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성별을 막론하고 히트 사이클이란 발정기가 왔을 때 알파와의 관계를 통해 임신이 되는 오메가는 베타와는 생식 체계가 약간 다르기에 별도로 오메가 산부인과가 따로 있었다.
노팅까지 했다면 임신이라는 사실 자체는 확인할 것도 없이 확실했지만 정확한 초음파 검사는 관계를 가지고 2주 정도 후에 가능했다. 남자 오메가를 전문으로 본다는 의사에게 예약을 잡아놓고 도재는 병원에 가기까지 제 좆질의 책임을 지기 바빴다.
3월에 미국에서 열릴 결혼식과 허니문은 장거리 비행이 힘들 것 같아 전부 취소했고 2월에 한국에서 열릴 결혼식도 시우가 피곤하지 않게끔 조금 더 간소화하기로 했다. 남자 오메가는 배로 조심해야 해서 과하다 싶을 정도로 신경 써야 했다.
도재는 부모님께도 과속 사고 소식을 알렸다. 이것저것 골라 놓은 게 얼만데 청첩장 찍기 일보 직전에 죄다 취소를 해야 하니, 어머니는 한 번만 참지 그랬냐며 타박을 했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손주를 3개월 빨리 보는 일이라 더 이상의 잔소리는 하지 않았다. 약간 들은 잔소리는 물론 도재가 전부 떠안았다.
사고는 저들이 쳐놓고 도재는 혹여 이 일로 시우에게 찍소리도 하지 말라 부모님께 큰소리도 쳤다. 딱 뭐 뀐 놈이 성내는 꼴이었다.
“네가 싸질러 놓은 걸 내가 왜 시우한테 뭐라 그래! 하래도 안 한다, 하래도.”
“네. 하지 마세요. 끊습니다.”
아오…! 아오! 정말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아들놈이었다. 우성 알파는 다 저 모양인데 그럼에도 대를 이을 우성 알파 손주를 원하는 부모님은 씩씩거리면서도 슬쩍슬쩍 올라가는 광대를 막을 수 없었다.
2주 후에 있을 초음파 검사를 기다리는 건 썩 떨리지 않았다. 미리 임신 테스트기로 확인을 해보기도 했고 아직까진 병원에 간다고 성별을 알 수 있는 것도, 형질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놀랄 일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냥 ‘임신 맞네요, 건강하네요.’ 이 한마디를 들으러 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
관계한지 2주면 그냥 임신 2주인 줄 알았다. 시우나 도재나 임신에 완전 무지한 상태였는데 오메가들은 임신 주수를 계산하는 법도 본인의 히트 사이클 주기에 따라 각각이었다.
제 몸으로 임신과 출산을 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한 삶을 살아온 시우에겐 온통 모르겠는 소리 투성이였다.
검사를 받고 담당의와의 간단한 면담 중에 시우는 그냥 주의사항을 듣는 건데도 굉장히 심각한 표정을 했다. 그러다 의사가 산모도, 아기도 건강하다는 소리를 해주니 그제야 환하게 웃었다. 이 소리를 들으러 온 건데 생각보다 다른 소리를 너무 많이 해서 얼마나 쫄았는지 모른다.
앞으로 낳을 때까지 계속 건강할 거라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지금 확인할 수 있는 선에선 모두 정상이란 소리일 뿐인데도 기뻤다.
“감사합니다.”
“흠… 근데.”
도재의 손을 꼭 잡고 배시시 웃던 쫄보에게 의사가 다시 무서운 소리를 했다.
“한 4, 5일만 있다가 다시 한 번 와보시겠어요?”
“네? 왜요…?”
지레 겁먹은 시우를 보며 도재는 의사에게 서시우 환자 사용법을 알렸다.
“무슨 말을 하기 전에 꼭 별일 아니란 걸 먼저 좀 알려주실래요? 애 놀라서.”
산부인과 의사 인생이 한두 해도 아니고, 시우의 담당의는 이보다 더 지독한 사랑꾼 부부들도 많이 봐온 지라 이 정도 유난엔 면역이 짙었다. 그는 자본주의 미소를 잃지 않고 그러겠노라 했다.
“놀라실 건 아니고 아직 애매하게 보이는 게 있어서요.”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흘러, 그 애매한 것은 확실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일란성쌍둥이. 아기집 하나에 점인지 동그라민지가 명확히 두 개로 보였다. 도재와 시우는 서로를 멍하니 바라보다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이 부부의 자녀 계획은 시작부터 어째 맞게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3월에 만들려던 아기가 12월에 만들어졌고 둘째는 안 가지려던 외동파 부부가 한 방에 일타이피를 이룩했다.
계획대로 안 되어서 속상하고 싫은 게 아니라 그냥 이 상황이 웃기고 재미있었다. 성별은 과연 예측한대로 될까? 외모는? 성격은?
부부는 장난삼아 좀 더 원한다 하는 성별이나 형질이 있는지 논하기도 하고 누구의 어떤 면을 닮았으면 좋겠는지를 이야기하며 키득거렸다.
“그대로 안 될 것 같으니까 반대로 말할까?”
“사실 전 이미 반대로 말했어요….”
도재는 인생을 살며 뭔가가 뜻대로 안 되는 경험이 처음이라 흥미로웠고 시우는 인생이 뜻대로 안 되는 경험이 매우 다수였는데 뜻대로 안 되어도 마냥 설레고 두근거리는 건 또 처음이라 신기했다.
이렇게 긁혀도 당첨, 저렇게 긁혀도 당첨인 복권을 긁는 기분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일란성이면 똑같이 생겼을 테니 누가 누군지 헷갈려서라도 차별은 못 하겠다 싶었다. 그 생각이 드니 시우는 푸스스 웃음이 났다. 예상치는 못했지만 마음은 편했다.
***
성별은 4개월쯤 되어야 알 수 있었고 형질은 뱃속에 있을 땐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이제는 새로운 형질검사법이 상용화되어 두 돌이 지나지 않아도 태어나자마자 형질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분명 아직 성별도 알 수 없는 손가락 한마디만한 아기들인데, 얘네들은 제 형질을 미리 광고라도 하고 싶은 건지 그 존재감을 미쳐버린 입덧으로 표출했다. 낭설이긴 하지만 알파면 입덧이 심하고 우성 알파면 더 심하다는 소리가 있었다.
알파여서 까탈스러운 건지 그냥 한도재 주니어여서 까탈스러운 건지 모르겠지만 아기들은 시우의 입으로 음식이 넘어가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가끔 선심 썼다는 듯 동치미 국물 정도를 허락했다.
그런데 그 동치미 국물마저 못 드시는 분이 계셨다.
아기들은 저들이 쌍이라고 부모도 쌍으로 괴롭혔다. 희한하게 도재도 속이 안 좋았다. 평생 감기도 잘 안 걸리고 체하는 기분이 뭔지도 잘 모르는 도재는 24시간 얹힌 느낌으로 고통 받았다.
‘저것들은 알파다.’
도재는 뜻대로 안 되는 자녀 계획에 이것만은 확신했다. 동족을 혐오하는 아기 알파들이 엄마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며 아빠 알파를 엿 먹이는 것이 분명했다.
저만 엿 먹이는 건 ‘까부네.’하고 말 일인데 시우까지 못 살게 구는 것에 도재는 굉장히 심기가 불편했다. 아기들은 말을 알아듣게 되는 순간 영문도 모르고 혼날 예정이었다. 형질이나 성별 전부 상관없이 그냥 무조건 ‘시우 닮은 애’가 바라는 바였던 도재는 제 강력한 유전자에 망조를 느꼈다.
저 같은 애라니, 생각만 해도 토가 나왔다.
너랑 똑같은 애 낳아서 키워보라는 어머니의 저주가 들어맞는 건 아닐까. 시우같이 생긴 알파가 있을 리 없지만 도재는 얼굴이라도 시우를 닮길 간절히 바랄 따름이었다. 그럼 무슨 짓을 해도 봐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배 속에 쌍둥이를 얻은 대신 식욕을 잃은 둘은 내내 입술만 붙이고 있었다. 먹고 싶은 게 통 이거 말고는 없었다.
“우리 애기 오늘도 먹고 싶은 게 없어?”
“네… 얘네들 먹고 싶은 거 없대요….”
“아니 걔네 말고. 애기. 너.”
“아… 저도 없는데….”
뱃속에 진짜 아기가 있는데 아직도 저보고 애기, 애기 거려서 심히 헷갈리는 시우였다.
시우는 좀 간지럽긴 해도 제 결핍을 채워주는 그 아기 취급이 퍽 좋았는데 애기 말고도 저를 부르는 애칭이 이것저것 많으니 아쉽지만 이제 아기를 졸업하기로 했다. 양보할 줄 아는 것부터가 도재보다는 확실히 어른스러웠다.
시우는 ‘여보 있잖아요…’하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부들부들 말랑말랑 죄 핥고 싶은 얼굴을 하고선 아기를 그만하겠다는 시우의 의사는 불러주는 사람이 그럴 마음이 없어 기각되었다.
“헷갈리면 걔네들 이름을 지으면 되지.”
“아! 태명이요?”
“어. 뭐라고 부를래? 아, 잠깐. 어우씨… 서시우 뽀뽀. 뽀뽀 빨리.”
속이 울렁울렁하면 입술을 붙여야 했다. 이 부부의 입덧 치료제였다. 도대체 이게 무슨 작용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냥 단순히 뽀뽀가 하고 싶어 개수작을 부리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렇게 도재와 시우는 부둥켜안고 입술을 붙인 채로 쌍둥이들의 태명을 지었다.
