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장 (10/14)

10장.

시우는 후기에 접어들며 배가 많이 불렀다. 뽀뽀와 뽀또는 다행히 무더웠던 여름을 건강하게 났다. 성별은 듣지 않기로 해서 의사 선생님은 작은 힌트도 주지 않았다. 다가올 서프라이즈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중이었다.

쌍둥이가 들어있는 배는 실로 어마어마하게 커져 인체의 신비를 느끼게 할 정도였다. 남자 오메가는 수술 밖에 할 수 없어서 얼마 전 병원에 가 아기들 상태를 확인하고 수술 날짜까지 전부 잡아 놓은 상태였다.

아기들이 나올 때가 되자 곧 부모가 될 거라는 실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실감이 들고 나서부터 시우는 만삭인 제 배를 어루만지며 문득문득 친부모 생각을 했다. 용서하고 싶다는 마음이나 보고 싶다는 마음은 결코 아니었다.

그저 ‘엄마도 나를 이렇게 열 달 간 품었겠지’에서 비롯된 생각이었는데 고생했겠다 싶으면서도 낳아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미워할 거면 왜 낳았을까 하는 작은 원망도 들었다.

지금 어떻게 사는지는 고사하고 생사도 모르는 사이가 되어버렸으니 뽀뽀와 뽀또에게 천륜을 저버린 모습을 보이는 게 부끄러울 것도 같았다. 서류상 시우의 양부모님은 돌아가신 상태라 시우의 친부모 이야기를 뽀뽀와 뽀또가 알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좀 그랬다.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린 저와 제 부모의 실패한 관계를 되짚어 보니 시우는 앞으로 아기들과 제가 형성해 나갈 관계가 걱정되면서 저는 과연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염려했다.

도재는 어딘가 상념이 짙어 보이는 시우의 티셔츠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뽀뽀와 뽀또에게 쪽쪽 입을 맞춰주며 똥강아지의 기분을 풀어주었다. 시우가 간지러운지 힘 빠진 웃음을 지었다.

“한뽀뽀, 한뽀또. 왜 우리 애기 차.”

“놀아달라고 그러나 봐요.”

“난 너랑 노는 게 좋은데.”

“헤헤, 저도요….”

남편이 한결같이 철딱서니 없고 한결같이 저만 예뻐해서 시우는 조금 용기가 생기는 것 같았다. 말도 꺼내기 싫은 과거의 상처에 직면할 용기 말이다.

어떻게 하면 그들에 대한 제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해질까, 회피하지 않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도재에게 조심스레 의논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시우는 도재가 하라는 대로 하는 걸 세상 제일 좋아하기 때문이다.

“시우 이리와 봐.”

애기가 애기 낳을 생각을 하니 심란한가? 도재는 시우를 제 곁으로 가까이 끌어다 앉히고 머리칼을 넘겨주며 물었다.

“우리 똥강아지 꼬리가 축 쳐졌네. 왜 그래?”

“그냥, 음… 저기 그게, 엄마 어떻게 살까요…?”

도재는 생각지도 못한 화두에 잠시 말을 잇지 못했지만 이내 아무 것도 아니라는 표정으로 시우에게 답했다.

“시우 그게 궁금했어?”

“네 쪼끔요… 뽀뽀랑 뽀또처럼 저도 그 배에 들어있었던 거니까 갑자기 조금 신경 쓰여요….”

시우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제 고민을 털어놓았다. 시우 스스로가 자신은 태어나지 말았어야할 존재라 생각하게 만든 부모들이다. 그런데 또 안 낳아줬다면 시우는 도재도 만나지 못 했을 거고 뽀뽀와 뽀또도 생기지 않았을 거다. 심경이 조금 복잡했다.

엮이고 싶지는 않았지만 잘 살고 있는지 소식 정도는 알고 싶었다. 그게 왠지 도리인 것 같았다.

“잘 살고 있는 거 확인하면 우리 애기 마음이 편하겠어?”

“…… 네.”

도재에겐 세상에서 제일 거지같이 살았으면 좋겠다 싶은 자들이지만 정말 그렇게 살고 있으면 시우는 그들에게 마음을 쓸 게 분명했다. 전 가족들에 대한 미련 따위 일절 없는 것처럼 잘 지내던 시우인데 뭐 예쁜 사람들이라고 잘 살기를 바라냐 싶지만 출산을 앞두곤 생각이 많아질 수 있으니 이해해주기로 했다.

“김 비서 시켜서 알아볼게. 그 사람들 잘 살고 있으면 서시우 너도 나랑 잘 살 생각만 해. 알았어?”

“네! 뽀뽀랑 뽀또랑도 잘 살 거예요, 히히.”

조금만 달래면 금방 기분을 푸는 서시우가 예뻐서 도재는 기분 좋은 미소를 입에 걸었다. 도재가 시우의 배를 바라보며 뽀뽀와 뽀또에게 전했다.

