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5-
그녀의 시선이 살짝 아래로 내려갔다가 미련을 뚝뚝 흘리며 다시 올라왔다. 살짝만 빠는 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의 몸에 조금이라도 무리 가는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다.
“클레이, 정말 제 몸이 괜찮아 보여요?”
“난 언제나 당신 몸을 숭배해. 내 눈에 당신보다 아름다운 사람은 없어.”
하늘에 맹세코. 밀리안은 클레이에게 절대적인 진리였다. 그의 잘려 나간 발톱 조각조차도 사랑스러운데 그들의 결실을 증명하는 배는 말할 것도 없었다.
“사랑해. 그러니까 나 좀 밀어내지 마. 내게 화를 내도 좋고, 짜증을 내도 좋아. 곁에만 있게 해 줘.”
“불안해서,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데 그렇지 않으니까, 무서웠습니다.”
“응. 이해해.”
클레이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아까부터 탐냈던 밀리안의 눈물을 혀로 핥았다. 이번에는 밀어내지 않았다. 눈과 볼, 턱까지 물기가 있는 곳은 전부 빨아들이고서야 클레이가 입술을 떼어 냈다. 눈을 감고 있던 밀리안이 살며시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우리 밀리는 어떻게 눈물까지 맛있지?”
“그건 당신이 변태라서 그래요.”
얄미울 정도로 진실만 말하는 밀리안의 입술을 살짝 꼬집은 클레이가 그의 말을 정정해 줬다.
“사랑이 넘쳐서 그런 거지.”
“그건 맞지만, 변태도 맞죠.”
“……부정을 못 하겠네.”
클레이가 밀리안의 이마에 이마를 댄 채 킥킥 웃었다. 밀리안의 얼굴도 밝아졌다.
* * *
온천수를 공급해 오는 건 꽤 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한 층을 전부 수영장으로 쓰고 있었기에 들어가는 물의 양도 만만치 않았다. 거기에 그 넓은 수영장을 가득 채운 물의 온도를 계속 같은 온도로 유지해야 했다. 밀리안이 언제 어느 때에 물에 들어가고 싶어 할지 알 수 없기에 철저히 관리했다.
수영복은 배를 조이기 때문에 밀리안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로 물에 들어갔다. 클레이도 마찬가지였다. 말이 수영이지 거의 물에서 살짝 걷거나 둥둥 떠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답답함이 가셨다. 클레이는 뒤에서 그를 끌어안고 천천히 물에서 유영했다. 밀리안은 클레이에게 몸을 의지한 채 눈을 감았다. 왜 혼자 하겠다고 밀어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안온한 순간이었다.
아랫배를 살짝 감쌌던 클레이의 손이 가슴으로 올라왔다. 여자와는 달리 남자는 임신을 하더라도 모유까지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유선이 발달해 가슴과 유두가 조금은 부풀었다. 출산에 가까워지면 유즙이 조금 나올 수도 있다고 해서 클레이는 기쁘게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분 괜찮아?”
“네. 좋아요. 아까는…….”
“쉬이. 당신은 아무것도 변명하지 않아도 돼. 난 당신이 내 뺨을 때렸어도 할 말이 없는걸.”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제가 왜 당신 뺨을 때려요.”
말도 안 되는 말에 밀리안이 소리 내어 웃었다. 클레이는 그의 목덜미에 살짝 입 맞추며 대답했다.
“당신을 임신시킨 건 나니까. 내가 임신할 수 있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럴 수가 없어서 항상 미안하고 고마워.”
언제나 당신을 희생시켜서 행복을 얻는 것 같다. 클레이가 애교를 부리듯 그의 목덜미에 코를 비비자 밀리안이 그렇지 않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제가 임신하는 게 여러 사람을 덜 고생시키는 일일 겁니다.”
“……왜?”
“정말 몰라서 물으시는 건 아니죠?”
