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8-
미안한 마음과 애정을 담아 상체를 숙여 밀리안의 어깨에 살짝 입 맞췄다. 깊게 잠들어 있는 줄 알았는데 그 작은 접촉에 밀리안이 깨어난 듯 웅얼거리는 소리를 냈다.
“으음, 클레이?”
“응. 더 잘래?”
“……아니요. 이제 일어나야죠.”
그렇게 말했지만, 쉽게 눈을 뜨기 어려운지 몸을 뒤척인다. 한참을 그러더니 눈을 감은 채로 그녀를 향해 두 팔을 내밀었다.
“일으켜 주세요.”
“왜 이렇게 귀엽게 굴어?”
귀하 귀한 애교를 부리는 남자의 요청을 기꺼이 받아들인 클레이가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밀리안의 몸이 딸려 올라오자 클레이가 반갑게 입술을 맞댔다.
“좋은 아침. 몸은 괜찮아?”
“아니요.”
안 아픈 곳이 없다며 밀리안이 얼굴을 찡그렸다. 다 갈라진 목소리마저 야해서.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쓰레기 같아서 구석에 숨어 있던 클레이의 양심이 다시 존재를 드러냈다.
“몸, 많이 안 좋아? 대니얼을 부를까?”
“아니요. 좀, 지쳐서……. 언제 일어났습니까?”
“나도 조금 전에 일어났어. 배는 안 고파?”
“……고픈데, 설마 당신이 요리한 건 아니죠?”
그가 쉽게 잠에서 깬 것은 클레이의 접촉도 있지만, 식욕을 당기는 음식 냄새가 더 컸다. 밀리안은 부드러운 빵과 신선한 샐러드와 치즈, 따뜻한 스튜와 스테이크가 놓인 테이블을 바라봤다. 저건 아무리 봐도 디어 가의 전속 요리사인 미셸의 솜씨였다. 아무리 좋게 말하려고 해도 클레이가 저런 솜씨를 낼 수 있을 턱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클레이의 요리 솜씨는 최악에 가까웠기 때문에.
밀리안은 클레이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만들어 준 파스타를 먹고 위염으로 일주일 내내 고생한 적이 있었다. 그 이후 대니얼과 미셸, 벤틀로가 그녀를 주방에서 추방했다.
사람이 해도 될 게 있고, 하지 말아야 하는 게 있다. 클레이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요리였다. 미셸의 음식에 길든 밀리안은 아무리 클레이를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그녀의 음식은 사랑할 수가 없었다.
분명 미셸이 한 음식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도, 막상 클레이가 주방에서 가져온 음식이니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의 의심스러운 눈빛에 클레이가 머쓱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 들어 올렸다.
“벤틀로가 다녀갔더라고.”
“언제…….”
“나도 몰랐어. 아마 방해하지 않으려고 몰래 왔다 간 거 같아.”
클레이는 빵을 조금 뜯어 밀리안의 입에 넣었다. 밀리안은 정신이 완전히 들지 않는지 반쯤은 눈을 감은 채로 빵을 씹었다.
“치즈도.”
“여기.”
포크로 치즈 한 덩어리를 떠서 빵 위에 발라 주자 밀리안이 입을 벌렸다. 클레이는 킥킥 웃으며 그의 입에 빵을 넣었다. 그렇게 몇 번 받아먹고 나니 정신이 들었는지 밀리안은 눈을 완전히 뜨고 아예 포크를 들었다. 클레이는 그의 앞으로 접시를 더 밀어주며 커피를 마셨다.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불렀다.
“식전에 커피를 마시면 위에 안 좋습니다.”
“지금까지 계속 그랬는데?”
일어나자마자 커피를 마셔도 그녀의 위는 언제나 건강했다. 너무 건강해서 문제 있는 거 아니냐고 대니얼이 짜증을 낼 정도로. 클레이의 말에 밀리안이 포크로 스테이크 한 조각을 찍어 그녀의 입가에 가져다 댔다.
“이제부터라도 조심해 주세요. 같이 오래 살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
“그리고, 이제……, 우리 둘뿐이 아니니까…….”
밀리안의 얼굴이 폭발할 것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제가 말하고도 부끄러운 것 같았다. 클레이는 홀린 듯이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응.”
달콤한 말이었다. 클레이는 기꺼이 입을 열어 밀리안이 주는 음식을 받아먹었다. 미셸이 만든 음식은 이제 익숙해졌지만, 밀리안의 손을 통해 들어오니 더 특별한 맛이 느껴졌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자 삼 인분은 될 법한 음식이 금방 동이 났다.
밀리안은 식사를 마치자마자 다시 침대에 풀썩 쓰러졌다. 배가 고파 그나마 버틸 수 있었는데, 아주 조금 남은 체력이 다 꺾였다.
“정말 대니얼을 안 불러도 되겠어?”
“조금만 쉬면 돼요.”
밀리안은 제 옆자리를 툭툭 쳤다. 클레이가 기꺼이 초대에 응했다. 그의 옆에 누워 허리를 푹 끌어안자 밀리안이 흠칫 몸을 떨며 약하게 신음했다.
“읏.”
“아파?!”
“그게 아니라, ……나오고, 있어서…….”
“그거?”
그게 뭔데? 멍하니 중얼거리던 클레이의 눈에 붉게 달아오른 밀리안의 귀가 보였다. 본능적으로 그게 뭔지 깨달은 클레이는 시트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그의 성기를 만졌다. 생각대로 끈적한 액체가 요도 밖으로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 잠깐, 살살, 흐으…….”
