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첫눈을 구경한 뒤 침실로 내려온 클레이는 밀리안과 함께 욕실에 들어갔다. 아무리 관리를 잘 했다고는 해도 일 년간 상자에 보관되어 있던 장식에 먼지가 없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눈까지 맞았으니 씻는 것은 필수였다.
그동안 클레이의 마사지 실력은 전문가 부럽지 않게 숙련됐다. 긴 타월을 깐 마사지 대에 누운 밀리안이 성적인 의도가 없는 순수한 마사지만으로도 절정에 달하기 직전이 될 정도였다. 클레이는 기가 막혀서 꼿꼿하게 솟은 밀리안의 성기를 손가락으로 툭 쳤다. 그 순간 단단하게 부푼 끝에서 뭉근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성기는 만지지도 않았는데 이게 뭐야?”
“아! 소, 손길이, 흐읏, 으아! 앗!”
오일에 젖은 손이 성기를 움켜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클레이는 밀리안의 음란함을 질책했다.
“정말 어떻게 된 몸이야? 이러니 내가 불안해서 혼자 두질 못하지.”
“앗! 아! 흐앗, 아, 으읏, 아아, 안, 안 돼, 아!”
“안 된다니. 지금 허리까지 흔들고 있으면서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안 된다면서 엉덩이는 왜 들어 올리는데?”
“흐으읏! 하아, 아, 핫! 그, 그만, 아, 안 돼, 가, 갈 것 같……, 아!”
밀리안은 클레이를 향해 그만하라고 애원했지만, 정말 그만해야 할 사람은 밀리안 본인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손을 멈추고 있었는데 밀리안이 알아서 허리를 흔들어 그녀의 손에 성기를 마찰시키고 있었다. 꽤 보기 즐거운 모습이었다.
좋은 생각이 났다. 클레이는 혀로 아랫입술을 핥으며 밀리안의 성기에서 손을 뗐다. 열심히 허리를 흔들다 뭔가 허전해짐을 느꼈는지 밀리안이 당황한 얼굴을 하며 그녀를 올려봤다. 클레이는 옆 테이블에 올려 둔 오일 병을 들고 제 가슴에 짜냈다. 진득한 액체가 풍만한 가슴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렸다. 하필 유백색 액체여서 이상한 상상을 하기 충분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밀리안과 눈을 맞춘 채 가슴 전체에 오일을 문질렀다. 일부러 아래에서 손을 바쳐 위로 튕기듯 올리기도 했고, 곤두선 유두를 손가락을 쥐어짜기도 했다. 가슴을 향한 밀리안의 시선이 흔들리는 걸 즐겁게 바라봤다. 그의 성기는 배꼽까지 닿은 채 부끄러운 액체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만지지도 않았는데 그녀가 스스로 가슴을 애무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흥분한 것이다.
벌벌 떨고 있는 밀리안의 허리를 끌어 마사지 대 끝까지 당겼다. 그리고 상체를 숙여 가슴으로 밀리안의 성기를 품었다. 부드러운 살덩이에 둘러싸인 성기가 끈적한 물을 가슴 위로 뚝뚝 흘려댔다. 성기가 길고 두꺼워서 가슴으로 다 감싸고도 끄트머리가 튀어나와 있었다. 클레이는 좁은 구멍을 열심히 뻐끔거리며 애액을 흘리고 있는 밀리안의 귀두를 입으로 물었다. 그 순간 물컹한 액체가 그녀의 입 안으로 쏟아졌다.
“흐아아아!”
“흐음.”
벌써? 곧 갈 거 같긴 했지만, 그렇다고 딱 입에 물자마자 갈 줄은 몰랐다. 클레이는 밀리안이 뿜어내는 대로 받아먹었지만, 워낙 양이 많아 입술 사이로 흘러내리는 것도 많았다. 가슴과 입술, 턱까지 모두 밀리안의 애액으로 흠뻑 젖었다.
긴 사정이 끝난 뒤 뽁, 소리와 함께 클레이가 물고 있던 밀리안의 귀두를 뱉었다. 여전히 발기가 수그러들지 않은 성기를 여전히 가슴에 품은 채 클레이는 혀를 내밀어 입술에 묻은 애액을 핥았다. 밀리안은 아직도 잔열이 남았는지 몸을 흠칫흠칫 떨고 있었다. 입술이 벌어진 채 헐떡대는 남자는 완전히 넋을 뺀 채였다.
몸이 너무 예민한 것도 문제였다. 아무리 쾌감을 몰랐던 순결한 몸이었다지만, 그래도 그녀가 매일 몇 번씩이나 만지고 빨아댔는데 남자의 몸은 쾌락에 익숙해지기는커녕 더 예민해져 갔다. 그녀로서는 나쁠 건 없었지만, 그래도 너무 느끼면 빨리 지쳐버린다. 고작 한 번 사정한 것만으로도 정신을 못 차리는 것도……,
“귀여워.”