왜 당연한 걸 묻냐는 밀리안의 지적에 클레이는 잠시 말을 잃었다. 밀리안이 요즘 임신으로 인해 감정적인 조절이 힘들다 하더라도, 매우 온순한 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건 밀리안의 성격이 그렇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자신이 임신했다면 밀리안처럼 부드럽게 상황이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밀리안이 이렇게 말하면 안 됐다. 클레이가 불만스레 입을 다물자 밀리안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사랑스러울 거 같습니다. 아, 그렇게 생각하니 한번 보고 싶어요.”
“……정말이야?”
“네. 당연하죠.”
클레이의 임신이라. 밀리안은 클레이의 배가 소담히 부풀어 오른 상상을 하자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흘렸다. 이 여자는 배가 불러도 한 폭의 그림 같을 것이 분명해서. 하지만 그래도 상상만으로 그칠 수 있는 가정이라 다행이었다. 자신이라면 몰라도 벤틀로는 완전히 말라 버릴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클레이는 그새 기분이 풀린 듯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온천수는 딱 알맞게 따뜻했고, 클레이의 정체 모를 노래도 평화로웠다. 밀리안은 속으로 작게 웃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클레이의 노래 실력은 엉망이었다. 음정도 제멋대로고 음치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어떤 유명한 가수의 노래보다도 감미로웠다.
* * *
초음파를 찍을 때마다 아주 조그맣던 점이 조금씩 커지는 게 신기했다. 처음 심장 소리를 들었을 때도 기분이 이상했다. 정말 아이가 있다는 게 실감이 됐다. 그것도 이란성 쌍둥이가.
“여자아이가 유독 크네요.”
“흠.”
대니얼도 클레이도 정확히 말은 하지 않았지만, 여자아이가 알파로 성장하리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디어 가의 첫아이는 무조건 여자였고, 그대로 알파로 성장했다. 쌍둥이는 처음이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변하는 것은 없으리라는 확신이 들 정도로 디어 가의 유구한 전통이었다.
“체중도 적당하고, 관리 잘하고 있네요. 쌍둥이라 힘들 텐데 괜찮아요?”
“버틸 만합니다.”
“내장이 너무 눌리는 것 같으면 힘들더라도 걷는 게 도움이 될 거예요. 수영, 꾸준히 하고 있죠?”
“네. 그게 가장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운동이라고 해서요.”
“좋아요. 잘하고 있어요. 굉장해요, 밀리안.”
“…….”
밀리안은 민망한 얼굴로 클레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클레이가 활짝 웃으며 입술에 가볍게 입 맞췄다. 밀리안의 얼굴이 더 붉어졌다. 임신한 이후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비위를 맞추자고 일제히 말을 맞춘 느낌이 들 정도로 아주 사소한 것에도 칭찬하고 치켜세워 준다. 그게 민망하면서도 은근히 기분 좋았다. 그래서 더 부끄러웠다.
“……아.”
사랑받고 있구나. 새삼스러운 자각이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게 당연한 일상. 클레이가 탄탄한 울타리로 만들어 준 행복이었다. 채워도 채워도 어딘가가 깨진 것처럼 새어 나가던 마음이 단단해졌다. 충만하다는 게 이런 감정이었다. 오로지 받아먹기만 급급하던 마음이 채워지다 못해 넘쳐흐르고 있었다.
“대니얼, 항상 신경 써 줘서 고맙습니다.”
“세상에. 밀리안, 지금 내 이름을 불러 준 거 맞죠?”
그동안 이름으로 불러 달라고 몇 번을 말해도 꿋꿋하게 닥터 크래포드라고 부르던 밀리안이 처음으로 친근한 표현을 하자 대니얼이 감격한 얼굴을 했다. 고작 이름을 부른 것뿐이었지만, 밀리안이 자신의 선 안에 그를 받아들였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클레이는 미간을 찌푸리며 진지하게 말했다.
“밀리, 쟤는 굳이 이름을 부를 필요 없어. 뭐가 예쁘다고 이름까지 불러 줘.”