집에 가만히 있는데도 멀미를 하니 안방 창문은 한겨울에도 전부 열려 있었다. 신선한 공기가 통해야 좀 나았다. 보일러를 지글지글 끓도록 틀고 이불 속에 들어가 있었다. 도재의 팔을 베고 누운 시우가 낸 의견은 튼튼이, 씩씩이, 까꿍이, 낑깡이, 쑥쑥이, 쭉쭉이 등등이었다.
“음… 누렁이, 흰둥이, 바둑이, 방울이는 어때? 시우 닮았으면 좋겠거든.”
“저는 여보 닮았으면 좋겠는데… 헤헤.”
“미안한데 그렇지 않아도 이미 나 닮은 거 같아. 우리 순둥이 닮았으면 이럴 리가 없지.”
“아… 그래서 자꾸 뽀뽀만 시키나?”
음식은 까탈을 부리는데 뽀뽀는 더럽게 밝히는 게 딱 한도재 주니어였다. 그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시우의 말을 들으니 도재는 꽤나 기특한 것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럼 뽀뽀랑 뽀또할까?”
“좋아요.”
“그나저나 우리 애긴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는데 이것들은 왜 이러지?”
“이것들 말고… 뽀뽀랑 뽀또.”
도재의 덩치로 부르기엔 너무 낯간지러운 태명이라 지어만 주고 부를 생각은 썩 없었는데 안 불러주면 아기들보다도 시우가 더 서운해 할 것 같았다. 도재는 시우의 배를 살살 어루만지며 다시 말했다.
“그래, 뽀뽀랑 뽀또. 뽀뽀랑 뽀또는 왜 그럴까. 우리 애기 임신했는데 배가 갈수록 더 납작하잖아. 남편 속상하게.”
그러다 배를 어루만지던 손이 구렁이 담 넘듯 내려와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 쓰다듬던 손길이 서서히 주물럭으로 바뀌어 가는 건 순식간이었다. 당연한 수순이니 말이다.
꽉 그러쥔 그곳의 그립감은 여전했다. 어떻게 만들어진 엉덩이면 이러는지 도재는 이거 잠깐 만졌다고 금세 바지 위로 불거지려 하는 제 중심을 느꼈다. 밥은 얼마든지 굶겠는데 이건 진짜 고역이었다.
“하으읏….”
“알았어 안 만질게. 미안, 미안.”
성감이 예민한 시우를 더 이상 자극하면 배가 아플 수도 있기에 도재는 떨어지기 싫다고 아우성치는 손바닥을 떼 대신 시우의 앞머리를 쓸어 올려주었다. 예쁘다, 예쁘다 하는 담백한 손길이었다.
삽입만 안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어떠한 형태로든 성적으로 흥분하거나 오르가슴을 느끼면 안이 수축할 수 있어 초기엔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고로 입술 박치기 말고는 거의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더럽게 힘들었다.
“근데… 뽀뽀라고 하면 진짜 뽀뽀 말하는 건지 아기 뽀뽀 부르는 건지 헷갈리지 않을까요?”
“그럼 우린 뽀뽀 나올 때까지 키스만 하면 되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도재가 붙이고 있던 입술 사이로 말캉하고 뜨거운 혀를 밀어 넣었다. 시우의 입천장을 혀로 한 번 긁어준 도재는 그렇게 간질간질 입 안 여기저기를 혀로 긁어주다 저의 어떤 갈망을 담아 쭙쭙 소리가 날 정도로 시우의 혀를 빨기 시작했다.
분명 키스를 하는 중인데 뒤를 애무해주는 것만 같았다. 요즘 부끄럽게 야한 꿈도 자주 꾸는 시우는 야한 짓을 직접 하지 못하니 상상력만 늘었다. 혼이 쏙 빠지는 키스를 받는 중에 제 뒤를 빨고 있는 도재를 떠올렸다. 뽀뽀와 뽀또는 제 몸 안에 있으니 왠지 제 생각도 공유될 것 같아 냉큼 응큼한 상상을 지우고 속으로 애국가의 가사를 떠올리려 노력해보았다.
“으음… 음…! 하아… 여보… 저 밑에, 밑에.”
“섰어?”
“쪼끔요….”
“응, 네 남편은 터지게 섰어. 잠깐 있어.”
쪽- 시우의 이마에 뽀뽀를 해주고 일어선 도재는 홀로 고독한 처리를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
시우가 겨울 방학을 하면 둘은 당연한 일인 듯 휴가를 떠났었다. 스키장을 가기도 했고 사시사철 여름인 휴양지나 계절이 반대인 남반구로 가서 서핑을 하기도 했다.
물론 스키장은 푹신한 눈 위에 엉덩방아를 찧으러 가는 수준이었고, 서핑은 바닷물만 잔뜩 먹으러 가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시우는 운동 신경이 썩 좋지 않아도 부지런히 살아 체력은 좋았다. 그런 곳에 풀어주면 데려간 사람이 다 뿌듯할 만큼 신나게 뛰어 놀곤 했다.
휴가를 가 기운 쭉 빠지게 놀고 나면 집에 돌아와 얌전히 책을 읽고 정원을 가꿨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건강하라고 도재가 밸런스를 맞춰가며 심혈을 기울여 키웠는데, 이번엔 결혼식도, 허니문도 취소인 마당에 겨울 휴가는 사치였다.
곧 졸업식을 앞두고 있으니 시우의 마지막 겨울방학이었다. 하지만 임신 초기라 안정기가 올 때까지 조심하기도 해야 하고 입덧이 너무 심해 먹은 게 없으니 기운도 없어 비실비실 잠만 왔다. 휴가는커녕 현재로서는 졸업식도 갈 수 있을는지 의문이었다.
“어이고, 우리 강아지 보드 타러 간다고 기말고사 전부터 기대했는데.”
도재가 시우의 엉덩이를 두드려주며 어르는 투로 말하자 시우는 힘없이 웃어 보였다. 원래였다면 결혼 준비 때문에 바빴을 터라 소박하게 강원도라도 다녀오는 걸로 약속했었는데 스키장은 고사하고 집 앞마당에 쌓인 눈으로 눈사람도 못 만들었다.
“괜찮아요.”
하나도 안 괜찮아 보이는 시우가 대답만 씩씩하게 하고 활기를 잃어가는 게 안쓰러웠다. 도재는 아무리 상태가 안 좋더라도 졸업식 참석은 강행하기로 했다. 학사모를 쓰고 꽃다발을 든 모습을 사진으로 꼭 찍어줘야 했기 때문이다.
시우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식에 사진만 없는 게 아니라 아예 와 준 사람이 없었다. 물론 졸업식에 아무도 오지 않은 학생이 시우만 있었던 건 아니다.
집에 가면 보는데 굳이 올 거 있냐 하는 쿨가이 유형과 부모님이 맞벌이라 올 수는 없지만 친구들과 맛있는 거 사먹으라고 용돈으로 대신 받아온 유형, 그리고 서시우. 이 정도로 분류되었다.
이제 진짜 가족이 생긴 시우가 대학 졸업식마저 추억이 없으면 평생 아쉽고 씁쓸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아 도재는 아들 내외가 친 사고를 수습하러 미국에 가 있는 부모님까지 소환하였다.
나중에 손주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려면 잘 보여야하기에 도재의 부모님들은 아들의 소환에 흔쾌히 응하기로 했다. 손주를 낳아줄 새아가의 행복을 위해 장하다, 예쁘다 띄워주며 상전의 기분을 맞춰주는 게 이들의 임무였다.
집안에 애가 있으니 가족들이 확실히 더 똘똘 뭉치는 게 있었다. 꼬맹이 하나 때문에 온 집안 어른들이 움직이는 모양새였지만 전보다 화목하기에 도재의 부모님들은 흐뭇하게 한국으로 향했다.
그렇게 시우의 졸업식 날이었다.
도재와 시우는 같이 K대 화장실에서 내리 토만 하다 오더라도 무조건 간다는 일념으로 투지를 불태웠다. 각자 따로 차를 몰아 학교로 향했다. 직접 운전하는 사람은 멀미를 잘 안 하니 자동차를 쳐다만 봐도 속이 안 좋은 둘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서시우, 키스 해주고 가야지.”
도재가 손을 흔들며 돌아서던 시우를 불러 세웠다.
시우는 못 가면 어쩔 수 없다고, 괜찮다고 그럴 땐 언제고 엄청 설레는지 아침부터 엉덩이를 씰룩씰룩 기분 좋은 티를 냈다. 도재가 부르니 쪼르르 다가와 도재의 아랫입술을 한 번 감쳐물고는 차에 올랐다.
안 갔으면 울었을 게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아침에 미음을 조금 뜨긴 했는데 반의 반 그릇도 다 못 먹었다. 도재와 시우는 운전하다 당이 떨어질세라 신맛이 강한 레몬 맛 사탕을 입에 한가득 물었다. 그렇게 둘의 차가 비서와 경호원들을 상석에 태우고 출발했다.
***
시우는 졸업식에 갔는데도 울었다. 아주 펑펑 대성통곡을 했다.
일단 졸업식이란 게 감수성이 예민한 임산부가 아니더라도 웬만한 모든 사람들에게 조금은 찡하고 슬프다. 도재의 어머니는 제가 한때 거닐던 캠퍼스를 보며 제 졸업식도 아닌데 살짝 눈물을 비추셨다.
이렇게 가뜩이나 찡한 게 졸업식인데 사연이 기구한 시우는 더 할 수밖에 없었다.
