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맨틱 섹슈얼-78화 (78/144)

-78-

차가운 클레이의 표정에 에릭 드와이스가 한숨을 짙게 내쉬었다. 무슨 마음인지는 알겠지만,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어떻게 튈지 모르는 법이다. 특히 밀리안의 친모 엔젤라 디모시 여사가 가장 꺼림칙했다. 자신의 처지를 모두 밀리안의 탓으로 돌리던 여자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였다. 차라리 완전히 처리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럼 후한을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들은 밀리안 디모시의 친부모였다. 섣불리 손을 대기 어려운 애매한 대상. 이게 가장 골치 아프고 까다로웠다.

하지만 이건 자신의 사정이었고, 고용주는 가장 어려운 길을 고집하고 있었다.

“철저하게 감시해. 집 안에만 있다고 긴장 풀지 말고.”

“이미 집 안에도 카메라를 설치하고 24시간 감시하는 중입니다.”

“도청은?”

“하고 있습니다. 특히 디모시 여사를 주로 하고 있는데, 요즘 통화를 극도로 꺼리고 있고 말수도 줄어든 상태입니다.”

걸려온 지인의 전화조차 피하고 있었다. 집 안의 전화는 선이 잘렸고, 휴대전화는 거의 사용을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지 입술은 끊임없이 움직였다. 집 안을 감시하고 있는 부하는 그 여자를 지켜보고 있다 보면 간혹 소름이 끼칠 때가 있다고 했다.

이런 일을 하다 보면 육감이라는 것이 예민하게 반응할 때가 있다. 그 육감이 엔젤라 디모시 여사가 매우 위험한 존재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차라리 멀리 치워버리는 쪽이 더 낫다고 판단한 거였다.

“디모시 여사는 이대로 두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 그 위험한 짓을 좀 하면 좋겠는데…….”

정신병원에 처넣기 편하게. 클레이의 눈에 깊은 그림자가 졌다. 언뜻 비치는 사나운 기세에 에릭이 침중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 위험한 짓의 대상이 아주 높은 확률로 밀리안이 될 겁니다.”

“…….”

“정신이 나간 사람은 간혹 놀라운 일을 하곤 하죠.”

괴력을 발휘하기도 하고, 정상인이라면 할 수 없는 짓을 하기도 한다.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르는 폭탄이나 마찬가지였다. 디모시 여사를 철저하게 감시하고, 또 밀리안을 보호한다고 해도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완벽이라는 것은 없다. 에릭의 말에 클레이가 피식 웃었다.

엔젤라 디모시는 겉보기로 매우 연약한 중년 여성에 불과했지만, 그들은 그녀를 얕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두려운 존재처럼 가정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야 방심하지 않고 밀리안을 지킬 수 있었다. 그리고 완벽한 진창에 처넣을 수 있다.

이렇게 어렵게 일을 처리하는 이유는 엔젤라 디모시가 밀리안의 친모이기 때문이었다. 그것만 아니었더라면 이렇게 늦은 시간에 비밀리에 만나 해결책을 논의할 일도 없었다. 철저하게 경계를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두려운 상대는 아니었다.

클레이는 그런 하찮은 여자와 상대조차 되지 않을 만큼 강했고, 누구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권력과 돈을 가지고 있었다. 두려운 것은 밀리안, 오직 한 사람뿐이다. 제 방식대로 그의 부모를 처리했다가 그가 알게 되었을 경우,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서. 혹시라도 그녀를 경멸의 눈으로 볼까 두려웠다. 밀리안 디모시는 그에게 나쁜 짓을 했던 자신에게조차 마음을 열 정도로 여린 남자였기에, 아직도 부모 같지도 않은 인간들에게 정이 남아 있을 수도 있다.

그가 마음이 약해 그 틈을 파고들 수 있었으니 다행이었지만. 클레이는 나른한 미소를 지으며 손등에 턱을 괬다.

“난 밀리안과 결혼할 거야.”

“……네.”

“아주 성대하게. 세상 모든 사람이 우리가 사랑하는 사이란 걸 알도록.”