“클레이, 네가 아무리 뭐라고 해도 이미 밀리안은 내 이름을 불렀거든?”
“네가 매일 징그럽게 구니까 밀리가 져 준 거지.”
“…….”
고작 이름 한번 부른 것에 과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게 민망했다. 밀리안은 어색한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 * *
밀리안의 표정이 어딘가 이상했다. 클레이는 제가 넘겨주는 파인애플 조각을 받아먹으면서도 생각이 다른 데로 간 듯 멍한 그를 유심히 살폈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던가? 아니, 평소와 똑같았다. 대니얼의 이름을 부른 건 갑작스러운 일이긴 했어도, 그동안 오래 알았으니 그렇게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클레이는 심술궂은 얼굴로 포크를 내려놓고 검지를 그의 입가에 가져다 댔다. 손톱 끝이 닿기 무섭게 밀리안이 음식을 받아먹을 때처럼 입술을 벌렸다. 손가락 한 마디를 깨물고 나서야 자신이 물은 게 과일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은 밀리안이 눈을 깜박였다. 클레이는 손을 빼내기는커녕 물컹한 혀의 표면을 손톱으로 살살 쓸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게 해?”
“잠깐, 아…….”
“내가 앞에 있는데 다른 생각을 하는 건 너무하는 거 아니야?”
“그게 아니라, 이거 좀, 빼고, 읏.”
“으응? 자기 요즘 나한테 너무 무심해.”
빨아 봐. 클레이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속삭이자 밀리안의 눈이 순식간에 젖었다. 살짝 시선을 내리깐 채 클레이의 손가락을 더 깊게 빨아들이자 점막과 타액이 부딪히는 끈적한 소리가 울렸다. 그때, 밀리안의 무릎에 앉아 있던 체셔가 털을 세우며 날카롭게 울었다.
모처럼 분위기를 내고 있는데. 체셔를 보는 클레이의 눈이 뾰족해졌다. 예전이었다면 당장 들어서 내쫓았을 텐데, 밀리안이 임신한 중이라 참을 수밖에 없었다. 체셔는 자신과 똑같은 색의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꼬리를 부풀렸다. 고양이와 인간의 기 싸움 중심에 선 밀리안은 머쓱한 얼굴로 체셔의 등을 손으로 긁었다.
“그렇게 오냐오냐하니까 더 버릇없어지는 거야.”
“체셔는 태어났을 때부터 이런 성격이었을 것 같은데요.”
당신을 닮아서. 소리 내어 말하진 않았지만, 밀리안의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너무 정직하고 바른말에 클레이의 웃음이 삐뚤어졌다.
“내가 지금 당신에게 먹이고 싶은 건 이런 게 아닌데.”
살짝 가늘어진 시선이 은밀한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그제야 밀리안은 아차 싶었는지 테이블에 놓인 파인애플을 가리켰다.
“……전 파인애플이 먹고 싶습니다.”
“흐응. 뭐 그래. 자기가 먹고 싶다니 당연히 바쳐야지.”
클레이가 우아하게 포크를 들어 파인애플을 콱 찍었다. 그리고 자신의 입술로 물었다. 당연히 제게 주는 줄 알고 입을 벌리던 밀리안이 어설픈 웃음을 흘렸다. 그때 클레이가 몸을 일으켜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반사적으로 입을 열어 과일을 받아먹자 상큼한 과즙이 두 사람의 입술 사이로 흘러내렸다. 그 상태로 클레이가 무릎을 들어 체셔를 밀어내고 밀리안을 차지했다.
엉겁결에 바닥으로 떨어진 체셔가 사나운 울음을 터트렸지만, 밀리안은 체셔에게 관심을 줄 수 없었다. 그가 아무리 체셔를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클레이의 키스를 거절할 정도는 아니었다. 매끄러운 팔이 그의 목에 감겼다. 클레이가 더 깊게 혀를 얽자 밀리안의 목에서 애타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밀리안이 보채듯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그도 부족해 천천히 손이 올라갔다. 허리부터 등을 타고 오르는 손길이 짜릿했다. 클레이는 황급히 입술을 떼어내고 밀리안의 입술과 볼을 혀로 핥았다. 그리고 손으로 훑어 마무리한 뒤에 가벼운 립키스가 이어졌다. 한창 불붙었던 열기를 가라앉히는 클레이의 행동에 밀리안이 아쉬운 얼굴로 치댔다.
