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장 (7/14)

7장.

도재가 시우를 등교시키고 향한 곳은 사무실이 아닌 낡은 빌라의 반지하 단칸방이었다.

화영과 태중이 살고 있는 집이었다. 부산에 잠시 머무르던 세 식구는 시원의 이혼 절차가 마무리 되는대로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시원은 그 무렵 졸업한 학교 이름을 내세워 초등 미술 과외를 다니다 평범한 회사원과 눈이 맞아 연애결혼으로 재혼하였다. 둘은 현재 경기 인근의 자그마한 아파트에 신혼집을 차렸다.

이미 정략결혼 상대가 있는 부잣집 우성 오메가가 평범한 직장을 다니는 열성 알파와 사랑에 미쳐 눈이 맞는 스토리는 드라마의 단골 소재였고 화영과 시원은 그걸 볼 때마다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짓이라 폄하했었다.

시원은 제 입으로 말하던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짓을 했지만 막상 겪어보니 제가 세상 살며 행한 일 줄 가장 잘한 일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것도 아니고 성실하게 둘이 먹고 살 만큼만 벌 수 있다면 사랑 타령을 하며 사는 건 꽤나 큰 행복이었다. 최상등품 오메가가 되기 위해 살던 시원은 지금의 남편을 만나 그냥 사람 서시원이 되었다.

하지만 화영은 뜻이 달랐다. 차라리 재벌가의 우성 씨받이로 들어가 한몫 챙겨 나오는 게 낫지 않냐는 종용을 했다. 그래서 시원은 지금의 제 남편을 반대하던 부모를 버렸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내가 너 먹이고 입힐 거 시우 한 번만 해줬어 봐, 우리가 지금 이러고 살아?”

가뜩이나 좁아터진 집구석이 떠나가라 큰 고성이 오갔고 시원은 집을 나와 부모와 연락을 끊었다. 시원은 가출을 하여 무작정 남편의 자취방으로 향했고 그런 저를 따스하게 맞아준 남편과 제대로 된 결혼식도 못 올리고 혼인신고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럼에도 분명하게 행복했다. 과거엔 절대 행복할 리 없다 여겼던 일인데도 말이다.

화영과 태중은 시원마저 떠나버린 단칸방에 남아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자식 농사 말고는 해야 되는 게 없는 인생이었던 화영은 자식이 모두 떠나버린 집 안에 홀로 남아 집 밖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일이 잘 없었고 태중은 아파트 경비 자리를 하나 얻어 일을 나가 있는 시간이 많았다.

대충 어떻게들 살고 있는지 보고 받은 도재가 그들의 집에 도착했다. 태중은 출근을 하고 없어 화영 혼자 도재를 맞았다.

도재와 화영은 어색하게 내밀어진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여긴 어쩐 일로….”

“시우 어릴 때 사진 있습니까?”

도재는 그들이 얼마를 부르던 있다면 사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화영은 어딘가 혼이 빠진 듯 이젠 돈 뜯어낼 궁리도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도재의 물음에 화영은 뒤적뒤적 앨범을 찾아보았다. 앨범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사를 여러 차례 다니며 잃어버리기도 했고 무겁고 짐이 되니 버리기도 했다. 마지막까지 남은 것들은 온통 시원이었다.

예상했던 바이지만 퍽 씁쓸한 도재였다.

화영이 두께가 꽤 두꺼운 앨범 세 권을 한 장, 한 장 전부 뒤져 도재에게 내민 것은 다섯 장의 사진이었다. 독사진은 한 장, 나머진 네 식구의 얼굴이 전부 나온 가족사진이었다.

화영은 혼자 ‘예뻤는데,’ 라는 말만 중얼거렸다.

이젠 가족도 아닌 사람들과 함께 나온 사진을 결혼식에 걸 수는 없지만 그래도 시우의 얼굴이 있으니 도재는 개인적으로 소장하기 위해 사진을 사기로 했다.

“가족사진이어도 되는데 이게 답니까?”

“네… 시우가 나온 건 그게 다네요….”

가족사진은 매해 찍었지만 시우는 한 살 때부터 네 살 때까지 밖에 가족사진에 참여할 수 없었다. 두 돌까지는 형질을 몰라 기쁜 마음으로 데려갔고 이후 네 살 까지는 썩 데려가고 싶지 않은데 집에 혼자 둘 순 없어 데려갔다.

화영은 아주 오래 전 일인데도 똑똑히 기억이 났다. 다섯 살 된 시우가 유치원에 간 사이 세 식구만 시간을 빼 가족사진을 찍었다. 차량 운행을 하지 않아 누군가 꼭 유치원으로 아이를 데리러 갔어야 했는데 사진 찍는다고 정신이 없던 화영이 시우의 존재를 하얗게 잊어버려 한참 뒤에야 시우를 데리러 갔다.

요즘 자꾸 어린 시우가 나오는 악몽을 꾸는 화영이었다. 오늘은 왠지 친구들이 전부 떠난 유치원에서 장난감엔 손도 대지 않고 우두커니 앉아있던 시우가 나올 것 같았다.

그 때 우울해 보이던 아이에게 무슨 말을 했더라, 혼자 좀 놀고 있으면 되지 뭘 또 그러고 있냐고 다그쳤었나?

화영은 시원까지 잃고 나니 이제서야 시우에게 줄 관심의 공간이 생겨 제가 시우에게 했던 짓이 자꾸 떠올랐다.

***

요즘 화영은 매일같이 꿈을 꾸었다. 화영의 악몽에 등장하는 장면은 매번 달랐는데 매번 시우가 나왔다.

과거 시우에게 모진 말을 했던 순간이 나오는데 화영이 한마디를 던질 때마다 시우의 심장께에서 피가 흘러나와 옷을 온통 빨갛게 물들였다.

화영은 미안하다 붙잡고 시우는 뒤돌아 사라진다. 꿈속에서 울고불고 에너지를 쏟으면 이미 하루를 다 살아낸 사람처럼 아침부터 힘이 없었다.

세 살 배기일 때부터 나오는 데 한 장면, 한 장면 나오고 있으니 스물 하나인 시우가 나올 때까지 꿈을 꾸려면 남은 평생 악몽을 꾸어야 했다.

오늘 꿀 것 같은 악몽의 내용에 대해 강렬한 예감이 온 화영은 도재를 본 김에 뜬금없이 그 때 일에 대한 사과를 전했다. 이렇게 하면 적어도 꿈에서 시달리는 일은 없지 않을까 싶었다.

“그 때 제가 애를 좀 다그쳤는데… 시원이 키우기도 바빠서 솔직히 알아서 좀 컸음 좋겠다 했거든요… 늦게 데리러 갔다고 무슨 다섯 살짜리가 청승을 떨고 앉아 있으니까… 나까지 심란해져서 그만, 아무튼 미안했다고 전해야 하는데….”

횡설수설 한 문장도 똑바로 마무리 짓는 게 없는 어눌한 말투였다.

‘전하긴 뭘 전해. 애 속 뒤집을 일 있나.’

도재는 미안하다는 건지 저도 힘들었음을 알아달라는 건지 그 의미를 분명히 할 수 없는 변명 가득한 화영의 말이 웃기지도 않아 피식 코웃음을 쳤다.

화영의 사과를 전해주지 않을 거지만 앞으로 시우가 어디에 있든 아주 원 없이 데리러 가야겠단 생각을 했다.

도재는 사진 속에 담긴 예쁜 아가의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딱 한 장 있는 독사진은 돌잔치 때였다.

시우의 사진 따위는 이사를 다닐 때 꼭 챙겨야할 물건으로 따지면 우선순위가 최하위, 버려도 되는 물건으로 따지면 일등이었다. 이게 남아있는 줄도 몰랐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화영은 시우의 독사진을 보고 있는 도재를 보며 시우는 연필을 잡았다고 말했다.

저 혼자 참회인지 뭔지 모를 시간을 갖던 화영을 향해 그만 닥치라 할 생각이었던 도재였지만 시우의 돌잔치 얘기는 말리지 않고 계속 떠들게 놔두었다. 사실 더 자세히 말해 주기를 은근히 바랐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제가 모르는 어린 시우의 이야기는 이 출처를 제외하곤 어디서도 듣지 못할 이야기니 말이다.

화영의 말이 흥미롭다는 티를 내고 싶지 않아 경청의 자세를 취하진 않았지만 도재는 그 어느 때보다도 귀를 기울고 있었다.

화영은 도재에게 하는 소리 같지도 않게 혼자 중얼중얼 시우의 돌잡이 스토리를 풀었다.

돈 잡으라고 그렇게 눈앞에 돈을 갖다 댔는데 연필을 잡은 시우였다. 세상에서 가장 올망졸망한 아기였던 시우가 당연히 오메가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던 당시의 화영은 끝끝내 연필을 잡은 시우를 보며 장난스런 탄식을 내뱉었지만 그마저도 마냥 사랑스럽게 바라보았었다.

시우 자체가 똑똑할 거란 생각보단 우리 시우는 교육 사업을 하는 집안이나 대대로 학자 집안과 결혼을 하려나 보다 했다.

제 인생을 점 쳐보는 돌잡이에 왜 배우자의 직업을 들이미는지, 오메가의 세상에 깃든 썩어빠진 사고방식은 화영을 그 틀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들었다.

화영은 시우의 돌잡이를 떠올리면서도 시우가 연필을 잡아 공부를 잘 하는구나 연결 짓지 못했다. 화영은 시우의 성적표 같은 거에 관심을 줘본 일이 없어 시우가 공부를 잘하는 지도 잘 몰랐다.