클레이는 밀리안의 성기를 가슴으로 애무하며 파르르 떨고 있는 끝에 입술을 비볐다. 그래, 귀엽다. 귀엽고 야한 남자를 손에 넣었는데 무슨 사치스러운 말인지. 게다가 성기의 굵기도 크기도 길이도 모양도 완벽하고, 우는 소리조차 섹시했다. 줄줄 싸지르는 애액마저 이렇게 달콤하니 그저 사랑스럽기만 한 남자였다.
“하아, 아, 아아……, 이, 이제, 그만……!”
“무슨 소릴. 난 이제 시작했는데, 혼자 즐기고 끝내자고?”
제대로 봉사해주겠다며 클레이가 혀끝으로 요도를 파헤쳤다. 붉은 혀에 새로 토해낸 끈적한 액체가 달라붙었다. 성기 기둥을 밀리안의 정액과 오일로 질척하게 젖은 가슴으로 뭉근하게 비비며 본격적인 마사지가 시작됐다.
* * *
크리스마스에 연말이 다가오고 있어 휴가를 길게 잡는 직원들이 늘었다. 회사는 평소보다 사람이 적었고, 느슨하게 풀려있었다. 아직 휴가를 안 쓰고 남은 사람들도 표정이 들떠 있었다.
그런 들뜬 분위기와는 반대로 밀리안은 이제 며칠 앞으로 다가온 휴가에 심란한 상태였다. 차라리 휴가를 사용하지 않던 때가 그리울 정도로 초조했다. 그가 가장 심란한 이유 중 하나는 클레이 디어와의 휴가가 그렇게 꺼려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말도 안 돼.’
밀리안은 화장실 칸 안에 들어가 마른세수를 했다. 기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은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설레고 있다는 증거였다. 클레이 디어, 그것도 자신과 섹스를 하겠다고 예고한 알파와의 휴가를.
그러고 보니 피임은 어떻게 하는 거지? 밀리안은 클레이와 하게 될 섹스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그 뒤에 혹시 모를 임신을 걱정하고 있었다.
한참 알파와의 섹스를 대비해 포털에 검색했을 때, 몸에 무리 가지 않는 피임약이 있다고 했다.
‘닥터 크래포드에게 부탁해야 하나.’
시중에 도는 약보다 훨씬 효능이 좋은 약을 주었던 닥터 크래포드라면 피임약 역시 신경 써줄 것이다. 문제는 그에게 피임약을 부탁한다는 것 자체가 자신이 클레이 디어와 섹스를 할 것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밀리안은 화끈거리는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고 허공을 바라봤다.
‘하긴, 오히려 이제야 하는 거냐고 놀랄지도…….’
디어 가의 주치의이자 클레이 디어와의 오랜 친구인 닥터 크래포드라면 그녀와 자신이 섹스파트너라는 걸 알고 있을 테니.
‘섹스 파트너.’
밀리안은 그동안 잊고 있던 사실을 기억해내고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 그래, 섹스 파트너였다. 일 년간 계약하기로 했었다. 변호사의 공증을 받아 작성한 문서도 있는데 어떻게 이걸 잊고 있을 수가 있지?
모두 클레이 디어 때문이었다. 그리고 벤틀로와 그녀의 주변인들이 그를 섹스파트너로서 대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남은 기간이 어떻게 됐더라…….
밀리안은 핸드폰을 꺼내 스케줄러 앱을 열었다. 원래대로였다면 앱을 누를 필요도 없이 잠금 화면에 표시된 디데이만 확인해도 됐을 텐데, 디데이는 이미 클레이와 가는 휴가 날짜로 변경된 지 오래였다.
D-269
클레이와 계약한 날부터 구십육 일이나 지났다. 날짜가 빠르게 흘러가기만 기다리던 날도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벌써 이렇게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매일같이 남은 날짜를 세던 자신이 어느 순간부터 스케줄러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에도.
혹시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일지 몰라 먼저 메시지를 남겼는데, 바로 답장이 왔다. 밀리안은 한숨을 크게 들이쉬고 대니얼 크래포드의 번호를 눌렀다. 통화 연결음이 몇 번 흘러나온 뒤 경쾌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이에요, 밀리안!]
“안녕하세요, 닥터 크래포드.”
[이제 그냥 대니라고 불러 달라니까요.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죠. 혹시 무슨 일 있어요? 밀리안이 직접 전화한 건 처음이잖아요.]
“……별일은 아닌데…….”