“너네 복 받았다. 서시우가 너네도 끼워준대.”

***

알아본바, 지난번 시우의 어릴 적 사진을 받기 위해 조사했을 때와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사실 악화되었다는 게 맞겠다.

아직 살날이 많이 남은 화영은 집에서 골골거리기만 하고, 태중은 일자리에서 해고된 뒤 일용직을 전전하며 간간히 생활하고 있었다. 김 비서의 보고에 한숨이 절로 나오는 도재였다.

“정말 더럽게 도와주기 싫다.”

“그러게요. 집에서 인형 눈알이라도 붙이시지 참.”

“인형 눈알 붙이는 게 뭔데. 이 여자가 할 만한 일이야? 시우한테 인형 눈 붙이면서 산다 그럴까?”

“엄청나게 마음 불편해하실 것 같습니다.”

쩝, 도재가 입맛을 다셨다.

그들은 시우로 인해 물질적인 도움을 받으면 ‘감사합니다, 이걸 밑거름 삼아 앞으로 착실히 살아보겠습니다.’할 족속들이 아니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팔 때는 언제고 잘 되니 돈을 뜯어내려 했었고, 그게 안 되니 도둑질이라도 하려 했었다. 마지막까지 몇 장 되지도 않는 제 막내아들의 사진을 간직할 생각도 없이 사진값이나 요구했다.

돈이나 좀 주고 치워버리는 건 사실 아무 것도 아니지만 시우가 저들을 도와주고 싶어 한다는 걸 알면 한 번으로 만족하지 못 하고 거머리같이 들러붙을 것이다.

“일단 서울바닥에서 치우자. 꼭 서울에서 잘 살란 법은 없잖아. 늙으면 공기 좋고 물 좋은 데서 살아야지.”

***

화영과 태중이 어떻게 사는지 알아봐 주기로 한 도재에게서 꽤나 오래 답이 없었다. 바쁜데 괜히 번거롭게 한 건 아닌가 시우가 걱정할 즈음 도재는 사진 몇 장을 보여주었다. 고즈넉한 전원생활을 하는듯한 화영과 태중의 모습이었다.

도재는 화영과 태중을 귀농 시켜버렸다.

화영과 태중에게는 시우가 있는 서울 바닥에 그들을 두기 싫다는 핑계를 댔다. 이런 변명도 없이 그들을 도와주면 당연히 시우의 소행으로 생각할 것 같아서 말이다. 굽이굽이 찾아 들어가기도 힘든 깡촌으로 가는 대신, 살 집을 마련해주고 가까운 읍내에 조그만 슈퍼를 차려주겠다고 했다.

곰팡이가 득실거리는 반지하 단칸방에서 팍팍하게 지내는 삶보다는 훨씬 질 높은 삶이었다. 호화 별장 같은 느낌은 당연히 아니고 그냥 깨끗하고 아담한 시골집이었다. 작지만 마당도 있었다. 슈퍼도 시골에나 있을 법한 구멍 가게였지만 두 사람이 굶어 죽을 만한 벌이는 아니었다. 텃밭을 가꾸기도 하고 가게를 볼 때도 있으니 화영은 뭔가에 집중할 거리가 생겨 폐인 생활을 청산하고 조금은 사람답게 살아갔다.

어느 정도가 소박하지만 잘 산다고 할 수 있는 정도일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만 주고 싶은데 도재는 그 소박의 수준을 잘 가늠할 수 없었다. 그래서 화영과 태중에게 주어질 것들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김 비서의 손에 의해 결정되었다.

“다들 제 자리에서 잘 사니까 너도 잘 살면 돼. 네 자리 어디야.”

“여기요… 헤헤.”

시우의 표정은 한결 후련해 보였다. 시우는 배가 많이 불러 이제 도재에게 폭 안기지도 못하지만 낑낑거리며 자세를 잡고 도재의 가슴팍에 머리를 비볐다. 고맙다는 뜻이었다. 저를 위해 애써 알아봐 준 것도 고맙고, 저를 가족으로 받아줘서 고맙고, 뭐 여러 의미가 있었다.

도재는 애교를 부리는 시우에 피식 웃음 짓고 시우의 배를 쓰다듬으며 어릴 때 뭐가 제일 슬펐는지 물었다. 시우의 상처를 덮기 위해 옛날이야기는 금기시되는 게 없지 않아 있었는데 한 번은 제대로 위로해줘야 할 것 같았다.

우연히 알게 된 것 아니고서는 시우는 제가 먼저 ‘엄마가 저한테 그랬어요, 그래서 슬펐어요.’라고 말하지 않았다. 한 번은 이런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 제일 속상했던 걸로 하나 털어놔 보라 했다. 질리도록 달래줄 수 있었다.

시우는 잘 살고 있으면 됐다고 이제 다 잊었다며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표정은 할 말이 더럽게 많아 보였다.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러냐고 한 번 따져보지도 못한 채로 밟히고만 살아왔으니 억울할 만했다.