반면 도재는 시우의 돌잡이 스토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아, 우리 집 꼬맹이가 결국 대학원까지 가시겠구나.’

대학원 보내준다 꼬셔서 시우의 사랑을 독차지할 요량인 도재는 이만 화영의 말을 멈췄다. 시우의 수업이 끝날 시간이 다 와갔기 때문이다. 도재는 사진을 챙기는 대신 지갑을 꺼내 값을 물었다.

화영은 계속 넋이 빠진 채로 구체적인 금액을 부르지 못했다.

“어… 어… 음.”

그러면서도 됐으니 그냥 가져가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한 가닥 남아있는 정신이 돈은 좋은 거, 돈은 필요한 거라는 걸 알려줬기 때문이다. 근데 이게 얼마여야 합당한 금액인지 머리가 안 굴러갔다. 얼마만큼이 큰돈인지, 제가 지금 얼마쯤 필요한지, 생각이 깊이 뻗어나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돈… 아… 음.”

화영이 시간을 끄는 와중에 수업이 좀 일찍 끝난 시우가 전화를 걸어왔다.

“어 시우야, 벌써 끝났어?”

시우라는 소리에 화영은 도재의 손에 들린 전화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도재는 그 시선에서 끓어오르는 승리감과 통쾌함을 느꼈다. 화영이 후회하면 후회할수록 도재의 승리였다.

-저 조금 일찍 끝났어요! 바쁘시면 그냥 경호원 형들 차 타구 갈까요?

오늘 아침에 시우를 데려다 주며 끝나고도 데리러 온다 일렀던 참인데 평소 끝나는 시간보다 일찍 끝나 시간이 맞지 않았다.

“아무리 바빠도 애는 데리러 가야지.”

유치한 저격이었지만 화영의 심장을 제대로 관통한 듯했다. 뜨끔하는 게 보여 도재가 픽 바람 빠진 웃음을 흘렸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 금방 갈게, 기다려.”

-아니에요! 천천히 오세요, 기다릴게요.

시우의 밝고 씩씩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화영에게까지 들려왔다. 데리러 와주어서 고맙다며 헤헤 웃는 듯도 했다. 화영은 사랑이 떨어지는 둘의 통화를 엿들으며 도재가 원하는 바대로 후회를 쌓아갔다.

썩 진심은 아니더라도 대충 늦어서 미안하다 한마디나 하고 말 걸, 굳이 왜 골라가며 상처받을 말들만 했을까. 집에 혼자 못 오는 다섯 살이 왜 그리도 짜증났을까.

화영은 후회하고, 후회하고 또 후회했고 도재는 이기고, 이기고 또 이겼다. 도재는 통화를 끊고 화영을 독촉했다.

“얼만지 빨리 말하시죠. 애가 기다려서. 누구 덕분에 기다리는 건 아주 이골이 났겠지만 굳이 기다리게 하고 싶진 않네요.”

화영은 바보같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미 끊어진 시우의 목소리에 계속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화영이 답답하게 구니 도재는 말하지 않으면 그냥 주는 걸로 알겠다 강수를 두었다. 그럼에도 멍하니 아무 말도 안하기에 인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양심이란 게 있어보고 싶은가 보다 생각했다. 도재는 그냥 집을 나섰다. 돈이 아무리 차고 넘쳐도, 뭐 예쁜 사람들이라고 필요 없다는데 쥐어주기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

***

차창 너머 학교 앞 카페에서 책을 보고 있는 시우가 보였다.

다섯 살 시우는 혹시나 엄마가 저를 안 데리러 오지 않을까 두려워 화영의 눈에 ‘청승’이라 비치는 모양새로 엄마를 기다렸지만, 지금의 시우는 차분히 제 할 일을 하며 도재를 기다렸다.

도재라면 당연히 올 거라는 신뢰가 있었다. 언제쯤 오려나 두근두근 설레는 건 있어도 버려질까 심장이 벌렁벌렁한 무서움은 없었다.

도재가 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 왔는데 눈길 좀 주라는 소리를 하자 눈이 동그래져서는 휙휙 주위를 둘러보는 시우가 보였다. 이내 창밖으로 도재를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는데 그게 도재의 심장을 꽤나 저릿하게 했다.

‘너 그 여자 왔을 때는 그러고 안 웃어줬지?’

확인되진 않지만 그랬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저만 좋아하고 저만 따르는 강아지가 사랑스러워 도재는 차 안으로 뛰어 들어온 머리통에 쪽쪽 뽀뽀를 내렸다. 시우가 좋다고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지. 뽀뽀.”

돌아오는 뽀뽀에서 키위 향이 났다.

요즘 시우는 학교 앞 카페에서 파는 키위주스에 꽂혔다. 얼마 전 친구 재민이 시우에게 자꾸 얻어먹는 게 미안해 한잔 사서 건넨 걸 먹어본 이후로 시우는 이렇게 맛있는 걸 졸업할 때 되어서야 안 자신을 자책하며 졸업하기 전까지 질리도록 사먹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소비 중이었다.

시우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받는 도재는 요 근래 보고의 내용 중 삼분의 일이 키위주스라 이를 알고 있었다.

-수업을 가기 전에 키위주스를 사셨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 키위주스를 사셨습니다.

-점심으로 돈가스를 드시고 키위주스를 사셨습니다.

이게 무슨 제게도 하지 않는 집착인가 싶어 심기가 꽤나 불편하던 차에 시우의 뽀뽀에서 키위 향이 나자 도재는 심술에 시동을 걸었다.

“너 또 키위주스 먹었지.”

“네? 네….”

“오늘 몇 번 먹었어?”

“두 번….”

아침에 지각만 안 했어도 세 번이었을 거다.

“거기 설탕 시럽을 얼마나 들이붓는데. 서시우 너 이제 치과 가면 큰일 났을 거다. 토요일에 치과 가. 어머니 가신다는데 너도 손잡고 가서 충치 검사 받고 와.”

망연자실한 표정이 떠올랐지만 순응의 아이콘인 시우는 반항하지 않았다. 아직 시리거나 아픈 곳은 없으니 그저 충치가 하나도 없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네….”

도재가 나라 잃은 표정을 한 시우의 볼을 콕콕 찌르며 삐졌냐 물었다. 안 삐졌다고는 하는데 상심은 한 듯했다. 도재는 시우의 머리칼을 쓸어 넘겨주며 그만 장난을 멈추고 시우를 달랬다.

“검사만 받으라는 건데 왜 눈이 슬퍼. 우리 애기 충치 없을 거야. 어디, 아 해봐.”

시우가 아 하고 입을 크게 벌렸다.

제 이를 살펴보며 썩은 거 없어 보인다는 도재의 말에 퍽 안심한 시우는 표정을 풀었다. 도재는 치과의사가 아닌데 아무래도 신뢰가 좀 넘치게 쌓여 해가 서쪽에서 뜬대도 믿을 기세였다.

“그게 그렇게 맛있어?”

“네… 그렇기두 하고… 이제 졸업하면 잘 못 먹으니까요.”

“대학원 안 가?”

“네!? 저 가도 돼요?”

더럽게 가고 싶었던 티가 나는 반응이었다.

도재가 피식 웃었다. 그럼요, 돌잡이 때 연필도 잡으셨다는데 석사 하셔야지요.

“결혼하고, 시우 가고 싶으면 가.”

시우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한 쿨한 척일뿐이었는데 그게 진짜 쿨하고 세상 제일 섹시해 보인 시우는 앞자리에 타 있는 박 기사와 김 비서의 존재도 망각한 채 도재에게 달려들어 진한 키스를 퍼부었다.

도재의 다리 위로 올라탄 시우가 척척한 침 소리를 내며 도재의 혀를 야무지게 빨았다. 뽀뽀로 퉁치기엔 미안할 정도인 격한 감동을 혀 놀림으로 표현 중이셨다.

‘하, 번복할까 했는데 텄네.’

***

행복한 오메가가 살랑살랑 페로몬을 뿜어대며 열렬한 키스를 퍼부은 덕에 단단히 선 도재의 앞섶이 시우의 아랫배를 찔렀다.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시우의 것도 별반 다를 바 없는 상황이었다.

어차피 꼼짝없이 보내줘야 할 것 같은 대학원이니 시우의 보은을 제대로 받아먹겠다 생각한 도재는 집에 다 도착해서도 차에서 내리지 않고 키스를 이어 갔다.

박 기사와 김 비서는 눈치껏 내려 자택 내 마련된 직원 휴게 공간으로 사이좋게 향했다. 둘은 아무 말도 없었지만 아주 신물 난다는 표정을 주고받았다.

“하아….”

키위주스를 마셔 차가웠던 입 안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시우가 따듯해진 숨을 얕게 뱉으며 얽던 혀를 풀고 촉- 촉- 도재의 입술에 물기 어린 버드 키스를 내렸다.

“왜, 이제 키스 다 해줬어? 그만할 거야?”

“아니 이제 밑에다 하려구요….”

수줍어하는 표정과는 달리 요망한 소리를 뱉은 시우는 도재의 목 뒤로 감고 있던 팔을 내려 도재의 벨트에 손을 가져갔다.

“하… 씨발….”

귀두를 머금고 그 안에서 혀를 굴렸다. 예고한대로 도재의 아래에 키스를 시작한 시우는 도재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험한 욕지거리를 원동력 삼아 더 강한 흡착을 이어갔다.

그래, 키위주스 좀 맛있다고 자주 사먹으면 어떠냐. 더 맛있게 먹는 건 따로 있는데.