자기가 열심히 벌었던 등록금이 털렸던 일도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고, 졸업 축하한다고 가족들이 와준 게 처음이라 너무 감동이었다. 스키장에 가지 못한 것도 사실 서러웠고, 졸업식 날 꼭 짜장면을 먹기로 했는데 짜장면은 생각만 해도 토가 나와 속상했다. 정이 많이 든 학교인데 떠나야 하는 것도 슬펐다.
이 밖에도 수만 가지 이유로 시우는 수도꼭지가 터져 제가 코 묻은 돈을 모아 사준 도재의 셔츠를 눈물로 적셨다. 도재는 시우가 제 셔츠에 눈물을 묻히던 콧물을 묻히던 애를 안아 달래기 바빴다. 12월에 쳐버린 사고가 애를 울려 죄스러울 따름이었다.
“어이구, 서러웠어.”
“끄흐읍…! 보드…!”
뽀뽀랑 뽀또가 스노보드를 못 타게 한다고 우는 건 조금 코미디였는데 도재는 어깨가 부들부들 떨릴 때까지 웃음을 참아야 했다. 웃었다간 놀린다고 더 울 것 같았다. 임산부의 감수성을 함부로 자극해선 안 되었다.
도재의 지시를 받고 경호원들이 잽싸게 뛰어가 키위주스를 사왔다. 혹시나 키위주스도 속에서 안 받을까 봐 그 카페에 파는 생과일주스는 종류별로 전부 사온 참이었다. 도재가 뚝 하라며 터프한 손길로 벅벅 눈물을 닦아주고 주스를 물렸다. 시우의 수도꼭지는 키위주스에 잠겨갔다.
상전 시우가 키위주스를 택하시어 나머지는 남은 것들 중에서 골라잡았다. 짬 처리 비슷한 거였는데 도재의 아버지는 이런 을의 경험이 처음이라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그렇다고 손주 낳아줄 새아가의 키위주스를 뺏어 먹을 건 또 아니기에 군소리는 하지 않았다.
사약 커피만 마실 것 같은 풍채 남다른 어른들이 딸기는 빨간색, 망고는 노란색, 키위는 초록색 다 같이 알록달록한 주스를 손에 들고 있었다. 퍽 장관이었다. 도재가 빨대를 빠느라 무아지경인 시우의 볼을 콕콕 찔렀다.
“서시우, 애기 안 한다며. 애기한테는 학사 안 주는데. 너 졸업 안 시켜주는 거 아냐?”
한바탕 울고 나니까 머쓱한 시우가 금세 빈 컵을 만들고 바보같이 웃었다.
“헤헤, 뽀뽀랑 뽀또도 이건 좋은가 봐요.”
“우리 애기 울다가 웃다가 이따가 엉덩이 좀 봐야겠다.”
“집에 가서 보세요.”
보지 말라고 앙칼지게 튕기는 법이 한 번 없는 순둥이가 예뻐 도재가 시원한 미소를 입에 걸었다. 엄마를 보고 배우는 게 좀 있어보라며 납작하고 평평한 시우의 배에 대고 뽀뽀와 뽀또에게 훈계질을 했다.
시우는 그런 도재를 보며 기분을 완전 회복했는지 해사하게 웃었다. 웃으니 웃는다고 칭찬 받았다. 흡사 유치원 졸업식 같은 느낌이었다.
김 비서님도, 경호원 형들도, 도재도, 시부모님도 전부 따로 꽃다발을 준비했다. 시우는 혼자서는 다 들지도 못할 만큼 많은 꽃들 사이에 묻혀 그간 찍지 못한 졸업식 사진을 원 없이 찍었다.
파파라치 사진도 많이 찍혔다. 한도재와 한도재의 약혼자가 나온 공식석상 비슷한 자리여서 큰 주목을 받았다.
하필 같은 날, 같은 학교를 다니던 J그룹의 막내딸도 졸업하게 되어 도재네와 누가누가 더 셀럽인지 경쟁하듯 카메라 셔터 세례를 받았다. 더 유명하고, 더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대상에 카메라가 몰리기 마련이니 두 집안 사이에는 유치한 기 싸움이 벌어졌다.
울어서 딸기코가 된 시우가 도재의 키스를 받으며 기자들이 환장할 그림을 연출해주었다. 의미는 없지만 지면 자존심 상하는 경쟁에선 도재네가 승리했다.
그리고 그 달콤한 현장을 담은 사진에 한때 시우의 가족이었던 사람들은 이번에도 역시 부러움을 넘어 통탄을 금치 못했다. 차라리 소식을 모르고 사는 게 낫지 이건 뭐 모를 수도 없게 만드니 정신적으로 큰 고통이 일었다.
일생이 그냥 돈 많은 셀럽이었어서 쇼맨십을 좀 할 줄 아는 도재는 보란 듯이 시우에게 졸업선물로 준비한 시계를 채워주었다. 네이비색 가죽 스트랩에 원형 베젤을 둘러 70여 개의 다이아몬드가 박혀있었다. 푸르고 반짝이는 시계는 시우의 흰 손목과 퍽 잘 어울렸다.
그렇게 손목 사진이 5백 장쯤 찍혔을 때 도재는 시계에 썩 관심이 없는 시우의 손을 잡고 홀연히 졸업식장을 떠났다. 애가 6천 원짜리 키위주스가 또 먹고 싶대서 말이다. 두 잔째 역시 시원하게 들이켠 시우가 민망함에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뽀뽀랑 뽀또가 먹고 싶었나…하하.”
“걔네들 주지 말고 우리 애기 먹어. 한 잔 더 먹을래?”
“그래도 돼요…? 헤헤.”
“되죠. 이리와 안아. 추우니까 안고 먹어.”
***
예약해 두었던 중식당엔 부모님만 보내기로 했다. 꼭 짜장면이 아니더라도 기름기 많은 중국음식은 생각만 해도 힘이 들었다.
“어쩜 뽀뽀랑 뽀또 하는 짓이 한도재 배 속에 있을 때랑 똑같네.”
어머님은 농담 한마디를 던졌다 부정 타니까 그런 소린 꺼내지도 말라는 도재의 정색을 받았다. 저들이 미국에서 결혼한답시고 벌려놓은 사고를 대신 수습해주고 오는 길인데 말이다.
썩을 놈이란 욕지거리가 등 뒤로 들려왔지만 도재는 익숙하게 무시하고 시우와 둘만의 보금자리로 돌아갔다.
***
졸업식 후엔 예정보다 더 간소화된 결혼식을 올렸다. 돈을 최대한 많이 쓴 스몰웨딩이 컨셉이었다.
작은 규모지만 동화 같은 결혼식이었다. 그런 결혼식을 올리면서도 어째 주인공들인 알파 신랑과 오메가 신랑은 조금 침울해 했다. 입덧은 절정에 올랐고 결혼식의 꽃인 ‘첫날밤’을 보낼 수 없음에 진짜 첫날밤도 아닌 주제에 모든 의욕을 상실한 것이다.
얌전하게 밝히는 서시우와 그냥 대놓고 밝히는 한도재는 두 달 가까이 키스마저 성에 차도록 진득하게 하지 못해 욕구불만이 심한 상태였다. 이런 파티는 피곤하기만 할 뿐 둘은 그저 안방에 틀어박혀 끌어안고 있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씨발.”
좋은 날 뜬금없이 욕지거리를 내뱉는 도재에 고운 한복 차림의 어머니가 손님들 있으니 좋은 말로 할 때 입조심하라며 복화술로 작게 읊조렸다. 하지만 타인의 눈치 따위를 볼 필요가 없는 환경에서 자란 아들은 말을 들어먹지 않았다.
“쓸데없이 존나 예쁜 걸 입혔어.”
어머니가 고른 흰 턱시도를 입은 시우는 눈송이 같았다. 혀에 닿으면 녹아버리는 눈송이. 옷이고 머리고 특별한 날임을 알리듯 정갈하게 세팅 되어 있는 상태를 손 가는 대로 다 흐트러트려 버리고 싶었다. 인간의 파괴 본능을 충족시키기에 아주 제격일 듯했다.
사람들이 두부를 보면 부수고 싶어 하듯 도재는 하필 턱시도도 흰색을 입은 시우를 위에는 입히고 바지만 내려서 부서지도록 마구 안고 싶었다. 죄 구겨지는 셔츠와 재킷을 떠올리며 도재는 이를 악물었다.
부부는 이심전심이라고 시우도 별반 다를 거 없는 상태였다.
시우는 007 시리즈라도 찍는 것처럼 새까만 턱시도 차림을 한 도재가 목에 단 보타이를 거칠게 끌어 헤치며 저에게 다가오는 상상을 멈출 수 없었다. ‘휴… 영화를 너무 많이 봤지 내가.’ 시우는 작게 한숨짓다 뽀뽀와 뽀또에게 자신의 음탕함을 사과하며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도재네 집안과 가장 가까운 이들만 추리고 추려서 초대했다. 다들 한자리씩 한다하는 사람들이라 하객들은 우성 알파와 그들의 배우자인 우성 오메가가 주를 이뤘다. 밖에 나가면 잘 찾아보기도 힘든 형질들이 여기 다 모인 듯 했다.
시우 쪽 하객도 있었다. 도재는 시우에게 초대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누구든 마음껏 초대하라고 했지만 친하다 표현할 수 있는 친구가 둘뿐이어서 둘만 불렀다. 대학 4년 내내 붙어 다닌 동기 재민과 1학년 때 우연히 그룹 과제를 함께 하게 된 인연으로 후에 과제나 시험이 있으면 서로 도움을 주며 가깝게 지낸 지은이었다.
시우는 수업을 마치면 집으로 곧장 귀가하기 바쁜 재미없는 친구였는데 둘은 그런 시우를 이해해주고 늘 시우를 챙겨 함께 다닌 고마운 친구들이었다.
