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6-
순간 숨이 헐떡이며 토해졌다. 이제 행복해질 일만 남았는데, 힘들고 지쳤던 삶이 그를 스치고 지나갔다. 숨기고, 또 숨기며. 혹시라도 정체가 드러날까 두려워 전전긍긍하며 살았다. 이런 행복은 그에게 속한 게 아니라고. 차마 바라지도 못하면서도 구원을 바랐다.
가장 최악이라고 생각했을 때, 거짓말처럼 그에게 빛이 드리워졌다. 작은 구멍에서 살짝 비치는 빛을 따라가는 길도 험난했다. 저 끝에 혹시라도 완전한 끝이 있을지도 몰라서. 아주 작은 빛에 길들면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서. 몇 번이고 주저하며 기어갔다가 다시 도망치려고도 했었다. 이 여자가 강제로 자신의 손을 끌어당기지 않았더라면 분명 다시 어둠으로 기어가 침잠했으리라.
밀리안은 그대로 무릎을 꿇어 클레이를 올려다봤다. 클레이의 눈이 놀란 듯 커졌다. 웃음이 나왔다. 웃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행복했기 때문이다.
“나와 결혼해 줘서 고맙습니다.”
“내가 할 말을,”
“버리지 마세요.”
“…….”
“제게 질려서도 안 됩니다.”
평생 나만을 사랑하세요. 밀리안의 말에 클레이가 잠시 입을 벌렸다가 다시 꾹 다물었다. 평생 자신만 사랑하라는 단호한 말이 주는 울림에 심장이 떨렸다. 각인도 했고, 이제는 모든 사람이 알도록 결혼식도 올린 참이었다. 그럼에도 우린 항상 불안하다. 차마 농담으로라도 부정의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내가 할 말이라니까.”
설핏 농담처럼 가볍게 말했지만, 클레이의 목소리가 잘게 떨려 나왔다. 이 순간이 결혼식 때보다 더 떨리고 긴장됐다. 밀리안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곧게 뻗었던 상체가 둥글게 굽혀지며 그가 모래를 덮어버린 드레스 자락을 들어 올렸다. 헬기에서 내리자마자 구두를 벗어 던진 탓에 발이 반쯤은 모래에 파묻혀 있었다. 발등에도 마찬가지였다. 그에 개의치 않고 밀리안은 여자의 발등에 입을 맞췄다. 깜짝 놀란 듯 움찔 튀는 발을 손으로 눌러 고정한 뒤 혀를 내밀어 모래와 함께 핥았다. 입 안이 모래로 꺼끌거렸지만, 그조차도 달게 삼켰다. 클레이의 몸에 닿았던 것이기 때문에.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자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선득한 표정. 마치 눈 앞에 놓인 제물의 배를 당장이라도 갈라버릴 듯한 사나운 눈빛에 밀리안이 갈라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사랑해주세요.”
* * *
까맣게 물든 하늘에 조명이 켜지듯 수많은 별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 빛은 지상에 닿지 않았다. 파도의 소리가 어둠을 닮은 듯 선득히 다가왔다가 다시 물러섰다. 클레이는 무릎을 굽혀 밀리안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쌌다. 사랑해 달라고? 그건 자신이 할 말이었다. 너무 사랑해서 무섭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만들고, 사랑하고 사랑받는 게 어떤 것인지 알고 나니 이젠 잃을까 봐 두렵다. 그래서 이 순간의 행복을 깨트릴 그 어떤 것도 배제하고 싶었다.
당신을 잃으면 난 분명히 죽을 거야.
틀림없다. 그래서 아주 조금의 미움도 받고 싶지 않다. 클레이는 밀리안의 얼굴을 감싼 상태로 입술을 맞댔다. 떨려. 가슴이 너무 떨려, 밀리안. 매일 당신이 더 좋아져서 무서워. 이 감정의 끝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기도 하고, 모르고 싶기도 하다. 이젠 절대로 혼자서는 온전히 못 서 있을 거란 걸 알아서.
살짝 맞닿은 입술이 잘게 떨렸다. 입술뿐만이 아니었다. 심장부터 시작된 전율이 온몸을 잠식했다. 이러다 그를 놓칠 것 같아 클레이는 황급히 밀리안을 끌어안았다. 절박할 정도로 강하게 안자 밀리안이 작은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귀조차 이상해진 건지, 그의 목소리도 떨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오늘 세상이 끝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아.”