도재는 시우의 머리칼을 그러쥐었지만 힘으로 머리통을 내리누르고 입 안에 마음껏 쑤셔 넣진 않았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펠라도 꼭 제 성격처럼 야무지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하는 애였다. 그 예쁜 짓이 도재를 퍽 만족스럽게 했기에 도재는 시우의 목구멍을 위협하는 욕망을 내리누를 수 있었다.

대신 도재는 빤다고 열심인 시우의 얼굴 옆에 달린 귀여운 귓불을 살살 만져주었다.

귀에 닿는 찌릿한 느낌이 시우의 아래까지 타고 내려왔다. 시우는 어디든 아래가 닿는 곳에 엉덩이를 움직여 제 좆을 비볐다. 오늘은 카시트가 영광의 주인공이었다.

“서시우, 남편 놔두고 어디다 비벼.”

도재는 제 다리 사이에 머리를 박은 시우를 끌어올려 다시 제 허벅지 위로 앉혔다. 볼에 잔뽀뽀를 해주며 시우의 바지를 벗기자 아침에 도재가 입혀 놓은 연회색 드로즈가 진회색이 되어있었다.

오메가가 된 후로 조금만 느낀다 치면 속옷에 민망한 자국을 만들어내 창피해 죽겠는 시우였다. 그리고 못돼 처먹은 도재는 그걸 알고서 꼭 젖은 티가 잘 나는 색의 속옷만 시우의 속옷 수납장 가득 채워두었다. 연한 톤의 하늘색, 핑크색, 베이지색, 회색 등이었다.

속옷을 짙게 적신 음탕한 자태는 도재의 성욕에 불을 질렀다.

차라리 팬티까지 다 벗어버리는 게 덜 창피하겠단 시우의 생각은 능구렁이 같은 도재에게 이미 읽혀버렸고 도재는 제 속옷을 스스로 내리려는 시우의 손을 막았다.

도재의 음흉한 눈빛에 놀림을 직감한 시우는 얼굴을 발갛게 물들였다. 뽀뽀를 해주지 않곤 못 배기는 색이기에 도재는 쪽쪽 계속하여 입술을 찍어주며 말했다.

“하여간 서시우 야해빠졌어. 빨기는 남편 거 빨아 놓고 젖기는 왜 네가 젖어. 시우 이거 어디서 나온 거야?”

도재가 시우의 귀두가 있는 지점에 만들어진 프리컴 자국을 엄지로 살살 돌리며 물었다.

“하읏…! 그거는 앞에서….”

도재가 손을 스르륵 미끄러뜨려 사타구니 사이에 더 크게 만들어진 자국을 짚었다. 시우의 페로몬이 짙게 녹아든 물을 만지니 마치 시우가 제 손가락을 핥고 있는 듯 했다.

“이건 어디서 나왔는데.”

“흐응…! 그거는… 그건 뒤요….”

도재가 안 젖어있는 부분에까지 묻히려는 듯 시우의 속옷을 이리저리 움직여 구멍을 자극했다. 꿀렁 하고 한 번 더 크게 새어 나옴을 느낀 시우가 하응…! 신음했다. 시우가 만들어내는 지도가 커져가자 도재의 좆이 꿈틀하며 빨리 처박고 싶음을 알렸다.

“앞으로는 왜 나오고, 뒤로는 왜 나오는데.”

부끄럽다고 물러서 봤자 대답할 때까지 벗어날 수 없었다. 똑똑한 시우는 빨리 대답해주는 게 제 부끄러움의 시간을 단축시키는 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도재가 더티 토크를 건네 오면 빼지 않고 대답을 했다.

어차피 차 안에 둘 밖에 없는데 그래도 큰 소리론 말을 못 해서 시우는 도재의 귀에 대고 속닥거렸다.

“뒤에는 여보 넣으라고 나오는데 앞엔 모르겠어요. 그냥 여보 좋아서 나와요….”

어디다 휘두르지도 않을 좆에서 왜 이렇게 자꾸 흘러나오는지. 시우도 진짜 모를 일이었다. 몸이란 게 그렇게 생겨먹은 걸 어쩌겠나, 시우가 ‘나도 몰라’ 하는듯한 무구한 표정으로 도재를 바라보았다.

시우의 답변을 경청해준 도재는 맞는 말을 하는 꼬맹이에게 똑똑하다 엉덩이를 두드려주며 시우가 그냥 쳐다보기도 부끄러워하는 젖은 팬티를 벗겨냈다. 그리곤 여보 넣으라고 젖었다는 그곳에 제 것을 찔러 넣었다.

안 부서지는 게 용하다 싶을 만큼 거세게 흔들리는 차가 둘의 정원을 장식했다.

***

보송보송하게 씻은 시우가 도재의 가슴팍에 머리를 묻고 낮잠에 들었다.

도재는 벌어진 시우의 입에서 침이 흘러 제 가슴팍을 적시는 게 귀여워 복수랍시고 시우의 가슴팍에 달려있는 유실을 조물조물 만졌다.

살짝 뒤척이긴 하는데 깨지 않는 순둥이와 깨기 직전까지 만져대며 아슬아슬 줄다리기를 하는 건 퍽 재미있었다. 도재는 낮잠 자는 시우와도 혼자 잘 놀았다.

만지다보니 응당 혀를 대고 싶었다. 살짝이라면 빨아도 안 깰 것 같아 실행에 옮기려던 도재에게 김 비서의 연락이 왔다.

그 타이밍이 마치 자는 애 좀 작작 괴롭히고 자게 놔두라고 제재를 가하는 것 같아 뜨끔했다. 도재가 큼큼 헛기침을 했다.

도재는 아쉬움의 입맛을 한 번 다시곤 제 품에 안겨있는 시우를 살살 내려 이불을 잘 덮어준 뒤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 있어?”

“시우 군 사진 값을 요구하는 연락이 왔습니다.”

하도 어이가 없어 도재는 피식 바람 빠진 웃음을 흘렸다.

“왜, 주고나니까 아깝대?”

***

근무 교대를 마치고 들어온 태중은 바닥에 널브러진 앨범들과 도재가 가고 나서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놔둔 찻잔을 보고 화영에게 집에 누가 왔다갔냐 물었다.

화영에게 상황을 들은 태중이 그걸 그냥 보내면 어쩌냐 열을 올리며 김 비서에게 연락했다.

-우리 와이프 상태가 안 좋아서 아깐 말을 못 했는데 말입니다.

태중의 서론 한마디에 감을 잡은 김 비서가 지긋지긋하다는 투로 ‘돈 달라고요?’ 했다. 태중은 무안해서 잠시 할 말을 잃었지만 지금 무안함이고 나발이고가 문제가 아니란 판단이 서 당당하게 장당 천씩 5천을 요구했다.

-그건 우리 가족사진이고 그냥 그렇게 줄 순 없습니다. 5천은 받아야겠습니다. 아니면 사진 돌려주시죠.

차라리 소중한 가족사진이라 억만금을 줘도 내어줄 수 없다 하는 게 사진의 가치를 높이는 길일 텐데 태중은 너무 정직한 속물이었다. 김 비서는 참지 못하고 살짝 코웃음을 쳤다. 일단 대표님과 상의한다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

상황을 전달 받은 도재가 씨익 한 쪽 입꼬리를 올렸다.

5천 까짓것 화영에게 값을 부를 기회를 줬을 때 불렀다면 대충 던져주고 치웠겠지만 무슨 똥개 훈련도 아니고 그냥 가지랬다가, 안 된댔다가 웃기지도 않은 짓을 하니 똑같이 똥개 훈련으로 되갚아줄 생각이었다.

도재가 심드렁한 투로 김 비서에게 말했다.

“안 산다 그래.”

도재의 의중을 찰떡같이 알아챈 김 비서가 도재의 앞에서 바로 태중에게 전화를 걸었다. 용건만 간단히 ‘안 삽니다. 돌려 드릴게요.’ 했다. 관광지에서 물건값 좀 깎아본 솜씨였다.

그러자 태중이 사진 다섯 장에 5천은 제가 생각해도 살짝 오버했다 싶어 머리를 굴렸다.

다섯 장에 3천? 안 사요.

2천? 안 사요.

김 비서의 밀당으로 사진값은 실시간으로 후려쳐지기 시작했다. 통화를 엿들으며 피식피식 웃는 제 상사 때문에 김 비서도 웃음이 나 태중에게 티 내지 않으려 아주 애를 먹었다.

다섯 장에 백만 원까지 에누리 되어버린 사진값에 태중이 저도 이제 더 이상은 못 물러난다는 강경한 뜻을 내비쳤다.

쓸데없이 강경한 게 더 우스웠다. 이미 낭떠러지 절벽 끝까지 물러나 놓고 뭘 못 물러난다는 건지 모르겠다.

‘백만 원 정도면 시우한테 사 달라 그래도 사주겠는데?’

도재는 아직도 김 비서 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능력 있는 꼬맹이를 떠올리며 비실비실 웃었다. 우리 애기 4년차라 시급도 올랐는데 사 달라 그래볼까.

시우 생각으로 이어진 도재는 아무래도 시우와 노는 게 더 재미있어 이만 마무리하기로 했다.

집 안을 뒤집어엎든 어쩌든 도재의 눈에 만족스러운 사진으로 딱 한 장이라도 더 찾아내면 5천을 주겠다고 했다, 아니면 뭐 그냥 백만 원만 받는 거고.

