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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 이렇게 달지? 고작 살덩어리에 불과할 텐데 이상할 정도로 남자의 입술이 달콤하다. 살짝 미끈한 타액과 까슬한 입술, 헐떡이며 토해지는 거친 숨결, 말캉한 혀까지 모두 완벽했다.
클레이는 단단하게 부푼 가슴을 남자에게 밀착시켰다. 각도를 바꿔 입을 맞추기 위해 살짝 입술을 떨어트렸을 때, 남자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녀를 밀어냈다. 클레이도 딱 방심하고 있었던 터라 덜덜 떨리는 손에도 뒤로 밀쳐졌다.
“하, 흐으……, 하아. 이, 이건, 성추행이…….”
“성추행?”
뇌가 자글자글 끓어오를 정도로 달아올라 남자의 말이 순간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성추행? 내가 지금 당신을 추행했다고? 그렇다고 하기에는 밀리안의 성기가 제대로 서 있었다. 같이 즐겨놓고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클레이는 밀리안의 등을 쓸고 있던 손을 내려 그의 불뚝 선 바지춤을 움켜잡았다.
“하읏!”
“성추행이면? 고소라도 할래?”
이 꼴을 하고 추행당했다고 하면 잘도 믿어주겠어. 클레이는 손안에 꽉 차는 밀리안의 성기를 거칠게 주물렀다. 그렇게 불쾌했다면 이렇게 서지도 말았어야지. 밀리안은 예민한 중심이 애무 당하자 몸을 비틀며 짧은 숨을 연달아 토했다. 가련할 정도로 애처롭고, 아래가 젖을 정도로 야한 모습이었다.
정말 약았다니까. 얄미운 입과는 달리 몸은 쾌락에 너무 약했다. 이러는데 어떻게 화를 내. 클레이는 살짝 누그러진 목소리로 밀리안의 귓가에 입술을 대고 속삭였다.
“고소하려면 증인이 필요하지. 블라인드를 올리면 지금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 목을 빼고 쳐다보고 있을 직원들이 이 상황을 볼 거야. 어떻게 할래?”
올릴까? 클레이는 손수 밀리안의 손을 잡고 블라인드 버튼으로 가져다 댔다. 밀리안이 조금만 손가락에 힘을 주면 버튼이 눌린다. 제가 먼저 성추행 어쩌고 해놓고 정작 블라인드를 올리라고 하니 팔에 힘을 주고 버텼다. 이런 점도 귀엽다.
“눌러. 난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 섹스하는 것도 꽤 취향이니까.”
고작 키스만 하고 고소당하면 억울하지. 클레이의 혀가 동그란 귓바퀴를 핥았다.
“사장님. 제발…… 이러지 마세요.”
“왜? 네가 원하는 대로 해 주겠다는데.”
밀리안 디모시는 절대로 일을 키울 성격이 되지 못한다. 자신은 꽤 유명인사고, 소송이 완전히 끝나더라도 밀리안에게 수많은 파파라치가 붙을 것이다.
그의 과거부터 시작해서 가족사까지 아주 사소한 조각까지 기사로 나올 테고, 그가 아득바득 숨기고 숨겨왔던 오메가라는 사실조차 지켜내지 못한다. 그걸 밀리안 디모시가 모를 리가 없다. 그러니 버튼을 누르지도 못하고 벌벌 떠는 거겠지.
대항하지 못할 상대에게 약점을 잡히지 말았어야지. 이건 모두 밀리안 디모시의 책임이었다. 그저 직원으로 대하던 자신을 향해 페로몬을 폴폴 풍겨가며 유혹한 것도, 완강히 밀쳐내지 못하는 것도.
하지만 조금 심술을 부렸다고 겁을 먹고 벌벌 떠는 것은 또 안쓰러웠다. 클레이는 버튼 앞에 대놓은 그의 손을 아래로 내리게 했다. 그것만으로도 긴장이 풀린 것처럼 마른 몸이 조금 이완됐다.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클레이는 의식을 잃고 축 늘어진 밀리안을 소파에 누이고 심란한 얼굴로 바라봤다. 뭘 어떻게 했다고 또 정신을 놔? 누가 보면 몹쓸 짓이라도 한 줄 알겠다.