도재가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주자 시우는 쭈뼛쭈뼛 말을 꺼냈다. 몇 살인지 정확히 기억도 안 날만큼 어릴 때, 시우의 기억이 시작하는 시점에 들은 소리였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먹는 게 꼴 보기 싫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부엌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는 시우를 슬쩍 보고는 화영이 친정 엄마와 통화를 하며 했던 말이다. 시우에게 직접 하지 않은 거라 화영은 ‘설마 듣겠어’하는 생각도 있었고 ‘들으면 뭐 어쩔 건데.’하는 생각도 있었다.

제가 낳고 싶어서 낳았지만 키우지 않았어도 될 애를 대가 없이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화영에겐 웬 모르는 애가 우리 집 부엌에 떡 하니 앉아 우리 집 음식을 먹고 있는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시우에겐 그게 눈칫밥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어떻게 하면 꼴 보기 싫지 않게 먹는 걸까 연구하던 꼬마가 커가면서 깨달은 건 제 부모에게 전 어떻게 해도 꼴 보기 싫다는 거였다.

도재가 시우를 말없이 한참 안아주었다. 짠하고 불쌍한 거 바라보듯 보지도 않고 그냥 담백한 포옹을 해주었다. 동정이 아닌 위로였다. 눈물이 날 줄 알았는데 시우도 그냥 홀가분했다. 오히려 이젠 제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뽀뽀랑 뽀또도 잘 클 거라 안심시켜주는 듯한 따듯한 품에서 시우는 조금 더 강해졌다. 뽀뽀야, 뽀또야, 건강하게 나와. 우리 가족은 행복할 거야.

“이상한 사람들이네. 서시우는 뭐 먹을 때가 제일 예쁜데. 특히 이거.”

도재가 시우의 손을 끌어다 제 중심에 얹으며 말했다. 이렇게 만삭인 제 모습을 보면서도 남편이 착실히 흥분한다는 건 꽤나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막달이라 조심 또 조심 상태여서 할 수는 없었다.

“헤헤, 뽀뽀랑 뽀또 나오고 나면 먹을게요.”

“그럼 진짜 밥이라도 먹어. 난 네 목구멍으로 뭐 넘어갈 때 그렇게 꼴리더라. 뭐 먹을래?”

야채 곱창이라고 속닥거리는 시우는 이제 행복하고 씩씩한 산모가 될 마음의 준비까지 모두 마쳤다.

***

복권을 긁는 날이 왔다.

미리 입원해있던 시우의 병실은 어머님, 아버님이 방문해 마치 수문장처럼 지키고 서 계셨다. 손주 보는 날이라고 많이 설레신 듯 했다.

시우와 도재에겐 성별이나 형질 상관없이 뽀뽀와 뽀또 자체만으로 당첨된 복권이지만 어머님, 아버님은 손자건 손녀건 우성 알파를 원했다. 손자 하나, 손녀 하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일란성 쌍둥이는 성별이 같게 나온다 하여 뭐든 좋으니 우성 알파기만 해라 하는 심경이었다.

하지만 이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 했다. 알파인 도재가 10개월 간 쌍둥이들과 동거하며 느낀 바, 뽀뽀와 뽀또는 앙증맞은 태명을 가졌지만 성격은 썩 앙증맞지 못한 알파임이 확실했다.

일란성 쌍둥이는 성별이 같듯이 형질도 같았다. 하지만 알파 혹은 오메가라는 형질만 같은 거지 하나는 우성, 하나는 열성일 수도 있었다. 도재와 시우처럼 우성끼리의 만남에선 우성이 나올 확률이 좀 더 높지만 열성도 빈번히 나왔다.

시우 저는 그러지 않겠지만 하나는 우성인데 하나는 열성이면 아무래도 어디서건 차별 받기 십상일 것 같았다. 시우는 정말 다 좋으니 이것만은 꼭 피하고 싶었다. 무슨 짜장면으로 메뉴 통일시키는 것도 아니고 제발 우성일거면 둘 다 우성, 열성일거면 둘 다 열성이어라 하고 빌었다. 차별에 민감한 예비 엄마는 누구보다도 공명정대할 듯했다.

사실, ‘아들만 둘이면 완전 난리 났다.’하고 겁주는 소리를 하도 많이 들어서 아들보다는 딸이었음 하고 아주 약간 더 바랐지만, 이런 거 바라다가 괜히 우성, 열성 섞여 나올까 봐 무서웠다. ‘아무렴 좋습니다. 제발 그러지 말아주세요.’하며 부처님도 찾았다가 하느님도 찾았다가 했다.

“잘 다녀와.”