“으응. 미안.”
클레이는 밀리안의 어깨에 턱을 괴고 그의 성기를 주물렀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그의 아랫배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쓸었다. 약하게 흘러나왔던 체액의 양이 더 많아졌다.
“임신, 했겠지?”
“……그렇지 않을까요?”
그렇게 했는데 안 하면 더 이상한 거였다. 얼마나 많이 사정한 건지 아직도 안에서 흘러나오는 액체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순간 울컥하고 한 번에 많은 양이 예민한 구멍을 쓸며 나오자 밀리안의 몸이 둥글게 말렸다.
“흐읏, 아, 아아, 잠시만……!”
“섰네? 싸면서 흥분했어?”
그렇게 하고도 이렇게 발기할 수 있다니. 밀리안은 자주 가긴 했지만, 정력이 굉장히 좋았다. 조금만 느껴도 잘 세운다. 정말 자신과 딱 어울리는 남자라고 클레이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당신은 사정을 안 하고 가는 거에 더 익숙해져 있을 텐데. 한 번 더 해 줄까?”
“아뇨! 더 하면, 정말 죽습니다. 아흣!”
“그 정도야? 하지만 이렇게 세웠는데 손으로 만족할 수 있겠어?”
“으응…….”
고환부터 강하게 쓸어 올리는 애무에 밀리안이 벌벌 떨었다. 지난밤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다시 찾아온 쾌감이 힘겨웠다. 클레이는 약하게 떠는 밀리안의 어깨를 이로 잘근잘근 깨물었다. 당장이라도 섹스에 돌입할 것처럼 굴더니 그가 사정하자마자 산뜻하게 손을 떼어 냈다.
밀리안이 젖은 눈으로 의아하게 보자 클레이가 킥킥 웃었다.
“그 정도까지 짐승은 아니야.”
“그 정도…….”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는 듯이 밀리안이 말을 흐리자 클레이가 그의 어깨를 강하게 깨물었다.
“왜? 아쉬워? 할까?”
“아니요. 제발, 참아 주세요.”
밀리안은 완전히 기력이 빠진 목소리로 애원했다. 며칠을 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분명 하루 이틀은 아닐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또 한 번 사정했으니 몸에 힘이 남아날 턱이 없었다. 클레이가 “씻을까?”하고 물었지만, 밀리안은 지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조금만 더 쉬고요. 힘들어요.”
밀리안의 입장에선 아무렇지 않게 움직일 수 있는 클레이가 괴물 같았다. 어지러워 눈을 감고 있는데, 뒤를 받치고 있던 클레이가 몸을 일으키는 게 느껴졌다. 어딜 가냐고 묻고 싶었지만, 이미 말을 할 기운마저 사라진 상태였다. 잠시 후, 침대가 다시 흔들렸다. 몸에 감겨 있던 축축한 시트가 벗겨지고 따뜻한 물로 적셔진 수건이 몸에 닿았다.
“당신 몸이 엉망이야.”
“……당신이…….”
“맞아. 내가 이렇게 만들었어. 자기가 섹스에 지쳐서 이렇게 쓰러져 있는 것도 야하게 느껴져서 큰일이야.”
“짐승도, 아니고…….”
“아무래도 난 짐승이 맞는 거 같아.”
낮게 쉰 목소리와 함께 젖은 수건이 성기 부근을 스쳤다. 밀리안은 흠칫 떨며 몸을 사렸다.
“더는, 정말, 못,”
“안 해. 안 할 거야. 그러니 그렇게 날 자극하지 말고 얌전히 있는 게 좋아.”
성욕에 잠긴 목소리는 신뢰가 가지 않았지만, 밀리안은 둥글게 말았던 몸을 펴고 누웠다. 믿지 않는다고 그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을뿐더러, 그의 몸을 닦아 주는 클레이의 손길이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서 좋았기 때문이었다. 몸을 닦은 뒤, 클레이는 그의 몸을 부드럽게 마사지했다. 덕분에 어디라고 딱 꼬집을 수 없을 정도로 뻐근했던 몸이 조금이나마 편해졌다.
“밀리, 자는 거야?”
“…….”
“고생했어. 사랑해.”
“…….”
이마를 스치는 손길 뒤에 부드러운 입술이 닿았다. 뭐라고 대답하고 싶은데 반쯤 잠든 육체로 인해 입술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 * *
다시 일어나니 몸이 한결 가벼웠다. 밀리안은 클레이와 함께 욕실에 들어가 간단히 씻었다. 가벼운 옷을 입고 섬을 한 바퀴 돌고 흔들의자에 함께 앉아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기도 했다.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이전보다 훨씬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클레이는 밀리안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행복해.”
“저도요.”
“역시 이대로 세상이 망하기엔 아쉬워.”
“……?”
“우리 첫날밤에 했던 말 말이야. 그땐 그래도 될 것 같았는데, 지금은 절대로 안 돼.”
이제야 결혼했는데 벌써 죽는다니 말도 안 된다고 클레이가 했던 말을 번복했다. 무슨 말인가 했던 밀리안은 그제야 알아듣고 픽 웃었다. 그리고 클레이의 손을 꽉 잡았다.
“오래 함께 있어 주세요.”
“당연하지. 죽어서도 당신은 내 거야.”
그럴 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러고 싶다. 영혼이 있다는 말이 정말이라면, 설혹 천국에 갈 수 없다 하더라도 언제까지고 클레이와 함께 있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