랑 태도가 이렇게 다른 건 나를 기만하는 거지, 어?”

“그, 그게 아니고… 그, 그런 건 절대… 절대 아니에요….”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시원은 생에 처음 당해보는 공포스러운 상황에 눈물을 뚝뚝 흘리며 횡설수설 했다.

“뭐 하는 사람들인지는 알고 부린 거야? 배 집사 직무 사항이 어떻게 되는지, 근속이 몇 년째인지 읊어봐.”

“…….”

“그럼 박 기사는?”

“…… 죄, 죄송합니다.”

“외워 놓으라고 했어, 안 했어? 좆같이 생겨서 좆질 할 맛도 안 나는 게 멍청하기까지 해서 어디다 쓸까 너를? 어? 말해봐. 너 같은 걸 어디다가 쓰냐고.”

“잘…잘못…히끅…! 잘못했습니다.”

누구한테는 익숙하기까지 한 폭언이 시원에게는 난생 처음이었다. 할 줄만 알았지 당할 줄은 모르고 살아서 폭언에 면역이 없는 시원은 충격과 공포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잘못했다는 소리 말고 내가 물은 질문에 대답을 해야지. 너 어디다 쓰냐고. 잘하는 게 뭐야? 밤일은 좀 잘해? 이렇게 유세 떠는 거 보면 아주 명기인가 봐? 자위해 봐. 한번 보자.”

“…허윽.”

도재가 오메가를 발정하게 하는 강한 알파의 페로몬을 뿌렸다. 시원도 우성이니 제 페로몬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며 버텨볼 수는 있겠지만, 지금은 멘탈이 가루가 되어 있어 얼마나 버틸지 미지수였다.

도재는 더욱 강하게 페로몬을 풀었고 시원은 듣도 보도 못한 극우성의 페로몬에 앞과 뒤가 동시에 젖어갔다.

“윽…! 하아… 제발… 한 번만, 한 번만 봐주세요. 윽….”

“천박하게 질질 흘리긴. 바지 벗어.”

시원의 본능이 알파의 명령에 무조건 순응하라 말하고 있었다. 시원은 거실 한복판에서 바지를 벗었다.

“넌 이제 중매 시장에 내놓아도 안 팔려. 집구석은 비루먹은 거지만도 못한 게 천박하게 굴다 쫓겨났다고 소문이 날 테니까. 늙어 빠진 노인네 우성 씨받이로는 들어갈 수 있겠다. 그러다 우성 못 낳으면 버려지는 거고.”

도재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악마 같은 말로 시원을 난도질하며 입가에 씨익 미소를 띄웠다. 그러곤 시원에게 스스로 손가락을 넣어 뒤로 자위하라 명했다.

“뒤돌아서 엉덩이 내밀고 손가락으로 쑤셔 봐. 얼굴은 별로 보고 싶지 않아서 말이야. 꼴리게 자위 잘한다 싶으면 이번은 안 쫓아내고 넘어가 줄게.”

도재의 페로몬에 이미 뒤가 흠뻑 젖은 시원이 엉엉 울며 도재의 분부대로 뒤돌아 엉덩이를 내밀고 젖은 구멍을 자위하기 시작했다. 발정한 오메가에게서 페로몬이 뿜어져 나와 도재도 어딘가에 제 정욕을 풀고 싶었다. 그리고 그 어딘가는 시우였음 했다.

‘다 말랐는데 엉덩이만 토실한 우리 시우는 왜 집에 안 오나. 신입생이라 바쁘신가.’

눈앞에서 시원이 자위를 하든 말든 비서를 호출한 도재가 시우는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소재를 파악해 알리라는 지시를 내렸다.

슬슬 마무리하고 시우나 보러 가야겠다.

“3분 안에 싸. 앞에 손대지 말고. 못하면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서 짐 싸는 거야.”

살고 싶은 시원이 제 손가락을 쑤셔 스팟을 미친 듯이 찍어댔다. 간당간당하게 시간에 맞춰 정액이 튀어 올랐다. 몸에 힘이 풀려 바닥에 쓰러진 시원이 눈물을 멈추지 못하자 그 울음 소리를 듣기 싫은 도재가 고용인들을 불러 시원을 제 눈앞에서 치우라 일렀다.

시원은 고용인들의 부축을 받아 간신히 방으로 옮겨졌고 시원이 더럽혀 놓은 거실 바닥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양 일사천리로 정리되었다.

하지만 도재는 이 때 까지도 몰랐다. 시원이 시우의 카드로 쇼핑했다는 것을 말이다.

도재는 시원이 마치 집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고용인들을 호령하며 다닌 것과 제가 있을 때와 없을 때 사람들에게 태도를 달리하며 저를 속이고 기만한 것에 화가 난 거지, 쇼핑한 것을 보고 화가 난 건 아니었다. 도재는 쓰라고 준 돈을 썼다고 뭐라고 할 위인은 아니다.

시원에게도 생활비를 주었으니 당연히 그 돈인 줄 알았다. 시우 카드를 뺏어 썼을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

집안은 한바탕 난리가 났는데 시우는 노트북이 없어 학교 컴퓨터를 쓴다고 수업이 끝나고도 집에 오지 못하고 있었다. 개강하자마자 발표가 있어 피피티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해가 지고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 배가 고프던 차에 뉴욕에 있어야 할 도재에게서 전화가 왔다. 도서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나오라는 전화였다. 개강하자마자 과제가 폭탄처럼 떨어져도 마냥 좋은 모범 대딩 시우가 저를 대학생이 되게 만들어 준 도재의 전화에 헐레벌떡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스스로도 미쳤다 싶었지만 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저 고맙다는 인사를 못한 게 마음에 걸린 것이라 여겼다.

반갑게 뛰어오는 시우의 뒤에서 붕붕 흔들리는 꼬리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똥강아지 같네, 딱.’ 도재가 피식 웃으며 두 팔을 벌렸다. 도재의 앞까지 뛰어 와선 급정거를 한 시우가 쭈뼛거렸다.

“오랜만에 봤는데 이 정도 인사는 예의 아니야?”

시우는 그제야 도재에게 어색한 포옹을 해주었다. 얌전히 예쁜 짓을 하기에 시우의 엉덩이를 팡팡 두드려준 도재가 저녁을 먹자며 시우를 차에 태웠다.

“꼬맹이 뭐 먹을래?”

“아무거나요….”

“아무거나 뭐.”

“음…진짜 아무거나 괜찮아요.”

“진짜 아무거나 괜찮은 거 알겠는데 뭐 좋아하냐고.”

“전 다 잘 먹는데 진짜.”

눈칫밥이 이렇게 무서운 거다. 저 먹고 싶은 걸 말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아는 시우는 도재가 자꾸 묻자 기가 죽어 갈수록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말 못하겠으니까 그런 거 묻지 말아달라는 뜻이었다.

사람 여러 번 말하게 하는 피곤한 꼬맹이 때문에 너 진짜 예뻐서 봐주는 거라며 으름장을 놓은 도재가 전화를 들었다.

도재는 집으로 전화를 걸어 주방 아주머니에게 시우가 소, 닭, 돼지 중에서 무얼 가장 좋아하냐 물었다. 시우의 편인 아주머니는 시우가 평소에 잘 못 먹는 비싼 소고기나 원 없이 먹었으면 해서 소고기라고 답하는 센스를 보였다.

시우는 실제로도 소고기를 가장 좋아했다. 하필 제일 비싼 거라 염치없으니 더 말하지 못한 것도 있었다. 시우는 소고기 집에 도착해 저도 모르게 히죽 미소를 흘렸다. 그 미소를 본 도재가 피식 웃었다.

말을 안 하니 말하지 않아도 알아 맞춰줘야 했다. 귀찮게 손이 더 많이 갔다. 그래도 밉지 않은 시우가 생각하면 할수록 신기할 따름이라 도재는 자꾸 웃음이 났다.

시우는 사주는 사람이 뿌듯할 만큼 맛있게 먹었다. 도재는 시우를 조금씩 파악해가는 지라 그냥 처음부터 5인분을 시켜버렸다. 1인분 먹인 다음에 ‘더 먹을래?’ 하고 물으면 먹고 싶어도 말 못할 애였다.

잘 먹었다고 꾸벅 인사한 시우가 자신은 집으로 가지 않는다고 했다. 버스를 타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 보겠다고 말했다. 도재가 불러서 냉큼 뛰쳐나오긴 했는데, 피피티 마무리를 못해서 학교 도서관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하, 전기 없다고 반딧불이 잡아다 공부할 애네 이거.’

도재는 제가 지금 무슨 소릴 듣고 있는 건가 했다. 노트북은 당연히 샀어야 하는 거 아닌가? 도재의 서재에 컴퓨터가 있지만 시우가 그걸 썼을 리는 없을 테니 지금까지 집에 오지도 못하고 학교 컴퓨터실이나 피씨방을 전전하며 과제를 했다는 결론이 나왔다.

“노트북 안 샀어? 노트북 없이 학교를 어떻게 다녀.”

“아…안 그래도 방학하면 아르바이트 해서 사려고 했어요! 괜찮아요.”

“그럼 이번 학기는 내내 학교 컴퓨터 쓴다고? 아니 꼬라지를 보아하니 옷도 안 산 거 같은데 도대체 돈을 어디다 쓴 거야.”

“네? 무슨 돈이요?”

“…….”

시우의 해맑은 반문에 도재는 더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하던 알바도 다 그만두게 만들었는데 얜 그동안 무슨 돈으로 살았냐. 제가 준 카드를 요긴하게 긁고 다니는 줄 알았던 시우가 알고 보니 제게 일절 폐를 끼치지 않아서 열이 뻗치는 도재였다. 도재는 흉흉한 기색으로 시우에게 카드는 어쨌냐고 물었다.

쫄보 시우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기껏 맛있게 먹은 소고기가 얹히는 기분이었다. 카드를 어쨌더라…? 시원에게 준 지 하도 오래라 존재도 잊고 있었다. 어차피 쓸 생각도 없던 거였고. 시우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지만 일단 죄송하다 했다.

“카드요? 카드 형한테 돌려줬는데…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해, 죄송할 사람 집에 있는데. 타. 노트북 사러 가게.”

사과 사 매장으로 시우를 데려간 도재가 데스크톱, 랩톱, 태블릿을 다 사려고 하자 시우가 기함하며 이를 만류했다. 방에 책상도 없는데 데스크톱은 어디다가 놓으라고 사는 거지…?

“왜? 사고 싶은 거 다 사. 이런 대사 드라마에서 못 들어봤어?”

“그건 우성 알파가 열성 오메가한테 하는 대사던데….”

시우의 대답에 도재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보긴 봤구나. 그래서 오메가 아니고 베타라서 안 받겠다고.”

“아니 그건 아니고… 너무 비싸요.”

“누가 보면 슈퍼컴퓨터라도 사주는 줄 알겠네. 애기야, 네가 정 마음이 무겁다면 차에 가서 키스로 퉁 쳐줄 테니까 걱정 마. 키스 한 번이면 싸다, 그치? 아 생각하니까 꼴리네. 빨리 빨리 사, 빨리 가게.”

“안 받고 할게요….”

“뭐?”

“이런 거 안 받아도 키스 한다구요… 진짜 안 사주셔도 돼요.”

시우는 진심이었다. 선물 같은 거 안 받아도 도재가 하고 싶다면 못 할 것도 없었다. 시우가 가장 목을 매는 건 애정이다. 제 끼니를 걱정해주는 것도,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도, 학교 앞으로 데리러 와 준 것도…. 이미 도재는 시우에게 받기 황송한 애정을 많이도 쏟아준 존재였다. 그래서 시우는 도재에게 노트북을 받고 제 키스를 팔 생각이 없었다. 그냥 주었음 주었지.

책 읽는 거나 좋아하지 장사하는 법은 더럽게 모르는 꼬맹이였다. 사업은 글러 먹은 듯한 시우지만 그게 의도치 않게 시우의 가치를 높였다. 공짜로 키스를 해주겠다는 서시우는 돈보다 애정을 주길 원했다. 쉬운 것 같으면서도 도재에겐 제일 어려운 애였다.

‘쬐끄만 게 자꾸 예쁘네 구네.’

시우의 말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잠시 자리에 굳어있던 도재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계산을 강행하려 했다. 놀란 시우가 옆에 서서 안절부절 낑낑대자 도재가 시우의 허리를 감아 휙 제 쪽으로 당겼다. 가만히 있으라는 뜻이었다.

“이건 내가 사주고 싶어서 사 주는 거, 키스는 네가 해주고 싶어서 해 주는 거. 별개라고 하자. 근데 우리 꼬맹이가 나랑 키스가 하고 싶었어? 어떻게 그런 기특한 생각을 다 했을까. 섹스는 안 되고? 이왕 쓰는 거 좀 더 써.”

도재가 어린애를 상대로 능글맞은 농을 던졌다.

“그, 그건 좀.”

“그건 좀 뭐?”

“그, 그게… 꼭 하고 싶으세요?”