재민과 지은은 흔쾌히 참석했다. 엄청난 집안의 결혼식이라 축의금이 조금 걱정이었는데 시우가 축의금은 모두에게 일괄 받지 않을 것이니 염려 말라 일러 가벼운 마음으로 올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오고 나니 다 같이 돈을 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친구들은 주눅이 들었다. 베타인 재민과 지은은 우성 알파와 우성 오메가들 사이에 둘러싸여 소수 개체가 되어버렸다. 둘은 하나씩 서빙 되어 나오는 코스요리가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모르겠는 기분이었다.
사실 하객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동안 신랑들이 돌며 인사를 드리고 축하를 받는 뭐 그런 흔한 광경이 펼쳐져야 하는 게 맞았지만, 음식 냄새를 쌍으로 맡지 못하는 부부는 손님들 앞에서 토를 할 순 없기에 예식만 짧게 마치고 퇴장을 하기로 했다.
나가려던 시우가 아차! 하는 표정으로 멈춰 섰다.
“아! 재민이랑 지은이.”
“걔네 뭐 애야? 밥 먹고 알아서 가겠지. 가자 애기야.”
하나는 시우랑 동갑이고 심지어 다른 하나는 시우보다 한 살 어린데 도재는 재민과 지은에게만 엄격한 어른의 잣대를 들이밀었다. 시우와 친하고 시우의 챙김을 받는 것들에게 내는 심술이었다.
친구들이 저 때문에 뻘쭘할 수도 있는 자리에 와주었는데 이대로 무시하는 건 너무 미안해 시우는 갈등했다. 인사는 하고 싶은데 도재는 오라 그러고, 혼자라도 후딱 뛰어가서 인사하고 올까 고민이었다.
주인이 오라 그러면 깨갱하고 포기할 강아지이지만 억지로 잡아끌면 시우는 친구들이 눈에 밟힐 것이다. 시우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순 없어 당연히 도재가 졌다.
“어휴, 우리 상전 진짜. 서시우 손.”
재민과 지은을 같이 찾아 나서준다는 소리이기에 시우는 환하게 웃으며 도재가 내민 손을 잡았다. 도재의 볼에 뽀뽀를 해주며 고맙다고 속삭이니 이미 져 있던 도재는 한번 더 완패했다.
강아진데 사람 도리는 또 잘 하고 사는 시우여서 도재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피식 웃음 지었다. 하여간 귀여워.
결국 재민과 지은을 찾아 시우는 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챙겼다. 도재의 손을 꼭 붙들고 다가와 친구들에게 살갑게 인사했다. 그 모습에 친구들과 같은 테이블에 배정된 하객들뿐만 아니라 그 주위 모든 하객들의 시선이 한데로 모였다.
재민은 ‘서슈’, 지은은 ‘슈오빠’ 라고 시우를 불렀다. 친한 친구를 애칭으로 부르는 모습은 그들의 젊음과 친밀도를 광고했다. 되게 애들 같은데 그래서 더 막역해 보였다.
자신들의 권세를 자랑하기 바쁜 사람들 사이에서 평범하게 쭈그리고 있던 베타들은 시우와 도재가 떠나고 은근히 무시하는 눈빛을 던지던 이들로부터 무수한 질문 세례를 받았다. 어떻게든 이 집안에 줄을 대고 싶은 사람들에겐 참 갖고 싶은 인맥이었다.
***
어머님, 아버님이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아들 내외의 결혼식 뒤처리를 맡았다. 시우와 도재는 집으로 돌아왔다. 결혼식은 안 울고 넘어가나 싶었던 시우는 재민과 지은이 건넨 선물을 풀어보고 졸업식에 이어 다시 한 번 눈시울을 붉혔다.
안 울려고 눈물만 그렁그렁 매달고 씩씩하게 참고 있었는데 도재가 볼을 쿡 찌르며 ‘애기 울어?’ 해서 꼭지가 터졌다. 끄흑…! 저번엔 ‘보드-’ 하고 울더니, 이번엔 ‘키위-’ 하고 울었다.
“어이고, 이번엔 누가 그랬어.”
도재가 팔을 벌리니 시우는 코를 훌쩍 먹으며 다가와 머리를 비볐다. 왁스로 고정시킨 시우의 머리가 헝클어졌다. 더럽게 위험한 모습이었다.
도재는 우는 시우를 보며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했던 말씀이 불현듯 떠올랐다. 울면 고추가 떨어진다는 말이었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지가 언젠데 지금 이 순간 왜 그 소리가 생각나는지 도재도 알 수 없었다.
우성 알파들은 꼬마 때부터 어른들 머리 꼭대기에 올라 이겨 먹으려 들었다. 기가 여간 센 것이 아니라 도재의 할아버지는 도재에게 울면 고추가 떨어진다는 노인네 같은 소리를 그다지 할 기회가 없었다. 애가 안 우니까.
딱 한 번 들어보았다. 승부욕이 미쳐버린 도재의 아버지가 여섯 살과의 달리기 경주에서 부득불 이겨 먹어 똑같이 승부욕이 미쳐있던 도재가 분해서 울었을 때였다.
‘한도재. 너 울면 고추 떨어진다. 뚝 그쳐.’
‘뻥치지 마, 할아버지.’
‘…….’
도재는 제가 울고 말고도 제 맘대로 정해야 하는 애였다. 짧았던 할아버지와의 대화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그걸 이딴 식으로 활용할 줄은 몰랐는데. 도재는 우는 시우의 바지 안으로 손을 들이밀어 떨어졌는지 확인해보겠단 개수작을 부리고 싶었다.
그럼 우리 순둥이는 거절도 안 하고 ‘확인하고 싶으면 하세요.’하며 내버려 두겠지. 그러다 손길이 조금 끈적해지면 눈물 매달린 눈으로 앙앙 울 것이다.
‘하 씹… 한뽀뽀, 한뽀또.’
도재는 애꿎은 입술만 깨물며 제 새끼들의 이름을 되뇌었다. 뚝뚝 처연히 눈물을 떨구는 시우의 뺨을 엄지로 슥슥 닦아주고 깊은 심호흡을 내뱉으며 내면을 다스렸다.
아니 근데 이것들은 뭘 줬길래 애를 울리나, 도재가 슬쩍 상자 안을 들여다보았다. 친구들은 학교 앞 카페에서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키위 맛 시럽, 얼음 푸는 스쿱, 냉동 키위 한 봉, 그리고 나름 백화점에서 사온 듯한 포장이 번지르르한 생키위를 주었다.
시우가 운 포인트는 편지였다. 편지에는 사장님께 사정사정해서 받아온 영업 비밀이 적혀있었다. 생키위 두 개, 냉동 키위 한 개, 키위 시럽 세 펌프, 얼음 크게 한 스쿱, 등등.
[이제 자주 못 올 테니 집에서 만들어 먹어. 사장님도 너 보고 싶다고 전해달래. 근데 사장님이 이 레시피로 카페 차리면 고소할 거래. 행복해라! - 재민]
[카페에서 쓰는 블렌더도 사주고 싶었는데 너무 비싸서 못 샀어요ㅠ 4년간 오빠한테 얻어먹은 게 얼만데… 결혼 너무 축하하고 취뽀하면 재민오빠랑 뿜빠이 해서 블렌더도 꼭 사드릴게요. 행복하세요! - 지은]
‘저렇게 깊은 통에 든 시럽을 세 펌프나 넣으니 맛있다고 먹지.’
편지를 읽은 도재의 감상은 이게 전부였다. 우리 애기 용케 이가 안 썩네, 설탕물을 입에 끼얹고 살았는데. 하지만 편지에 대한 제 감상은 속으로만 삼키고 말없이 시우를 한참 안아주었다. 도재는 시우의 이마에 쪽쪽 뽀뽀를 해주며 아주머니를 불러 친구들의 선물과 레시피를 전달했다.
“애 우니까 빨리 좀 부탁해요.”
‘우니까 꼴려서 원,’ 이건 혼잣말로 뱉었다.
눈물을 그친 시우가 정말 신기하게도 파는 것과 맛이 똑같은 키위주스를 신나게 마셨다. 그러다 도재에게도 입으로 한 모금 넘겨주었다. 넘겨주던 중에 도재의 턱에 흘린 주스 한 방울을 혀를 내어 핥아 올렸다. 꿈틀하는 도재의 아래가 느껴졌다.
“하….”
시우는 낮게 탄식하며 외로이 욕실로 향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도재도 똑같이 입덧으로 고생하는 건 마찬가진데 지난 졸업식 때부터 자꾸 질질 짜고 위로만 받는 게 미안하다는 생각이었다.
‘오늘은 명색이 결혼식 날이기도 한데 뽀뽀와 뽀또가 아프지 않게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하나?’
시우는 오랜만에 골 때리는 짓을 구상했다.
***
욕실에서는 낮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도재는 시우가 혀를 내어 제 턱을 핥던 모습을 상상하며 성난 아래를 풀고 있었다. 도재의 상상 속에서 시우의 혀는 턱을 따라 내려가 제 몸 구석구석에 닿았다. 그러다 나중엔 제 혀가 시우의 몸 이곳저곳에 닿았다. 어느 쪽 상상이 더 맛있는지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시우는 쪼르르 욕실 앞으로 가 닫힌 문 앞에 아빠 다리를 하고 앉았다.
혼자 욕정하고 계시는 남편을 위해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골똘히 생각했다. 제가 세운 건 제가 책임을 져야한다는 이상한 책임감이 있었다. 도재가 밥 먹듯이 시우의 손을 끌어다 제 중심에 얹어주며 책임지라 그래서 세뇌 비슷하게 당한 것 같다.