***

김 비서와 도재가 잠시 노는 사이 잠에서 깬 시우는 대충 옷을 꿰어 입고 비척비척 방에서 나와 도재를 찾았다. 아주머니가 도재는 서재에 김 비서님과 계시다 알려주었다. 시우는 혹시나 일하는 걸 방해할까 똑똑, 조심스레 노크해 보았다.

‘꽃냄새 난다.’

도재의 얼굴에 반가움이 피어올랐다.

“애기 깼다. 김 비서 퇴근해. 그쪽에서 추가로 연락 오는 거 있음 내일 얘기하지.”

시우는 도재가 들어오라고 할 때까지 얌전히 문 앞에서 기다렸다. 문을 열고 나오는 김 비서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저를 향해 두 팔 벌린 도재에게 종종 걸음으로 다가가 안겼다.

도재가 잠이 묻어 퉁퉁 부은 시우의 볼따구에 쪽쪽 뽀뽀를 해주다 장난스런 투로 시우에게 말했다.

“시우야, 나 갖고 싶은 거 있는데 백만 원만.”

시우는 돈 달라니 갑자기 도재의 품을 벗어나 어디론가 갔다.

어디 가서 보증은 안 서겠네. 새 된 표정으로 쩝, 입맛을 다시던 도재는 곧 이어지는 장면에 다시 얼굴 만면에 미소를 걸었다.

시우는 자물쇠 걸린 제 책상 서랍을 열고 큰손의 포스로 탁탁 오만 원짜리 스무 장을 세더니 다시 도재에게 와 안기며 백만 원을 건넸다.

푸하하, 도재에게서 큰 웃음이 터졌다. 도재가 그 기특한 엉덩이를 팡팡 두드려주었다.

“어이구, 우리 애기 다 컸네. 근데 너 아직 하나도 안 컸으니까 클 생각 하지 말고 네 까까나 사 먹어. 뽀뽀.”

***

태중과 화영이 뒤졌던 앨범을 다시 뒤지고 집 안을 한 번 들어 엎어 보아도 시우의 사진은 한 장도 더 나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사진들은 백만 원에 낙찰이었다. 하지만 공돈 4천 9백만 원을 손해 본 화영과 태중이 모르는 사실 하나가 있었다.

액자에 걸어둔 세 식구의 가족사진 뒤에는 시우가 고등학교를 들어가며 학생증을 만들기 위해 찍었던 증명사진 한 장이 외로이 꽂혀 있었다.

저도 가족으로 끼워주길 바랐던 아이의 쓸쓸함이 깃들어 있는 4천 9백만 원짜리 사진은 화영과 태중을 단죄하듯 그곳에 꽁꽁 숨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화영의 악몽도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지난날 도재에게 대신 사과를 전했던 다섯 살 시우의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찾아가 하나하나 잘못을 빌고 용서를 구하면 이 지긋지긋한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화영은 그럴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도재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 버린 강아지는 담장 높은 집에 행복하게 갇혀 바깥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 따위는 이제 관심도 없었기 때문이다.

***

시우는 토요일이 되자 어머님과 함께 치과 데이트에 나섰다. 어지간히 가기 싫었지만 어머님이 계시니 의젓한 척 했다. 다행히도 결과는 양호했다.

충치는 없는데 온 김에 스케일링을 받고 가라는 선생님의 말에 시우의 동공에 큰 지진이 일었다.

“그, 그거 꼭 받아야하나요…?”

의사 선생님들은 전공이 어느 쪽이든 하는 멘트가 비슷했다. 지금 해야 나중에 더 크게 아프지 않는단다.

더 크게 아플 때까지 미루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시우는 얌전히 받겠다고 했다.

순응은 하지만 질색팔색하는 게 다 티 나서 의사는 웃음을 참으며 시우에게 곰 인형을 쥐어주었다. 혹시나 어엿한 성인의 자존심을 건들세라 치과 공포증은 굉장히 흔한 일이며 오십 먹은 아저씨도 무섭다며 인형을 안고 치료를 받는다는 위로를 덧붙였다.

나이가 스무 해도 넘게 먹은 시우는 민망했지만 꽤나 큰 위안이 되는 인형을 껴안고 씩씩하게 치료를 마쳤다. 왠지 의사 선생님이 말하는 그 오십 넘은 아저씨가 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우의 경호원들로부터 사진을 받은 도재는 세상 다 포기한 듯한 표정의 시우와, 그에 상반되게 터질 듯이 쥔 곰 인형을 바라보며 현장에 제가 없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치과에서 바지를 벗겼을 것이 분명했다.

[몇 장 더 보내 봐.]

어린 시절 사진이 없는 것에 대한 도재의 대리 한풀이를 시우가 알지는 못하겠지만, 스물한 살 이후로 수천 장의 사진들로 저장되고 있는 시우의 하루하루는 오늘도 도재의 앨범에 소중히 업데이트 되었다.

***

치료가 끝난 자의 여유를 만끽하며 느긋하게 기다리다 보니 어머님도 곧 치료를 마치고 나왔다. 피할 수 있다면 한평생 피하고 싶은 치과 따위를 데이트 장소라 여길 수 없기에 본격적인 데이트는 이제 시작이었다.

데이트의 내용은 결혼맞이 쇼핑이었다.

어머님은 진짜 시우의 엄마라도 되는 것처럼 혼수 명목의 물건들을 미친 듯이 사주셨다. 기 죽지 말라고 말이다.

“막내아들 보내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

시우는 ‘0’ 이 두 번 정도 더 잘못 붙은 듯한 접시 가격에 놀라 어머님을 말리려 했지만 도재와 성격이 비슷한 어머님은 말리면 더 사셨다. 거절을 거절하는 방법이랄까, 결국 다른 디자인으로 68피스 풀세트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어머, 시우야 이거 너무 예쁘다. 이건 라면그릇하면 딱이겠다.”

시우는 48만 원짜리 라면 그릇을 사주려는 어머님을 더 이상 말리지 않고 신난 어머님의 장단에 맞춰 주기를 택했다.

“네! 너무 예뻐요, 엄마 제가 나중에 거기다 라면 끓여 드릴게요.”

“그래, 우리 시우가 라면을 그렇게 맛있게 끓인다며? 도재가 자랑 많이 하더라. 하여간 30첩 반상을 차려 먹여도 시큰둥하더니, 내가 낳았지만 알 수 없는 새끼야. 아무튼 한씨들 하는 짓 알아줘야 돼.”

몇 년 전부터 히트 사이클이 더 이상 오지 않는 어머님은 이제 세상을 많이 내려놓으신 듯 했다. 더 이상 우성 알파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오메가가 되어 자신의 아들을 남편과 싸잡아 종종 욕했다. ‘한씨는 상종도 하기 싫다’가 주된 레퍼토리였다. 그러면서 한씨 성을 가질 손주는 원했다. 시우에게 부담 주지 말라고 도재가 하도 지랄을 하여 손주의 ‘손’ 자도 꺼내지 못하지만 퍽 간절했다.

목 끝까지 차오르는 손주 타령을 억누른 어머님은 라면 그릇 쇼핑을 계속해나갔다. 빨간 국물 라면과 짜장 라면 그릇이 달라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며 이것저것 골랐다.

어머님은 시우에게 비싼 그릇들을 사주며 아끼면 똥 된다는 다소 격한 표현으로 부담 갖지 말고 막 쓰라는 뜻을 전했다. 시우는 마음이 저릿했다.

중학교 때인가, 한창 뒤돌면 배고픈 시기가 있었다. 형에게는 살뜰히 간식을 챙겨줬지만 시우는 달랐다. 알아서 먹든가 말든가, 먹을 거면 눈에 안 띄게 먹으라는 식이었다.

밤늦게 시험공부를 하다 도저히 출출함을 이기지 못하고 살금살금 부엌으로 나간 시우는 시리얼을 우유에 말아 먹었다. 눈치가 보여서 양껏도 못 먹고 우유도, 시리얼도 어느 정도 부어야 줄어든 게 티 나지 않을까 계산해야 했다.

하지만 문제는 중딩 시우가 미처 계산하지 못한 데서 터졌다. 하필 꺼내든 접시가 화영이아끼는 명품 접시였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하필 시원도 출출했는지 걸릴 리 없다고 생각한 그 시각에 부엌으로 나왔다.

야속한 형은 그 늦은 시각에 굳이 안방에 대고 엄마! 엄마! 크게 외쳤다.

그게 좋은 건 줄도 몰랐던 시우는 그릇을 깬 것도 아니고 한 번 사용한 일로 정말 죽게 혼이 났다. 그 당시 고소해 죽겠다는 형의 표정 같은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화영이 우악스럽게 그릇을 뺏어 들고 제 아들이 한창 먹던 시리얼을 싱크대에 죄 부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모습이 시우의 머릿속엔 더 강렬하게 남았다.

시우는 피식 웃음이 났다.

배고파도 참을 걸 내가 왜 그랬을까, 미운 털을 추가한 제 행동에 정말 많이 후회하고 자책했었는데 화영이 쳐다만 봐도 침을 흘릴 고운 때깔의 접시에 라면이나 끓여 먹으라는 엄마가 생겨 시우는 이제 그 기억을 떠올리면서도 피식 웃을 줄 알게 되었다.

“시우야, 너 결혼하는데 아무것도 안 해왔다고 한도재 그 싸가지 없는 게 무시하면 그냥 내던지고 엄마 집으로 와.”

이제 꽤나 마음이 강해진 시우이지만 그래도 아직 애는 애였다. 시우는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어머님의 말에 눈물을 꾹 참아야 했다. 과거의 아픈 기억도 씩씩하게 잘 넘겼는데 분위기 싸해지게 눈물 바람은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우는 아이스크림 먹자는 말로 주의를 돌리며 간신히 대성통곡의 위기를 모면했다.