클레이의 뜬금없는 선포에 에릭의 미간이 좁혀졌다. 당연히 그러겠지. 저 여자가 남들 모르게 비밀 연애하는 것만으로 만족할 리가 없다. 숨어서 연애하는 것을 참는 이유는 밀리안에게 잘못한 일이 많아서 당분간 납작 엎드려 있는 것이다. 욕심이 워낙 많으니 곧 세상이 다 알도록 퍼트리겠지. 그래야 밀리안이 어디로도 도망치지 못할 테니까. 너무나도 예상 가능한 일이라 클레이의 말이 오히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거지?

클레이는 의자의 쿠션에 몸을 깊게 묻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의자 손잡이를 툭툭 두드렸다. 만족과 불만족이 뒤엉킨, 밀리안에게는 철저히 숨기고 있는 욕망을 그대로 드러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난 매우 유명인이고, 내가 결혼한다고 하면 언론이 밀리안의 배경을 파겠지. 아마 한동안은 꽤 난리가 날 거란 말이야. 그럼 고작 주 하나가 떨어져 있다고 그 미친 여자가 아무 짓도 안 할까? 밀리안이 알파와 붙어먹기라도 할까 봐 호적을 떼어낸 뒤에도 감시하던 여자가? 비행기 하나만 타고 오면 얼마든지 이동할 수 있는데 과연 그 여자가 가만히 있을지 모르겠군.”

“…….”

“네가 말한 해결책이 정말 최선이라고 확신할 수 있어?”

에릭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을 최악으로 가정한 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디모시 여사가 무슨 짓을 하려고 해도 그녀는 비행기를 타기도 전에 그들에 의해 제지당할 테지만, 정말 일 퍼센트도 안 되는 가정을 한 채.

다시 머리가 복잡해졌다. 에릭이 침묵하는 사이 클레이가 나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래. 차라리 밀리안과 멀리 떨어트린 다음 없애는 것은 어떨까…….”

아, 정말 좋은데? 무심결에 한 말인데 지금까지의 그 어떤 대안보다도 구미가 당겼다. 어차피 밀리안이 그들의 행방을 궁금해할 일은 없을 것이다. 정신병원에 처넣는 것보다 더 완벽한 해결책. 그동안 밀리안의 부모기 때문에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그들을 처리하려고 했었지만, 이젠 모두 귀찮아졌다. 에릭과 실랑이를 하는 것도 짜증 나고 이제 밀리안과 행복한 날만 남았으니 거슬리는 건 그냥 치워버리고 싶어졌다.

“사장님, 그러지 않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브레이크를 거는 사람만 없다면 실행에 옮겼을 것이다. 클레이는 에릭의 심각한 얼굴에 작게 웃었다.

“안 해. 그러니까 제대로 잘 감시하고 있어.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바로바로 보고하고.”

“……알겠습니다.”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에릭은 영상을 정리해 왔던 태블릿과 서류들을 정리해 가방에 넣은 뒤 몸을 일으켰다. 클레이도 밀리안이 잠들어 있을 침실로 돌아가기 위해 문을 열었을 때였다.

밀리안이 문에서 한걸음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 * *

단정한 인상의 남자가 표정이 완전히 사라진 얼굴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순간 안에서 했던 말을 들은 걸까 싶어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에릭과 대화를 나눈 방은 아주 크게 소리를 지르더라도 외부로 그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방음에 신경 쓴 곳이었다. 밀리안이 그들의 대화를 듣지 못했으리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의 표정이 안 좋아서 신경 쓰였다. 클레이는 속으로 욕설을 짓이기며 미소를 지었다.

“왜 안 자고 나왔어?”

“이렇게 늦은 시간에 에릭과 단둘이.”

“밀리?”

“그것도 이렇게 흐트러진 차림으로…….”

얼굴에 표정이 사라진 대신 눈빛이 사납게 일렁이고 있었다. 클레이가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의 눈을 홀린 듯이 보고 있을 때, 밀리안이 손을 내밀어 그녀의 가운을 꼼꼼히 여몄다. 반은 드러냈던 가슴이 완전히 가려지도록 만든 뒤 허리끈을 더 강하게 조였다. 육감적인 가슴도, 관능적인 허벅지도 모두 가려졌다. 그런 뒤에도 밀리안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그는 클레이를 끌어안아 품에 가리고 뒤에 서 있는 에릭을 무거운 눈으로 바라봤다.

