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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 로비 안쪽으로 들어서기 무섭기 보안실의 실장, 에릭 드와이스가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워낙 체격이나 키가 크다 보니 세 사람이 나란히 서 있는 앞을 막았는데 오히려 단단한 벽에 막힌 느낌이었다.
사십대 후반의 남자는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는데, 당장이라도 상의 안쪽에서 총을 꺼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위험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는 다른 두 명에게는 시선조차 두지 않고 밀리안만 직시했다.
“밀리안, 잠깐 나 좀 보지.”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자세한 건 자리를 옮기고.”
에릭 드와이스가 건물 로비 안쪽을 가리켰다. 보안실이 있는 곳이었다. 자리까지 옮겨서 해야 할 말이라니. 밀리안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맥시, 저는 조금 뒤에 올라갈 테니, 먼저 들어가 계세요.”
“네, 그럼 먼저 올라갈게요. 아, 두 시간 뒤에 회의 잡혀있으니까 늦을 것 같으면 전화하세요.”
“네, 고마워요. 맥시.”
그들의 대화를 묵묵히 듣고 있던 에릭 드와이스가 먼저 등을 돌려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밀리안은 그 뒤를 따르며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의문이 들었다. 원래 과묵한 성격인 보안 실장은 이런 식으로 밀리안에게 면담을 요청하지 않았다. 뭐지. 아침부터 평소와 다른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오전 내내 불안하게 뛰던 심장이 절정에 달하자 오히려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로비 데스크 뒤쪽에 보안실이 있었다. 밀리안이 에릭 드와이스를 따라서 보안실 안쪽으로 들어가자 체격이 상당한 팀원들이 모두 그를 바라봤다. 수많은 눈동자에 모두 예민하게 날이 서 있었다. 그 위압감에 밀려 밀리안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들은 밀리안의 얼굴을 확인하고 다시 원래 보고 있던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몸이 조금 가벼워졌지만, 긴장감은 더 올라갔다.
넓은 보안실은 이어져 있는 벽면 양쪽에 달린 수많은 모니터가 있었고, CCTV 영상이 돌아가고 있었다. 빌딩 안에 깔린 카메라의 수가 이렇게 많았구나. 처음 본 것도 아닌데, 새삼 질리는 기분이었다.
밀리안이 다른 것에 정신을 팔고 있자, 에릭 드와이스가 그의 등을 툭 쳤다.
“이쪽으로.”
“아, 네.”
에릭이 밀리안을 안내한 곳은 보안실 안쪽에 있는 네 개의 의자와 좁은 테이블, 벽면에 커다란 모니터가 있는 소규모 회의실이었다. 밀리안이 의자에 앉자 에릭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갑작스럽게 불러서 미안해.”
“아니요. 괜찮습니다.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사장님이 오늘 새벽에 보안실에 와서 비서실에 설치된 모든 카메라의 삼 일치 영상을 복사해갔어. 혹시 무슨 일이 있었나?”
“……네?”
“사장실과 연결된 비서실 쪽은 특별 관리하고 있고, 문제가 있었던 적은 없었어. 사장님이 요구한 기간은 특히 더.”
“삼 일이라면, 정확히 언제입니까?”
“어제부터 앞쪽으로 삼 일치. 우리가 다시 확인한 바로도 문제가 없었는데 사장님이 새벽에 오셔서 요구할 정도면 분명 문제가 있다는 건데 이걸 모르겠다는 게 우리 쪽에선 가장 큰 문제거든.”
“그, 렇죠.”
삼 일. 밀리안은 아침부터 불길하다 느꼈던 기분이 바로 이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클레이 디어가 오메가의 냄새가 난다고 했던 날부터 삼 일치의 영상. 아무리 아니라고 생각해도 본능은 그녀가 자신을 찾고 있다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온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어 내렸다.
“이건 심각한 문제야. 특별 관리하고 있던 장소가 보안이 뚫렸다는 의미일지도 모르니 더더욱. 정말 아는 게 없나?”
“……모르겠습니다. 오늘 사장님께서 일찍 출근하셔서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그 이상은…….”