도재가 이제 수술실에 들어가야 하는 시우의 이마에 입맞춤을 내리며 배웅했다. 호들갑을 떨고 난리가 난 어머니, 아버지에겐 째림을 날렸다. ‘애 놀랍니다. 가만히 좀 계세요.’하며 면박을 줘도 어머니, 아버지는 도재의 싸가지를 지적하지 않았다. 손주 생길 생각에 들떠 지금 아들의 싸가지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시우가 도재와, 시부모님께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도재가 긴장하지 말라고 하니 진짜 긴장을 푼 말 잘 듣는 강아지가 위풍당당하게 수술실로 떠났다. 퍽 장한 모습이었다.

***

복권을 긁은 결과 한씨 가문엔 큰 경사가 났다. 한도재와 생긴 것도 똑같고, 성별도 똑같고, 형질도 똑같은 쌍둥이가 태어났다.

정리해보자면 이로서 집구석에 남자만 넷이었다. 그 중 기가 더럽게 세다는 우성 알파가 셋. 키울 당사자들에게는 조금 숙연한 결과이긴 했지만 어머님, 아버님은 어깨춤을 추셨다.

솔직히 우성 알파 타령은 했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쉽나, 도재의 주도하에 부모님들은 우성 알파가 아니었을 경우에 시우에게 ‘서운한 티 내지 않기’ 맹연습을 하던 차였다. 그런데 이게 웬걸, 우성 알파만 한 번에 둘이나 생기니 부모님들껜 잭팟이나 다름없었다.

쌍둥이들은 신생아임에도 날렵한 콧대를 자랑하며 누구 아들이라는 표를 팍팍 냈다. 시우 눈엔 참 예쁘겠지만 도재는 살짝 좌절했다. 시우를 닮은 구석이 지금으로서는 한 군데도 보이지 않았다.

“도재야, 아기 얼굴은 지금은 몰라. 너도 완전 네 아빠 판박이더니 그래도 조금씩 내 얼굴 나오더라.”

체통을 잃고 덩실덩실 하시던 어머니가 위로의 한마디를 건넸다.

“싫으면 나 주던지. 내가 기르마.”

한 번에 손자가 둘이나 생겨 광대를 내릴 줄 모르던 아버지가 진심인 농담을 던졌다.

도재는 약간 당황스러운 복권의 결과에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 자신의 유전자 말고는 누굴 탓할 수도 없으니 승복하기로 했다. 어쩌겠는가, 이미 나온 것을.

시우가 자신과 닮은 조그만 것들과 오순도순 노는 모습은 꽤나 장관일 거란 생각이 들고나니 도재는 그제야 핏덩이들을 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정원에서 뛰어노는 큰 아기 하나, 진짜 아기 둘, 그리고 자신의 모습까지 실로 완벽한 가족의 모습이었다. 도재는 쌍둥이들에 눈독 들이는 아버지에게 강한 철벽을 쳤다.

“시우 거 뺏을 생각 마세요.”

***

뺏기는커녕 이 경사의 일등공신인 시우의 재산 목록은 출산과 함께 천정부지로 불어났다.

수술을 한 터라 입원이 좀 길었는데 아기들을 데리고 퇴원하는 날, 아들 내외의 집에서 시우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시부모님들은 시우를 환영하는 작은 파티를 열어주었다.

아버님, 어머님은 고생한 새아가에게 집이나 땅 같은 것들을 주셨다. 쌍둥이기 때문에 손주 낳아주면 주겠다고 약속했던 것들의 두 배를 받았다.

도재는 시우에게 손주를 안 보여준다고 협박하여 좀 더 뜯어내라고 종용했다. 하지만 뱃속에 뽀뽀와 뽀또가 빠져나가고 다시 순둥이가 되어버린 시우는 그런 악랄한 짓은 하지 못했다.

잡지에는 스물다섯 살 서시우의 재산 목록과 후에 쌍둥이들이 상속받을 재산이 어떻게 되는지 소개하는 특집기사가 났다. 하지만 정작 시우는 제가 그런 걸 가졌다는 인식도 잘 못했다. 그냥 그걸 준다 그럴 당시에나 ‘감사합니다!’하고 받을 뿐 뒤로 가서는 엄마한테 세뱃돈 맡기는 애처럼 도재에게 눈빛을 보냈다. 이는 알아서 해달라는 뜻이라 도재는 시우의 자산관리사 노릇까지 해주어야 했다.

티끌 모으듯 정직하게 저축하는 것밖에 모르는 애한테 당장 아이스크림 사 먹는데 쓰지도 못할 걸 주니 당연했다.

‘우리 애긴 현찰 좋아하지.’

도재는 시우의 취향을 고려해 시우가 좋아하는 소설책 사이 한 페이지, 한 페이지마다 오만 원짜리를 끼워 용돈 책을 만들어주었다. 부모님들로부터 쪼잔하게 오만 원짜리가 뭐냐는 지탄을 받았지만 시우는 도재가 제일 잘 알았다.