어릴 때도 아이스크림 사달라고 졸라본 일이 없는 재미없는 아들만 키워본 어머님은 흔쾌히 그러자고 하시며 시우의 팔짱을 끼고 싹싹한 막내아들의 에스코트를 받았다.

이 집에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고 싶은 시우는 제게 딸기 맛도 한 번 먹어보라며 한 스푼 떠먹여주는 어머님을 보며 다짐했다.

결혼하는 대로 최고의 선물을 하루 빨리 드려야겠다는 다짐이었다.

아, 이건 남편이랑 먼저 상의해야 되는 건가…?

***

“서시우, 다 놀았음 집에 가자.”

언제 도착했는지 뒤에서 들려오는 도재의 음성에 쫑긋 귀를 세운 시우가 배시시 웃으며 냉큼 일어나 도재를 맞았다.

“오셨어요.”

“서시우 모시러 오셨죠. 뽀뽀.”

시우가 어머님 눈치를 슥 한 번 보고 쪽 뽀뽀를 해주었다. 도재는 눈치를 보는 게 좀 마뜩잖았지만 일단 뽀뽀는 해주기에 봐줬다.

“볼 일 다 보셨으면 애 데리고 갑니다.”

“왔다는 인사도 안하고 간대니 너는? 시우 너 엄마랑 살래?”

도재의 미간에 주름이 지게 만드는 어머님의 도발이었다.

“서시우, 저런 소린 듣지도 마. 앞으로 같이 못 놀게 할 거니까.”

도재는 고개를 내려 이를 감춘 입술로 시우의 귀를 만두 접듯이 앙 물어버렸다. 시우의 청각을 차단하려는 행위였다. 어머님이 같이 살겠느냐 질문하시니 대답을 하려던 시우의 입도 커다란 도재의 손에 의해 막혀버리고 말았다. 읍!

“저희 가요.”

“그래 가라, 가.”

시우는 도재에게 꽉 붙들려 어머님께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도재는 시우의 귓가에 쪽쪽 뽀뽀를 내리며 괜찮다 달래곤 제가 대신 시우의 팔을 들어 어머니께 대충 휘휘 흔들어주었다.

“자, 인사 다 했네. 집에 가자.”

어머님은 키워놔 봤자 소용없는 아들에 혀를 끌끌 찼지만 쿨하게 아들 내외를 보내주었다. 어차피 대학 동기 모임에 참석해야 하는 공사다망한 분이었기 때문이다.

도재는 차에 다 오르고 나서야 막고 있던 시우의 입을 풀어주었다.

“시우 아 해봐, 오늘 치료 잘 받았어?”

“네! 저 충치 없대요… 헤헤.”

“그래? 키위주스를 그렇게 찾더니 용한 결과네. 강아지라 이가 튼튼한가? 시우 너 엉덩이 좀 보자. 이쯤 꼬리 생겼을 수도 있어.”

“꼬리… 없을 거긴 한데, 집에 가서 보여드릴게요.”

그딴 게 있겠냐는 표정을 지었지만 착한 시우는 도재가 무슨 개소리를 해도 받아 주었다. 말이라고 아무 말이나 하는 남편을 받아 주며 시우는 오늘 밤 도재와 중대한 의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머님, 아버님을 위한 최고의 선물은 혼자 만들 수가 없는 거였기 때문이다.

***

도재는 아까부터 할 말이 있는지 자꾸만 빼꼼 제 눈치를 보는 시우를 무릎에 끌어다 앉혔다.

“뭐 해줄까 아가, 배고파? 뭐가 필요해서 아까부터 꼼지락거려. 귀엽게.”

가끔 진짜 강아지랑 착각하는지 도재는 시우가 할 말이 있어 보이면 밥, 간식, 산책 셋 중에 하나로 찍곤 했다.

“……아 그게… 배고픈 건 아닌데….”

“배 안 고파? 그럼 이거 줘? 이건 배불러도 잘 먹는 거잖아.”

도재가 시우의 손을 끌어다 제 앞섶에 가져다 댔다. 시우는 옷감 위를 살살 어루만지며 작은 한숨을 내쉬다가 말할 듯 말 듯 입술을 달싹였다.

이걸 지금 달라는 건 아닌데 근데 이걸 줘야하는 일은 또 맞았다.

시우는 어머님께 손주를 안기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가진 것과는 달리 아기 만드는 과정을 하자고 말하는 게 부끄러워 쉬이 남편에게 자녀 계획을 논하지 못했다.

도재는 눈알만 도로록 굴리는 시우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남편한테 못 할 말이 어디 있냐 빨리 말해보라 달랬다. 왠지 골 때리는 소리가 튀어나올 것 같아 기다리기 힘들었다.

“여보 있잖아요….”

“네 있잖아요오, 뭐요오.”

도재가 시우의 지하 땅굴로 쭈그러들 듯한 말투를 장난스레 따라하며 말꼬리를 늘렸다.

도재는 검은 머리 외국인 주제에 성질은 또 한국 토박이라 성미가 급하지만 제 똥강아지가 하도 쫄보라 윽박지르지 않고 참아 주기로 했다.

빨리 말해보라고 시우의 귓가에 입을 맞춰주며 예쁘다, 예쁘다 자꾸 토닥여주니 주인 품이 주는 안정감을 느낀 시우는 뭔가 결심한 듯한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저기… 여보는 아기 언제 갖고 싶어요?”

시우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침을 삼키던 중 사레가 들린 도재가 헛기침을 했다. 사레들리게 만든 장본인에게서 괜찮냐는 걱정 묻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가 또 손주 타령을 하셨나, 아니 애기한테 왜 자꾸 애를 가지래.’

도재가 살짝 인상을 썼다 풀었다. 눈치 하난 잘 보는 시우는 아주 잠시 달라졌던 도재의 인상만으로도 실시간으로 풀이 죽어갔다. 용기 내어 말한 시우가 다시 지하 땅굴로 기어 들어갔다.

“서시우, 고개 들고. 뽀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올린 시우가 쪽- 입술에 뽀뽀를 해오자 도재가 시우의 이마에 뽀뽀를 돌려주며 엉덩이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우리 애기한테 화낸 거 아니야.”

저한테 화낸 거 아니라는 도재에 시우는 보드라운 제 머리칼을 도재의 어깨에 비볐다. 겁이 많아 섬세하게 다뤄줘야 하는 귀찮은 강아지가 예쁜 짓을 해오니 도재에게서 피식 웃음이 샜다.

화도 못내, 혼도 못내 아주 쪼끄만 게 최고 상전이셨다.

“나는 우리 애기 벌써 가졌는데, 갑자기 웬 아기? 엄마가 그릇 몇 개 깔짝 사주고 손주 내놓으래? 그럼 버려, 내가 다시 사줄게.”

시우는 그런 게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어머님, 아버님의 사랑에 은혜를 갚고 싶다는 마음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어머님이 내놓으라고 닦달해서 내놓으려는 건 아니었다. 평화주의 시우는 성질 더러운 제 남편이 싸움이라도 낼세라 고개를 강하게 가로저었다. 그게 아니라는 걸 믿어달라는 간절한 눈빛은 덤이었다.

진짜 네 의지야? 확실해? 잘 생각해봐. 도재는 여러 번의 확인 절차를 거쳤다. 자아가 아직 꼬맹이인 시우가 제 말 한마디에 요리조리 휘둘리는 건 더럽게 사랑스럽지만 남의 말에 휘둘리는 건 아무리 제 어머니여도 참을 수 없었다.

‘주인이랑 주인 혈연지간이랑은 다른 거야 시우야. 우리 애기 똑똑하니까 구분하지?’

다행히 시우는 잘 구분하는 듯 보였다.

“낳을 거면 빨리 낳는 게 좋대요. 여보는 싫어요…?”

너 히트 올 때마다 참느라 힘들어 돌아가실 지경인데 싫겠냐. 도재는 웃음이 났지만 참았다. 애가 너무 진지해 보여 웃으면 삐질 것 같았다.

“아니, 싫기는. 시우 해달라는 건 다 해주지. 근데 너 대학원 안 가?”

“낳고 가면 되죠 뭐… 헤헤.”

쩝, 안 가진 않을 거구나.

괜한 기대를 한 도재가 혼자 머쓱해했다. 아기와 학교, 두 군데 씩이나 시우의 관심을 나눠 줘야 한다는 게 살짝 불만이긴 하지만 도재는 열심히 사는 거 좋아하는 시우의 바쁜 청춘을 응원해주기로 했다. 그렇게 열심히 하루를 살아내다 돌아올 곳은 결국 제 품이니 괜찮았다.

일단 아이를 갖는 것까지 합의가 되고 나니 예비부부의 자녀 계획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착착 진행되어갔다.

모든 건 낳아줄 사람 마음, 즉 시우 마음이었다. 그럼에도 시우는 이거 괜찮아요? 저거 괜찮아요? 물어가며 도재에게 결정권을 넘겼다.

시우는 그냥 도재가 골라주는 게 속 편했다.

막학기 기말고사만 남겨두고 있는 시우는 기말고사가 끝난 후인 12월 말쯤 히트가 올 예정이고 그렇게 되면 그 다음 히트는 3월 말쯤이었다. 2월 말에 졸업식과 결혼식이라는 큰 행사 두 개를 치르고 이 예비부부는 3월 말에 올 히트를 노려보기로 했다.

