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0 : 크리스마스트리-
삼십삼 년 만에 디어 가에 새로운 트리가 생겼다.
밀리안과 클레이는 유행을 타지 않는 장식으로 고르고 골랐다. 한번 사면 몇십 년을 그대로 유지해야 했기에 선택은 매우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기본형보다 좀 더 크고 동그란 전구를 손에 들고 이리저리 살피던 밀리안은 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가 고개를 들어 장식이 빈 트리 나무를 가만히 보고 있자, 아이를 안은 클레이가 다가왔다.
“왜? 뭘 그렇게 신기하게 봐?”
“……이걸 제가 바꾸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 년 전엔 자신이 클레이의 아이를 낳는 것도. 아니, 그녀와 각인을 하고 결혼까지 하게 될 줄도 몰랐다. 그저 언젠가는 혼자 떨궈져 나가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클레이가 레이나를 벤틀로에게 넘겨주고 밀리안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나는 이 트리를 새로 바꾸게 된다면 당신 때문일 거라고 확신했어.”
“…….”
“당신이 언제 내게 마음을 열지, 그것만 초조하게 기다렸거든.”
“전혀 그렇게 안 보였어요.”
클레이는 언제나 여유가 넘쳐 보였고, 정신없이 휘둘리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마음을 다잡으며 그녀의 변덕이 끝나는 날을 기다렸던 것 같다. 이 여자에게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그걸 알지 못했다.
“그렇게 안 보이려고 노력했으니까.”
클레이가 그의 목덜미에 입술을 비볐다. 밀리안은 살짝 몸을 움츠렸다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클레이의 입술을 찾았다. 이젠 고용인들이 보는 앞에서도 가벼운 애정표현 정도는 거리낌 없이 했다. 그때 바닥에 있던 조쉬가 밀리안의 바지를 꽉 쥐고 당겼다. 분명 조금 전까지 말랑한 공이 잔뜩 들어 있는 풀에 있던 아이가 밀리안을 보고 엉금엉금 기어온 것이다.
“아바아.”
“조쉬, 언제 여기까지 온 거야? 응?”
“꺄아!”
밀리안이 조쉬를 성큼 들어 올리자 그를 닮은 아이가 까르르 웃었다. 분홍색 빛을 띤 통통한 볼이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곱슬거리는 금발과 해사하게 웃는 아이는 꼭 천사 같았다. 밀리안은 우유 냄새가 나는 아이의 볼에 볼을 비볐다. 아이의 웃음소리는 더 커졌다. 조쉬의 목소리를 들은 레이나가 불만스러운 소리를 내며 발버둥 쳤다.
벤틀로는 제 수염을 잡아당기는 레이나의 난폭한 행동에도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꽤 아픈지 주름진 눈꼬리에 눈물 한 방울이 맺혀 있었다. 클레이가 혀를 차며 레이나를 떼어 내 옆구리에 끼웠다. 아이는 대롱대롱 매달려 팔다리를 허우적거렸다.
조쉬와 얼굴이 마주 닿을 때까지 가까워지자 그제야 만족스럽게 웃는다. 클레이는 어딜 봐도 제 자식임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레이나를 난감하다는 듯 바라봤다. 심지어 고양이인 체셔마저 레이나와 조쉬를 차별했다. 조쉬 옆에선 편안한 얼굴로 고롱고롱 잠을 자다 레이나만 다가오면 하악질하며 도망쳤다. 그럼 레이나가 마치 조쉬를 악당에게서 구한 듯이 의기양양한 얼굴을 했다. 하는 짓들이 웃겼다.
클레이는 틈이 날 때마다 사진을 찍었다. 전문 포토그래퍼를 고용하기도 했지만, 그녀가 직접 찍은 사진도 많았다. 아예 서재 하나를 날짜별로 정리해 놓은 앨범으로 꽉 채웠을 정도였다. 고작 일 년 만에 이렇게 많이 찍어 놓으면 나중엔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는 거냐는 밀리안의 질문에 클레이가 그럼 건물을 하나 더 세우면 된다고 가볍게 대답했다.