에릭 드와이스는 날카롭게 밀리안의 표정을 살폈다. 혹시 뭔가 숨기고 있는 게 없는지 알아보려는 것 같았다. 밀리안은 고개를 저으며 재차 부정했다.
“정말 모릅니다. 사장님께서 그런 영상을 요구하셨다는 말도 에릭에게서 처음 들었으니까요.”
“으음.”
하긴, 네가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지. 에릭이 속이 답답하다는 얼굴로 마지못해 수긍했다. 밀리안은 긴장으로 차갑게 굳어진 손을 꽉 쥐었다. 티를 내지 말자. 절대로. 아무에게도 알려지면 안 된다.
“네가 모른다면 사장님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는 말인데…….”
“직접 물어보시는 쪽이 빠르지 않습니까?”
“이건 우리 보안실의 자존심 문제야.”
그것보다 보안에 대해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나. 하지만 밀리안에게는 보안 실장이 그런 쪽으로 자존심을 부리는 게 오히려 나았다. 시간을 더 벌 수 있다는 말이니까.
“이건 당분간 비밀로 부탁하지.”
“물론입니다.”
“좋아. 당신이라면 다른 곳에 말을 흘리고 다닐 리가 없으니 안심할 수 있지. 갑작스러웠을 텐데 미안하군.”
“아닙니다. 당연히 제가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문제니까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나도 원인을 알아내면 네가 먼저 말해 주지.”
에릭의 말은 밀리안, 그가 내막을 알게 되면 바로 저에게 알리라는 뜻이기도 했다. 밀리안은 자신도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고 보안실을 나왔다.
평소와 다르지 않게. 평범하게 행동해야 해. 밀리안은 어금니를 악물고 로비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이 빌딩 내에서 유일하게 감시 카메라가 없는 안전지대인 화장실로 들어갔다. 사원증을 목에 건 남자가 그를 스쳐 지나갔다. 항상 깔끔하게 청소된 화장실 안에는 인기척이 없었지만, 밀리안은 혹시 누가 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좁은 칸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나서야 무너져내렸다.
“우우욱!”
점심으로 먹었던 음식이 위액과 섞여 변기 안으로 쏟아졌다. 위가 쥐어짜지는 통증이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그보다도 에릭 드와이스가 말한 사실이 더 괴로웠다.
밀리안은 물을 내리고 변기의 둥근 테두리를 양손으로 짚었다. 다리가 떨려서, 아니 온몸이 떨려서 무언가를 지탱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가 없어서였다.
어떡하지?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 걸까. 클레이 디어는 자신을 찾아내서 어쩌려는 걸까. 왜 보안실에 맡기지 않고 직접 영상을 확인하려고 한 건지도, 그게 새벽에 나와서까지 알아봐야 할 정도로 그녀에게 큰 문제였는지도, 모두가 의문이었다.
철저하게 지켜왔다고 생각한 비밀이 순식간에 그의 목을 옥죄어왔다. 어쩌면 생각보다 큰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냥 클레이 디어에게 자신이 오메가였다고 말을 한 뒤에 회사 규정에 맞춰서 퇴사하면 되는, 그 정도의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편하고 쉬운 해결 방법이 밀리안에게는 끔찍하게 어려운 일이었다. 누군가에게, 특히 알파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그건 밀리안이 필사적으로 지켜왔던,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도망쳐야 해. 자신의 비밀이 알려지기 전에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으로 도망쳐야 한다.
‘어디로? 어디로 가야 하지? 매번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도망쳐야 하나?’
그건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그 어떤 곳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는 사실이 주는 공포가 그를 지배했다.
‘아니야. 아직 들키지 않았어. 아무 일도 없이 넘어갈 수도 있어, 밀리안 디모시. 미리부터 겁먹지 말자.’
그 정도까지의 일이 아닌데 너무 최악의 상황만을 가정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다 정말 들키면?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그냥 털어버려. 그까짓게 뭐라고. 남들은 다 자유롭게 살고 있어. 왜 혼자만 유난을 떠는데?’
‘…….’
‘오메가도 사람이야. 너는 사람답게 살 자격이 있어.’