시우는 수표를 부담스러워 한다. 주머니나 지갑에 들어있으면 혹시라도 잃어버릴까 무서워하는 쫄보이다. 좀 잃어버려도 하등 상관없는데 그랬다. 또한 제가 책을 좋아한다는 걸 알아주고 저를 생각해준 듯한 정성어린 선물을 좋아한다. 어찌 보면 제일 어려운 선물을 좋아하는 거였다.

그래도 서시우는 손 많이 갈 때가 제일 예뻤다. 시우는 당장 집을 나가 일자리를 구해 혼자 먹고 살래도 너무 잘해낼 것 같은 애라 도재는 시우가 이렇게 제 손을 탈 때마다 뜻 모를 쾌감을 느꼈다.

예상했던 대로 시우에게선 도재만 구분할 수 있는 진실의 리액션이 돌아왔다. 갓 퇴원한 산모가 아기들보다도 더 배시시 잘 웃었다. 우와! 마트 같은 데 갈 때 한 장씩 빼가는 재미를 생각하니 벌써 신이 났다.

“뽀뽀랑 뽀또 장난감 사줄래요… 헤헤.”

“네 장난감이나 사세요 애기야. 너 그 단골집 있잖아. 꼬리 사온 데.”

섹스 토이를 사온 가게를 일컫는 거였다. 하긴 그것도 토이긴 토이지. 시우는 퇴원하자마자 놀려먹는 남편이 밉지도 않은지 무슨 말인지 찰떡같이 알아듣곤 얌전히 얼굴만 붉혔다. 도재는 너무나도 시우다운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따듯하게 달아오른 뺨에 쪽쪽 뽀뽀를 내렸다.

시우에게 미역국을 떠먹였다. 삼삼한 간에 굴이 들어간 미역국을 주는 대로 잘 받아먹는 걸 보니 정말 시우가 맞았다. 굴이라면 냄새가 다 뭐야 머릿속에 상상만 해도 토가 나오던 시절이 있었고, 그 시절을 지나서는 빨간 양념이 묻지 않은 건 입에 대지도 않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만든 쌍둥이들을 열 달이나 잘 품어주다 무사히 세상 밖으로 꺼내준 시우가 돌아왔다.

‘진짜 서시우 왔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도 내내 붙어있었지만 잠시 볼일이 있어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얼마나 황량했는지 모른다. 시우가 없는 집은 얼음 궁전처럼 생기가 없었다. 똑같은 조명을 켰는데도 더욱 환해 보이는 집 안 풍경에 시우가 돌아왔음을 실감했다. 도재가 한창 흐뭇해 할 때, 어머님과 아버님이 슬슬 도재의 눈치를 보다 자신들의 계획을 밝혔다.

‘여보, 쟤 지금 기분 좋은 것 같아. 지금이야.’

그 계획은 당분간 눌러 살겠다는 계획이었다. 물론 도재가 쫓아내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시우의 산후 조리와 쌍둥이 케어를 위한 전문 인력들이 새로이 고용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어머님은 친정 엄마 손길이 최고라 주장하며 미역국도 끓일 줄 모르면서 집에 남겠다고 했다. 이에 질세라 아버님이 저도 남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흐뭇하게 웃던 도재의 미간엔 바로 주름이 졌다.

“아니, 시자 붙은 사람들이랑 같이 있고 싶겠어요?”

“어머 얘, 시자라니! 몰라, 나 시우 엄마니까 네가 장모님이라고 부르던지!”

제 아들 보고 장모님이라 부르라며 배 째라 식의 고집을 부리는 어머님과 한참 실랑이를 하는 남편을 보며 시우가 풋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은 진심으로 싸우는 건데 시우의 눈엔 티격태격 사람 냄새 나는 가족의 모습이었다. 참 보기 좋았다.

결국 시우의 미소를 긍정이라 받아들인 부모님들은 딱 한 달만 살겠다고 강짜를 부렸고 이에 도재는 어쩔 수 없이 잠시 함께하는 것을 허락했다. ‘절대 걸리적거리지 않는다, 시우가 신경 쓰이게 하지 않는다.’는 더럽고 치사한 약속을 받아냈다.

마음이 넓고 온순한 집주인이 돌아온 집은 아기 셋, 어른 셋 균형을 맞춘 가족들로 화기애애했다. 어른 하나가 애 하나씩 돌보면 딱 이었다. 도재는 당연히 큰 아기를 맡을 것이다.

곧 이어 우리의 뽀뽀와 뽀또는 깜찍한 태명에서 벗어나 우성 알파다운 이름을 얻었다.

한도우, 한재우.

차기 서시우 껌딱지들이었다.

***

시부모님은 약속대로 딱 한 달만 함께 했다. 열심히 산모 수발과 손자 수발을 들다 떠나셨다. 그러곤 한국으로 아예 들어오셨다. 아들 내외의 집과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이사를 와 손주 보러 오라는 전화만 기다렸다. ‘안 부르면 안 갈게, 걱정 마!’

‘쯧, 어째 쿨하게 떠난다 했다.’