시우의 눈이 ‘너는 정 그 짓거리를 해야겠니.’ 라고 묻는 듯해 도재는 푸핫 웃음을 터뜨렸다. 하긴, 시우에게 첫 경험의 추억은 썩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그때 도재는 시우가 느끼고 있는지 살펴 주지도 않고 제 정욕을 풀기 바빴다. 제대로 된 애무도 없이 베타인 남자가 우성 알파 중에서도 으뜸가는 사이즈를 뒤로 받아내는 건 더럽게 아프기만 한 기억일 것이다. 처음이 그랬으니 당연히 그게 뭐 좋다고 하는 짓인지 모를 테지.

‘후, 그래 다 내 업보다 업보.’

“나는 꼭 하고 싶지, 우리 시우가 이쁘니까. 근데 네가 싫다면 안 할게.”

싫대도 개의치 않고 따먹는 한도재가 인생 살면서 내린 결정 중 가장 인간적인 결정이었을 거다. 가진 게 너무 많아 착하게까지 살면 사는 게 너무 재미없기에 못돼 처먹은 채로 살았는데, 시우가 자꾸 도재의 인간성을 개조했다. 물론 타인에겐 여전한 인간성이지만 말이다.

마음이 유약한 시우는 섹스가 꼭 하고 싶다는 잘생긴 어른이 ‘우리 시우’ 라고 불러준 게 벅차서 뭐든 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예쁘다, 예쁘다 조금만 쓰다듬어주면 꼬리를 흔들며 매달려오는 게 참 똥강아지 같았다. 충성심이 남다른 똥강아지.

“아니… 싫은 건 아닌데요….”

아프니까 선뜻 한다고도 못하겠고 행여 주인한테 미움 살까 싫다고도 못하겠는 똥강아지가 혼잣말인지 도재에게 전하는 말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작게 웅얼거렸다.

도재는 싫지는 않다는 시우에게 희망의 빛을 보았다. 싫으면 안 한다고 하기는 했는데 모든 것에 월등한 우성 알파는 성욕도 월등해 솔직히 언제까지 참을 수 있을지 제가 생각해도 미지수였기 때문이다.

“안 아프게 하면 할 거야?”

어떻게든 한 번 따먹어보겠다고, 도재는 스스로가 생각해도 찌질하고 구차한 질문을 했다. 다행히 시우는 아직까지 인생에 남자가 한도재 뿐이라 도재의 못남을 인지하지 못했다.

섹스가 안 아플 수 있다는 말에 시우는 어디서 약을 파냐는 눈초리이긴 했지만, 안 아프면 하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를 바라보는 도재의 눈빛이 이글이글 불타고 있어 도저히 승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족스러운 대답을 들은 도재는 하던 쇼핑을 이어갔다. 시우가 데스크톱은 정말 괜찮다며 올려놓을 데도 없다고 극구 사양하자 도재는 집이 그렇게 넓은데 지금 올려놓을 데가 걱정이냐며 물러나주지 않았다.

결국 처음 사려고 했던 것보다 더 많이 사게 되었다. 데스크톱, 랩톱, 태블릿에 더해 새로 나왔다는 신형 핸드폰과 블루투스 이어폰, 그 외에도 필요한 부속 악세사리들의 여유분까지 넉넉하게 구매한 도재는 말 그대로 매장을 쓸었다.

졸지에 대학생들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최신 전자기기들을 종류별로 갖게 된 시우는 그저 얼떨떨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시우가 그 무엇보다도 좋았던 건 쇼핑하는 내내 제 허리에 단단히 감겨 있던 도재의 팔이었다. 늘 불안했던 마음에 전해지는 안정감이 좋았다.

우여곡절 끝에 쇼핑을 마친 둘은 차에 올라 한참이나 키스를 나누었다. 시우는 여전히 키스를 더럽게 못했지만 전과 달리 도재는 못하는 게 만족스러웠다. 남의 손을 한 번도 타지 않았다는 반증이니 말이다.

촉- 촉- 물기 있는 입술에 마무리로 버드 키스를 해준 도재는 얼굴이 불타는 시우의 볼을 한 번 꼬집고는 차를 출발시켰다.

***

못 다한 과제를 하기 위해 방으로 올라가는 시우의 엉덩이를 보며 쩝, 입맛을 다신 도재는 모범적인 시우의 성공적인 발표 수업을 위해 오늘은 곱게 놓아주기로 했다. 대신 배 집사를 시켜 방에 처박혀 있던 시원을 불러냈다.

시우와 데이트 비슷한 걸 하다 보니 시원의 존재를 잠시 잊고 있었지만, 시우를 올려 보내기 전 시우의 지갑을 확인해 본 도재는 벌 받아야 할 사람이 있다는 것을 떠올려냈다. 만 원짜리 두 장, 천 원짜리 몇 장. 먼저 용돈 달라는 소리를 할 위인도 아닌 애가 알바도 다 그만 둔 걸 뻔히 알면서 도재의 돈으로 저만 호사를 누리고 다닌 게 생각할수록 괘씸했다. 2차 정신 교육을 준비할 예정이었다.

응접실에서 단둘이 보았으면 하는 시원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원은 또 다시 집안 고용인들이 보고 듣는 거실 한복판으로 불려 나왔다.

“앉아.”

시원은 없는 눈치를 열심히 살폈다. 또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야 하는지, 소파에 앉아도 되는지 도재의 기색을 살폈다. 카드 생각은 꿈에도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까 혼날 만큼 충분히 다 혼났다고 생각했다. 시키는 걸 해내면 봐주겠다고 했으니 이제 다 봐준 거 아닐까, 철모르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도재의 입에서는 ‘꿇어.’ 라는 말이 나왔다. 시원은 영문을 모르고 다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왜 또 꿇은 거 같아?”

“…….”

“같은 질문 두 번 하게 할래? 매를 들까? 멍청한 애들은 때려서 가르쳐야 하나.”

“어, 어… 고용인 분들께 함부로 대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잘못했습니다.”

도재에게 책잡히지 않기 위해 시원이 땀을 삐질 흘려가며 최선을 다해 또박또박 말했다.

“그건 아까 다 정산했잖아. 그거 말고.”

“어… 음….”

하지만 도재가 다그치니 이내 사고가 정지되어 버리는 시원이었다. 뚝뚝, 눈물 바람이 다시 시작되었다. 듣기 싫은 울음소리에 도재는 울 거면 당장 짐을 싸서 나가라고 했다.

“굳이 당하고 있을 필요 없어. 나가면 그만이야. 네 부모 하고 같이 이 집에 들어올 때 가지고 왔던 것만 챙겨서 바로 나가.”

시원은 다시 그 시궁창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동거를 시작했다 이렇게 쫓겨나 돌아가면 가뜩이나 형질 말고 내세울 게 없는 시원은 중고품 비슷한 취급을 당할 것이다. 도재의 말은 잔인했지만 사실이었다. 상류층으로 편입되는 방법은 우성 낳는 씨받이 말고는 없다. 사회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하는 사람들 중 중고를 정실부인 삼을 사람은 없었다. 희소가치가 가장 높은 남자 우성 오메가 최초의 실패작이 되어버릴 수는 없기에, 시원은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거두기 위해 애썼다.

“흐윽…! 흑! 죄송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도재는 시원의 잘못을 일러주었다. 알아서 생각해내라고 하면 한 세월이 가도 생각해내지 못할 멍청함이었기 때문이다.

“너 쓰라고 준 것도 아닌데 아주 시건방지게 네 맘대로다? 내가 아주 어지간히도 우스웠나 봐.”

시원은 사색이 되어 어쩔 줄을 모르다 시우를 위해 쓴 것이었다고 미약한 변명을 해보았다.

“나 없는 동안 줄기차게 긁은 게 다 시우 거야? 그래 알았어. 결제 목록 뽑아서 하나라도 네가 사용한 게 나오면 바로 짐 싸서 나가는 걸로 하자.”

거짓부렁을 치다가는 상황만 더 악화될 수 있다는 바를 깨닫고 시원은 결국 잘못을 실토했다. 처음에 시우를 위해 썼다고 한 말이 완전 거짓말이 되어버리면 안 되니 시우를 위해 쓴 것도 있고 자신을 위해 쓴 것도 있다고 비겁하게 둘러댔다. 아직 포장도 안 뜯고 종이가방째로 있는 물건들 몇 개는 서시우 거라고 하면 되겠다 생각하며 시원은 그저 싹싹 빌었다.

“그러게 아까 혼날 때 자백했으면 한 번에 혼났지. 괜히 더러운 꼴만 두 번 보이잖아. 하긴 너도 이래봐야 멍청한 머리로 배우는 바가 있겠지. 옷 벗어.”

시원은 도재의 분부대로 옷을 남김없이 전부 벗었다. 사모님이라고 으스대며 같잖은 유세를 부리던 시원이 사람들 앞에서 바지를 벗고 뒷구멍을 자위하는 모습을 보인지 불과 몇 시간 만이었다. 이번엔 홀딱 벗고 거실 한가운데에 석고대죄라도 하는 모양새로 꿇어 앉아 있으니 고용인들 눈엔 퍽 장관이었다. 안 보는 척, 안 듣는 척 했지만 오픈된 공간이기에 절로 돌아가는 눈과 뚫려 있는 귀는 어쩔 수 없었다.

아까와 달리 도재는 페로몬을 일절 풀지 않았다. 공포스러운 상황에 시원의 좆은 당연히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너도 참 더럽게 안 꼴리는 몸이다.”

나지막이 읊조린 도재가 느긋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조금 지루하기까지 하다는 표정으로 명령했다.

“앞으로 해봐.”

도재의 거실에서는 오늘 하루에만 두 번째 자위 쇼가 펼쳐졌다. 무섭고 긴장되니 잘 서지 않았다. 빨리 해야 한다는 조바심은 되던 것도 안 되게 만들었다. 제 몸이 마음대로 컨트롤 되지 않으니 시원은 소리 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며 힘이 영 안 들어가는 제 좆을 쥐고 간절한 마음으로 열심히 흔들어보았다.

“뒤를 안 쑤셔주니까 안 서? 밖에 있는 경호팀이라도 불러서 박아달라고 할까.”

타인에 의한 강간을 예고하는 도재의 말에 시원은 고개를 강하게 가로 저으며 잘못했다고 손이 발이 되게 빌었다.

“흐윽… 흑… 잘못했어요. 용서, 끄읍…! 용서해주세요.”

도재는 쯧 혀를 한 번 차고는 시원에게 전동 딜도를 던져주었다. 뒤로 꽂은 딜도가 진동하며 전립선을 자극하니 죽어라 안 되던 발기가 되었다. 좆을 흔드는 시원을 앞에 두고 도재는 아무렇지도 않게 메이드 아주머니를 불러 시우의 방으로 간식을 좀 올려주라 일렀다.

시우가 다람쥐같이 간식을 먹는 모습을 그려보니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눈앞에서 사람 하나를 짓밟고 있는데 흐뭇하게 웃으니 더 사악해 보였다.

딜도의 도움을 받은 시원이 사정하고 마침내 이 지옥 같은 징벌의 시간이 끝났구나 안심할 때였다. 악마 같은 도재가 가중처벌을 논했다. 아까는 한 번 하고 봐주었지만 두 번째 잘못에도 똑같은 처벌을 내리면 제대로 된 정신 교육이 안 된다는 판단이었다.

“한 번 하고 놓아준다고 한 적 없는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안 하고 싶으면 안 해도 돼.”

도재는 안 해도 된다고 선택의 자유를 주었지만 시궁창으로 돌아가는 건 죽기보다도 싫은 시원이 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였다. 결국 시원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다시 딜도를 집어 들었다.

1층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꿈에도 모르고 시우는 제 방에서 도재가 사준 새 노트북으로 과제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안 그래도 출출하던 찰나에 아주머니가 방까지 간식을 가져다 주셨다. 시우는 연신 감사하다 인사드리고는 트레이를 받아 들었다.

‘이제 곧 끝나니까 다 해놓고 먹어야겠다.’

시우는 눈앞에 침이 절로 넘어가는 간식을 놓아두고 하던 과제를 마무리하였다. 과제를 마치고 생딸기를 으깨어 만든 딸기 우유를 한 모금 마시니 엄청나게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크래커 위에 치즈와 체리토마토, 캐비어가 올라간 카나페는 아기자기했고 만든 이의 정성이 보였다. 저한테 이런 걸 주다니, 정성에 약한 시우는 황송하기까지 했다.

간식을 먹고 있자니 옛날 생각이 났다. 화영은 시우가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든 말든 내다보지도 않았지만, 시우는 꼭꼭 엄마에게 가 학교 다녀왔다는 인사를 하고 혼자 방으로 들어가곤 했다. 뒤이어 학교를 마친 시원이 들어오면 화영은 ‘아들, 수고했어.’ 하며 시원이 좋아하는 쿠키나 도넛 같은 간식을 내주었다.

