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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4. 리우의 다음 생 (14/14)

외전4. 리우의 다음 생

도우와 재우가 고등학교에 올라가며 리우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엄마, 아빠, 오빠들보다 빨리 흘러버린 막내딸의 시간은 야속하게도 아직 놀아줄 체력이 넘쳐나는 가족들과 리우를 갈라놓았다. 기력 없이 하루 종일 누워 지낼 때부터 작별을 준비했지만 막상 겪어보니 소중한 가족을 잃는 데에 있어 준비되는 마음 같은 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준비했다고 깎이고 그러는 거 없이 슬플 만큼 아주 꽉 채워 슬퍼했다. 살아생전 식구들을 많이 기쁘게 해준 막내딸이라 그런지 슬픔의 크기도 거대했다.

가루가 되어 유골함에 담겨있는 리우를 그리워하며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는 것처럼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가 온 집안을 메웠다.

어느 한 사람이라도 눈물을 터뜨리면 다 같이 주체할 수 없을 것 같아 한마음 한뜻으로 의연한 척하던 식구들이었지만 결국 소파 사이에 끼어있던 리우의 장난감을 발견한 시우가 그대로 소파에 주저앉아 엉엉 울기 시작해 아기 때도 잘 울지 않던 우성 알파들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시우의 주변으로 모인 도재와 쌍둥이들은 제 눈물을 훔치며 쏟아지는 비를 막아주듯 시우를 감싸 안았다. 그래도 시원하게 한 번 울고 난 게 약간은 도움이 되었다. 가족들은 조금씩 슬픔을 이겨내기 시작했다.

리우를 위해서라도 다시 밝아져야 했다. 리우는 식구 중 누구 하나라도 기분이 안 좋은 꼴을 못 보던 애였기 때문이다. 자꾸 슬퍼하면 리우가 남겨진 가족들을 자꾸만 뒤돌아보느라 편히 떠나지 못할 터였다.

강아지별에서 다시 건강해진 모습으로 친구들과 뛰어 놀 리우를 생각하며 식구들도 힘을 내기로 했다. 그렇게 서서히 미소를 되찾아 갔다.

***

리우를 보낸 지 1년, 도우와 재우가 열여덟이 된 해였다.

시우는 새 학기가 시작된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방에서 쉬고 있었다. 히트 사이클이 오늘내일하던 차였다. 잠시 눈을 붙이다 꿈을 꾸었다.

처음 만났을 당시의 어린 모습을 한 리우가 경쾌한 발걸음을 놀려 도재와 시우의 침실에 팡! 하고 뛰어드는 꿈이었다. 리우가 떠나고 한 번씩 리우가 나오는 꿈을 꾸곤 했지만 그리운 막내딸이 나오니 당연히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마음이 먹먹했다.

그런데 이번엔 꿈에서 깨어났을 때의 감정이 평소와는 확연히 구별되었다. 간질간질 리우의 부드러운 털이 온몸에 감겨 있는 것 같았고 살랑살랑 꼬리가 눈앞에서 흔들리는 것 같았다. 시우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몽글몽글한 감정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 지었다.

“침대가 높아서 우리 리우는 못 뛰는데, 헤헤.”

시우가 혼자 중얼거렸다. 바보같이 자꾸 웃음이 나는 꿈이었다. 가슴에 사무치는 기분이 들어야 하는데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리우를 품에 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혼자 비실비실 웃고 있을 때 몸에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이제는 프로 오메가가 된 시우가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서재에 있는 남편을 불렀다. 여기까지는 매 3개월에 한 번씩 행하는 절차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완전히 이성이 까무러지기 전, 시우는 달뜬 얼굴을 하고 도재에게 뜬금없이 리우 타령을 했다. ‘여보 빨리 박아주세요.’ 하다가 갑자기 ‘여보, 리우.’ 했다.

“리우… 리우….”

중얼거리던 시우는 풀린 눈으로 도재를 응시하며 다리를 벌렸다.

리우를 다시 내놓으라며 저를 유혹하는 시우에 도재의 눈도 함께 풀려갔다. 시우가 해달라는 건 전부 해주고 마는 도재는 어떻게든 시우에게 리우를 다시 돌려줘야 한다는 마음 하나 남기고 격렬하게 허리를 털었다.

“하앙…! 여보, 여보…! 안에, 안에…! 빼지 마, 하앙…!”

히트 때마다 별소리를 다하며 도재를 힘들게 만드는 시우는 이번에도 역시 도재를 시험에 들게 하는 소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저 정도 멘트는 이십 년 가까이를 함께 한 부부에게 썩 심한 말도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이상했다.

도재는 제가 러트라도 온 양 빼지 말라는 시우의 말에 핀트가 나가버렸다. 리우를 만들자고 중얼거렸다. 사정이 다가오는데도 뺄 생각 없이 쾅쾅 찍어대기 바빴다.

시우가 정신을 못 차리는 상태면 도재라도 이를 까득 물고 참았어야 하는데. 결국 쌍으로 리우 타령을 하며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 부부는 또 사고를 쳤다.

“으윽…!”

시우는 노팅의 순간을 다시는 느끼지 못할 거라 여기고 살아왔다. 도우와 재우의 탄생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라 당연시했다.

그러니 제 몸을 가득 메우는 도재의 씨를 받으며 히트를 날려버리는 짜릿한 쾌감이 가시자마자 시우에게 가장 처음에 서린 건 당혹감이었다.

‘이, 이 나이에…?’