제 아들이 너무 안 불러줄 땐 시우가 좋아하는 해물파전을 잔뜩 부쳐 플러팅을 걸곤 했다.

[어머니: 시우 좋아하는 오징어, 새우 잔뜩 넣었어]

[어머니: 바삭하다]

[도재: 네. 사람 보내겠습니다. 포장해 두세요.]

[어머니: 썩을놈]

[도재: 시우가 같이 먹겠다네요. 오시죠.]

[어머니: 우리 아들 최고^^]

[어머니: 너 말고 다른 아들]

제 부모님과 이런 문자를 주고받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던 도재는 피식피식 종종 웃음이 났다.

어머니가 시우의 접시에 다른 조각에서 빼낸 오징어와 새우까지 전부 얹어주면 엄마의 챙김을 받은 똥강아지는 퍽 행복해서 몸을 배배 꼬기 때문에 도재도 아주 가끔은 부부의 집을 침범하는 부모님을 봐주었다.

차가운 한씨 가문이 새로 들인 똥강아지 하나로 인해 봄이 든 모습이었다. 이제 아기들만 잘 크면 모든 것이 완벽한 집이었는데 걱정할 것도 없이 도우와 재우는 우성 알파인 걸 자랑이라도 하듯 병치레 한 번 없이 무럭무럭 자랐다.

얘네들은 모든 걸 빨리 뗐다. 걸음마, 말, 기저귀 모두 빨리 뗐다. 근데 모유만 늦게 뗐다. 뗄 때도 아주 가관이었다. 다른 걸로 배 불리려는 수작질을 내가 다 안다는 양 평소엔 잘만 먹던 이유식도 강력히 거부하며 젖을 달라고 울어 젖혔다.

하나가 울면 보통 다른 애도 따라 운다는데 도우와 재우는 하나가 울길래 간신히 다 달래 놓으면 다른 하나가 바통터치 하듯 이어서 울었다. 그리고 이 릴레이 경주는 한 번에 그치지 않았다. 정말 계속 울었다.

유아도 안 된 영아 때부터 저들이 쟁취하고 싶은 건 투쟁으로 얻어내는 승부사들이었다. 결국은 모유를 오래도 먹였다. 그래도 뭐, 젖 뗄 때 말고는 평소엔 잘 울지 않았다. 시우처럼 순해서 안 우는 게 아니고 세상이 제 발 아래 있어 안 우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보육 선생님들 외 집안 모든 고용인들까지, 예쁘다는 손길도 아주 여러 사람들한테 받아가며 큰 쌍둥이들은 이제 책가방을 메고 초등학교에 가야할 것 같은 덩치가 되었다.

하지만 덩치만 그럴 뿐 아직 미운 네 살이다. 오늘도 힘이 과하게 넘치는 도우와 재우가 우다다다 계단을 뛰어내려왔다.

“슈아빠!”

이중창이 들려왔다. 도우와 재우는 감사함을 모르는 재수탱이 누군가의 피를 물려받은 지라 저들에게 오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당연하다 느꼈다. 그래서 웬만한 애정 공세에는 굉장히 시크한 태도를 고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 시우의 사랑은 서로 못 차지해 안달이 난 희한한 애들이었다. 장난감도 할머니, 할아버지는 사달라는 대로 다 사주는데 도우와 재우는 하나만 고르라고 엄하게 구는 시우를 더 좋아했다.

타고나길 알파인 아이들은 저들이 아무리 콩알만 해도 본능적으로 오메가 아빠를 하나도 무서워하지 않았지만 도우와 재우는 시우를 위해 시우가 엄한 척을 할 때면 무서워하는 척 해주었다. 누구한테만 져주는 것까지 어쩜 한도재를 빼다 박아버렸다.

시우가 뭔가를 사줄 땐 감사하다는 인사 없이는 받아 가지도 못 했는데 그래도 애들은 시우 손만 끌었다.

“슈아빠! 빠방 사러 가자.”

“한도우 저리가! 슈아빠 나랑 갈 거야!”

“아 너나 저리가!”

오해하기 쉽지만 도우와 재우는 친하다. 침대도 따로 줬는데 꼭 손을 붙잡고 한 침대에서 같이 잔다. 그럴 때 보면 아직 아가이긴 아가였다. 아무튼 친한데 시우만 중간에 끼면 똑같이 생긴 것들끼리 매일 티격태격이었다.

“빠방 많아서 그만 살 거야. 방에 가서 책 읽어.”

시우는 아들 둘을 기르며 많이 단호해졌다. 그래봤자 도재에겐 아직도 애기 소리를 듣는다. 허리에 척 손을 얹고 엄한 척을 하면 그 깜찍한 엉덩이를 죄 깨물어 먹고 싶어 도재는 애들을 혼내던 시우를 수차례 안방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럼 도우와 재우는 새 된 표정으로 보육 선생님들께 남겨지곤 했다.