결혼식을 2월 말에 한국에서 한 번, 3월 중순쯤 미국에서 한 번 하기로 했으니 그 이후로 예정된 허니문과 날짜가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 허니문 베이비가 되는 거 아니냐는 김칫국을 들이키기도 했다.

“시우, 하나만 낳을 거야? 대학원 졸업하고 둘째 안 낳아?”

“음… 둘째도 있으면 좋겠어요? 저는 하나면 되는데… 여보 갖고 싶으면 둘째도 만들까요?”

정확한 이유를 도재에게 밝히진 않았지만 자녀 계획에 있어 시우는 ‘외동파’였다. 물론 도재가 원한다면 자기주장 따위는 저 멀리 날려버리고 농구팀을 꾸릴 수도 있는 시우이지만 그래도 외동이었음 좋겠다 싶었다. 걱정이 돼서 그랬다. 혹시나 저도 모르게 아이들을 차별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생각만 해도 무섭고 끔찍했다.

도재와 저 사이에 나온 아기라면 성별이 어떻든, 형질이 어떻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시우는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이 항상 들어맞는 말이 아님을 뼈저리게 느끼며 컸다. 혹시나 하나는 아픈 손가락인데 하나는 안 아픈 손가락일까 무서웠다. 그래서 애초에 그럴 걱정 없는 외동이었음 좋을 것 같았다.

“난 사실 하나도 필요 없어. 우리 애기만 있으면 돼.”

듣기 좋은 소리를 해주는 남편 덕분에 기분이 좋아진 시우가 배시시 웃으며 도재의 볼에 쪽쪽 뽀뽀를 찍었다. ‘여기도 해야지,’ 하며 내미는 입술에도 망설임 없이 다가가 쪽- 입술을 붙였다. 아까부터 한마디 할 때마다 계속 뽀뽀를 시키는데 시키는 족족 다 해줬다.

도재가 시우를 좀 더 꽉 고쳐 안았다. 너 같은 순둥이만 나오면 열도 키우겠다.

“헤헤, 저도 남편만 있으면 되는데 그래도 말년에 자식 없으면 외롭대요.”

요즘 결혼 준비한다고 어머니랑 자주 놀아 그런지 애가 웬 할아버지 같은 소리를 했다. 말년 생각하려면 한참 남은 애 입에서 나오는 멘트에 도재에게서 기분 좋은 웃음이 터졌다.

하긴 그래, 너랑 똑 닮은 애 하나 있으면 말년에 퍽 행복할 것 같다.

슬슬 회의가 마무리 되어가자 도재가 음험한 눈빛을 매달았다. 아기 얘기를 하도 하니까 도통 서시우 가슴 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시우의 티셔츠 속을 침범한 도재의 손이 간질간질 살결을 쓸어내리다 위쪽으로 향했다.

엄지와 검지로 유두를 조물조물 만지자 다 순한데 성감만 예민한 시우가 잘게 떨었다. 하으응…!

“연습하자. 3월이면 금방이야.”

몇 년 째 연습 중인데 눈 감고도 할 짓을 연습하자는 도재였다. 시우는 무슨 연습을 말하는 건지 말도 안했는데 너무 잘 알아들어 버리는 자신이 좀 변태인 것 같아 얼굴을 붉혔다. 와중에 도재가 만져댄 유두가 꼿꼿하게 솟아올랐다. 집에서 입는 얇은 티셔츠가 도재의 손길과 함께 사락사락 가슴을 스칠 때마다 참지 못하고 신음이 터졌다.

“우유 안 나올 때나 먹으라며 나는. 지금 많이 먹어둬야겠네.”

도재가 티셔츠 안으로 머리를 집어넣어 방금까지 손가락을 놀려 갖고 놀던 그곳을 혀로 할짝할짝 핥다가 이내 예고도 없이 한입에 왕 머금고는 강하게 빨아 먹었다.

쪽쪽 흡입하는 박자에 맞게 시우가 흡! 흡! 하며 엉덩이에 힘을 주었다. 도재는 힘이 바짝 들어간 시우의 엉덩이가 다시 말랑해지도록 커다란 손바닥으로 마구 주무르기 시작했다.

시우가 액체처럼 흐물흐물 풀어져가며 듣기 좋은 소리를 질러댔다.

“씹. 안 나와도 더럽게 맛있네. 나오면 시발, 이걸 어떻게 남 물리지.”

“하읏…! 핫! 여보, 여보, 남 아니구… 하앗…! 남 아니구… 우리 애기… 읏….”

시우는 앙앙 울면서도 심보가 못된 남편을 계도했다. 유독 젖꼭지가 떨어져 나갈듯한 도재의 집착 어린 애무가 있었지만 예비부부는 오늘도 성실히 연습에 임했다.

***

시우의 마지막 기말고사가 끝이 났다.

시작부터 기적 같았던 대학생활이 무사히 마무리됨에 시우는 제 학사 학위 취득의 일등공신인 도재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한 선물 겸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나서기로 했다.

앞으로 꽤나 오래도록 사먹지 못할 학교 앞 키위주스를 경호원 형들과 마지막으로 한잔씩 사이좋게 빨며 차에 올랐다.

시험 기간엔 밤을 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신이 또렷하지 않다는 이유로 운전이 금지였다. 도재가 운전을 못하게 한 덕분에 주스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별 사소한 것도 다 도재 덕으로 돌리는 시우였다.

한겨울에 손과 입이 시린 줄도 모를 만큼 키위주스는 여전히 너무 맛있었다. 시험에 쏟아 부은 에너지를 재충전하듯 새콤달콤한 걸 열심히 빨아 마시니 금세 바닥을 보였다. 키위주스가 컵에 담겨있던 시간은 민망할 정도로 찰나였다. 아… 두 잔 살 걸.

[시험은 잘 마쳤고 키위주스 사서 차에 타셨습니다.]

마지막 날이라고 별반 달라진 것 없는 시우의 일상에 피식 웃은 도재는 히터나 좀 세게 틀어주라 일렀다.

수족냉증이 있는 상전께서 한겨울에도 얼음 갈린 음료를 선호하시니 더럽게 걱정되긴 하지만 도재는 시우가 먹는 것 가지고 눈치를 보았던 게 가장 좆같이 속상했던지라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은 그냥 먹게 두고 딱히 군소리를 하지 않았다.

진짜 아기여서 안 말린다고 조절 못 하고 배탈 날 때까지 먹는 것도 아니고 도재의 큰 아기는 건강한 성인 남성의 소화력을 가지고 있어 군것질 좀 한다고 어떻게 되지 않았다. 살이나 좀 찌면 좋겠는데 살도 안 쪘다. 하긴 사서 고생하는 부지런한 궁둥이와 밤마다 격렬하게 흔들리는 꼴릿한 엉덩이를 생각해볼 때 살찌기는 그른 것 같다.

시우는 밤늦게까지 공부하다가 키위주스를 종종 간식으로 받았다. 시우가 하도 좋아하니 도재가 넣은 특별 주문이었다. 시우는 감사한 마음으로 맛있게 먹긴 했지만 통 학교 앞의 맛은 아니었다.

너무 고급스런 맛이랄까, 아주머니들은 단가를 맞출 필요가 없었는데 시우는 딱 육천 원 주고 사 먹을 맛을 좋아했던 거다.

생키위의 함량이 거의 전부인 아주머니 표 주스는 몸에 좋은 꿀로 살짝 단맛을 첨가했는데 시우는 새콤달콤한 키위맛 시럽으로 부족한 생키위의 맛을 보충한 수익 창출용 주스가 입맛에 더 찰떡같이 맞았다.

도재는 아주머니가 해주신 주스를 마시며 ‘정말 맛있어요!’라고 하는 시우를 보고 어느 쪽을 더 선호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학교 앞에 파는 건 가타부타 말도 없이 쭉쭉 빨아먹고 눈 감았다 뜨면 빈 컵이었다. 단정하게 먹는 와중에 음식을 대하는 태도가 약간 터프해지면 그게 시우 입맛에 딱이라는 소리이다.

도재가 시우의 저렴한 입맛을 타박하지 않았기에 시우는 제가 완벽한 연기를 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도재의 손바닥 안에서 취향을 존중 받고 있었다. 입맛 가지고 뭐라고 했다가 먹고 싶은 거 못 먹고 눈치를 보면 안 되니 말이다.

이런 도재의 섬세한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키위주스 사 드시느라 바빠 시험 끝났다는 전화 한 통 없는 시우에 좀팽이 기질이 스멀스멀 깨어나는 도재가 전화를 들었다. 도재는 꼬맹이 시험 기간이라고 세상 제일 맛있는 걸 못 먹고 한동안 굶었다. 속이 좁아지기 딱 쉬운 예민하고 위험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내 등신처럼 마음이 누그러졌다. 시우가 통화 연결음 한번이 채 끊기기도 전에 재깍 전화를 받는 예쁜 짓을 했기 때문이다.

얘 진짜 동물의 촉이 있나, 어쩔 땐 혼내려는 거 알고 이러는 거 같다.

“서시우 아주 기다렸단 듯이 받네.”

-네, 기다렸어요… 헤헤.

기다렸다는 시우에 도재는 마음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며 좀 더 빨리 전화하지 않은 제 잘못으로 책임을 돌렸다. 그래 똥강아지는 장독을 깨도 잘못이 없다더라.

오늘 일정이 바빠 아침에도 못 데려다 줬는데 아마 방해하지 않으려고 저 혼자 ‘기다려’ 상태였던 것 같다.

“먼저 하지 그랬어.”

-안 바쁘세요?