간식은 고사하고 잘 다녀왔냐 말 한마디 해주는 게 그렇게 어려웠을까. 혹시나 해서 매일을 화영에게 가 학교 다녀왔다고 예쁘게 인사했던 어린 시우에게 엄마의 수고했다는 말은 끝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게 그렇게 서러웠다. 도대체 몇 살까지 나이가 들면 ‘그랬을 수도 있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을까? 시우는 아직도 사랑 받아보려 발버둥 쳤던 어린 날의 제 모습만 떠올리면 너무 아팠다. 그리고 그 발버둥이 지금까지도 이어져온다는 게 너무 슬펐다.

애정 결핍은 딸기 우유를 먹다 말고도 청승을 떨어야 하는 정말 거지 같은 병이란 생각을 하며 시우는 다시 씩씩하게 간식을 집어 먹었다. ‘슬프다’ 아닌 ‘맛있다’로 기분을 전환 해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똑똑,

책상이 없어 바닥에 앉아있던 시우가 노크 소리에 마시던 딸기 우유를 내려놓고 읏차! 일어나 문을 열었다.

문 앞에 서있는 사람이 도재여서 화들짝 놀랐다.

“왜 그렇게 놀라? 뭐 훔쳐 먹었어?”

“네? 아, 아주머니가 먹어도 된다고 갖다 주셨는데.”

누가 들어도 농담인 도재의 말에 ‘저 이거 훔쳐 먹은 건가요?’ 라고 묻는 듯한 짠한 눈동자가 돌아왔다. 밥이나 얻어먹어도 감사한 객식구가 간식까지 챙겨 먹은 게 급 눈치가 보여 시우는 풀이 죽었다. 도재가 저 먹이라고 직접 올린 간식인데 말이다.

도재는 귀를 늘어뜨린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언제 만져도 참 기분 좋은 머릿결이었다.

“눈치는 네가 보는데 왜 내 기분이 좆같냐. 꼬맹이 간식 먹었어?”

“네….”

“잘했어, 잘했어.”

도재가 시우의 엉덩이를 토닥토닥 해주었다. 간식 먹은 걸로 잘했다는 칭찬을 듣다니, 도재는 시우의 약한 심장을 자꾸 주물러댔다. 이 행복에 길들여졌다가 버려지면 어떻게 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해 소름이 돋는 시우였다.

1층에선 시원의 자위쇼가 아직 진행 중이었다. 도재는 비서와 경호팀장을 불러 소파에 앉혀놓고 제대로 하는지 감시하라고 지시한 뒤 시우에게 올라와 본 참이다. 청정지역 같은 시우가 다 먹은 간식 접시를 들고 1층으로 내려오다 혹 못 볼꼴이라도 볼까 하여 도재가 먼저 올라온 것이다.

그러고 보니 시우의 방은 처음 들어와 보았다. 생각보다 많이 휑했다. 작은 협탁 정도나 있지 이렇게 손님이 찾아오면 내어줄 만한 자리가 침대 밖에 없었다. 뭐 도재 그로서는 나쁠 거 없지만, 애가 바닥에 앉아 간식을 먹은 것으로 보이는 흔적에 도재가 혀를 찼다.

“이 방 공사 들어가야 하니까 내일부턴 내 방에서 생활해. 공부는 서재에서 하고.”

“네. 네?”

시우는 무조건 네네 하는 버릇이 있어 의미를 파악하기도 전에 대꾸 먼저 했다 놀라 반문했다. 도재의 공간은 들어가면 경을 칠 것만 같은 불가침 영역이었으니 놀랄 만도 했다. 도재도 제가 지금 무슨 소릴 한 건가 놀라울 따름이었지만 번복하지는 않았다. 누군가와 살을 부대껴 가며 한 방에서 생활한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가늠도 안 가는 도재였지만, 눈을 뜨고 보이는 게 시우의 얼굴이라면 불편함 따위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뭘 그렇게 놀라. 내일 사람들 시켜서 정리 다 해놓을 거니까 꼬맹이 너는 학교나 잘 다녀와. 과제는 다했어?”

“네. 다했어요.”

“어이구, 수고했네.”

도재는 아직도 숙제 같은 걸 해야 하는 꼬맹이임을 놀리는 듯한 말투로 수고했다며 엉덩이를 툭툭 쳐주었다.

시우는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에 왈칵 눈물이 차올랐다. 이렇게 주책맞은 애는 저 같아도 싫겠다는 생각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위로 굴리며 눈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안간힘을 다했다.

그 청승을 보고 있던 도재는 말없이 시우를 품에 가두고 안아주었다.

“애기네 애기. 과제한 게 그렇게 서러웠어? 울지 마 아가, 울면 꼴려.”

귓가에 닿는 말이 썩 로맨틱하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시우는 위로 받았으니 되었다.

1층은 혹독한 정신 교육이 아직 끝나지 않았을 수 있어 도재는 내려갈 생각이 없었다. 제 침대인 양 시우의 침대에 자연스레 올라가 앉았다. 시우와 첫 섹스 이후로 풀지 않았으니 거의 한 달간 하지 않았다. 매일 떡을 쳐도 지치지 않는 정력을 가지고, 이렇게 오래 하지 않은 것은 처음이었다.

심지어 뉴욕에 갔을 때 러트가 왔는데 대충 약을 먹고 넘긴 상태였다. 약으로 넘겨본 건 처음이었다. 우성은 러트도 더 세게 오기 때문에 러트가 온 우성 알파를 관계에 능숙하지 않은 이가 받으면 다칠 수도 있었다. 러트 때마다 부르던 오메가가 있었는데, 도재가 찾지 않은 사이 H호텔 사장의 첩으로 들어갔다 하여, 다른 오메가라도 부르겠냐는 비서의 말에 됐다 전한 도재였다.

발정기 때의 천연 치료제는 섹스이다. 발정이 해소될 만큼 구멍에 좆을 처박고 마음껏 흔들어야 개운하게 치료되는 것이다. 몸살처럼 오르는 열을 억제제로 누르면 대충 버티고 넘어갈 수 있긴 하지만 마땅히 해소시켜야 하는 걸 해소하지 못하게 억지로 막는 것이니 당연히 몸이 개운하지 못하고 그만큼 정욕이 더 쌓일 수밖에 없었다.

도재는 시우의 체향이 밴 침대만으로도 아래가 동했다. 나른하게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어 앉은 도재가 제 옆자리를 팡팡 치니 똥강아지가 쫄래쫄래 올라와 앉았다. 뻣뻣하게 앉아있는 시우의 양 옆구리를 받치고 휙 들어 올린 도재가 제 위로 시우를 올렸다. 시우의 양 다리를 제 허리 뒤로 감게 한 뒤 두 팔은 제 목 뒤로 넘겨 안정적인 자세를 잡아주었다.

도재가 얼굴이 참 맛있는 시우를 다 씹어 먹을 듯 열렬히 바라보았다.

“시우야.”

제 이름을 불러주는 도재의 낮은 목소리에 시우는 부끄러워 눈을 내리 깔았다. 그렇게 새색시 같은 표정을 지으면 더 위험한 데 말이다.

“내일 수업 몇 시야?”

“아홉 시요.”

“더럽게 일찍이네. 누가 대학 수업에 1교시를 넣어?”

“죄송해요….”

“그래 이건 좀 죄송할 일이다. 따먹지 말라고 일부러 1교시 넣었지, 너.”

“아니…! 아니에요….”

손사래를 치며 극구 부인하는 게 귀여워 도재가 피식 웃었다. 지금 박기 시작하면 새벽 내내 놓아줄 자신이 없었다. 도재는 대학생씩이나 된 꼬맹이의 1교시에 울화가 치밀었지만, 제 울화에 똥강아지가 눈치를 보기 시작하기에 그 모습이 가엾어 그만 말을 멈추었다.

도재는 한 손으로 시우의 뒷목을 단단히 받친 뒤 입술을 내렸다.

“시우야, 입 벌려.”

다가오는 도재의 얼굴에 시우는 목마름에 허덕이는 어린양처럼 입을 벌려 도재의 혀를 기다렸다.

도재의 혀가 시우의 입 안 곳곳을 휘저었다. 빠져나가지 못하게 얽은 혀를 굴리고 딸기우유 맛이 나는 시우의 입 안을 꼼꼼히 맛보며 입술이 부들부들 풀어질 때까지 키스를 멈추지 않았다. 혀는 녹아내릴 듯 힘이 풀려 가는데 반대로 아래에는 힘이 들어갔다.

도재의 위에 올라와 앉아있는 시우의 엉덩이엔 도재의 딱딱해진 성기가 닿았다. 옷감 위로 뚫고 나올듯한 기세가 시우의 엉덩이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시우도 상황은 비슷했다. 스물한 살의 혈기왕성한 나이에 지금껏 성적 자극이라곤 전무했던 몸은 도재의 정성스런 키스를 감당할 재간이 없었다. 아까 차에서도 키스만으로 아래에 자꾸 힘이 들어가 안절부절 했는데 이렇게 침대 위에서 한 몸이라도 된 듯 맞물려 있으니 발기를 피할 길이 없었다. 시우는 키스를 너무 잘하는 도재가 야속했고 속절없이 서버리는 아래가 창피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품 안에서 낑낑거리는 똥강아지가 엉덩이를 바르작대는 꼴은 도재의 아래를 더욱 자극하는 꼴이 되었다. 한참이나 물고 빨던 입술을 놓아준 도재가 시우가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겼다.

“시우야, 만세 해봐.”

그저 제 이름만 불러줘도 좋다고 꼬리를 흔드는 시우는 쭈뼛거리면서도 시키는 대로 얌전히 팔을 들어올렸다. 훌러덩 벗겨진 티셔츠는 사정없이 바닥으로 던져졌다. ‘더워 보이길래.’ 하는 주인의 개수작을 믿어주는 충성심 짙은 시우였다.

촉-, 촉-, 촉-.

입술에, 턱 끝에, 목덜미에 차례로 입맞춤이 내렸다. 도재는 맨살로 시우를 느끼고 싶어 제 상의도 벗어버렸다.

첫 경험 때는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 몸이 시우의 눈앞에 드러났다. 조각조각 근육이 붙은 몸에 일자로 끝없이 이어지는 떡 벌어진 어깨, 저도 모르게 ‘와’ 하는 탄성이 샜다.

솔직한 반응에 피식한 도재가 그렇게 좋으면 만져보라고 놀리자 시우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래? 난 만질래.’ 안 만지면 너만 손해라는 투로 도재는 시우의 몸을 마음껏 지분대기 시작했다. 말랐지만 곧고 예쁜 뼈대를 가지고 있는 시우였다. 오메가였다면 분명 무용을 시켰을 것이다. 도재는 시우의 척추를 살살 쓸어내리며 시우의 몸을 감상했다.

도재가 시우의 목덜미에 코를 박고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서시우 향기가 났다. 물어뜯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베타인데 어찌나 물어뜯고 싶은지 수없이 많은 오메가와 섹스를 하면서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각인 생각이 뜬금없이 베타 남자아이에게 들 줄은 몰랐다. 제가 생각해도 웃겼지만 진심이었다.

각인으로 묶어둘 수는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해두고 싶었다. 도재는 시우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제가 놓아주기 전까지 도망은 없는 거라고 낮게 읊조렸다. 시우는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도재가 버리지만 않는다면 먼저 집을 나갈 생각 따위는 하지 않을 아이라 알아들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베타의 목덜미는 물어뜯어 봤자 시우에게 상처만 남기게 될 것이기에 도재는 아쉬운 대로 목덜미를 쭙쭙 빨아 키스마크나 하나 남겨놓았다.

“하응…!”

시우에게서 신음이 터졌다. 키스마크 하나에도 여간 잘 느끼는 몸이 아니었다. 이렇게 잘 느끼는 애인데 섹스를 두려운 것으로 인식하게 만들었으니 도재는 제 난폭한 성질머리에 당했던 시우에게 퍽 미안함을 느꼈다. 미안한 마음을 담아 더욱 농염하고 진득하게 애무해주었다.

첫 경험의 기억일랑 한참 전에 날아간 시우는 제 유두를 혀로 둥글리다 쪽쪽 빨아대는 도재에 자지러질 뿐이었다.

“하아… 아아… 앗…!”

도재가 질척하게 침을 묻힌 유두에서 입을 떼고 손가락을 튕겨 만져줄 때는 참지 못하고 허리를 움직여 발딱 선 제 성기를 도재의 아랫배에 비볐다.

더럽게 뻣뻣하고 더럽게 못한다고 구박을 듣던 시우는 사랑을 주니 한없이 말랑말랑해졌다.

도재는 끓어오르는 정욕에 페로몬을 풀었다. 시우가 움찔 도재의 품에서 잘게 몸을 떨었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텐데, 도재는 짧은 순간에 이상함을 느꼈지만 당장은 눈앞에서 흐물흐물 허리를 돌리는 시우가 먼저였다.

바지를 벗기려 하니 시우가 스스로 엉덩이를 살짝 들어 도재를 도왔다. 착한 짓을 한 엉덩이를 툭툭 쳐주자 맨살인 엉덩이에 직접 닿는 도재의 뜨거운 손바닥을 느끼며 시우는 하앙…! 신음했다.