다행히 지금은 도재가 잠시 회사에 나가고 없었다. 그러니 마음껏 엄격할 수 있었다. 스스로의 카리스마에 만족해 쌍둥이들 몰래 슬쩍 미소 짓는 시우였다.

“이제 어린이날 올 때까지 장난감 그만이야. 선생님한테 책 읽어주세요 해.”

“그럼 아빠가 읽어줘.”

“아빠 나! 나 읽어줘! 재우 읽어줘.”

“안 돼. 아빠 토마토에 물 줘야 돼.”

“나도, 나도! 나도 물 줄게!”

“아 한도우 저리 가라고! 내가 내가! 아빠 내가!”

얘네들은 처음부터 자동차 장난감이 목적은 아니었다. 그냥 시우 한정 관종이었을 뿐이다. 결국 시우는 졸래졸래 껌딱지들을 매달고 정원으로 나왔다.

정원에는 오이, 방울토마토, 상추를 심은 텃밭이 생겼다. 시우가 아이들 정서 함양에 좋을 것 같다는 의미로 만든 텃밭은 부지런하고 사서 일하는 거 좋아하는 시우만 소처럼 열심히 가꿨다. 누구 정서를 함양하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도우와 재우는 텃밭이 생긴 날, 딱 하루 관심을 주고 조금 하는 척을 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물 준다고 쫓아와 놓고 일은 하지 않았다. 놈팡이 한량들처럼 텃밭 앞에 친 텐트에 앉아 밭 가는 데 집중한 시우에게 관심을 갈구했다.

‘엄마! 아빠! 슈아빠! 슈슈~~’

도재가 이것저것으로 시우를 부르니 애들도 따라했다. 호칭이 엄마였다 아빠였다 대중없었다.

도재가 하도 시우야, 시우야 이름이 닳도록 부르니 애들도 종종 슈슈라는 애칭으로 시우를 불렀다. 그런데 이제는 슈슈라 그러면 도재에게 혼이 났다. 말도 다 알아듣는 나인데 아빠 이름을 막 부르는 건 버르장머리 없다고 말이다.

도우와 재우는 도재의 말을 잘 들었는데 반만 잘 들었다. 이 똑똑한 놈들은 도재가 없을 때만 슈슈라고 부른다. 한도재 주니어들은 인생을 두 번째 사는 애들 마냥 능구렁이 같았다.

“왜 불러. 도우 재우도 물 준다며. 일을 해야 밥이 꿀맛인데. 얼른 와서 아빠 도와줘.”

“슈슈! 도우는 아직 네 살이라 물은 못 줘.”

“슈슈! 재우도 아기야. 재우는 물 주는 건 못 해.”

안에 어른이 들어있는 게 확실한데 저들 불리할 땐 꼭 네 살 아기 행세였다.

‘도대체 이 재밌는 걸 왜 안 하지.’

시우는 다른 의미로 쌍둥이들이 신기했다. 그래도 누구에게나 심드렁한 쌍둥이들이 저에게만은 따스해서 엄마 적적하지 말라 자꾸 말을 걸어주는 게 퍽 귀여웠다. 정원이 넓어 한 켠에 소박하게 만든 건데도 텃밭이 더럽게 컸다.

한참을 꼬마 말동무들의 안킬로사우루스, 티라노사우르스, 벨로키랍토르, 프테라노돈 이야기를 들어주며 열심히 밭을 매다 보니 이내 시우의 등 뒤로 낮고 포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애기야.”

진짜 애기인 도우와 재우는 애기라는 데도 저들을 부르는 게 아님을 알아서 반응하지 않았다. 그 목소리에 미어캣처럼 홱 고개를 돌린 건 시우였다. 남편을 발견한 시우가 입꼬리를 활짝 올리며 도재에게 달려갔다.

“여보 다녀오셨어요! 헤헤.”

도재는 달려오는 시우를 번쩍 안아 들어 한 팔로 받치곤 연이어 우다다다 뛰어오는 쌍둥이들을 맞이했다. 도재의 다리에는 다녀오셨냐는 인사도 없이 슈아빠를 빨리 내려놓으라고 성화인 짹짹이들이 들러붙었다.

가볍게 무시한 도재는 휘적휘적 현관문을 향해 걸어가며 잠시 시우와 둘만의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시끄러운데 저렇게까지 완벽하게 무시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시우 오늘 뭐하고 놀았어?”

“책 읽고, 애들 데리고 산책 갔다가, 점심 먹고, 저녁에 엄마랑 아버님 오시니까 장 보러 갔다가, 시험 공부하고, 밭일 했어요.”

“어이고 우리 애기 바빠. 도우 재우가 방해 안 했어?”

“저 공부할 때는 선생님들하고 잘 놀고 방해 안 했어요.”

쯧, 공부할 땐 방해 좀 하지. 통번역 대학원 입시를 준비 중인 시우가 은근 떨어지길 바라는 도재의 속마음이었다. 하지만 도재는 능숙하게 제 못난 마음을 숨겼다.