클레이가 에릭과 무슨 짓을 하지 않았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시간에, 이렇게 흐트러진 차림으로 다른 남자와 단둘이 한방에 있는 것은 싫었다. 밀리안은 사무실에서 자신이 불쑥 들어와 두 사람의 대화를 방해했던 걸 기억하고 클레이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하지만 기다리는 내내 속이 진정이 되지 않았다. 만약 조금만 더 대화가 길어졌더라면 아마도 참지 못하고 대화를 방해했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늦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에릭.”

“……그래.”

에릭은 마치 떫은 무언가를 먹은 것처럼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밀리안의 축객령에 대답했다. 밀리안과 대화할 때는 사장의 질투를 받았고, 이젠 사장과 대화를 나누니 밀리안의 질투를 받고 있었다. 자신도 이 시간에 사장과 대면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지금의 밀리안에게 먹힐 말이 아닌 것 같아 꾹 내리눌렀다.

밀리안에게 안겨 있는 사장의 어깨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래, 누구 한 사람이라도 기분이 좋으니 다행이다. 에릭은 사장의 뒷모습을 힐끔 본 것만으로도 눈을 사납게 빛내는 밀리안의 낯선 행동에 한숨을 삭히며 자신의 아내가 기다리고 있을 집으로 돌아갔다. 문제는 늦은 시간까지 그를 기다리고 있을 아내도 지금 결코 기분이 좋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일을 하고 있을 뿐인데 양쪽으로 난리였다.

* * *

클레이는 아주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체셔처럼 꼬리가 있었더라면 살랑살랑 움직였으리라. 그녀는 밀리안의 심장이 세차게 움직이는 진동을 느끼며 포만감에 찬 미소를 지었다. 정말 화가 났는지 밀리안의 목덜미에서 그의 향이 짙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클레이가 혀를 내밀어 살짝 튀어나온 혈관을 핥으려고 할 때였다. 밀리안이 그녀를 안고 있던 팔을 풀고 사과를 했다. 나른하게 풀어졌던 클레이의 눈이 크게 떠졌다.

“……죄송합니다.”

“뭐가?”

“에릭과 그런 게 아니란 걸 아는데, 제가 너무…….”

“질투했어?”

정곡을 꿰뚫는 말에 밀리안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귀여워라. 클레이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녀는 밀리안이 꼼꼼히 여민 가운을 다시 느슨하게 풀어 가슴을 완전히 드러냈다. 부피가 큰 모양 좋은 가슴이 그의 앞에서 출렁이며 움직였다. 그녀의 행동에 밀리안의 몸이 파득 튀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가운을 손으로 꽉 쥐고 다시 가슴을 가렸다. 그도 모자라 다른 사람이 있는지 고개를 돌려 확인했다. 그 순진한 행동에 클레이가 웃음을 터트렸다.

“밀리, 자지가 섰어.”

아까로 부족했어? 클레이가 그의 귀에 젖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순진하지만 음란한 몸을 가진 남자는 그 말에 성기를 더 크게 부풀렸다. 그녀는 칭찬하듯 그의 가운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성기를 어루만졌다. 가볍게 살짝 쓰다듬었을 뿐인데, 야한 액체를 줄줄 흘리며 그녀의 손을 적셨다. 그녀가 만질 때마다 밀리안이 어쩔 줄 모르겠다는 얼굴로 연달아 다디단 소리를 흘렸다.

“아…….”

“착해.”

아주 솔직한 몸이었다. 클레이는 조금 전까지 에릭과 대화를 나누었던 방으로 밀리안을 끌어들였다. 살짝 끌어당기기만 했는데도 밀리안은 그녀를 따라 몸을 옮겼다. 완전히 풀린 눈으로 쾌락을 바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입 안이 바싹 마르는 기분이었다. 클레이는 밀리안을 방 안으로 완전히 끌어들인 후, 문을 잠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