도재가 아직도 자꾸 애기라 그래서 하늘에서 잠시 착각을 하고 점지를 잘못해준 건 아닐까? 크게 당황스러워 하던 시우에게 퍼뜩 리우가 나온 꿈이 떠올랐다. 태몽이었나 보다. 그 생각을 하니 당혹감 같은 건 금세 지워져 버렸다. 하늘에서 잘못 점지해준 게 아니고 꼭 와야 할 아이가 온 것이었다.

이렇게 강아지별에서 놀만큼 논 리우가 제 두 번째 생을 살기 위해 다시 식구들에게 돌아왔다.

‘리우 왜 이제야 왔어. 얼마나 기다렸는데.’

시우는 아직 사정을 멈추지 못한 도재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애기야, 그렇게 웃지 마. 싸고 있는 데도 싸고 싶어.”

***

당연히 임신이었고 도재와 시우에겐 늦둥이가 생겼다.

도우와 재우에게 알리기 심히 민망했지만 다행히 아이들은 동생이 생긴 걸 순수하게 기뻐했다.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니까 질투도 하지 않았다. 태명은 고를 것도 없이 리우로 지었다. 리틀 시우, 리우.

입덧도 안 시키고 뭐든 덥석덥석 잘 먹는 리우 덕분에 열 달은 금방이었다. 공부를 안 해도 공부를 잘하니 고등학생으로서 썩 열심히 할 일이 없던 도우와 재우까지 합세해 엄마의 임신 수발을 들었다. 많은 손에 비해 리우가 너무 고생을 안 시켜 아까울 정도였다.

“우리 애기 먹고 싶은 거 없어?”

“리우는 다 좋대요.”

“그럼 시우는? 시우는 뭐가 좋아?”

“저도 다 좋은데, 헤헤.”

도재는 순둥이 둘이 한 몸으로 다니는 걸 보며 종종 심장을 부여잡았다. 리우야, 리우야. 부르기만 해도 슬펐던 이름이 이제는 다시 행복을 주었다. 아들로 돌아올까 딸로 돌아올까, 리우니까 딸이지 않을까. 아니야, 두 번째 인생은 아들로 살아보고 싶을 수도 있지.

식구들은 옹기종기 모여 리우 얘기를 하기 바빴다. 무슨 생각을 하던 즐거웠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싱글벙글인 시우에 도재가 피식 웃으며 시우의 볼을 꼬집었다.

“난 걱정돼 죽겠고만 신났네, 아프지 말고. 잘 다녀와.”

“네.”

도재가 시우의 손등에 촉- 하고 입을 맞춰주자 시우가 씩씩하게 손을 흔들었다.

“여보, 다녀올게요.”

“엄마. 우리는?”

“도우, 재우도 안녕! 엄마 다녀올게.”

***

어떻게 긁혀도 당첨인 복권을 다시 한 번 긁어보게 된 도재와 시우에겐 시우를 쏙 빼닮은 우성 오메가 공주님이 찾아왔다. 너무 닮아서 말 그대로 리틀 시우였다. 그래서 본명도 그냥 리우라고 할까 했는데 두 번째 삶은 가족들 품에 더 오래오래 머무르라고 새 이름을 지어주었다.

서우, 한서우.

운동 신경까지 시우를 닮아버려 혼자 제 다리에 걸려 풀썩풀썩 넘어지곤 했지만 씩씩한 공주님은 넘어져도 울지 않고 방긋방긋 잘만 웃었다. 아장아장 수준의 속도로도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니는 서우의 뒤를 190cm까지 커버린 도우와 재우가 전전긍긍하며 쫓았다. 어어! 서우 넘어진다, 조심조심.

그러다 혼자 쿵 하고 머리를 찧어 혹이 났을 땐 도재아빠에게 연행되어 잠시 보행을 금지당했는데 그러면 또 깔끔히 포기하고 도재 품에 가만 안겨있었다. 이러니 도재는 딸바보가 되었다. 시우에겐 등신, 서우에겐 바보였다.

“공주야, 혹 났잖아. 아빠 속상하게.”

도재가 다정하게 한마디 건네면 서우는 제가 잘못한 줄 아는지 갑갑하다 보채지도 않고 얌전히 있었다. 그러다 도재의 가슴팍에 침을 질질 흘리며 잠이 들었다.

“우리 공주님은 체통은 없는 편이야. 우리 시우 따라가려면 멀었어.”

서우를 아기 침대에 눕히고 온 도재가 시우에게 제 티셔츠에 남은 침 자국을 보여주며 말했다. 요즘 빠져있는 크루아상을 체통 없이 세 개째 먹고 있던 시우가 입가에 빵 부스러기를 매달고 머쓱하게 웃었다.

“체통 없는 것도 저 닮은 것 같은데….”

사랑스러운 자백에 도재가 시우의 온 얼굴에 뽀뽀비를 내렸다.

“하긴 똥강아지들이 체통은 무슨. 그런 거 지키지 마.”

도재의 첫 번째 애기가 도재에게 쪽쪽 뽀뽀를 돌려주며 배시시 미소 지었다. 둘째, 셋째는 아기 침대 앞에서 공주님이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엄마 닮아 예쁜 짓만 하는 넷째는 쌔근쌔근 잘도 잤다. 자면서도 헤에- 입꼬리를 올려 오빠들을 숨 막히게 했다.

누구 하나 행복하지 않은 이가 없었고, 누구 하나 웃고 있지 않은 이가 없었다. 올해도,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이 그림 속에서 변하는 건 서우의 키뿐일 것이다.

-마침-

[로튼 애플(Rotten Aplle) 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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