알고 보니 요부였네, 아직 키스도 잘 못 따라오는 애가 성감은 또 남다르게 예민했다. 예뻐 죽을 것 같았다.

도재가 발딱 서있는 시우의 성기를 큰손으로 그러쥐었다. 끝에서 퐁퐁 프리컴이 새어 나오기에 귀두 끝을 엄지로 꾹 눌렀다 빙빙 돌려주었다. 별것도 안했는데 앙앙 울어대는 모습이 도재에게 어마어마한 꼴림을 가져왔다. 베타 기준 평범한 사이즈, 도재 대비 미니 사이즈인 시우의 페니스는 그렇게 사정없이 도재의 손에 의해 놀려졌고 시우는 그럴수록 도재에게 더 꽉 매달려왔다. 도재는 그 의존의 표현이 아주 만족스러웠다.

제 앞에서 서시우가 눈이 풀린 채로 좋아 죽는 모습을 보는 건 도재에게 큰 재미를 선사했다. 제 정욕을 푸는 게 섹스의 재미라 여겨왔는데 새로운 재미를 찾은 것 같았다.

“우리 꼬맹이는 이거 나올 필요 없는데.”

도재가 시우의 프리컴을 가리키며 말했다. 원활한 성교를 위한 천연 윤활제는 시우의 페니스에선 나올 필요가 없었다. 한도재 손아귀에서 길러지는 한 어디에든 넣어 보진 못할 물건이니 말이다.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도재의 어깨에 얼굴을 박고 신음만 흘리던 시우가 도대체 무얼 말하는 건가 하여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도재는 엄지와 검지 사이에 시우의 프리컴을 묻혀 그 끈적함을 놀리듯 눈앞에 보여주었다. 히익! 창피해서 얼른 다시 얼굴을 묻어버리는 시우가 귀여워 도재에게서 기분 좋은 웃음이 터졌다.

“시우야.”

“흐응… 네에.”

“이쁜아, 얼굴 보여줘 봐.”

하얬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시우가 간신히 고개를 들자 도재가 입술을 쭉 내밀었다.

“뽀뽀.”

말은 또 잘 듣는 시우가 도재의 뽀뽀 요구에 입술을 붙여오자마자 도재는 한쪽 팔로 시우의 허리를 단단히 고정한 뒤 시우의 페니스를 빠르게 흔들어 주기 시작했다. 붙인 입술 또한 물고 놓아주지 않아 시우의 신음은 안으로 먹혀 들어갔다.

“으읍…! 웁! 웁!”

도재가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가버린 시우의 입술을 놓아주자 시우는 쌔액쌔액 밭은 숨을 몰아쉬며 도재의 품에 기대 사정의 여운을 느꼈다. 저는 이미 가버렸는데 여전히 흉포하게 서 있는 도재의 페니스가 엉덩이로 생생히 느껴졌다.

심장박동이 진정된 시우가 도재의 바지 속으로 손을 넣었다. 만지면 화를 낼까? 좋아할까? 이 순간까지 눈치를 보았지만 ‘저도 남자인데 저는 좋았으니 아마 좋아할 것이다, 성욕이 워낙 왕성하시니 혼내진 않을 것이다’ 하는 판단을 내린 시우가 나름 용기를 낸 결과였다.

‘하아…’ 예상치 못한 시우의 행동에 도재의 입에서 낮은 탄성이 터졌다.

은혜 갚는 까치도 아니고 저도 해주겠다고 이러는 게 기특하기도 하고, 근데 이렇게 꼬물꼬물 수준인 건 누굴 놀리는 건가 싶기도 하고, 꼴리긴 하는데 웃기기도 웃겨서 도재는 웃음이 터졌다. 재롱 많은 꼬맹이 덕분에 웃음이 잦아졌다.

저는 좋다고 앙앙 울어대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빵 터진 도재의 모습은 기대한 반응이 아니라 시우는 속이 상했다. 혼나진 않았지만 정말 하나도 안 섹시했나 보다.

‘베타는 맛이 없는데 이거라도 잘하면 좋을 걸. 나는 이것도 또 더럽게 못하나 보네.’

“미안 미안. 웃어서 삐졌어?”

“아니요.”

“에이, 삐졌네 뭐.”

도재가 살짝 부풀어있는 시우의 볼따구니를 톡톡 건드리며 자꾸 삐졌냐고 묻자 시우는 솔직한 심경을 토로했다. 삐진 게 아니고 못해서 속상한 거라고 말이다. 애는 진심으로 속상해 하는데 그 고백이 너무 깜찍해 더 큰 웃음이 터진 도재였다.

“저기… 그럼 입으로 해볼까요?”

시원한 입매를 올려 호탕하게 웃던 도재의 웃음이 급히 멎었다.

‘여간 골 때리는 꼬맹이가 아닌 걸 잠시 잊고 있었네, 내가.’

눈이 돌아 제 바지를 다 벗어 던져버리는 도재를 보며 해도 된다는 사인으로 여긴 시우가 몸을 내려 자리를 잡았다.

시우는 입으로도 더럽게 못했다. 하지만 다행히 예쁜 얼굴로 몹쓸 펠라 실력을 버무릴 수 있었다. 형편없는 펠라였지만 눈치를 보느라고 도재의 좆을 입에 물고 자꾸만 도재를 올려다보는 바람에 도재의 입에선 탄성이 터졌다. ‘하, 씹’, 썩 곱지 않은 소리였는데 시우에겐 마치 칭찬 같았다.

도재는 시우의 혀가 제 귀두를 깔짝일 때마다 그대로 머리채를 잡고 눈물 콧물 범벅이 되도록 시우의 목구멍 끝까지 제 좆을 쑤셔 박고 싶었다. 그 욕망을 억누르기 위해 이를 까득 물어야 했다. 잘못했다간 시우가 섹스에 학을 뗄지도 모를 노릇이니 말이다.

대신 도재는 시우의 머리통을 살살 쓰다듬어 주며 찬찬히 일러주었다. 이만 안 세우면 안 아프니까 깊숙이 세게 빨아봐, 잘하네, 예쁘다, 입에 넣고 혀 돌려줘 시우야, 하… 시발 존나 좋다.

시우는 똑똑한 아이였다. 공부 머리도 있고, 일머리도 있고, 그간 배움이 없었을 뿐 가르쳐보니 섹스 머리도 있었다. 도재의 칭찬은 날개가 되어 시우를 날아다니게 했다. 너무 큰 사이즈라 버거웠지만 도재가 좋아하니 저도 신이 나 최대한으로 삼켰다 뺐다를 반복했다. 입으로 도재의 성기를 조이며 쭉쭉 빨아주었다.

처음엔 이래 가지고 싸겠나 수준이었는데 맛있는 거라도 먹듯이 허겁지겁 잘도 빠는 시우때문에 점점 사정감이 찾아왔다. 도재는 애가 아프지 않을 만큼만 살짝 허리를 튕겼다.

“하아… 씹…! 시우야, 시우야.”

시우는 제 이름을 불러주는 도재에 무슨 응원이라도 받은 것처럼 힘을 내어 더 빠르게 머리를 움직였다.

윽…! 꽤나 많이 나오는 양에도 시우는 도재의 성기에 박고 있는 머리를 치우지 않았다.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손으로 좆기둥을 살살 쓸며 귀두를 쭙쭙 빨아 도재의 정액을 끝까지 뽑아냈다.

그런 시우를 내려다보며 만감이 교차하는 도재였다. 시발, 어지간히 예뻐야지.

***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도 안 거르고 꼭 조깅을 다녀오는 도재가 먼저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건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시우였다. 세 살 때도 인형을 안고 자본 적이 없는 도재는 간밤에 시우를 부둥켜안고 잤다. 보들보들한 맨살이 엉켜있는 기분이 꽤나 좋았다.

어리긴 하지만 진짜 애기도 아니고 엄연히 성인인데 남자애 살결이 어찌 이리 부드러운지 몰랐다. 손에 착 감기는 엉덩이는 그 살성이 정말이지 너무 좋아서 때리고 싶을 정도였다. 아침부터 자는 애를 상대로 가지가지 한다는 생각에 도재는 운동복을 챙겨 입고 방을 나섰다.

어젯밤 도재의 좆을 빨며 시우는 저도 모르는 새 제 좆을 다시 세웠다. 보통 남에게 펠라를 해주면 자기 좆은 죽어버리는 사람들이 태반인데 깜찍하게도 꼿꼿이 서있는 시우의 페니스를 보고 도재는 눈이 돌아 달려들었다. 어지간히 예쁘지 못하고 심하게 예뻤던 시우는 결국 도재에게 두 번은 더 시달려야 했다.

1교시부터 발표가 있는 애를 배려한답시고 삽입 없이 페팅만 했는데도 열심히 살아 늘 고단한 시우는 총 세 번의 사정 후 온몸의 기운이 다 빠져버린 듯한 느낌에 기절하듯 도재의 품에서 잠이 들었다.

큰 배스타월로 대충 시우의 몸을 감싼 도재는 시우를 안아 들고 1층으로 내려왔다.

제 방으로 데려와 누구의 정액인지 모를 것들로 범벅인 몸을 씻긴다고 따끈한 물을 받아 욕조에 시우를 담가 놓았는데, 그 때문에 가뜩이나 힘이 없는 몸이 더 나른해져 시우는 욕조 안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여간 좋은 구경이 아니었다.

그러다 물에 머리를 박고 때 아닌 잠수라도 할 것 같은 시우를 도재가 등 뒤에서 단단히 붙들어 주었다. 제 다리 사이에 시우를 가둔 도재가 시우의 머리를 뒤로 젖혀 저에게 안정적으로 기댈 수 있게 만들어주자 시우는 고롱고롱 콧소리까지 내며 욕조 안에서 꿀 같은 단잠에 빠져들었다.

어이고 이젠 씻다가 자네, 애기네 애기.

도재가 운동을 다녀와 씻고 머리를 털며 나오니 시우가 비척비척 잠에서 깨어났다. 먹이라도 저장해 놓은 것처럼 띵띵 부어있는 얼굴이 예쁜 못난이 같았다.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지 하는 표정으로 한참이나 허공을 바라보던 시우는 정신이 퍼뜩 들어 시계를 찾았다.

도재가 다가와 퉁퉁 부은 시우의 눈두덩에 쪽 뽀뽀를 해주며 말했다.

“안 늦었어, 걱정 마. 데려다 줄 거니까 얼른 씻어. 씻겨줘?”

“아, 아, 아니요.”

허리춤에 수건 한 장을 두른 도재를 보니 어젯밤의 선정적인 행위들이 생각나 아침부터 얼굴이 빨개진 시우가 욕실로 튀어 들어갔다.

아니 아침부터 떡 치자고 불러내기도 하던 애가 도대체 뭘 했다고 부끄러워하는 거야. 애 허리 망가질까 봐 삽입까지는 참은 도재로서는 이해가 불가했지만 부끄러워하는 것도 귀여우니 재롱을 피워주는 것쯤으로 여겼다. 참 보는 재미가 있는 꼬맹이였다.

시우는 제가 내질렀던 교성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애꿎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샤워했다. 씻고 나가 도재를 다시 마주할 생각을 하니 얼굴이 화끈거려 물의 온도를 낮췄다. 도재가 음탕하다고 놀려도 이젠 ‘네, 제가 음탕합니다.’ 해야 하는 신세가 되어버린 자신이라 샤워하다 말고 흐엉, 히잉 온갖 이상한 소리를 냈다.

샤워부스에서 나온 시우가 커다란 배스타월을 펼쳐 들고 기다리던 도재를 보고 식겁하여 발이 미끄러질 뻔하였다. 더럽게 넓어서 누가 들어오는지도 모르는 욕실이었다. 왜 욕실에 TV가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TV도 켜져 있었다.

넘어질 뻔한 시우를 재빨리 잡아낸 도재가 갓 샤워를 마친 애 몸이 너무 찬 것 같아 얼굴을 굳혔다. 너 설마 가스비 아끼냐…? 마음속으로 떠오른 질문을 차마 물어보고 싶진 않았다. 진짜일까 봐 약간 두려웠다. 가스비 따위에 개념조차 없는 도재가, 서시우가 뜨거운 물로 샤워 한 번 하는데 3백만 원이라 해도 하등 상관없는 도재가, 묻기에는 너무 원초적인 질문이었다.

“너 몸이 왜 이렇게 차?”

“아, 아니 더워가지고….”

“아침부터 무슨 생각을 하면 더워.”

“…….”

이럴 줄 알았다. 놀릴 줄 알았다고. 놀리지 말라고 야무진 항변 한 번 못하는 쭈그리 시우는 음흉하게 웃는 도재를 앞에 두고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도재가 시우의 노코멘트를 봐주었다. 빨리 안 나가면 지각이었기 때문이다.

탁탁 제 몸의 물기를 닦아주는 도재의 손길이 너무 다정해 시우는 몸 둘 바를 몰랐다. ‘아니 제가 해도 되는데….’ 시우의 정중한 사양은 묵살되었고 도재는 하던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엉덩이와 성기 쪽을 유달리 꼼꼼히 닦아준다는 함정이 있었지만 이런 애정 담긴 행위를 해주면 간이고 쓸개고 다 갖다 바칠 수도 있는 시우는 다시 한 번 도재에게 충성을 다짐했다.