“클레이?”
“아쉽지만, 여기서 끝. 더 하면 못 참을 거 같아.”
“……조금만 더요.”
“안 설 자신 있으면.”
“…….”
대답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이미 살짝 힘을 받고 있었으니까. 클레이는 손을 내려 살짝 도톰하게 솟은 그의 하체를 쓸었다.
“한 번만 쌀까?”
사실 금욕을 해야 하는 시기는 지나고 이제 안정기에 들어섰지만,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밀리안의 몸에 무리가 갈 행동은 하지 않았다. 삽입뿐만 아니라, 가벼운 패팅으로 인한 사정조차도 제어할 정도로 참았다. 하지만 빨고 싶어. 클레이는 물기가 말라 건조해진 입술을 핥았다.
“한 번만?”
“으음. 안 돼. 그 이상은. 아니면 안 해 줘.”
밀리안이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더라도 그를 싸게 할 방법은 많았다. 하지만 절정을 느끼고 사정하는 것도 체력을 꽤 소모한다. 클레이의 엄포에 밀리안이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밀리안을 소파에 눕힌 뒤, 클레이가 바닥에 무릎을 대고 섰다. 살짝 색이 짙은 성기는 임신한 뒤로 더 통통하게 부풀었다. 임신과 성기의 굵기가 대체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때가 아니면 볼 수 없는 모양이었다. 클레이는 그의 성기를 부드럽게 쓸었다.
“여기, 구멍이 더 좁아졌어.”
진한 액체를 동그랗게 매단 요도를 엄지로 쓸자 밀리안의 몸이 헐떡거리며 튀었다.
성적인 접촉이 오랜만이라 그만큼 더 예민하게 반응했다. 클레이는 짓궂게 웃으며 엄지에 묻은 체액을 핥았다. 어찌 된 일인지 그의 체액은 그 어느 때보다도 달콤했다. 그의 체액에선 자신의 냄새가 옅게 섞여 나고 있었다.
밀리안이 임신한 뒤 항상 그녀의 페로몬을 탐했다. 그래야 안심이 된다는 듯이. 실제로 만족스러울 만큼 클레이의 페로몬을 빨아들이고 나면 몸이 한결 좋아졌다. 그 탓일지도 모른다. 그의 몸에서 제 냄새가 섞여 나오는 이유가.
클레이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고환부터 성기 끝까지 혀로 천천히 핥았다.
“아, 아아, 클레이, 읏!”
“쉬이. 조심해야지.”
자꾸 이렇게 몸을 움직이면 더 해 줄 수 없다며 클레이가 경고했다. 밀리안은 숨을 헐떡거리며 클레이를 애타게 바라봤다.
“하지만, 너무, 아, 오랜만이라, 흣, 으응.”
“그렇게 좋아?”
“……좋아요.”
밀리안이 오랜만에 느끼는 쾌감에 젖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좋은 건 클레이도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에 그의 신음을 들어서 몸이 저절로 달아올랐다. 부드럽고 상냥하게. 클레이는 그 말을 계속 되새기며 밀리안의 성기를 빨았다. 두툼한 성기가 입 안을 가득 메우자 클레이의 목이 가늘게 울렸다.
좁고 뜨거운 내벽이 성기를 사정없이 조였다. 밀리안은 조심해야 한다는 것도 잊고 자꾸 허리를 들썩거렸다. 그때마다 클레이가 성기를 빼냈다. 안 그러겠다고, 사정해야 다시 입에 담았다. 밀리안은 달뜬 신음을 흘리며 클레이가 주는 쾌락을 만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