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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섹슈얼-7화 (7/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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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한 얼굴로 새벽 타임을 담당하던 보안실 직원이 갑자기 등장한 클레이 디어를 보고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어제부터 삼 일간, 업무가 끝난 이후부터 출근 시간 전까지 기획비서실에서 녹화된 영상 모두 복사해서 내게로 보내.”

“네? 그건 왜……?”

“굳이 설명해야 하나?”

“아, 아니요. 알겠습니다.”

차갑고 냉정한 목소리에 보안실 직원이 바짝 긴장한 채 대답했다. 삼십 분 안으로 보낸다는 말에 미간을 찌푸리자 십 분으로 줄어들었다. 클레이는 직원이 복사를 마칠 때까지 그의 등 뒤에 서 있었다. 집요한 본능이 이성을 무너뜨린 결과였다.

* * *

오늘도 이른 시간에 출근한 밀리안은 사장실에 불이 켜진 것을 보고 멈칫했다. 이 시간에? 출근 시간보다 항상 한 시간 반 전에 회사에 오던 밀리안은 오늘 평소보다 삼십 분 먼저 출발했다. 즉, 두 시간이나 먼저 출근한 상태인데, 클레이 디어가 그보다도 먼저 왔다는 것이었다.

블라인드가 내려가지 않은 투명한 유리 벽 안쪽에서 여자는 사뭇 심각한 얼굴로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회사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하지만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별다른 일 없이 평온했다. 그의 사정만 다급했을 뿐이지, 회사는 평범하게 굴러갔다.

하지만 기업이라는 건 언제 어느 때 사고가 터져도 이상하지 않기 때문에 밀리안은 심각한 얼굴을 한 클레이 디어를 조심스럽게 바라봤다. 피하고 싶은 사람이지만, 그래도 가장 가까이에서 보필해야 하는 상사였다. 만약 그녀가 이렇게 이른 시간에 출근한 이유가 회사에 문제가 터져서라면 그 이유를 그도 알고 있어야 했다.

밀리안은 손에 들고 있던 브리프 케이스를 자리에 내려놓고 사장실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사장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와.”

그가 안으로 들어가서도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던 여자가 뒤늦게 고개를 들더니 눈을 찌푸렸다.

“얼굴 꼴이 왜 그 모양이야?”

“네?”

“잠, 안 잤어?”

“……좀 생각할 게 있어서.”

그렇게 티가 났던가.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거울을 볼 때만 해도 평소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밀리안은 손으로 얼굴을 쓸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렇게 나쁘지 않아.”

피로감이 물씬 묻어나는 얼굴이었지만, 평소보다 덜 딱딱해 보여서 단정한 얼굴이 묘하게 섹시했다. 섹시? 클레이는 미간을 찌푸렸다. 밀리안 디모시가 섹시하다니.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사장님, 혹시 회사에 무슨 문제가 생겼습니까?”

“뭐?”

“평소보다 이르게 출근하셔서요. 문제가 있다면 미리 알고 있는 쪽이 좋을 것 같아 여쭤봤습니다.”

“……아니, 없어.”

아무리 뻔뻔한 클레이라도 회사에 일찍 출근한 이유를 솔직하게 말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나가보라며 손을 내젓자 밀리안은 뭔가 석연찮은 기색으로 주저하다 나갔다.

클레이는 밀리안이 들어오기 전에 닫았던 영상을 다시 열려다 이게 무슨 짓인가 하는 자괴감이 몰려와 PC의 전원을 아예 꺼버렸다.

“하아.”

미친 짓을 하는구나. 고작 오메가 하나가 뭐라고. 그것도 얼굴도 모르는, 옅은 냄새 하나에 휘둘리는 꼴이라니.

환하게 비치는 유리창을 통해 밀리안이 불안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클레이는 손으로 지끈거리는 미간을 꾹꾹 눌렀다.

* * *

“맥시, 이거 봤어요? 사장님이 오랜만에 크게 터트리셨네요.”