쪼끄만 게 집도 더럽게 못 지키게 생겨서는 ‘집 잘 지킬게요. 버리지 마세요.’ 하는 듯한 눈빛으로 도재를 바라보았다.

도재가 주방 아주머니께 미리 일러 만들어 놓은 샌드위치와 생과일주스가 상에 차려져 있었다. 시우는 도재와 한 식탁에서 밥을 먹었다간 형의 갈굼을 감당할 수 없을 거란 걱정이 앞섰다. 이걸 말할 수도 없어 안절부절 하며 식탁으로 갔는데, 시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조금은 안심하고 자리에 앉았다.

도재의 등장에 깍듯이 인사하던 주방 아주머니들이 다들 시우를 반겼다. 시우 왔니, 시우 많이 먹어. 고용인들이 밥을 먹을 때 같이 섞여 먹었으니 친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도재는 고용인들이 시우에게 말을 높이지 않는 것에 살짝 심기가 불편했지만 그래도 친해 보여서 한 소리 하려던 걸 관두었다. 해도 꼬맹이 없을 때 해야지 있을 때 했다간 저 때문에 사람들이 혼났다고 눈치를 볼 게 뻔하다.

“서시우 친구 많네.”

도재의 말에 시우가 머리를 긁적이며 헤헤 웃고 말았다.

시우는 맛있다, 감사하다 연신 인사를 하느라 바빴다. 아주머니들은 시우가 좀 더 달라고 요청하지 않아도 다 마신 주스를 더 따라 주었다. 괜찮다고 손사래 쳐도 좋아하는 게 얼굴에 티가 났다. 시원이 한두 개 집어 먹고 그 존재를 잊어버린 고급 초콜릿을 시우 준다고 따로 빼 두었다 학교 가서 먹으라며 손에 쥐어 주는 아주머니들이었다. 시우는 아주머니들이 엄마 같이 챙겨줄 때마다 마음이 찡해져 나중에 성공하면 꼭 은혜를 갚아야지 생각했다.

살랑살랑 꼬리를 흔드는 똥강아지 덕분에 집에서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아무 말 없이 입을 다물고 제 할 일만 하던 사람들이 미소 짓고 있는 걸 보며 도재는 생각했다.

‘안주인으로 들어앉히면 딱이겠네.’

아주머니들은 도재에게 미주알고주알 집안 살림에 관한 이야기를 떠들지 못하기에 시원이 먹다 내팽개쳐 놓은 것만 시우에게 줄 수 있다는 소리는 못했지만, 어제 시원이 당한 일과 오늘 도재가 시우를 바라보는 눈빛을 보아하니 아마 조만간 이 사실을 알고 사달이 한 번 더 나겠구나 짐작했다. 좋은 구경 또 하겠다, 아주머니들은 어제부터 일하는 게 즐거웠다.

“잘 먹었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여기저기 인사하고 나가느라 바쁜 시우를 보며 도재는 꼬맹이 저러다 출마하겠다 하는 실없는 생각을 했다. 피식, 하고 기분 좋은 미소가 입에 걸렸다.

둘은 차 뒷좌석에 나란히 올랐다. 도재가 시우에게 지갑을 줘 보라 이르곤 제 지갑을 꺼냈다. 수표 몇 장을 시우의 지갑에 넣어주려 하자 시우는 화들짝 놀라 만류했다. 받기는 무조건 받아야 한다는 걸 이제는 아는 시우가 ‘주지 마세요.’ 가 아닌 ‘제발 조금만 주세요.’ 로 바꾸어 도재를 만류했다.

‘제발’ 까지 붙여가며 조금만 달라고 할 일인가? 도재는 딴에 몇 장 뺀다고 뺐는데 자꾸 많다는 꼬맹이가 정말이지 더럽게 어려웠다.

솔직히 시우는 그렇게 큰돈을 들고 다니는 것 자체도 부담이라 진심으로 싫었다. 제 돈도 아니고 남의 돈을 잃어버린다고 생각하면 아찔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조금만의 기준이 얼마인지 모르겠는 도재가 앞좌석에 탄 김 비서에게 대학생 하루 용돈으로 적정 금액이 얼마인지 물었다. 어차피 얘는 한 번에 많이 줘도 쓰지 않고 모셔만 놓을 것 같아 하루 한 번 매일 용돈을 주고 그만큼은 무조건 다 쓰고 돌아오게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오만 원 정도 드리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김 비서의 대답이 돌아왔다.

도재에게는 오만 원 권 지폐는커녕 십만 원짜리 수표도 없었다. 도재가 오만 원짜리를 좀 많이 뽑아둬야겠단 생각을 하며 김 비서에게 오만 원짜리 한 장을 받아 시우의 지갑에 넣어주었다.

“지갑 확인할 거니까 다 쓰고 와. 아끼면 혼나.”

“하루에 삼만 원도 다 못쓰는데….”

미약한 반항을 해보려 했지만 도재의 ‘쓰읍’ 한마디에 시우는 깨갱했다.

“오늘 금요일이니까 내일 늦잠 자도 되겠네.”

“네… 일찍 일어날까요?”

“아니. 못 일어날 걸.”

음험한 미소가 도재의 입에 걸렸다.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의미이든 간에 따를 예정이기에 크게 중요치 않은 시우는 딱히 반문하지 않았다. 도재가 제 볼을 톡톡 치기에 그저 얌전히 뽀뽀를 해주고 내릴 뿐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학교 가는 거 참 더럽게 좋아하는 애가 앞에 타 있는 박 기사와 김 비서의 입가에도 미소가 걸릴 만큼 예쁜 인사를 하고 신나게 강의실로 뛰어갔다. 좋단다, 아주.

***

시원은 오메가들만 다니는 명문 사립 재단의 중고등학교를 나왔다. 학비가 못해도 대학교만큼은 드는 곳이었다. 그리 잘 살지 못해도 자식이 오메가라면 무리를 해서라도 보내고 싶어 하는 그런 학교였고 교훈은 ‘정숙’이었다.

소위 말해 시댁에 잘 보이기 위한 학교였다. 화영도 같은 학교를 나왔고 잘 사는 집이라면 시어머니 또한 동문일 가능성이 높았다.

오메가들만 다니니 기를 눌러줄 알파도 없겠다, 시원의 학창시절엔 그저 우성인 게 갑이었다. 시원 역시 꼴에 우성이라고 시녀, 시남들을 거느리며 다녔으니 콧대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대학에 들어가 집안이 망하고서도 살던 버릇이 그대로 남아 콧대는 꺾일 줄 몰랐다. 집 안에 빨간 딱지가 아무리 붙어도 사람은 차압을 못하니까, 남자 우성 오메가가 최고의 재산이라는 양 구는 부모 밑에서 자란 시원은 부모와 동일한 사상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시원이 어제 그 꼴을 당했으니, 방에 처박혀 밤새 울다 점심때가 다 돼서야 눈을 떴다. 이 와중에도 배는 고팠는데 선뜻 밖으로 나오질 못했다. 사실 어제는, 도재가 2층으로 올라간 뒤가 더 가관이었기 때문이다.

김 비서와 경호팀장을 대신 소파에 앉힌 도재는 똑바로 안하면 매를 들라는 말을 전하고 시우에게 가기 위해 자리를 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 말은 김 비서에게만 넌지시 이른 말이라 시원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도재의 말에 절대복종하며 손이 발이 되게 빌던 시원은 도재가 사라지자 우습게도 김 비서에게 타협을 시도했다.

‘그냥 했다고 해주세요.’

제가 지금은 이런 취급을 당해도 도재의 아이만 가지면 실세로 올라서는 건 순식간이라며 하라는 자위는 안하고 가타부타 말이 많았다. 어쨌든 요지는, 도재에겐 시키는 대로 했다고 하고 봐달라는 소리였다.

전처럼 싸가지 없게 말하진 못했지만 은근슬쩍 꿇고 있던 무릎을 풀었다. 알량한 자존심이 베타와 열성 알파 앞에 무릎을 꿇는 걸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서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시원의 말을 듣고 있다 배 집사를 불렀다. 저를 그냥 보내주고 배 집사에게 입단속을 시키려나 보다 기대한 시원은 ‘케인 하나 갖다 주세요.’ 라는 김 비서의 말을 들을 때까지도 케인이 무언지 몰라 정신을 못 차렸었다.

케인은 도재가 가끔 SM플레이를 즐길 때 사용하는 회초리를 의미했고 지하실에서 이를 꺼내 온 배 집사는 얇고 긴 케인 하나를 김 비서에게 건넸다.

시원이 어버버 하며 상황을 파악할 새도 없이 회초리는 시원의 엉덩이에 짜악! 하고 뜨겁게 내려앉았다.

최상류층 알파에게 팔아야 하는 몸이기에 어릴 적부터 귀하게만 다뤄진 몸이었다. 처음 당하는 매질에 깜짝 놀란 시원은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쳤다.

“아아아아악! 뭐야!”

김 비서는 높낮이 없는 사무적인 투로 말했다.

“분명 그냥 나가셔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 맞고 있을 필요는 없다. 맞기 싫으면 나가면 그만이었다. 영원히 나가야 하지만.

시원은 나가지도 않고 그렇다고 다시 자위를 시작하지도 않았다. 그냥 얼이 빠져 있었다. 짜악! 불호령 같은 회초리질이 한 대 더 떨어지고 나서야 엉엉 통곡을 하며 다시 제 좆을 쥐고 흔들었다.

시원은 어릴 때마다 기분 나쁜 일이 생기면 시우를 잡았다. 머리를 툭툭 치기도 하고 심하면 뺨을 내려치기도 했다. 시우를 때리는 것은 제가 한 행동의 옳고 그름을 이성적으로 따져볼 생각도 안하게 되는 버릇 같은 일이었다. 그냥 당연한 일. 그러니 회초리 두 대를 맞고도 저도 밥 먹듯 시우를 때렸다는 건 생각도 못했다. 죽고 싶을 만큼 억울하고 분했는데 시우도 그랬을 수 있다는 공감 따위는 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십 년 이상 잘못 살아온 썩은 정신을 개조하는 데에 회초리 두 대는 너무 약한 처사였다.

제 몸 걱정은 또 더럽게 하는 시원은 소중한 몸에 날 상처가 걱정되어 억! 억! 터지는 적나라한 신음을 막을 생각도 안하고 제 뒤에 딜도를 박고 필사적으로 자위했다. 그리하여 평생 시우를 괴롭히고도 다행히 단 두 대로 징벌의 시간을 마칠 수 있었다. 다음번엔 또 모르겠지만 말이다.

도재가 있을 땐 도재의 심기를 거스를까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던 시원이 1층이 다 떠나가라 울며 자위 쇼를 펼쳤으니 당연히 고용인들에겐 세상 가장 별난 구경이었다.

방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마주할 면이 없는 시원은 일단 배고픔을 참았다. 똑똑, 노크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끼니때가 되니 제 밥을 챙기러 온 것이구나 생각하던 시원에게 배 집사는 방을 옮겨야 한다 말했다.

도재의 지시로 시원의 방은 시우가 쓰던 2층 방의 반대쪽 끝에 있는 가장 작은 방으로 옮겨졌다. 배 집사가 당분간 오며 가며 얼굴 마주치지 않게 하라는 도재의 명을 친절히도 전해주었다.

도재가 시우에게 내주기 위한 방을 다시 꾸미느라 2층은 공사 소리로 시끄러웠다. 방 세 개를 하나로 트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시원은 죄수가 배식 받듯이 방으로 넣어준 식사를 먹으며 그 시끄러운 소리에 제 성질을 이기지 못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아아아아악!

시원은 어제의 그 치욕을 전하기 위해 화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원은 화영의 가장 귀한 보물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도재에게 잘 보이는 시원이 보물인 것이지 그렇지 않은 건 소용없었다. 도재와 완전히 결혼을 해야 시원이라는 우성 오메가가 비로소 집안의 가장 귀한 재산이 되는 것인데, 철모르는 아들놈이 도재에게 밉보였다는 소식은 화영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지금 치욕이고 뭐고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러게 행동거지 조심했어야지! 그런 꼴을 걸리면 어떡해! 어휴 시원아, 엄마가 딱 죽었다 생각하고 참으랬잖아.”

“아 그래서 어제 집 안 뛰쳐나오고 참았잖아.”

“그래 그래. 엄마가 알지 우리 아들. 무조건 참아야 된다, 너. 사고 싶은 거 엄마가 사줄 테니까 집에만 무조건 박혀 있어. 저녁 차리는 거 돕는 시늉이라도 좀 하고! 그래야 네가 차렸다 생색이라도 낼 거 아니야.”

“당분간 눈에 띄지 말래.”

“뭐? 어휴, 내가 못 살아. 얼마나 밉보인 거야 도대체. 시원이 너 히트 사이클 언제쯤이지?”