언뜻 들려오는 도재의 낮은 목소리는 ‘하’와 ‘씹’ 두 음절뿐이었지만 너무도 익숙한 남편의 흥분을 알리는 소리에 시우는 얼굴을 붉혔다. 그러다 한 번씩 ‘시우야,’ 하고 낮게 들려오는 제 이름은 남편의 자위 대상이 저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어 미치게 부끄럽고 미치게 만족스러웠다.
‘뽀뽀야, 뽀또야. 이를 어쩌면 좋지?’
아직 임신 초기인 시우의 뱃속에 들어있는 뽀뽀와 뽀또는 안정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성적으로 흥분하게 되면 아랫배가 찌릿하며 수축되는 느낌이 드는데 그럼 그 안에 든 콩알만한 뽀뽀랑 뽀또도 같이 쭈그러들 수 있어 조심해야 했다.
조금 한다고 다 잘못 되는 건 아니지만 남자 오메가를 전문으로 봐온 선생님은 ‘젊고 혈기왕성한 남자 오메가’일수록 오히려 더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도재가 조금만 만져줘도 벌떡벌떡 세우곤 무구한 얼굴로 앙앙 울어대는 시우를 저격한 말이었다.
의사는 통제가 안 될 것 같은 사랑꾼 부부에게는 강경하게 그냥 하지 말라고 하는데 이 부부에게도 역시 그랬다. 3개월 차가 넘어갈 때까지 어떠한 성적인 터치도 애초에 시작을 안 하는 게 속 편한 길이라고 했다.
다짜고짜 입을 갖다 대 제가 대신 빨아주고 싶어도 시우는 도재의 것을 빨며 제 것을 야무지게 세우는 특기가 있다. 같이 흥분해버린다.
도재가 제 머리칼을 그러쥐고 잡아당길 듯 강한 힘을 주었다가 이내 뭔가를 참는 듯 더운 숨을 뱉으며 힘을 풀고 제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는 게 좋았다. 마구 처박고 싶은 게 느껴지는데 포기하곤 맛있게 잘 빤다고 칭찬해줄 때, 저를 향한 도재의 사랑을 느끼며 흥분한다.
‘휴, 펠라는 무슨 식으로 하든 안 되겠다.’
도재의 것을 무는 상상만 해도 벌써 뽀뽀와 뽀또가 아프다고 아우성치는 게 느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썩 해줄 수 있는 건 없지만 일단 도재만 흥분하고 저는 흥분하지 않기 위해서는 제 시각과 청각을 차단하는 게 우선일 듯 했다. 시청각이 두루 섹시한 남편을 만난 죄였다.
시우는 냉큼 일어나 안대와 이어플러그를 찾아왔다. 공부에 집중하기 위한 용도였던 주황색 이어 플러그와 지은이 예전에 아무 날도 아닌데 그냥 웃기다며 선물로 준 개구리 수면 안대였다. 그 안대는 이리 보고 저리 보고 그 어떤 썩어빠진 마음으로 들여다보아도 단 1그램의 섹시함도 없었다.
제 아무리 음탕한 시우라도 이걸 끼고서는 평화롭고 잔잔한 마음 상태가 유지될 것이다.
개구리는 쓸데없이 아련하고 어딘지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눈두덩에 개구리 눈알을 단 저를 보고 남편의 뜨거운 심장도 차갑게 식혀버리진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아, 뒤 돌아서 엉덩이만 보여줘야겠다.’
***
딸딸이 친 김에 다 하면 바로 씻으려고 전라의 상태로 제 페니스를 잡고 흔들던 도재는 사실 아까부터 문 앞에 있는 강아지의 기척을 느끼고 있었다. 문 틈 사이로 미약하게 느껴지는 시우의 향기로 도재의 손에 더욱 힘이 실렸다.
문 앞에서 무슨 작당을 꾸미는 건지, 아니면 그냥 궁금해서 듣고 있는 건지 알 길은 없지만 시우가 저를 기다리는 모습만 생각하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게 끓어올랐다.
'빨리 빼고 가야겠네, 우리 똥강아지 기다리네.'
그런데 얌전히 제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것 같던 시우가 똑똑, 노크를 해왔다. 살짝 놀란 도재가 무슨 일인가 하여 대번에 문을 열어주었다. 잔뜩 발기한 상태인데 수건을 두른다던가 하여 가릴 생각 따위는 하지도 않았다.
시우는 당당한 자연인의 모습으로 저를 맞아주는 도재에 시선을 내리깔고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시우 왜, 놀아줘? 우리 애기 혼자 심심했어? 그러게 왜 주스 먹다 말고 남편 자지를 세워.”
“…….”
시우는 손에 초록색 무언가를 꾹 쥐고 부끄러운지 얼굴을 홍당무로 만들었다. 벗은 거 하루 이틀 보냐고 도재가 볼을 쿡쿡 찔러도 시우는 뭐라 말할 듯 말 듯 입술은 달싹이는데 쉽사리 말을 내뱉지 못했다.
이는 뭔가 골 때리는 짓이 하고 싶다는 신호였다.
얘가 또 무슨 짓이 하고 싶어 이러나 궁금해진 도재가 고개를 숙여 귀를 가까이 갖다 대 주자 시우가 속닥속닥 귓속말을 해왔다. 어차피 둘밖에 없는데 그냥은 말 못하고 귓속말이면 했다.
“여보 보여줄 게 있어서요….”
도재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시우는 꾸물꾸물 움직이기 시작했다. 훌러덩 훌러덩 옷을 벗더니 귀마개를 양쪽 귀에 콕 박아 넣고 보석 같은 눈을 웬 개구리 눈알로 가렸다.
도재의 입술 사이로는 간신히 참아낸 웃음이 푸흑, 끄흑 이상한 소리를 내며 비집고 나왔다. 제가 웃어버리면 시우가 자신감을 잃을 테니 도재는 엄숙하고 진지하게 똥강아지 하는 양을 지켜봐 주었다. 뽀뽀와 뽀또의 숭고한 탄생 같은 걸 떠올렸다.
시우의 결혼 선물은 엉덩이였다.
자위를 제 엉덩이 보면서 하란다. 개구리로 시야를 차단한 시우는 말 그대로 눈에 뵈는 게 없어져서 용기가 조금 생겼는지 한쪽 팔을 뒤로 뻗쳐 제 볼기를 살짝 벌려 주었다. 나름의 퍼포먼스였던 것 같다.
개구리에 식어가던 좆이 빚어놓은 듯 떨어지는 시우의 뒤태에 꿈틀 힘을 주며 다시 반응했다. 엉덩이를 벌리는 깜찍한 짓을 할 땐 손이 뇌를 거치지 않고 움직였다. 도재가 제 페니스에 손을 올려 홀린 듯이 흔들었다.
“씹. 존나게 꼴리네. 근데 우리 애긴 얼굴이 제일 맛있는데? 얼굴 안 보여줄 거면 엉덩이 더 벌려봐. 두 손으로.”
막았는데도 작게 들려오는 음험하고 섹시한 목소리에 시우는 우는 소리를 냈다. 이어플러그를 꽂은 귀 위로 다시 한 번 제 손을 덮어 이중으로 막았다. 제 볼기를 벌리려 가져갔던 한 쪽 손도 다시 귀를 막는데 사용해야했다.
“알았어, 알았어. 조용히 감상 할게.”
그래 구멍 보여주면 사고나 치지.
들리는지 안 들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도재는 시우를 얼러주고 제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시우가 저러고 가만 서 있는 것도 힘들 것 같았다. 욕실 안에 박자가 조금 빨라진 울림이 일었다. 탁탁탁탁.
“으윽…!”
이 악문 신음이 터지며 시우의 등에 하얗고 뜨거운 액체가 튀어 올랐다.
아무것도 안 듣고, 아무것도 안 보던 시우는 속으로 애국가를 부르며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금수강산 같은 걸 생각하고 있었다. 나름 평화로웠는데, 도재의 페로몬 덩어리가 등을 적시는 순간 읏! 하고 작게 몸을 떨었다.
도재가 얼른 티슈를 뽑아 시우의 등을 닦았다. 시우는 그제야 개구리 안대를 이마 위로 올리고 이어플러그를 뺐다. 다 했냐는 듯 빼꼼 도재를 돌아보는 시우는 정말이지 더럽게 사랑스러웠다. 도재가 시우의 양 볼따구를 붙잡고 쪽쪽쪽쪽 무수한 뽀뽀 비를 내렸다. 시우는 사랑받을 짓을 해 뿌듯한 듯 바보같이 실실 웃었다.
한 번 뺐다고 쉬이 가라앉지 않는 좆이 바로 우성 알파의 좆인데 부릅뜬 개구리와 눈을 맞추니 심장 박동이 급격히 가라앉았다. 도재는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애를 데리고 씻으러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런 건 또 어디서 났대.’
시우는 제 개구리를 빤히 쳐다보는 도재를 보고 손을 위로 뻗어 개구리의 한 쪽 눈을 감겼다.
“여보, 이건 윙크… 헤헤.”
***
끝내주는 결혼 선물과 함께 애교도 골 때리게 피워준 시우 덕분에 둘은 욕실에서 나올 줄을 몰랐다. 도재가 한참이나 시우의 머리통에 입을 맞추고 깨물깨물 애를 괴롭히는 바람에 샤워를 하고 나왔을 땐 딱 저녁을 먹을 즈음이었다.
결혼한 첫날밤, 샴페인도 한 잔 없이 아무 향도 나지 않는 미음이나 조금 떠먹었다. 소박한 식사였지만 행복이 넘쳤다.