레이가 호들갑을 떨며 자신이 보던 핸드폰 화면을 맥시에게 보여줬다. 스테이크를 썰던 맥시가 시큰둥하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가 눈을 크게 떴다.

“역시 욕구불만이었어.”

“맥시도 그렇게 생각하죠?”

레이는 오랜만에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는 맥시의 말에 반색했다. SNS 어플을 통해 클레이 디어의 파파라치 사진을 보던 레이와 맥시는 동시에 한숨을 거하게 내쉬었다.

“그런데 왜 아직도 저기압일까요?”

“부족했나? 세 명을 동시에 불러서 밤새 했으면 풀릴 만도 할 텐데…….”

“그러니까요.”

클레이 디어는 모처럼 화려한 스캔들을 뿌린 것치고는 기분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어제 불려와 깨졌던 임원들이 오늘도 소환되어 줄줄이 깨지고 나갔다. 칙칙한 사무실에서 숨조차 제대로 쉬지도 못하다가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 오고 나서야 숨통이 조금 터진 두 사람이었다.

레이는 핸드폰 화면을 끄고 스테이크를 썰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밀리안이 너무 조용했다. 따로 식사하겠다는 것을 억지로 끌고 오긴 했는데, 말도 없고 표정도 어딘가 어두워서 맥시와 수다를 떨면서도 계속 눈치를 살피게 됐다.

“저기, 밀리안. 괜찮아요? 진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안색이 나아질 기색이 없었다. 괜히 아픈 사람을 눈치도 없이 끌고 온 게 아닌가 싶었다.

밀리안은 자신을 보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에 놀라 눈을 깜박였다. 생각이 많아 그들이 자신을 보는 것도 몰랐다.

“아뇨, 잠깐 딴생각을 했습니다.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말고 식사하세요.”

“밀리안은 항상 괜찮다고만 하잖아요.”

“맞아. 표정도 맨날 똑같아서 도무지 읽지를 못하겠다고요.”

레이가 맥시의 말에 덧붙이며 밀리안의 표정을 따라 했다. 밀리안은 자신이 정말 저런 표정을 짓고 다녔는지 의식한 적이 없어서 놀랐다. 맥시가 레이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찔렀다.

“레이.”

“아, 왜요? 맥시도 비슷한 말을 하고 왜 나한테만 뭐라고 해요.”

“넌 정말 눈치를 어디에 두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맥시와 레이가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자신에게서 시선이 돌아가자 밀리안은 한숨을 삼켰다. 왜 이렇게 불안하지? 이상할 정도로 심장이 뛰었다. 며칠 전 사무실에 오메가 냄새가 난다던 클레이 디어의 말과 평소와는 다른 이른 출근이 계속 신경 쓰였다. 잘 넘겼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

아니야. 그렇지 않을 거다. 들키지 않을 거야. 사람은 가끔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기도 하니까. 자신이 너무 과민하게 연관 지어 생각하는 거라고, 그렇게 털어내려고 해도 미진한 불안감이 머리끝을 계속 잡아당기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오늘 사장님 몇 시에 출근하신 거예요? 무슨 일 있어요?”

“…….”

“밀리안?”

“……네?”

“또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내가 한 말 들었어요?”

“아, 죄송합니다. 뭐라고 했죠?”

“오늘따라 사장님도 그렇고, 밀리안도 참 이상하네요. 평소와는 너무 달라.”

레이의 말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밀리안은 맞은 편에 앉은 레이를 향해 상체를 숙였다. 불시에 얼굴이 거의 맞닿을 정도로 가까워진 탓에 레이의 몸이 경직됐다.

“제가, 평소와 그렇게 다릅니까?”

“저기, 밀리안?”

“어떻게요? 뭐가 이상합니까?”

“읏……. 너, 너무 가까운데요.”

레이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푸른 눈동자가 밀리안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두 사람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맥시가 혀를 차고는 중간에 팔을 내밀어 밀리안과 레이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진정하세요, 두 사람 모두.”

“아.”

“맥시이!”