“몰라, 올 때 됐는데.”

“그럼 일단 쥐 죽은 듯 지내고, 주기 잘 맞춰서 무조건 해. 애만 가지면 어차피 다 게임 끝이야.”

화영은 화를 내다, 달래다 격동의 감정 변화를 보이며 시원과의 통화를 마무리 했다.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어야 하는 아들에게 애가 잘 들어선다는 약이나 한 재 지어 보내기 위해 바삐 나설 채비를 했다.

***

시우는 오후 수업을 같이 듣는 재민이와 수업에 가기 전 점심을 사먹고 카페에 들렀다. 재민이는 재수를 하고 들어와 1학년이면서 시우와 동갑이었다. 그렇다 보니 한 살 어린 동기들이나, 한 학년 선배인 동갑내기들보다 자연스레 좀 더 친해지게 되었다.

도재가 넣어준 오만 원을 오늘 안에 열심히 써보기 위해 시우는 재민이의 음료도 제가 사주었다. 시우는 자몽에이드, 재민이는 아이스 초코. 메뉴들도 딱 어린애 같은 귀여운 신입생들이었다.

“오~~ 서시우 고마워. 잘 마실게.”

“됐어, 뭘 이런 거 가지고.”

“너 오늘 개파 가냐?”

“아 그게 오늘이야?”

“어. 신입생들은 웬만하면 나오라던데.”

“그럼 가지 뭐.”

“너 가면 나도 가야지. 과대 선배한테 말해 놓는다? 우리 간다고.”

“응, 고마워.”

영문과는 여학우의 비율이 높았고 남학생들이 있어도 다들 얌전한 샌님에 속했다. 술 마시라고 강요하는 문화도 없고 단체 활동에 참여 안한다고 지탄하는 분위기도 아니어서 도서관에 가만 처박혀 책 읽고 공부하는 거나 좋아하는 시우에겐 안성맞춤인 분위기였다. 그래도 신입생이면 초반에 이런 자리 한두 번은 나가는 게 서로 얼굴도 익히고 좋다고 하니 시우는 반 의무적으로 개강 파티에 참석키로 했다.

오후 수업을 마친 시우가 늘 가던 도서관이 아닌 과방으로 향했다. 술 게임에 젬병인 시우를 위해 재민이 급히 과외에 나섰지만 아무래도 시우는 글러 먹은 것 같았다. ‘넌 그냥 마셔야 할 듯.’ 재민의 놀림에 시우는 빠르게 체념했다. 못 먹겠음 안 먹는다 하고 그만 마시지 뭐.

학생회 애들이 빈속에 술 먹지 말라고 나눠주는 김밥 한 줄을 받아먹으며 시우는 도재를 생각했다. 연락을 드려야하나…? 저녁 먹고 늦게 들어간다고 도재에게 미리 말을 해야 하는 건지 아닌지 너무 헷갈렸다.

도재가 같이 저녁을 먹자고 했다거나, 언제 들어 오냐 먼저 묻지도 않았는데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가도 왠지 말하고 싶었다. 저를 기다리지는 않을까, 제가 들어오지 않아 걱정하지 않을까, 그래 주기를 간절히도 바라지만 시우는 자신이 없었다.

애가 집에 들어오건 말건 관심도 없는 집에서 자랐으니 당연히 그랬다. 늦는다고 말했다가 ‘어쩌라고’ 라는 답이 돌아올까 지레 겁부터 먹고 마는 약한 마음이었다.

그래, 늦으면 늦는가 보다 하시겠지. 시우는 바쁜 도재를 방해하지 않기로 했다.

저주받은 술 게임 실력으로 시우는 저녁 여덟시가 채 안된 시각에 소주를 딱 일곱 잔째 들이켰다. 대충 한 병이었다. 알딸딸 술이 오른 시우가 조금만 더 자리를 지키다 그냥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잠시 바깥 공기를 쐬러 호프집을 나왔다.

헛된 기대를 했다 괜히 마음만 다칠까 기다리지 않는 척 했던 도재의 전화지만, 미련이 남아 자꾸만 핸드폰을 쳐다보았다. 그러다 거짓말처럼 도재의 이름이 액정에 떠올랐다. 안 기다린다면서 너무 기다렸다는 듯 전화를 받는 게 애잔할 정도였다.

“어디야.”

“어… 저… 지금 개파 왔어요.”

“뭐? 개파? 김 비서, 개파가 뭐야?”

수화기 너머로 도재가 김 비서에게 개파가 뭔지 묻는 소리가 들렸다. 미국에서 자란 도재는 저렇게 줄여 말하는 단어에 약했기 때문이다. ‘개강 파티입니다, 대표님.’

개강 파티라 그러면 대충 개강을 해서 하는 파티겠거니 하지만 개파라 그러면 검은 머리 외국인은 당연히 감도 못 잡는 거다. 도재가 투덜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말을 줄이는 것에 대한 컴플레인 같았다.

다 큰 어른들이 개파를 논하는 게 귀엽게 느껴져 시우의 입가에 예쁜 미소가 걸렸다.

“너는 늦으면 늦는다고 말을 해야지.”

“아… 죄, 죄송해요….”

“어. 이건 많이 죄송해야 돼. 걱정했잖아.”

도재는 매번 시우가 평생에 한 번이라도 들어보고 싶었던 말만 골라서 해주었다. 시우는 그런 도재에게 술기운을 빌려 마음을 전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제가 좋아해요.”

앞뒤도 안 맞고 무드도 없는 충동적이고 엉망진창인 고백이었다.

“이게 이제 혼내지도 못하게 하네. 좋아하면 술 마시러 가도 되냐고 미리 허락 좀 받지.”

“네… 죄송해요….”

다음부터 술자리 같은 건 허락해 줄 마음도 없었다. 다만 시우가 저에게 허락을 받겠다고 물어보는 모습이 꼴릴 것 같았다. 도재는 참, 심보가 예술이었다.

“모자라.”

“네?”

“모자라다고. 더 좋아해줘.”

“저, 저, 많이 좋아해요….”

도재에게서 기분 좋은 웃음이 터졌다. 시우가 말대꾸라는 걸 한 게 처음인 것 같은데 그 말대꾸가 많이 좋아한다는 소리여서 도재는 주먹을 쥐고 제 허벅지를 내리 찍었다. 시발. 더럽게 귀엽다.

“가둬 두고 싶은 정돈 아니잖아? 난 그런데.”

제가 더 많이 좋아한다는 낯간지러운 표현을 다소 무섭게 돌려 하는 도재였다. 그래도 가둬 두고 싶은 건 진심이었다. 다만 시우가 강아지는 강아진데 이 밭, 저 밭 열심히 휘저어 놓고 와야 직성이 풀리는 시골 똥강아지 같아서, 학교만 보내주면 좋다고 뛰어가니 차마 목줄을 채워 집에만 묶어둘 수 없었다. 도재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실 뿐이었다. 쩝, 우리 집 마당 넓은데.

“네… 더 좋아할게요.”

도재의 말을 듣고 시우는 골똘히 생각을 해보다 저는 도재를 가둬 두고 싶은 정도는 아니라 인정했는지 이번엔 말대꾸 없이 얌전히 답했다. 더 좋아하는 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이미 날이 갈수록 커지는 마음이었다.

시우의 대답에 흡족한 미소를 띠운 도재가 이미 소주를 한 병이나 마셨다는 시우의 말에 더 마시면 진짜 혼난다고 으름장을 놓은 뒤 데리러가겠다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도재가 데리러 온다니까 기분이 좋은 시우는 혼자 배시시 웃으며 다시 왁자지껄한 호프집 안으로 들어갔다. 다들 노느라 정신이 없어 슬쩍 가방을 들고 빠져나오는 건 어렵지 않았다. 재민이 그런 시우를 발견하고 뒤따라 나왔다.

“너도 가게?”

“어어. 넌 어떻게 가?”

“아… 누가 데리러 올 거라.”

“그래? 그럼 같이 기다려줄게.”

“넌 어떻게 가는데?”

“나? 나는 버스 타고 가지 뭐.”

시우는 퍼뜩 지갑에 아직 남은 이만 칠천 원이 생각나 만 원짜리 두 장을 재민에게 건넸다. 남 좋은 일 하라고 준 용돈은 아니겠지만 오늘은 개파에 참석하느라 경황이 없어 열심히 써볼 시간도 없었으니 친구의 편한 귀가를 위해 사용하기로 했다.

“택시 타고 가.”

“응? 야 됐어. 뭐 이런 걸 줘.”

“아냐, 이거 써야 되는 돈이라 그래.”

한 번 사양했는데 그래도 주기에 재민은 그냥 고맙다며 택시비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제 친구 시우가 통이 큰 이유를 알게 되었다. M사의 엠블럼을 단 검정색 고급 세단이 시우 앞에 섰기 때문이다.

뒷좌석에서 위압감이 대단한 남자가 내렸다. 그 포스에 놀란 재민이 시우를 팔꿈치로 쿡 찌르고 작게 속닥거렸다.

“저 사람 알파지.”

“응.”

“우성이냐?”

“응.”

“대박. 나 우성 알파 처음 봄.”

금세 코앞까지 다가온 도재 때문에 귓속말을 멈춘 재민이 꾸벅 인사를 건넸다. 누군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세상 높으신 분이란 건 아주 잘 알 것 같아서 재민의 허리는 절로 구십 도로 꺾였다.

“안녕하세요.”

“누구?”

“아, 저는 시우 친구요.”

“어. 난 시우 애인.”

히익…! 셋 중에 제일 놀란 건 시우였다. 표정에서 에그머니나 비슷한 의성어가 보이는 듯 했다.

‘왜? 맞잖아.’

뻔뻔한 도재가 시우를 끌어다 차에 태웠다. 시우 친구 만나서 반가웠어, 또 봐, 조심히 들어가렴 따위의 인사치레는 물론 없었다. 시우만 황급히 잘 들어가라며 재민에게 손을 흔들었다.

“꼬맹이, 너 오늘 잘못을 좀 많이 한다.”

재민이와 나란히 서있던 것도, 둘이 귓속말을 나눈 것도, 애인이라니까 경악하는 것도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들어 도재가 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네… 죄송해요….”

내가 무슨 잘못을 그리 했냐고 따져 물을 법도 한데 바로 축 쳐져서는 제가 죄인입니다 모드였다. 정말이지 더 혼낼 수도 없게 만드는 애였다.

도재가 술 냄새가 폴폴 나는 얄미운 시우의 볼을 꼬집었다.

자꾸만 주무르고, 꼬집고, 만지고 싶은 살성이었다. 안 아프게 살짝 꼬집기만 하려다가도 어찌나 마음껏 조몰락거리고 싶은지. 도재는 기가 죽어 고개를 푹 숙인 시우를 휙 들어 올려 제 다리 사이에 앉혀 놓고 성에 찰 때까지 예뻐하기 시작했다.

쪽쪽, 시우의 뒤통수에 뽀뽀를 내리며 시우가 입고 있는 후드 티셔츠 안으로 손을 넣어 있지도 않은 뱃살을 문질문질 했다. 잡히는 건 없지만 아기처럼 부드러워서 퍽 만족스러웠다.

뻣뻣하게 굳어 있던 시우도 도재의 단단하고 넓은 품에 결박되어 있는 안정감이 좋아서, 도재가 마음껏 갖고 놀 수 있게 힘을 풀었다. 예쁘다, 예쁘다 만져주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서시우, 뽀뽀.”

도재가 부르니 시우가 고개를 꺾어 살짝 뒤돌아보았다. 시우는 입술을 내밀고 있는 도재에게 망설임 없이 쪽 뽀뽀를 해주었다. 됐지? 하는듯한 표정으로 다시 앞으로 돌리려던 시우의 고개를 도재가 저지했다. 되긴 뭐가 돼.

손을 올려 시우의 턱을 고정한 도재가 입술을 내리려는 순간 시우는 음! 하고 입술을 감춰버렸다. 이건 또 무슨 깜찍한 짓이야.

‘술 냄새…’ 라고 작게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뽀뽀는 했는데 키스는 좀 매너가 아니라 느낀 것이다.

“그래서 안 하겠다고?”

“아니… 집에 가서 씻고 할게요.”

“그건 당연한 거고. 지금은 안 하겠다고?”

“아니… 안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못하는 건데….”

“그렇지? 하고 싶긴 하지? 지금 참았으니까 이따 많이 하고 싶겠네.”

도재의 유치한 확인에도 시우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재는 술 냄새 같은 거 하등 상관 없었지만 시우의 눈빛이 너무나 간절히도 지금은 안 된다 말하고 있어서 그만 시우의 턱을 놔주었다.

시우가 작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천만다행이었다. 아까 소주를 마시며 집어먹은 안주들이 머릿속에서 키스는 정말 아니라고 뜯어 말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 하고 싶은 거 아니니까 미워하지 마세요.’ 용기가 없어 말할 수는 없지만 시우는 제 볼을 만지는 도재의 손에 가만 얼굴을 비볐다. 예뻐해 달라는 청이었다.