아이들은 금방 자라고, 또 부모의 손에서 벗어나 독립할 날이 있을 거다. 그전까지는 이 순간을 모두 기록해 놓고 싶다는 클레이의 말에 밀리안이 포기한 듯 웃었다. 말은 아이들의 성장을 기록할 거라고 했지만, 클레이의 사진에서 가장 출연도가 높은 피사체는 단연 밀리안이었다. 밀리안은 해가 갈수록 감정표현이 확실해졌다. 그게 얼굴에도 티가 났다. 지금은 그의 과거가 어두웠다는 걸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해사해졌고, 많이 웃었다. 그럴 때마다 클레이는 심장이 아프다는 느낌을 받았다. 행복이 지나쳐 심장이 꽉 조여지는 기분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자신으로 인해 그가 좋은 방향으로 변해 가고 있다는 건 세상을 모두 가진 기분이었다. 그가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계속 볼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
그의 감정을 제어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때가 있었다. 결국 그의 사소한 행동과 표정, 말 한마디로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사람은 자신이었다.
조쉬를 안은 채로 트리를 조금씩 장식하고 있는 밀리안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클레이는 활짝 웃으며 그의 곁에 붙었다. 간혹 조쉬와 레이나가 장식을 떨어트려 깨트리기도 했지만, 넉넉하게 사 놨던 터라 문제될 것은 없었다. 그러다 피곤해졌는지 아이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잠들었다. 클레이와 밀리안은 킥킥 웃으며 아이들의 말간 이마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추고 다시 트리로 향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장식할 시간이었다.
천천히. 새로운 트리를 장식하는 사람은 오롯이 클레이와 밀리안이었다. 벤틀로도 끼지 않았다. 이건 두 사람의 의식이기 때문이었다. 그다음 해가 되면 다른 사람이 끼어들어도 되지만, 첫 트리는 두 사람의 몫이었다.
시간을 오래 들여 트리가 완성되자 저택의 조명이 꺼졌다. 따뜻한 빛의 작은 트리 전구만이 거대한 저택을 밝혔다. 클레이와 밀리안만 남겨 두고 다른 사람들은 자리를 피했다. 조쉬와 레이나도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태어나고 항상 시끌벅적했던 저택이 완전히 조용해졌다.
가만히 트리를 바라보고 있는 밀리안을 향해 클레이가 조용히 물었다.
“무슨 생각해?”
“당신을 만나기 위해 살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요.”
“…….”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도 어떻게든 살고 싶어서 발버둥 쳤었습니다. 사실 오메가인 걸 들키고 싶지 않다면 당신의 회사에 입사해선 안 됐죠. 들키고 나서도 정말 도망치고 싶었다면, 다시 회사에 가서도 안 됐습니다. 하지만 기어코 돌아갔죠. 당신에게 잡히고 싶어서…….”
“밀리.”
“악착같이 버티고 살아남았던 가치가 이것이라면, 저는 더한 지옥을 겪었더라도 좋았을 것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수 있어서, 당신이 날 잡아 줘서, 당신을 잡게 해 줘서 고맙다고 밀리안이 속삭였다.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한참을 침묵하던 클레이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할 말을 먼저 다 해 버리면 어떡해.”
“그런가요?”
밀리안이 밝게 웃었다. 그를 눈이 부시다는 듯 보던 클레이가 잔뜩 잠긴 목소리로 속삭였다.
“키스해 줘.”
첫 트리 앞에서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첫 키스. 디어 가의 전통은 그토록 로맨틱했지만, 아무도 그 로맨틱한 순간을 맛봤던 사람은 없었다. 그들의 선조가 그토록 바라며 만들었던 전통이 두 사람을 통해서야 빛을 발했다.
반짝반짝 점등하는 작은 빛들이 클레이를 비췄다. 선명한 녹색 눈동자가 한결같이 그만 바라보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어깨를 걸치고 떨어진 긴 머리카락이 점등하는 빛으로 인해 반짝였다. 긴 속눈썹 아래로 우아한 그림자가 졌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함께한 시간이 꽤 되었지만, 마주할 때마다 가슴이 설렜다. 아니, 단 한순간도 설레지 않은 적이 없었다. 어떻게 설레지 않을 수 있을까?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를 상대로. 함께 있을 때는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에, 손길에 가슴이 뛰었고, 잠시 떨어져 있을 때는 자신에게 돌아올 여자를 설레며 기다렸다. 모든 순간이 사랑스러웠다. 그녀로 인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준다 해도 바꾸지 않을 단 한 사람이었다. 그의 구원이자, 그의 신. 사랑하는 사람.
밀리안은 기꺼이 그의 여자에게 입을 맞췄다. 맞닿은 입술이 부드럽게 미소 짓는 게 느껴졌다. 밀리안도 웃었다. 조명이 꺼져 어두웠지만, 트리에 장식된 작은 불빛들이 그들을 밝히고 있었다.
<로맨틱 섹슈얼 외전 완결>
-hidden track-
‘왜 이렇게 됐지?’
