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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안이 그녀의 품에서 잠들어 있었다. 내내 뻣뻣하게 굳어 있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잠들었다. 항상 깔끔하게 빗어 올린 머리가 자연스럽게 흩어져 그의 눈가에 흩어져 있었다. 자신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남자는 꼭 엄마 품에서 잠이 든 소년 같았다.
이게 바로 모성애인가. 클레이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에 웃었다. 무슨 모성애가 그 대상을 범하고 싶어 안달한단 말인가. 눈가가 붉고, 너무 울어서 부어버린 눈꺼풀이 애처롭기 그지없었다. 클레이는 제 허리를 감은 팔에 만족스럽게 웃었다. 좋았다. 이 남자의 숨결도, 손길도, 체온도.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없었다.
신기한 남자였다. 깨어있을 때는 그렇게 경계하더니, 잠이 들면 온기를 찾아 그녀의 품으로 기어 들어왔다. 그녀의 살갗에 닿아서야 안도한 얼굴을 하고 깊은 잠에 빠졌다.
정에 굶주린 티가 났다. 사랑받고 자라지 못해서 가시를 세우고 경계를 하지만 그 속은 아주 말랑말랑했다. 다른 누군가가 알아차리기 전에 먼저 낚아채서 얼마나 다행인지. 클레이는 밀리안의 눈을 가린 갈색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넘겼다.
“으응.”
“진짜 귀엽게 구네.”
어릴 때 잠깐 밥을 주었던 새끼고양이도 이랬다. 어떻게 들어왔는지 어미를 잃은 고양이는 비쩍 골은 몰골로 그녀를 향해 밥을 달라고 울었다. 경계심은 강해서 순순히 다가오진 않았지만, 관심받고 싶어서 안달하던 작은 고양이. 그게 우습고 귀여워서 틈틈이 시간을 내서 사료를 챙겨주었다.
그러다 그 고양이가 어머니께 다가가 애교를 부리는 걸 보았다. 그게 괘씸해 클레이는 그 뒤로 그 고양이에게 관심을 껐다. 어차피 어머니가 챙겨줄 테니까. 처음에는 가냘픈 소리를 내다가 몇 시간이 되어도 그녀가 나오지 않자 큰 소리로 빽빽거리며 울었다.
어머니가 나가서 밥을 챙겨주어도 마찬가지였다.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절정을 넘겨 목이 쉬어버릴 때쯤 나가자 버림받은 처량한 꼴로 울던 고양이가 냉큼 그녀에게로 달려왔다. 그게 몇 번 반복되고 그 고양이가 성묘가 되었을 즘에는 클레이 외의 다른 인간에게 다가가지도 않았다.
어머니는 약한 짐승을 괴롭히지 말라며 그녀를 꾸짖었지만, 클레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적당히 관계를 가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게 말도 못 하는 짐승이라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다정하게만 대해 주면 자신이 원하는 만큼 소유할 수가 없다.
완전히 갖지 못할 바엔 아예 버리는 게 낫다. 그게 클레이 디어의 지론이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까지 어머니를 따라 자살을 한 뒤 생각이 바뀌었다. 집착이라는 것이, 완전한 소유라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미치게 하는지 부모의 죽음을 통해 깨달았다.
‘하지만 결국 이런 꼴이지.’
아무리 가벼운 관계만을 가지며 몸을 사려봤자 뭐하나. 결국 제 꾀에 제가 넘어간 셈이었다. 가장 가까이 있던 남자에게, 그것도 이런 관계가 될 거라고는 결코 생각도 안 해봤던 남자에게 바로 코가 꿰인 꼴이라니.
기가 막혔지만, 그럼에도 이 남자를 놓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모든 감각이 자신의 오메가는 이 남자라고 외치고 있었다. 놓지 못할 거라면 완전히 가져야지.