“바빠도 네 전화 못 받을까.”

-그래도 할 일 먼저 다 하면 더 빨리 보잖아요… 헤헤.

말투는 착한데 잘 들어보면 일하다 말고 딴짓 하면 안 된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애교 비슷한 걸 부릴 때에도 제 성격이 나오는 시우를 보며 도재가 푸스스 웃었다.

“일이나 빨리 하고 집에나 빨리 기어들어오라는 거지?”

-아니… 일이나 빨리 하라는 건 아닌데….

“아무튼 빨리 보고 싶으니까 빨리 오라는 거잖아. 바가지 좀 더 긁어줘 시우야. 네가 긁으면 꼴려.”

-바가지요…? 음… 집에서 빨리 보면 좋겠어…요?

하는 중간 이렇게 해달라는 게 맞는지 모르겠어서 말끝이 올라가 의문형이 되어버렸다.

바가지도 너무 순해 빠지게 긁어 도재에게서 좀 더 큰 웃음이 터졌다. 아무튼 너 땜에 웃는다 웃어. 독수공방을 시켜도 밉지 않은 덴 예쁜 게 최고였다.

-아, 근데 얼마나 빨리 오세요? 저 잠깐 들릴 데가 있는데, 살 게 있어서요….

시우는 제가 빨리 오래 놓고 저보단 빨리 오지 말라는 소리도 돌려서 했다. 어쩌라고 싶어도 귀엽기 때문에 참아줘야 했다. 옆에 있었으면 고 입술을 마구 잡아먹었을 거다.

‘네, 너보다는 늦게 갈게요. 그래야 우리 똥강아지 마음이 편하시니까.’

***

쇼핑을 마치고 귀가한 시우는 시부모님과 도재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거실에 장식되어 있는 커다란 트리 밑에 두었다. 도재에게 줄 선물은 하나가 더 있지만 망측한 물건이라 차마 온 가족이 모여 함께 선물을 풀어볼 트리 밑에 두진 못했다.

도재의 보호 아래 무사히 졸업까지 할 수 있게 된 시우의 깜짝 이벤트였다. 시우의 동선을 일일이 보고하는 경호원 형들은 시우가 키위주스를 먹었는지 자몽주스를 먹었는지까지 다 보고하면서도 이것만큼은 숨겨주었다. 도재에게 걸릴까봐 택배로도 못 시키고 그 망측한 가게를 오프라인으로 찾아가기까지 한 시우의 수고를 차마 저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우는 수고스럽게 사온 그 망측한 물건을 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도서관에 고이 모셔 두기 위함이었다. 이런 신성한 공간에 놓아둔다는 게 죄스러운 기분마저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도재도 함부로 안 들어오는 불가침 영역이 도서관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들한테 못 볼꼴을 자주 보인다, 미안해.’

시우는 책들에게 인사를 전하며 살금살금 도서관을 빠져 나왔다.

때마침 귀가한 도재가 트리 밑에 놓인 선물들을 보았다. 시험이 끝나자마자 바쁘게 움직인 시우의 분주한 엉덩이가 선물 상자에서 보이는 했다.

이젠 남편한테 그 엉덩이를 써줄 시간이 좀 있으시겠지, 배고픈 도재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걸렸다.

“서시우, 시우야, 남편 왔는데.”

도재가 크게 시우를 불렀다. 방에서 쪼르르 나올 줄 알았던 시우가 2층 계단에서 타닥타닥 경쾌하게 뛰어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도재는 시우가 뛰는 게 좋았다. 저에게 바삐 온다는 사실이 심장을 저릿하게 했다. 사실 모든 일에 사서 바쁜 애라는 건 모른 척 했다.

도재가 두 다리 건강한 강아지를 두 팔 벌려 환영했다.

물기 머금은 꽃 냄새를 흩뿌리며 달려온 시우가 저만의 숲에 섞여 들었다. 도재의 코트 안에서 겨울 숲 냄새가 났다. 향기는 시원한데 안겨든 가슴팍은 뜨거웠다.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는 그 품에서 시우는 시험을 마친 노곤한 하루를 위로 받았다.

“어이구, 얼굴에 졸음이 덕지덕지네. 그럼 좀 자고 있지 어떻게 시험 끝난 날까지 책을 보냐.”

“……하하.”

책 보려고 올라간 건 아니지만 시우는 노코멘트를 했다. 거짓말은 못 하는데 상황상 솔직히 말할 수 없을 때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웃음으로 무마하기.

“웃기는.”

실없이 웃는 시우의 말랑한 볼을 안 꼬집고 넘어갈 순 없었다. 도재가 보드라운 시우의 뺨에 손을 올렸다.

말랑한 볼살을 집고 도재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애매하다는 듯 살짝 표정을 굳혔다. 볼을 스친 손이 이마로 올라갔다. 턱 하니 얹어진 커다란 손이 이마를 짚어보더니 굳은 얼굴 위로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우리 애기 히트 오나? 얼굴이 뜨거운데.”

“히트요? 아닌데… 아무 느낌 안 나는데….”

12월 말에 오니 슬슬 올 때가 되긴 했지만 히트가 오기 전 당사자에게 느껴지는 그 싸한 기운은 다른 아픔과는 확연히 달랐기에 모를 리 없었다. 페로몬도 날뛰었을 텐데 멀쩡했다.

결론은 단순 몸살 기운이었다.

근래 잠도 잘 못 자고 책상 앞에만 종일 앉아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쇼핑을 다닌다고 추운 날씨에 나돌아 다니기까지 해서 감기가 옳다구나 하고 올까 말까 간을 보는 중인 것 같았다.

베타였던 시우는 히트가 오는 느낌은 일평생 겪어본 적이 없는 생경한 느낌이라 귀신같이 알아채지만 그냥 몸이 아픈 건 심하게 아프지 않고는 잘 몰랐다.

“진짜 하나도 안 아픈데… 잘 모르겠는데….”

독수공방이 연장된 남편의 상실감을 읽었는지 시우가 혼잣말을 웅얼거려 보았다. 물론 시우의 의견은 당연히 기각이었다.

“안 아프긴 무슨, 쓰읍.”

이 추운 날 키위주스를 사먹고 싸돌아 댕긴 똥강아지는 그대로 도재에게 들려 방으로 연행되었다. 약을 받아먹고 이마에 물수건을 올린 시우가 졸리긴 졸렸는지 순식간에 곯아 떨어졌다. 언제 의사가 다녀가 제 팔에 수액을 놓아 줬는지도 모르고 잤다.

그렇게 시우는 일주일 넘게 섹스를 굶은 위험한 짐승에게 병수발을 시키고 저는 쿨쿨 잘도 주무셨다. 그게 이 부부의 자녀 계획이 어그러지게 된 발단이었다.

***

단순 미열에 도재에게 붙들려 비타민 수액과 함께 모자란 잠을 쿨쿨 보충한 시우는 솔직히 체감상으로는 전혀 아프지 않았다.

아프진 않았지만 어쨌든 아팠던 시우는 자고 일어나니 피로가 싹 가셔 평소보다 더 개운하게 눈을 뜰 수 있었다.

감기 걸린 애가 하도 이불을 걷어차서 도재에게 엉덩이도 몇 대 맞았는데 자느라 바빠 그것도 기억에 없는 일이었다.

시우는 침대에서 나와 아침운동을 하고 돌아온 도재에게 졸래졸래 다가갔다. 병간호 해줘서 고맙다며 아침부터 머리통을 들이대고 애교를 피웠다. 콧소리라도 좀 내주던가 사실 이건 애교라고 하기도 뭣했다, 그냥 제 머리를 쓰다듬어 달라는 거지.

그럼에도 차르르 윤이 나는 머리칼과 뽀송한 이마의 감촉이 애교 그 자체라 도재는 시우의 머리를 한껏 흐트러뜨렸다.

안 그래도 까치집 진 머리가 더 산발이 되어도 시우는 좋다고 배시시 웃음 지었다.

도재가 시우의 이마에 꾸욱 입술을 붙였다. 시우의 이마보다 제 입술이 뜨거운지 약간 서늘한 온도가 느껴졌다.

“서시우 착하네. 다 나았네.”

“네! 운동하셨어요? 샤워… 같이 할까요?”

“너 지금 나랑 샤워하러 들어가면 다시 아파. 꼬시지 말고 뽀뽀나 해. 안 그래도 남편 좆 터질 것 같으니까.”

쪽- 하면 또 시키고, 쪽- 하면 또 시켰다. 도재는 시우를 안아 들고 사랑스러운 입맞춤을 받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샤워 부스에만 같이 들어가지 않았을 뿐 욕실엔 함께 들어갔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지만 시우는 샤워 부스 앞에 앉아 도재가 샤워하는 걸 구경했다.

꼬시지 말고 얌전히 기다리라기에 좋은 구경이나 하면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밤에 소모하지 못한 에너지를 운동으로 풀었는지 격하게 펌핑 되어있는 울끈불끈한 근육들이 보였다. 그 위로 물줄기가 흘렀다.

꼴깍,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고는 슬쩍 눈치를 보는 시우였다. 다행히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소리에 시우의 침소리가 묻혀 도재에게 놀릴 거리를 제공하진 않았다.

시우는 안심한 뒤 감상을 이어갔다.

사용자 덩치를 생각해 평범한 사이즈보다 훨씬 넓게 만든 샤워부스, 그 안을 가득 메우는 어깨 장군의 쌔끈한 몸을 스윽 훑어 내리면 가운데에… 가운데에… 시우는 차마 감상평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내려 제 것을 슬쩍 한 번 보았다. 쩝.