정신을 차린 밀리안이 멀어지자 레이가 울먹거리며 맥시를 돌아봤다. 맥시는 꼭 성추행을 당한 아이 같은 얼굴을 하고는 제 품에 안기려는 듯 양팔을 벌리고 다가오는 레이의 입을 손으로 눌러 밀어냈다.

“우웁!”

“적당히 해.”

귀엽지도 않은 게. 맥시가 무표정한 얼굴로 악담을 했다. 레이의 입술을 손바닥으로 막은 채로 그녀는 밀리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진짜 오늘 무슨 일 있어요? 왜 이렇게 섹시해요?”

“……제가요?”

“평소보다 피곤해 보이는데 그게 뭔가, 좀, 아무튼 그래요.”

눈가에 깊게 진 그림자가 우수에 차게 했다. 평소에도 말이 없긴 했지만, 오늘은 유독 상념에 잠긴 모습도 좀 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섹스어필하는 건 아닌데, 원래 이렇게 은은하게 사람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 더 위험한 법이다.

섹시하다고? 밀리안은 제 얼굴을 손으로 매만졌다. 대체 어디가? 살면서 처음 들어본 말이었다. 자신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기도 했고,

“대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면 됐어요.”

그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 황당한 표정을 짓는 걸 보고 맥시가 혀를 내찼다. 어제 밀리안이 조금은 수줍은 얼굴로 웃었던 게 생각났다. 그 딱딱하던 남자가 빈틈없이 그었던 선을 조금이나마 느슨하게 풀었던 얼굴은 연인이 있는 맥시의 가슴도 설레게 할 정도였다.

딱 여자의 모성애를 불러일으키는 남자였다. 어딘가 보호해줘야 할 것 같고, 위로해 줘야 할 것 같고, 또 왠지 모르게 울리고 싶기도 한. 맥시는 생각이 점점 위험한 쪽으로 빠지는 것 같아 머리를 흔들었다.

“그거 외에는 크게 이상하지 않으니까 순진한 애 괴롭히지 말고요.”

레이의 얼굴은 여전히 붉었다. 평소에 과할 정도로 스스럼없이 밀리안에게 말을 걸더니 지금은 시선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저러다 성 정체성까지 고민하게 될지도 모르겠네.

위험한 남자였어. 같은 남자도 한 번에 넘길 수 있을 정도라니. 밀리안보다 이 년 뒤에 회사에 들어온 맥시는 지난 삼 년간 함께 지내며 그가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물론 동료로서 든든했지만, 그게 다였다. 그 정도 함께 일을 했으면 틈을 내어줄 법도 한데 밀리안의 벽은 너무 단단했다. 그나마 그런 쪽으로 개념이 없는 레이가 입사한 이후로 조금이나마 대화가 트였으니 말 다 한 셈이다.

그런데 갑자기 변했다. 애인이라도 생겼나? 아니지. 애인이 생겼다면 저렇게 수심에 쌓인 얼굴을 하지는 않았을 거다. 맥시의 망상은 밀리안이 나쁜 여자에게 걸려서 마음고생을 하는 중이 아닌가, 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녀는 동정 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밀리안, 도움이 필요하면 꼭 말해요.”

“네?”

“너무 혼자 고민하지는 말고요. 여자의 마음은 여자가 잘 아니까 도움이 될 거예요.”

“……?”

“그래요. 쉽게 말하기 어려운 거 알아요.”

“맥시? 대체 무슨 말을 하는…….”

이미 결론까지 혼자 마쳐버린 맥시는 밀리안의 말을 채 듣지도 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 다 먹었으면 이제 슬슬 일어나죠. 돌아갈 시간이에요.”

“그렇죠. 다 먹었는데 언제까지 수다 떨고 있어요. 빠, 빨리 들어가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레이까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앉아 있는 사람은 밀리안뿐이었다.

“…….”

식사가 끝났다고? 밀리안은 거의 커다란 스테이크의 반은 남긴 접시를 내려다봤다. 자신뿐 아니라, 두 사람의 접시 역시 비슷한 양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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