“서시우.”
“네?”
“사랑해.”
엉덩이를 결혼 선물로 준 과감한 꼬마신랑은 사랑한다는 한마디에 얼굴을 붉히고 도재의 귓가로 입을 가져가 저도 사랑한다는 소리를 전했다.
***
진정한 한 가족이 된 부부의 마음에 안정감이 커져갈수록 뽀뽀와 뽀또 역시 시우의 뱃속에서 안정적으로 성장해갔다. 이제 뽀뽀와 뽀또는 시우의 아랫배에 아주 약간 존재감을 드러냈다. 힘들었던 임신 초기가 지나자 입덧이 점차 사라지고 조금씩 먹고 싶은 것도 생겼다. 맨 처음 먹은 것은 서로였다.
아쉽지만 전처럼 숨이 꺽꺽 넘어갈 정도로 욕구를 풀어낼 수는 없었다.
모로 누워서 했다. 의사 선생님께 추천 받은 체위였다. 너무 깊이 삽입하면 뽀뽀와 뽀또가 찔릴 것 같아 진심으로 불안했던 시우는 제 등 뒤에서 슬슬 안으로 진입하려는 도재의 페니스에 손을 뻗쳐 어디쯤 들어갔는지 만져보려 했다. 그러다 홍수난 제 뒤가 함께 만져져서 힉…! 놀라 손을 뗐다.
“여보 어디까지 넣었어요? 여보 쪼끔만요… 뽀뽀랑 뽀또 아파요.”
어련히 살살할 생각이었는데 어디까지 넣었냐고 자꾸 더듬더듬 만져보고 그러면 도재는 정말이지 눈이 돌 것 같았다. 아주 뿌리 끝까지 박아버리고 싶은 못된 심보가 들 때마다 침대 머리맡에 놓아둔 개구리 안대를 보며 스스로를 다스렸다.
“저만 믿으세요, 사모님. 원하시는 대로 서비스 해드릴게요.”
시우의 귓가에 촉- 입 맞춰준 도재는 넣다 말고 시우가 긴장을 풀 때까지 배를 살살 쓰다듬어주었다. 뽀뽀와 뽀또를 위하는 듯한 담백한 손길이었다. 시우 스스로 더한 자극을 원할 때까지 모로 누운 시우의 옆태 그 어디에도 시선을 주지 않고 개구리 눈알만 보며 한참을 기다렸다.
기다리다 보면 머지않아 다른데도 만져주시면 안 되냐는 공손하고 깜찍한 요청이 왔다. 뽀뽀와 뽀또를 쓰다듬던 도재의 손길이 위로 향했다. 아직 부풀지 않은 귀여운 유두를 둥글려주었다. 시우는 앞을 더욱 바짝 세우며 좋다고 끙끙 앓았다.
양쪽에 달린 이 맛있는 열매는 곧 쌍둥이들에게 점령당할 것이다. 두 녀석이 달려들어 먹게 되면 제게 떨어질 게 한 방울이라도 있을까. 도재는 그걸 생각할 때마다 살짝 혈압이 올라 집착 어린 손길을 보내게 되었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운 유두를 꼬집듯이 비틀어버리니 시우가 몸을 크게 떨며 신음했다.
많이 아프게 하진 않았는데 뱃속에 뽀뽀와 뽀또가 들어있으니 아기들을 지키려는 보호 본능 같은 게 작동하는지 반응이 더 예민하게 왔다.
“아읏…!”
도재가 시우의 귓가에 우쭈쭈 강아지 부르는 소리를 내며 놀란 애기를 달랬다.
“미안, 미안.”
사람이 강아지 취급을 당하는데 시우는 자존심도 안 상해했다. 왜 놀라게 하냐고 성도 안 내고 그냥 저 놀랐으니 빨리 달래 달라고 머리를 부비부비 비볐다. 시우는 여전히 떼를 못 썼지만 서시우 언어인지 강아지 언어인지 모를 것을 구사했다. 그리고 도재는 이를 기똥차게 알아들었다.
“괜찮아, 괜찮아. 아이 착하다.”
놀라봤자 이 한마디면 금세 도재의 품에서 얌전을 되찾는다. 그러곤 다시 편안하게 예쁨을 받는다. 도재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아무튼 너나 키우면서 사는 게 최고다.
도재는 시우가 어떤 강압에 의한 순종이 아닌 자발적으로 제게 순종할 때 발끝부터 타고 올라오는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무언가를 공들여 키운 보람이라는 건 생각보다 대단했다.
“시우, 애들 그냥 분유 먹일까.”
“하응… 모유 먹어야 똑똑해진다던데….”
“그런 게 어딨어. 똑똑하게 난 놈은 똑똑하고 아니면 아닌 거지. 우리 새낀데 똑똑하겠지 뭐.”
“그래도… 앗…! 나오는데 안 주는 건 좀….”
손길은 끈덕진데 나누는 대화는 나름 육아에 대한 토의였다.
“그럼 나는 뭐 먹으라고?”
“…….”
시우는 잠시 할 말을 잃었지만 이내 저딴 소리나 하는 여덟 살 더 먹은 남편도 품어내는 아량을 보였다. ‘여보는 이거 드세요.’하며 시우가 내준 건 제 볼기 사이에 촉촉이 젖어있는 구멍이었다. 이 악문 ‘씹’ 소리와 함께였지만 시우는 다시 한 번 착하다는 칭찬을 들었다.
잘 꼴리게 한다는 칭찬인가? 정확히 뭐가 착한 건진 모르지만 칭찬은 기분이 좋았다. 시우는 배시시 웃으며 다시 한 번 공손한 부탁을 했다.
“헤헤, 넣어주세요.”
“아 예뻐라. 우리 애기 기분 좋아? 힘 풀고 다리 살짝 들어. 맛있는 거 먹자.”
도재가 시우의 구멍 주변에 귀두 끝을 살살 문대기 시작했다.
많이 젖었네, 한마디 하자 제 팔을 베고 있는 시우의 볼이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피식 웃음을 흘린 도재가 사랑스러운 뒤통수에 하염없이 입맞춤을 내리며 시우의 긴장을 풀어주곤 오랜만에 넣어보는 그 안으로 조심스레 진입했다.
“이런 개씹.”
뽀뽀와 뽀또는 아직 청각이 발달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입구는 죄 젖어서 축축하게 미끈거리더니 내벽은 또 진공 팩에 압축하듯 꽉 물어왔다. 상스러운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도재는 다시 개구리 안대와 눈을 맞췄다. 시우의 허리가 부서지게 박아버리고 싶은 마음을 눌러 내리기 위함이었다. 도재가 허리를 앞뒤로 부드럽게 움직여주자 찌걱찌걱 느릿한 소리가 안방을 메웠다.
“하읏…! 여보, 흐응… 여보…!”
시우는 그간 너무 굶어 토끼가 되어버렸는지 몇 번 찔러주지도 않았는데 덜덜 떨며 사정해버렸다. 민망했는지 흐엉 우는 소리를 냈다. 그런 시우를 도재가 또 세워줄 건데 무슨 걱정이냐며 달랬다.
“남편 자지가 그렇게 맛있어? 조금 받아먹었다고 금방 싸네.”
달래는 게 아니고 더 민망하게 만드는 것 같기도 했다. 도재는 시원스레 쑤셔 넣지 못하고 앞에서만 깔짝거리는 기분이었지만 3개월을 굶고 먹는 그 맛은 더럽게 꿀맛이었다. 삽입 섹스를 욕심껏 원 없이 할 순 없지만 그래도 이제 예쁜 서시우의 구석구석 어디든 핥아먹을 수 있어 버틸만했다.
그렇게 가벼운 피스톤 운동을 한 세월 하다 마무리를 위해 서로의 페니스를 빨아주며 절정에 오르기로 했다. 동시에 빨고 있으니 시우는 마치 어른 따라하는 아이처럼 도재가 귀두를 빨면 저도 귀두를 빨고, 도재가 고환을 할짝이면 저도 고환을 할짝였다. 그러고선 재밌는지 히히 웃었다.
어릴 때부터 남들 다 받는 그런 평범한 사랑을 받고 자랐다면 천성은 꽤나 장난꾸러기였을 것 같았다. 썩 순수한 짓거리를 하는 중은 아닌데 퍽 간지러운 기분이었다. 어디까지 따라하나 보고 싶어 도재가 기둥을 강하게 빨아 올렸는데 시우는 이 역시도 온 힘을 다해 따라했다.
‘하… 아무튼 선수야 서시우.’
시우의 도발에 방 안의 공기는 금세 장난기가 걷혔다. 왠지 모를 팽팽한 긴장감까지 느껴졌다.
“서시우, 집중해서 빨아. 다 빨면 장난 실컷 받아줄 테니까.”
도재가 낮게 한마디를 던지고 다시 시우의 페니스에 얼굴을 박자 시우도 다하면 놀아주겠다는 주인의 페니스를 온 군데 침을 묻히며 허겁지겁 받아먹기 시작했다.
쑤압쑤압 뭔가를 게걸스럽게 먹는 소리가 이중으로 울려 퍼지던 안방은 이내 윽…! 하고 뜨거운 것을 내뿜는 짐승들의 포효 소리를 마지막으로 다시 고요해졌다. 둘의 거세진 심장 박동 소리가 가장 큰 소음이었다.
이 얼마 만에 해보는 만족스런 배출인지 감격스러울 지경이었다. 도재는 이 정도로 감격을 운운하는 저 스스로에게 웃음이 나 땀이 난 머리칼을 넘기며 푸스스 웃었다.