밀리안은 자신의 아이가 저를 묶어 결박한 것에 절망했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아이. 버려진 갓난 아이를 주워 젖 동냥을 해가며 금지옥엽으로 키웠는데 대체 이 상황은 무엇일까…….
이제는 성인이 된 아이의 손이 그의 상의를 찢었다. 팔은 각기 같은 쪽 발목에 겹쳐 묶였다. 자연히 다리는 아이의 앞에 활짝 벌어진 상태였고, 이러지 말라고 그만하라고 소리치고 싶어도 천에 막힌 입에서는 울음 같은 신음만 흘러나왔다.
떨리는 눈에 제 위를 타고 오른 아이가 나른한 한숨을 내쉬는 것이 보였다. 말이 나오지 않으니 눈빛으로, 그도 통하지 않아 고개를 저어 애원했으나 클레이는 작게 웃을 뿐이었다. 아이의 손이 그의 볼을 쓰다듬었다. 와락 돋아오른 소름이 전신을 내달렸다.
“참으려고 했는데 왜 그러셨어요?”
“으읍! 읍!”
“결혼이라니. 정말이지……. 말이 되는 짓을 하셨어야지요, 아버지.”
“!”
대체 어떻게…….
“어떻게 알았냐고요? 진심이세요? 정말, 제 눈을 피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나른한 미소를 짓고 있는 아이의 눈이 까맣게 물들었다.
“결혼한다면 저와 하셔야죠.”
그깟 베타 여자가 아니라요. 어딜 봐도 제가 더 아름답지 않냐며 묻는다. 느른하게 이어지는 아이의 목소리는 낮고 짙었다. 그 안에 새까만 욕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래서였다. 아이가 자랄수록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심상치 않아서. 제 딸이 저를 이성으로, 욕망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걸 은연중에 깨달아서.
그래서 어떻게든 어긋나고 있는 관계를 되돌리고자 결혼이라는 도피처를 만들 생각이었는데, 아이는 그의 얄팍한 계획을 모두 꿰뚫고 있었다.
“으읍! 으으으읍!”
“쉬이. 쓸데없는 짓은 그만두세요. 그러다 이 소중한 몸이 상하실지도 몰라요. 피부가 이렇게 약해서 벌써 자국이 생겼어요.”
“…….”
“아, 물론 저는 이런 아버지의 모습도 매우 보기 좋습니다.”
오히려 색욕을 자극했으면 했지, 식지 않는다며 속삭인다. 밀리안은 대체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졌다.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을까. 대체 어떻게 하면…….
절망에 차 몸을 뒤척이는데, 아이의 상체가 아래로 기울어져 내렸다. 점점 가까워지는 클레이의 얼굴에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짧은 침묵 뒤로 입을 가린 천을 사이에 두고 야릇한 감촉이 닿았다.
“흡!”
“천이 모두 젖었어요. 아버지의 침으로도 범벅이 되어서…….”
“흐으으읏!”
“아쉬워요. 키스하고 싶은데 오늘은 무리네요.”
입을 풀어주면 시끄럽게 굴 게 분명하니 어쩔 수가 없다며 안타까운 얼굴을 했다.
“오늘은 기분 좋은 것만 해드릴 생각이니 너무 그렇게 겁을 먹지 마세요.”
그 말과 동시에 벌어진 가랑이 사이로 아이의 한쪽 허벅지가 들어왔다. 고간을 짓누르며 성교를 하듯 비벼대자 미쳐 버린 육체가 딸의 행동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느껴지세요? 아버지 자지가 커지고 있어요. 이렇게 마른 몸을 하고 또 좆은 꽤 커서…… 하아, 좋아요.”
“……으읏.”
“알고 있어요. 당신이 음탕한 오메가라는 사실을요. 간간이 발정 나서 혼자 자지구멍을 쑤셨죠.”
“!”
“그런 야해 빠진 몸을 하고 베타와 결혼이요? 정말 딱 아버지다운 생각이긴 한데 좀 웃겨서.”
머리가 터질 뻔했지 뭐예요. 아름다운 입술이 일그러져 하얀 이가 드러났다. 유난히 날카로운 송곳니가 흡사 짐승처럼 보였다.
‘어떻게 알았지?’
평소에는 향이 아주 약해 아무도 그가 오메가라는 사실을 모를 정도였지만, 반년에 한번 발정기가 오면 꼭 잠들어있던 정욕이 한순간에 치솟아 오른 것처럼 정신없이 앓았다.
그 주기가 더 빨라진 것은 아이가 알파로 자각한 이후였다. 제어하지 않은 채 페로몬을 집 안 가득 뿌려대는 탓에 밀리안은 때때로 아랫배에서 치솟는 열기에 당혹스러웠다.