이쯤 되니 진심으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벌써 세 번째. 자극을 조금 받았다고 자꾸 정신을 놓는 남자는 심각할 정도로 연약했다. 이런 성격으로 어떻게 제 곁에서 오 년이나 버텼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삽입 섹스까지 가면 심장마비로 죽지 않을까. 이 몸을 제대로 탐하려면 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클레이는 블라인드 버튼 옆에 있는 조명을 눌렀다. 아무리 시력이 좋다 하더라도 빛이 있는 곳에서만큼 섬세하게 보지는 못한다. 밀리안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제 입술에서 옮겨간 붉은 립스틱이 곳곳에 뭉개져 있었다.
손을 내밀어 그의 입술을 훑었다. 얼마나 뭉개놨는지 지워지기는커녕 더 넓게 번졌다. 클레이는 혀를 찼다. 너무 짐승처럼 굴었다. 이러니 겁을 먹지. 알파를 한 번도 제대로 경험해 보지 못했을 오메가를 너무 밀어붙이기만 한 것 같다. 그녀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다정하게 굴고 싶어.”
상대의 기분을 생각하는 건 그녀에게 영 어색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파트너에게 이런 식으로 마음이 약해져 본 적이 없어서 밀리안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자기 딴에는 꽤 부드럽게 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밀리안의 반응은 제 생각과 너무 달랐다.
연애해 본 적이 있어야지. 지금까지 상대를 바꿔가며 가벼운 만남만 가졌던 클레이에게 밀리안은 파악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클레이는 밀리안의 볼을 손으로 쓸었다. 너무 말랐어. 대체 뭐가 문제야? 그녀가 만지는 대로 반응하는 걸 보면 그도 자신에게 어느 정도는 끌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정말 싫었다면 살짝 건드는 것만으로 그렇게 예쁘게 울지 않을 테니까.
몸은 좋다고 하고 입은 싫다고 한다.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건지. 클레이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가 낮게 신음을 흘리고 그의 입술에 살짝 입 맞췄다.
대체 왜 이렇게 예쁜 거야.
기껏 잘 보이고 싶어서 그가 없는 동안 별짓을 다 하면서 외모를 가꿨는데, 아무래도 부족한 것 같다. 상대가 너무 예쁘니 뭘 어떻게 해도 성에 차지 않는다. 얼굴도 얼굴이지만…….
클레이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조금만. 그냥 잠깐 보기만 하는 거야. 머리로는 아직 망설이고 있었지만, 그녀의 손은 제멋대로 움직여 밀리안의 바지 버클을 풀고 있었다.
* * *
“깼어요?”
눈을 뜨자 하얀 가운을 입은 중년의 여자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의무실의 보건의 캐롤. 밀리안은 잠시 텀을 두고서야 여자의 이름을 떠올렸다.
캐롤은 그의 귀에 넣었던 체온계를 빼고 알코올 솜으로 끝을 닦았다. 열은 없네. 적당히 다정하고 적당히 무심한 목소리는 어딘가 안정감을 줬다. 밀리안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일어나게요?”
“제가 여긴 어떻게.”
“사장님이 안고 오셨어요. 저기 밀리안…….”
“네?”
“이런 말은 조심스러운데,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요.”
“……네?”
무슨 뜻이지? 뜬금없는 말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밀리안이 눈을 깜박이자 캐롤은 가운의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그를 신중하게 바라봤다.
“밀리안이 여기 온 거 처음이잖아요. 그리고 사장님이 의식을 잃은 직원을 안고 여기에 들어온 것도 처음이고. 음. ……사장님 사생활이 좀, 그렇기도 하고요.”
“그런 거 아닙니다.”
빙빙 돌린 말이긴 했지만, 무슨 뜻인지는 명확히 이해가 됐다. 밀리안은 굳은 얼굴로 부인을 했지만, 캐롤은 의심을 완전히 푼 것 같지 않았다. 정말 아닙니다. 밀리안이 재차 부인하자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얼마나 잤습니까?”
“두 시간 정도 됐어요. 올라갈 거예요?”
“네.”
몸을 틀어 침대 아래로 다리를 내리던 밀리안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당장 사무실로 돌아갈 것 같던 밀리안이 침대에서 내려오다 말고 굳어 있자 캐롤의 표정에 걱정이 스몄다.
“역시 좀 더 누워 있다 갈래요?”
“아, 아니요. 실례했습니다.”