정말 그럴까? 그냥 다 털어버려도 나는 여전히 사람일까? 그 누구도 그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닿지도 않으려고, 자식이 오메가라는 사실만으로도 끔찍하게 여기던 어머니, 자신에게 치욕을 주지 말라며 다른 나라로 떠나라던 아버지. 가장 가까운 혈육조차 그의 존재를 부정하는데 대체 누가 인정을 해줄까.
‘그래도 사람이야…….’
사람.
아무라도 좋으니. 누군가가 그의 존재를 인정해 주길 바랐다. 오메가여도 된다고. 사람으로 살아도 된다고.
‘제발.’
* * *
클레이 디어는 서류를 들고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맥시 알렌을 향해 물었다. 항상 임원 회의는 밀리안이 수행했는데, 오늘은 그가 아니라 맥시가 따라왔다.
“밀리안은?”
“몸이 안 좋아서 의무실에 잠시 다녀온다고 했습니다.”
“하긴.”
아침에 봤던 얼굴 상태로 보면 그럴법했다. 그러고 보니 밀리안이 자신을 향해 오늘 왜 이렇게 일찍 출근했는지 물었었다. 항상 출근 시간에 맞추거나, 혹은 그보다 늦게 오고는 했던 것과 달랐기 때문에 물었겠지만, 밀리안도 평소와 다르긴 마찬가지였다.
지난 오 년 동안 단 한 번도 병가를 내지 않아 기본 체력이 좋다고 생각했던 남자가 오늘따라 안색이 좋지 않았다.
클레이는 회의실로 걸어가며 조금 뒤에 있을 회의 안건이 아니라, 밀리안에 대해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의 밀리안은 이상할 정도로 존재감이 컸다. 특별히 뭔가를 한 것은 아닌데 이상하게 시선이 갔다.
사무실에서 쓸데없이 색기를 뿌렸다. 이전에는 밀리안 디모시에게서 그런 매력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어서 더 눈길이 갔는지도 모른다. 여자는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동정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닐지도.
클레이는 이미 모든 사람이 자리에 앉아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회의실에 들어갔다. 옆좌석에 앉은 맥시가 그녀의 앞에 오늘 안건에 대한 서류를 올려놓았다. 이미 모두 검토했던 서류를 다시 한번 살피며 클레이는 다시 밀리안의 얼굴을 떠올렸다. 회의가 시작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정작 스스로가 치졸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찾고 있던 정체 모를 오메가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 * *
레이는 자꾸 옆을 힐끔거렸다. 아무리 정면으로 시선을 고정하려고 해도 눈이 자동으로 돌아갔다. 밀리안의 얼굴이 유난히 창백했고, 이마를 타고 투명한 물방울이 흘러 날카로운 턱에 고였다. 동그랗게 맺힌 땀은 떨어질 듯 말 듯 매달려 있다가 목덜미를 훑으며 미끄러져 내렸다. 와, 이거 진짜 위험한데. 레이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아파 보이는데 왜 야하지? 게다가 오늘따라 셔츠 단추를 풀어 놔서는 사람을 이렇게 고뇌에 빠트리는 걸까. 밀리안은 항상 목 끝까지 단추를 채웠기 때문인지 고작 하나 푼 것도 자꾸 시선이 갔다.
점심을 먹을 때도 조금 위험하다고 생각했는데, 의무실도 다녀왔다던 지금의 밀리안은 매우 위험해 보였다. 아, 나 좀 쓰레기 같아. 레이는 아픈 사람을 상대로 이상한 생각을 하는 자신을 질책했다.
“밀리안, 저기, 오늘 많이 안 좋아 보이는데요.”
“…….”
“밀리안?”
“……죄송합니다. 뭐라고 하셨죠?”
“아니요. 아닙니다.”
언제 말을 걸었냐는 듯 레이가 격렬하게 고개를 젓고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분명 자신에게 무슨 말을 했던 것 같은데. 밀리안은 그런 레이를 잠시 바라봤다가 이마 아래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올렸다.
머리가 멍했다. 뇌가 반응하는 속도가 느리니 육체도 둔탁하게 느껴졌다. 일이 쌓여 있으니 습관적으로 키보드를 치고는 있지만, 자신이 문서를 제대로 읽고 있는 것인지도 확신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