아무 데도 가지 못하도록 손과 발을 자르고 저만 바라보도록 길들일 것이다. 천천히 다가갈 수 있음에도, 첫 관계는 부드럽게 가질 수 있음에도 그를 몰아붙인 이유도 이것이었다. 강제하고 그 뒤에는 달콤한 상을 주는 것. 정과 사랑에 굶주린 결핍된 짐승은 결국 자신을 향한 단 하나의 온기에 길든다. 세상에 기댈 곳이라곤 그녀밖에 없다고 완전히 좌절하고 체념하고 그녀의 사랑만을 바랄 것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의 밀리안은 얼마나 더 예쁠까. 클레이는 제 가슴에 얼굴을 비비며 잠투정하는 남자의 등을 쓸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나왔다. 남자는 뭔가 허전한지 손으로 침대를 더듬거리다 이내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제대로 식사나 하는지 의문이 갈 정도로 마른 등은 뼈의 골격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클레이의 눈이 애처롭게 잠이 든 남자의 모습을 한참이나 담았다.
* * *
평소였다면 아침이 되자마자 그녀의 방으로 먼저 들어왔을 벤틀로가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나오자 여전히 따뜻하게 데워진 포트에서 차를 잔에 따랐다. 클레이는 벤틀로가 건네는 잔을 받아들고 향을 맡았다. 텁텁하면서도 부드러운 향이 제대로였다.
“기분이 무척 좋아 보이시는군요.”
“그렇게 티가 나?”
“차라리 얼굴을 가리시지 그러십니까?”
벤틀로의 타박에 클레이가 머쓱한 표정으로 손으로 입술을 만졌다. 그럼에도 어느 때보다 기분 좋아 보이는 기색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런 주인의 얼굴을 매우 보기 좋았지만, 벤틀로는 진중하게 조언했다.
“너무 괴롭히지는 마십시오. 안쓰러운 분입니다.”
“무슨 말을. 난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야.”
“밀리안 님도 그렇게 느껴야 할 텐데요.”
“원래 처음에 길이 들기 전까지가 힘들지 익숙해지면 괜찮아져.”
주인은 퍽 만족한 기색이었지만, 벤틀로는 여전히 우려를 멈출 수 없었다. 클레이 디어는 그에게 아주 소중한 존재이긴 해도 그녀의 성격이 정상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전대의 주인 부부의 사망이 아주 큰 영향을 주긴 했지만, 이전부터도 소유욕과 독점욕이 강했다. 원하는 것은 어떻게든 가져야 하고, 그걸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지금까지야 무탈하게 원하는 것을 취했다고는 하나 그 대상이 사람이 된 적이 처음이라,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물론 벤틀로 역시 클레이에게 맹목적이어서 그녀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게 최선을 다할 것이다. 만약 클레이가 범죄를 저지른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클레이의 행복이 그의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대니얼은 몇 시쯤 오기로 했지?”
“한 시간 뒤쯤에 도착할 겁니다.”
“약점을 잡아 놓길 잘했군.”
그 엉덩이 무거운 놈이 부른다고 날이 밝자마자 헐레벌떡 오다니. 클레이가 유쾌하게 웃자 벤틀로가 미간을 확 찌푸렸다.
“그런 소리 마십시오. 또 그런 짓을 한다면 그땐 이렇게 쉽게 넘어가 주지 않을 겁니다.”
“당연한 소릴.”
감히 자신을 상대로 임상 시험을 했던 대니얼 크래포드에게 투자금을 반으로 줄이는 것으로 가볍게 벌을 준 이유는 대니얼 크래포드가 자신에게 쓸모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또 그런 짓을 벌이면 고작 투자금을 줄이는 것으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대니얼도 그런 자신을 알기 때문에 일단 납죽 엎드리고 시키는 대로 하는 거였다.
모처럼 기분이 좋았다. 근래 컨디션이 이렇게 좋았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상쾌했다. 밀리안을 기다리는 내내 몸속에 쌓였던 노폐물들이 모두 빠져나간 것 같았다. 꼭 새로 태어난 것처럼. 클레이는 자꾸만 유치해지는 자신이 우스웠지만, 다른 말로 표현할 수도 없었다. 정말 그런 느낌이었으니까.
고작 섹스 한 번에 큰 의미를 두지 말라고 밀리안에게 말했던 자신이 어리석었다. 완전히 욕망을 털어낸 것도 아닌, 그런 가벼운 섹스에 이런 기분을 느낄 줄이야. 클레이는 약간은 떫은 찻물을 입 안에 머금고 천천히 음미하며 삼켰다.
아마도 상대가 밀리안이기에 이렇게 특별하게 느껴지는 거겠지. 고작 그런 베이비 섹스만으로도 이렇게 좋은데 제대로 한다면 어떨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더 기대됐다.