중심부는 스킵하고 골반부터 발목까지 시선을 내렸다. 시우가 어디에 있든 늘 시우를 향해 휘적휘적 걸음을 놀리는 길고 탄탄한 다리가 보였다. 시우는 저 무거운 다리 한 짝에 짓눌리며 자는 기분을 좋아했다. 저 다리에 감겨 있는 제 몸을 상상하니 미소가 지어졌다.

‘축구선수도 아닌데 허벅지가 왜 저렇지. 아침마다 조기 축구를 다녀오시나?’

또 한 번 꼴깍, 침이 넘어갔다. 남편만 독수공방이 아니라 시우도 시험 친다고 굶은 건 마찬가지였다. 근데 도재가 오늘까진 안 된다고 해서 시우도 슬펐다.

‘나 진짜 발정 날 때 됐는데 이렇게 욕구불만이다가는 큰일 나는 거 아냐?’

도재가 다 씻고 나오자 시우가 훈련을 잘 받은 강아지처럼 조르르 수건을 들고 다가갔다. 싹싹하게 시중을 들며 병수발의 은혜를 갚았다.

제 몸을 닦아주는 시우의 야무진 손길을 받으며 도재는 뜬금없이 시우와 어울리는 견종이 뭐가 있을까 생각했다.

‘그래, 우리 애긴 그냥 똥개는 아니지.’

진도 믹스 보고 순혈 토종 진돗개라고 박박 우기는 시골 할아버지 같았다. 아직 애라서 약간 똥강아지스러운 면이 있는 것뿐이라고 제 눈에 안경을 낀 도재는 시우와 딱 맞는 마땅한 견종을 찾으면 한 마리 데려올까도 싶었다.

둘이 같이 마당을 뛰어다니면 그만한 장관이 없을 것 같다.

“너 그거 같아. 사극에 나오는 거 뭐지. 아, 내시.”

“…내시요…? 내시… 그거 없는… 아… 네….”

도재가 너무 열심히 수발을 드는 시우를 놀렸다. 그런데 정말 ‘수발’ 하나만 생각해 내시를 떠올린 거지 그 외의 요소는 결코 생각지 않았다.

아까 도재의 페니스를 감상하다 속으로 ‘저거에 비하면 난 없는 거다’라는 생각을 했던 시우는 내시가 주는 상징적 의미가 먼저 떠오르는 한국인인지라 소심하게 입을 삐죽였다.

‘작은 건 안 섹시한 것 같은데. 근데 나도 작은 건 아닌데, 내가 목욕탕 가서 봤는데.’

시우는 속으로 항변을 조금 늘어놓았지만 이내 순응했다. 네… 여보가 내시라면 내시겠지요.

부풀어가는 시우의 볼따구를 보니 도재는 제 좆이 같이 부푸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삐진 시우를 냉큼 달래진 않았다. 더럽게 귀여워서 조금만 더 하는 양을 구경하고 싶었다.

탁탁 상체의 물기를 닦아주다 하체를 닦기 위해 몸을 숙이던 서 내관의 눈앞에 존재감이 뚜렷한 그것이 비쳤다. 시우는 충동적으로 도재의 페니스를 입에 머금었다. 한 번 쏘옥 빨고 뱉은 시우는 그 자리에 굳었다.

제가 방금 무슨 짓을 한 건지 당황스러웠다. 꼬시지 말랬는데 주인 말을 안 들은 게 처음이라 제가 해놓고 제가 더 놀랐다.

그대로 올려다본 시선 위에는 죄 없는 아랫입술을 물고 있는 주인이 보였다.

도재가 별말이 없길래 꼬신 건 아닌가보다 하여 황급히 물기를 닦아주고 튀려던 시우가 한 손에 휙 붙잡혔다. 뒤에서 옴짝달싹 못하게 시우를 결박한 도재가 한 손으로 시우의 팬티를 무자비하게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애기 어디 가요?”

귓가에 꽂히는 목소리가 분명 무서웠는데, 또 섹시했다.

도재가 제 팔에 감은 시우의 허리를 살짝 들어 올려 높이를 맞춘 뒤 시우의 복숭아에 제 좆을 비볐다.

‘하… 엉덩이 골도 맛있는 서시우.’

도재는 시우의 엉덩이 골 사이에 정신없이 허리를 놀렸다. 퍽 황홀하긴 했는데 꽉 조여 주는 느낌이 없어 다시 시우를 돌려세워 저와 마주보게 했다.

도재가 ‘시우, 눈.’ 하자 시우가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춰왔다. 도재는 시우의 달뜬 얼굴을 보며 제 페니스와 시우의 페니스를 함께 잡고 손으로 쭉쭉 흔들어 마무리했다.

“하앗…! 핫…! 여보…! 여보…! 읏…!”

“씨발… 하 씹…! 윽….”

정액을 쏘아내고 다리가 풀린 시우가 넘어지지 않게 도재는 시우를 번쩍 안아 들었다.

한 발 빨리 빼자는 데 의의가 담긴 이 행위는 쌓인 정욕을 시원하게 풀어주지 못해서 도재의 페니스는 사정을 했음에도 힘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가벼운 몸살 기운에서 벗어난 시우가 진짜 몸살이 나 드러누울까 염려되어 도재는 더 이상 건들지 않기로 했다. 원래 하다 말면 참기가 더 힘든 법이라 아예 건드리지 않으려던 건데 꼬맹이는 가끔 순진무구하게 못됐다.

시우는 이 와중에 제 아랫배에 닿는 단단한 그것을 느끼며 더 해도 된다는 소리나 내뱉었다. 배려의 아이콘이 내뱉는 되게 착하고 되게 나쁜 발언이었다.

“서시우, 꼬시지 말라니까 이제 대학 다 마쳤다고 말 안 듣는 거야? 볼 장 다 봤어 이제?”

“아니…! 진짜 아니에요…! 잘못했어요….”

볼 장 다 봤다니, 평생 보고 싶은데 무슨 그런 무서운 소리를 하는지 도재의 농담에 깨갱 쭈그러진 시우가 죄인 모드를 켰다. 제 행동을 자책하느라 시우의 눈이 슬퍼졌다.

그 모습이 퍽 가엾어 도재가 시우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잘못한 건 아니라고 정정해 주었다. 제 페니스에 입을 가져다 댄 걸로 혼을 냈다가는 쫄보 시우가 다시는 그런 깜찍한 짓을 안 해줄 터였다. 도재는 ‘잘했어, 잘했어.’하며 달랬다.

“시우 크리스마스 파티 하는 거 좋아하잖아, 아플까 봐 그러지. 조금만 더 건강해져서 더 많이 박히자. 뽀뽀.”

다시 행복해진 시우는 생글생글 웃으며 냉큼 뽀뽀했다.

***

한창 때인 청년 시우는 하루 만에 병을 털었지만 혹시 몰라 하루 더 도재의 배려를 받았다. 몸 컨디션이 안 좋을 때 혹시라도 히트 사이클이 겹쳐 오면 발정이 다 끝난 후에 정말 크게 앓을 수 있기 때문에 더 조심시키는 것도 있었다.

홍삼을 하도 먹여서 시우의 뽀뽀에서 중후한 아재 맛이 났다. 김치찌개 먹고 나서는 안 해주면서 홍삼은 먹어도 해주었다.

김치찌개를 먹은 날은 후다닥 화장실로 뛰어가서 후다닥 양치를 하고 나오더니 후다닥 다시 돌아와 받는 사람이 다 숨 가쁜 뽀뽀를 해줬는데 홍삼과 무슨 차이인 건지 몰랐다.

홍삼 맛 나는 뽀뽀를 받으며 도재가 피식 웃었다.

“아, 아저씨 맛. 서시우 빨리 얼굴 보여줘.”

더럽게 써서 사실 도재도 싫어하는데 시우는 씩씩하게 잘 먹었다. 도재가 제 건강을 챙겨주는 마음이 간질간질 기분이 좋아서 어찌 긍정적으로 정신을 잘 다스려보면 맛있는 것도 같았다.

사실 예전에 화영이 고3인 시원에게 홍삼을 챙겨 먹인 적이 있었는데 시원은 쓰다, 먹기 싫다 징징거리기 바빴고 화영은 사탕을 들고 쫓아다니며 먹이기 바빴다.

먼발치에서 바라보아야 했던 화영과 시원의 티격태격 실랑이에서 사랑이 보였다. 그래서 홍삼은 시우에게 사랑이었다. 사랑 묻은 입술로는 뽀뽀가 가능하다는 시우만의 논리로 시우는 홍삼 냄새 나는 숨결을 뿜으며 뽀뽀를 잘도 해줬다.

대충 빨아먹고 버리지 않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알뜰살뜰하게 쪽쪽 빨아 먹었다. 도재가 맛있나 싶어서 입에 댔다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다. 그런 도재를 보며 시우가 헤헤 웃었다.

시우는 도재의 사랑을 받아먹고 몸도 마음도 건강해졌다.

이렇게 시우가 앓은 게 하루,

낫자마자 기다렸단 듯이 했다간 다시 아플 것 같아 하루,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해 부모님이 오셔서 또 하루.

눈만 마주치면 밥상 엎기 바쁜 예비 신혼부부의 수절 생활이 피치 못하게 연장되어 갔다.

크리스마스 파티에 신난 똥강아지는 잠시나마 수절의 고통을 잊었지만 도재는 다 씹어 먹고 싶은 머리통에 루돌프 머리띠를 얹은 시우 덕분에 고통이 더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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