[오, 너무 그렇게 말을 끌지 말아요. 괜히 불안해지니까.]
“피, 임약이……, 필요해서요.”
[……네?]
닥터 크래포드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것 같다며 다시 한번 말해달라고 요청했다. 밀리안은 손으로 얼굴을 거칠게 쓸었다.
“피임약이 필요합니다.”
[아, 제대로 들은 게 맞네……. 그런데 밀리안에게 그게 왜 필요해요?]
“그건.”
밀리안은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한단 말인가. 피임약이라는 말을 꺼내면 자연스럽게 알아들으리라고 생각했는데 대니얼은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진지하게 물어봤다. 밀리안이 더듬거리며 설명을 하려고 하자 대니얼이 와악! 소리를 지르며 그의 말을 막았다.
[아, 무슨 말을 할지 알겠으니까, 에스로 시작되는 단어는 꺼내지 말아요. 내가 물어본 건 밀리안은 피임약을 먹을 필요가 없는데 왜 피임약을 구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예요.]
“네?”
[클레이가 한 달 전에 정관 수술……을 한 걸 모르고 있었군요. 미치겠네.]
“…….”
닥터 크래포드는 난감한 목소리로 클레이에게 자신이 이 말을 했다는 걸 말하지 말아 달라며 부탁했다. 밀리안의 머리에는 클레이가 정관 수술을 했다는 말만 계속 맴돌아 그가 하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밀리안, 듣고 있어요? 클레이에게 절대로 말하면 안 돼요. 알았죠?]
“……네. 알겠습니다.”
[아니, 대체 왜 비밀로 한 거지? 비밀로 할 이유가 있나? 난 진작 말한 줄 알았어요. 아, 그걸 말했다면 밀리안이 피임약이 필요하다고 전화하지 않았겠구나……. 젠장. 망했어!]
“…….”
묻고 싶은 게 산더미인데 닥터 크래포드가 더 혼란에 빠진 것 같았다. 괴성을 질렀다가 자괴감에 빠진 목소리로 자책했다가 정신이 없었다. 몇 번이고 질문 할 타이밍을 잡아보려고 시도했지만, 들리지 않는 것 같아 조용히 전화를 끊었다.
* * *
밀리안은 자리로 돌아와 서류를 검토 중인 클레이를 조심스럽게 보다 고개를 돌렸다. 빈틈 하나 없이 완벽하게 조형된 이목구비가 정갈한 빛을 내고 있었다.
전화를 끊고 난 뒤 닥터 크래포드는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어차피 알게 된 거 오해의 여지가 없도록 전부 말해주겠다는 그의 목소리는 비장했다.
‘사실 지금 밀리안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요. 약을 너무 많이, 오래 먹어서 체내에 쌓인 페로몬 찌꺼기들이 단단하게 굳어서 지금 먹고 있는 약은 그다지 큰 효과를 내고 있지 못해요. 물론 안 먹는 것보단 낫지만…….’
‘그게 사장님께서 그……, 수술을 하신 이유와 관련이 있습니까?’
‘아주아주 크죠. 약을 먹지 않고, 수술하지 않고도 밀리안의 체내에 쌓인 페로몬을 배출하게 만드는 방법은 알파의 페로몬을 강하게 받아내는 거거든요. 요즘 클레이가 페로몬을 흘리지 않을 거예요. 알죠? 밀리안의 몸이 클레이의 페로몬에 적응하지 못하도록 한 뒤, 정해진 날에 한 번에 쏟아낼 거예요. 이건 클레이의 몸에도 무리를 주는 방법인데, 뭐 걔는 평범한 우리와 다른 괴물이니까 신경 쓰지 말아요.’
‘…….’
‘클레이가 페로몬을 강하게 쏟아내면 히트 사이클이 올 거예요. 그때 그 상태로 관계하면 굳어있던 페로몬이 녹아서 배출될 겁니다.’
‘…….’
‘밀리안은 히트 사이클이 와야 해요. 그건 오메가에게 매우 자연스러운 신체 흐름인데 십 년이 넘도록 강제로 막아놨으니 이런 문제가 생긴 거예요. 그런데 이 방법의 가장 큰 부작용은 임신할 수도 있다는 건데, 안타깝게도 밀리안은 지금 피임약을 먹을 수 없어요. 아무리 오메가용 피임약이 많이 발전해서 몸에 큰 무리를 주지 않는다고는 해도 인위적으로 배란을 막는 약이 독하지 않을 수가 없죠. 그래서 클레이가 수술을 결정하게 된 겁니다.’
여기까지가 클레이가 수술을 하게 된 이유라며 대니얼이 숨 가쁘게 토해내던 말을 멈췄다. 모두 자신 때문이라는 말이었다. 밀리안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