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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변호사가 그녀의 저택으로 왔고, 법적 효력이 분명한 문서를 만들었다.
변호사는 고작 이런 문서를 공증하기 위해 불려왔다는 것에 조금 어처구니없었지만, 클레이의 눈치를 살피며 익숙한 상업적인 미소를 지었다. 빨리 문서를 만들고 여기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의 고용주와 섹스 파트너라고 예상되는 남자는 합의되지 않는 사항을 두고 공방을 벌였다. 안 들린다. 들리지 않는다. 변호사는 벤틀로에게 받은 차를 마시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의 귀는 지극히 정상이었고, 두 사람의 대화가 자극적인 소재였던 터라 너무 잘 들려서 문제였다.
“섹스는 평일에는 안 된다고? 이런 걸 내가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저도 일을 해야 하고…….”
“왜, 아예 섹스 금지로 쓰지?.”
“가능하다면 그러고 싶습니다.”
“그건 안 돼. 기각. 섹스는 무조건 하루에 한 번 이상.”
철저히 이기적인 고용주가 물렁물렁하게 남자가 하는 말에 다 고개를 끄덕여주더니 이 부분에 한해서는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변호사는 대체 이 남자가 얼마나 잘하길래 클레이 디어가 섹스에 환장한 것처럼 구는지 잠시 궁금해하다가 다시 생각을 비웠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그의 정신건강에 더 낫기 때문이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공방은 점차 클레이 디어의 쪽으로 기울었다. 처음에는 강경하던 남자의 목소리에서 힘이 빠지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안 됩니다.”
“삽입은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사장님.”
“밀리안. 적당히 하는 게 좋지 않을까?”
“…….”
“사실 이런 계약서 따위 안 써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알겠, 습니다.”
하나는 끝났군. 변호사는 인위적인 미소를 지으며 세 장의 종이에 ‘회사에서는 삽입 섹스를 하지 않는다.’라는 문장을 적었다. 클레이 디어가 단호하게 나간 이후 문서는 빠른 속도로 문장이 채워졌다.
1. 클레이 디어와 밀리안 디모시는 일 년간 섹스 파트너 계약을 맺는다.
2. 일 년의 기간이 끝나면 두 사람의 계약이 종료된다.
3. 일 년간 밀리안 디모시는 클레이 디어의 저택에서 지내야 한다.
4. 클레이 디어는 밀리안 디모시가 바라는 ‘모든’ 것을 밀리안 디모시가 원하는 날짜까지 무상으로 제공해야 한다.
5. 밀리안 디모시는 클레이 디어가 원하면 ‘기꺼이’ 육체관계를 맺어야 한다.
6. 업무 중에는(회사에서는) 삽입 섹스를 하지 않는다. 단…….
7. 밀리안 디모시는…….
문서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점 노골적으로 변했다. 모든 합의가 끝났을 때는 의무적으로 입꼬리를 들어 올리고 있던 변호사의 입술이 잘게 떨렸고, 밀리안 디모시의 얼굴은 수치심으로 붉어져 있었다. 만족한 얼굴로 태연하게 웃고 있는 사람은 오로지 클레이 디어, 한 명뿐이었다.
상류층일수록 지저분한 일이 많긴 했지만, 이렇게 비합리적인 계약은 또 오랜만이었다. 특히 4번의 경우가 가장 문제였다. 원하는 모든 것을 준다니. 백지수표와 같은 조건이었다. 이 조항 하나만으로도 그 뒤로 클레이 디어가 제시한 그 변태적이고 노골적인 조건들이 합당하다 못해 부족하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대체 얼마나 빠졌길래 이런 조항을 집어넣을 수가 있지. 그가 이건 절대 안 된다고 극구 말려도 정작 클레이 디어는 태연했다. 아무리 설득해도 듣는 것 같지도 않았다. 도움을 구하기 위해 벤틀로를 간절하게 바라봤지만, 그는 제 주인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조용히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당사자 두 명, 증인 한 명, 그리고 변호사 자신까지 총 네 명의 서명까지 모두 마친 뒤 변호사는 쪽 빨린 얼굴로 황급히 디어 가의 저택에서 도망치듯 벗어났다. 대니얼 크래포드를 이어 두 번째 수난자였다.
* * *
계약은 체결되었고, 효력은 서명을 마친 당일부터 시작되었다. 즉, 이제 밀리안은 클레이 디어가 하는 말을 모두 따라야 한다.