벤틀로에게 빈 잔을 건네주고 클레이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안에 있었을 때는 익숙해졌던 밀리안의 달콤한 냄새가 그녀의 방에 은근하게 배어있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의 냄새에 교묘하게 몸을 숨긴 채 야릇할 정도로 살금살금 제 향기를 뿜었다가 다시 사라졌다. 앙큼하긴. 페로몬조차도 꼭 저를 닮았다.
아직도 자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밀리안은 그새 깨어난 모양이었다. 방이 엉망이었다. 방 중앙에 있는 러그 위에서 핸드폰을 쥐고 끊임없이 통화를 누르고 있는 밀리안의 모습이 보였다. 저 꼴을 보아하니 대충 무슨 상황인지 짐작이 갔다.
핸드폰은 탁자 위에 올려뒀었으니 그걸 찾기 위해 방을 뒤진 것은 아니리라. 그렇다면 밀리안이 찾는 것은 약뿐이었다. 먹지 말라고 경고를 해두었는데도 결국 약을 찾기 위해 방을 뒤졌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재킷 안쪽 주머니에 숨겨두었던 약은 이미 변기에 버려 물을 내린 지 오래였다. 아마도 다시 약을 처방받기 위해 닥터 디모시에게 연락을 하고 있는 거겠지. 클레이는 러그 위에 주저앉은 밀리안을 향해 다가갔다.
“닥터 디모시는 지금 연락이 되지 않을 거야. 탈세와 불법 약물유통으로 조사를 받는 상태거든.”
무릎을 굽혀 그의 손에서 핸드폰을 가져갔다. 클레이는 자동응답으로 넘어가는 전화를 종료시켰다. 아래로 숙였던 밀리안의 고개가 번뜩 위로 올라왔다.
“무슨.”
“일단 침대로 가자. 아직 움직이면 안 돼.”
클레이는 밀리안의 몸을 덥석 들어 올려 침대로 향했다. 그리고 무방비하게 앉아 있는 밀리안의 다리를 벌렸다. 또 무슨 짓을 하나 겁을 먹었는지 밀리안이 몸을 요동쳤다. 클레이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하체를 주시했다.
“사, 사장님, 무슨!”
“쉬이. 약이 다 스며들었는지 확인하려는 거니까 그렇게 겁먹지 않아도 돼.”
새빨갛게 부어있던 구멍은 약의 효과를 제대로 받았는지 꽤 가라앉은 상태였다. 살짝 벌어졌던 구멍은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 있어서 조금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이제 그렇게 아프지는 않을 거다.
분명 성적인 의도가 전혀 없이 말랑한 성기를 이리저리 살피고 있는데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었다. 클레이는 좁은 구멍이 살짝 벌름거리는 걸 분명히 봤다.
“흐음.”
살짝 고개를 들어 올리자 밀리안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어져 있었다. 얼굴뿐 아니라 목덜미도, 동그란 귀도, 하다못해 어깨와 가슴까지 붉어져 있었다. 순진하기도 하지.
클레이는 밀리안의 성기를 잡은 채로 상체를 더 끌어 올렸다. 각질과 피딱지가 앉은 입술은 전혀 부드럽지 않았지만, 달콤했다. 가볍게 아랫입술을 빨고 이로 살짝 깨물어 당겼다. 살짝 흘러나온 타액까지 빨고 나서야 입술을 뗐다.
“음, 좋아.”
“…….”
“당신 냄새, 아주 좋아. 달아.”
사실은 음탕한 쪽에 더 가까웠지만, 그렇게 말하면 지금도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이 터져 버릴까 봐 참았다. 클레이는 허리끈을 풀어헤치고 가운을 양쪽으로 벌렸다. 그리고 시트를 잡고 있는 밀리안의 팔을 끌어 허리를 감게 했다. 그게 싫은 듯 처음에는 벗어나려 하더니 그녀가 그의 허리를 잡아당기며 페로몬을 풀어내자 경직됐던 몸이 흐물흐물 풀렸다.
제 품에 가득 안긴 밀리안의 몸을 끌어안고 천천히 뒤로 밀었다. 하얀 시트에 몸을 누인 남자의 동공이 풀려 있었다. 몸이 완전히 맞닿자 비정상적으로 높고 낮은 체온이 중화되었다. 클레이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