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7화>
“어, 아. 그, 그럼…….”
“파손된 물건 값이 얼마요? 내가 변상하지.”
“그, 그게. 괜찮습니다! 자물쇠나 금고 같은 건 재고를 많이 두고 있어서…….”
“아니. 같이 장사하는 처지에 이런 건 철저해야지.”
그러자 상림이란 남자 뒤에 있던, 인상이 가장 험상궂은 남자가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에이, 형님이 무슨 장사를 하신다고 그러십니까?”
“이 자식들아, 사람 장사는 장사 아니냐? 간이고 신장이고, 다 수요가 있으니 파는 거지.”
“아, 그 장사 말씀이셨습니까?”
조폭들이 크하하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형님, 그냥 가시죠. 돈은 무슨 돈입니까. 여긴 제가 잘 알아듣게 타이르겠습니다.”
“됐대도.”
상림이 지갑에서 수표를 꺼내서 건네자, 방 탈출 카페의 주인장이 흠칫 놀랐다.
“그, 그, 괜찮습니다!”
“받아.”
카운터에 수표를 탁 올려놓은 상림이 주인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속삭였다.
“대신 오늘 일에 대해서는 입 닫고 갑시다. 알바생들 입단속도 잘 하시고.”
“네, 넵!”
“특히 언론이나 SG에 들어가면 사장님이 우리 가게 거래품이 되는 겁니다. 아셨죠?”
“네, 네, 네!”
“참. CCTV도 지우고.”
벌벌 떠는 사장을 보며 상림이 피식 웃었다.
“가자.”
그렇게 썰물 빠지듯 조폭들이 빠져나가고, 카페 주인이 쓰러지듯 의자에 주저앉았다.
한참 거친 숨을 내쉬고 있던 사장은 문득 손에 들린 수표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백만 원?!”
이 정도면 오늘 손해를 충분히 메우고도 남았다.
불만을 완전히 지워 버린 사장이 알바생들을 호출했다.
철저한 입단속을 위해서였다.
* * *
방 탈출 카페를 나온 상림이 한숨을 푹 쉬었다.
인력사무소에서 험상궂게 생긴 애들은 다 데려왔는데, 작전이 통한 것 같긴 하다.
그러나 자괴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이 둘리 같은 교주 놈이…….’
상림이 따라와 준 동생들에게 말했다.
“끝나고 삼겹살에 소주나 한잔하자. 아, 오늘 시간은 일당 맞춰서 쳐 줄게.”
“에이, 아닙니다. 대표님이 늘 저희 사정 많이 봐주시는데요.”
“미안해서 그래, 미안해서.”
“미안하긴요. 다음 가게 가시죠. 이거 은근히 재밌는데요?”
“근데 조카가 어떤 친구길래 이렇게까지 케어해 줘야 하는 겁니까?”
고개를 갸웃거리는 김지태를 보며 상림이 이를 앙다물며 말했다.
“아주 개자식이 따로 없……!”
그 순간, 상림은 벤치에 앉아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진유성을 발견하고는 혼이 나갈 듯이 놀랐다.
황급히 말을 돌렸다.
“개자식, 그러니까 강아지들이 잘 따라.”
“네?”
“그, 동물들이 따르는 사람들은 다 이유가 있다니까. 천성이 착해서 그래, 착해서.”
그 순간, 진유성의 전음이 상림에게 날아왔다.
[나 먼저 집 간다.]
상림이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진유성을 쳐다보는데, 전음이 이어졌다.
[천마신교 두 번째 교리.]
-천마신교 제이교리(第二敎理).
천신에게 불손한 언행을 보인자는 이유를 막론하고 엄히 다스린다.
[뒈졌다고 복창해라.]
상림이 고개를 푹 숙였다.
‘으아아아아!’
그러곤 소리 없는 절규를 터트렸다.
* * *
어느새 하늘이 어두웠다.
하루를 알차게 보낸 진유성은 홍대를 벗어나 상림의 집이 있는 강남으로 향하고 있었다.
올 때는 상림에게 배운 대로 지하철을 탔지만, 갈 때는 경공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직선거리로 움직이는 걸 생각하면 지하철보다는 경공으로 이동하는 게 더 빨랐기 때문이다.
다만, 밤이 아닌 낮에는 모든 이들의 이목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지하철을 이용했을 뿐이었다.
정체가 발각당하면 안 되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경공을 써서 쭉쭉 나아가는데 문득 화가 났다.
정체를 드러내면 안 된다는 상림의 말을 이렇게 잘 지키고 있는데, 뭐? 개자식이 따로 없어?
‘정신 개조가 필요하겠어.’
요즘 보면 상림은 교주에 대한 존경심이 많이 부족해 보인다.
‘근데 여긴 어디야?’