“이리 와, 밀리안.”
클레이가 의자에 앉은 채 제 무릎을 툭툭 치며 그를 불렀다. 밀리안은 잠시 주저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무릎에 앉아야지.”
“……사장님, 그건.”
“클레이라고 부르기로 했잖아.”
업무시간이 아닐 때는 이름을 부르는 것 역시 계약서에 쓴 내용이었다. 그걸 상기시키자 밀리안은 눈을 질끈 감더니 벌벌 떨며 ‘클레이.’라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클레이는 살짝 뒤틀렸던 기분이 조금이나마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여전히 제 허벅지를 한번 보고 시선을 피하는 밀리안의 허리를 잡아채 제 무릎 위로 앉혔다.
“키스해줘.”
계약이 성사된 의미로. 클레이가 살짝 입술을 내밀고 눈을 감았다. 과연 밀리안이 입을 맞출까. 솔직히 그다지 기대감은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계속 눈을 감고 기다렸다. 자신이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밀리안이 스스로 입을 맞추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런 생각을 하며.
여자의 긴 속눈썹은 녹을 것처럼 빛나는 금색보다 살짝 짙었다. 화장을 전혀 하지 않은 얼굴인데도 아름다웠다. 반듯하고 동그란 이마, 깎아 빚은 듯한 오뚝한 콧날, 아랫입술이 살짝 부푼 도톰한 입술까지 어느 한 군데도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런 여자가 왜 자신에게 이럴까. 상대가 부족하지도 않을 텐데. 대체 자신에게 이런 짓을 해서 무슨 이득을 취하는 걸까. 그동안 원하는 대로 순탄하게 살아왔던 여자의 인생에서 별것도 아닌 남자가 반항을 하니 더 반발심이 생겨 이러는 걸지도 모른다.
사실 그거 외에는 아무것도 짚이는 게 없었다. 밀리안은 그동안 클레이 디어와 스캔들이 났던 남자들의 외모를 떠올렸다. 자신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모두 외모가 뛰어났었다. 그런 남자들과도 관계가 길었던 적이 없다. 그런데 평범한 자신과 일 년이나 길게 관계가 이어질 리가 없다. 길어봤자 삼 개월이지 않을까.
차라리 당분간 순순히 말을 들으면 여자의 호기심은 금방 사그라들 것이다. 그럼 이런 변태 같은 행동도 끝나겠지. 밀리안은 이 시기가 그렇게 길게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클레이 디어가 같은 파트너를 오래 유지한 적이 없으니까. 일 년이라고 했지만, 분명 그것보다도 훨씬 이르게 끝이 날 것이다.
당분간만. 당분간만 여자가 하는 대로 버티면 그가 굳이 도망치려고 하지 않더라도 여자의 관심이 식을 것이다. 분명히, 분명히 그럴 거다. 밀리안은 눈을 질끈 감고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태연하려고 노력해도 몸이 떨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혼자 남았을 때 몰래 먹은 약은 정말 효과가 좋았고, 먹고 나서 구역질이 나지도 않았다. 게다가 그렇게 힘들었던 클레이 디어의 페로몬이 정말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완전히 베타가 된 듯한 그런 약이었다. 그래서 더 안도했는데…….
입술이 닿자마자 반응하지 않을 거라 믿었던 아주 작은 자신감이 휘발되었다. 읏.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신음에 놀라 입술을 떼려는데, 등에 감겼던 여자의 손이 어느새 위로 올라와 그의 뒤통수를 잡고 있었다.
“도망가지 마.”
“아!”
여자의 표정이 변했다. 사나운 짐승처럼 눈을 빛내는 모습에 밀리안은 순간 잡아먹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그가 어떻게 하기도 전에 여자의 입술이 다시 겹쳐졌다. 단순히 입술만 닿았던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과격한 입맞춤이었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혀가 얽히고 타액이 뒤섞였다. 여자의 혀가 목구멍을 찌르자 밀리안의 목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밀리안이 벗어나려고 몸을 요동쳤지만, 클레이의 손이 그의 머리와 허리에 감겨 단단히 고정했다. 그리고 뱀처럼 교묘하게 움직이는 혀가 입천장을 자극하자 허리가 떨림과 동시에 저항할 힘도 주욱 빠졌다. 밀리안의 눈이 쾌감으로 젖어 들었다.