“여보 왜 웃어요?”
“어? 그냥. 시우 예뻐서.”
***
성생활 금지령에서 해방된 시우는 이제 입덧에서도 해방되긴 했는데 한 가지 애로사항이 생겼다.
시우는 원래 편식 않고 골고루 잘 먹는 타입이었다. 안 먹어본 이국적인 음식도 까탈 부리지 않고 덥석덥석 도전해보는 편이라 도재를 만나고 나서는 밥상머리에서 칭찬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임신 중기의 시우는 당기는 음식이 너무도 명확해 그게 아니고서는 먹지 않았다. 눈앞에 차려줘도 손이 안 가고 도통 입 안에 넣고 싶지가 않았다. 고집이 더럽게 세고 집요한 우성 알파 한뽀뽀와 한뽀또의 소행임이 확실했다.
시우는 매운 음식과 신 음식에 꽂혔다.
임신하면 새콤한 걸 많이들 찾는다고 하지만 시우는 임신 전에도 과일은 다 좋아했고 음료도 새콤달콤한 걸 선호하던 애였다. 키위는 갈아 마시느라고 지금까지 족히 열 상자는 해치웠을 것이다. 원래도 좋아하던 게 임신까지 겹치니 애 입맛이 점점 극단적으로 변했다. 시우는 이제 레몬을 귤처럼 까먹었다. 한 입에 많이는 못 넣지만 조금씩 떼어 레몬의 과육을 입 안에서 톡톡 터뜨려 먹었다.
그래도 레몬은 아주 상큼한 애교에 불과했다. 시우는 ‘볼케이노’, ‘핫’, ‘불’, 이런 수식어들이 붙은 음식들만 찾았다. 순둥이가 정말 지독할 정도로 매운 음식을 입 주변이 죄 벌게질 정도로 먹었다. 도재는 뽀뽀와 뽀또의 불같은 성미에 고개를 절레절레하기 일쑤였다.
‘시우 뭐 먹고 싶어?’
‘저… 저는… 불닭볶음면이요….’
‘시우 뭐 먹고 싶어?’
‘엽기떡볶이 먹어도 돼요…?’
원래 먹고 싶은 거 말하래도 말도 잘 못 하던 애가 정말 먹고 싶긴 했는지 콕 집어 알려주었다. 너무 좋긴 했지만 매번 도재는 들어 보기도 처음 들어보는 음식만 먹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 정체 모를 음식들의 공통점은 전부 용암이 지글지글 끓는 색깔이라는 점이다.
솔직히 어떻게 저런 걸 먹나 싶지만 시우가 너무 맛있게 잘 먹으니 도재는 군말 없이 컵에 우유를 따라 주었다. 그리고는 쫓아다니면서 양배추즙을 먹였다. 속 쓰림의 결정체인 식단을 가지고 있으니 이것만큼은 싫어도 강제 집행이었다.
시우는 홍삼도 씩씩하게 받아먹으면서 양배추즙은 그러지 못했다. 어지간히 맛이 없었는지 도재가 먹이려 할 때 마다 은근슬쩍 엉덩이를 뒤로 빼고 도주의 방향을 살폈다. 하지만 방향만 살필 뿐 막상 실행에 옮기진 못한다. 눈치를 살피느라 도주의 타이밍을 놓치기 때문이다.
“우리 애기 속 아플까 봐 그러지.”
이 때 서시우를 꼬리 내리게 만드는 다정한 한마디를 건네면 게임은 끝이 난다. 시우는 작게 심호흡을 하더니 눈을 질끈 감고 꽤나 터프하게 도재가 건넨 컵을 원샷 해버렸다. 그런 시우를 보며 도재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게 뭐라고 참, 손 많이 가는 임산부 서시우 돌보기는 하루하루 퍽 재미있었다.
***
시우의 배가 점차 불러갔다. 뽀뽀와 뽀또는 여전히 불같은 음식과 쓰다 느낄 만큼 신 음식을 선호하셨다. 임신한 거 맞나 싶을 정도로 별로 티가 안 나는 것 같더니 언젠가부터 아랫배가 훌쩍 눈에 띄게 커졌다.
팔다리는 쭉쭉 곧게 뻗었는데 배만 볼록 튀어나와 여간 깜찍한 모양새가 아니었다. 가슴이 발달하고 젖꼭지가 벌레라도 물린 것처럼 부풀었다. 하지만 시우는 배가 부른 뒤로 관계 중에 티셔츠 벗기는 걸 싫어했다. 벗기면 벗기는 대로 체념하긴 하는데 시무룩해 하고 우울해 해서 함부로 건들 수 없었다.
변한 제 몸에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자신이 왠지 성적인 매력을 다 잃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정도 우울은 도재가 금세 해결해주었다. 애가 한창 섹스하다 말고 제 티셔츠를 끌어내리며 풀 죽어하는 걸 본 이후로 도재는 한 번씩 시우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보란 듯이 제 페니스를 세워주었다.
“이거 봐 서시우. 너 존나 꼴려.”
모든 걸 빠르게 습득하는 도재는 개월 수가 늘어갈수록 임산부 기분 풀어주는 거 하난 귀신같이 잘했다. 꼼지락대는 제스처 하나에도 시우의 감정 상태를 파악하는 신내림의 경지에 이르러 갔다.
도재로서도 사모님 비위를 잘 맞춰주는 게 이득이었다. 시우가 남편의 야한 위로를 받고 기분이 좋아지면 발그레 뺨을 붉히며 단단히 선 도재의 페니스를 입에 담기 때문이다.
“시우, 퉤.”
딱 아무거나 주워 먹는 시기인 아기에게 말하는 투였다. 남편이 저에게 육아 시뮬레이션이라도 하는 것 같아 시우는 웃음이 났다. 시우는 입 안에 한가득 문 뜨거운 액체를 도재가 입 앞에 대령한 티슈 위에 다소곳이 뱉었다. 혹시라도 배가 아프면 안 되니 삼키지 못하게 했다.
삼켜주면 도재의 눈이 훼까닥 돈다는 걸 아는 시우는 저를 배려해주는 도재가 고맙기도 하면서 동시에 눈 뒤집힐 만큼 예쁜 짓을 할 수 없다는 게 살짝 아쉽기도 했다.
“안 삼켜도 예뻐.”
“허얼….”
시우의 입에서 진심으로 얼빠진 소리가 나왔다. 원래도 이런 면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도재는 요즘 시우의 생각을 읽는 능력이 무서울 정도로 발전했다. 도재가 피식 웃곤 넋 나간 시우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같이 오래 살면 이런다더라. 걱정 마. 귀신 아니니까.”
“헤헤, 근데 죄송해요… 저는 잘 몰라줘서.”
내 속은 당연히 알면 안 되지.
도재의 속내는 썩 아름답지 못했다. 도재가 제 속대로 한다면 시우는 모유 수유도 못 하고 대학원도 못 간다. 24시간 목줄을 차고 제 옆에만 붙어 있어야 한다. 근데 그렇게 하면 시우가 슬플 거라 시우는 도재의 속을 알면 안 되었다. 알면 슬프면서도 도재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해줄 애였다.
도재는 시우의 머리를 가만 쓰다듬었다.
“몰라줄 거면 키스라도 해줘.”
그건 자신 있다는 듯 냉큼 다가오는 시우는 다시 한 번 도재를 좋은 사람이고 싶게 했다. 누가 뭐래도 행복한 서시우가 제일 사랑스럽다.
***
진짜 귀신이 아닌 건 맞는지 도재도 가끔 맞추지 못 하는 게 있었다.
똥강아지가 새벽 내내 잠을 못 자고 뒤척이기에 도재가 머리맡에 놓인 스탠드를 켰다. 조명이 켜지자 품에 안긴 시우가 빼꼼 도재를 올려다보았다. 그 눈빛은 마치 텔레파시를 보내는 듯 했다.
“우리 애기 뭐가 먹고 싶길래 잠을 못 자?”
여기까진 맞췄다. 저를 위해서가 아닌 뽀뽀와 뽀또가 원하는 거라 생각하면 시우는 이제 뭐가 먹고 싶다 똑바로 말할 수 있었는데 이렇게 새벽녘에 남편의 숙면을 방해하면서까지 뭔가 먹고 싶은 건 미안했다.
“아니에요… 자고 내일 먹을게요.”
사실 그 먹고 싶은 음식이 매운 라면 같은 거 정도이면 저 혼자 후딱 끓여 먹기라도 할 텐데 오늘은 원래 먹지도 못하던 음식이 먹고 싶었다.
매운 닭발. 숯불에 매운 양념을 덕지덕지 묻혀 구운 닭발이 먹고 싶었다. 그것도 꼭 뼈가 있는 걸로 먹어야 한다고 쌍둥이들이 외치고 있었다. 늦은 시간도 시간이지만 닭발은, 딱 봐도 도재가 혐오할 것 같았다. 시우 역시도 저걸 왜 먹나 생각하던 음식이다.
‘뽀뽀야, 뽀또야, 치킨 놔두고 굳이 왜…?’
시우는 도재가 닭발을 뜯어먹는 저를 보면 홀딱 깨지는 않을까 별 걱정을 다했다. 내일 도재가 출근했을 때 저 혼자 몰래 먹고 그 흔적을 깨끗이 치워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근데 너무 먹고 싶으니까 잠이 안 왔다.
뽀뽀와 뽀또는 왠지 뱃속에서 키득키득 웃고 있을 것 같았다. ‘먹고 싶으니 얼른 대령해라. 안 주면 못 자게 할 테다.’ 딱 이 심보였다. 태아 시절부터 빌런인 걸로 보아 누구 씨의 잘못인지는 점점 명확해졌다.