“이제 나랑 놀 일만 남았네. 뽀뽀.”

시우가 도재의 양 볼에, 입술에 차례로 입맞춤을 내렸다. 위에서 울려 퍼지는 아빠들의 쪽쪽 소리에 저들도 해달라고 아우성치는 도우, 재우가 도재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집까지 질질 끌려갔다. 결국 집에 들어와 도우와 재우의 이마에도 입술 도장을 찍어준 시우가 아이들을 올려 보냈다.

“가서 손 깨끗이 닦고, 책 읽어. 이따가 할머니, 할아버지 오실 거니까 인사 잘 해야 한다, 너희.”

두 아이의 아빠답게 꽤나 의젓한 소리를 한 시우지만 현실은 빨리 안 오냐고 재촉하는 도재에게 허리가 들려 두 다리가 대롱대롱한 채로 안방까지 연행되는 똥강아지였다.

“하읏…! 여보, 여보…! 읏! 엄마랑 아버님 오실 때 되었는데 하앗….”

“하… 알았어 알았어, 빨리 한 발만 빼자. 우리 애기 착하지. 가만 있어.”

갓 퇴근한 도재와 흙먼지 묻은 시우는 함께 샤워를 하러 들어갔고, 제 버릇들을 개 주지 못한 채 살짝만 하자며 고새를 못 참고 막간을 이용해 사랑을 나누었다.

“여보…! 하응…! 그럼 세게, 세게 해주세요…! 읏! 빨리, 빨리.”

“씹. 세게 해달라고 하지 마. 구멍 찢어지게 박고 싶으니까.”

말은 저렇게 했지만 도재는 시우의 분부대로 샤워부스가 부서져라 허리를 털기 시작했다. 쌀 거 같다고 앙앙거릴 즈음 도재도 스퍼트를 더욱 빠르게 올리며 시우의 페니스를 함께 흔들었다.

“어흑…!”

질펀하게 몸을 섞은 부부는 사정을 하고도 아쉬워 한참이나 서로의 혀를 놓아주지 못하다 진짜 저녁 먹을 시간이 다가와 아무 일도 없었단 듯 단정한 차림새로 거실로 나왔다.

여섯 식구가 전부 모이기로 한 이 저녁 식사 자리는 물론 시우가 제안했다. 도재 눈치가 보여 먼저 연락을 못 하고 있던 어머님께 특별한 날도 아닌데 ‘엄마 오늘 저녁 같이 먹을까요?’하며 불러준 고마운 작은아들이었다.

방금까지도 좆을 빳빳이 세우고 교성을 지르던 애가 저에게만 보이는 야한 얼굴을 말끔히 지우고 싹싹하게 어머니, 아버지를 맞는 모양새는 도재를 더욱 꼴리게만 했다. 함께 보낸 세월이 몇 년인데 아직도 꼴리게 하는 덴 선수였다.

맨날 따먹어도 더 따먹고 싶은 맛있는 서시우지만 가족을 여간 중시하는 게 아닌 안주인이라 도재도 가족의 일원으로서 제 안주인을 도와 도우와 재우를 테이블에 앉혔다.

알아서 앉을 수 있지만 도재가 번쩍 들어 올려 앉혀주면 도우와 재우는 새침하게 재밌어했다. 자존심이 상하는지 대놓고 재밌어하진 않았다. 시우였음 까르르 예쁜 웃음을 터뜨렸겠지만 어쩌겠나, 제 새끼라 그런 걸.

도우와 재우를 시작으로 한 사람, 한 사람 제 자리를 찾아 앉으면서 완전한 가족의 식탁이 채워졌다. 산해진미가 가득했다. 누구는 고기를 좋아하고, 누구는 해산물을 좋아하고, 누구는 채소를 좋아해서 취향이 전부 다른 가족 구성원들을 생각해 차려낸 식탁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손자들에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여보려 밥 시중을 자진해 나서고, 도우와 재우는 아기 새들처럼 할머니, 할아버지가 발라준 킹크랩의 살점만 냠냠 받아먹었다. 도재는 옆에 시우를 끼고 앉아 해산물도 먹이고, 고기도 먹이고, 채소도 챙겨 먹였다.

사시사철 물망초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꽃밭 같은 집 안의 완벽한 풍경이었다. 시우가 가장 사랑해 마지않는 그림 속, 가장 빛나는 주인공이 된 시우는 행복의 중심에서 도재와 눈을 맞췄다. 그리곤 환히 웃었다.

“여보 사랑해요.”

뜬금없이 귓속말을 해와도 일말의 망설임 없이 자기도 사랑한다 말해주는 남편과, 우리 빼고 아빠들만 무슨 얘기를 했냐고 짹짹거리는 아이들이 있는 따듯한 집.

올해도,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이 그림 속에서 변하는 건 도우와 재우의 키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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