클레이는 귀를 즐겁게 하는 남자의 신음을 양껏 받아먹었다. 정말 쾌락에 약한 몸이었다. 잠깐 반항하는 듯하다가도 좋은 곳을 자극하면 그녀의 품에 안겨들었다. 도망치던 남자의 혀도 이제는 순순히 그녀가 이끄는 대로 따라왔다. 클레이는 밀리안의 혀 아래의 민감한 살점을 혀끝으로 힘주어 쓸었다. 아랫배에 닿는 남자의 성기가 점차 곤두서고 있었다.
그녀의 손이 밀리안의 벌어진 가운 사이로 기어들어 갔다. 말랐지만 튼튼한 허벅지 안쪽으로 들어가자 부드러운 음모가 손에 닿았다. 클레이는 바짝 곤두선 성기와 음모를 한 번에 쓸어 올렸다.
“아흑!”
“뭘 했다고 벌써 질질 흘리는데?”
딱 한 번 쓸었을 뿐인데 성기에 닿은 손이 축축해졌다. 클레이가 심술궂게 그 사실을 말하며 손에 꽉 차는 성기를 강하게 주물렀다. 밀리안의 몸이 크게 요동쳤다.
“아, 싫, 읏, 아……!”
“착해. 귀여워, 밀리.”
한 손으로는 성기를 만지고, 다른 한 손으로는 밀리안의 턱을 잡았다. 슬슬 혀를 빼내니 밀리안이 흐물흐물하게 풀어진 눈을 하고 혀를 앞으로 내밀었다. 클레이는 그 혀를 이로 잡고 잘근잘근 깨물었다. 약한 통증은 도리어 쾌감을 돋우는 작용을 했다. 그 증거로 밀리안의 성기를 잡은 손이 흠뻑 젖었다.
턱을 잡고 있던 손을 빼고 테이블 쪽으로 손을 더듬거렸다. 길쭉한 원통이 손에 잡혔다. 손에 잡은 채로 엄지와 검지로 뚜껑을 딴 후 클레이는 밀리안의 입 안에 부었다. 갑자기 들어온 약에 쾌락으로 흐려졌던 갈색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쉬이. 대니얼이 준 약이야. 괜찮아.”
식전에 먹어야 한다고 했잖아. 밀리안의 성기를 움켜쥔 클레이의 목소리가 한껏 낮아져 있었다.
살짝 정신이 돌아왔는지 눈을 크게 뜬 밀리안의 턱을 혀로 핥으며 다시 성기를 잡은 손에 힘을 줬다. 방심한 틈을 타 자극한 것에 놀랐는지 밀리안은 입 안에 든 것을 꿀꺽 삼켰다. 원통에 들어있던 액체가 밀리안의 목구멍 안으로 모두 넘어간 것을 확인한 후 클레이는 다시 입을 맞췄다. 살짝 씁쓸하면서도 어딘가 단 듯한 약의 맛이 느껴졌지만, 그보다도 밀리안의 타액이 더 달아서 괜찮았다.
밀리안의 정신을 흐트러트리고자 키스를 했는데 정작 클레이의 이성이 나가고 있었다. 부드럽던 혀의 움직임도 점점 난폭해지고 있었다. 밀리안이 숨이 벅차 헐떡이며 몸을 떨면 살짝 입을 뗐다가 방향을 바꿔 다시 입을 맞췄다. 어딘가 초조하고 머리가 텅 비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순식간에 훅 달아오른 흥분으로 인해 가슴이 단단하게 부풀었다. 클레이는 거의 벗은 거나 마찬가지로 헤집어진 밀리안의 가운을 더 밀어젖히고 납작한 가슴팍에 자신의 가슴을 뭉갰다. 그것도 부족하게 느껴져 거친 손놀림으로 셔츠를 벗었다. 늘 그렇듯 가슴을 가리는 속옷 따위는 입지 않는 탓에 밀리안의 서늘한 살결과 바로 맞닿았다. 겹쳐진 입술 사이로 만족 어린 숨결이 한숨처럼 흘러나왔다.
“밀리안.”
“으응…….”
클레이의 부름에 밀리안이 다시 입을 맞춰달라는 듯 투정 같은 신음을 흘렸다. 이성이라고는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은 물기에 젖은 눈동자가 서투른 유혹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