그래도 참을 수 있었다. 비싸디 비싼 약을 먹어 가며 간신히 버텼고, 아이가 학교로 돌아간 이후에나 자위를 하곤 했다. 그나마도 혹시 몰라 방문을 모두 닫고 발정기를 지새웠다.
“순진하기는. 제가 아버지를 그냥 방치해 두고 집을 나가 있을 리가 없잖아요.”
“?”
“아직도 모르시다니. 자, 위를 보세요. 작은 렌즈가 보이죠?”
“흐으읍!”
강제로 턱이 잡혀 고개가 돌아갔다. 클레이의 말대로 천장 모서리에 작은 렌즈가 반짝였다. 경악한 그의 귀에 부드러운 입술이 닿아 움직였다.
“제가 남기고 간 페로몬에 흠뻑 젖어서 자지 구멍 안에 장난감을 넣고 좋아하던 모습이 정말 귀여웠어요.”
“으으읍!!”
“하아. 가서 박아주고 싶은 걸 참느라 그렇게 인내하고 또 인내했는데 아버지는 쓸데없는 짓이나 하시고.”
"읍! 으읍!"
"오늘 아버지는 제 아이를 배게 될 거에요."
그럼 별 갖잖은 방법으로 도망칠 생각 따위 하지 못하겠죠. 아이의 손이 납작한 그의 배를 뭉근히 쓸었다. 아이의 말이 귀로 들렸으나 결코 이해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말이어서, 밀리안은 그대로 정신을 놓고 싶었다.
비록 피가 이어진 것은 아니지만 밀리안은 정말 클레이를 제 딸이라고 생각했다.
사랑스럽고 예쁘고 고운 아이였다. 이렇게 상스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아이가 아니라. 항상 제게 방긋방긋 예쁜 웃음을 지어 행복하게 해 주었고, 목숨조차 내어 줄 수 있을 정도로 아끼고 사랑했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 아니었다. 아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좌절과 절망이 바글바글 끓어 눈물이 되어 흘러넘쳤다.
*
*
*
“밀리? 밀리안!”
“―!”
클레이는 식은땀으로 푹 젖은 밀리안을 흔들어 깨웠다. 대체 무슨 악몽을 꾸는 건지 덜덜 떨더니 종래엔 눈물마저 흘리고 괴로운 신음을 흘려댔다.
악몽을 꾸는 게 맞는지, 혹은 정말 몸이 아픈 건지 의심이 들 정도여서 한 번 더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대니얼을 호출할 생각이었는데, 다행히 그 전에 눈을 떴다.
눈물이 맺힌 갈색 눈동자가 이리저리 방황하더니 그녀를 향해 초점이 잡혔다. 그러더니 손을 움직여 입가를 더듬고, 다시 그녀를 보고, 주변을 살폈다. 한참을 그러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왜 그래? 무서운 꿈을 꿨어?”
“클레이…….”
“응. 나 여기 있어.”
“……하아.”
다행히 아픈 건 아닌 듯 했다. 밀리안은 한참 그녀를 바라보다 몸을 돌려 이불 안으로 몸을 숨겼다. 순간 울컥했지만, 악몽의 여파려니 속을 다독여 이불 속에서 몸을 말고 누운 밀리안을 끌어당겨 품에 넣었다.
그리고 침대 옆 탁자에 있는 스탠드의 조도를 낮췄다. 별일이 아니라는 걸 알고나니 다시 졸음이 쏟아졌다. 그녀는 밀리안의 배를 느린 속도로 토닥이며 말을 걸었다.
“뭐, 꿈에 무서운 거라도 나왔어? 좀비 같은 거?”
밀리안은 이불 안에서 속으로 대답했다.
‘……당신이요.’
좀비보다 무서운 여자가 나왔다. 그것도 자신의 아이인 척하다가 키워준 저를 임신시키겠다며 강간하려고 했다.
“난 당신 꿈을 꿨는데…….”
움찔. 슬슬 잠기운이 스며들고 있는 느린 목소리에 밀리안의 몸이 튀었다.
“당신이 내 아버지로 나와서…….”
“…….”
“맛있게, 잡아먹었지 뭐야.”
“―!”
정말 좋았어. 그 말을 끝으로 클레이의 목소리가 끊겼다. 저를 끌어안은 여자의 품에서 밀리안은 날이 밝아 올 때까지 잠들지 못했다.
두 사람이 아직 마음이 통하지 않았을 무렵의 어느 밤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