진유성은 인터넷을 통해 고려 시대의 지도와 현재 서울의 지도를 여러 차례 비교했다.
그래서 서울의 지리를 대충은 알고 있었다.
우측에 한강을 끼고 신나게 달리다 보면 강을 건너는 다리가 나오고, 거길 건너서 좀 지나면 상림의 집이 나온다.
한데, 별생각 없이 직선으로 달리다 보니 강과 꽤 멀어져 있었다.
진유성은 몰랐지만, 그가 도착한 곳은 이태원이었다.
“시끄러운 동네군.”
밤을 준비하는 이태원에서는 벌써부터 시끄러운 음악이 쉼 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진유성은 이태원을 그냥 지나치려다가, 잊고 있던 상림의 당부가 떠올랐다.
“아, 참. 그리고 나가서 외국인 있으면 멀더의 술법 좀 쓰고 오시고요.”
주변을 둘러보니 수많은 색목인(色目人)들이 있었다.
색목인이야 홍대에도 많았지만, 여긴 유독 많은 것 같았다.
“흠.”
진유성이 주변을 둘러보며 적당한 사람을 물색했다.
때마침 가까운 환전소에서 나오는 색목인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모자를 푹 눌러써서 얼굴을 가렸지만…….
‘눈빛에 정기가 뚜렷하군.’
삐쩍 마르고 피부가 하얀 게 꼭 목내이(木乃伊 : 미라) 같았지만, 눈빛이 굉장히 정순하다.
무릇 올바른 정신에 올바른 언어가 깃드는 법이다.
마음을 정한 진유성이 천천히 다가가자, 휴대전화를 보고 있던 금발벽안의 색목인이 웃으며 말을 걸었다.
“Hi. What’s the matter, Boy?”
“뭐라는 거야?”
“Sorry. I can’t speak korean.”
그 순간, 진유성이 언어 습득의 마도술을 시전했다.
백인 여성이 뭔가에 홀린 듯 진유성의 눈을 쳐다보기 시작했고, 그녀의 의식에 새겨진 언어 체계가 전달되었다.
* * *
마도술에 홀려 있던 여자가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무슨 일이…….’
모닝콜에 일어났다가 저도 모르게 다시 잠들어 버린 기분이 든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분명 환전을 하고 나오다가 귀엽게 생긴 동양인 소년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말이었다.
‘내가 졸았나?’
그러나 그 순간, 여자는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 타인의 정신 계통 스킬이 그녀의 방화벽을 뚫고 활성화되었다는 걸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말도 안 돼!’
숨을 들이켠 그녀가 다급하게 머물고 있는 호텔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곤 조용한 방 안에서 자신의 정신 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세뇌, 암시, 최면, 트라우마 주입, 트리거 활성화…….
수많은 부분을 체크했지만 어떤 문제도 없었다.
‘뭐지? 착각한 건가?’
그러나 아니었다.
여자는 긴 시간 끈기를 가지고 파고든 끝에 자신의 언어 계통에 공유의 흔적이 남았다는 걸 눈치챘다.
여자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곤 호텔 금고의 문을 열어서 검은색 위성 전화를 꺼내 들었다.
잠시 뒤.
복잡한 과정을 거쳐 누군가와 통화를 연결한 여자가 입을 열었다.
“아멜라 메건입니다.”
정신계 각성자 세계 순위 9위.
정신계 각성자 미국 순위 3위.
정신계 최초의 더블 에이(AA)급 각성자.
SG 추산 랭킹 200위 내의 하이 랭커.
UN SG 홍보대사.
미국의 상원의원.
VOUGE가 선정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각성자 TOP 10.
그리고…….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몇 개의 비밀 직함들.
여자는 이 모든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세계적인 각성자 ‘아멜라 메건’이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누군가 제 정신 방벽을 해킹했습니다.”
-…….
“네. 믿기지 않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입니다. 아무래도…….”
아멜라 메건이 머뭇거렸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접속 패스워드를 해킹당한 것 같습니다.”
아멜라 메건의 발언에 위성 전화 너머에서 난리가 났다.
“상대는 최소한 더블 A급 정신계 각성자입니다. 어쩌면 S급까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 * *
자신을 두고 어떤 오해가 벌어지는지도 모른 채, 진유성은 투덜거리고 있었다.
한국의 밤은 태양만 없을 뿐이지, 낮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활기차다.
‘속도가 안 붙는군.’
신법은 이동 폭이 넓어야 속도가 나는데, 한국의 도시는 신법을 쓸 수 없는 구간이 많다.
그렇다고 은신술을 쓰자니 환한 곳들이 너무 많다.
‘그냥 강 위를 달릴까?’
달이 없는 밤이니 은신술을 쓰면 강 위를 달려도 아무도 발견하지 못할 것 같다.