“못 자는구만 뭘. 뭐 먹을래 우리 애기. 떡볶이? 라면? 아구찜? 짬뽕?”
닭발이란 도재의 머릿속에 그게 음식이라는 개념조차 들어있지 않아 맞출 수 없었다. 맞춘다는 건 진심으로 귀신이란 소리이다. 도재는 요 근래 시우의 식성을 관찰하며 쌓은 모든 데이터를 종합해 제가 아는 빨간 음식이란 음식은 다 뱉었다. 전부 오답이었다.
“여보, 진짜 괜찮아요. 내일 먹을게요! 자기 전에 먹으면 속 더부룩하니까… 그냥 참을래요.”
시우를 살살 달래 먹고 싶은 음식을 실토하게 만드는 건 일도 아니었지만 도재는 그냥 져주기로 했다. 가뜩이나 요즘 시우는 건강 그딴 게 다 뭐냐는 식의 막가파 식단과 식사 패턴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 새벽에 자극적인 음식을 잔뜩 먹이고 재우는 것보단 참을 수 있다면 참고 내일 먹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알았어. 이리와, 자자.”
도재가 스탠드의 불을 내리고 시우를 다시 고쳐 안았다. 눈을 꼭 감은 시우에게 한참이나 토닥토닥을 내렸다. 간신히 잠이 든 시우의 이마에 쪽- 입술 도장을 찍어주고서야 도재도 피곤한 눈을 감았다.
하지만 삼십여 분쯤 흘렀을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뽀뽀와 뽀또가 시우를 깨웠다. 겨우겨우 잠들었는데 닭발 꿈을 꾸다 깼다. 새벽 네 시였다. 저를 꽉 안고 있는 도재는 자는 듯 했다.
잠을 제대로 못 자니 피곤이 극에 달한 시우는 아우성치는 뽀뽀와 뽀또에게 빨리 닭발을 줘버리고 편안히 잠들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혼자라도 방을 빠져나가 아무 데라도 24시 야식집이 있으면 시켜먹고 싶은데, 안겨있는 제가 꼼지락 거리면 도재는 무조건 깰 것이다.
시우는 딜레마에 빠졌다. 제 수발을 드느라 매일이 피곤할 도재를 깨울 수도 없고, 발로 차고 난리가 난 태아들에게 사람답게 이성을 좀 가져보라 타이를 수도 없었다.
잠은 오지 않는데 도재가 깰까 봐서 숨을 죽이고 얼음땡 놀이의 얼음 상태를 유지 중이었다. 고통의 시간을 뜬 눈으로 멀뚱멀뚱 보내다 보니 시우는 이내 서러워지기까지 했다.
‘차라리 아까 먹겠다고 할 걸. 시간만 더 늦었네.’
힘들어죽겠는 저를 몰라주는 아기들이 서운하고 아기들에 서운해 하는 제가 못나 보여 속상했다. 정체 모를 감정이었지만 한마디로 정리는 가능했다. 시우는 닭발을 먹지 못해 울었다.
소리를 꾹 참은 눈물이 시우의 눈에서 뚝뚝 떨어져 내렸다. 파르르 미약하게 떨리는 시우의 몸에 도재가 퍼뜩 잠에서 깼는데 이에 시우의 눈물은 더욱 거세어졌다. 안 깨우려고 노력한 게 수포로 돌아간 것까지 더해서 서러움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끄흐읍…!
도재는 난데없이 울고 있는 시우를 보고도 당황하지 않고 알아서 척척 제가 해야 할 일을 했다. 임산부 수발만큼은 아주 프로였다.
일단 먹고 싶은 게 뭔지 실토하게 한 뒤 꼭 특정 식당이어야 하는 건지 파악했다. 그건 아니라 하니 이 새벽에도 배달이 가능하다는 한국살이 최고의 장점을 이용해 냉큼 음식을 시켰다.
‘끄흑…! 끕…! 뼈있는 거 흐읍!’
‘끅…! 국물 없는…! 국물 없는 거…! 직화 구이…!’
이 단계까지 오 분도 걸리지 않았다.
‘뭐 닭발? 어 알았어. 닭발.’ 도재는 시우가 먹고 싶다는 닭발이 닭의 발이라는 걸 깨우치기도 전에 기계 같은 손놀림으로 행동했다. 제가 뭘 시킨 줄도 몰랐다.
이제 음식이 올 때까지 울보를 달래면 되었다. 시우는 도재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더 큰 울음을 터뜨렸다. 어두운 새벽녘에 끄헝엉 이상한 통곡 소리가 안방을 메웠다. 도재는 가지가지 하는 임산부에 자꾸만 비실비실 웃음이 샜다.
눈물을 뚝 그치게 하기 위한 극약처방으로 시우의 파자마 바지를 벗기고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울면 꼴린다니까 글쎄.”
슬픈 시우임을 알려주듯 말랑말랑 힘을 잃은 좆은 목표물이 아니었다. 도재의 고개는 엉덩이 밑으로 파고들어갈 듯 점점 깊이 처박혔다.
도재의 머리가 파고드니 시우는 무릎을 접어 다리를 더 활짝 벌리고 엉덩이를 살짝 띄웠다. 빼는 것도 없이 어딜 빨아줄 건지 아는 듯한 그 요망한 행동에 도재의 입꼬리엔 씨익 미소가 걸렸다. 시우의 눈물은 도재가 우악스레 제 바지를 벗길 때부터 이미 들어가는 중이었다.
“하응…! 여보, 아앗…! 여보….”
“우리 애기 여기로도 우네. 가만 있어. 눈물 닦아야지.”
금세 축축하게 젖어버린 뒤를 놀리는 도재의 말에 시우의 얼굴은 매운 닭발 색이 되었다. 츄읍츄읍, 도재가 입술을 박고 빨아들일 때마다 시우의 구멍에서 나오는 눈물은 닦이긴커녕 더 흐르기만 했다.
“하앙…! 여보, 여보…! 저 뚝 그쳤어요, 하읏…! 이제 안 울어요….”
“45분 걸린대. 좀 더 울어도 돼.”
그렇게 시우는 닭발이 올 때까지 앙앙 울어 젖혔다.
***
도재가 음식을 픽업하기 위해 현관을 나서자 세수를 하고 나온 시우가 저도 데려가라며 쫄래쫄래 쫓아 나왔다. 어느덧 여름이 된 새벽은 춥지 않았다. 제 손을 꼭 잡아오는 시우와 함께 새벽 공기를 쐬며 정원을 가로지르는 일은 꽤나 큰 행복이었다.
어쩜 뽀뽀와 뽀또는 도재와 시우의 산책 데이트를 응원해주려고 이 새벽에 그 생난리를 친 것일지도 모르겠다.
흐뭇한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도재는 뽀뽀와 뽀또를 약간 기특해 하다 제가 직접 시킨 그 문제의 음식이 식탁에 펼쳐졌을 때 다시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뽀뽀, 한뽀또 하여간 이 성격 이상한 것들. 누굴 닮아 이러냐.’
닭발의 적나라한 생김새에 적잖이 충격 받은 듯한 도재를 보며 시우가 슬쩍 눈치를 보았다.
“여보… 들어가서 주무셔도 돼요. 저 먹고 들어갈게요.”
도재는 제게 같이 있어 달라 떼쓰지 않는 시우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이럴 때마다 승부욕이 불타오르며 가지 말라고 바짓가랑이를 붙들게 만들고 싶었다.
“너 집이 이렇게 넓은데 귀신 하나쯤 있을 거란 생각 안 해봤어? 이 깜깜한 새벽에 혼자 불 켜고 뭐 먹고 있으면 나 같아도 같이 먹자고 찾아올… 읍.”
도재의 말을 듣던 시우는 팔에 으스스 소름이 돋아나 저도 모르게 비닐장갑을 끼고 뭉치던 주먹밥으로 도재의 입을 막아버렸다. 행동은 거침없이 해놓고 바로 잘못했다고 고개를 숙였다. 입 안에 음식을 넣고 말을 할 순 없으니 도재는 잠시 주먹밥을 씹어 삼킬 때까지 말이 없었다.
시우가 혼날 준비라도 하는 강아지처럼 귀를 내리고 송구스런 표정으로 기다리기에 도재는 안 혼낼 거라는 걸 알려주듯 따듯하게 웃어주었다.
“서시우가 주니까 맛있네.”
입을 헤에 벌리며 긴장을 푸는 시우가 보였다.
“어이고, 우리 쫄보 귀신 무서워? 무서우면 남편한테 뭐라고 해야 돼.”
똑똑한 시우는 주인이 원하는 바를 단번에 알아듣곤 도재에게 같이 있어 달라 부탁했다. 도재의 손에 머리를 비비며 애교도 피웠다. 흡족스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우리 애기 두고 어딜 가. 얼른 먹어. 근데 이거 다 뼈 아니야? 너 잘 발라 먹을 수 있어? 원래 강아지는 닭뼈 조심해야 되는데.”
도재의 우려와 달리 시우는 알아서 잘 발라 먹었다. 입 안에서 발라낸 뼈를 호도독 뱉었다. 저는 시우의 목덜미도 씹어 먹은 주제에, 도재는 닭발 먹는 시우를 진기명기라도 펼치는 애처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발가락을 야무지게 뽑아 먹는 서시우는 하나도 안 무서운 야생의 아기 들개 같았다.
‘어째 얜 닭 발가락을 뜯어 먹어도 귀엽네.’
뽀뽀와 뽀또의 온갖 별난 짓으로 추억이 많이 쌓이는 하루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