“……근사하겠네요.”
밀리안의 대답에 클레이가 웃었다. 하지만 곧 사그라들었다. 목소리가 떨려서 웃음마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클레이는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평생 쏟을 눈물을 다 쏟아낸 줄 알았는데, 신기하게도 다시 흘러내렸다. 하. 그녀는 밀리안의 어깨에서 얼굴을 떼고 잠시 까만 하늘을 바라봤다. 그리고 제게 얌전히 안겨 있는 남자를 살짝 밀어 얼굴을 마주 봤다.
“밀리안 디어. 내 남자.”
“…….”
클레이 입에서 나온 새로운 이름에 밀리안의 몸이 움찔 떨렸다. 밀리안 디어. 이제 완전히 클레이에게 속했다는 증거였다. 사랑하는 사람을 뜻하기도 하고, 가족이 되었다는 법적인 증거. 밀리안은 한숨을 내쉬며 클레이의 얼굴을 손으로 쓸었다. 예쁘게 단장했던 긴 머리카락이 얼마 되지도 않는 시간에 엉망이 되었다. 엄청난 가격의 드레스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거친 모래 위를 뒹굴 만한 옷이 아니었지만, 이 순간 클레이에게 더없이 잘 어울렸다. 아니, 클레이는 무슨 옷을 입든, 그 어떤 행색을 하고 있든 세상 누구보다도 아름다울 것이다.
그녀의 눈물도. 클레이가 이렇게 울어서 기분이 묘했다. 울고 싶은 사람은 자신인데, 정작 클레이가 울었다. 그런데 기분이 좋았다. 이 여자의 눈물이 예뻐서 행복하다.
“예뻐요.”
“당신도.”
입술이 다시 닿았다. 이번엔 밀리안이 먼저였다. 물기에 젖은 눈가부터 시작해서 얼굴 전체에 입을 맞추자 클레이가 간지럽다는 듯 몸을 떨었다.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거칠게 그의 옷을 벗기려고 하자 밀리안이 그녀를 뒤로 살짝 밀었다.
“오늘은 제가 먼저 당신을 만지게 해 주세요.”
“……좋아.”
당장이라도 그를 발라먹고 싶었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들어줘야 했다. 이성이 남아 있는 지금이라도. 조금 뒤면 그가 아무리 애원해도 제멋대로 굴게 분명했기 때문에.
* * *
밀리안은 클레이의 옷자락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기꺼이 들어오라며 문을 열어 주듯 쭉 뻗은 하얀 다리가 벌어졌다. 경건한 웨딩드레스 안은 아무것도 없었다. 작은 속옷조차도. 언제부터 흘렀는지 모를 진득한 애액이 허벅지를 타고 흐르고 있었다. 밀리안은 혀를 내밀어 클레이의 욕망을 핥았다.
드레스 안에는 여자의 냄새가 짙게 고여 있었다. 밀리안은 바지를 입은 상태로 속옷을 적셨다. 그의 신은 그를 구원할 만큼 강했으며, 또 음란했다. 그는 사정을 하면서도 클레이의 허벅지를 핥으며 뜨거운 액체가 흐르고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하, 정말이지…….”
클레이는 제 음부를 게걸스럽게 빨고 있는 밀리안의 행동에 이를 악물었다. 제가 좋아하는 대로 아래를 빨고 혀를 밀어 넣는다.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 아래에서 느껴지는 감각만으로 그의 행동을 유추해야 했다. 그게 애타면서도 야릇했다. 그녀는 밀리안의 머리가 더 안으로 파고들기 쉽도록 다리를 더 넣게 벌려 주었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가 얼굴을 더 깊게 묻었다.
날렵한 코끝이 민감하게 발기한 클리토리스를 뭉갰다. 축축한 살점이 안으로 길게 들어오자 클레이는 저릿한 쾌감에 눈을 질끈 감았다.
“아읏, 하아…….”
이러다 가겠는데. 그의 입에 사정하는 것도 나쁘진 않았지만, 처음은 꼭 그의 성기를 품고 가고 싶었다. 클레이는 한쪽 발을 들어 밀리안의 하체를 더듬었다. 무릎을 꿇은 다리 사이로 발을 꾹 누르자 단단하게 발기한 성기가 움찔 튀는 게 느껴졌다.