너무 예쁘지 않는 게 좋을 텐데. 그럼 우리 시우 좋아하는 학교 못 다니는데.

눈이 더럽게 높은 자신의 눈에 들었으면 남의 눈에도 더럽게 예쁠 거라는 걸 알기에 시우는 도재로 하여금 자꾸만 ‘가택 연금’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시우가 슬퍼할 짓은 웬만하면 안하고 싶은데, 급 재민이 떠오른 도재가 시우에게 주의를 주었다.

“아까 걔랑 너무 붙어 다니지 마. 걔뿐만 아니고 누구든.”

시우는 자기한테 신경 써주는 것 같은 도재가 마냥 좋아 실없이 헤헤 웃으며 알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이 착하네.”

도재의 달콤한 칭찬이 뽀뽀와 함께 쏟아졌다.

***

욕조에 입욕제를 풀고 거품 목욕을 할 수 있게 미리 준비해두라 일러 놓은 도재 덕분에 시우는 들어오자마자 몽글몽글 거품이 피어 있는 따끈한 목욕물에 몸을 담글 수 있었다.

술 마시고 목욕을 하면 일어나다 어지러워 넘어질 수도 있으니 굳이 저도 들어와야 한다 우기던 도재도 함께였다. 아주 틀린 말도 아니긴 하지만, 넘어질 걸 우려해 함께 들어온 사람 치고 도재는 음흉한 짓거리에 너무 심취해 있었다.

“하읏…! 핫!”

욕조 양 옆으로 한 짝씩 다리를 걸치게 하여 시우의 다리가 벌어지게 만든 도재는 시우의 구멍에 가장 긴 중지 손가락을 넣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생경한 느낌에 시우가 낑낑 앓을 땐 놀고 있는 나머지 한 손에 거품을 묻혀 유두를 빙글빙글 돌려주었다. 하읏…! 뜨끈한 물에 이완된 근육 덕분에 마음은 미친 듯 긴장되는 반면 몸은 뻣뻣하게 굳지 않아 다행이었다.

“시우 아파?”

다정한 목소리에 시우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아예 안 아픈 건 아닌데 또 그만하고 싶지도 않았다. 대신 시우는 키스를 졸랐다. 워낙 소심해서 조르는 것 같지도 않은 미약한 몸짓이었지만 제 입술을 살짝 벌리곤 도재의 입가로 가져가 먹어 달라는 눈빛으로 애절하게 올려다보았다. 도저히 안 해주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츄릅 츄릅 침 섞이는 소리가 욕실 안에서 한참이나 메아리 쳤다. 제 키스 소리가 욕실 안을 한 번 울리고 다시 귓가로 돌아와 꽂히니 자꾸만 얼굴이 불타는 시우였다. 시우의 상기된 뺨이 귀여워 도재가 쪽쪽 뽀뽀를 내렸다.

“네가 해달라 그래 놓고 왜 네가 부끄러워 해. 자꾸 그렇게 귀엽지 마. 아직 풀어지려면 멀었어.”

도재의 성기는 일찍이도 터질 듯 부풀었지만, 손가락 하나도 꽉 물고 있는 이 구멍이 도재의 좆을 최대한 아프지 않게 받으려면 한참은 더 풀어줘야 했다.

원수는 안 갚으면서 은혜는 꼭 갚는 시우는 저를 배려해주는 도재의 마음이 고마워 뭐라도 보답하고 싶었다. 등 뒤로 전해져 오는 단단히 선 도재의 좆에 결심했다는 듯 그냥 넣으라 말하는 시우였다. 도재가 키스만 해주면 그냥 넣어도 아픔을 참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제가 즐거운 섹스보다는 도재가 좋은 게 좋은 착한 꼬맹이였다.

얜 지금 제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고는 있는 걸까, 그냥 넣으라는 시우의 골 때리는 발언에 도재가 이를 까득 물었다. 이걸 그냥 엎어 놓고 욕심껏 박아, 말아. 시우의 구멍을 위협할 수도 있는 도재의 내적 갈등이 고조되었지만 도재는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제발 넣어달라고 애원하게 만들어야지. 그 편이 더 꼴릴 것 같다.

도재는 벌리고 있던 시우의 다리를 다시 욕조 안으로 넣어 주곤 욕조 발치 쪽에 달려있는 손잡이를 잡고 몸을 앞으로 숙이게 했다. 무릎을 꿇고 앉아 엉덩이만 내밀고 있는 자세가 잡히니 시우는 부끄러워 우는 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도재가 예쁘다 칭찬하기에 더 예뻐해 달라는 듯 엉덩이를 좀 더 쭉 빼내었다.

‘어이고 이젠 꼬실 줄도 아네.’

도재가 물 밖으로 간신히 나와 있는 엉덩이 두 쪽에 따듯한 물을 흘려주며 묻어 있던 거품을 거두었다. 게걸스럽게 다 핥아 먹고 싶은 잘 여문 복숭아가 눈앞에 드러나니 도재는 그 귀여운 볼기를 벌려 그대로 얼굴을 묻었다.

“하! 하앙…! 앙! 안 돼, 안 돼요! 하읏!”

도재가 제 중지 손가락이 드나들던 구멍에 혀를 박고 츄읍 츄읍 빨기 시작하자 시우는 허벅지를 덜덜 떨며 고개를 마구 도리질 쳤다. 좋은데 싫고, 싫은데 좋고 저도 어찌할 바를 몰라 안 된다는 소리만 반복하는데 도재는 시우의 떨리는 허벅지를 더 꽉 잡아줄 뿐 하던 짓을 멈추지 않았다.

도재는 시우의 엉덩이에서 진짜 과즙이라도 나오는 양 호로록 낯 뜨거운 소리를 내며 열렬히 빨아먹었다. 존나 맛있네, 진짜.

탱글한 살덩이 사이에 다물린 쫀쫀한 구멍까지 그 어디를 배어 물든 너무 달았다. 시우가 얼굴만 맛있다고 생각했던 과거를 반성하는 도재였다.

한참을 먹던 도재가 얼굴을 떼고 제 손에 보디 오일을 듬뿍 짜내렸다. 시우의 허리부터 골반까지 부드럽게 쓸어주다 구멍에 손가락 하나를 쑥 찌르자 시우가 잘게 몸을 떨었다. 도재는 시우의 안을 여기저기 꾹꾹 눌러보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성감이 가뜩이나 예민한 시우가 경기를 일으킬 만큼 좋은 곳을 찾아 주었다.

도재는 자비 없이 손가락 쑤셔대기 시작했다. 여기야? 여기가 좋아? 좋아서 숨넘어가는 걸 뻔히 보고 있으면서도 자꾸만 짓궂게 물었다. 시우는 대답하는 대신 욕실이 가득 울리게 신음을 내질렀다.

도재는 손가락의 개수를 늘릴 때마다 봉긋한 엉덩이에 촉-, 촉-, 뽀뽀를 해주며 시우를 달랬다. 어느덧 네 개 까지 늘어난 손가락이 쉼 없이 내벽을 휘젓자 시우가 신음 사이에 간신히 전하고픈 메시지를 담아 애원했다.

“하윽…! 이제, 이제 넣어…! 넣어, 하응….”

“넣어? 애기 이젠 반말이네.”

“아니…! 아니…! 하읏! 그, 그게 아니구….”

도재가 손가락을 한 번에 전부 빼내자 벌름거리는 구멍이 드러났다. 시발. 딱 죽겠다.

“그게 아니고 뭔데.”

“넣어 주세요….”

시우는 ‘주세요’까지 말하고 싶었는데 신음에 먹힌 것뿐이라고 해명하고 싶었다. 넣고 싶어? 굳이 한 번 더 물어보는 도재에게 시우가 그렇다 고개를 끄덕였다.

도재가 시우의 구멍에 제 좆을 슬슬 비비며 귓가에 촉- 뽀뽀를 해주었다. 삽입 직전에 나오는 진한 농도의 페로몬이 공기 중에 풀렸다. 이제부터 박을 테니 더 촉촉하게 젖어 들라는 의미로 알파가 오메가에게 해주는 예고 같은 거였다. 순간 페로몬 따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시우가 찌릿한 아랫배에 몸을 잘게 떨었다.

저번부터 두 번이나 이러는 게 이상해 시우의 목덜미에 코를 박아보는 도재였지만 여전히 페로몬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기분 좋은 살 냄새에 퍽 성욕이 끓어오른 도재는 시우의 구멍에 귀두 끝을 맞추고 서서히 진입하기 시작했다.

“읏…!”

도재의 녹진한 애무 덕에 찢어지는 고통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삼키기 버거운 사이즈이기는 했다. 시우의 내벽은 도재의 좆을 잘라먹을 듯 조여 왔다.

“하… 잘 조이네. 예뻐라. 존나 맛있다 진짜. 애기도 맛있어?”

도재가 박혀있는 페니스를 끝까지 빼었다 다시 시우가 좋아하는 지점에 쿵 하고 박아 넣었다. 어윽…!

“맛없어? 대답해야지. 내 좆 맛없어?”

“아니, 아니요… 더… 더 해주세요.”

도재는 튀어나오는 욕지거리를 참는 대신 예쁜 말만 내뱉는 시우의 고개를 돌려 입을 맞췄다. 철썩철썩 격렬한 피스톤 질이 시작되자 물도 함께 출렁이며 찰진 소리를 만들어냈다. 도재가 바짝 서 있는 시우의 좆을 아래위로 흔들어주었다. 손가락으로 전립선 마사지를 당할 때부터 사정감이 들어차 있던 시우는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몸을 덜덜 떨며 가버렸다.

욕조 안인데 사정으로 힘이 다 풀려버리자 시우는 도재가 쿵쿵 박을 때마다 제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불안불안하게 자꾸 미끄러지려 했다.

도재는 잠시 제 페니스를 빼내고 일어서 시우도 일으켜준 뒤 앞으로 시우를 안아 올렸다.

“목 뒤로 팔 둘러. 떨어진다, 너.”

떨어뜨리지도 않을 거면서 괜히 겁을 줘 더 꼭 매달리게 만드는 도재였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짚어 대충 구멍의 위치를 확인한 후 그대로 시우의 구멍에 다시 제 좆을 박아 넣었다.

“하윽…!”

놀라 토끼 눈이 된 시우가 귀여워 도재가 장난으로 두어 번 퉁퉁 허리를 튕겼다. 시우는 뚫려나갈 듯 깊이 박히는 좆이 무서워 도재의 어깨의 이마를 박고 도리도리 고개를 저으며 신음을 내질렀다.

“하아앙…! 무서…! 무서워요…!”

“침대까지만 참아. 빼고 있다 기껏 풀어놓은 거 다시 다물릴라.”

도재는 시우를 안고 샤워부스로 들어가 거품을 깨끗이 헹궈냈다. 폭삭 젖은 강아지 꼴이 된 시우 위에 큰 타월을 덮은 뒤 도재는 쪽쪽, 키스 비를 내리며 침대로 향했다.

도재가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몸이 살짝 떠올랐다 내렸다 하니 자연히 아래가 콩콩 박힐 수밖에 없었다. 그때마다 다시 발기한 시우의 페니스도 함께 통통 튀어 도재의 아랫배를 쳤다.

“하응…! 하응…!”

욕실도 더럽게 크고 방도 더럽게 넓어 한 걸음이 천 년 같은 시우에겐 아주 한참으로 느껴졌다. 시우가 빨리 가 달라고 애원하니 도재가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뛸까?”

“아, 아, 아니! 읏! 아니, 아니! 아, 안 돼요!”

도재가 뛰면 시우의 몸이 던져지듯 떠오를 테니 더 강하게 박힐 터였다. 장난이었는데도 시우는 빨리 가 달라고 괜한 말을 해서 정말 죄송하다며 다급히 도재를 만류했다.

“알았어, 알았어. 다 왔다. 좀만 참아.”

도재는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며 제 품에 안긴 사랑스러운 생명체를 달랬다. 한 손으로 시우를 가뿐히 지탱하고 다른 한 손으론 시우의 젖은 머리를 털어주었다. 정말 강아지 목욕 시킨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침대까지 가 시우를 곱게 내려놓았다. 갓 목욕을 마친 보송보송한 시우가 하얀 시트 위에 누워 있는 모습은 아주 장관이었다.

도재는 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눈이 살짝 돌았다.

도재는 굶주린 짐승처럼 정신없이 시우를 먹었다. 중간 중간 아프냐 묻는 다정한 목소리가 시우의 귀에 닿았지만 허리 짓은 결코 다정하지 못했다.

지난번 러트를 약으로 넘기고 가득 쌓여있던 정욕이 마침내 꼭 갖고 싶던 사람의 안에서 마음껏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이 순간에 이성을 챙길 만큼 성인군자는 못 되는 도재였다.

“하윽…! 핫! 하앗! 가, 가, 갈 것, 갈 것 같아요…!”