밀리안은 침대에서 내려와 캐롤에게 인사하고 빠른 걸음으로 의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곧장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밀리안은 누가 보기라도 할까 두려운 듯이 황급히 좌변기 칸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잠금장치까지 내리고 나서야 안심이 돼 이마로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 올렸다.
하체에서 이상한 감촉이 느껴졌다. 어딘가 허전하고, 꽉 조여져 불편했다. 대체 뭐지.
확인해야 하는데, 확인하면 안 될 것 같은 불길한 기분이 든다. 밀리안의 고개가 삐걱거리며 아래로 내려갔다.
* * *
아주 잠시 내려갔던 바지는 황급히 올라갔다.
“미쳤…….”
밀리안은 저도 모르게 내뱉은 소리에 놀라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혹시라도 누군가 있을까 숨을 죽이고 바깥의 기척을 살폈지만, 다행히 조용했다. 본능적으로 가려버린 끔찍한 속옷을 다시 보기 무서웠다.
거칠게 새어 나오는 숨을 손바닥으로 가려 억지로 막아보았지만, 진정이 되지 않는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의문은 너무 쉽게 풀렸다. 그에게 이런 짓을 할 사람은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클레이 디어.’
자신에게 이런 짓을 할 사람은 클레이 디어 외에는 없다. 대체 왜. 왜 자신일까. 오 년간 그녀의 섹스파트너를 모두 봤던 밀리안으로서는 평범한 자신에게 비정상적인 관심을 보이는 클레이 디어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수많은 오메가를 만났던 알파가 뭐가 특별하다고 저에게 이러는 걸까.
회사를 쉬면서도 끝없이 그를 괴롭혔던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그저 호기심일까. 베타라고 생각했던 남자가 사실은 오메가였다는 게 재밌어서? 자신에게 달라붙는 오메가들에게 질려 독특한 놀이 상대를 찾은 것이 아닌가.
‘모르겠다.’
관능적으로 웃던 여자의 얼굴이 떠오르자 휘몰아치는 듯한 강렬한 키스와 소름 끼치도록 자극적인 손길이 동시에 생각이 났다. 밀리안은 두 손으로 얼굴을 거칠게 쓸었다.
무서워.
무섭다. 그 여자가 주는 쾌락이. 그가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짐승 같은 욕망을 이끌어 냈다. 여자와 입을 맞췄을 때, 여자의 부드러운 가슴이 제 몸에 짓눌렸을 때, 그 살덩어리를 잡아채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노력이었다.
밀리안은 가늘게 떨리는 몸을 벽에 기댔다. 한숨이 나온다. 떠나겠다고 결심하고 조용히 정리하려고 했는데, 고작 그 정도의 자극도 참지 못하고 무너졌다.
아주 잠깐, 여자의 입술이 떨어졌을 때, 그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자각이 됐다.
‘눌러. 난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 섹스하는 것도 꽤 취향이니까.’
여자는 진심이었다. 직접 자신의 손을 버튼에 가져다 대는 힘이 너무 셌다. 그가 버티지 않았다면 분명 블라인드가 올라갔을 것이다. 그리고 욕망에 헐떡이는 자신의 모습 또한 모두에게 보였으리라.
등골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밀리안은 아까 느꼈던 공포가 떠올라 숨을 몰아쉬었다. 흉곽이 크게 부풀었다가 빠르게 내려갔다.
내가 그, 여자에게서…… 도망칠 수 있을까.
창백한 얼굴로 밀리안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밀리안, 괜찮아요?”
“저기, 혹시 사장님이 무슨 짓을…….”
“레이! 그 입 좀! 밀리안, 몸도 안 좋은데 서 있지 말고 빨리 앉아요.”
“계속 자리를 비워서 죄송합니다.”
“밀리안이 미안할 게 뭐가 있어요. 다 사장님이…….”
줄리아는 거기까지 말을 하고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밀리안은 쓴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아래는 여전히 낯선 감각으로 불편했다. 결코 자신이 사서 입었을 리 없는 말도 안 되는 속옷을 입고 있는 것을 봤을 때의 기분은 말로 형용하기가 어려웠다.
벗을 수도 없었다. 어디를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모를 괴상한 속옷은 피부에 딱 달라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밀리안은 책상에 팔꿈치를 댄 채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