진유성이 그런 생각을 하며 한강 쪽으로 움직이려는데, 문득 멀지 않은 골목에서 질펀한 욕설과 타격음이 들렸다.
“아프냐? 아프냐고!”
“이 병신이. 선생한테 꼰지르면 될 줄 알았냐?”
“너 오늘 뒈졌어.”
가만히 욕을 듣고 있으니, 동년배의 무리들이 학관 친구를 괴롭히는 것 같다.
‘지나치군.’
진유성이 인상을 찌푸렸다.
고려에도, 명나라에도 학관 내의 따돌림은 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수위가 가학적인 폭력이 행사되고 있다.
상림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지성이 발전해 폭력성이 퇴색되었다던데, 중원에 살던 진유성이 보기에도 가학적이었다.
전장에서 만난 적이야 사지를 찢어 죽이든 목을 베어 버리든 상관없지만, 이 경우는 무저항의 학관 친구가 아닌가?
‘지나치긴 좀 그렇고…… 얼굴만 노출 안 되면 되는 거겠지?’
진유성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멀지 않은 가게의 진열대에 이상한 가면이 놓여 있는 게 보인다.
가면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입체적인 형태였는데, 얼굴을 가리는 게 아니라 머리를 덮어 버린다.
‘뭐, 얼굴이 가려지면 다 가면이지.’
진유성이 가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유리 안에 진열되어 있었지만, 허공섭물(虛空攝物 : 내공으로 물체를 움직이는 기예)을 이용한다면 충분히 꺼내 올 수 있다.
내공이 움직이고, 가게에 진열되어 있던 가면이 진유성의 손에 스르륵 들어왔다.
놀랍게도 가면이 진열되어 있던 유리는 깨지지 않았다.
진유성이 내공을 이용해 유리를 잘라 내고, 가면을 꺼낸 뒤 다시 유리를 맞물려 놓은 것이었다.
자세히 본다면 잘려 나간 흠이 보이지만, 얼핏 봐서는 알 수 없을 만큼 섬세한 기예였다.
그사이 주머니를 뒤져 돈을 꺼낸 진유성이 고민했다.
남의 물건을 그냥 가져가긴 좀 그런데, 가면이 얼마나 하는지 모르겠다.
‘천상의 맛을 내는 떡꼬치가 스무 개에 3만 원이었지?’
많이 산다고 주인장이 좀 깎아 줬었다.
잠시 고민하던 진유성이 가면이 있던 곳을 향해 천 원을 훅 던졌다.
천 원짜리가 잘려 나간 유리의 틈새를 통해 진열대 위에 놓였다.
‘셈이 좀 부족하더라도 좋은 일에 쓰인다고 생각하게.’
사실 탈놀이에 쓰이는 가면이 비싸 봐야 얼마나 비싸겠는가.
그렇게 가면을 뒤집어쓴 진유성은 얼굴 부분이 불편해 가면을 매만졌다.
그러자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눈동자 부분에서 환한 빛이 쏟아졌다.
알아들을 수 없는 음성이 들리기도 했다.
“뭐야?”
빛을 끄려 했지만, 조작법을 모르니 별수 없었다.
게다가 저곳을 좀 더 방치했다가는 송장을 치를 것 같다.
허공으로 번쩍 뛰어오른 진유성이 단숨에 골목으로 뛰어들었다.
쿠웅-!
착지하는 순간, 진각을 밟아서 상대의 기를 죽이는 수법은 늘 잘 통한다.
진유성이 버럭 외쳤다.
“Where is the 강호의 도리!”
진유성이 살짝 당황했다.
방금 전 습득한 색목인의 언어가 저도 모르게 섞여 버렸다.
언어 습득의 마도술은 대상의 언어를 무의식에 새기는데, 진유성의 입장에서는 한국어와 색목인의 언어를 구별하기가 힘들었다.
전부 외국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무뢰배들은 그의 말을 알아들은 듯했다.
“저 새끼 뭐야, 미친놈이야?”
“……아이언맨?”
“진영이 아냐? 야! 최진영, 뭐 하냐.”
“아냐, 병신아. 목소리가 다르잖아.”
무뢰배들이 당황하는 사이, 진유성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좀 멋있는 거 같다.
‘나한테도 이런 일이 생기는군.’
그동안 읽었던 무협 소설에서 수없이 봐 왔던 협객의 등장!
사실 진유성은 중원에 살 때 협객행을 해 본 적이 없다.
멸마대에 있을 때는 그럴 상황이 없었고, 생존대에 있을 때는 말 그대로 생존하는 데 급급했다.
중원을 주유하긴 했으나, 돌아다녔다기보다는 도망쳐 다녔다고 보는 게 옳았다.
그래서 무협 소설을 볼 때 꼭 따라 해 보고 싶던 장면이었다.
‘가면까지 썼으니,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군.’