몇 번의 오르가슴을 느꼈는지 다 세어지지도 않았다. 나중엔 나오는 게 없는데 덜덜 떨며 가버리기도 했다. 섹스 초보를 관통하는 극한의 쾌감에 나중엔 흐엉엉 비슷한 소리를 내며 도재에게 매달려 울었는데 도재가 눈물을 핥아주며 그래서 싫으냐고 묻자 거짓말은 또 못해서 좋다고 해버렸다. 좋냐, 맛있냐 묻는 족족 좋아요, 맛있어요 이러니 도재가 봐줄 리 없었다.

물어뜯진 못했지만 시우의 목덜미에 이를 박은 도재는 지난번 키스마크를 만든 그 자리에 더 진한 울혈을 새겼다. 도재의 집착이 보이는 듯했다.

시우가 기절하듯 잠들어 버리고, 그제야 이제 그만 시우를 놓아줘야겠다 이성이 돌아온 도재가 시우를 안아 들고 욕실로 향했다. 온몸에 범벅된 정액들은 둘 중 누구의 것인지 모를 일이지만 엉덩이 사이로 한가득 흘러내리는 것만큼은 제 씨들이 분명해 도재는 강한 만족감을 느꼈다.

씻겨줘야 한다는 게 아쉽기 그지없었다.

***

대학생다운 뜨거운 불금을 보낸 시우는 점심때가 다 지나서야 눈을 떴다. 눈은 떴는데 온몸이 뚜드려 맞은 듯 아파 몸을 움직이기 쉽지 않았다.

체력 소모가 커서 그런지 배가 어찌나 고픈지 몰랐다. 원래 배고픈 건 잘 참는 편인데 격한 운동을 밤새 해서 그런지 허기가 심하게 졌다.

때마침 방문이 열리고 트레이를 든 도재가 들어왔다. 꼬맹이 허리를 조져 놓은 장본인인지라 식사를 직접 들고 방까지 대령하는 중이었다.

시우에게 도재는 참 신기한 사람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필요한 게 뭔지 아는 사람. 메이플 시럽이 뿌려진 갓 구운 팬케이크에 붉은 색감으로 입맛을 돋우는 새콤달콤한 베리류 과일들이 올라가 있었다. 침이 꼴깍 넘어가는 브런치였다.

이어 들려오는 도재의 잘 잤냐는 인사는 허기진 마음까지 채워주었기에 시우는 썩 성치 않은 몸으로도 마냥 행복한 주말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하루를 꼬박 누워 생활한 시우는 저녁이 되자 좀이 쑤셔 비척대며 침대를 빠져 나왔다. 베드테이블에 차려준 밥을 먹고, 핸드폰을 좀 보다가 낮잠을 자고, 일어나 또 밥을 먹고. 완벽한 와식생활이었다. 이렇게 놀고먹고 누워 있던 날이 언제가 마지막이었나 싶을 정도로 실로 오랜만이었다.

시우는 도재가 제 할 일을 하다가도 한 번씩 들여다 봐주고, 이마에 입을 맞춰 주는 게 너무 행복했다. 섹스하다 앓아누운 주제에 좋다고 웃는 똥강아지였다.

세 시간에 한 번씩 구멍에 연고를 발라 준다며 팬티를 끌어 내리는 등 제 몸 상태에 대한 도재의 과한 관심은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그래도 시우는 관심이 고픈 아이라 이에 기분이 안 좋을 수 없었다. 비록 얼굴은 불타올랐지만 ‘그래요, 엉덩이 보고 싶으면 보세요.’ 하며 얌전히 도재의 손길을 받아 들였다.

도재의 방에서 지내는 건 생각만큼 불편하지 않았다. 아직도 열심히 도재의 눈치를 보지만 그래도 주인의 눈치가 저를 사랑해주는 눈치라 불편함 같은 건 생각할 건덕지도 되지 못했다.

마침 간식을 들고 들어오던 도재가 침대에서 나와 어정쩡하게 서 있는 시우를 발견했다.

“뭐 필요해?”

“아, 아니요…! 그냥 좀 움직이고 싶어서….”

방 안엔 도재의 페로몬이 진하게 녹아 있었다. 속옷 바람으로 제 침대에 하루 종일 누워있는 시우 때문에 페로몬이 안 나오려야 안 나올 수 없었다. 서시우는 너무 거한 유혹이었다. 하지만 제가 손수 연고를 발라 놓은 시우의 뒤는 보기만 해도 쓰라릴 만큼 빨갛게 부어 있었고 도재는 어쩔 수 없이 이를 까득 물며 발정을 참아야했다. 침대와 한 몸이 된 시우를 마주할 때마다 내 거라는 소유욕은 발동하는데, 안에다 가득 영역 표시를 해둘 수 없으니 도재는 시우에게 침이라도 발라 놓듯 페로몬을 풀었다.

물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해 숨도 안 막히는 시우였다. 그저 왠지 모르게 머리가 살짝 띵했다.

“서재 구경할래?”

“네.”

저도 모르게 너무 좋은 티를 내버려 시우가 헙! 하고 입을 다물었다.

“서재 가보고 싶었어?”

“네.”

“왜?”

“책… 책을 좋아해서요.”

책 좋아하는 따분한 모범생은 정말 취향이 아니었는데 도재는 총명한 제 강아지가 굉장히 흡족스러웠다. 얌전히 제 옆에서 책이나 읽는 게 예쁜 짓이지 다른 게 예쁜 짓이 아니다. 스물한 살의 한창 놀 나이에 유흥은 멀리하고 학교만 보내주면 꼬리를 흔드니, 도재는 시우가 기특해 엉덩이를 툭툭 쳐주었다.

헐벗고 있는 채로 서재를 데려갈 순 없어 도재는 방과 이어진 드레스 룸을 먼저 구경시켜주었다. 벗겨도 서재 안에서 다시 벗기면 되니 굳이 고용인들에게 시우의 맨살을 구경시켜 주고 싶진 않았다.

드레스 룸 안에는 어제 시우가 학교에 간 사이 채워 놓은 시우의 물건들이 각 맞춰 정리되어 있었다. 2층을 공사해 시우에게 줄 공간을 따로 마련할 예정이라 당장 필요해 보이는 것들만 좀 사서 채운 것인데도 한 가득이었다.

시우는 서재에 간다고 좋아하던 때와는 사뭇 다른 뜨뜻미지근한 반응으로 감사하다고 했다. 안 받는다 소리는 안 통하는 걸 알아서 하지 않았다. 제 딴에 많이 좋은 척, 아주 많이 감사한 척 해보려 목소리 톤도 높여보고 했지만 연기가 어색해 다 티가 났다.

이 집에서 나가게 되었을 때 놓고 가는 게 당연한 것들엔 딱히 정을 주지 않는 시우였다. 그리고 그 나가게 됨을 생각하게 하는 이런 순간들마다 시우는 많이 쓸쓸했다. ‘나가라면 나가지 뭐, 내가 집이 없나 가족이 없나.’ 누군가는 이리 당당하게 말하겠지만 집이고 가족이고 제대로 된 게 아무것도 없는 시우는 그 와중에 욕심도 없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욕심 부리는 법을 배우지 못한 거지만, 어쨌든 언제 쫓겨날지 모르니 한 몫 챙겨야겠다는 생각도 못했다.

시우가 도재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걸 화영이 알았다면 이미 귀에서 피가 날 정도로 시우를 닦달했을 텐데 시우에겐 어지간히 관심이 없는 집이라 챙길 수 있을 때 바짝 챙기라는 조언을 해줄 사람도 없었다.

후드 티 한 장, 운동화 한 켤레 정도면 몰라도 옷장 한켠을 가득 채운 명품 브랜드의 물건들을 어떻게 내 거라며 전부 싸 짊어지고 나가겠는가, 시우는 뻔뻔스럽지 못한 애였다. 그냥 여기 있을 수 있는 동안 도재가 한 번이라도 더 안아주고 한 번이라도 더 쓰다듬어 주는 게 정 줄 수 없는 물건들보다 더 좋았다.

도재는 내보내 줄 마음이 추호도 없는데 시우는 이리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도재가 알았다면 기도 차지 않아 했을 것이다. 가둘 마음은 있어도 말이야, 나가긴 어딜 나가.

도재는 시우의 마음 속 불안함의 정체를 정확히 이해하진 못하지만, 대충 시우가 비추는 기색만으로도 애 기분을 알 수 있었다. 도재가 어딘지 모르게 슬퍼 보이는 시우를 안고 입술에 쪽, 버드키스를 내렸다. 기분을 풀어주고 싶어 일부러 더 장난스레 말했다.

“옷도 내가 사주고 뽀뽀도 내가 해주냐.”

잠시 혼자 다른 세상에 가있던 것 마냥 멍했던 시우가 돌아왔다. 시우는 까치발을 살짝 들어 도재에게 버드키스를 똑같이 돌려주었다. ‘여기도’ 하며 오른쪽 뺨을, 또 ‘여기도’ 하며 왼쪽 뺨을 내미는 도재에게 튕길 생각도 안하고 다 퍼주는 시우였다. 아무튼 서시우 예쁜 짓은 알아줘야 한다며 도재가 기분 좋은 미소를 띠웠다.

도재는 옷, 신발, 시계, 가방보다도 서재 구경을 더 좋아하는 듯한 시우에게 체크무늬 파자마를 꿰어 입히며 잔소리를 했다.

“재산 좀 쓰고 죽겠다는데 애기가 영 도움이 안 되네.”

“네?”

“써도 써도 마르지 않는 게 우리 집 돈인데 좀 거들면 얼마나 좋아. 어린 애인이 돈 쓰는 데 통 취미가 없잖아. 나 없어도 잘 먹고 잘 살려고 말이야.”

“잘 못 살아요, 없으면.”

“…….”

도재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잔소리를 원천 차단 해버리는 재주가 있는 시우였다. 도재는 시우에게 입히던 잠옷을 다시 벗길 뻔 했지만 간신히 참아내고 시우를 안아 들었다. 시계를 진열해 놓는 진열장에 시우를 곱게 올려놓은 도재는 시우의 양 뺨을 감싸 쥐고 입술을 감쳐물었다. 이성을 그러잡기 위한 가벼운 키스가 촉- 촉- 이어졌다. 도재의 키스에 기분이 완전히 돌아온 시우가 도재에게 입술이 먹힌 채로 헤헤 웃음을 흘렸다. 도재는 예쁘게 잘도 웃는 시우를 다시금 안아들고 서재로 향했다.

시우에게 도재의 서재는 별천지였다. 벽장을 가득 메운 책들은 도서관을 방불케 했다. 시우가 너무 진심으로 좋아해서 도재는 혀를 끌끌 찼다. 방금 드레스 룸에서 키스를 나누고 앞으로는 돈을 펑펑 쓰기로 도재와 약속까지 하고 나온 애가 영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 같았다. 책 세 권 사고 돈 펑펑 썼다 할 기세였다.

아니다 그래, 어디 나가지 말고 여기서 책이나 읽어라. 긍정적으로 생각을 고쳐먹은 도재가 보고 싶은 책은 마음껏 꺼내 보라고 허락해준 뒤 시우의 뽀뽀를 받아냈다.

도재가 업무를 보는 책상 옆으로 새 책상을 들였다. 시우의 컴퓨터와 책들이 놓여 있었는데 아마 쓸 일은 별로 없을 거라 생각하는 도재였다. 웬만하면 제 옆에 끼고 있을 생각이라 서재 안에 있는 소파를 사용하는 일이 더 많지 않을까 싶었다.

“앞으로 여기서 공부도 하고 일도 해.”

“네.”

“다음 주부터 월, 수, 금 삼일은 학교 끝나고 오면 김 비서가 간단한 일 시킬 거야. 너 일하는 거 좋아하잖아. 과제나 시험 있으면 김 비서한테 미리 말하고.”

용돈을 더 줄 명분으로 자잘한 일이나 조금 시키려는 건데 시우는 굉장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뭐든 거저 얻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일 하고 떳떳하게 대가를 받는 게 좋았다. 열심히 할 필요 없는데 열심히 하겠다고 씩씩하게도 말하기에 ‘그래, 우리 시우 좋을 대로 해.’ 하고 마는 도재였다. 굳이 좋다는 애 산통을 다 깰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시우는 제가 번 돈을 모아 도재에게 선물을 사 줄 요량이었다. 주말은 도재가 준 카드로 쇼핑을 하며 돈을 펑펑 쓰기로 약속했고, 학교 가는 날은 매일 오만 원씩 용돈을 받아 다 쓰고 돌아오기로 했다. 김 비서님의 일을 도와주고 번 돈은 딱히 쓸 필요가 없어 그대로 쌓이지 않을까 생각하니 시우는 저를 재워주고 먹여주는 도재에게 줄 선물과 다음 학기 등록금에 보탤 돈을 스스로 모을 기특한 생각을 했다. 사정이 여유로워진 가족들은 더 이상 시우가 티끌 모으듯 모은 돈에 관심도 없을 거였다.

무슨 작당을 하는지 몰라도 실실 웃는 시우가 귀여워 도재가 다정한 손길로 시우의 앞머리를 살살 쓸어주었다.

“이쁜아, 기분 좋으면 시키지 않아도 뽀뽀 좀 하고 그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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