밀리안의 애무를 받는 게 싫은 게 아니었다. 다만, 받기만 하는 건 성에 차지 않았다. 특히 지금처럼 당장이라도 쑤셔 박고 싶어 미치기 직전에는 더더욱.
밀리안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클레이는 쓸데없이 긴 드레스 자락을 걷어 올리다가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에 욕설을 짓이기며 단숨에 찢어 버렸다. 섬세하게 수놓아진 레이스와 작은 다이아몬드가 사방으로 튀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드레스가 고작 하루만에 버려지는 순간이었지만, 클레이는 드레스 따위보다 밀리안의 얼굴을 보는 게 급했다.
밀리안은 눈에 힘이 풀린 채로 멍하게 그녀를 올려다봤다. 음부에서 흘러나온 진득한 애액으로 얼굴이 엉망이었다. 숨을 헐떡이면서도 제 입술에 묻은 것을 혀로 핥는 밀리안을 보자마자 이성이 뚝 끊겼다.
* * *
옷을 벗기고 할 정신이 있을 턱이 없었다. 클레이는 그대로 밀리안의 몸 위로 올라가 거친 손길로 그의 성기를 빼냈다. 이미 몇 번을 사정한 것처럼 희뿌연 액체에 젖은 거대한 성기가 마치 숨통이 튼 것처럼 튕겨 올라왔다. 평소였다면 이 예쁜 성기를 마음껏 예뻐해 줬겠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결혼한 첫날밤이다. 소중하고 소중하게 아끼고 부드럽게 사랑하자고 다짐했던 것은 밀리안의 행동으로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클레이는 마지막 남은 인내심을 끌어모아 밀리안에게 속삭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지독할 정도로 갈라져 있었다.
“미안, 못 참겠어.”
“빨리.”
클레이 못지않게 안달 난 밀리안이 허리를 들썩였다. 금방이라도 사정할 듯이 성기가 부풀어 끝이 떨리고 있었다. 클레이는 바로 음부 깊숙이 성기를 집어삼켰다. 한계까지 발기한 성기가 예민하게 부푼 질 내벽을 밀고 들어오자 그를 기다리고 있던 발기한 관이 단숨에 요도 안을 파고들었다.
“아, 아흣, 아, 안, 으응, 읏, 아아아아!”
“씨발, 미친, 아, 윽.”
등줄기에 선득한 쾌감이 내달렸다. 머리끝이 쭈뼛 설 정도로 날카로운 쾌감이 아프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서로의 성기를 잡아먹은 채로 숨을 헐떡헐떡 내쉬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입술을 겹쳤다. 정신없이 겹쳐지는 혀로 인해 타액이 줄줄 새어 나왔지만, 아무도 그것에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
타액이 두 사람의 입술 사이로 흐르는 것보다도 결합한 성기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더 많았다. 깊게 결합한 채로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음부가 제멋대로 요동치며 성기를 조여 물었다. 그러자 관을 삽입한 요도가 덩달아 조여졌다. 밀리안이 모래에 머리를 비볐다. 온몸이 뒤틀리는 것만 같았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아득한 쾌락은 무서울 정도였다.
왈칵 올라오는 두려움에 클레이의 등을 와락 끌어안자 여자도 숨을 헐떡이며 그를 안았다. 숨 쉬는 것도 잊을 정도였다. 밀리안이 등을 휘며 헐떡헐떡 불안정한 숨을 토했다. 밑바닥까지 낱낱이 여자에게 잡아먹히는 기분이었다. 고작 성기가 삽입됐을 뿐인데 모든 감정과 감각이 여자에게 빨려들어 갔다.
“밀리안. 밀리안 디어. 내 거야. 네가 준 거야. 다시 못 돌려줘. 알겠어?”
“읏. 으응, 하아, 아, 아아아, 제발, 제발, 제발 다 가지, 세요.”
대가는 오로지 당신이면 된다. 밀리안이 클레이의 어깨를 이로 깨물었다. 잇자국이 고스란히 남을 정도로 강한 힘에 클레이가 목을 울리며 신음했다. 비교적 멀쩡했던 드레스 상의도 엉망이 되었다. 밀리안이 다급하게 그녀의 가슴을 움켜잡았다. 볼록 튀어나온 유두가 그의 손가락 사이에 잡혀 뭉개졌다. 그 자극으로 클레이의 질이 잘게 경련하며 성기를 빨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